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지연은 송아연의 다짐에 만족했다.원래 썩 똑똑하지는 않은 송아연이지만, 자신의 조련을 거친다면 머리가 꽤 잘 돌아갈 것이다.그러면 차후 송아연과 협력하게 됐을 때 자신이 그리 많이 신경 쓸 필요가 없게 될 터.소지연이 계속 말했다.“그리고 내가 송아연 씨를 위해 다른 사람을 더 안배해 두었어요. 바로 송성연을 데리고 있을 교수죠. 송아연 씨는 그 교수와 비밀리에 연락해서 같이 송성연의 명예를 더럽힐 방법을 찾아요.”송아연은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소지연 씨, 나는 절대 당신을 실망시키지 않을 겁니다!”소아연의 말을 듣고 있던 소지연의 눈이 갑자기 매섭게 변했다.“나를 실망시키지 않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해내야 해요!”송아연은 깜짝 놀라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최선을 다하겠어요. 소지연 씨.”소지연은 물을 한 모금 마시며 분노를 가라앉혔다.“나는 송아연 씨에게 내 모든 희망을 걸었어요. 그러니 절대 나를 실망시키지 마세요.”송성연과 강무진이 함께 있는 다정한 모습을 더 이상 참고 볼 수가 없었다.그건 처음부터 자신의 것이어야 했다. 송성연이 감히 가당키나 하단 말인가?“소지연 씨, 나도 송성연을 증오해요. 화목하고 단란했던 우리 가정을 이렇게 만든 사람이 송성연이에요. 나도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송아연은 소지연이 믿지 못할까 봐 자신의 결심을 재차 드러냈다.“송아연 씨 각오가 그렇게 단단하니 아주 좋군요. 송성연은 만만한 인물이 아닙니다. 송성연을 상대할 때는 반드시 조심해야 해요. 절대 송성연에게 끌려가면 안됩니다.”안심이 안된 소지연이 연신 당부했다.송아연이 송성연과 상대한 과정을 조사해 보니, 그야말로 참혹했다.송아연이 머리가 좀 있었더라면 그렇게 되지 않았을 터.“알았어요, 이번에는 무조건 조심할게요.” 송아연이 고개를 끄덕였다.이전에 자신은 송성연을 너무 얕잡아보다가 참혹하게 지고 말았다.송성연을 그저 시골에서 올라온 촌뜨기로만 보았기 때문.송성연에게 그런 수단이 있으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다음날, 성연과 무진은 즉시 입시관리처에 가서 블레이크 교수의 행위를 고발했다.성연은 학교의 인장이 찍힌 자신의 입학통지서를 꺼내 놓았다. 블레이크 교수만큼 직위가 높지 않았던 입시관리처 담당자는 어쩔 수 없이 두루뭉실하게 넘기기 위해 성연에게 웃으며 말했다.“송성연 학우, 우리가 조사해 보겠습니다. 만약 송성연 학우의 말이 사실이라면 학교 쪽에서 합당한 처결을 내릴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학교는 언제나 공평하고 공정함을 추구합니다.”성연은 담당자가 대충 얼버무리려 한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러나 학교조차 이러니 자신이 다른 사람을 찾아간다 한들 별 소용이 없을 터.성연은 속으로 화가 났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굳은 얼굴로 한쪽에 서서 입시관리처 담당자를 얼음같이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성연의 주시에 담당자는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재차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송성연 학우, 우리는 역사 깊은 대학입니다. 교수진도 학계에서 명성이 아주 높은 분들입니다. 당신이 말한 일에는 분명히 무슨 오해가 있을 테니 그 오해만 푼다면 문제없을 겁니다.”성연의 입꼬리가 비스듬히 올라갔으며 눈에는 조롱기가 가득했다.“나도 오해였으면 좋겠네요.”그러나 블레이크 교수는 한 마디 해명도 듣지 않은 채 자신에게 사형 선고를 내렸다. 성연은 도무지 그 분노를 삼킬 수가 없었다.담당자는 성연의 말에 숨겨진 뜻을 알아듣지 못한 듯이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아무래도 송성연 학우의 사상의식이 아주 높은 것 같군요. 우리 대학에 입학할 수 있다는 것은 모두 아주 우수한 학생이라는 뜻이죠. 그러니 나는 송성연 학우를 믿습니다. 다만 블레이크 교수가 다소 엄격한 분이다 보니 이렇게 된 것 같습니다. 송성연 학우가 블레이크 교수를 오해한 듯하군요.”성연은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학교에서 교수의 명예를 보호하기 위해 이런 말을 한다는 건 성연도 이해할 수 있었다.결국 이런 상황이 되자 성연도 달리 할 말이 없었다.“그럼 저는 학교의 조사 결과를 기다
다시 블레이크 교수를 만나 입학 수속에 필요한 동의서를 받았다. 블레이크 교수는 성연에게 그다지 좋은 표정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동의를 해주었다.곧이어 학교에서는 성연에게 기숙사 방을 배정해 주었다.호텔로 돌아온 성연이 대략 짐을 정리하자 무진이 성연을 학교로 데려다주었다.성연의 짐을 들고 성연의 뒤를 따라 걸었다.교문 앞에서 남자 선배와 여자 선배가 신입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성연을 본 선배 하나가 친절하게 다가왔다. 성연을 보더니 눈을 빛내며 물었다.“신입생 맞지? 너 정말 예쁘구나, 마치 요정 같애.”“칭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성연의 입술이 뻣뻣하게 굳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칭찬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이처럼 과감하고 개방적인 서양인들의 표현 방식에 최대한 빨리 적응할 필요를 느꼈다.“너희들 기숙사에 묵는 거지? 선배가 데려다줄게.”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여자 선배가 자신의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호의적인 모습을 보였다.“고맙습니다. 선배님.” 호의를 보이는 사람에게는 성연도 호의적인 모습을 보였다.성연은 그래도 성격이 아주 좋은 편이다. 자신의 한계선만 건드리지 않는다면 함께 지내기 좋은 사람.“후배님은 어디서 왔을까?” 여자 선배가 뒷짐을 진 채 앞서가다가 갑자기 홱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우리는 A국 사람이에요. A국의 북성 시에서 왔어요.”성연이 자신의 출신을 알려주었다.“아, A국. 나 거기 알아. 너희 나라엔 흥미로운 게 많더라. 언젠가 기회가 되면 꼭 가보고 싶어.” 흥미진진한 모습을 보이는 여자선배의 두 눈에는 A국에 대한 관심이 가득했다.“물론이죠. 선배가 관심이 있다면 놀러 가면 돼죠.”성연이 웃으며 말했다.“응, 꼭 가볼 거야.” 여자선배가 신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런데 갑자기 성연의 뒤에서 따라오던 무진을 힐끗 쳐다본 여자선배가 성연을 한쪽으로 끌고 가서 조용히 물었다.“그런데 저기 네 뒤의 남자는 오빠야?”성연이 무진을 돌아보며 고개를 저었다.“오빠가 아니라...내
애초에 송아연을 보고 싶지 않았던 성연은 송아연의 괴상한 음성을 듣자 구역질이 날 것처럼 기분이 나빴다.화가 난 성연이 송아연에게 쏘아붙였다.“송아연, 함부로 가족인 척하지 마.”송아연은 성격 좋은 사람처럼 웃었다.“언니, 설마 신분이 높아졌다고 나 같은 가난한 여동생 모르는 척하는 거야?”성연은 송아연을 노려보며 따졌다.“나는 너 같이 여기서 이 말하고 저기서 저 말하는 동생 둔 적 없어. 다시 한번 허튼소리를 하면 나도 입 다물고 있지 않아. 자랑스럽지 못한 네 과거 들통나고 싶지 않으면 조심해.”성연의 말에 안색이 변한 송아연은 한동안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자신의 낙태 같은 일들은 남자친구 잭은 알지 못한다.송아연은 여태까지 남자친구 앞에서 순수한 이미지를 가장해 왔다. 그러니 만약 성연이 자신의 과거를 폭로한다면 잭과의 관계도 끝장나리라.송아연은 주먹을 꽉 움켜쥔 채 성연을 매섭게 노려보았다.그런데 잭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무진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음, 왠지 낯이 익은데?’송아연이 감히 입을 열지 못하는 것을 본 성연은 송아연이 자신의 과거를 잭에게 말하지 않았음을 알아차렸다.아마 이게 송아연의 약점일 것이다. 그러나 송아연이 제 주제를 알고 조용히 지낸다면 자신도 굳이 이런 일로 송아연을 상대할 생각은 없다.성연은 턱을 살짝 치켜 든 채 물었다.“송아연, 네가 왜 여기에 있어? 네 수준으로는 이 학교에 들어올 수도 없는데!”이전이라면 성연이 이렇게 말하면 송아연은 틀림없이 화를 냈을 것이다.그런데 지금 송아연은 화를 내기는커녕 웃으면서 잭의 팔을 잡아당기며 과시성이 다분한 어투로 말했다.“그건 물론 내 남자친구 잭이 도와줬지. 그저 대학 진학에 불과한 걸. 글로벌하게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잭에게 대학 진학 정도는 식은 죽 먹기야.”송아연에 대해 의심을 품고 있던 성연은 이 잭이라는 남자가 진짜 송아연의 남자친구일 줄은 몰랐다.‘송아연, 정말 미쳤나 봐. 그 사이 남자가 또 바꼈어!’강진성에게 일이 생긴지
성연과 송아연이 티격태격하는 동안, 무진은 결국 잭을 쳐다보며 기억을 해냈다. 프랑스 대표 명품 브랜드를 소유한 가문의 후계자!절대 만만한 인물이 아니다.성연은 어쨌든 앞으로 학교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무진 자신도 회사 업무를 처리해서 언제까지 성연만 주시할 수도 없다.아무래도 유럽에서 자신의 세력은 약할 수밖에 없다. 만약 누군가 성연을 노렸을 때 자신이 제때 달려오지 못할까 걱정이다.피할 수만 있다면 최대한 피하는 게 좋다.아주 짧은 시간 동안 무진은 머리 속에서 온갖 이해득실을 따졌다.성연을 자신에게 가까이 끌어당긴 무진이 송아연에게 경고했다.“더 이상 성연에게 접근하지 마. 만약 무슨 음모라도 꾸민다면 내가 반드시 너를 가만두지 않을 거다!”말을 끝낸 무진이 성연을 데리고 그 자리를 떠났다.방금 성연과 이야기할 때 송아연은 자신의 모국어 A국어를 사용했다.그래서 잭은 자신의 이름 외에 다른 말들은 알아듣지 못했다.성연과 무진이 떠난 후, 잭이 송아연에게 물었다.“정말 네 언니가 맞아? 왜 너와 사이가 안 좋아 보이는 거지?”송아연은 잭 앞에서 일부러 연약한 척했다.“언니와 난 이복자매예요. 언니는 나에게 아버지의 사랑을 빼앗겼다는 생각에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요.”잭이 자신을 가련하게 생각하도록 송아연은 일부러 사실을 왜곡해서 말했다.역시 송아연의 설명을 들은 잭은 그녀를 대신해 마음이 아팠다.“언니라는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거야? 부모님의 일을 네가 어떻게 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닌데 말이야.”“하지만, 난 정말 언니를 좋아하는데 지금 언니한테 미움을 받으니 너무 마음이 아파요.”괴로운 척 연기하며 완전히 잭의 품으로 쓰러지는 송아연.“괜찮아, 괜찮아. 너에겐 내가 있잖아, 괜찮아.” 잭은 송아연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위로했다.무진을 따라 자신의 기숙사 방으로 들어간 송성연. 2인1실의 방은 꽤 널찍한 편으로 각종 가구와 가전들이 모두 갖추어져 있었다.기숙사가 아니라 원룸 아파트처럼 보였다.
무진은 성연과 함께 침구와 옷들을 모두 정리하고 성연을 데리고 기숙사를 나왔다.성연은 무진과 함께 학교 안을 돌아다니며 구경했다.선남선녀 두 사람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으며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성연은 무진의 팔짱을 낀 채 다정히 학교 정원에 난 길을 걸었다.길을 따라 심어진 아름드리 오동나무들로 인해 녹음이 우거지며 따가운 햇빛을 가려 주었다.캠퍼스 풍경이 정말 아름다웠다.신선한 공기도 말할 것 없었다.성연과 무진은 학교의 상징인 건물들을 둘러보았다.그렇게 구경하면서 교문까지 오게 되었다.“배고프지?” 무진이 성연 쪽으로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그저 시간이 영원히 이대로 멈출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성연과 함께 하면 언제나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함을 느낀다.무진은 이런 느낌이 너무 좋았다.그러나 지금의 현실에서는 허락되지 않았다.“괜찮아요. 그런데 내가 여행 가이드북에서 학교 근처에 먹자골목이 있는 걸 봤어요. 우리 거기 가봐요.” 성연은 여행 가이드북에서 본 골목에 대해 흥미를 느꼈다.“그러지.” 무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성연의 뒤를 따랐다.두 사람은 네비게이션으로 금세 먹자골목의 위치를 찾았다.학교에서 거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는 먹자골목에 이르니 맛있는 냄새들이 후각을 사로잡았다.곳곳에 유럽 특색의 간식들이 쌓여 있었다.노점을 지날 때마다 성연은 모두 사서 맛보려 했다.어떤 것들은 요상한 맛이었고, 또 어떤 것들은 입에 잘 맞았다. 하지만 성연이 먹기 힘들었던 음식들마다 많은 현지인들이 노점 앞에서 긴 줄을 서 있었다.그런 걸 보면 지역마다의 식습관이 참 다른 것 같았다.먹자골목의 음식들을 모두 맛본 성연은 손에 음료수 잔을 든 채 부른 배를 두드렸다.“어땠어?” 무진이 애정이 가득한 시선으로 성연을 바라보며 물었다.“진짜 맛있어요.” 하늘을 쳐다보니 어느덧 저녁이 되어 있었다.무진이 오늘 밤 비행기표를 예약했음을 기억한 성연.검지로 무진의 손가락을 잡아 건 채 물었
도로 바로 앞 구간은 인가가 드물었다.소지연은 즉시 기사를 시켜 성연이 탄 택시를 들이박았다.막 휴대전화를 꺼내 메시지를 확인하던 성연은 강한 충격에 몸이 앞으로 튕겨 나갔다.그러나 안전벨트가 성연을 다시 제자리로 당겼다.성연은 입술을 오물거리며 뒤에서 들이박은 승용차를 돌아보았다.안타깝게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승용차에는 번호판조차 없었다.계획하고 부딪힌 것이 분명해 보였다. 자신이 탄 차를 겨냥해서.차 속도를 늦추며 택시기사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아가씨, 괜찮아요?”성연이 고개를 옆으로 저으며 물었다.“뒤에서 박은 차랑 원한 관계가 있어요?”막 질문을 하던 순간, 성연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운전기사가 어떻게 자신을 사지로 몰아넣을 생각을 하겠는가?‘원수라, 뒤 차량에 탄 사람은 날 노리고 박았을 가능성이 높아.’과연, 성연의 질문을 들은 운전기사가 즉시 대답했다.“아가씨, 이 나이 되도록 오랜 세월 운전을 하면서 늘 성실하게 내 본분을 다했어요. 그런데 어떻게 나한테 원한을 품은 사람이 있겠습니까?”운전기사의 말도 성연의 생각을 뒷받침했다.성연이 가만히 다시 생각할 때, 뒤의 차량이 또다시 들이박았다.성연은 어쩔 수 없이 앞좌석의 등받이를 끌어안을 수밖에 없었다.바로 앞은 코너를 도는 구간이라 택시기사는 필사적으로 운전대를 잡았다.이어 바퀴에서 귀를 찢는 듯한 소리가 났다.전면에 구불구불한 절벽길이 나타났다.눈앞의 도로 상황을 보면서 성연은 가슴이 조마조마했다.다행히 택시기사가 사력을 다해 위기를 넘기며 절벽으로 차를 떨어뜨리지 않았다.성연도 따라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러나 성연은 이것으로 끝난 것이 아님을 알았다.뒤에서 쫓아오고 있는 사람은 자신을 죽이지 않는 한 그만둘 것 같지 않았다.성연은 과감하게 휴대전화를 꺼내 경찰에 신고했다.차를 운전하고 있는 택시기사는 무고한 사람이다.성연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자신 혼자라면 탈출할 수도 있겠지만 택시기사만 내버려둔 채 내 몰라라 할 수는 없
성연은 이틀 내내 수업을 들었다.요 며칠은 오히려 잠잠하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이날 수업을 마치고 기숙사로 가던 성연의 앞을 누군가 가로막았다.고개를 든 성연의 두 눈에 깜짝 놀란 빛이 떠올랐다.“미스 샤넬?”성연을 본 미스 샤넬의 표정은 썩 좋은 편이 아니었다. 아예 표정이 없는 듯한 모습이다.“시간 있어요?”“무슨 일이에요?” 성연은 미스 샤넬이 좀 이상하게 여겨졌다.“학교 근처 커피숍에 가서 좀 앉아요. 내가 일이 좀 있어서 성연 씨를 찾아왔어요.”미스 샤넬은 말을 하면서 성연의 동의를 기다리지도 않은 채 바로 가는 허리를 흔들며 앞으로 걸어갔다.성연의 얼굴에 벙찐 표정이 떠올랐지만 그래도 미스 샤넬을 따라갔다.두 사람은 고급스러운 커피숍에 들어갔다. 실내 장식이 아주 우아하고 세련된 분위기를 자아냈다.미스 샤넬이 자리에 앉자 성연은 그 맞은편에 앉았다.종업원이 즉시 메뉴판을 들고 와서 주문을 받았다. “두 분, 뭘로 주문하시겠습니까?”미스 샤넬은 메뉴판도 보지 않은 채 바로 메뉴 몇 개를 주문했다.성연이 메뉴판을 슬쩍 쳐다보니 미스 샤넬이 주문한 것은 가게에서 가장 비싼 메뉴였다.그러나 무슨 의미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주문서를 작성한 종업원이 미소를 지은 채 미스 샤넬과 성연에게 말했다.“고객님, 잠시 기다리시면 바로 준비해 드리겠습니다.”미스 샤넬이 손을 휘이 젓자 종업원은 곧바로 물러났다.주문을 끝낸 후, 미스 샤넬은 성연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원래 성연이 마음에 안 든 미스 샤넬은 성연을 이곳에 데려와서 자신의 신분을 확실하게 알려 줄 생각이었다.그런데 성연에게서는 기죽은 듯한 기색이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자신의 계획이 틀어진 것을 느낀 미스 샤넬은 눈살을 찌푸렸다.미스 샤넬의 심중 계획을 몰랐던 성연은 그저 미스 샤넬이 좀 이상하게 보였다.“미스 샤넬, 저한테 볼일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요? 무슨 일인가요?”성연은 미스 샤넬이 사형 목현수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눈치챘다.그래서 사형 목현수를
예민주는 곧바로 기분이 나빠졌다.원래 길을 잃은 두 아이가 펑펑 울게 만든 다음에, 무진에게 아이들이 그다지 순하지 않다는 걸 보여줄 생각이었다.그러나 예상 외로 아이들은 영리한 데다가 일찌감치 철도 들었다. 졸지도 떠들지도 않은 데다가 얌전하게 장난감을 가지고 놀 줄 어떻게 알 수 있을까!무진은 오후에 회의가 있어서 점심 휴식 시간이 제한적이었다.어떻게 해야 아이들을 여기에 좀 더 머물 수 있게 할 수 있을지, 예민주도 아직 좋은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두 아이가 이렇게 영리한 핑계를 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그들 부자 세 사람만 지낼 기회를 절대 줄 수가 없었기에.결국 세 사람이 대표 집무실에 함께 있게 되었다.“어떻게 된 거야? 이건 그렇게 둘러댈 일이 아니야.”“너 계속 큰소리로 말하지 마! 이렇게 시끄러운 것도 몰라?”이제 세 사람은 이미 오후 내내 함께 있게 되었다. 특히 지금 무진은 회의를 하러 갔기에, 대표실에는 그들 세 사람밖에 없었다. 예민주는 이미 싫어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나른한 자태로 소파에 기댄 예민주의 얼굴에는 온통 경멸하는 표정만 가득했다.집에서도 이렇게 엄하게 꾸지람을 들은 적이 없었기에, 사진은 정말 억울해서 입을 열었다가 다시 예민주에게 말려들곤 했다.사진이 낮은 소리로 울먹이면서 말했다.“그런데 아줌마, 우리는 그냥 게임을 하고 있었어요.”예민주는 이제 숨기지 않고 냉담한 목소리로 바로 호통을 쳤다. “조용히 해! 아무도 너희들 응석을 받아주지 않아!”예민주의 말투는 아주 야박해서 두 아이가 감당할 수 있을지도 전혀 꺼리지 않았다.역시나 예민주의 말이 막 떨어지자, 사진은 이미 엉엉 울기 시작했다.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가뜩이나 초롱초롱한 사진의 두 눈은 지금 완전히 눈물에 젖은 가련한 모습이었다.사무는 평소 집에서는 여동생을 싫어하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사실은 몹시 마음이 아팠다.한 손으로 여동생을 가볍게 안고 달래면서 말했다.“괜찮아, 괜찮아. 좀 있다가 아
“예민주가 무슨 일인들 못하겠어?” 성연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차갑게 내뱉었다. 예민주의 모습을 떠올리자, 한바탕 구역질이 났다.클래식한 파텍필립 손목시계를 힐끗 보고서, 다음 순간 성연은 이미 성큼성큼 방문을 나섰다.“빨리 안 따라오고 뭐 해!” 문 앞에 도착한 성연이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는 서한기를 보면서 소리쳤다.10여 분 후, WS그룹 1층.두 손으로 운전대를 꼭 잡은 채, 성연은 아주 멋진 드리프트 솜씨로 차를 건물 입구에 세웠다.주차 도우미 직원과는 불과 1미터도 채 안 되는 거리만 남았기에, 직원은 이미 쓰러질 지경이었다.“무즌 주차를 이렇게 해요?” 이렇게 거친 주차 방식을 보자, 직원은 마음속으로 화가 났다.무의식적으로 차 안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면서, 한바탕 퍼부으려고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운전석의 차문이 열리고 성연이 차에서 내렸다.자신에게 다가온 직원의 눈길을 마주하고서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보았다.한바탕 퍼부으려던 직원은 성연의 깊은 눈빛을 마주하자 결국 말문이 막혔다.“차는 주차장으로 옮기지 말고 여기에 그래도 놔 둬요! 만약 내가 돌아왔을 때 차가 다른 곳에 있다면, 당신은 이 일을 계속할 수 없을 겁니다!”“하지만 아가씨, 이건 규정에 맞지 않습니다.”성연은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거리낌 없이 말했다.“나를 믿어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말이 끝나자, 성연은 대답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안으로 걸어갔다. 마치 뒤에 천군만마가 있는 것처럼 당당하고 기세 등등한 걸음걸이였다.성연의 곁에는 아무도 다가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1층의 안내 데스크.“대표님은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데스크의 여직원은 계속 그 자리에 있었기에, 방금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두 한눈에 볼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당황스러운 마음을 억누른 채 최선을 다해 응대할 수밖에 없었다.“약속을 하셨습니까?”성연은 입술을 오므린 채 가볍게 웃었다.“대표님은 어디 계세요?”“죄송합니다만, 대표
‘그 여자는 분명히 그 다른 쪽이라고 했어. 즉, 그 여자가 알려준 건 잘못된 방향이었어.’‘만약 그 여자가 방향을 몰랐다면, 위치를 말하지 않았을 거야. 그러나 그 여자는 그렇게 자신있게 위치를 말했어.’‘그건 자신이 있다는 말이야!’이렇게 생각하자, 예민주에 대한 사무의 인상은 더욱 좋지 않았다.다음 순간, 턱을 살짝 든 사무가 두 여자를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제 여동생이 아직 저쪽에 있어요. 잠깐만요, 제가 가서 여동생을 데리고 올게요.”여동생이 있다는 말을 듣자 좀 놀랐지만, 소년이 돌아서는 걸 보자 그제서야 비로소 대답했다.“아, 여동생! 그래, 그래.”화장실에 간 후, 사무와 사진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 못된 여자가 혹시 함정이라도 파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기에.하지만 아버지가 아직 거기에 있다는 걸 떠올리자,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 한다는 첫 교훈도 얻게 되었다. 이 놀이는 오후 내내 계속되었다.한편 다른 한쪽. 시재 백화점에 갔다가 별장으로 돌아온 성연은 양 손에 큰 봉투 두 개를 들고 있었다. 그 안에는 온갖 장난감이 가득했다.이것들은 모두 성연이 업무를 마친 뒤에 특별히 아이들을 위해 고른 장난감이다. ‘요 며칠 동안 정말 너무 바빴어. 집에 돌아오면 이미 늦은 밤이거나, 좀 일찍 집에 돌아와도 저녁을 먹고 다시 일하느라 정신이 없었지.’성연은 여전히 아이들에게 빚을 진 듯한 느낌이었다.집을 열자 거실은 조용했다. 위층에서도 별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우리 사진이, 사무? 엄마가 돌아왔어!”눈살을 살짝 찌푸리면서 성연이 말했지만, 아이들의 열정적인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사진아? 사무야? 너희들 집에 있니?”“사무야?”아래층에서 계속 몇 번이나 소리쳐도 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이렇게 큰 집에 성연 자신의 목소리만 울릴 뿐.“보스, 아이들은 지금 집에 없습니다.”이때 서한기가 부랴부랴 달려왔다.“집에 없다니?” 성연이 눈썹을 바짝 세웠다. 순간 마음속에
“그 여자는 이전에 엄마하고 알고 지냈던 것 같아. 다만 아직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모르겠어.”“그럼 이따가 우리 어떡하지?” 사진이 약간 지친 듯한 기색으로 말했다.오전 내내 이곳을 왔다갔다했으니 아이에게는 에너지 소모가 컸다.그리고 방금 위층으로 올라갈 때, 아이들은 여전히 아주 자신있게 서한기보고 먼저 가라고 했다. 그때는 자신감이 가득했지만 지금은 ‘후회막심’이다.‘지금 아직 한기 아저씨가 있다면. 바로 집에 가서 편하게 누워서 쉴 텐데.’“일단은 우리 계획대로 그 여자한테 엄마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마. 우리가 아빠를 찾으러 온 건 그 여자하고 상관이 없어.”원래 신중한 사무지만, 지금 사무의 말은 오빠라는 사무의 입장과 아주 딱 맞게 진지했다.두 아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방금 전에 화장실에 가겠다고 한 건 핑계였지만, 막상 바깥에 나오자 화장실에 가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한참을 가도 식당 창문이나 작은 방은 곳곳에 있는데, 예민주가 말한 화장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그 여자가 우리를 속인 건 아니겠지?”억울한 듯이 분홍색 입술을 삐죽 내민 채 사진은 움직이기도 귀찮았다.여동생의 이런 모습을 보자, 사무는 그 자리에 선 채 눈을 반짝이며 한 바퀴 둘러보았다.“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딴 데 가지 말고. 알았지?”말을 마친 사무는 왔던 길을 다시 달려갔다.“오늘 가지는 좀 맛이 없어.”“그래도 괜찮은데. 먹기 싫으면 나한테 줘.”사무는 식사 중이던 두 아가씨의 앞으로 갔다.“누나, 실례합니다. 여기 화장실이 어디에 있어요?”목소리는 여리지만 태도는 아주 공손했다.밥을 먹고 있던 두 아가씨는 그 말을 듣자 먹던 동작을 멈췄다. 사무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갑자기 눈빛을 반짝였다.‘어디서 이렇게 귀여운 아이가 온 거야?’ ‘뚜렷한 이목구비에 심플한 검은색 스웨터만 입었는데도 잘 어울리는 걸.’‘얼굴의 통통한 젖살이 큐티 작살인데!’‘그야말로 너무나 귀여운 아이야!’사무는
두 아이를 보면서 예민주는 더욱 초조했다.마음속에 잘 기억해 놓은 뒤, 예민주의 노기는 빠르게 수그러들었다. 다시 아이들을 바라볼 때는 이미 이전의 온화한 모습을 회복했다.“사진아, 너희들은 이전에 외국에서 잘 살았다면서? 그런데 왜 갑자기 귀국한 거야?”마치 큰 언니가 아이들을 배려하는 듯 예민주는 아주 잘 알고 있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나 지금 두 아이는 이미 이 여자의 목적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 당연히 경계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엄마의 집이 바로 여기에 있어요. 엄마가 한번 가보자고 해서 돌아왔어요.”목소리는 아직 어린 티가 나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해맑은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또박또박 말하는 사진의 대답은 가히 ‘예술의 경지’라 해도 좋을 정도였다.‘아까까지만 해도 술술 잘 말하더니, 갑자기 왜 이렇게 빈틈이 없어진 거야?’예민주는 기분이 좀 꿀꿀했지만 그래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이번에 돌아와서 낯선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니? 너희들이 오늘 이곳에 와서 아빠를 찾는 것 같은데, 누가 너희들에게 뭔가 말한 거 아니야?”예민주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춘 채 계속 집요하게 물었다. 무진이 자신의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무진에게 등을 진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사진은 혼란스러운 모습으로 눈썹을 찌푸린 채 예민주를 쳐다보았다.“아줌마, 우리하고 함께 여기서 논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왜 계속 그런 거만 물어봐요?”“맞다. 아줌마, 우리 엄마 알지요? 우리 엄마한테 지금 데리러 오라고 하면 안 돼요?” “오늘 우리를 괴롭힌 사람들을 엄마가 꼭 혼내 주게요!”“맞아요, 맞아요! 누가 우리를 괴롭힌 걸 알면, 엄마가 반드시 호되게 혼을 내줄 거예요.”두 아이가 서로 주고받으면서 한 마디씩 하는데, 호흡이 기가 막히게 잘 맞았다. 예민주는 표정이 붉어졌다는 것도, 심지어 심장박동도 빨라졌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이 두 녀석의 말을 들으니, 송성연이 이 두 녀석을 아주 진지하게 단
예민주가 무진을 보러 매일 회사에 올 수는 없는 노릇.그러나 자신이 잘 쓰는 방법을 사용해서 WS그룹에 자기 부하를 하나 심었다.매일 무진의 스케줄을 예민주는 똑똑히 알고 있었다.오늘 아침 전화한 사람은 두 아이가 몰래 대표실에 들어갔는데, 줄곧 대표님을 아빠라고 불렀다고 말했다.평소 기발한 행동을 해서 명문가에 시집가려는 여자들도 적지 않다.운성 경제의 명맥을 쥐고 있는 무진과 누가 관계를 맺고 싶지 않겠는가!매일 프런트에서 자칭 ‘강무진의 아내'라고 주장하는 여자들을 몇 명이나 상대해야 하는지 모를 정도였다.‘거의 대부분은 프론트에서 차단되지.’‘그런데 오늘 대표 집무실로 직접 들어온 아이들이 있다니.’원래 예민주는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머릿속에 문득 성연의 모습이 번뜩였다.‘결국 당황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황급히 회사로 달려왔는데.’‘뜻밖에도 정말 송성연과 관계가 있었어!’예민주는 다시 눈앞의 이 두 아이에게 눈길을 돌렸다.예민주의 눈빛에 음험한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너희들은 평소에 엄마하고 같이 있지 않니?”사진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그래요, 매일 엄마하고만 같이 있어요. 그래서 아빠가 보고싶어요.”아이가 자신에게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자, 예민주는 내친 김에 계속 캐물었다.“너희들은 이전에 줄곧 외국에 있었는데, 아빠 가족들이 너희들을 찾지 않았어?”“아빠 가족들요?” 뭔가를 눈치챈 듯, 사진이 고개를 돌려서 옆에 있는 오빠를 바라보았다. 눈빛을 교환한 두 아이는 자신들만 알 수 있는 작은 신호들을 사용했다.‘이 여자는 그냥 회사를 좀 구경하게 해 주는 게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는 것 같아!’사무는 두 손을 꼭 잡은 채 작은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아주머니, 이게 잘 안 들어가는데요? 좀 도와 주실래요?”갑자기 사무의 목소리가 들렸다. 손에는 어디서 났는지 모르는 레고 블록을 든 채.예민주는 계속 묻고 싶었지만, 사무가 성깔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서 어쩔 수 없이 그 요청을
남자는 전혀 표정이 변하지 않은 채 조용히 두 아이를 바라보았다. 약간 쉰듯한 목소리에서는 차가운 기운을 발산하고 있었다.예민주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이 두 아이 귀엽지 않아요? 오히려 오빠가 그렇게 쫓아냈는데, 만약 누군가 영상이라도 찍었다면, 회사의 명성에 영향을 주지 않겠어요?”“누가 감히 우리 WS그룹을 함부로 보도할 수 있겠어?”무진의 말에는 힘찬 기세가 담겨 있었다.무진이 결코 지나치게 허풍을 떠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실력을 가지고 있으니 이렇게 강경할 수 있는 것이다.무진이 이렇게 말하자 예민주는 잠시 할 말이 없었다.하지만 잠시일 뿐!다시 무진에게 다가간 예민주가 작은 소리로 무진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사실 쟤들은 이 참에 오빠하고 잠시 함께 있기 위한 핑계였어요.”예민주가 다가오자, 순간 그윽한 향기가 무진의 코에 스며들었다.무의식적으로 미간을 찌푸린 무진이 몸을 살짝 옆으로 움직였다. 두 사람 사이에 막 좁혀졌던 거리가 다시금 벌어졌다.무진은 다른 사람의 접근을 절대 좋아하지 않는다. 이렇게 접근해서 기회를 틈타 상류층으로 오르려는 여자들도 적지 않았다.심지어 한 번만 만나려고 머리를 쥐어짜내는 사람들도 있다.그런 사람들은 이미 습관이 되었다.매번 비서진이 쉽게 대처했지만,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은 예민주다.자신의 여자 친구인.무진의 이런 습관을 예민주도 사실 잘 알고 있다. 평소에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 예민주는 절대로 이렇게 짙은 향수를 뿌리지 않는다.그래야 무진이 자신과 함께 있을 때, 무진이 이렇게 배척하지 않을 테니까.하지만 지금 예민주는 이 ‘금기’를 잊어버린 게 분명했다.방금 무진의 동작은 지금 예민주의 눈에는 적나라한 거부이자 분명한 소외감이었다.그러나 예민주는 감히 이 억눌린 마음을 마음속에 묻어두어야 했다.겉으로는 그래도 아무렇지 않은 척 가장했다.입가에 줄곧 미소를 지은 채 아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나는 애들하고 얘기를 해 볼게요. 애들이 왜 대표실을
“감탄할 수밖에 없어! 저 아가씨가 사랑 앞에서 저렇게 자신을 낮출 수 있다니!”“내가 말하고 싶은 건, 우리 대표님 여자친구는 정말 총명하다는 거야!”“뭔데? 뭔데? 나만 모르는 거야?”“...”회사에서는 업무 시간에 뒷담화를 하지 못하도록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그러나 어떻게 그런 일이 없을까?어떻게 다 금지할 수 있을까?지금 회사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여전히 신나게 떠들어대고 있었다.오히려 당사자들은 그렇게 호들갑스러운 모습이 아니었다.아이들을 데리고 이미 회사 식당에 온 예민주는 룸에 도착했다.평소에 무진은 사실 사실 이쪽에는 거의 오지 않았다. 손건호가 식사를 가지고 오면 늘 대표 집무실에서 식사를 했다.하지만 여전히 무진을 위한 개인 공간이 갖춰져 있었다.바깥의 인테리어도 좋지만, 내부 공간은 여전히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바로 돈이 있어서 좋은 점!단지 식사를 하는 공간이지만, 룸 안에는 대형TV와 편안하고 넓은 가죽 소파가 갖춰져 있었다. 또 각종 커피 메이커, 정수기, 그리고 국외에서 수입한 첨단 설비들이 갖춰져 있어서 그야말로 작은 휴게실이나 다름없었다.“아줌마, 회사 구경을 시켜준다고 하지 않았어요? 방에는 왜 왔어요?”사진은 자신의 작은 다리를 열심히 움직이면서 무진과 가까워지려고 노력했다.하지만 남자들이 이동하는 속도를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오빠, 나 아빠 옆에 있고 싶어.”무진의 행동이 이렇게 소원하자, 사진은 작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억울한 듯한 표정으로 오빠를 바라보면서 위로를 얻으려고 했다.여동생을 힐끗 본 사무가 침울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나도 어쩔 수가 없어.”“엉엉. 사진이한테는 너무 어려워!” 두 눈에 눈물을 머금은 채 슬피 우는 소녀의 울음소리가 마음을 아프게 했다.예민주는 들어오기 전에 미리 장난감과 먹을 걸 준비해 달라고 시켰다.지금 이미 예민주가 시킨 물건들을 보내왔다.이쪽을 보니 무진은 옆에 있는 아이의 마음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쳐다보지도 않았다.
“얘들아, 너희들은 어느 집 아이들인데 지금 회사에 있는 거니?”온화한 모습으로 살짝 몸을 숙인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예민주의 모습에는 어떤 허세도 보이지 않았다.두 아이는 이전에 이 여자를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아빠와 사이가 좋은 모습을 본 데다가, 이렇게 부드러운 태도인 걸 보고는 무의식적으로 ‘우호적’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흥분한 표정으로 초롱초롱한 눈빛을 빛내면서 사진이 가장 먼저 대답했다.“저희는 여기를 구경하고 싶어요.”사진은 여린 목소리로 거절할 수 없는 이유를 말했다.고개를 살짝 끄덕인 예민주는 고개를 돌려서 무진을 한 번 보았다. 무진은 복잡한 눈빛으로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그래, 그럼 아줌마가 너희들 회사 구경을 시켜줄까?”“이제 곧 점심 시간이야. 너희들도 회사 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 있어. 아줌마가 맛있는 걸 사줄까?”예민주의 제안은 시원시원하고 아주 열정적이라서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어느새 다가온 무진이 눈썹을 치켜세우면서 말했다.잘 이해가 되지 않는 듯한 목소리였다.“민주야, 이 두 아이는 내력이 분명하지 않아. 그렇게 애들을 여기 남겨두고 놀게 하다가, 무슨 일에 엮일 지도 몰라.”“괜찮아요. 이 두 아이가 무슨 나쁜 생각을 가지고 있겠어요. 그저 단지 여기를 지나다가 궁금해서 좀 더 구경하고 싶을 뿐일 거예요.”예민주가 시간을 보니 마침 12시가 다 되었다.“같이 한 바퀴 돌아볼래요? 오빠도 한참동안 나하고 함께 있지 못했잖아요.”철이 든 모습의 예민주가 기대에 찬 시선으로 무진을 바라보았다.결국 무진의 마음속 예민주에 대한 미안함이 이성에 승리를 거두었다.두 아이는 지금도 무진에 대해서 희망을 품고 있었다.‘사무실에 있을 때는 우리한테 냉담했지만, 결국 우리 친아빠야.’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잘 알지 못해서 잘못했던 부분이 있을 수도 있어.’모두 처음 겪은 일이기에, 잠시 동안 기분이 다운되어 있었던 아이들도 마음을 놓았다.‘어렵게 왔는데, 아빠하고 좀 더 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