곧 회사를 접수하기 위해 무진이 해야 할 일이 많았다.한동안은 성연에 대해서도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병원에 더 있어도 별다른 진전이 없자 고모부 조승호가 퇴원을 권했다.“병원에 계시는 게 엄마에게 좀 더 좋지 않을까요? 병원에서 간호사가 더 잘 돌볼 수 있을 테니까.” 운경은 엄마의 퇴원에 찬성하지 않았다.“똑같아. 집에 가셔서 익숙한 것들을 보시면 장모님 마음이 좀 더 좋아지실 테고, 병세에도 도움이 되겠지.” 조승호는 언제나처럼 사심이 없었다.그저 어떻게 해야 장모님이 더 좋아지실까, 하는 마음 외에는.“알았어요.” 운경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그날 저녁 무렵. 수업을 마친 성연이 무진과 함께 안금여를 강씨 고택으로 모셔갔다.집안에 있던 집사와 고용인들이 모두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선대 회장부터 지금까지 몇 십 년의 세월을 모셨던 안금여의 이런 모습을 본 집사는 눈물 범벅이었다.“마님, 어찌, 어찌 이런 일이?”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하며 안금여 앞으로 다가갔다.집사를 알아보지 못한 안금여는 그저 멍하니 제자리에 서 있을 뿐이다. 멍한 눈을 한 채.바라보던 운경도 가슴이 아파왔다. 슬쩍 고개를 돌리며 눈물을 훔쳤다.집안의 고용인들을 모두 해산시긴 운경이 입을 열었다.“집사님, 우린 요즘 무척 바빠요. 집사님이 집에 있으면서 엄마를 잘 보살펴야 해요. 생각이 짧은 고용인들에게 빈틈을 주지 않도록 하시고요.”지금의 안금여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평소 고용인들에게 엄격했었다.일부 고용인들은 원한을 품을 수도 있기 마련.지금의 안금여는 어떤 짓을 하더라도 아무 말도 못할 것이다.운경은 곁에서 돌볼 마음도 있었지만, 그러지 못할 때도 많을 터였다.자신이 곁에 없을 때, 엄마가 괴롭힘을 당할까 걱정이었다.사실 엄마를 누구에게 맡겨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집사는 이 집안 사람이라 할 만큼 믿을 수 있었다.“아가씨, 걱정 마세요. 제가 부인을 잘 모시겠습니다.” 그러며 안금여를 보며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지금
성연에게 다른 의도가 있다는 것을 운경은 모르고 있었다.이 기회를 빌려서 할머니 안금여의 몸을 검사해 보려는.지금 자신이 가지고 있는 데이터 양도 적고 썩 정확하지도 않았다.직접 검사해 보아야 할머니 치매의 구체적인 원인을 알 수 있을 것이다.또 할머니의 몸 상태에 근거해야만 가장 적절한 약을 조제할 수 있고.할머니의 몸에 최대한 영향을 주지 않도록 해야 했다.마침, 다음 날이 주말이었다.송성연은 안금여 곁을 지키려 고택에 왔을 때, 무진과 운경이 모두 없었다.성연이 집사에게 말했다.“할머니를 모시고 나가서 기분을 좀 전환하고 싶어요. 뭐가 튀어나올 지는 모르겠지만, 바깥의 공기가 그래도 좀 신선하죠. 늘 안에 갇혀 계시면 건강 회복에도 좋지 않아요.”이유는 아주 충분했다.평소 안금여는 성연을 좋아했지만, 집사의 눈에 송성연은 여전히 외부인인 뿐이었다.아직 경계심을 다 지우지 못한 집사는 성연처럼 어린 여자아이가 안금여를 잘 돌볼기나 할까 걱정이 앞섰다. 안금여를 놓고 모험을 할 수는 없으니까.성연을 바라보는 집사의 마음이 여전히 놓이지 않았다.“아무래도 사람을 보내 두 사람을 뒤따라가게 하겠습니다. 좀 더 안전하게.”성연이 손을 흔들었다.“괜찮아요, 편하게 왔다 갔다 할 거예요. 최대한 빨리 돌아올게요.”성연의 말에도 집사는 뜻을 굽히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작은 사모님, 난처하게 하지 마십시오. 사람을 보내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두 분 뒤에 서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만약 사고가 생기면 성연의 이 작고 가녀린 몸으로는 안금여를 제대로 보호할 수 없을 터.집사는 속으로 이런 생각 중이었다.“뒤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따라다니면서 할머니를 자극하면 어떡해요?” 성연이 일부러 말했다.“제가 멀리서 따르게 시키겠습니다. 그러면 회장님께 보이지 않을 겁니다.” 무슨 말을 해도 집사는 동의하려 하지 않았다.결국 성연이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집사가 붙인 경호원이 뒤따르는 데에 동의했다.집사에게 다른 악의가 없다
서한기의 차에 안금여를 태우고 옷을 정리해 준 후, 자신도 차에 올라 타 차창을 닫았다.“2시간밖에 시간이 없어. 두 시간 후에 돌아와야 해.”시간은 충분했다. 자신들의 실험 기기들은 모두 최고의 것들이니까.간단한 데이터 테스트엔 그리 긴 시간이 필요 없다.잠시 후 서한기가 입을 열었다.“보스가 지난번에 준 그 약 성분들을 조사해 봤습니다. 회장님이 드신 그 약물은, N국에서 건너온 겁니다. 또 그 변태 교수의 연구소였어요.”그 말을 듣던 성연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가라앉았다.변태 교수는 ‘브라이언’이라는 외국 교수를 말한다.그는 의학계의 수치였다. 한때는 그 의학계의 천재였다. 무수한 상도 받았었고. 그런데 연구에 미치더니 사람을 해치는 약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지금은 이미 어둠의 세력, 위험 인물 중의 하나로 분류되었다.‘이 약이 저쪽에서 흘러나왔을 줄은 전혀 예상 못 했는데.’‘브라이언 교수가 약을 쓰는 방식은 너무 극단적이야.’‘극도의 효과를 내기 위해 모든 약물을 썼을 거야.’‘그러나 이것도 사람을 해치는 것에 국한된다.’예를 들자면, 치매를 일으키는 이 약.브라이언 교수는 이 약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방법을 강구할 것이다.어쩐지 그때 약효가 그렇게 빨리 나타나더라니. 알고 보니 브라이언 교수의 손에서 나온 것이었다.할머니의 상황은 아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할 것이다.‘그나저나 브라이언 교수의 약을 구하다니, 강상철, 강상규에게 이런 능력이 다 있었나.’브라이언의 행위는 정말 부끄러운 짓이지만, 그럼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에게서 약을 구하고 있었다.일년 내내 지명수배 중인 터라 그의 연구실에서 생산한 약은 더 구하기 힘들었다.그의 연구실과 행적은 뚜렷한 정착지가 없어 찾기조차 힘들었다.이 약이 세상에 나오자마자 사람에게 끼친 해악은 가히 치명적이었다.천재를 잘못된 곳에 쓰면 바로 고위험 인물이 되는 것이다.둘째, 셋째 할아버지가 그렇게나 많은 돈을 안금여에게 쓰다니, 정말 밑천이 아깝지 않은 모양이다.
분명 브라이언 교수의 이름을 들은 적이 있는 무진이었기에 보고를 듣고 난 그의 얼굴이 참담해졌다.깊게 가라앉은 눈을 한 무진의 입에서 차가운 음성이 흘러나왔다.“즉시 N국에 사람을 보내 브라이언 교수를 찾아. 그 손에서 반드시 해독제를 받아와.”손건호도 굳은 표정을 지었다.“최대한 빨리 가서 처리하겠습니다.”이어 무진을 보며 물었다.“보스, 고택으로 갈까요, 아니면 회사로 갈까요?”무진의 미간에 주름이 잡히며 담담하게 말했다.“고택으로 가지.”안금여가 집에 있어도 그다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비록 성연이 곁에 있지만, 할머니는 평소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그를 챙겼다. 그러니 자신 또한 효심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성연은 서한기와 함께 연구소에 도착했다.아주 조심스럽게 안금여를 부축해서 내려 안으로 들어갔다.안에는 이미 여러 명의 연구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 그녀를 보고 공손하게 말했다.“보스.”성연이 한 사람을 데리고 들어오자 그들의 눈에 약간의 호기심이 비쳤다.하지만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성연의 결정에 항상 복종해왔으며 아무런 이의도 없었다.성연이 살짝 고개를 끄덕인 후 들어가서 흰 가운을 입었다.그리고 안금여에게 일련의 검사들을 진행했다.성연의 표정은 자못 엄숙했다. 각종 기구를 능숙하게 조작하는 태도가 무척이나 진지해 보였다.평소의 무심한 듯한 모습과는 180도 달랐다.아무도 17세 고등학생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최고의 연구자였다.연구소의 사람들은 이런 모습에 일찍부터 습관이 되어 있었다.서한기가 옆에서 침착하게 성연을 서포트했다.한 시간 뒤.검사 결과, 안금여의 각종 신체 지표 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결국 약의 영향으로 뇌신경이 이렇게 된 것이다.성연이 한 여자 연구원에게 안금여와 함께 산책을 가라고 시켰다.다행히 오늘 안금여는 말을 꽤 잘 들었다.소동도 피우지 않고.그렇게 얌전히 다른 사람을 따라나섰다.그러나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는 성연이았다.부드러운 음성으로 안금여
회의를 끝내고 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더 늦어진 것을 본 성연이 얼른 흰 가운을 벗고 안금여를 원래의 카페로 데려갔다.뒷문으로 들어섰을 때, 줄곧 제위치에서 초조한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는 경호원이 보였다.이어 다시 실내로 들어와 한 바퀴 둘러보더니 성연을 발견했다. 얼른 다가와 물었다.“사모님, 어디 가셨습니까? 보스께서 오셨습니다.”무진이 벌써 돌아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던 성연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그녀는 강무진 오늘 그렇게 일찍 돌아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속으로 응대할 말이 있었지만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원래 무진이 고택으로 돌아왔는데 할머니와 성연이 보이지 않았다.그제야 집사의 입에서 성연이 할머니를 데리고 외출했다는 말을 들었다. 무슨 사고라도 날까 싶어 걱정된 마음에 찾아온 것이다.성연이 할머니에게 나쁜 일을 할까 봐 걱정하는 게 아니었다.성연이 이런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진짜 걱정되는 것은 둘째, 셋째 쪽에서 이 기회를 틈타 성연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이다.그래서 얼른 찾아왔더니 카페에 성연이 없었다.마음이 조급해진 무진이 경호원들에게 빨리 찾으라고 지시했다.경호원들의 기세를 보니 일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 보였다.얼른 성연이 해명했다.“막 할머니를 화장실에 모시고 갔었어요. 그래서 못 본 것이고요.”무진이 의심할까 봐 좀 걱정이 되었다.무진이 어떤 면에서 유난히 예민하다는 걸 알았다.다른 사람은 속일 수 있다 쳐도 무진까지 속일 수 있을 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이들이 의심한다 해도 성연은 작은 꼬투리도 잡지 못하게 했다.그래서 성연은 침착하게 대응했다.“아까 여기 계시다가 회장님과 다른 곳에 가시지 않았습니까?” 경호원이 의심했다.조금 전 사람을 찾을 수 없어 종업원에게 부탁해 여자화장실까지 찾아보았다.머리카락 한 올 보이지 않았었다.“아뇨, 말했잖아요, 화장실에 갔다고.” 성연이 담담하게 말했다.얼굴에는 전혀 겁먹거나 어색한 기운이 없다.이러니 오히려 더 믿기 어려웠다.경호원
무진의 뜻을 알아차린 손건호는 지시를 따르기 위해 즉시 움직였다.하지만 손건호는 제대로 조사할 수가 없었다. 성연이 미리 서한기를 시켜 CCTV를 지워버렸으니까.이 일을 진행하겠다고 마음먹은 후 절대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그녀의 오랜 습관이다.필수 기술이기도 하고.그녀가 준비한 상황에서 손건호가 뭔가 알아낸다면 요 몇 년 헛수고한 셈이다.성연과 무진이 고택으로 돌아갔다.운경도 집으로 돌아왔다. 초조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던 운경이 성연과 안금여를 보고 즉시 달려왔다.성연이 엄마를 데리고 나갔다는 말을 듣고는 음성에 책망의 빛이 묻어났다.“이런 시기에 마음대로 엄마를 데리고 나가다니. 만약 또 무슨 사고가 생기면 어떻게 할려고?”지금 상황에서 안금여의 몸은 더 이상의 충격은 견디지 못한다.또한 둘째, 셋째 숙부 쪽도 걱정이 되었다.그런 악랄한 수작까지 부리는 저들이 아닌가.또한 저들이 움직이는 작은 손발들까지.지금은 집안 모두가 조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안금여에게 있어서는 매 상황이 모두 치명적이니까.특히나 성연은 전혀 반항할 수 없는 어린 여자아이였다.송성연이 변명했다.“다른 뜻은 없었어요. 할머니께서 나가서 좀 걸으시면 건강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하루 종일 새장 속에 갇힌 듯 지내는 건 치매 환자의 병세에도 좋지 않았다.‘사실인 걸.’‘바깥세상을 많이 해야 해.’‘아마 외부에 대한 할머니의 반응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을 거고.’더욱이 자신이 이렇게 한 것 모두 할머니의 병세를 위해서가 아닌가.하지만 그녀는 말할 수가 없다.이렇게 하는 행동이 다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할머니가 자신에게 보여준 그 온정과 호의를 위해서일 뿐.’어느 누구의 감사도 필요 없었다. 자기 양심에 부끄러움이 없으면 되는 것이다.성연의 표정이 담담했다.걱정이 많아지며 혼란스러워진 운경의 어조가 순간 좀 거칠어졌다.성연을 다그칠 뜻은 없었다.성연이 이렇게 말하니 또 무어라 할 말이 없었다.그래도 재차 당부하는 걸 잊지
이런 상황을 이미 예상한 듯 무진은 별로 따져 묻지도 않았다. 손끝으로 탁자 위를 가볍게 톡톡 두드리더니 느릿한 음성으로 말했다.“알았어. 더 이상 조사할 필요 없어.”손건호가 고개를 끄덕였다.속으로는 우리 보스 사모님을 너무 감싸는 거 아냐, 라고 생가하면서.송성연 쪽에 문제가 있다는 건 확실했다.그러나 성연은 이런 상황을 모르고 있었다.침대에 누워서 한참을 몽롱한 상태로 있다 겨우 잠들었다.그래도 한참을 자고 일어나니 정신이 많이 돌아온 듯하다.일어났을 때는 이미 저녁 시간이었다.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이 있는지 보려고 부엌으로 슬그머니 들어갔다.집사도 있고.“작은 사모님.” 집사는 정중한 음성으로 불렀다.“오늘 저녁은 뭐예요?” 주방 내부에서 음식 하는 걸 봐도 뭔지 모르겠다.성연은 음식 할 줄을 몰랐다.이 음식들은 차려 놓은 것도 같고, 상에 올리려는 것도 같다.집사가 몇 가지 음식을 알려 주었다.집사의 입에서 나오는 음식들은 썩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것들이었다. 여기 고택에서는 전부 자신의 입맛에 맞게 할 수 없을 터였다.성연 자신도 많은 것을 요구할 수 없는 입장이니 먹을 수 있기만 하면 된다.“작은 사모님, 뭐 드시고 싶은 게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오. 준비하도록 주방에 말해 놓겠습니다.” 눈치를 챈 집사가 곧바로 말했다.주방에는 없는 것이 없어 보였다. 모두 오늘 아침에 구입한 신선한 식재료들이다.뭘 먹고 싶든 문제될 게 없었다.하지만 성연은 너무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았다.손을 저으며 사양했다.“아뇨, 다 괜찮아요. 주방장님께 맡길게요.”‘고택에 오자마자 특권을 누린다? 윽, 그건 모두의 미움을 사는 지름길이지.’그러다 또 다른 솥에 다른 것이 준비되고 있음을 발견한 성연.호기심에 물었다. “이건 뭐에요?”“아, 이건 회장님 드실 겁니다. 회장님 드시기에는 소화가 잘 되는 음식이 적합해서 주방에 따로 준비하라고 했습니다.”옆에 있던 집사가 대신 대답했다.성연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안금여를 안무하면서 성연은 이후에 어떻게 해야 할지도 잊지 않고 생각해 두었다. 저녁을 먹은 뒤라 늦은 시간이었다.이 시간엔 더 이상 할 일이 남지 않아 주방 정리를 끝낸 고용인들은 각자의 방으로 쉬러 돌아갔다.방은 뒤편 별채에 있었는데, 바로 앞에 가서 소리를 질러야 들을 수 있는 거리였다.이제, 거실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무진과 운경도 보이지 않았다.자질구레한 일들을 처리하기 위해 고택의 관리집사만 남아 있었다.성연은 집사의 눈을 피해 휠체어에 앉은 안금여를 밀고 위층으로 올라갔다.다행히 집사는 아무것도 못 본 듯했다.너무 긴장한 탓인지 등에서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위층에 도착한 성연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슬며시 문을 닫았다.하지만 꽉 닫지는 않고 약간의 틈을 남겨 두었다.그래야 누가 오면 알아차리기 쉬울 테니까.문을 잠그면 오히려 더 의심을 사기 쉬울 것이다.아무튼, 아무도 성연의 행동을 눈치 채지 못한 듯했다.무진과 운경이 언제쯤 일을 끝내고 올 지 알 수 없고, 또 누가 언제 올 지 모르니 속도를 내는 것이 좋다. 할머니 안금여를 돌아본 성연이 눈살을 살며시 찌푸렸다.‘침을 맞으면 아프실 텐데.’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할머니가 잘못 움직이기라도 한다면 은침으로 다른 곳을 찌르거나 부러질 수도 있었다. 그러면 정말 큰일이다.의료용 은침은 그다지 단단하지 않은데다 매우 가늘었다.하지만, 성연이 사용하는 은침은 특수 처리를 거쳐 일반 은침보다 내구성이 뛰어난 편이다. 어찌되었든 한순간도 방심할 수는 없었다. 사고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법이니까!어떤 실수도 있어서는 안되었다!결국, 성연이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냈다.‘먼저 할머니를 재우는 게 좋겠다!’‘어떻게 하면 할머니가 주무실까?’미간을 접은 채 생각에 잠긴 성연.그러다 또 아이디어 하나가 불쑥 떠올랐다!엄마들은 아기를 재울 때 보통 자장가를 부르지 않는가.‘할머니는 아기가 아니지만 상황이 별단 다르지도 않지!’ 성연은 자신이 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