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연철을 배웅한 무진이 돌아왔다.무진이 다시 거실로 들어오자 조수경이 차를 따라주며 물었다.“무진 오빠, 오빠 사업 얘기하는 데 내가 방해한 거 아니에요?”무진이 대답했다.“곽 사장은 신중한 사람이라 외부인이 있을 때는 당연히 회사 얘기를 잘 하지 않아.”‘외부인이 있을 때는 회사 얘기를 하지 않는다고?’‘그런데 이야기 중에 나보고 나가라는 말을 하지 않았어.’조수경은 속으로 아주 기뻤다. 어쨌든 무진의 말 뜻은 자신을 외부인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니까.그러나 무진은 조수경이 이렇게 생각하는지 몰랐다.단지 단순하게 별 생각이 없었을 뿐이다. 그래서 조수경을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인데.하지만 조수경은 완전히 다르게 받아들였다.무진은 지금 차를 마시고 있지만 속으로는 갈등이 일었다. 목현수와 성연에 관한 일을 잠시 생각하던 무진은 그래도 성연에게 한 마디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성연인 이런 일에 어리숙해서 목현수의 마음을 잘 몰라.’‘하지만 목현수 그 놈은 잘난 척 꼬리를 흔들어 대며 속으로 딴 마음을 품고 있을 분명해.’‘내가 없는 틈을 타서 성연이 앞에서 제 존재감을 과시하다니, 정말 사람 열 받게 만들고 있어.’‘성연에게 한 소리 해둬야겠어. 성연이가 목현수와 거리를 좀 둔다면, 이렇게 열 받는 일은 없겠지.’두 사람은 각자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다.조수경은 다시 좀 전 보다 더 부드럽고 달콤한 목소리로 말했다.“오빠, 더 드실래요? 더 드실 거면 제가 우려 드릴게요.”방금 곽연철과 세 사람이 함께 마시느라 차는 지금 이미 다 마시고 없는 상태.“아니야, 오늘은 됐어.” 결정을 내린 무진은 성연을 보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해졌다.“그래요. 그럼 다음에 또 같이 차 마셔요.” 조수경은 주방에서 디저트를 가져왔다.주방에서 준비해 준 것이다. 디저트에 대해서는 조수경도 잘 알지 못했다.마음은 있지만 아직 만들 줄은 몰랐다.탁자 위의 디저트를 본 무진의 얼굴이 약간 풀어지면서 부드러운 표정을 지었다.‘집에
강씨 집안 고택에서 나온 곽연철은 자신의 차로 향했다.마침 수업이 마치는 시간이라 성연에게 전화를 걸었다.그리고 조수경의 존재를 성연에게 말했다.“보스, 조수경이라는 여성이 고택에 머물고 있는데, 할머님과의 사이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주의 깊게 보셔야겠습니다.”한 팔로 책을 가슴에 붙이고 있던 성연은 곽연철의 말에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 넥타이, 곽연철이 말한 조수경이란 여자가 무진에게 사준 것이 아닐까 싶다.‘어떻게 이렇게 공교로울 수가 있지? 조수경이란 여자가 강씨 집안에 등장하자 마자 무진 씨가 못 보던 넥타이를 하고 있다니?’성연은 그런 우연 같은 것을 믿지 않았다.그러나 곽연철의 앞에서는 절대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성연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면서 말했다. “무진씨에 대해서는 내가 잘 알고 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그러나 그렇게 생각되지 않는 곽연철이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보스, 지금은 상황이 달라요. 강무진은 그럴 생각이 없을 지도 모르지만, 그 조수경이란 여자는 강무진에 대해서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강무진과의 협력 관계가 아무 좋다고 해도, 곽연철은 변함없이 보스 성연의 편이다.성연이 없었다면 강무진과 합작할 수도 없었을 터.성연은 마음을 좀 진정시키면서 입술을 오므렸다.“무진 씨는 자기 절제가 강한 사람이에요. 별일 없을 거예요.”성연은 강무진을 믿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말했다.그러나 마음속으로는 여러 가지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외로운 남녀가 같은 공간에서 함께 지내다 보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누가 알겠어?’‘게다가 곽연철의 말을 들어보면, 조수경은 강씨 집안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은 존재감을 심어 준 것 같아.’너무 많은 의외의 일이 생기자 성연은 그다지 대범하게 생각할 수가 없었다.‘그러나 지난 번에 소지연이 고의로 유혹해도 무진씨는 꿈쩍 하지 않았어.’‘이번에도 역시 예외는 없을 거야.’“보스, 강무진에 대해서 너무 안심하지
무진은 식사를 한 뒤 고택에 머물지 않고 자신의 저택 엠파이어 하우스로 돌아갔다.그리고 안금여의 방으로 간 조수경은 안금여를 데리고 나와 정원을 산책했다.온실의 꽃들이 유난히 아름답게 피어 있었다.정원 안으로 들어 가자 진한 꽃향기가 절로 기분 좋게 해주었다.조수경은 안금여를 부축하면서 천천히 걸었다.아주 느릿느릿한 걸음이었지만 조수경은 조금도 귀찮아 하지 않고 안금여에게 싹싹하게 굴었다.한참을 걷다가 조수경이 물었다.“할머니, 추우세요? 제가 방에 가서 덮을 것 하나 가져다 드릴까요? 저녁이 되니 날씨가 좀 싸늘하네요.”조수경은 안금여가 퇴원한 지 얼마 안되었으니 절대 방심하면 안된다고 생각했다.‘만약 잘 돌보지 못한다면, 무진 오빠가 나를 탓할 거야. 내 이미지도 안 좋아질 테고.’“괜찮다. 이 할미는 옷을 두텁게 입었으니 괜찮아. 오히려 수경이 넌 좀 많이 먹어야겠구나. 너는 너무 말랐어. 이대로 너희 집에 돌아가면 내가 너를 박대했다고 네 할머니가 날 원망하지 않겠니?” 안금여가 농담으로 말했다.조수경이 혀를 쏙 내밀며 말했다.“할머니, 이곳의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이전보다 더 잘 먹어요. 할머니가 거두어 주셔서 저희 할머니도 정말 마음을 푹 놓으셨고요. 그런데 어떻게 할머니를 탓할 수 있겠어요?”“여기 사는 게 익숙해졌어?” 안금여가 물었다.원래는 이곳에 몸을 의탁하러 온 조수경인데, 최근에는 오히려 자신을 돌보고 있었다.이 때문에 안금여는 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그리고 조수경의 솔직한 생각을 물어본 적이 없었다.사람이 많으면 조수경이 난처해할까 봐 지금 단둘이 있을 때 물어보는 것.“집에 있는 것처럼 익숙해졌어요. 또 고모님과 할머니, 그리고 무진 오빠도 다 잘해 주는 걸요.” 조수경은 마음속의 진심을 드러내었다.그녀는 이 집안의 분위기가 좋았다.‘계속 여기서 지내고 싶어.’그러나 자신에게는 그럴 수 있는 마땅한 자격이 없었다.‘만약 내가 무진 오빠하고...’“네가 즐거우면 됐다. 네가 불편하면 어쩌나
조수경이 입을 열자 안금여는 바로 그 말 뜻을 이해하고 물었다.“수경아, 네가 일을 하고 싶은 거니?”조수경이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안금여도 두 말하지 않고 바로 손을 들어 내리며 말했다.“그럼 다음에 내가 무진이에게 본사에 자리를 알아보라고 하마. 아마도 네가 많이 도와줄 수 있을 거야.”상냥하고 결코 성질도 부리지 않는 조수경이지만, 사실 딱 부러지는 성격에 또 아주 총명한 아이임을 엿볼 수 있었다.이런 조수경이 무진을 도와준다면, 자신도 안심할 수 있을 터.조수경에게 다른 이상한 생각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조수경이 사양하는 척하며 말했다.“할머니, 아니면 제가 다른 곳에다가 이력서를 넣어볼 게요. 본사 자리라니, 그럼 진짜 무진 오빠가 너무 난처할 거예요.”안금여는 말도 안된다는 듯이 말했다.“이미 여기 멀쩡한 회사를 두고 왜 다른 작은 회사로 가려는 게야? 게다가 네가 회사에 나가서 일하는 게 무슨 난처해 질이야? 만약 네가 일을 잘해 준다면 우리가 네게 감사할 일이지. 하다가 하기 싫으면 바로 그만 두면 돼. 별 거 아니야.”안금여가 그렇게 말하자 조수경도 더 이상 아무 말 하지 않고 대답했다.“네, 할머니. 감사합니다.”조수경은 입이 절로 찢어지려 했지만 애써 눌러 참았다.자신의 진짜 목적을 이루자 마음속으로 의기양양했다. ‘내 계획이 이렇게 빨리 진행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네.’‘그리고 안금여 할머니가 허락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보아하니 요 며칠 내가 할머니의 호감을 많이 산 게 헛되지 않은 것 같아.’‘드디어 좋은 기회를 얻었어.’이른바 유리한 조건의 사람이 먼저 기회를 잡는 법. 무진과 함께 일하면서 무진에게 자신의 능력을 과시할 속셈이었다.물론 무진의 비서가 되는 것이 그녀의 목표.‘송성연의 자리를 내가 대신하는 것도 이제 곧이야.’‘무진 오빠가 송성연을 좋아한다고 해도 그게 뭐 어때서?’‘감정은 항상 시간이 지나면 흐릿해질 수밖에 없을 테지. 사람은 결국 자신의 곁에
조수경이 대답한 이상 안금여는 질질 끌지 않고 바로 무진을 본가로 불렀다.“할머니, 무슨 일이세요?” 무진은 퇴근하자마자 본가로 왔다.오늘 일이 많아서 그런지 안색이 좀 초췌해 보였다.손자의 이런 모습을 보자 안금여의 마음이 아팠다.‘수경이도 배울만큼 배우고 야무진 아이이니, 무진의 곁에서 도울 수 있다면 안 될 게 뭐 있겠어?’원래는 약간의 망설임이 있었지만, 이렇게 피곤한 무진을 보자 마음이 굳어졌다.“무진아, 수경이를 네 회사로 출근하게 해라.”그 말을 들은 무진은 잠시 아무 말이 없었다.이전에 조수경이 했던 암시를 떠올린 무진은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찡그렸다.“할머니, 회사는 농담으로 말씀하실 곳이 아닙니다. 수경이는 다도를 좋아하지 않습니까? 집에서 차를 연구하게 하는 게 좋겠습니다. 우리 회사 기준이 너무 엄격해서 해내지 못할 겁니다.”안금여는 무진의 말에 찬성하지 않았다.“수경이는 똑똑하고 사리가 분명한 아이야. 우리 집에 온 지도 꽤 되었으니 너도 수경이가 무척 자존심이 강한 아이라는 걸 잘 알 거다. 회사에 나가서 시간을 보내게 해도 돼. 또 수경이가 일을 하며 전문적인 능력을 키우게 하는 게 좋아.”무진은 어쩔 수 없었다.“수경이는 집에서 할머니를 모시는 게 좋지 않겠어요? 왜 굳이 회사에 나가게 합니까? 우리 강씨 집안에도 사람이 없지는 않잖아요?”무진은 솔직히 조수경이 회사에 나오는 걸 찬성하지 않았다.그렇게 되면 무슨 일을 시키더라도 불편할 것이다.조수경이 일을 잘 못한다고 해도 두 집안의 관계 때문에 뭐라고 말하기 힘들 것이고.무진은 연줄을 통해 회사에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가장 싫어했다. 더군다나 조수경과 같은 여자아이라니.“무진아 별 거 아니잖니? 수경이가 제대로 할 수 있으면 계속하게 하고, 그러지 못하면 그만 두게 하면 되는 일 아니냐?”안금여는 무진이 얼마나 회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 잘 알고 있었다.그러나 회사에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니 조수경 하나 회사에 넣는다고 큰 문제가 되지
조수경에 대한 인상이 그런대로 괜찮았던 무진.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미리 몇 가지 당부를 했다.“우리 WS그룹에 들어온다 해도 특별 대우는 기대할 수 없어. 다른 사람들과 똑 같은 대우를 받게 될 거야.”회사는 개인이 경거 망동할 수 없는 공적인 곳이다. 그 점에서 특히 더 엄격한 WS그룹.개인적 친분이나 관계는 절대 보지 않는다.그만큼 공사가 확실한 곳이다.설사 이런 사적인 관계를 가진 조수경이라 하더라도 만약 잘못을 한다면 조금도 봐 주는 것이 없을 것이다.조수경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무진 오빠, 나도 배우려는 거니까 특별 대우 같은 건 바라지 않아요.”지금의 일을 누가 정확히 말할 수 있겠는가?자신이 회사에 나가서 무진도 모든 것을 알게 만들 것이다.무진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그럼 내일 인사처에 말해 놓을 테니 찾아가 봐.”“무진 오빠 고마워요.” 조수경은 정말 기분이 좋은 지 무진에게 허리까지 굽혀 절했다.“천만에. 회사에 오면 먼저 회사 규정부터 숙지하도록 해.”무진은 그저 담담하게 말했다.자신은 전제를 달았다. 조수경이 해낼 수 있으면 하는 거고 할 수 없으면 그만두어야 한다고.강씨 집안에서 사람 하나 키우지 못할 리가 있겠나, 그 사람으로 조수경을 선택했다고 보면 되는 것이다.“알겠어요, 무진 오빠 말 잘 기억할게요.” 조수경은 의욕이 넘치는 모습이었다.일이 생기자 사람이 아주 활기가 넘쳐 보였다.옆에서 지켜보던 안금여가 흐뭇해했다.내일 회사 출근할 준비를 위해 조수경은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그녀의 첫 출근을 생각하니 여전히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더군다나 출근하는 곳이 강무진의 회사다.절대 자신이 실수하게 두지 않을 것이다.조수경이 나가자 안금여는 무진을 보며 말했다.“회사에 있으면서 수경이에 대해 너무 모르는 척하지 마라. 내가 보기에 수경이 꽤 똑똑한 아이야. 제대로 좀 키워서 너를 돕게 하면 좋지 않겠니?”그러나 무진은 할머니 안금여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이튿날 곽연철은 또 다시 무진을 찾아왔다.하지만 이번에는 고택이 아니라 회사로 찾아왔다.곽연철을 바로 자신의 사무실로 부른 무진은 비서에게 차를 준비하게 했다.다른 협력사들에게는 없는 대우였다.차를 한 모금 마신 곽연철이 입을 열었다.“강 대표님, 제가 이미 프로젝트를 따냈습니다만, MS 가문의 제이슨이 일을 꾸민 것 같습니다. 프로젝트에 필요한 원자재 제조업체가 갑자기 납품을 못하겠다고 나옵니다.”제이슨이 원자재 업체 사람들을 매수한 게 분명했다.그래서 모두 자신과의 계약을 원하지 않는 것일 터.곽연철의 말에 무진이 순간 눈살을 찌푸렸다. 이 제이슨이라는 작자 일하는 게 너무 심하다.어쨌든 모두 사업하는 사람들, 공정한 경쟁을 중시한다.그래서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제이슨을 상대하겠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하지만 제이슨이 이렇게 비열하게 나온다면 자신 역시 받아 줄 수밖에.무진이 길다란 손가락으로 테이블 위를 가볍게 두드렸다.“이 일은 제가 방법을 생각해 보죠.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계속해서 이 프로젝트 다음 단계를 진행하세요.”이미 마음속에 방법이 떠올랐다. 비열한 사람에게는 똑같은 방법으로 상대할 것이다.“강 대표님 바쁘신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곽연철이 다소 미안한 표정으로 물었다.얼마 전에 강무진은 이 프로젝트의 전권을 자신에게 맡겼다.그런데 며칠 지나지도 않아 이렇게 결정을 하지 못해 찾아온 것.“괜찮습니다. 요즘 본사 업무가 많이 바쁘지는 않습니다. 그것도 주로 제이슨 때문에 바쁘죠.”무진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맞습니다. 제이슨 이 작자 아주 위험한 놈입니다. 지금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앞으로 우리에게 좋지 않을 겁니다. 게다가 제이슨은 일을 할 때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으니 강 대표님 조심하셔야 됩니다.” 몇 차례 대결하면서 기본적으로 제이슨이 악랄하고 도덕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미 알 수 있었던 곽연철.제이슨은 이길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할 놈이었다.“곽 대표님이 말씀하신 부분은 저도
그날 저녁, 북성의 한 유명한 회관에서 무진이 직접 식사 자리를 만들었다.많은 거물급 인사들이 모였다.이름만 대면 다들 사람들의 입을 통해 귀에 익은 이들.“강 대표님, 별고 없으십니까?” 그 중 블랙 슈트를 입은 키가 큰 남자가 무진에게 술을 권했다.무진 또한 호쾌하게 받은 잔을 모두 비웠다.“네, 별일 없습니다. 요즘 고 선생님께 좋은 일이 있으시더군요. 뉴스에서 봤습니다.” “별 거 아닌 일로 강 대표님 입에 오르내리다니 정말 부끄럽군요.”상대방이 겸손한 태도로 무진의 인사를 받았다.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에게 무진은 깍듯이‘선생님’이라고 불렀다.테이블 위에는 산해진미의 음식들로 가득했다. 테이블 위에 놓인 술은 아는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는 시중에서 구하기 힘들 명주다.이 식사 모임을 위해 적어도 수 억은 들이지 않았을까?이 정도 금액을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이처럼 통 크게 쓸 수 있는 사람이 강무진 외에 또 있을까? “역시 강 대표님의 배포가 큽니다. 강 대표님과 식사하는 자리가 무척 즐겁군요. 먹고 싶은 음식들이 모두 나와 있으니 말입니다. 아무래도 오늘 같은 환대에 감사를 해야겠습니다.” 모두들 강무진의 이런 통 큰 태도에 은근히 감탄했다.자리에 있던 사람들 모두 만만찮은 신분과 지위를 가졌다.모두 각 분야에서 한다 하는 이들로 모두 상류사회 꼭대기를 차지하고 있는 이들이다.그러나 무진의 통 큰 손을 뛰어넘을 이는 없었다. ‘역시 강씨 집안은 다르군. 백 년을 넘게 이어온 그룹의 총수다워.’ “다들 즐겁게 드셔 주시면 됩니다.” 무진이 잔을 들며 저들과 한 잔 마셨다.굳이 입을 열어 말할 필요가 없었다. 강무진이 지금 이 자리를 만든 까닭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으니까.MS그룹의 제이슨이 WS그룹을 겨냥하고 벌인 일에 대해 들은 바가 있다.하지만 제이슨이 한 마디로 주제넘은 짓을 벌였다고 다들 생각했다.북성에 온 지 얼마나 됐다고 북성의 거대 그룹을 자기가 대신할 수 있다는 건지.도대체 자신들을 뭘로
유니버설 호텔 8층의 연회장.오늘 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운성 전체의 상류층으로 모두 상장회사의 CEO급이다.파티의 주최자인 연계진은 이런 화려한 느낌에 대단히 만족했다. 끊임없이 각 가문의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었고, 샴페인잔을 부딪치면서 미래의 협력에 대해 이야기했다.이런 모습은 연계진 자신의 손에 의해서 연씨 가문의 과거 영광이 다시 돌아왔다고 느낄 정도였다.검은색 원피스 차림의 조수경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고, 붉은 입술과 요염한 눈빛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마치 이미 연계진의 부인인 것처럼 입가에 미소를 지었고, 가능한 한 모든 손님들과 접촉하면서 손님들의 마음속에 자신의 인상을 새기기를 원했다.‘그런 인상이 확고해져야 연계진이 진혜선과 결혼한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나를 연계진의 진정한 여자라고 인정하게 될 거야.’강한 여자가 된다고 생각하니 조수경의 마음은 즐거웠다.이때 진씨 가문의 현재 가주인 진양산이 성큼성큼 연회장으로 들어섰다.그 뒤로 투 톤의 이브닝 드레스를 입은 탁월한 몸매의 진혜선이 발걸음을 내디뎠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그 자리에 있던 많은 청년들의 마음속에 잔잔한 물결을 일으켰다.진혜선은 더없이 아름다운 모습이었다.순간 조수경은 사람들이 자신을 진혜선과 비교했다는 걸 알아차렸다.가슴이 덜컥 내려앉으면서 진혜선을 흘겨보았다.‘괜찮아, 연계진은 단지 이익 때문에 저 여자와 혼인할 뿐이지, 정말 저 여자를 좋아하는 건 아니야. 게다가 진혜선이 좋아하는 남자는 강무진이 맞아. 진혜선이야말로 송성연의 경쟁 상대야.’조수경은 마음속으로 진혜선도 마찬가지로 성연을 적으로 간주한다면, 자신과 진혜선이 함께 협력해서 성연을 대처할 기회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수경아, 내가 가서 좀 접대할게.” 연계진의 눈빛에는 부드러움이 어려 있었다.“네, 괜찮아요. 신경 쓰지 마세요.” 조수경은 마음 놓고 연계진의 손목을 놓았다. 결국 진씨 가문 사람이 왔으니 조수경은 잠시 억울함을 참을 수밖에 없었다.진양산과
병원의 초음파검사실.한 여의사가 화면을 보고 있었고, 성연도 좀 긴장된 표정이었다.“축하해요, 송성연 씨. 아주 건강한 쌍둥이예요! 벌써 한 달 반이나 됐네요.”“우리 병원에 임산부의 지식 수첩이 있으니까 가져가서 많이 보면서 알아두세요. 나중에 우리 병원 산부인과에서 출산하실 생각이라면, 연락처를 드릴 테니까 문제가 있으면 언제든지 문의하시면 됩니다.”만면에 미소가 가득한 의사가 부드럽고 열정적인 목소리로 말했다.성연은 정말 놀랍고 기뻤다. ‘처음부터 바로 쌍둥이를 임신하다니. 하늘이 너무 큰 선물을 주셨어.’‘시간을 따져 보니 무진 씨하고 처음 관계를 가졌을 때 임신한 게 분명해.’‘한 번에 임신이 되다니! 무진 씨의 능력도 정말 대단한데!’성연은 또 의사와 의견을 나누었다. 의사인 자신이 난치병에도 대처할 수 있지만, 오히려 정상적인 임신과 출산에 대해서는 아직도 배워야 할 지식이 적지 않았다.병원에서 나왔을 때, 성연의 마음은 날아가는 듯했고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했다.‘할머니와 고모에게 소식을 알려 드리면 기뻐하시면서 어떤 모습을 보이실까?’‘그리고 무진 씨는 또 어떤 반응일까?’서한기는 성연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정말 궁금했지만, 임신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보스, 의사가 중병으로 오진해서 공연히 놀라셨습니까? 왜 이렇게 기뻐하세요?”성연은 어이가 없어 바로 서한기를 째려보면서 입술을 삐죽거렸다.“좀 좋은 생각 좀 할 수 없어?”서한기는 멋쩍게 웃으면서 한참을 생각했지만 그래도 감을 잡지 못했다.“이제 돌아갈까요?”“응, 돌아가. 넌 이제 진성 조직의 대장이니까 앞장서서 무진 씨 근심을 덜어줘야 해. 알겠지?” 성연이 당부하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두말없이 승낙한 서한기는 성연을 집으로 돌려보낸 뒤 바로 손건호와 합류하였다. 두 사람은 요즘 그야말로 운성시를 샅샅이 뒤졌다. 어떤 고수가 비밀리에 연계진을 보호하고 있는지 조사하기 위해서.그러나 연운그룹의 고위 임원들을 포함한 계속된 추적 조사에도 불구
꼭두새벽에 손건호가 별장에 도착했다.성연이 코디한 무진의 정장이 후리후리한 체형에 잘 매치되자, 성연의 두 눈에는 그야말로 하트가 가득했다.‘정말 멋있어, 너무 멋있어!’손건호가 다급한 표정으로 초대장을 건네주었다.“보스, 운성시의 상공회의소에서 보낸 초대장인데, 오늘 저녁 8시에 유니버설 호텔에서의 파티입니다.”무진은 눈길을 주지도 않았다. 이런 초대는 매일 몇 개나 있는지 모를 정도였다.“오늘 스케줄에 이건 없지?” 말을 하면서 회사로 출발할 발걸음을 재촉했다.“없습니다.” 손건호는 입을 딱 벌린 채 말을 더듬었다.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린 무진이 눈살을 찌푸리고 손건호를 바라보았다.“무슨 일이 있으면 빨리 말해. 빙빙 돌리지 말고!”“예!” 손건호가 고개를 끄덕였다.“바로 이겁니다. 오늘 밤 이 파티의 주최자가 연계진의 연운그룹입니다. 그리고 진씨 가문도 참석한다고 합니다!”무진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졌다.‘진씨 가문은 정말 연계진과 같은 길을 가려고 하는 모양이네. 진 백부님은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진교철 한 명 때문에?’“손 비서, 곧바로 진교철의 국외에서의 모든 이력을 샅샅이 조사해줘! 그리고 파티에 참석하는 걸로 저녁 일정을 바꿔!”무진의 눈빛이 변했고, 그윽하게 빛나는 눈빛에는 형언할 수 없는 예리함이 가득했다.“보스, 왜 참석하시려는 겁니까? 그러면 연계진이 원하는 대로 되는 게 아닙니까? 보스, 가지 마세요. 연계진에게 보스는 쉽게 초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게 해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손건호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무진이 가볍게 웃으면서 손건호의 어깨를 토닥였다.“너는 아직 좀 어려. 연계진 그 인간이 이렇게 초대장을 보내지 않아도 되는데 왜 굳이 보냈겠어?”“그럼 이건 연계진이 고의로 도발한 겁니까?”고개를 끄덕이며 거실에서 나온 무진은 벤틀리를 향해 걸어갔다.손건호가 얼른 차문을 열어준 뒤 바로 운전석에 올랐다.2층 안방에서 남편이 떠나는 모습
연운그룹 빌딩 회장실.연계진은 명문가의 두 자제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두 사람의 가문은 모두 WS그룹 자회사에 납품하는 업체를 운영하고 있었다.“전 선생님과 임 선생님께서 가문의 사람들을 설득해서 상품을 우리 연운그룹에 조달할 수 있다면, WS그룹의 가격보다 30%를 더 쳐서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전혀 이익을 보지 않고 모두 당신들에게 양보하는 거나 한가지입니다.”연계진의 가늘고 긴 두 눈이 웃는 듯 마는 듯 두 남자를 바라보았다.두 부잣집 도련님들은 크게 동요한 게 분명했다. 30%의 이윤이라면 대충 계산해도 1년에 20억 원이 넘는 이익이 더 생길 것이다.이런 이익이라면 그들은 당연히 집안 어른들 앞에서 내세울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빈둥빈둥 놀기만 한다고 자신들을 욕하지 못할 것이다.“연 회장님, 솔직히 말하면 우리는 분명히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가족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며칠의 시간을 더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일단 좋은 소식이 있으면 즉시 회장님께 연락 드리겠습니다.”두 사람은 바보가 아니다. 연계진이 이렇게 좋은 조건을 제시한 것은 WS그룹과 한 판 겨뤄보겠다는 게 분명했다. 만약 WS그룹과 등을 돌리게 된다면 결과는 아주 심각할 것이다.“그렇게 하세요. 가문의 발전에 관한 큰일이니까 두 분은 돌아가서 잘 협상해 보세요. 절대 가족들의 화목을 해쳐서는 안 됩니다.”연계진은 급하지도 느리지도 않게 여유로운 모습으로 말했다. 그의 온몸에는 제왕의 기세가 가득해서,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연계진을 믿게 되었다.두 부잣집 도련님이 나가자, 조수경의 마음은 크게 동요하면서 연계진을 대하는 눈빛은 반작거렸다.‘과거에 강무진에게 꽂혔을 때는 강무진이야말로 비즈니스의 제왕이라고 생각했어.’그러나 이제는 연계진도 이렇게 사람을 매혹시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강무진을 물리치고 정상에 올라서 원한을 풀 수 있도록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해서 돕고 싶었다.‘물론 송성
이른 아침, 샤넬의 전화를 받은 성연은 임신기에 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성연이 전통 지식들을 가르쳐 주자, 샤넬은 어리둥절하게 들으면서 목현수에게 받아 적도록 했다.“샤넬, 이건 현수 사형도 다 알아요. 사실 당신이 직접 물어보면 되는데 굳이 내게 물어볼 필요가 있어요?”성연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그러나 샤넬이 크게 웃는 소리를 듣고서야 비로소 샤넬이 뽐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무진은 최근 양대 조직의 부하들을 모두 모은 뒤에 훈련을 실시했다.손건호와 서한기는 서로 팀장 자리를 놓고 한바탕 겨뤘다.서로 치열하게 경합하자 결국 무진이 나서서 두 사람이 교대로 팀장을 맡고 한 달에 한 번 교대하도록 조치했다. 이번 달에는 서한기가 팀장을 맡도록 하자, 부팀장이 된 손건호는 불만이 가득했다.최종적으로 합친 조직의 이름은 무진과 성연의 이름에서 각각 한 글자씩 따서 ‘진성’으로 정했다.성연은 이 명칭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진성의 이름은 곧 전국, 나아가 전 세계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해외의 수많은 조직에서는 보스들이 분분히 부하들에게 앞으로 ‘진성’을 만나면 처벌하지 않을 테니까 임무를 바로 포기하라는 지시를 내렸다.이렇게 많은 준비를 한 진성의 첫 임무는 당연히 연계진을 전방위적으로 조사하는 것이다.“무진 씨, 이건 너무 사소한 일에 조직을 과다하게 사용하는 거 아니에요? 한 가문에 불과한 연씨 가문이 대단한 무력을 보유할 정도는 아니잖아요?”성연은 이해가 되지 않아서 무진에게 물었다.“나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지금 적은 드러나지 않았고 우리는 드러난 상태야. 나는 더 이상 당신에게 어떤 위험도 없기를 원해. 그래서 안전을 확보하려고 조사하는 거야.”최근 한동안 무진은 운성시 전체에서 보이지 않는 움직임이 전개되었고, 중견 기업의 기업가들과 일부 가문들도 연계진의 포섭을 받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약속한 이익이 매혹적이어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미 매수되었다.물론 거절하는 쪽이 더 많았다. 그들은 모두WS그룹의 든든한 지원군으
이른 아침, 연계진은 최근에 구입한 운성의 저택 침실에 있었다.잠에서 깬 조수경은 손에 시가를 든 연계진이 창문 앞에 선 채 먼 곳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았다.헐렁하고 섹시한 잠옷 차림의 조수경이 고양이처럼 가볍게 남자의 뒤로 다가가서 껴안았다.조수경은 이 남자의 능력은 무진에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믿고 있었다.‘이 남자는 성연에게 복수하겠다는 내 소원을 반드시 실현시킬 수 있을 거야.’고개를 숙여 자신을 껴안은 두 손을 보는 연계진의 눈빛은 차가웠지만, 입가에는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일어났네!”“계진 씨, 정말로 진혜선과 결혼할 거예요?”이 남자를 따라다니면서 소원을 이루기만 하면 된다고 일찌감치 자신에게 다짐했지만, 스킨십이 있게 되자 조수경도 다소 감성적이게 되었다.몸을 돌린 연계진의 두 눈에는 순식간에 따뜻함이 가득했다. 손에 든 시가를 끄고는 돌아서서 활짝 웃으면서 조수경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그래. 이건 반드시 해야 해. 진씨 가문의 실력은 WS그룹의 모든 지지 세력 중에서 가장 강력해. 진씨 가문과 혼인할 수만 있다면, 연씨 가문이 강씨 가문을 이겨서 복수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거야!”남자는 마치 7, 8살 정도의 여자아이를 위로하는 것처럼 천천히 완곡하게 말했다.조수경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당신 말을 따를 테니까 나를 잊지만 않으면 돼요!”연계진은 고개를 저으며 가볍게 웃었다.“그럴 리가. 내 가장 큰 조력자인 당신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 내가 왜 가장 먼저 당신을 찾았겠어?”약속을 받자 조수경은 흡족했다.오늘이 계획 실행을 시작하는 순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송성연, 결혼했다고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아! 너에게 가장 심각한 일격을 날려 줄게!”옷을 갈아입고 선글라스와 모자를 쓴 조수경이 총총히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연계진의 비서 서진아가 조수경을 그 감옥으로 안내하는 일을 책임질 것이다.한 시간 남짓 달려서 운성시 북쪽의 한 작은 도시에 도착했다.조수경은 절차에 따라서 접견실에서 송아연
“혜선 언니는 승낙했어요?”성연은 자기도 모르게 물었다.진혜선의 눈빛에 걱정이 드러났지만 곧바로 웃으면서 숨겼다.“아직 승낙하지 않았어. 하지만 무진이도 알겠지만 나는 집안의 결정을 거역할 수 없어. 당연히 두 사람의 도움을 청하고 싶어서 만나자고 한 거야.”“무진 씨보고 이 모든 걸 막아달라는 말이에요?”성연은 갑자기 뭔가 불편한 느낌이 솟아나는 걸 느꼈다.‘이건 결국 진혜선 자신의 혼사야. 내 남편이 다른 여자의 혼사에 간섭하는 건 어쨌든 좀 이상한 걸.’무진은 줄곧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진씨 가문에서 뜻밖에도 연씨 가문과 가깝게 지내기로 결정할 줄은 몰랐어. 연계진은 도대체 어떤 좋은 점을 약속한 걸까?’‘두 집안이 이미 이렇게 오랫동안 연합하면서, 진씨 가문은 줄곧 기꺼이 강씨 가문의 거대한 조력자가 되어 주었어. 원래 진상철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자립해서 가문을 이끌 수 있었지. 아니면 WS그룹에서 나오는 진씨 가문의 이익을 차단할 수도 있었지만, 그때 진씨 가문 사람들은 그렇게 하는 걸 선택하지 않았어.’‘지금 갑자기 태도를 바꾸다니, 이건 정말 너무 이상한데.’무진의 마음을 한순간에 간파한 듯 진혜선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무진아, 진씨 가문에는 두 일가가 있다는 걸 잊지 마. 우리 장남 일가는 과거에 줄곧 차남 일가를 눌렀기 때문에 이렇게 오랫동안 강씨 가문과 함께 할 수 있었어. 그러나 최근 차남 일가에서 진교철이라는 정말 대단한 인물이 나왔어. 진교철이 막대한 자금을 가지고 해외에서 돌아왔는데, 이번에 동의하지 않으면 우리 일가와 관계를 끊겠다는 거야.”“형제 간의 반목으로 가문을 불안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던 우리 아버지는, 진교철의 요구에 동의하고는 나보고 연계진과 혼인하라고 하셨어. 아무튼 이번에는 정말 네가 나를 도와주면 좋겠어.”이렇게 직접적인 진혜선의 SOS 요청에 무진은 다소 놀란 듯했다. ‘진혜선은 평소에 성숙하고 침착한 여장부의 모습을 보였어. 정말 부득이한 상황이 아니라면 이렇게 먼저 내게 도
진혜선이 고른 식당은 도심에서 약간 떨어져 있어서 한 시간 가까이 차를 탄 뒤에야 도착했다.남쪽에서는 흔치 않은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한옥이었다. 차에서 내리자 공기 중에는 은은한 풀내음이 났고, 개울가의 작은 다리와 고풍스러운 정자가 눈에 들어왔다. 상쾌한 환경에 아주 쾌적한 느낌이 들었다.이미 오래전부터 기다리고 있던 진혜선이 성연을 보자 웃으면서 인사했다.“성연 씨 오늘 이 옷은 정말 운치가 있네. 과연 결혼한 여자야말로 진정한 매력이 넘치는 모양이야.”“혜선 언니 놀리지 마세요. 제가 어떻게 언니하고 여자의 운치를 비교할 수 있겠어요?” 성연은 진혜선의 옷차림을 관찰했다. 오늘은 오히려 캐주얼한 옷차림인데, 이전에 몇 번 봤던 화려한 옷차림과는 전혀 달랐다.‘정말 아름다워. 이렇게 간단하게 꾸몄는데도 막 대학을 졸업한듯한 모습이야.’하지만 성연은 진혜선이 무진보다 두 살 더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래서 성연은 마음 속으로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혜선 언니와 무진 씨는 자연스럽게 친근한 관계야. 그리고 탁월한 능력에 저런 미모라면 내가 남자라도 마음이 움직일 거야.’“가자, 이 식당은 예약제야. 매일 여덟 테이블의 손님만 받아.” 진혜선은 두 사람을 데리고 청룡각이라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이 여덟 테이블 중에서 청룡각이 제일 먼저 공략 대상이 될 게 분명해. 예약한 사람도 아마 더 많을 것 같은데.”무진은 진혜선을 바라보았다.진혜선은 고개를 끄덕였다.“확실히 좀 어렵긴 했어. 하지만 오늘 WS그룹 대표께서 오셨으니 이 사람들 복이기도 해!”고전적인 한복을 입은 종업원들이 메뉴를 건네주자 지배인이 공손하게 말했다.“강 대표님과 사모님, 두 분께서 메뉴를 좀 봐주세요. 고르기 어려우시면 제가 메뉴를 추천해 드리겠습니다.”무진은 성연에게 메뉴를 건네주었다.“좋아하는 게 있는지 한번 봐.” 성연이 메뉴를 보니 요리 이름도 ‘안개비 내리는 숲’ ‘눈 덮인 호숫가’ ‘호수의 기억’처럼 남쪽 지방의 정취가 가득한 독특한
무진이 일어나려고 할 때 갑자기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자리에 앉은 무진이 손건호에게 눈빛을 보냈다.“들어오세요!”손건호가 대답했다.문이 열리자 잘생긴 젊은 남자가 들어와서 무진을 향해 공손하게 말했다.“대표님 안녕하세요, 실례하겠습니다.”들어온 사람은 바로 소지연의 먼 친척이자 유럽지역 본부장인 소태경이다.“괜찮아요. 무슨 보고할 게 있습니까?” 무진은 평온한 표정으로 담담하게 말했다.다소 어색해하면서 몇 초 동안 망설이던 소태경이 결국 입을 열었다.“대표님, 바로 이 얘기인데요. 제가 사전에 상황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연계진 씨의 초청에 잘못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야 연씨 가문과 우리 WS그룹이 아주 직접적인 경쟁 관계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 잘못된 처신을 처벌해 주시기 바랍니다!”무진은 소태경이 자발적으로 찾아와서 사죄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원래 그 일이었군요! 괜찮아요, 그런 정도까지는 아니에요. 당신을 유럽 지역의 본부장으로 임명한 건 능력을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또 이런 작은 일을 가지고 어떻게 소 본부장을 의심할 수 있겠어요?”무진은 온화한 미소를 지었지만, 소태경은 무진의 동작 하나 하나가 책략을 세우는 듯한 느낌이어서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소태경은 조금도 기쁜 기색이 없이 계속 말했다.“다음번에는 반드시 명심하고 절대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겠습니다. 이번에 귀국한 것도 사촌누님의 부모님을 보살펴 드리기 위해서였습니다. 결국 예전에 농촌에 있던 저를 데리고 나와 주셨기 때문입니다.”“효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나를 배신하지 않을 겁니다. 나도 이 점을 굳게 믿습니다! 더 이상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일이 마무리되면 빨리 유럽으로 가서 진두지휘하세요. 지금 MS 가문은 이미 몰락했으니 소 본부장이 실력을 발휘해야 할 때입니다.”무진의 간단한 몇 마디에 사기가 고무된 소태경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눈빛을 빛냈다.“제가 반드시 우리 WS그룹을 유럽에서 3위 안에 들게 만들겠습니다!”소태경이 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