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관 두 명이 들이닥치더니 바로 성연에게 말했다.“송성연 양, 당신에게 블레이크 교수 독살 혐의가 있으니 우리와 함께 가서 조사에 협조해 주시죠.”블레이크 교수가 쓰러진 모습은 아주 끔찍했다.그리고 그 옆에는 성연이 혼자 서 있었고.성연 외에 블레이크 교수에게 손댄 사람은 없음이 분명했다.그러나 연구실에 나타난 경찰관들을 보며 성연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이건 연출된 상황임을 속으로 직감했다.세상에 이런 우연이 있을 수는 절대 없다.그런 짓을 벌인 블레이크 교수는 자신의 명성을 의식해서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 것은 자명한 일.그러나 지금 여기에 경찰이 나타났다? 성연 자신이 손을 쓸 거라는 걸 이 일의 배후에 있는 사람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는 말.누군가 이 모든 일을 계획한 것이 틀림없다.그러나 지금 함정에 빠진 성연은 경찰과 동행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결백한 자는 결국 그 결백이 드러나기 마련. ‘어쨌든 내 결백을 증명할 시간은 얼마든지 있어.’경찰에 연행되는 성연과 구급차에 실려가는 블레이크 교수의 모습은 많은 학생들의 시선을 끌었다.학생들 모두 성연을 손가락질하며 의론이 분분했다.나오는 말들마다 성연에 대한 비난이다.“저 여학생 블레이크 교수와 한통속이지? 쯧쯧, 정말 구역질 나.”학년이 좀 높은 학생들은 다들 블레이크 교수가 진짜 질이 안 좋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심지어 블레이크 교수가 학생들과 자주 관계를 가졌다는 얘기까지 흘러나왔다.“지금 블레이크 교수 연구실에서 송성연 혼자 나왔다는 건 결국 무슨 뜻이겠어?”“결국 남녀 사이의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거 아니겠어?”그러나 명문대학으로 소문난 자신들의 학교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사실에 많은 학생들은 성연을 학교의 수치라고 생각했다.“맞아, 블레이크 교수 나이면 아빠 뻘이잖아? 와, 아무리 굶주렸다고 해도 블레이크 교수 같은 인간도 상대한다고?”“무슨 이유겠어? 블레이크 교수가 뭔가를 제시했겠지.”“저 동양 여자애 진짜 부끄러운 줄도
그런 모습을 보면서도 성연은 걱정하지 않았다.이전에 북성에 있을 때도 비슷한 일들을 겪었던 터.자신이 알아서 잘 해결할 수 있었다.성연은 폰을 꺼내 서한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금세 보석으로 풀려날 테고 또 소송을 하면 된다. 자신은 정당방위였으니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편에 설 것이다.이런 누군지도 알 수 없는 학생들이 날 오해한다 할지라도,자신과 같은 클라스 학우들이나 블레이크 교수의 본모습을 아는 학생들이 나서서 자신 편에 서서 말을 할 것이다.정의는 사람들 마음속에 살아 있으니까.설사 블레이크 교수가 다른 사람과 짜고 함정을 팠다고 하더라도 어쩌겠는가?성연의 마음은 아주 침착했다.뭐가 됐든 진실은 절대 변하지 않는 법.성연의 소식을 들은 서한기는 바로 조급한 마음이 들며무의식 중에 성연에게 전화를 하려고 했다.그러나 지금은 성연이 전화를 받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에 조급한 마음을 속으로 삭일 수밖에 없었다.공항에서 매복하고 있던 무리의 공격으로 부상을 입었던 서한기 일행은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어서 치료하던 중이었다.그들의 신분을 알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마침 유럽으로 출장을 온 곽연철이 서한기와 함께 있었다.평소 털털하던 서한기에게서 거의 볼 수가 없는 모습.“왜, 무슨 일이야?” 곽연철이 물었다.“보스에게 일이 생겼어.”서한기가 무거운 음성으로 말했다.“무슨 일인데?” 성연에 관한 일이라니 곽연철도 긴장하기 시작했다.“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나도 잘 모르겠어. 하지만 보스가 며칠 후에 경찰서로 오라고 하는군.”입을 일자로 늘이던 서한기가 성연이 보낸 메시지를 말했다.“경찰서?” 곽연철의 음성이 차가운 기운을 띠었다.“응, 보스가 문자로 그렇게 말하는군. 나도 무슨 일인지 모르겠어.” 머리카락을 쥐어뜯는 서한기의 음성에 짜증이 섞여 있었다.“지금 즉시 보스 학교 커뮤니티에 들어가 보자. 관련 소식이 있을 지도 몰라.”곽연철이 냉정하게 상황을 분석하며 말했다.좋은 생각이라 여긴 서한기의 눈이 반짝
경찰이 성연에게 수갑을 채운 후에 연행하고 있다.이제 막 경찰차에 성연을 태우려 하던 순간에 목현수가 군중 사이에서 나왔다.성연의 얼굴 가득 의아한 빛이 어렸다.‘사형 목현수가 어떻게 여기에 있을 수 있지?’그러나 성연은 입을 다문 채 그저 옆에 서서 미동도 없이 얌전히 상황을 지켜보았다.그러나 목현수의 등장에 두 경찰관은 어리둥절해졌다.그들은 목현수에게 정중한 인사를 건넸다.“미스터 목, 어떻게 여기에 계십니까?”“처리할 일이 있어 학교에 오셨습니까? 정말 공교롭군요.”두 경찰관이 아부성이 다분한 말을 건넸다. 두 사람 모두 목현수를 두려워하고 있음을 한눈에 알 수 있을 정도.주위에 있던 학생들도 목현수를 보고 왈가왈부하기 시작했다.“와, 저 남자 멋있다! 우리 학교에 언제 저런 멋진 남자가 있었지?”“맞아, 맞아, 빨리 찍어야 돼. 너무 멋있어.”“저 사람 연예인이죠? 근데 왜 이 때 나오는 거죠?”여자애들은 모두 넋이 나간 모습.그 와중에 누군가의 입에서 핵심을 짚은 말이 나왔다.목현수가 아무 일 없이 여기 올리는 없다. 그것도 이런 상황에.“저 남자를 대하는 경찰관들의 태도를 보면 신분이나 직책이 높을 게 분명해.”“어디 그 뿐이겠어? 큰손일 게 분명해.”“권력도 있고 돈도 있고, 가장 중요한 건 잘 생겼다는 거야. 너무 좋아.”사람들이 목현수의 신분과 이 일과의 연관성을 추측하고 있었다.블레이크 교수 때문에 왔거나 아니면 성연 때문에 왔을 터.사람들은 목현수가 아마도 블레이크 교수 때문에 왔을 것이라 추측했다.‘아무리 그래도 블레이크 교수는 명색이 교수이지 않은가? 옷차림이 평범한 걸 보면 저 여자애는 평범한 여학생에 불과할 거야. 저런 인물과 관계 있을 리가 없어.’그러나 목현수의 입에서 나온 말에 모두 깜짝 놀랐다.목현수가 입을 열었다.“여기 송성연 학생은 내 후배입니다. 그러니 당신들이 함부로 데려갈 수는 없습니다.”목현수의 입에서 말이 나오자마자 주위가 떠들썩해졌다.“저렇게 멋진 남자가 송성연의
이렇게 풀려나니 성연은 속으로 엄청 놀랐다.경찰관들의 말에서 목현수에 대한 그들의 경의를 느낄 수 있었다.그러나 목현수의 말 몇 마디에 경찰관들이 자신을 풀어주다니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목현수는 성연을 반대편으로 끌어당겼다.목현수의 명령이 떨어지지 않자 두 경찰관은 구급차를 몰고 가기는커녕 꼼짝 못한 채 제자리에 멍하니 있을 뿐이었다.“사형...” 자신의 사형이 대단한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그러나 유럽에서 지낸 지는 얼마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이 정도의 위치라니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다.목현수가 최근 몇 년 동안 유럽에서 어떤 과정을 통해 오늘의 지위에까지 이르렀는지 정말 궁금했다.코끝을 문지르던 목현수는 성연의 마음속에 깃든 의혹을 알아챘다.결국 별 수 없이 성연에게 해명하는 목현수.“후배님, 이 사형을 너무 얕보지 마세요. 이쪽에서 지낸 지가 몇 년인데 내 인맥도 믿을 만해.”목현수가 말하고 싶지 않은 것들은 성연도 애써 묻지 않았다.목현수가 절대 자신을 해치지 않을 거란 걸 항상 알고 있기 때문.성연은 목현수에게 진심으로 감사했다.“사형, 감사합니다.”목현수가 웃으며 말했다.“사형에게 뭘 그리 예의를 차리는 거야?”이번에 목현수가 오지 않았다면 일이 이렇게 순조롭게 해결되지 않았을 터.성연 자신은 그래도 괜찮았을 테지만해결 과정이 좀 복잡하고 느렸을 터.성연이 조금 전 혼자 저기에서 다른 사람의 비난을 받고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자 목현수가 얼굴을 보기 싫을 정도로 찡그렸다.그리고 딱딱한 음성으로 물었다.“비록 지금은 풀어주었지만, 너도 곧 증거를 제출해야 해. 성연아,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이 사형에게 말해 줄 수 있어?”일이 결코 간단하지 않을 거라는 건 알았다.성연 역시 괜히 무고한 사람에게 손을 써서 다치게 하지 않았을 것이고.분명 보이지 않는 속사정이 있을 터.성연은 목현수에게 사건의 과정을 간단히 설명했다.어쩔 수 없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거렸다.“이 교수는 진작부터
블레이크 교수가 멀쩡하다는 사실은 성연이 범죄를 짓지 않았다는 의미.여론의 향방이 변하더니 이제 블레이크 교수를 비난하기 시작했다.성연은 완전히 결백했다.모든 상황이 성연이 결백함을 증명하고 있었다.한바탕 시끄럽게 일었던 소란에 불과했다.결국 경찰관들도 자신들이 이용당했음을 깨닫고 표정이 굳었다.그러나 목현수 앞에서 화를 내기도 쉽지 않은 터라마지못해 웃으며 말했다.“미스터 목,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드렸군요. 아무 일도 없으니 먼저 가겠습니다.”목현수가 손을 저으며 말했다.“먼저 가세요.”기세 등등한 모습으로 왔던 경찰들은 또 다시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떠났다.그러나 구석에 숨어서 자신이 치밀하게 준비한 계획이 이처럼 허무하게 끝나는 모습을 지켜보아야만 하는 소지연.이를 악물고 목현수가 있는 방향을 뚫어쳐라 쳐다보았다.눈에 살기를 담은 채.도대체 몇 번인가? 목현수만 없었으면 송성연은 벌써 자신이 처리했을 것이다.‘송성연을 처리하고 나면 목현수라는 저 남자도 처리해야 해.’‘내 앞 길을 막은 사람은 하나도 그냥 두지 않을 거야!’오래 있다 들킬까 걱정이 된 소지연은 목현수의 모습을 머릿속에 저장한 후에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그 자리를 떠났다.구경거리가 없어지자 사람들도 점차 흩어졌다.그러나 블레이크 교수가 앞으로 사람들의 흥미진진한 화제거리가 될 것임을 예감했다.‘정말이지 늙어서 추하다.’‘송성연을 협박하려 했는데 말을 안 들으니 이런 방법을 생각해 낸 모양이지.’‘소위 갖지 못한 건 망가트린다는 거 아냐? 정말 너무 악랄해!’만약 성연이 저들의 생각을 알았다면, 드디어 진상을 알게 되었다고 했을 터.사건은 대략 그랬다.건물 앞 넓은 공간에 성연과 목현수 두 사람만 남았다.성연은 목현수를 벤치로 데리고 가서 앉았다.목현수를 바라보며 정중하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사형, 고마워요.”어쨌든 이번에도 목현수가 먼 길을 달려와서 도와준 덕분이다.목현수의 성은 여기서 결코 가깝지 않은 거리에 있었다.목현수는
목현수는 학교를 떠났고 성연도 곧 기숙사로 돌아갔다.이날 우여곡절을 겪은 터라 성연은 푹 쉬고 싶었다.앨리스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성연은 침대에 기대어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었다.눈을 감은 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 다급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성연이 눈을 뜨자 송아연의 다급한 모습이 보였다.잡아먹을 듯한 얼굴 표정이다.성연이 눈살을 찌푸리자 송아연은 아무 말도 없이 바로 달려들었다.자세가 성연을 때리려는 것이 분명했다.그리고 결연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성연은 침착하게 피한 뒤에 담담하게 물었다.“송아연, 너 또 왜 미쳐서 이러는 거야?”송아연은 입을 다문 채 길다란 손톱으로 성연의 얼굴을 그었다.송아연의 동작은 마치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으로 거칠 게 없어 보였다.성연은 송아연이 정말 구제불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송아연에게 제압당한 채 손가락만 움직여 해 아무 내색 없이 은침을 이용했다.한순간에 송아연은 즉시 성연에게 눌려 땅바닥에 엎드렸다. 두발이 마비되어 움직일 수가 없었다.송아연은 손을 놓았지만 힘을 써서 일어나려 해도 발에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몸을 움직일 수는 없었지만 송아연의 입은 여전히 움직일 수 있었다.그녀는 성연을 매섭게 쳐다보며 지겨울 정도로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송성연, 내가 너 때문에 얼마나 비참하게 살았는지 몰라? 왜, 왜 내가 간신히 얻은 행복을 네가 다 망쳐 놓는 거야?” 짙은 원한이 가득 담긴 송아연의 눈은 마치 성연을 찢어발길 듯했다.“우리 집이 너 때문에 그렇게 되었어. 아버지 회사도 파산 직전에 이르렀어. 단란했던 우리 집도 너 때문에 그렇게 파괴되었어. 그런데 설마 네 마음속에는 조금도 부끄러움이 없단 말이야? 어쨌든 네 친아버지이기도 하잖아!”송아연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맞은편의 성연에게 무슨 깊은 원한이 맺힌 것 같았다.성연은 입꼬리를 올렸다. 눈에는 냉소를 띈 채로.‘이제 와서 친아버지라고 하기엔 너무 늦은 거 아니야?’“나는 돈 때문에 날 팔아먹는 그
성연이 고개를 살며시 흔들었다.“이건 네 자업자득이야.”송아연은 모든 원한을 성연에게 쏟아 놓을 줄만 알았다.그러나 송아연은 자신이 고의로 성연을 무시하고 괴롭히지 않았다면 서로 잘 지낼 수도 있었을 거라는 걸, 그랬다면 결코 이런 지경에 이르지 않았을 것은 몰랐다.아버지 송종철도 똑같았다.그러나 그들은 앞으로도 영원히 다른 입장에서 성연을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성연의 반격은 합당했을 뿐이다. 그 누구에게도 잘못한 것은 없었다.만약 그때 송종철을 위시해서 그들에게 당하기만 했다면 성연의 현재 생활은 얼마나 비참해졌을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송아연 같은 애들은 양심이 뭔지 절대 모르지.’‘더 말해 봐야 아무 소용없어.’‘이런 지경에 처해서 비참해졌어도 송씨 집안은 아무 잘못 없다고 생각해?’‘아니, 그건 절대 아니야!’저들이야말로 모든 사태의 장본인이 아닌가?하지만 성연은 송아연에게 그런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그리고 말해도 송아연의 귀에 들어가지도 않을 테고.송아연은 계속 독기 오른 눈으로 성연을 노려보았다.“언젠가 반드시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널 죽이고 말 거야.”“지켜볼 게.”성연이 담담하게 말했다.“송성연, 네가 뭔데 나한테 그래? 지금 네가 강씨 집안 사람들을 만나 운이 좀 트였다고 이렇게 배은망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송아연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알 수 없는 죄명들을 성연에게 걸었다.침대에서 일어나 갑자기 쑥 다가온 성연의 눈이 매서웠다.송아연은 성연의 눈빛과 동작에 깜짝 놀라 더듬거리며 말했다.“송, 송성연, 너 어쩔 생각이야?”“너희 송씨네 집안이 나에게 무슨 은혜를 베풀었다는 거야? 무슨 의리를 지켰다고? 네 입으로 말할 수 있어야 할 거야.”성연의 음성은 담담했지만 송아연은 자신을 조롱하는 것처럼 들렸다.어차피 지금 송성연의 손에 떨어졌으니 할 말이 없었다.성연은 송아연을 힐끗 보고 캐묻기 시작했다.“너 여기서 학교 다니는 거 누구 생각이었어?”송아연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성연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나는 너를 죽이지 않을 거야. 그러나 너를 잘 살게도 하지 않을 거야. 널 죽이지 않더라도 네가 말하게 하는 방법은 많아.”‘아수라문에는 온갖 고문 방법이 있지.’하나하나 시도한다면 송아연은 절대 입 다물고 있을 수 없을 것이다.다만, 송아연은 아직도 자신의 처지를 잘 모르고 있었다.그저 성연이 겁만 준다고 생각하는 듯.“하고 싶으면 해 봐. 누가 너를 무서워한다고.”송아연이 성연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말했다. 성연이 그런 능력과 용기가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는 게 분명했다.성연은 의미심장한 모습으로 송아연을 쳐다보기만 한 채 입을 열지 않았다.‘잠깐, 송아연이 이렇게 고집을 피우고 말 안 할 줄은 몰랐네.’성연은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가 전화를 할 생각이었다.바닥에 쓰러져 있던 송아연은 시큰둥했다.“송성연, 너 도대체 무슨 뜻이야? 사람이 여기 있는데, 죽이든 말든 네 마음대로 해라. 아니면 나를 풀어주든지. 나를 여기에 내버려 두는 건 무슨 의미야? 똑똑히 말해!”송아연은 성연이 자신에게 손을 쓰지 않을까 난리였다.마침 생각을 하고 있던 성연은 송아연이 시끄럽게 굴자고개를 돌려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입 다물어.”왠지 모르게 그 순간 성연에게서 엄청난 위압감을 느낀 송아연이 몸을 벌벌 떨며 저도 모르게 입을 다물었다.성연이 문 밖으로 나가자 그제서야 비로소 정신이 돌아왔다.‘도대체 왜 송성연 그 촌뜨기를 무서워한 거지?’송아연은 잠시 겁먹고 졸아든 자신을 스스로 욕하면서 성연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성연이 들어오면 조금 조심하면서 성연이 알아서 자신을 풀어주게 해야지 생각하며.복도에 나온 성연은 손가락으로 폰 화면을 이리저리 터치했다.잠시 누구에게 전화해야 할지 몰랐다.이곳은 학교이기 때문에 자신의 수하들을 안으로 들일 수 없을 게 뻔했다.그러지 않으면 사람들의 시선을 너무 끌 게 될 터.결국 성연은 목현수가 자신에게 당부한 말을 떠올렸다. 일이 생겼는데 그를 찾지 않으면 화를 낼 거
유니버설 호텔 8층의 연회장.오늘 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운성 전체의 상류층으로 모두 상장회사의 CEO급이다.파티의 주최자인 연계진은 이런 화려한 느낌에 대단히 만족했다. 끊임없이 각 가문의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었고, 샴페인잔을 부딪치면서 미래의 협력에 대해 이야기했다.이런 모습은 연계진 자신의 손에 의해서 연씨 가문의 과거 영광이 다시 돌아왔다고 느낄 정도였다.검은색 원피스 차림의 조수경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고, 붉은 입술과 요염한 눈빛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마치 이미 연계진의 부인인 것처럼 입가에 미소를 지었고, 가능한 한 모든 손님들과 접촉하면서 손님들의 마음속에 자신의 인상을 새기기를 원했다.‘그런 인상이 확고해져야 연계진이 진혜선과 결혼한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나를 연계진의 진정한 여자라고 인정하게 될 거야.’강한 여자가 된다고 생각하니 조수경의 마음은 즐거웠다.이때 진씨 가문의 현재 가주인 진양산이 성큼성큼 연회장으로 들어섰다.그 뒤로 투 톤의 이브닝 드레스를 입은 탁월한 몸매의 진혜선이 발걸음을 내디뎠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그 자리에 있던 많은 청년들의 마음속에 잔잔한 물결을 일으켰다.진혜선은 더없이 아름다운 모습이었다.순간 조수경은 사람들이 자신을 진혜선과 비교했다는 걸 알아차렸다.가슴이 덜컥 내려앉으면서 진혜선을 흘겨보았다.‘괜찮아, 연계진은 단지 이익 때문에 저 여자와 혼인할 뿐이지, 정말 저 여자를 좋아하는 건 아니야. 게다가 진혜선이 좋아하는 남자는 강무진이 맞아. 진혜선이야말로 송성연의 경쟁 상대야.’조수경은 마음속으로 진혜선도 마찬가지로 성연을 적으로 간주한다면, 자신과 진혜선이 함께 협력해서 성연을 대처할 기회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수경아, 내가 가서 좀 접대할게.” 연계진의 눈빛에는 부드러움이 어려 있었다.“네, 괜찮아요. 신경 쓰지 마세요.” 조수경은 마음 놓고 연계진의 손목을 놓았다. 결국 진씨 가문 사람이 왔으니 조수경은 잠시 억울함을 참을 수밖에 없었다.진양산과
병원의 초음파검사실.한 여의사가 화면을 보고 있었고, 성연도 좀 긴장된 표정이었다.“축하해요, 송성연 씨. 아주 건강한 쌍둥이예요! 벌써 한 달 반이나 됐네요.”“우리 병원에 임산부의 지식 수첩이 있으니까 가져가서 많이 보면서 알아두세요. 나중에 우리 병원 산부인과에서 출산하실 생각이라면, 연락처를 드릴 테니까 문제가 있으면 언제든지 문의하시면 됩니다.”만면에 미소가 가득한 의사가 부드럽고 열정적인 목소리로 말했다.성연은 정말 놀랍고 기뻤다. ‘처음부터 바로 쌍둥이를 임신하다니. 하늘이 너무 큰 선물을 주셨어.’‘시간을 따져 보니 무진 씨하고 처음 관계를 가졌을 때 임신한 게 분명해.’‘한 번에 임신이 되다니! 무진 씨의 능력도 정말 대단한데!’성연은 또 의사와 의견을 나누었다. 의사인 자신이 난치병에도 대처할 수 있지만, 오히려 정상적인 임신과 출산에 대해서는 아직도 배워야 할 지식이 적지 않았다.병원에서 나왔을 때, 성연의 마음은 날아가는 듯했고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했다.‘할머니와 고모에게 소식을 알려 드리면 기뻐하시면서 어떤 모습을 보이실까?’‘그리고 무진 씨는 또 어떤 반응일까?’서한기는 성연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정말 궁금했지만, 임신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보스, 의사가 중병으로 오진해서 공연히 놀라셨습니까? 왜 이렇게 기뻐하세요?”성연은 어이가 없어 바로 서한기를 째려보면서 입술을 삐죽거렸다.“좀 좋은 생각 좀 할 수 없어?”서한기는 멋쩍게 웃으면서 한참을 생각했지만 그래도 감을 잡지 못했다.“이제 돌아갈까요?”“응, 돌아가. 넌 이제 진성 조직의 대장이니까 앞장서서 무진 씨 근심을 덜어줘야 해. 알겠지?” 성연이 당부하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두말없이 승낙한 서한기는 성연을 집으로 돌려보낸 뒤 바로 손건호와 합류하였다. 두 사람은 요즘 그야말로 운성시를 샅샅이 뒤졌다. 어떤 고수가 비밀리에 연계진을 보호하고 있는지 조사하기 위해서.그러나 연운그룹의 고위 임원들을 포함한 계속된 추적 조사에도 불구
꼭두새벽에 손건호가 별장에 도착했다.성연이 코디한 무진의 정장이 후리후리한 체형에 잘 매치되자, 성연의 두 눈에는 그야말로 하트가 가득했다.‘정말 멋있어, 너무 멋있어!’손건호가 다급한 표정으로 초대장을 건네주었다.“보스, 운성시의 상공회의소에서 보낸 초대장인데, 오늘 저녁 8시에 유니버설 호텔에서의 파티입니다.”무진은 눈길을 주지도 않았다. 이런 초대는 매일 몇 개나 있는지 모를 정도였다.“오늘 스케줄에 이건 없지?” 말을 하면서 회사로 출발할 발걸음을 재촉했다.“없습니다.” 손건호는 입을 딱 벌린 채 말을 더듬었다.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린 무진이 눈살을 찌푸리고 손건호를 바라보았다.“무슨 일이 있으면 빨리 말해. 빙빙 돌리지 말고!”“예!” 손건호가 고개를 끄덕였다.“바로 이겁니다. 오늘 밤 이 파티의 주최자가 연계진의 연운그룹입니다. 그리고 진씨 가문도 참석한다고 합니다!”무진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졌다.‘진씨 가문은 정말 연계진과 같은 길을 가려고 하는 모양이네. 진 백부님은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진교철 한 명 때문에?’“손 비서, 곧바로 진교철의 국외에서의 모든 이력을 샅샅이 조사해줘! 그리고 파티에 참석하는 걸로 저녁 일정을 바꿔!”무진의 눈빛이 변했고, 그윽하게 빛나는 눈빛에는 형언할 수 없는 예리함이 가득했다.“보스, 왜 참석하시려는 겁니까? 그러면 연계진이 원하는 대로 되는 게 아닙니까? 보스, 가지 마세요. 연계진에게 보스는 쉽게 초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게 해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손건호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무진이 가볍게 웃으면서 손건호의 어깨를 토닥였다.“너는 아직 좀 어려. 연계진 그 인간이 이렇게 초대장을 보내지 않아도 되는데 왜 굳이 보냈겠어?”“그럼 이건 연계진이 고의로 도발한 겁니까?”고개를 끄덕이며 거실에서 나온 무진은 벤틀리를 향해 걸어갔다.손건호가 얼른 차문을 열어준 뒤 바로 운전석에 올랐다.2층 안방에서 남편이 떠나는 모습
연운그룹 빌딩 회장실.연계진은 명문가의 두 자제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두 사람의 가문은 모두 WS그룹 자회사에 납품하는 업체를 운영하고 있었다.“전 선생님과 임 선생님께서 가문의 사람들을 설득해서 상품을 우리 연운그룹에 조달할 수 있다면, WS그룹의 가격보다 30%를 더 쳐서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전혀 이익을 보지 않고 모두 당신들에게 양보하는 거나 한가지입니다.”연계진의 가늘고 긴 두 눈이 웃는 듯 마는 듯 두 남자를 바라보았다.두 부잣집 도련님들은 크게 동요한 게 분명했다. 30%의 이윤이라면 대충 계산해도 1년에 20억 원이 넘는 이익이 더 생길 것이다.이런 이익이라면 그들은 당연히 집안 어른들 앞에서 내세울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빈둥빈둥 놀기만 한다고 자신들을 욕하지 못할 것이다.“연 회장님, 솔직히 말하면 우리는 분명히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가족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며칠의 시간을 더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일단 좋은 소식이 있으면 즉시 회장님께 연락 드리겠습니다.”두 사람은 바보가 아니다. 연계진이 이렇게 좋은 조건을 제시한 것은 WS그룹과 한 판 겨뤄보겠다는 게 분명했다. 만약 WS그룹과 등을 돌리게 된다면 결과는 아주 심각할 것이다.“그렇게 하세요. 가문의 발전에 관한 큰일이니까 두 분은 돌아가서 잘 협상해 보세요. 절대 가족들의 화목을 해쳐서는 안 됩니다.”연계진은 급하지도 느리지도 않게 여유로운 모습으로 말했다. 그의 온몸에는 제왕의 기세가 가득해서,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연계진을 믿게 되었다.두 부잣집 도련님이 나가자, 조수경의 마음은 크게 동요하면서 연계진을 대하는 눈빛은 반작거렸다.‘과거에 강무진에게 꽂혔을 때는 강무진이야말로 비즈니스의 제왕이라고 생각했어.’그러나 이제는 연계진도 이렇게 사람을 매혹시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강무진을 물리치고 정상에 올라서 원한을 풀 수 있도록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해서 돕고 싶었다.‘물론 송성
이른 아침, 샤넬의 전화를 받은 성연은 임신기에 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성연이 전통 지식들을 가르쳐 주자, 샤넬은 어리둥절하게 들으면서 목현수에게 받아 적도록 했다.“샤넬, 이건 현수 사형도 다 알아요. 사실 당신이 직접 물어보면 되는데 굳이 내게 물어볼 필요가 있어요?”성연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그러나 샤넬이 크게 웃는 소리를 듣고서야 비로소 샤넬이 뽐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무진은 최근 양대 조직의 부하들을 모두 모은 뒤에 훈련을 실시했다.손건호와 서한기는 서로 팀장 자리를 놓고 한바탕 겨뤘다.서로 치열하게 경합하자 결국 무진이 나서서 두 사람이 교대로 팀장을 맡고 한 달에 한 번 교대하도록 조치했다. 이번 달에는 서한기가 팀장을 맡도록 하자, 부팀장이 된 손건호는 불만이 가득했다.최종적으로 합친 조직의 이름은 무진과 성연의 이름에서 각각 한 글자씩 따서 ‘진성’으로 정했다.성연은 이 명칭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진성의 이름은 곧 전국, 나아가 전 세계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해외의 수많은 조직에서는 보스들이 분분히 부하들에게 앞으로 ‘진성’을 만나면 처벌하지 않을 테니까 임무를 바로 포기하라는 지시를 내렸다.이렇게 많은 준비를 한 진성의 첫 임무는 당연히 연계진을 전방위적으로 조사하는 것이다.“무진 씨, 이건 너무 사소한 일에 조직을 과다하게 사용하는 거 아니에요? 한 가문에 불과한 연씨 가문이 대단한 무력을 보유할 정도는 아니잖아요?”성연은 이해가 되지 않아서 무진에게 물었다.“나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지금 적은 드러나지 않았고 우리는 드러난 상태야. 나는 더 이상 당신에게 어떤 위험도 없기를 원해. 그래서 안전을 확보하려고 조사하는 거야.”최근 한동안 무진은 운성시 전체에서 보이지 않는 움직임이 전개되었고, 중견 기업의 기업가들과 일부 가문들도 연계진의 포섭을 받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약속한 이익이 매혹적이어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미 매수되었다.물론 거절하는 쪽이 더 많았다. 그들은 모두WS그룹의 든든한 지원군으
이른 아침, 연계진은 최근에 구입한 운성의 저택 침실에 있었다.잠에서 깬 조수경은 손에 시가를 든 연계진이 창문 앞에 선 채 먼 곳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았다.헐렁하고 섹시한 잠옷 차림의 조수경이 고양이처럼 가볍게 남자의 뒤로 다가가서 껴안았다.조수경은 이 남자의 능력은 무진에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믿고 있었다.‘이 남자는 성연에게 복수하겠다는 내 소원을 반드시 실현시킬 수 있을 거야.’고개를 숙여 자신을 껴안은 두 손을 보는 연계진의 눈빛은 차가웠지만, 입가에는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일어났네!”“계진 씨, 정말로 진혜선과 결혼할 거예요?”이 남자를 따라다니면서 소원을 이루기만 하면 된다고 일찌감치 자신에게 다짐했지만, 스킨십이 있게 되자 조수경도 다소 감성적이게 되었다.몸을 돌린 연계진의 두 눈에는 순식간에 따뜻함이 가득했다. 손에 든 시가를 끄고는 돌아서서 활짝 웃으면서 조수경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그래. 이건 반드시 해야 해. 진씨 가문의 실력은 WS그룹의 모든 지지 세력 중에서 가장 강력해. 진씨 가문과 혼인할 수만 있다면, 연씨 가문이 강씨 가문을 이겨서 복수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거야!”남자는 마치 7, 8살 정도의 여자아이를 위로하는 것처럼 천천히 완곡하게 말했다.조수경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당신 말을 따를 테니까 나를 잊지만 않으면 돼요!”연계진은 고개를 저으며 가볍게 웃었다.“그럴 리가. 내 가장 큰 조력자인 당신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 내가 왜 가장 먼저 당신을 찾았겠어?”약속을 받자 조수경은 흡족했다.오늘이 계획 실행을 시작하는 순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송성연, 결혼했다고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아! 너에게 가장 심각한 일격을 날려 줄게!”옷을 갈아입고 선글라스와 모자를 쓴 조수경이 총총히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연계진의 비서 서진아가 조수경을 그 감옥으로 안내하는 일을 책임질 것이다.한 시간 남짓 달려서 운성시 북쪽의 한 작은 도시에 도착했다.조수경은 절차에 따라서 접견실에서 송아연
“혜선 언니는 승낙했어요?”성연은 자기도 모르게 물었다.진혜선의 눈빛에 걱정이 드러났지만 곧바로 웃으면서 숨겼다.“아직 승낙하지 않았어. 하지만 무진이도 알겠지만 나는 집안의 결정을 거역할 수 없어. 당연히 두 사람의 도움을 청하고 싶어서 만나자고 한 거야.”“무진 씨보고 이 모든 걸 막아달라는 말이에요?”성연은 갑자기 뭔가 불편한 느낌이 솟아나는 걸 느꼈다.‘이건 결국 진혜선 자신의 혼사야. 내 남편이 다른 여자의 혼사에 간섭하는 건 어쨌든 좀 이상한 걸.’무진은 줄곧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진씨 가문에서 뜻밖에도 연씨 가문과 가깝게 지내기로 결정할 줄은 몰랐어. 연계진은 도대체 어떤 좋은 점을 약속한 걸까?’‘두 집안이 이미 이렇게 오랫동안 연합하면서, 진씨 가문은 줄곧 기꺼이 강씨 가문의 거대한 조력자가 되어 주었어. 원래 진상철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자립해서 가문을 이끌 수 있었지. 아니면 WS그룹에서 나오는 진씨 가문의 이익을 차단할 수도 있었지만, 그때 진씨 가문 사람들은 그렇게 하는 걸 선택하지 않았어.’‘지금 갑자기 태도를 바꾸다니, 이건 정말 너무 이상한데.’무진의 마음을 한순간에 간파한 듯 진혜선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무진아, 진씨 가문에는 두 일가가 있다는 걸 잊지 마. 우리 장남 일가는 과거에 줄곧 차남 일가를 눌렀기 때문에 이렇게 오랫동안 강씨 가문과 함께 할 수 있었어. 그러나 최근 차남 일가에서 진교철이라는 정말 대단한 인물이 나왔어. 진교철이 막대한 자금을 가지고 해외에서 돌아왔는데, 이번에 동의하지 않으면 우리 일가와 관계를 끊겠다는 거야.”“형제 간의 반목으로 가문을 불안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던 우리 아버지는, 진교철의 요구에 동의하고는 나보고 연계진과 혼인하라고 하셨어. 아무튼 이번에는 정말 네가 나를 도와주면 좋겠어.”이렇게 직접적인 진혜선의 SOS 요청에 무진은 다소 놀란 듯했다. ‘진혜선은 평소에 성숙하고 침착한 여장부의 모습을 보였어. 정말 부득이한 상황이 아니라면 이렇게 먼저 내게 도
진혜선이 고른 식당은 도심에서 약간 떨어져 있어서 한 시간 가까이 차를 탄 뒤에야 도착했다.남쪽에서는 흔치 않은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한옥이었다. 차에서 내리자 공기 중에는 은은한 풀내음이 났고, 개울가의 작은 다리와 고풍스러운 정자가 눈에 들어왔다. 상쾌한 환경에 아주 쾌적한 느낌이 들었다.이미 오래전부터 기다리고 있던 진혜선이 성연을 보자 웃으면서 인사했다.“성연 씨 오늘 이 옷은 정말 운치가 있네. 과연 결혼한 여자야말로 진정한 매력이 넘치는 모양이야.”“혜선 언니 놀리지 마세요. 제가 어떻게 언니하고 여자의 운치를 비교할 수 있겠어요?” 성연은 진혜선의 옷차림을 관찰했다. 오늘은 오히려 캐주얼한 옷차림인데, 이전에 몇 번 봤던 화려한 옷차림과는 전혀 달랐다.‘정말 아름다워. 이렇게 간단하게 꾸몄는데도 막 대학을 졸업한듯한 모습이야.’하지만 성연은 진혜선이 무진보다 두 살 더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래서 성연은 마음 속으로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혜선 언니와 무진 씨는 자연스럽게 친근한 관계야. 그리고 탁월한 능력에 저런 미모라면 내가 남자라도 마음이 움직일 거야.’“가자, 이 식당은 예약제야. 매일 여덟 테이블의 손님만 받아.” 진혜선은 두 사람을 데리고 청룡각이라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이 여덟 테이블 중에서 청룡각이 제일 먼저 공략 대상이 될 게 분명해. 예약한 사람도 아마 더 많을 것 같은데.”무진은 진혜선을 바라보았다.진혜선은 고개를 끄덕였다.“확실히 좀 어렵긴 했어. 하지만 오늘 WS그룹 대표께서 오셨으니 이 사람들 복이기도 해!”고전적인 한복을 입은 종업원들이 메뉴를 건네주자 지배인이 공손하게 말했다.“강 대표님과 사모님, 두 분께서 메뉴를 좀 봐주세요. 고르기 어려우시면 제가 메뉴를 추천해 드리겠습니다.”무진은 성연에게 메뉴를 건네주었다.“좋아하는 게 있는지 한번 봐.” 성연이 메뉴를 보니 요리 이름도 ‘안개비 내리는 숲’ ‘눈 덮인 호숫가’ ‘호수의 기억’처럼 남쪽 지방의 정취가 가득한 독특한
무진이 일어나려고 할 때 갑자기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자리에 앉은 무진이 손건호에게 눈빛을 보냈다.“들어오세요!”손건호가 대답했다.문이 열리자 잘생긴 젊은 남자가 들어와서 무진을 향해 공손하게 말했다.“대표님 안녕하세요, 실례하겠습니다.”들어온 사람은 바로 소지연의 먼 친척이자 유럽지역 본부장인 소태경이다.“괜찮아요. 무슨 보고할 게 있습니까?” 무진은 평온한 표정으로 담담하게 말했다.다소 어색해하면서 몇 초 동안 망설이던 소태경이 결국 입을 열었다.“대표님, 바로 이 얘기인데요. 제가 사전에 상황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연계진 씨의 초청에 잘못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야 연씨 가문과 우리 WS그룹이 아주 직접적인 경쟁 관계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 잘못된 처신을 처벌해 주시기 바랍니다!”무진은 소태경이 자발적으로 찾아와서 사죄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원래 그 일이었군요! 괜찮아요, 그런 정도까지는 아니에요. 당신을 유럽 지역의 본부장으로 임명한 건 능력을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또 이런 작은 일을 가지고 어떻게 소 본부장을 의심할 수 있겠어요?”무진은 온화한 미소를 지었지만, 소태경은 무진의 동작 하나 하나가 책략을 세우는 듯한 느낌이어서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소태경은 조금도 기쁜 기색이 없이 계속 말했다.“다음번에는 반드시 명심하고 절대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겠습니다. 이번에 귀국한 것도 사촌누님의 부모님을 보살펴 드리기 위해서였습니다. 결국 예전에 농촌에 있던 저를 데리고 나와 주셨기 때문입니다.”“효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나를 배신하지 않을 겁니다. 나도 이 점을 굳게 믿습니다! 더 이상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일이 마무리되면 빨리 유럽으로 가서 진두지휘하세요. 지금 MS 가문은 이미 몰락했으니 소 본부장이 실력을 발휘해야 할 때입니다.”무진의 간단한 몇 마디에 사기가 고무된 소태경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눈빛을 빛냈다.“제가 반드시 우리 WS그룹을 유럽에서 3위 안에 들게 만들겠습니다!”소태경이 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