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브라이언 교수의 이름을 들은 적이 있는 무진이었기에 보고를 듣고 난 그의 얼굴이 참담해졌다.깊게 가라앉은 눈을 한 무진의 입에서 차가운 음성이 흘러나왔다.“즉시 N국에 사람을 보내 브라이언 교수를 찾아. 그 손에서 반드시 해독제를 받아와.”손건호도 굳은 표정을 지었다.“최대한 빨리 가서 처리하겠습니다.”이어 무진을 보며 물었다.“보스, 고택으로 갈까요, 아니면 회사로 갈까요?”무진의 미간에 주름이 잡히며 담담하게 말했다.“고택으로 가지.”안금여가 집에 있어도 그다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비록 성연이 곁에 있지만, 할머니는 평소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그를 챙겼다. 그러니 자신 또한 효심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성연은 서한기와 함께 연구소에 도착했다.아주 조심스럽게 안금여를 부축해서 내려 안으로 들어갔다.안에는 이미 여러 명의 연구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 그녀를 보고 공손하게 말했다.“보스.”성연이 한 사람을 데리고 들어오자 그들의 눈에 약간의 호기심이 비쳤다.하지만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성연의 결정에 항상 복종해왔으며 아무런 이의도 없었다.성연이 살짝 고개를 끄덕인 후 들어가서 흰 가운을 입었다.그리고 안금여에게 일련의 검사들을 진행했다.성연의 표정은 자못 엄숙했다. 각종 기구를 능숙하게 조작하는 태도가 무척이나 진지해 보였다.평소의 무심한 듯한 모습과는 180도 달랐다.아무도 17세 고등학생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최고의 연구자였다.연구소의 사람들은 이런 모습에 일찍부터 습관이 되어 있었다.서한기가 옆에서 침착하게 성연을 서포트했다.한 시간 뒤.검사 결과, 안금여의 각종 신체 지표 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결국 약의 영향으로 뇌신경이 이렇게 된 것이다.성연이 한 여자 연구원에게 안금여와 함께 산책을 가라고 시켰다.다행히 오늘 안금여는 말을 꽤 잘 들었다.소동도 피우지 않고.그렇게 얌전히 다른 사람을 따라나섰다.그러나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는 성연이았다.부드러운 음성으로 안금여
회의를 끝내고 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더 늦어진 것을 본 성연이 얼른 흰 가운을 벗고 안금여를 원래의 카페로 데려갔다.뒷문으로 들어섰을 때, 줄곧 제위치에서 초조한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는 경호원이 보였다.이어 다시 실내로 들어와 한 바퀴 둘러보더니 성연을 발견했다. 얼른 다가와 물었다.“사모님, 어디 가셨습니까? 보스께서 오셨습니다.”무진이 벌써 돌아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던 성연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그녀는 강무진 오늘 그렇게 일찍 돌아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속으로 응대할 말이 있었지만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원래 무진이 고택으로 돌아왔는데 할머니와 성연이 보이지 않았다.그제야 집사의 입에서 성연이 할머니를 데리고 외출했다는 말을 들었다. 무슨 사고라도 날까 싶어 걱정된 마음에 찾아온 것이다.성연이 할머니에게 나쁜 일을 할까 봐 걱정하는 게 아니었다.성연이 이런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진짜 걱정되는 것은 둘째, 셋째 쪽에서 이 기회를 틈타 성연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이다.그래서 얼른 찾아왔더니 카페에 성연이 없었다.마음이 조급해진 무진이 경호원들에게 빨리 찾으라고 지시했다.경호원들의 기세를 보니 일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 보였다.얼른 성연이 해명했다.“막 할머니를 화장실에 모시고 갔었어요. 그래서 못 본 것이고요.”무진이 의심할까 봐 좀 걱정이 되었다.무진이 어떤 면에서 유난히 예민하다는 걸 알았다.다른 사람은 속일 수 있다 쳐도 무진까지 속일 수 있을 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이들이 의심한다 해도 성연은 작은 꼬투리도 잡지 못하게 했다.그래서 성연은 침착하게 대응했다.“아까 여기 계시다가 회장님과 다른 곳에 가시지 않았습니까?” 경호원이 의심했다.조금 전 사람을 찾을 수 없어 종업원에게 부탁해 여자화장실까지 찾아보았다.머리카락 한 올 보이지 않았었다.“아뇨, 말했잖아요, 화장실에 갔다고.” 성연이 담담하게 말했다.얼굴에는 전혀 겁먹거나 어색한 기운이 없다.이러니 오히려 더 믿기 어려웠다.경호원
무진의 뜻을 알아차린 손건호는 지시를 따르기 위해 즉시 움직였다.하지만 손건호는 제대로 조사할 수가 없었다. 성연이 미리 서한기를 시켜 CCTV를 지워버렸으니까.이 일을 진행하겠다고 마음먹은 후 절대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그녀의 오랜 습관이다.필수 기술이기도 하고.그녀가 준비한 상황에서 손건호가 뭔가 알아낸다면 요 몇 년 헛수고한 셈이다.성연과 무진이 고택으로 돌아갔다.운경도 집으로 돌아왔다. 초조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던 운경이 성연과 안금여를 보고 즉시 달려왔다.성연이 엄마를 데리고 나갔다는 말을 듣고는 음성에 책망의 빛이 묻어났다.“이런 시기에 마음대로 엄마를 데리고 나가다니. 만약 또 무슨 사고가 생기면 어떻게 할려고?”지금 상황에서 안금여의 몸은 더 이상의 충격은 견디지 못한다.또한 둘째, 셋째 숙부 쪽도 걱정이 되었다.그런 악랄한 수작까지 부리는 저들이 아닌가.또한 저들이 움직이는 작은 손발들까지.지금은 집안 모두가 조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안금여에게 있어서는 매 상황이 모두 치명적이니까.특히나 성연은 전혀 반항할 수 없는 어린 여자아이였다.송성연이 변명했다.“다른 뜻은 없었어요. 할머니께서 나가서 좀 걸으시면 건강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하루 종일 새장 속에 갇힌 듯 지내는 건 치매 환자의 병세에도 좋지 않았다.‘사실인 걸.’‘바깥세상을 많이 해야 해.’‘아마 외부에 대한 할머니의 반응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을 거고.’더욱이 자신이 이렇게 한 것 모두 할머니의 병세를 위해서가 아닌가.하지만 그녀는 말할 수가 없다.이렇게 하는 행동이 다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할머니가 자신에게 보여준 그 온정과 호의를 위해서일 뿐.’어느 누구의 감사도 필요 없었다. 자기 양심에 부끄러움이 없으면 되는 것이다.성연의 표정이 담담했다.걱정이 많아지며 혼란스러워진 운경의 어조가 순간 좀 거칠어졌다.성연을 다그칠 뜻은 없었다.성연이 이렇게 말하니 또 무어라 할 말이 없었다.그래도 재차 당부하는 걸 잊지
이런 상황을 이미 예상한 듯 무진은 별로 따져 묻지도 않았다. 손끝으로 탁자 위를 가볍게 톡톡 두드리더니 느릿한 음성으로 말했다.“알았어. 더 이상 조사할 필요 없어.”손건호가 고개를 끄덕였다.속으로는 우리 보스 사모님을 너무 감싸는 거 아냐, 라고 생가하면서.송성연 쪽에 문제가 있다는 건 확실했다.그러나 성연은 이런 상황을 모르고 있었다.침대에 누워서 한참을 몽롱한 상태로 있다 겨우 잠들었다.그래도 한참을 자고 일어나니 정신이 많이 돌아온 듯하다.일어났을 때는 이미 저녁 시간이었다.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이 있는지 보려고 부엌으로 슬그머니 들어갔다.집사도 있고.“작은 사모님.” 집사는 정중한 음성으로 불렀다.“오늘 저녁은 뭐예요?” 주방 내부에서 음식 하는 걸 봐도 뭔지 모르겠다.성연은 음식 할 줄을 몰랐다.이 음식들은 차려 놓은 것도 같고, 상에 올리려는 것도 같다.집사가 몇 가지 음식을 알려 주었다.집사의 입에서 나오는 음식들은 썩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것들이었다. 여기 고택에서는 전부 자신의 입맛에 맞게 할 수 없을 터였다.성연 자신도 많은 것을 요구할 수 없는 입장이니 먹을 수 있기만 하면 된다.“작은 사모님, 뭐 드시고 싶은 게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오. 준비하도록 주방에 말해 놓겠습니다.” 눈치를 챈 집사가 곧바로 말했다.주방에는 없는 것이 없어 보였다. 모두 오늘 아침에 구입한 신선한 식재료들이다.뭘 먹고 싶든 문제될 게 없었다.하지만 성연은 너무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았다.손을 저으며 사양했다.“아뇨, 다 괜찮아요. 주방장님께 맡길게요.”‘고택에 오자마자 특권을 누린다? 윽, 그건 모두의 미움을 사는 지름길이지.’그러다 또 다른 솥에 다른 것이 준비되고 있음을 발견한 성연.호기심에 물었다. “이건 뭐에요?”“아, 이건 회장님 드실 겁니다. 회장님 드시기에는 소화가 잘 되는 음식이 적합해서 주방에 따로 준비하라고 했습니다.”옆에 있던 집사가 대신 대답했다.성연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안금여를 안무하면서 성연은 이후에 어떻게 해야 할지도 잊지 않고 생각해 두었다. 저녁을 먹은 뒤라 늦은 시간이었다.이 시간엔 더 이상 할 일이 남지 않아 주방 정리를 끝낸 고용인들은 각자의 방으로 쉬러 돌아갔다.방은 뒤편 별채에 있었는데, 바로 앞에 가서 소리를 질러야 들을 수 있는 거리였다.이제, 거실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무진과 운경도 보이지 않았다.자질구레한 일들을 처리하기 위해 고택의 관리집사만 남아 있었다.성연은 집사의 눈을 피해 휠체어에 앉은 안금여를 밀고 위층으로 올라갔다.다행히 집사는 아무것도 못 본 듯했다.너무 긴장한 탓인지 등에서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위층에 도착한 성연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슬며시 문을 닫았다.하지만 꽉 닫지는 않고 약간의 틈을 남겨 두었다.그래야 누가 오면 알아차리기 쉬울 테니까.문을 잠그면 오히려 더 의심을 사기 쉬울 것이다.아무튼, 아무도 성연의 행동을 눈치 채지 못한 듯했다.무진과 운경이 언제쯤 일을 끝내고 올 지 알 수 없고, 또 누가 언제 올 지 모르니 속도를 내는 것이 좋다. 할머니 안금여를 돌아본 성연이 눈살을 살며시 찌푸렸다.‘침을 맞으면 아프실 텐데.’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할머니가 잘못 움직이기라도 한다면 은침으로 다른 곳을 찌르거나 부러질 수도 있었다. 그러면 정말 큰일이다.의료용 은침은 그다지 단단하지 않은데다 매우 가늘었다.하지만, 성연이 사용하는 은침은 특수 처리를 거쳐 일반 은침보다 내구성이 뛰어난 편이다. 어찌되었든 한순간도 방심할 수는 없었다. 사고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법이니까!어떤 실수도 있어서는 안되었다!결국, 성연이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냈다.‘먼저 할머니를 재우는 게 좋겠다!’‘어떻게 하면 할머니가 주무실까?’미간을 접은 채 생각에 잠긴 성연.그러다 또 아이디어 하나가 불쑥 떠올랐다!엄마들은 아기를 재울 때 보통 자장가를 부르지 않는가.‘할머니는 아기가 아니지만 상황이 별단 다르지도 않지!’ 성연은 자신이 알고
안금여가 잠이 든 덕분에 성연은 어렵지 않게 침을 놓을 수 있었다.순조롭게 침을 놓은 후 이제는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시간을 너무 오래 끌 수도 없었다. 혹시 누가 들어오기라도 하면 큰 일이니까. 그래서 최대 시간을 십분 정도만 잡기로 했다. 그러면, 효과를 보는 데도 그닥 방해가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누군가에게 들킬까 봐 조마조마하는 시간도 줄어들 테니 말이다.혹시 누군가 이 쪽으로 올까 봐 걱정된 성연이 아예 문 옆으로 의자를 옮겨다 앉았다.휴대전화를 꺼내 연구소 상황을 살펴보았다.이쪽 방면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성연이었기에 독자적인 연구소를 세우고 보스의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다.뿐만 아니라 연구소 직원 전용 앱을 개발하기도 했다. 앱을 통해 각종 데이터를 공유할 수도 있었다. 물론 성연의 연구소 연구원들에 한해서. 이 앱을 활용해서 성연은 수시로 연구 진행 상황을 체크하며 연구 상의 문제점에 신속한 해결책을 제시하기도 했다. 쉽고 간단하게 사용할 수 있는데다 정보가 유출될 가능성도 적어 안전성을 자랑한다.설계 방면에서 성연은 전문가라 할 만했다. 도대체 못하는 일이 있기나 한지!성연의 손가락이 휴대폰 화면에서 쉴 새 없이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다.그저 핸드폰에 빠져 있는 듯 보이지만, 성연의 눈에 담기는 것들은 모두 유용한 정보들이다.모두 할머니의 병세와 관련된 정보들.이렇게 열심을 다하는 까닭은 일말의 실수도 없게 하기 위해서이다.어느덧 십분이 흘렀다.휴대폰을 내려놓은 성연이 침을 뽑기 시작했다.다행히 그동안 아무도 오지 않았다.운경과 무진도 잠시간은 오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침을 절반쯤 뽑은 채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순간.문밖에서 발자국 소리가 울렸다.성연의 몸이 순식간에 바짝 긴장하기 시작했다.하지만 동시에 재빨리 손을 놀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찰칵-문이 열리고 강무진이 들어왔다.성연이 얼른 작은 은침 가방을 외투 주머니에다 몰래 숨겼다.다행히 성연의 손이 무척 빨랐던 덕분에 들키
엠파이어 하우스로 돌아온 성연의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완전히 기운이 빠진 듯하다. 거실로 나온 성연을 무진이 그제야 물었다.“어디 안 좋은 것 아니야? 기운이 없어 보여.”무진이 자신에게 관심을 줄 줄은 몰랐던 성연은 잠시 어리둥절했다.“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잠을 잘 못 자서 그래요.”매번 침을 놓을 때면 많은 에너지를 쏟게 된다.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침술이다 보니 머리 속의 세포 하나하나가 다 바짝 곤두선 느낌이다. 그러다 일단 긴장이 풀리기라도 하면 간신히 살아남은 느낌이랄까.그러니 그 피곤의 정도를 가히 짐작할 수 있을 터. 성연의 말에 무진의 날렵한 눈썹이 높이 솟아올랐다.별다른 생각없이 성연이 정말 잠을 제대로 못 자서 그런가 보다고 여기는 무진이다.평소 그녀는 학교 가는 길에서도 집에서도 틈만 나면 잠을 잤다. 여태껏 이 부분에 대해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저 너무 많이 자는 건 아닌가 생각할 뿐. 하긴 요 며칠 집안 일로 쫓아다니며 많이 힘들기도 했을 터.성연을 생각한 무진이 말을 꺼냈다.“어차피 이렇게 피곤한데 오늘 밤 침은 그냥 넘어가지. 가서 쉬어. 기력부터 회복해야지.”그도 그리 인정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성연이 손을 가로 저으며 말했다.“괜찮아요, 누워요.”지금 성연의 머릿속에 다른 생각은 없었다. 그저 얼른 이 일을 끝내고 빨리 침대에 누워 자고 싶다는 생각뿐. 더 이상 묻지 않고 자리에 누운 무진은 성연이 마음대로 하게 두었다.성연이 천천히 침을 놓기 시작했다.침을 놓으면서 또 느릿느릿하게 말했다. “지금 침을 중단해선 안돼요. 그럼 이제껏 했던 노력이 모두 허사로 돌아가게 돼요.”정말 피곤해 죽을 지경인 성연은 사실 꼼짝도 하기 싫었다.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의학 영역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난 의술인으로서 치료를 중단하는 것은 용납할 수가 없는 일이다.지금보다 더 힘들었던 때도 이를 악물고 견뎠다.침을 놓으며 일부러 무진과의 대화를 이어갔다. 너무
다음 날.몸에 붙은 습관에 의해 오늘도 일정한 시간에 잠이 깬 성연.평소 습관에 따라 먼저 기지개를 켜며 몸을 풀었다.아니, 그러려고 했다.그런데 어째 오늘은 팔을 움직이려 해도 어딘가에 꽉 묵인 듯 움직여지지가 않았다.짜증스러운 느낌과 함께 눈을 떴다. 그러자 단단한 턱이 눈에 들어왔다. 또 온몸이 따뜻하게 덥혀져 있었다. “깼어?” 얕은 잠이 들었던 무진은 성연이 깬 것을 금세 알아챘다. 매력적인 저음이 성연의 귀를 간지럽혔다.그제서야 자신이 무진의 품속에서 잤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아직은 무진이 좀 불편했다.다른 사람과 가까워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성연이다.그런데 어쩌자고 그의 품에 들어갔는지.속으로 여전히 불편했으나 겉으론 아무렇지 않은 듯 차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네, 일어났어요!” 얼른 무진 품에서 빠져나온 성연이 침대에서 내려섰다.무진은 그런 성연을 응시했다.성연의 눈에서 수줍은 빛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자 속으로 실망감이 드는 것도 사실.성연이 어떻게 나올지 좀 기대도 했었는데 이렇듯 무덤덤하니 아무런 반응도 없다니.‘얼굴조차 하나 안 빨개지다니.’그래도 희망이 좀 있다고나 할까. 결국 성연의 나이를 생각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천천히 가자, 사춘기도 안 끝난 애한테 무슨…….’‘이 아이는 우리가 그냥 말 그대로 단순히 잠만 자는 건 줄 아나 봐.’두 사람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래층으로 내려갔다.다른 날과 같은 아침 메뉴. 매일 먹는 죽에 질렸던 차에 모처럼 국수가 식탁에 올라와 있었다.양념장을 붓고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무진은 그런 성연을 보며 대체 맛은 느끼고 먹는지 궁금했다. 물론 아주 잠깐의 생각이었을 뿐, 성연을 힐끗 본 뒤 바로 시선을 돌렸다.살짝 고개를 숙인 채 죽을 먹는 단순한 동작조차 우아하기 그지없었다. 어쩐지 오늘따라 입안의 죽 맛이 그저 그런듯하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너 저번에 밴드에 가입했다고 하지 않았어? 어때? 재미는 있어?” 무진이 그릇에 담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