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연은 자신이 너무 예민한 건 아닌지 고민했다.어쩌면 무진이 새로 산 것일 지도 모른다. 다른 스타일을 시도하고 싶어서.성연은 마음속으로 그렇게 자신을 안심시켰다.사실 무진이 매고 있던 넥타이는 조수경이 산 것.무진에게 커피를 사는 걸로는 너무 빈약해 보인 조수경은백화점에서 무진의 넥타이를 하나 더 샀던 것.당시 조수경은 자신이 직접 무진에게 매주기까지 했다. 다만 일이 많아 정신이 없었던 터라 다시 푸는 걸 잊은 무진.성연과의 영상통화를 끝낸 무진이 다시 거실로 돌아왔다.조수경은 찻잎을 다시 꺼내 왔다. 조금 전 무진이 성연과 통화하는 사이에 미리 준비해 둔 것이다.찻잎이 투명한 주머니에 포장되어 있었다.제각각 다른 색의 티백으로 포장된 찻잎이 무척 보기 좋았다.조수경이 무진에게 찻잎을 담은 주머니를 건넸다.“무진 오빠, 이 찻잎들은 처음 작업부터 포장까지 모두 내가 직접 만든 거예요. 다른 누구의 손도 빌리지 않았어요.”무진이 칭찬했다. “정말 영리한 데다 손재주도 좋군.”무진은 조금 전 말한 대로 티백 차를 받았다.이건 어디까지나 조수경의 마음을 거절하기 어려워 받은 것이다.무엇보다 지금 조수경의 마음이 한창 예민하지 않겠는가?그녀의 감정을 충분히 배려해야 했다.“무진 오빠 마음에 들면 나중에 좀 더 만들어 줄게요.”조수경이 수줍은 듯이 말했다.그러나 무진이 고개를 저으며 사양했다.“아니, 이 정도면 충분해. 평소 차를 잘 마시지 않아. 이 정도면 충분해.”조수경은 다소 아쉬워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어? 무진 오빠도 나처럼 다도를 좋아하는 줄 알았어.”“나는 가끔 차를 마실 뿐이야. 다도를 좋아한다 싫어한다 할 것도 없어. 네가 좋아하는 거지.”무진이 담담하게 말하면서 차를 한쪽에 두었다.“누군가 좋아해 준다면 만드는 데 좀 더 힘이 날 텐데.”조수경의 말에는 의미가 담겼지만 누구인지는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조수경은 강씨 집안 가족들에게 정말 좋은 인상을 주었기 때문에 무진은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
“얼마든지 편한 대로 고택을 구경해도 돼. 이쪽의 풍경이 그런대로 괜찮아. 나는 아직 처리해야 할 일이 남아 있어서 먼저 갈게.” 말을 마치고 무진이 코트를 들고 나갈 준비를 했다.조수경이 얼른 따라 일어서며 물었다.“무진 오빠, 저녁에 여기서 머물지 않아요?”“아니야. 난 다른 곳에서 따로 지내.”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서 조수경에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무진.‘어차피 조수경은 고택에서 지낼 뿐인 걸.’“그렇구나...”조수경이 좀 서운해하는 듯이 보였다.“오빠도 여기서 지내면서 나랑 같이 얘기도 하고 그럴 줄 알았어요.”“할머니와 고모가 여기 계시잖아.”무진이 조수경에게 말했다.“무진 오빠, 그럼 어서 가 보세요. 좀 더 날이 어두워지면 운전하기 힘들어요.” 조수경이 걱정하며 말했다.오늘 무진이 자신과 오랜 시간을 함께 해주었으니 자신도 여기서 만족해야 한다.지금 너무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된다고 자신에게 경고했다.‘이런 일은 천천히 진행해야 해. 너무 많이 물어보면 무진 오빠의 반감을 살 수 있어.’“음.” 무진이 담담하게 대답했다.고택을 나서는 무진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조수경이 다시 불렀다.“무진 오빠.”“왜?” 무진이 살짝 미간을 찌푸린 채 고개를 돌렸다.‘무슨 말이길래 한 번에 다 하지 않는 거지?’“무진 오빠, 나한테 연락처 좀 줄 수 있어요? 아직 오빠 연락처도 없는데 손민철이 또 찾아와서 괴롭히면 오빠에게 전화해도 돼죠?” 무진이 거절할까 봐 머뭇거리는 모습으로 조수경이 무진을 바라보았다.북성에 온 조수경은 의지할 데가 없으니 전화번호를 주는 것도 당연할 터.만일 어떤 위급 상황이 생겼을 때 도울 수 있도록.그래서 무진은 자신의 번호를 불러주었다.“내 개인 번호야. 위험한 상황이 생기면 전화해도 돼. 내가 최대한 빨리 달려올 테니.”“무진 오빠, 고마워요.” 조수경은 무진이 불러준 숫자들을 기억하려 애썼다.그저 구름 위를 걷는 듯 마음이 들떴다.생각지도 못했던 무진의 개인 번호
소지연은 계속 성연을 미행했다.성연의 모든 교내 활동을 촬영했다. 남학생과의 조그만 활동도 소지연은 놓치지 않았다.며칠 후에 성연의 룸메이트가 들어왔다.앨리스라는 이름의 아주 명랑 쾌활한 유럽 출신의 학생.성연은 룸메이트 앨리스와 아주 잘 지냈다.매일 함께 움직이다시피 했고, 무슨 활동이 있기라도 하면 엘리스는 성연을 불렀다.앨리스는 좋은 사람이었다. 성연을 자신의 패거리에 데려갔다.성연도 놀고 싶을 때 놀면서 그들 사이에 스며들었다.그리고 그들도 모두 성연을 아주 좋아했다.이날 기숙사를 나서던 성연은 뭔가 이상함을 예민하게 느낄 수 있었다.뒤를 돌아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그러나 성연의 육감은 누군가 자신을 미행하고 있다고 알려주었다.자신의 수준으로 발견하지 못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아마 자신이 너무 많이 생각했을 것이고.성연의 동작을 보던 앨리스가 물었다.“왜?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한 거야?”성연은 고개를 저으며 물었다.“앨리스, 누가 우리 따라오는 것 못 느꼈어?”“어? 설마? 나 놀라게 하지 마.” 앨리스는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괜찮아, 요즘 과제가 너무 많아서 그런지 생각이 많아졌을 뿐이야.”사실 오늘만 그런 느낌을 받은 것이 아니었다.평소 성연은 늘 누군가 어두운 곳에서 자신을 주시하고 있음을 느꼈다.그러나 돌아볼 때마다 사람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심지어 상대방을 끌어내려고도 했지만 그림자도 볼 수 없었다.그래서 성연은 자신의 신경이 너무 예민한가 보다 추측했다.차량 충돌 사건이 발생한 이후, 성연은 매사에 경계심을 가졌다.앨리스가 참지 못하고 웃기 시작했다.“아이고, 우리 성연이가 너무 예뻐서 쫓아다니는 사람이 미행했겠지, 아마?”성연도 따라서 웃기 시작했다.“너 나 놀리지 마라.”“누가 널 놀린다는 거야? 너 모르지? 우리 과에 몇 명이나 네 연락처 달라고 했는지 몰라.” 앨리슨이 보기에도 성연은 정말 예쁘게 생겼다.국경을 가리지 않는 미모는 누가 봐도 놀라울 정도다.“주지 마,
학교 밖 카페에서 송아연을 만나기로 약속한 소지연.송아연에게 단단히 포장된 상자를 건네며 소지연은 낮은 음성으로 송아연의 귓가에 대고 뭐라고 말했다.말을 끝낸 소지연이 송아연에게 경고했다.“기억했어? 착오 일으키지 말고 자신까지 망치지 말고.”송아연은 소지연이 정말 지독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수를 생각해 낼 정도라니.그러나 송성연이 영원히 일어나지 못하는 것은 소지연과 자신이 함께 원하는 바가 아니던가?송아연이 고개를 끄덕였다.“소지연 씨, 기억했어요.”“기억했으면 됐어. 나 먼저 갈게. 넌 여기 좀 더 있다가 나가.” 소지연은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몸을 꽁꽁 싸맨 채 자리를 떴다.송아연의 배후에 자신이 있음을 송성연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그냥 맞춰보라고 하지 뭐.’‘송성연을 희롱하는 게 정말 재미있군.’이 모든 것을 계획하면서 많은 함정들을 설계했다.‘언젠가는 송성연이 함정에 걸릴 때가 있을 테지.’송아연은 소지연의 말 대로 카페에 남아 좀 더 앉아있다가 떠났다.학교로 돌아온 송아연은 즉시 소지연의 지시에 따라 성연의 방으로 몰래 들어갔다.그리고 성연의 컵에 약가루를 발랐다.소지연 말로는 이 약은 무색무취라서 송성연이 아무리 대단해도 알아차리지 못할 거라 했다.그리고 약효가 무척 강해서 송성연이 조금만 닿아도 반드시 발작을 일으킬 거라고.컵을 보던 송아연은 성연이 약효에 발작하는 모습이 보고 싶어 죽을 지경이었다.‘그때 가서도 강무진이 송성연이라는 헌 약혼녀를 원하는지 두고 보자!’소지연이 지시한 대로 모든 것을 처리한 송아연이 막 약가방을 챙겨 나가려던 순간 누가 밖에서 문을 열었다.바로 성연의 룸메이트 앨리스였다.낯선 사람이 기숙사 방에 있는 것을 본 앨리스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당신 누구예요? 어떻게 내 방에 있는 거죠?”이 시간대에 누가 올 줄은 몰랐던 송아연.속으로는 한동안 당황했지만, 얼굴은 간신히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송아연이 반가운 척하며 말했다. “당신이 우리 언니의 룸메이트?
성연이 기숙사에 돌아온 후에도 엘리스는 송아연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송아연이 이처럼 대놓고 일을 벌일 줄 몰랐던 성연은 아무런 경계심 없이 물을 마셨다.입술이 컵에 닿고 목구멍으로 물이 넘어가는 순간, 성연은 뭔가 이상함을 예민하게 알아차렸다.컵에 약물이 남아 있었다.그리고 곧바로 약의 성분을 분석해냈다.사람에게 성욕을 불러일으키는 아주 강한 약효의 최음제.일단 닿기만 해도 그 결과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터.성연은 아무런 내색 없이 지니고 있던 해독환을 꺼내 삼켰다.컵은 손대지 않고 그대로 거기에 두었다. 증거로 남기거나 다른 역할을 할 수 있을 터.식도를 타고 내려간 해독환의 성분이 순식간에 체내의 최음 성분을 소리 없이 중화시켰다.그래서 성연에게는 아무 일도 없었다.‘나라서 다행이야, 다른 사람이었다면 전혀 눈치채지도 못했을 거야.’성연은 엘리스를 슬쩍 쳐다보았다.기숙사 방에 두 사람이 사는데 자신을 제외하면 바로 엘리스다.‘설마 앨리스가 내 컵에 손을 댔을까?’물론 앨리스는 그런 사람 같아 보이지 않지만 다른 사람에게 매수되지 않았을 거라고 장담할 수도 없다.만약 진짜 엘리스라면 당장 기숙사 방을 옮길 것이다.“앨리스, 오늘 우리 방에 들어온 사람 없어?” 성연이 떠보며 물었다.고개를 돌린 앨리스가 놀란 듯 성연을 바라보았다.“성연아, 말도 안 했는데 오늘 우리 방에 온 사람이 있는 걸 어떻게 알았어?”과연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엘리스가 아니라 누군가 우리 방에 들어온 거야.’“누가 내 책상에 손을 댄 것 같아서 물어봤어.” 성연은 다른 질문은 하지 않았다.마치 그냥 물어보는 듯이.앨리스가 감탄했다.“성연아, 네 기억력 어떻게 그렇게 좋아?”성연은 마음이 가라앉았다. 만약 자신이 조금도 경계심을 가지지 않았다면 지금 어떤 모습으로 죽었을 지.성연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엘리스가 계속 말했다.“조금 전에 어떤 여자애가 방에 와서 네 여동생이라고 했어. 너와 마찬가지로 A국 출신이고. 물건을 찾으
숙소로 돌아온 송아연은 컵에 담긴 물을 무방비 상태로 다 마셨다.마시면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오후에 수업이 없음을 확인한 송아연은 나갈 핑계거리를 찾았다.잭에게 전화를 건 송아연이 애교 있게 말했다. “자기, 보고 싶어. 어디야?”끈적끈적한 음성이 소름 끼치게 들리지만 마초 기질이 강한 남자에게는 보호본능을 일으킨다.잭은 송아연의 음성을 듣는 순간 뼈가 녹는 듯했다.잭이 음성을 낮추어 달랬다.“자기, 혼자 좀 놀고 있으면 안 되겠어? 나는 잠시 처리할 일들이 좀 있어.”잭이 일이 있다는 말을 듣자 송아연은 즉시 불쾌함을 토로했다.“하지만 내가 당신이 무척 보고 싶은데 나와 같이 있으면 안돼요?”잭이 즉시 말했다.“네게 준 카드 한도를 올렸으니 먼저 쇼핑하면서 시간을 좀 보내고 있어. 시간이 되는 대로 내가 널 찾아갈 테니까?”카드 한도를 올렸다는 소리에 듣고 송아연이 바로 두 눈을 반짝였다.“고마워, 자기야.”바로 며칠 전에 마음에 들었지만 그냥 내려 놓았던 스커트가 생각이 났다.송아연은 내심 계속 그 스커트를 생각하고 있었다.잭과의 대화도 대충 얼버무렸다.아무 눈치를 채지 못한 잭은 나중에 일이 있어 자리를 비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송아연은 벌써 명품숍으로 달려가 돈을 쓰고 싶어 죽을 지경.‘과연 사람 현금인출기가 있으니 너무 좋아. 말만 한 두 마디 잘하면 언제 어디서나 돈을 쓸 수 있고.’그런데 교문 근처에 이른 송아연은 몸 안에서 이는 열기를 느꼈다.그저 날씨가 너무 더울 뿐이라고 생각하고 별로 개의치 않았다.그러나 교문에 도착했을 때 점점 더 심해졌다.비틀거리던 송아연은 하마터면 땅바닥에 쓰러질 뻔했다.다행히 손 하나가 나와서 제때에 송아연을 붙잡았다.“미스 송, 괜찮아요?”“괜찮아...”고맙다는 말을 하려고 고개를 든 송아연의 눈에 여드름이 가득한 얼굴이 들어왔다.구멍이 숭숭 난 듯 여드름 자국투성이에 아래로 내려앉은 코
송아연 추종자는 원래 다급한 마음에 송아연을 병원에 데려갈 생각이었다.그러나 백미러를 통해 옷이 활짝 풀어헤쳐진 사이로 하얀 피부를 드러낸 송아연이 눈에 들어왔다.오랫동안 송아연을 쫓아다니며 내내 군침을 흘리던 추종자가 송아연의 지금 이 모습을 보고 어떻게 참을 수 있겠는가?그리고 송아연의 이 상태가 어떻게 해서 생긴 것인지 바로 알아차렸다.즉시 핸들을 돌려 호텔로 재빠르게 운전했다.객실로 올라간 추종자는 한시도 지체함 없이 닥치는 대로 송아연을 농락했다.점차 송아연을 괴롭히던 약효가 가라앉으며 피로감이 밀려왔다.그녀는 하품을 하며 곧이어 깊이 잠들었다.아주 편안하게 잠에 취해 있던 송아연은 큰 소리에 깼다.미간을 찌푸린 채 도대체 누가 이렇게 시끄럽게 굴며 자신의 수면을 방해하는지 생각했다.송아연이 눈을 뜨자 눈을 부라리며 분노에 찬 잭의 얼굴이 보였다.그녀는 저도 모르게 잭을 불렀다. “자기야...”잭은 혐오스럽다는 표정으로 송아연을 쳐다보았다.“아직 나를 자기라고 부를 생각이 들어? 역겨운 줄도 모르는군!”송아연은 잭이 화를 내는 모습을 보면서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그제야 정신을 차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그런데 고개를 돌리니, 이런 맙소사. 자신의 곁에 한 남자가 누워 있었다. 두 사람 모두 홀딱 벗은 채.송아연은 얼른 해명했다.“잭, 내 말 좀 들어봐. 오해야...”하지만 일어난 송아연의 온몸은 불그죽죽한 흔적으로 뒤덮여 있었다.잭은 송아연을 바라보며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자신은 송아연을 몹시 좋아해서 아꼈건만 송아연은 결국 자신을 배신하고 바람을 피웠다.그것도 대낮에 다른 남자와 함께 호텔방에서.‘내가 정말 눈이 멀었구나!’살아오면서 오늘 같은 모욕을 당한 적이 없었다.분노로 시퍼렇게 얼굴이 굳은 잭은 송아연의 옆에 누운 남자를 직접 끌어내렸다.두 말할 것도 없이 그냥 주먹을 날렸다.송아연 추종자는 사실 잭이 문을 열고 들어와 송아연과 대화할 때 깨어나 있었다. 자신이 건드릴 수 없는 인물임을 알
벌겋게 달아오른 뺨을 손으로 가린 송아연은 바닥에 엎드린 채 울음을 터뜨렸다.‘망했어, 다 망했어.’‘간신히 좀 잘 지내보나 했는데, 이제 잭은 절대 날 용서하지 않을 거야.’‘하지만 내 기억에 분명 이 남자의 구애를 거절했다고. 그런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지금 일어난 일의 중간 과정에 대해 조금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한참을 울던 송아연은 바닥에 흩어진 옷들을 집어 들었다. 옷을 다 입은 후, 피 떡이 된 채 죽은 듯이 바닥에 누워 있는 남자를 원망이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자신을 쫓아다니던 남자의 몸을 세게 걷어찼다.“감히 날 건드려! 네 까짓 게 나를 건드려! 네가 뭔데? 내가 네 놈이 건드릴 수 있을 정도 밖에 안돼 보여? 쓰레기 같은 자식!”분이 풀릴 정도로 걷어 찬 후에야 송아연은 호텔을 떠났다.숙소로 돌아온 송아연은 소지연에게 전화를 걸었다.자신을 좀 더 불쌍하게 보이도록 감정을 잡은 후에 울기 시작했다.소지연이 전화를 받자 폰 저편에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순간 짜증이 확 일었지만, 앞으로 같이 일할 것을 생각해서 속으로 눌렀다“무슨 일이야?”가까스로 눈물을 그친 송아연이 여전히 울먹이는 목소리로 소지연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나, 나도 정말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어요. 그냥 갑자기 이렇게 됐어요.”“갑자기 그렇게 됐다고? 그럴 리가? 어디가 잘못됐는지 알아채지 못했어?” 눈살을 찌푸리는 소지연. ‘송아연, 정말 바보 아냐?’“나, 나는 수업 마치고 왔는데 몸에서 열이 나고 너무 덥게 느...”송아연은 말할 때 좀 부끄러워했다.말하는 순간 머리를 가득 채운 것은 잭과 함께 엎치락뒤치락하던 장면이었다.소지연은 송아연이 설명하는 모습을 떠올리며 바로 물었다.“송성연이 너한테 약 먹인 거 아냐? 정말 바보 같으니라고!”소지연의 말에 그제야 자신이 왜 그렇게 이상한 반응을 보였는지 깨달은 송아연.‘아, 내가 약에 당한 거구나.’‘하, 또 송성연한테 당하다니!’소지연에게 욕을 먹으니 송
예민주는 곧바로 기분이 나빠졌다.원래 길을 잃은 두 아이가 펑펑 울게 만든 다음에, 무진에게 아이들이 그다지 순하지 않다는 걸 보여줄 생각이었다.그러나 예상 외로 아이들은 영리한 데다가 일찌감치 철도 들었다. 졸지도 떠들지도 않은 데다가 얌전하게 장난감을 가지고 놀 줄 어떻게 알 수 있을까!무진은 오후에 회의가 있어서 점심 휴식 시간이 제한적이었다.어떻게 해야 아이들을 여기에 좀 더 머물 수 있게 할 수 있을지, 예민주도 아직 좋은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두 아이가 이렇게 영리한 핑계를 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그들 부자 세 사람만 지낼 기회를 절대 줄 수가 없었기에.결국 세 사람이 대표 집무실에 함께 있게 되었다.“어떻게 된 거야? 이건 그렇게 둘러댈 일이 아니야.”“너 계속 큰소리로 말하지 마! 이렇게 시끄러운 것도 몰라?”이제 세 사람은 이미 오후 내내 함께 있게 되었다. 특히 지금 무진은 회의를 하러 갔기에, 대표실에는 그들 세 사람밖에 없었다. 예민주는 이미 싫어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나른한 자태로 소파에 기댄 예민주의 얼굴에는 온통 경멸하는 표정만 가득했다.집에서도 이렇게 엄하게 꾸지람을 들은 적이 없었기에, 사진은 정말 억울해서 입을 열었다가 다시 예민주에게 말려들곤 했다.사진이 낮은 소리로 울먹이면서 말했다.“그런데 아줌마, 우리는 그냥 게임을 하고 있었어요.”예민주는 이제 숨기지 않고 냉담한 목소리로 바로 호통을 쳤다. “조용히 해! 아무도 너희들 응석을 받아주지 않아!”예민주의 말투는 아주 야박해서 두 아이가 감당할 수 있을지도 전혀 꺼리지 않았다.역시나 예민주의 말이 막 떨어지자, 사진은 이미 엉엉 울기 시작했다.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가뜩이나 초롱초롱한 사진의 두 눈은 지금 완전히 눈물에 젖은 가련한 모습이었다.사무는 평소 집에서는 여동생을 싫어하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사실은 몹시 마음이 아팠다.한 손으로 여동생을 가볍게 안고 달래면서 말했다.“괜찮아, 괜찮아. 좀 있다가 아
“예민주가 무슨 일인들 못하겠어?” 성연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차갑게 내뱉었다. 예민주의 모습을 떠올리자, 한바탕 구역질이 났다.클래식한 파텍필립 손목시계를 힐끗 보고서, 다음 순간 성연은 이미 성큼성큼 방문을 나섰다.“빨리 안 따라오고 뭐 해!” 문 앞에 도착한 성연이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는 서한기를 보면서 소리쳤다.10여 분 후, WS그룹 1층.두 손으로 운전대를 꼭 잡은 채, 성연은 아주 멋진 드리프트 솜씨로 차를 건물 입구에 세웠다.주차 도우미 직원과는 불과 1미터도 채 안 되는 거리만 남았기에, 직원은 이미 쓰러질 지경이었다.“무즌 주차를 이렇게 해요?” 이렇게 거친 주차 방식을 보자, 직원은 마음속으로 화가 났다.무의식적으로 차 안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면서, 한바탕 퍼부으려고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운전석의 차문이 열리고 성연이 차에서 내렸다.자신에게 다가온 직원의 눈길을 마주하고서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보았다.한바탕 퍼부으려던 직원은 성연의 깊은 눈빛을 마주하자 결국 말문이 막혔다.“차는 주차장으로 옮기지 말고 여기에 그래도 놔 둬요! 만약 내가 돌아왔을 때 차가 다른 곳에 있다면, 당신은 이 일을 계속할 수 없을 겁니다!”“하지만 아가씨, 이건 규정에 맞지 않습니다.”성연은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거리낌 없이 말했다.“나를 믿어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말이 끝나자, 성연은 대답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안으로 걸어갔다. 마치 뒤에 천군만마가 있는 것처럼 당당하고 기세 등등한 걸음걸이였다.성연의 곁에는 아무도 다가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1층의 안내 데스크.“대표님은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데스크의 여직원은 계속 그 자리에 있었기에, 방금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두 한눈에 볼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당황스러운 마음을 억누른 채 최선을 다해 응대할 수밖에 없었다.“약속을 하셨습니까?”성연은 입술을 오므린 채 가볍게 웃었다.“대표님은 어디 계세요?”“죄송합니다만, 대표
‘그 여자는 분명히 그 다른 쪽이라고 했어. 즉, 그 여자가 알려준 건 잘못된 방향이었어.’‘만약 그 여자가 방향을 몰랐다면, 위치를 말하지 않았을 거야. 그러나 그 여자는 그렇게 자신있게 위치를 말했어.’‘그건 자신이 있다는 말이야!’이렇게 생각하자, 예민주에 대한 사무의 인상은 더욱 좋지 않았다.다음 순간, 턱을 살짝 든 사무가 두 여자를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제 여동생이 아직 저쪽에 있어요. 잠깐만요, 제가 가서 여동생을 데리고 올게요.”여동생이 있다는 말을 듣자 좀 놀랐지만, 소년이 돌아서는 걸 보자 그제서야 비로소 대답했다.“아, 여동생! 그래, 그래.”화장실에 간 후, 사무와 사진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 못된 여자가 혹시 함정이라도 파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기에.하지만 아버지가 아직 거기에 있다는 걸 떠올리자,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 한다는 첫 교훈도 얻게 되었다. 이 놀이는 오후 내내 계속되었다.한편 다른 한쪽. 시재 백화점에 갔다가 별장으로 돌아온 성연은 양 손에 큰 봉투 두 개를 들고 있었다. 그 안에는 온갖 장난감이 가득했다.이것들은 모두 성연이 업무를 마친 뒤에 특별히 아이들을 위해 고른 장난감이다. ‘요 며칠 동안 정말 너무 바빴어. 집에 돌아오면 이미 늦은 밤이거나, 좀 일찍 집에 돌아와도 저녁을 먹고 다시 일하느라 정신이 없었지.’성연은 여전히 아이들에게 빚을 진 듯한 느낌이었다.집을 열자 거실은 조용했다. 위층에서도 별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우리 사진이, 사무? 엄마가 돌아왔어!”눈살을 살짝 찌푸리면서 성연이 말했지만, 아이들의 열정적인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사진아? 사무야? 너희들 집에 있니?”“사무야?”아래층에서 계속 몇 번이나 소리쳐도 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이렇게 큰 집에 성연 자신의 목소리만 울릴 뿐.“보스, 아이들은 지금 집에 없습니다.”이때 서한기가 부랴부랴 달려왔다.“집에 없다니?” 성연이 눈썹을 바짝 세웠다. 순간 마음속에
“그 여자는 이전에 엄마하고 알고 지냈던 것 같아. 다만 아직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모르겠어.”“그럼 이따가 우리 어떡하지?” 사진이 약간 지친 듯한 기색으로 말했다.오전 내내 이곳을 왔다갔다했으니 아이에게는 에너지 소모가 컸다.그리고 방금 위층으로 올라갈 때, 아이들은 여전히 아주 자신있게 서한기보고 먼저 가라고 했다. 그때는 자신감이 가득했지만 지금은 ‘후회막심’이다.‘지금 아직 한기 아저씨가 있다면. 바로 집에 가서 편하게 누워서 쉴 텐데.’“일단은 우리 계획대로 그 여자한테 엄마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마. 우리가 아빠를 찾으러 온 건 그 여자하고 상관이 없어.”원래 신중한 사무지만, 지금 사무의 말은 오빠라는 사무의 입장과 아주 딱 맞게 진지했다.두 아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방금 전에 화장실에 가겠다고 한 건 핑계였지만, 막상 바깥에 나오자 화장실에 가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한참을 가도 식당 창문이나 작은 방은 곳곳에 있는데, 예민주가 말한 화장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그 여자가 우리를 속인 건 아니겠지?”억울한 듯이 분홍색 입술을 삐죽 내민 채 사진은 움직이기도 귀찮았다.여동생의 이런 모습을 보자, 사무는 그 자리에 선 채 눈을 반짝이며 한 바퀴 둘러보았다.“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딴 데 가지 말고. 알았지?”말을 마친 사무는 왔던 길을 다시 달려갔다.“오늘 가지는 좀 맛이 없어.”“그래도 괜찮은데. 먹기 싫으면 나한테 줘.”사무는 식사 중이던 두 아가씨의 앞으로 갔다.“누나, 실례합니다. 여기 화장실이 어디에 있어요?”목소리는 여리지만 태도는 아주 공손했다.밥을 먹고 있던 두 아가씨는 그 말을 듣자 먹던 동작을 멈췄다. 사무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갑자기 눈빛을 반짝였다.‘어디서 이렇게 귀여운 아이가 온 거야?’ ‘뚜렷한 이목구비에 심플한 검은색 스웨터만 입었는데도 잘 어울리는 걸.’‘얼굴의 통통한 젖살이 큐티 작살인데!’‘그야말로 너무나 귀여운 아이야!’사무는
두 아이를 보면서 예민주는 더욱 초조했다.마음속에 잘 기억해 놓은 뒤, 예민주의 노기는 빠르게 수그러들었다. 다시 아이들을 바라볼 때는 이미 이전의 온화한 모습을 회복했다.“사진아, 너희들은 이전에 외국에서 잘 살았다면서? 그런데 왜 갑자기 귀국한 거야?”마치 큰 언니가 아이들을 배려하는 듯 예민주는 아주 잘 알고 있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나 지금 두 아이는 이미 이 여자의 목적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 당연히 경계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엄마의 집이 바로 여기에 있어요. 엄마가 한번 가보자고 해서 돌아왔어요.”목소리는 아직 어린 티가 나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해맑은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또박또박 말하는 사진의 대답은 가히 ‘예술의 경지’라 해도 좋을 정도였다.‘아까까지만 해도 술술 잘 말하더니, 갑자기 왜 이렇게 빈틈이 없어진 거야?’예민주는 기분이 좀 꿀꿀했지만 그래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이번에 돌아와서 낯선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니? 너희들이 오늘 이곳에 와서 아빠를 찾는 것 같은데, 누가 너희들에게 뭔가 말한 거 아니야?”예민주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춘 채 계속 집요하게 물었다. 무진이 자신의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무진에게 등을 진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사진은 혼란스러운 모습으로 눈썹을 찌푸린 채 예민주를 쳐다보았다.“아줌마, 우리하고 함께 여기서 논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왜 계속 그런 거만 물어봐요?”“맞다. 아줌마, 우리 엄마 알지요? 우리 엄마한테 지금 데리러 오라고 하면 안 돼요?” “오늘 우리를 괴롭힌 사람들을 엄마가 꼭 혼내 주게요!”“맞아요, 맞아요! 누가 우리를 괴롭힌 걸 알면, 엄마가 반드시 호되게 혼을 내줄 거예요.”두 아이가 서로 주고받으면서 한 마디씩 하는데, 호흡이 기가 막히게 잘 맞았다. 예민주는 표정이 붉어졌다는 것도, 심지어 심장박동도 빨라졌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이 두 녀석의 말을 들으니, 송성연이 이 두 녀석을 아주 진지하게 단
예민주가 무진을 보러 매일 회사에 올 수는 없는 노릇.그러나 자신이 잘 쓰는 방법을 사용해서 WS그룹에 자기 부하를 하나 심었다.매일 무진의 스케줄을 예민주는 똑똑히 알고 있었다.오늘 아침 전화한 사람은 두 아이가 몰래 대표실에 들어갔는데, 줄곧 대표님을 아빠라고 불렀다고 말했다.평소 기발한 행동을 해서 명문가에 시집가려는 여자들도 적지 않다.운성 경제의 명맥을 쥐고 있는 무진과 누가 관계를 맺고 싶지 않겠는가!매일 프런트에서 자칭 ‘강무진의 아내'라고 주장하는 여자들을 몇 명이나 상대해야 하는지 모를 정도였다.‘거의 대부분은 프론트에서 차단되지.’‘그런데 오늘 대표 집무실로 직접 들어온 아이들이 있다니.’원래 예민주는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머릿속에 문득 성연의 모습이 번뜩였다.‘결국 당황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황급히 회사로 달려왔는데.’‘뜻밖에도 정말 송성연과 관계가 있었어!’예민주는 다시 눈앞의 이 두 아이에게 눈길을 돌렸다.예민주의 눈빛에 음험한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너희들은 평소에 엄마하고 같이 있지 않니?”사진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그래요, 매일 엄마하고만 같이 있어요. 그래서 아빠가 보고싶어요.”아이가 자신에게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자, 예민주는 내친 김에 계속 캐물었다.“너희들은 이전에 줄곧 외국에 있었는데, 아빠 가족들이 너희들을 찾지 않았어?”“아빠 가족들요?” 뭔가를 눈치챈 듯, 사진이 고개를 돌려서 옆에 있는 오빠를 바라보았다. 눈빛을 교환한 두 아이는 자신들만 알 수 있는 작은 신호들을 사용했다.‘이 여자는 그냥 회사를 좀 구경하게 해 주는 게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는 것 같아!’사무는 두 손을 꼭 잡은 채 작은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아주머니, 이게 잘 안 들어가는데요? 좀 도와 주실래요?”갑자기 사무의 목소리가 들렸다. 손에는 어디서 났는지 모르는 레고 블록을 든 채.예민주는 계속 묻고 싶었지만, 사무가 성깔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서 어쩔 수 없이 그 요청을
남자는 전혀 표정이 변하지 않은 채 조용히 두 아이를 바라보았다. 약간 쉰듯한 목소리에서는 차가운 기운을 발산하고 있었다.예민주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이 두 아이 귀엽지 않아요? 오히려 오빠가 그렇게 쫓아냈는데, 만약 누군가 영상이라도 찍었다면, 회사의 명성에 영향을 주지 않겠어요?”“누가 감히 우리 WS그룹을 함부로 보도할 수 있겠어?”무진의 말에는 힘찬 기세가 담겨 있었다.무진이 결코 지나치게 허풍을 떠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실력을 가지고 있으니 이렇게 강경할 수 있는 것이다.무진이 이렇게 말하자 예민주는 잠시 할 말이 없었다.하지만 잠시일 뿐!다시 무진에게 다가간 예민주가 작은 소리로 무진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사실 쟤들은 이 참에 오빠하고 잠시 함께 있기 위한 핑계였어요.”예민주가 다가오자, 순간 그윽한 향기가 무진의 코에 스며들었다.무의식적으로 미간을 찌푸린 무진이 몸을 살짝 옆으로 움직였다. 두 사람 사이에 막 좁혀졌던 거리가 다시금 벌어졌다.무진은 다른 사람의 접근을 절대 좋아하지 않는다. 이렇게 접근해서 기회를 틈타 상류층으로 오르려는 여자들도 적지 않았다.심지어 한 번만 만나려고 머리를 쥐어짜내는 사람들도 있다.그런 사람들은 이미 습관이 되었다.매번 비서진이 쉽게 대처했지만,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은 예민주다.자신의 여자 친구인.무진의 이런 습관을 예민주도 사실 잘 알고 있다. 평소에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 예민주는 절대로 이렇게 짙은 향수를 뿌리지 않는다.그래야 무진이 자신과 함께 있을 때, 무진이 이렇게 배척하지 않을 테니까.하지만 지금 예민주는 이 ‘금기’를 잊어버린 게 분명했다.방금 무진의 동작은 지금 예민주의 눈에는 적나라한 거부이자 분명한 소외감이었다.그러나 예민주는 감히 이 억눌린 마음을 마음속에 묻어두어야 했다.겉으로는 그래도 아무렇지 않은 척 가장했다.입가에 줄곧 미소를 지은 채 아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나는 애들하고 얘기를 해 볼게요. 애들이 왜 대표실을
“감탄할 수밖에 없어! 저 아가씨가 사랑 앞에서 저렇게 자신을 낮출 수 있다니!”“내가 말하고 싶은 건, 우리 대표님 여자친구는 정말 총명하다는 거야!”“뭔데? 뭔데? 나만 모르는 거야?”“...”회사에서는 업무 시간에 뒷담화를 하지 못하도록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그러나 어떻게 그런 일이 없을까?어떻게 다 금지할 수 있을까?지금 회사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여전히 신나게 떠들어대고 있었다.오히려 당사자들은 그렇게 호들갑스러운 모습이 아니었다.아이들을 데리고 이미 회사 식당에 온 예민주는 룸에 도착했다.평소에 무진은 사실 사실 이쪽에는 거의 오지 않았다. 손건호가 식사를 가지고 오면 늘 대표 집무실에서 식사를 했다.하지만 여전히 무진을 위한 개인 공간이 갖춰져 있었다.바깥의 인테리어도 좋지만, 내부 공간은 여전히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바로 돈이 있어서 좋은 점!단지 식사를 하는 공간이지만, 룸 안에는 대형TV와 편안하고 넓은 가죽 소파가 갖춰져 있었다. 또 각종 커피 메이커, 정수기, 그리고 국외에서 수입한 첨단 설비들이 갖춰져 있어서 그야말로 작은 휴게실이나 다름없었다.“아줌마, 회사 구경을 시켜준다고 하지 않았어요? 방에는 왜 왔어요?”사진은 자신의 작은 다리를 열심히 움직이면서 무진과 가까워지려고 노력했다.하지만 남자들이 이동하는 속도를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오빠, 나 아빠 옆에 있고 싶어.”무진의 행동이 이렇게 소원하자, 사진은 작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억울한 듯한 표정으로 오빠를 바라보면서 위로를 얻으려고 했다.여동생을 힐끗 본 사무가 침울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나도 어쩔 수가 없어.”“엉엉. 사진이한테는 너무 어려워!” 두 눈에 눈물을 머금은 채 슬피 우는 소녀의 울음소리가 마음을 아프게 했다.예민주는 들어오기 전에 미리 장난감과 먹을 걸 준비해 달라고 시켰다.지금 이미 예민주가 시킨 물건들을 보내왔다.이쪽을 보니 무진은 옆에 있는 아이의 마음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쳐다보지도 않았다.
“얘들아, 너희들은 어느 집 아이들인데 지금 회사에 있는 거니?”온화한 모습으로 살짝 몸을 숙인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예민주의 모습에는 어떤 허세도 보이지 않았다.두 아이는 이전에 이 여자를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아빠와 사이가 좋은 모습을 본 데다가, 이렇게 부드러운 태도인 걸 보고는 무의식적으로 ‘우호적’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흥분한 표정으로 초롱초롱한 눈빛을 빛내면서 사진이 가장 먼저 대답했다.“저희는 여기를 구경하고 싶어요.”사진은 여린 목소리로 거절할 수 없는 이유를 말했다.고개를 살짝 끄덕인 예민주는 고개를 돌려서 무진을 한 번 보았다. 무진은 복잡한 눈빛으로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그래, 그럼 아줌마가 너희들 회사 구경을 시켜줄까?”“이제 곧 점심 시간이야. 너희들도 회사 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 있어. 아줌마가 맛있는 걸 사줄까?”예민주의 제안은 시원시원하고 아주 열정적이라서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어느새 다가온 무진이 눈썹을 치켜세우면서 말했다.잘 이해가 되지 않는 듯한 목소리였다.“민주야, 이 두 아이는 내력이 분명하지 않아. 그렇게 애들을 여기 남겨두고 놀게 하다가, 무슨 일에 엮일 지도 몰라.”“괜찮아요. 이 두 아이가 무슨 나쁜 생각을 가지고 있겠어요. 그저 단지 여기를 지나다가 궁금해서 좀 더 구경하고 싶을 뿐일 거예요.”예민주가 시간을 보니 마침 12시가 다 되었다.“같이 한 바퀴 돌아볼래요? 오빠도 한참동안 나하고 함께 있지 못했잖아요.”철이 든 모습의 예민주가 기대에 찬 시선으로 무진을 바라보았다.결국 무진의 마음속 예민주에 대한 미안함이 이성에 승리를 거두었다.두 아이는 지금도 무진에 대해서 희망을 품고 있었다.‘사무실에 있을 때는 우리한테 냉담했지만, 결국 우리 친아빠야.’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잘 알지 못해서 잘못했던 부분이 있을 수도 있어.’모두 처음 겪은 일이기에, 잠시 동안 기분이 다운되어 있었던 아이들도 마음을 놓았다.‘어렵게 왔는데, 아빠하고 좀 더 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