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이크는 유럽의 최고 명문가 일원들에 대해서라면 이미 잘 알고 있다고 자부했다.그러나 눈앞의 이 남자는 자신의 기억에 전혀 있지 않았다.그러니 허세를 부리는 고만고만한 치에 불과할 게 뻔했다.여기까지 생각한 블레이크 교수는 허리를 더욱 꼿꼿하게 세웠다.모욕적인 말을 내뱉으며 손가락으로 성연의 코를 가리키며 말했다.“내가 말하는 것은 바로 쟤야. 교수를 존중할 줄을 전혀 모르는군. 조작된 자료로 입학할 자격이 없어. 알겠니, 너희들?”화가 폭발해서 주먹을 쥐고 앞으로 뛰쳐나가려던 성연을 무진이 잡아당기며 차디찬 시선으로 블레이크 교수를 응시했다.그 시선은 얼어붙을 정도로 차가웠고, 블레이크 교수는 놀란 나머지 한발 물러섰다.그러고는 자신의 행동이 너무 무기력하다고 느껴졌지만 무진의 시선을 마주하며 억지로 버텼다.무진은 블레이크를 향해 담담하게 말했다.“앞으로 우리는 이 학교에 대한 모든 찬조를 중단할 것이다. 아울러 연합회를 발동시켜서 이 학교를 보이콧할 것이다!”학교 스폰서에 대해서는 블레이크 교수도 잘 알고 있었다. 그의 기억에 강무진이라는 인물은 없었다.지금 무진이 그저 말로 자신을 위협하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했다.블레이크는 콧방귀를 뀌며 거들떠보지도 않고 말했다.“내가 여기서 오랜 세월 교수를 하고 있는데, 널 무서워할 거라 생각하나?”무진이 바로 성연을 끌고 나갔다.밖에 나온 무진이 걱정스럽게 성연을 바라보았다.성연은 화가 나서 눈시울이 붉어졌다.“저 따위가 무슨 교수야?”애초에 자신에게 합격 통지서를 주던 학교 임원들은 태도가 얼마나 좋았는데.그런데 그녀가 학교에 오자마자 최악의 태도에 부딪힌 것이다.“미안해, 내가 늦었어. 우선 돌아가서 학교에서 뭐라고 하는지 보자.” 여기는 더 머물 수 없을 게 확실했다.‘성연이가 그 교수 때문에 화난 게 분명하군.’자신은 성연에게 말 한 마디도 조심조심하는데, 지금 학교에서 다른 사람에게 억울한 일을 당하다니.만약 이 문제에 대해 학교에서 제대로 된 설명을 하지 않는
현재 학교 쪽의 문제는 하나하나 해결해 나갈 수밖에 없다.학교 입구에 커다랗게 걸린 간판을 흘깃 쳐다본 성연은 반드시 정정당당한 모습으로 입학하고 말리라 속으로 다짐했다.뒤따라 나오며 성연의 반응을 눈에 새기던 무진은 성연을 위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고민 중이었다.성연은 무진과 함께 교문을 나섰다.교문에 이르렀을 때, 성연은 저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추었다.무진 역시 성연을 따라 걸음을 멈추고 이유를 물었다.“왜?”성연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성연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무심코 쳐다보던 무진의 눈에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들어왔다.‘송아연?’송아연이 서양인의 얼굴을 한 남자와 아주 가깝게 붙어 학교 입구를 걸어가고 있었다.두 사람의 모습은 무척이나 친근해 보여 단순한 관계로 보이지가 않았다.송아연은 남자를 따라 아무렇지 않게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두 사람은 성연과 무진의 존재를 발견하지 못한 게 분명했다.학교 안으로 들어선 두 사람은 아무도 보이지 않는 듯이 손을 맞잡았다.눈 앞의 장면을 보면서 성연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송아연의 수준으로는 절대 들어올 수 없는 학교다.‘그럼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송아연이 왜 여기 있어?’현재 송씨 집안의 상황으로는 송아연의 학비를 절대 부담할 수 없었다.“저건... 송아연?” 무진이 눈살을 찌푸리며 의아해하며 물었다.성연이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송아연이 분명해요.”“강진성과 같이 있었던 게 아냐? 전에 조사할 때, 강진성이 도망간 후로 송아연의 행방도 알 수가 없어서 당연히 강진성과 같이 있는 줄 알았어. 그런데 강진성이 지금 유럽에 없다는 건 확실하게 장담할 수 있어.”이미 강진성이 있는 곳을 파악해서 사람을 시켜 계속 지켜보게 했다. 저들이 더 이상 이상한 짓을 하지 못하도록. 그렇기에 그만큼 무진의 말투는 아주 확신에 차 있었다.“내가 보기엔 그렇게 간단하지 않은 것 같아요.” 성연은 턱을 괸 채 가만히 생각했다.송아연이 새 후원자를 찾은 게 분명했다.그 새 후
학교에서 나온 송아연은 소지연을 만났다.그렇다. 송아연을 이곳으로 데려온 사람이 바로 소지연이다.소지연은 풍성한 만찬으로 섭섭지 않게 송아연을 대접했다.저택 안, 세심하게 공들인 음식과 디저트가 가득 차려진 식탁이 송아연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소지연은 저택 안에서 송아연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송아연이 저택에 당도하자 바로 고용인이 나와 안으로 안내했다.송아연은 진수성찬을 바라보며 두 눈을 반짝였다.“오늘 소지연 씨 기분이 무척 좋은가 보군요.”소지연은 눈앞의 식탁을 가리키며 말했다.“모두 송아연 씨를 위해 준비한 것이에요. 마음껏 즐겨요.”“모두 저를 위해 준비했다고요?” 소지연의 극진한 대접에 송아연은 깜짝 놀랐다.소지연이 이렇게 신경 써서 자신을 대할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기에.하지면 소지연에게 이 정도의 대접은 아무것도 아닐지 모른다.송씨 집안의 회사 사정이 나날이 악화된 이후로 자신의 돈으로 맛있는 음식을 사 먹어본 적이 없는 송아연.강진성과 함께 있을 때조차도 강진성이 자신에게 주는 선물 말고는 마음대로 돈을 쓸 수 없었다.자연히 저도 모르게 강진성의 눈치를 보았다.지금의 소지연처럼 속 시원하게 즐긴 적이 없었던 것.소지연과 손을 잡는다면 훨씬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을 게 분명했다.“맞아요, 그저 한 끼 식사일 뿐인 걸요.” 소지연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거렸다.송아연도 세상 물정도 모르는 것처럼 너무 좀스럽게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소지연의 앞 자리에 앉아 태연함을 가장하며 눈앞의 음식들을 맛보았다.시간이 꽤 흐른 후, 드디어 송아연이 포크를 내려놓았다.식탁 위에 차려졌던 음식들 대부분이 송아연에 의해 사라진 상태.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지켜보던 소지연이 적당한 타이밍에 송아연에게 물잔을 건넸다.잠시 멍하니 보던 송아연이 감사인사를 했다.“감사합니다, 소지연 씨.”“천만에요.”소지연이 태연히 대답했다.송아연이 물을 한 모금 마신 후, 순식간에 테이블 주위로 침묵이 내려
소지연은 송아연의 다짐에 만족했다.원래 썩 똑똑하지는 않은 송아연이지만, 자신의 조련을 거친다면 머리가 꽤 잘 돌아갈 것이다.그러면 차후 송아연과 협력하게 됐을 때 자신이 그리 많이 신경 쓸 필요가 없게 될 터.소지연이 계속 말했다.“그리고 내가 송아연 씨를 위해 다른 사람을 더 안배해 두었어요. 바로 송성연을 데리고 있을 교수죠. 송아연 씨는 그 교수와 비밀리에 연락해서 같이 송성연의 명예를 더럽힐 방법을 찾아요.”송아연은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소지연 씨, 나는 절대 당신을 실망시키지 않을 겁니다!”소아연의 말을 듣고 있던 소지연의 눈이 갑자기 매섭게 변했다.“나를 실망시키지 않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해내야 해요!”송아연은 깜짝 놀라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최선을 다하겠어요. 소지연 씨.”소지연은 물을 한 모금 마시며 분노를 가라앉혔다.“나는 송아연 씨에게 내 모든 희망을 걸었어요. 그러니 절대 나를 실망시키지 마세요.”송성연과 강무진이 함께 있는 다정한 모습을 더 이상 참고 볼 수가 없었다.그건 처음부터 자신의 것이어야 했다. 송성연이 감히 가당키나 하단 말인가?“소지연 씨, 나도 송성연을 증오해요. 화목하고 단란했던 우리 가정을 이렇게 만든 사람이 송성연이에요. 나도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송아연은 소지연이 믿지 못할까 봐 자신의 결심을 재차 드러냈다.“송아연 씨 각오가 그렇게 단단하니 아주 좋군요. 송성연은 만만한 인물이 아닙니다. 송성연을 상대할 때는 반드시 조심해야 해요. 절대 송성연에게 끌려가면 안됩니다.”안심이 안된 소지연이 연신 당부했다.송아연이 송성연과 상대한 과정을 조사해 보니, 그야말로 참혹했다.송아연이 머리가 좀 있었더라면 그렇게 되지 않았을 터.“알았어요, 이번에는 무조건 조심할게요.” 송아연이 고개를 끄덕였다.이전에 자신은 송성연을 너무 얕잡아보다가 참혹하게 지고 말았다.송성연을 그저 시골에서 올라온 촌뜨기로만 보았기 때문.송성연에게 그런 수단이 있으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다음날, 성연과 무진은 즉시 입시관리처에 가서 블레이크 교수의 행위를 고발했다.성연은 학교의 인장이 찍힌 자신의 입학통지서를 꺼내 놓았다. 블레이크 교수만큼 직위가 높지 않았던 입시관리처 담당자는 어쩔 수 없이 두루뭉실하게 넘기기 위해 성연에게 웃으며 말했다.“송성연 학우, 우리가 조사해 보겠습니다. 만약 송성연 학우의 말이 사실이라면 학교 쪽에서 합당한 처결을 내릴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학교는 언제나 공평하고 공정함을 추구합니다.”성연은 담당자가 대충 얼버무리려 한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러나 학교조차 이러니 자신이 다른 사람을 찾아간다 한들 별 소용이 없을 터.성연은 속으로 화가 났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굳은 얼굴로 한쪽에 서서 입시관리처 담당자를 얼음같이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성연의 주시에 담당자는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재차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송성연 학우, 우리는 역사 깊은 대학입니다. 교수진도 학계에서 명성이 아주 높은 분들입니다. 당신이 말한 일에는 분명히 무슨 오해가 있을 테니 그 오해만 푼다면 문제없을 겁니다.”성연의 입꼬리가 비스듬히 올라갔으며 눈에는 조롱기가 가득했다.“나도 오해였으면 좋겠네요.”그러나 블레이크 교수는 한 마디 해명도 듣지 않은 채 자신에게 사형 선고를 내렸다. 성연은 도무지 그 분노를 삼킬 수가 없었다.담당자는 성연의 말에 숨겨진 뜻을 알아듣지 못한 듯이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아무래도 송성연 학우의 사상의식이 아주 높은 것 같군요. 우리 대학에 입학할 수 있다는 것은 모두 아주 우수한 학생이라는 뜻이죠. 그러니 나는 송성연 학우를 믿습니다. 다만 블레이크 교수가 다소 엄격한 분이다 보니 이렇게 된 것 같습니다. 송성연 학우가 블레이크 교수를 오해한 듯하군요.”성연은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학교에서 교수의 명예를 보호하기 위해 이런 말을 한다는 건 성연도 이해할 수 있었다.결국 이런 상황이 되자 성연도 달리 할 말이 없었다.“그럼 저는 학교의 조사 결과를 기다
다시 블레이크 교수를 만나 입학 수속에 필요한 동의서를 받았다. 블레이크 교수는 성연에게 그다지 좋은 표정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동의를 해주었다.곧이어 학교에서는 성연에게 기숙사 방을 배정해 주었다.호텔로 돌아온 성연이 대략 짐을 정리하자 무진이 성연을 학교로 데려다주었다.성연의 짐을 들고 성연의 뒤를 따라 걸었다.교문 앞에서 남자 선배와 여자 선배가 신입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성연을 본 선배 하나가 친절하게 다가왔다. 성연을 보더니 눈을 빛내며 물었다.“신입생 맞지? 너 정말 예쁘구나, 마치 요정 같애.”“칭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성연의 입술이 뻣뻣하게 굳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칭찬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이처럼 과감하고 개방적인 서양인들의 표현 방식에 최대한 빨리 적응할 필요를 느꼈다.“너희들 기숙사에 묵는 거지? 선배가 데려다줄게.”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여자 선배가 자신의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호의적인 모습을 보였다.“고맙습니다. 선배님.” 호의를 보이는 사람에게는 성연도 호의적인 모습을 보였다.성연은 그래도 성격이 아주 좋은 편이다. 자신의 한계선만 건드리지 않는다면 함께 지내기 좋은 사람.“후배님은 어디서 왔을까?” 여자 선배가 뒷짐을 진 채 앞서가다가 갑자기 홱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우리는 A국 사람이에요. A국의 북성 시에서 왔어요.”성연이 자신의 출신을 알려주었다.“아, A국. 나 거기 알아. 너희 나라엔 흥미로운 게 많더라. 언젠가 기회가 되면 꼭 가보고 싶어.” 흥미진진한 모습을 보이는 여자선배의 두 눈에는 A국에 대한 관심이 가득했다.“물론이죠. 선배가 관심이 있다면 놀러 가면 돼죠.”성연이 웃으며 말했다.“응, 꼭 가볼 거야.” 여자선배가 신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런데 갑자기 성연의 뒤에서 따라오던 무진을 힐끗 쳐다본 여자선배가 성연을 한쪽으로 끌고 가서 조용히 물었다.“그런데 저기 네 뒤의 남자는 오빠야?”성연이 무진을 돌아보며 고개를 저었다.“오빠가 아니라...내
애초에 송아연을 보고 싶지 않았던 성연은 송아연의 괴상한 음성을 듣자 구역질이 날 것처럼 기분이 나빴다.화가 난 성연이 송아연에게 쏘아붙였다.“송아연, 함부로 가족인 척하지 마.”송아연은 성격 좋은 사람처럼 웃었다.“언니, 설마 신분이 높아졌다고 나 같은 가난한 여동생 모르는 척하는 거야?”성연은 송아연을 노려보며 따졌다.“나는 너 같이 여기서 이 말하고 저기서 저 말하는 동생 둔 적 없어. 다시 한번 허튼소리를 하면 나도 입 다물고 있지 않아. 자랑스럽지 못한 네 과거 들통나고 싶지 않으면 조심해.”성연의 말에 안색이 변한 송아연은 한동안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자신의 낙태 같은 일들은 남자친구 잭은 알지 못한다.송아연은 여태까지 남자친구 앞에서 순수한 이미지를 가장해 왔다. 그러니 만약 성연이 자신의 과거를 폭로한다면 잭과의 관계도 끝장나리라.송아연은 주먹을 꽉 움켜쥔 채 성연을 매섭게 노려보았다.그런데 잭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무진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음, 왠지 낯이 익은데?’송아연이 감히 입을 열지 못하는 것을 본 성연은 송아연이 자신의 과거를 잭에게 말하지 않았음을 알아차렸다.아마 이게 송아연의 약점일 것이다. 그러나 송아연이 제 주제를 알고 조용히 지낸다면 자신도 굳이 이런 일로 송아연을 상대할 생각은 없다.성연은 턱을 살짝 치켜 든 채 물었다.“송아연, 네가 왜 여기에 있어? 네 수준으로는 이 학교에 들어올 수도 없는데!”이전이라면 성연이 이렇게 말하면 송아연은 틀림없이 화를 냈을 것이다.그런데 지금 송아연은 화를 내기는커녕 웃으면서 잭의 팔을 잡아당기며 과시성이 다분한 어투로 말했다.“그건 물론 내 남자친구 잭이 도와줬지. 그저 대학 진학에 불과한 걸. 글로벌하게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잭에게 대학 진학 정도는 식은 죽 먹기야.”송아연에 대해 의심을 품고 있던 성연은 이 잭이라는 남자가 진짜 송아연의 남자친구일 줄은 몰랐다.‘송아연, 정말 미쳤나 봐. 그 사이 남자가 또 바꼈어!’강진성에게 일이 생긴지
성연과 송아연이 티격태격하는 동안, 무진은 결국 잭을 쳐다보며 기억을 해냈다. 프랑스 대표 명품 브랜드를 소유한 가문의 후계자!절대 만만한 인물이 아니다.성연은 어쨌든 앞으로 학교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무진 자신도 회사 업무를 처리해서 언제까지 성연만 주시할 수도 없다.아무래도 유럽에서 자신의 세력은 약할 수밖에 없다. 만약 누군가 성연을 노렸을 때 자신이 제때 달려오지 못할까 걱정이다.피할 수만 있다면 최대한 피하는 게 좋다.아주 짧은 시간 동안 무진은 머리 속에서 온갖 이해득실을 따졌다.성연을 자신에게 가까이 끌어당긴 무진이 송아연에게 경고했다.“더 이상 성연에게 접근하지 마. 만약 무슨 음모라도 꾸민다면 내가 반드시 너를 가만두지 않을 거다!”말을 끝낸 무진이 성연을 데리고 그 자리를 떠났다.방금 성연과 이야기할 때 송아연은 자신의 모국어 A국어를 사용했다.그래서 잭은 자신의 이름 외에 다른 말들은 알아듣지 못했다.성연과 무진이 떠난 후, 잭이 송아연에게 물었다.“정말 네 언니가 맞아? 왜 너와 사이가 안 좋아 보이는 거지?”송아연은 잭 앞에서 일부러 연약한 척했다.“언니와 난 이복자매예요. 언니는 나에게 아버지의 사랑을 빼앗겼다는 생각에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요.”잭이 자신을 가련하게 생각하도록 송아연은 일부러 사실을 왜곡해서 말했다.역시 송아연의 설명을 들은 잭은 그녀를 대신해 마음이 아팠다.“언니라는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거야? 부모님의 일을 네가 어떻게 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닌데 말이야.”“하지만, 난 정말 언니를 좋아하는데 지금 언니한테 미움을 받으니 너무 마음이 아파요.”괴로운 척 연기하며 완전히 잭의 품으로 쓰러지는 송아연.“괜찮아, 괜찮아. 너에겐 내가 있잖아, 괜찮아.” 잭은 송아연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위로했다.무진을 따라 자신의 기숙사 방으로 들어간 송성연. 2인1실의 방은 꽤 널찍한 편으로 각종 가구와 가전들이 모두 갖추어져 있었다.기숙사가 아니라 원룸 아파트처럼 보였다.
‘그래함과 무진 씨 사이는 썩 괜찮은 것 같아.’성연은 두 사람이 언제 번호를 교환했는지도 몰랐다.‘그런데 사형이 전화를 받는 속도가 꽤 빨랐어.’성연은 궁금해하며 물었다.“사형하고 채연 언니는 뭐하고 있대요?”‘채연 언니가 멀미를 했으니까, 사형도 당연히 언니하고 같이 쉬고 있었을 텐데.’‘전화를 그렇게 빨리 받을 수가 없어.’그래서 성연은 약간 궁금해졌다.“두 사람이 뭘 하고 있었는지 알아맞혀 봐?” “뭐 먹고 있었나...?” 성연이 머뭇거리며 답을 말했다.“두 사람은 임신을 준비하고 있는데, 우리도 서둘러야 하지 않겠어?”성연은 얼굴이 뜨거워지는 걸 느끼면서 얼굴을 가렸다.‘사형하고 언니는 대낮인데도...’‘하필이면 무진 씨가 들었어.’‘하지만 두 사람은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지. 호텔에는 방해하는 사람도 없으니까 바로 불이 붙은 거야.’‘감정을 억누를 수 없는 것도 정상일 거야.’말을 하던 무진이 성연에게 바로 키스를 했다.무진의 키스를 받은 성연은 숨을 헐떡이며 무진의 품에 안겨 있을 수밖에 없었다.무진의 동작은 갈수록 대담해졌다.성연의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너무 조급하게 그러지 말아요.”‘여긴 집무실이라서 언제든지 사람들이 들어올 거야.’‘문을 잠그더라도 누군가 보고하러 문을 두드릴 거야.’성연은 아직 이런 정도로 개방적이지는 않았다.그리고 아이를 만드는 것도 조급해하지 않았다.‘적어도 결혼식 후에 생각해야지.’‘나는 아직 그렇게 젊은데, 아이가 생기면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해.’‘생각만 해도 정말 귀찮아.’“안 돼, 우리 집으로 돌아가자.” 성연이 사무실에서 그러는 걸 원하지 않는 이상, 무진도 개의치 않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다.‘그곳이라면 조용하고 공간도 넓어서 아무도 방해하지 않을 거야.’“무진 씨, 좀 진정해요...”성연은 얼굴을 붉히며 무진의 가슴을 밀어냈다.‘무진 씨는 정말 갈수록 대담해져.’‘누가 강무진을 금욕주의자라고 했어?’‘나를 잡아먹으려고 눈이 벌개져 있는데, 그런
무진은 전례 없이 빠른 발걸음으로 사무실에 들어섰다.문을 열고 성연의 뒷모습이 보이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곧장 달려가서 성연을 백허그로 안았다.고개를 돌린 성연이 무진을 향해 미소를 지으면서 키스를 날렸다.무진은 키스를 잠시 중단하고 대표실 문을 잠궜다.이어서 성연에게는 숨막히고 공격적인 키스가 기다리고 있었다.무진의 손도 슬슬 위험 수위를 넘나들기 시작했다.점점 걷잡을 수 없게 되자, 성연도 빨갛게 뺨이 달아올랐지만 무진의 손을 잡고 막았다.“지금은 회사라서 안 돼요.”성연이 불편한 듯한 모습을 보이자, 계속해서 진도를 나가려던 무진은 마음속의 욕망을 억지로 눌러야 했다.그리고 성연을 품에 꼭 안았다.한참이 지난 뒤에야 무진의 마음이 비로소 진정되었다.성연을 껴안은 채 소파에 앉았다.그리고 나서야 성연에게 그래함의 일에 대해 물었다.“어떻게 됐어?”성연은 그래함과 유채연의 일을 간단하게 말해주었다.그전의 우여곡절들은 많이 생략했지만, 그래도 핵심적인 내용들은 거의 다 말했다.이야기를 듣고 난 무진은 큰 충격을 받았다.‘그래함이 그렇게 다정한 남자인 줄 몰랐네.’‘그래함의 권력과 지위라면 어떤 여자인들 얻지 못하겠어?’‘줄곧 고향의 연인만을 애타게 기다렸다니.’무진의 생각이 지나치다고 탓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 바로 그렇기 때문이다.‘그러나 내가 성연과 함께 있을 때 성연의 신분도 그리 대단하지 않았어.’‘감정이란 건 아무것도 보지 않고 오로지 느낌만 따라야 해.’무진은 유채연이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좀 궁금해졌다.‘그래함 같은 대단한 남자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라니.’“무진 씨도 믿기지 않지요?” 성연이 고개를 들면서 물었다.“그래.” 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확실히 좀 믿기 힘든 일이야.’“이전에 사형이 채연 언니를 찾고 싶다는 말을 했을 때, 나는 더 믿을 수가 없었어요. 나중에 사형이 예전에 채연 언니가 자신에게 준 증표를 여전히 가지고 있었고, 채연 언니도 여전히 가지고 있다는 걸
북성에 도착하자 그래함은 유채연을 데리고 최고급 호텔을 체크인했다.뒤에서 그들의 다정다감한 모습을 보고 있던 성연은 자기도 모르게 무진이 생각났다.‘나도도 약혼녀가 있는 사람이야. 뭐.’‘요 며칠 사형과 채연 언니가 애정을 과시하는 것만 바라보았지.’유채연과 그래함도 성연을 잊지 않았다.유채연이 물었다.“성연아, 너 우선 우리 호텔로 가서 쉬지 않을래? 차를 그렇게 오래 탔는데 힘들었잖아.”유채연은 멀미가 나서 창백한 표정으로 그래함의 품에 기대고 있었다.“됐어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두 사람의 세계를 방해할 수 있겠어요? 저는 먼저 갈게요.” 성연은 두 사람에게 손을 흔들며 혼자 차를 타고 떠났다.유채연은 성연이 떠나는 방향을 보면서 걱정했다.“성연이 걔가 갈 곳이 있어? 시간도 늦었는데 여자가 밖에 있으면 얼마나 위험해.”“특히 이런 대도시에서는.”그래함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채연아, 성연이는 이곳에 대해서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너 잊었어? 전에 내가 너한테 말했잖아. 성연이에게는 아주 대단한 약혼자가 있다는 거 말이야.”유채연은 알 듯 모를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성연에 대해서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그래서 약혼자를 찾아간 거야?”“그래, 걱정하지 마. 지금 멀미하지? 힘들면 내가 밖에 나가서 약 좀 사올까?” 그래함은 유채연을 다정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유채연은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좀 자면 돼.”“그럼 그렇게 해.” 그래함도 마음 놓고 유채연을 혼자 둘 수 없었다.‘처음 이곳에 왔는데, 내가 채연이 곁에 없다면 채연이가 불안해할 가능성이 높아.’한편 성연은 바로 무진을 찾아갔다.그러나 자신이 돌아온 걸로 무진에게 서프라이즈 선물을 주려고 무진에게는 말하지 않았다.성연은 예전에 지문을 입력해 놓아서, 보고 없이 바로 최고층까지 갈 수 있었다.요 며칠 동안 무진을 만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이제 곧 본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좀 설레는 듯했다.성연이 집무실 입구에 도
외삼촌은 다가가서 무릎을 꿇은 두 사람을 부축했다.여전히 울고 있던 유채연이 일어나자, 그래함이 어깨를 감싸고 위로했다.“얼른 가거라.” 외삼촌도 울먹이는 목소리였고, 두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그래함은 외삼촌을 한 번 본 뒤 유채연이 차에 타도록 부축해 주었다.유채연은 외삼촌을 애틋하게 바라보았다.성연이 그들의 뒤를 따랐다.외삼촌이 몸을 돌릴 때 눈물이 땅에 떨어지는 걸 봤지만, 유채연이 걱정할까 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성연이 옆에서 따라서 소리쳤다.“외삼촌, 제가 채연 언니하고 자주 돌아올 게요. 저는 외삼촌 가게 하드가 좋아요.”그제야 서둘러 눈물을 닦은 외삼촌이 몸을 돌려서 말했다. “그래, 너희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마.”차가 천천히 시동을 걸자, 창밖의 장면도 빠르게 바뀌었다.차에 앉아서도 유채연은 여전히 훌쩍거렸다.그래함은 유채연을 꼭 안고 자신의 품에 기대게 했다.“채연아, 외삼촌이 보고싶으면 앞으로 자주 돌아와서 볼 수 있어. 내가 같이 올게.”“정말?” 그래함을 바라보는 유채연의 눈은 마치 토끼의 눈처럼 빨갛게 달아올랐다.“물론이지, 네가 하고 싶은 일이라면 내가 다 해 줄게.” 예전에는 그래함도 뭘 해도 혼자였다.하지만 이제 유채연이 있으니 모두 달라졌다.그래함은 틀림없이 유채연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것이다.어쩌면 유채연을 위해 정말 국내로 이주할 수도.“그런데 내가 없는데 외삼촌은 어떡하지? 자기 몸을 잘 추스릴까?” ‘예전에는 집안의 모든 일을 내가 책임졌지.’‘지금 내가 떠났으니 외삼촌은 잘 수습할 수 있을지 몰라.’성연은 조수석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성연은 일부러 그 자리에 앉아서 유채연과 그래함에게 공간을 내주었다.그 말을 듣고 성연이 웃으며 말했다.“채연 언니, 외삼촌은 마음이 그렇게 섬세한 분이니까 잘 지낼 수 있을 거예요.”떠날 때 그래함은 외삼촌에게 체크카드를 남겨 두었다. 비밀번호도 쪽지에 써 두었다. 그 돈이면 외삼촌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평생 편안하게
이런 유채연의 모습을 보고 외삼촌은 또 한바탕 잔소리를 했다.“정말 재수 없게 징징거리고 있지. 꼴이 그게 뭐야? 나는 상관하지 말고 빨리 가. 나한테 돈도 있고 차도 있으니,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는 말할 것도 없어. 너는 나한테 짐만 될 뿐이야!”유채연은 외삼촌이 어떤 마음인지 알고 있었다.대부분 외삼촌은 그저 입으로만 모질게 굴었을 뿐이다.사실 자신에 대해서도 진심으로 가슴 아프게 생각했다.애초에 집에 그렇게 많은 일이 생기자 친척들마다 모두 양보하면서 피했다.외삼촌만 자신을 받아들이기를 원했다.모두들 유채연이 흉악한 외삼촌을 따라가면 틀림없이 좋지 않을 거라고 여겼다.그러나 그동안 삶의 질이 좀 떨어진 걸 제외하면, 외삼촌은 진심으로 자신을 보호해 주었다.가게에 온 손님 중에 간혹 유채연의 예쁜 모습을 보고 희롱하려고 했지만, 모두 외삼촌에게 두들겨 맞고 쫓겨났다.이전의 여러 일들을 생각하자, 유채연은 외삼촌이 자신에게 그렇게 잘해 준 걸 알게 되었다.유채연이 갑자기 털썩 소리를 내며 무릎을 꿇었다.“외삼촌, 그동안 거둬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옆에서 그 모습을 본 그래함도 유채연을 따라 무릎을 꿇었다.그리고 큰 소리로 말했다.“외숙부님, 채연이의 부모님이 안 계시니 외숙부님이 채연이 아버님이십니다. 그래서 제가 무릎을 꿇고 맹세하겠습니다.”“저희는 곧 결혼하게 되면 반드시 읍내에서 잔치를 하겠습니다. 다른 사람이 채연이를 보고 비웃지 못하게 할 테니, 채연이를 제게 주시면서 안심하셔도 됩니다. 제가 채연이에게 정말 잘 하겠습니다.”남자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존엄성이다.그러나 그래함은 유채연을 위해 외삼촌 앞에 무릎을 꿇었다.이 역시 그래함의 성의를 충분히 드러낸 것이다.두 사람의 감정을 외삼촌은 더욱 눈에 새겨 두었다.‘채연이가 그래함과 함께 있으면서 미소도 눈에 많이 많아졌어.’“너희들 빨리 일어나!” 외삼촌은 유채연에게 아무런 감정도 없는 게 아니었다.입으로는 듣기 싫은 말을 하지면, 개를 길러도 이
이전에 유채연이 입었던 옷은 전부 그래함과 성연이 함께 골라준 옷으로 교체되었다.유채연은 트렁크를 사서 물건을 다 넣었다.곧 떠나야 할 때, 유채연이 외삼촌과 작별인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내가 같이 갈게.” 유채연을 도와 트렁크를 닫고서 그래함이 일어났다.“그래도 나 혼자 갈래...” 유채연은 망설였다.“채연아, 이제는 우리 둘이 같이 있잖아. 외삼촌은 우리 관계의 증인이자 네 유일한 가족이야. 내가 널 데리고 갔다가, 내가 나타나지 않으면 어떻게 할 거야?” 그래함이 유채연의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말했다.요 며칠간 함께 지내면서, 유채연은 자연스럽게 그래함과 더 가까워졌다.잠시 생각하다가 문득 그래함의 말도 일리가 있다고 느꼈다.‘만약 외삼촌이 그래함을 보지 못한다면 아마 마음이 더 괴로울 거야.’“그래, 같이 가자.” 유채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두 사람이 함께 문을 나섰다.나오다가 마침 두 사람을 찾으려던 성연과 마주쳤다.“성연아, 우리 외삼촌 보러 갈 건데, 너도 갈래?” 유채연은 요 며칠 성연과 계속 붙어 있어서, 성연에 대한 감정도 이미 예전처럼 좋았다.어디를 가든지 성연을 데리고 가야 해서, 그래함이 한바탕 질투하기도 했다.“출발하기 전에 외삼촌과 작별인사 하러 가는 거예요?”성연이 물었다.“그래.” 유채연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나도 함께 갈게요.” 눈치 빠른 성연은 유채연의 손을 잡지 않고 뒤에서 따라갔다.‘채연 언니하고 그래함 사형이 나란히 다정하게 가는 모습을 보면, 외삼촌이 좀 안심할 수 있겠지.’유채연과 그래함은 앞에서 함께 걸어갔다.유채연의 마음은 여전히 좀 불안했다.‘예전에 외삼촌이 못마땅했을 때는 여기를 탈출하겠다는 생각도 했지.’그러나 정말로 외삼촌과 작별을 고해야 한다고 생각하자, 유채연은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비록 그다지 내 생각대로 지내지는 못했지만.’‘하지만 예전에는 이곳이 내 유일한 피난처였지.’“걱정 마, 외삼촌은 좋은 분이니까 이해해 주실 거야.”
그 말을 듣자, 유채연은 코가 시큰거리면서 하마터면 울음을 터뜨릴 뻔했다.손에 든 아이스크림을 꽉 쥐었지만 뜬금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부모님이 돌아가신 후로 지금처럼 자신을 아껴주는 사람은 없었다.유채연의 얼굴에 눈물이 가득한 걸 보자, 가볍게 한숨을 쉰 그래함이 휴지로 부드럽게 눈물을 닦아주었다.“왜 그렇게 울기를 좋아해? 앞으로 나하고 있으면서 내가 잘 해줄 테니까 이렇게 울면 안 돼. 네가 눈물을 흘리는 게 안타까워.”그래함의 부드러운 말을 들으면서 유채연의 감정도 점차 가라앉았다.감정이 진정되자 손에 든 아이스크림을 한 입 맛보았다.아주 달았다. 이 달콤함이 유채연의 마음속에 스며들면서 마음을 천천히 따뜻하게 했다.“고마워, 그래함.” 유채연은 코를 훌쩍이며 고맙다는 말을 했다.“내가 너에게 고마워해야지. 그렇게 오래 되었는데도 나를 기다리고 있었잖아. 내가 좀 일찍 너를 찾아왔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래함의 말투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우리는 지금이 좋아.” 유채연은 그래함의 이런 의기소침한 모습을 그냥 지켜볼 수 없었다.“그래, 이제 네가 있으니까 앞으로 우리는 더 좋아질 거야.”그래함이 동의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비록 성연은 어느새 감정이 없는 도구로 전락해버렸다.그러나 계속 뒤를 따라 가면서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성연은 정말 기뻤다.자신도 그런 분위기가 달콤하게 느껴졌다.예전에는 그저 단순하게 그래함 사형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그러나 진정으로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자, 정말 두터운 그래함의 깊은 정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성연은 두 사람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었다. ‘처음에 굳어 있던 두 사람이 점차 풀어질 때까지 이미 정말 잘 지나왔어.’“두 분, 연애하면서 여동생도 잊어버렸지요? 나 너무 배가 고파요. 밥 먹으러 가고 싶어요.” 성연도 방해하고 싶지 않았지만, 가게에서 별로 먹지 않고 이렇게 오래 걸었더니 벌써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날 지경이었다.그 말을 들은 유채연이 바로 뒤돌아서 미
“언니, 빨리 나와서 사형에게 보여주세요.” 성연이 바로 유채연을 데리고 나갔다.전혀 준비되지 않은 채, 유채연은 바로 그래함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그래함은 지금도 유채연이 겉모습만 꾸민 여자들에게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고 여겼다.약간 수줍어하는 그 모습은 언제나 그래함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그래함의 눈에는 놀라움이 가득한 채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유채연도 그래함이 자신의 이런 모습을 보는 걸 정말 기대하고 있었다.그런데 한참 기다렸는데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고개를 들어 그래함의 눈을 마주한 유채연이 어색하게 치마자락을 잡고 말했다.“어때? 보기 싫어?”“예뻐. 내가 홀딱 반할 정도야.” 그래함의 목소리는 가볍고 부드러웠다.유채연은 입술을 오므린 채 감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화장을 마친 뒤 그들은 계속 쇼핑을 했다.성연은 두 사람이 함께 있을 수 있게 자리를 양보했다.그래함이 바로 앞으로 가서 유채연의 손을 잡았다.유채연이 손을 빼려고 했지만, 그래함은 꼭 쥔 채 유채연이 벗어날 기회를 전혀 주지 않았다.“성연이도 여기 있잖아.” 유채연은 20여 년을 살면서 그래함 이 한 사람만 좋아했다.평소에도 남자와 스킨십을 해본 적도 없었다.지금 그래함과 함께 걸으면서 유채연은 불편한 기색이 가득했다.그러나 그래함의 따뜻한 손이 자신을 감싸고 있는 것을 느끼자 마음은 달콤했다.“신경 쓸 필요 없어.”그래함이 바로 말했다.두 사람 뒤에 있던 성연은 하마터면 그래함을 흘겨볼 뻔했다.‘이건 날 훼방꾼으로 여기는 거야.’유채연은 감히 고개를 돌려 성연을 보지 못하고, 손을 잡힌 채 얼굴만 빨개졌다.그래함은 유채연이 자신에게서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자 불만스러웠다.“채연아, 팔장을 낄래.”“아니, 손을 잡았잖아.” 유채연은 입술을 깨물며 수줍어했다.“우리 연인 사이잖아?” 그래함이 유채연의 귀에 대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열기가 귓가를 스쳐 지나가자 유채연은 더욱 부끄러워했다.‘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는
외삼촌에게 차를 주자, 외삼촌은 드라이브를 하면서 이 차의 성능을 시험해 보겠다고 말했다.그래함이 자신을 속이는 건지 보려는 것이다.외삼촌이 차를 몰고 가자 성연과 그래함, 유채연만 남게 되었다.오늘 손님이 오기 때문에 가게는 문을 열지 않았다.‘자세히 헤아려 보니 외삼촌은 정말 디테일한 사람이야.’“채연 언니, 우리 쇼핑하러 가요.” 성연이 다가가서 유채연의 팔장을 꼈다.“그래.” 유채연은 성연이 쇼핑을 하려는 걸로 생각하고 함께 갔다.성연이 유채연을 데리고 온 곳은 모두 고급 쇼핑몰이었다.유채연도 옷을 좀 사고 싶었지만, 가격을 보고는 그런 생각이 쏙 들어갔다.성연은 흰색 원피스를 유채연의 몸에 대고 비교해 보았다.“채연 언니, 이 원피스가 잘 어울려요. 한번 입어 보세요.”“난 됐어. 네가 맘에 들면 사.” 방금 유채연은 가격표를 언뜻 봤다.‘너무 엄청난 가격이야.’‘원피스 한 벌에 어떻게 가격이 이렇게 비쌀 수 있는지 정말 상상할 수가 없어.’‘정말 터무니없는 가격이야!’“언니, 이 치마가 정말 잘 어울려요. 한번 입어보고 싶지 않아요?” 성연은 눈을 깜빡이며 유채연을 바라보았다.눈앞의 원피스를 보고 유채연은 망설였다.“채연아, 한번 입어 봐.” 그래함도 유채연이 이 옷으로 갈아입은 모습을 기대하고 있었다.유채연은 자신의 그런 모습이 기대되면서도 머뭇거렸다.마침내 결정을 내린 뒤에 옷을 가지고 탈의실로 들어갔다.‘확실히 잘 어울리네.’유채연은 한번 입어 본 걸로 만족했고 사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성연과 그래함이 번갈아 설득해서 유채연도 결국 옷을 하겠다고 했다.두 사람은 또 유채연에게 많은 옷을 사주었다.처음에는 유채연도 두 사람이 돈을 쓰는 걸 걱정했다.그러나 두 사람의 좋아하는 모습을 보자, 유채연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나중에는 돈을 쓰는 것에도 무감각해졌다.예쁜 옷을 많이 산 뒤 그래함이 뒤에서 가방을 들어주었다.그래함의 두 손으로 겨우 들 수 있을 정도였다.성연은 또 유채연을 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