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층의 사람들을 다 해치운 후에 성연과 목현수는 바로 위층으로 올라갔다.안나는 이곳에 숨어 있으면 안심할 수 있을 거라고, 아무도 자신을 찾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얼굴에 마스크팩을 쓰고 있는 모습이 어찌나 여유만만해 보이는지.실내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자 안나는 번쩍 눈을 떴다.성연과 목현수를 본 그녀의 눈빛은 비할 데 없이 평온했다.“이곳을 찾아낼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성연이 먼저 앞으로 나와 안나에게 손을 내밀었다.“내 물건 돌려줘.”목현수에의 장침에 부상을 입은 안나의 팔에는 붕대가 감겨 있었고 약간의 핏자국이 배어 나와 있었다.팔짱을 낀 채 벽에 기댄 목현수가 안나를 향해 나른하게 말했다.“네 상태로는 우리를 이길 수 없어. 시간이 지나면 네 결말이 더 비참해질 수밖에 없어. 얼른 물건을 내놓는 게 좋을 거야.”성연은 안나를 바라보며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빨리 물건을 내놔.”안나는 자신이 도망가지 못할 것을 예상한 듯 휴대폰을 들어올리더니 바닥을 향해 세게 내리쳤다.휴대폰을 부숴서 안에 들어있는 자료들도 못쓰게 하려는 속셈.성연은 말도 없이 성큼성큼 다가가 안나의 손을 잡아 비틀며 뒤로 꺽었다.저항할 힘이 완전히 빠진 안나는 휴대폰을 부수기 직전에 성연에게 제압당했다.성연은 안나가 빠져나가지 않도록 밧줄로 안나를 꽁꽁 묶었다.이 모든 것을 과정을 마친 후에 성연이 안나의 몸을 더듬기 시작했다.결국 성연은 안나의 몸을 더듬어 USB를 찾아냈다.그와 동시에 얼굴 인식으로 잠금을 해제하고 안나의 휴대폰을 켰다.안나는 자신감이 넘친 나머지 아무도 자신의 실력을 쫓아오지 못할 거라 생각했나 보다.그런데 순식간에 성연과 목현수의 손에 당한 것이다.그래서 연락처에 따로 잠금 장치도 하지 않아서 성연은 찾으려던 물건을 바로 찾을 수 있었다.그는 휴대폰의 연락처와 메시지 기록을 자세히 살폈다. 그리고 안나를 고용해서 자신의 자료를 훔치게 한 이는 바로 MS가문의 제이슨임을 확인했다.채팅 기록을 살펴보던 성
“밥은 아무거나 먹어도 되지만, 말은 아무 말이나 해서는 안되지.” 성연이 미간을 찌푸리며 얼른 목현수와 관계에 선을 그었다.두 사람의 선후배 관계를 저 여자가 어찌나 애매하게 말하는지.성연은 목현수가 기분 나쁠까 걱정이었다.목현수의 눈에 한 줄기 어두운 빛이 스쳐가며 은근한 시선으로 성연을 쳐다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 자신을 속이지 마.” 안나는 목현수의 눈빛을 통해 간파했다. 성연이 못 알아봤다고 그녀도 못 알아볼 거라고 생각해서는 안되는 법.‘이 남자는 송성연을 후배로만 대하는 게 아니야.’성연은 이 여자의 허튼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계속해서 안나와 MS가문이 결탁했다는 증거가 더 있는지 방 안을 돌아다니며 수색했다.성연이 저쪽으로 가자 안나는 더 거리낌 없는 눈빛을 하며 목현수에게 말했다.“인정해.”목현수는 냉기 가득한 눈빛으로 안나를 바라보았다.“입 닥쳐.”“아예 놀 수 없을 정도는 아니지만, 저런 젖비린내 나는 계집애가 뭐가 좋다고. 나는 네 외모가 아주 마음에 드는데, 나랑 한번 해 볼래?”안나가 말하면서 유혹의 눈빛으로 목현수를 바라보았다.목현수는 두말없이 바로 은침을 꺼내 안나에게 날렸다.순간 온몸에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입술도 새파랗게 질릴 정도로 통증을 느낀 안나는 그 고통을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안나를 바라보는 목현수의 눈빛은 마치 죽은 사람을 보는 듯하다.“감히 네가 그녀를 헐뜯는다고? 네가 뭔 자격으로!”이미 아파서 한마디도 할 수 없었던 안나는 목현수에게 경멸의 눈빛을 던지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성연은 안나의 비명소리에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다른 방에서 뛰어왔다.안나의 몸 혈자리들에 장침이 꽂혀 있었다. ‘이건 사형 목현수의 작품이 분명해.’목현수는 아무런 설명도 없이 성연에게 말했다.“물건을 찾았으면 가자. 여기서 너무 오래 머물지 않는 게 좋겠다.”성연은 고개를 끄덕인 후 목현수와 함께 별장을 떠났다.차에 탄 후에야 목현수가 성연에게 말했다.“내가
북성에서의 일을 아직 다 처리하지 못했지만, 무진은 정말이지 기다릴 수가 없었다.가까스로 손에 들고 있던 리스트를 끝낸 즉시 비행기표를 예매하고 성연을 방문하기 위해 유럽으로 향했다.이날 성연은 아무리 해도 무진과 통화가 되지 않아 하루 종일 초조함을 억누를 수 없었다.성연은 자신도 모르게 상상하기도 두려운 몇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혹시 무진에게 사고라도 났을까 무척 걱정스러웠다.휴대폰을 들고 손건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손건호 또한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입술을 씹고 있는 성연의 기분이 푹 가라앉았다. ‘강무진,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섣불리 할머니 안금여에게 전화를 걸 수도 없었다. 무진이 정말 사고가 나지 않았다 해도 할머니는 마음속으로 감당할 수 없을 터였다.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침대에 앉아 기다리는 것뿐. 계속 무진과의 연락을 시도하며.똑똑똑-호텔 객실 문을 누군가 두드렸다.성연은 미간을 좁혔다. 객실 서비스 시간은 지금 이때가 아님이 기억났다.그리고 음식을 주문하지도 않았다.심지환과 목현수라면 찾아오더라도 미리 알려주었을 터.그럼 입구에 서 있는 사람은 도대체 누구?안나라는 선례가 있어서 성연의 경계심이 높아졌다.은침을 꺼내며 문을 여는 순간, 문 앞에 섰던 사람이 와락 품에 끌어당겨 안았다.성연이 막 발버둥쳐 벗어나려던 순간 누구보다 익숙한 향이 났다.은침이 다시 천천히 소매 안으로 말려들어갔다. 성연이 고개를 들어 보니 아니나 다를까 누구보다 잘생긴,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성연의 마음은 놀람과 기쁨으로 가득찼다.“무진 씨 어떻게 왔어요?”“보고 싶어서 왔지.” 무진이 조금 뒤로 물러서며 성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무진은 성연의 이목구비 하나하나 뚫어져라 살폈다. 마치 아무리 봐도 부족한 듯이.무진의 시선에 성연은 부끄러움을 느꼈다. 수줍은 마음에 볼이 연분홍으로 물들었다. 볼그스름하게 달아오른 성연의 볼을 바라보던 무진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여 성연의 입술을 물었다.성연은 거절
무진이 금방 씻고 돌아오자 성연이 준비해 둔 드라이어로 무진의 머리를 말렸다.이리저리 바람 몇 번을 쇠어준 후 침대에 올라 간 무진은 성연을 품에 안고서 성연에게서만 나는 청신한 약향을 맡았다. 그러자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지더니 결국 잠의 세계에 빠졌다.무진이 잠든 후에 숨소리도 점차 고르게 변했다.몸을 옆으로 굴린 성연은 그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콧등을 살짝 눌렀다.그녀는 마음속으로 탄식했다.‘이 남자,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들어.’어쩌면 무진의 깊은 품속이 너무 편안했는 지도 모른다. 무진을 바라보던 성연 역시 졸음을 참지 못하고 그의 품에 안겨 잠들었다.두 사람이 다시 깨어났을 때 밖은 이미 날이 밝은 상태.성연이 깨어났을 때 무진은 이미 눈을 뜨고 성연을 바라보고 있었다.성연이 먼저 무진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얼른 일어나요. 오늘 소개해 줄 사람이 있어요.”그 한마디가 무진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평소 성연은 무슨 일이 생겨도 대부분 자신에게 감추고 먼저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무진은 이것이 성연의 신분과 관련이 있음을 눈치챘다.성연에 대한 신뢰와 애정으로 어느 것도 따져 묻지 않았다.성연이 이렇게 진지한 모습으로 자기에게 사람을 소개하겠다고 한 것은 이번이 처음.무진은 갑자기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혹여 어른이 나와서 자신을 마음에 들지 않을까 걱정이 되면서.성연은 무진의 마음속 걱정을 알지 못한 채 먼저 침대에서 내려와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욕실에서 나온 성연이 방으로 돌아오자, 무진이 이어서 세수하러 갔다.욕실 세면대 앞의 거울로 자신의 슈트를 한 번 더 점검했다. 옷차림이 부적절하지 않는지도 살폈다.성연이 소개하는 이라면 필시 성연에게 중요한 사람일 터.무진이 방으로 돌아오자 성연이 그에게 미소를 지으며 팔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성연과 그들이 약속한 고급 레스토랑.도착했을 때 목현수는 이미 룸 안에 앉아 있었다.성연이 열정적으로 두 사람을 소개했다.“무진 씨, 여기는 제 사형 목현수예요.”성
식사를 마친 후에 목현수가 계산하러 나갔다. 무진도 화장실에 갈 생각으로 룸에서 나왔다.목현수는 아직 카운터에 가지 않았다. 마치 일부러 무진이 나오길 기다렸던 듯하다.목현수는 기질이 온화한 편이지만 눈빛이 날카로워 마치 예리한 검처럼 웃으며 사람을 찌를 것 같았다.그리고 무진은 기질 자체가 서늘해서, 거기에 서 있기만 해도 말이 필요 없다. 눈빛 하나로 사람들을 벌벌 떨게 만들었다.두 사람 모두 강렬한 카리스마를 뿜어내며 서로에게 지지 않았다.목현수가 미소를 지으며 무진을 향해 먼저 입을 열고 담담하게 말했다.“WS그룹은 확실히 국내에서는 무척 대단하지요. 그러나 전 세계에서 본다면 그저 그런 수준이죠.”이 말은 분명 무진을 안중에도 두지 않는다는 뜻.무진의 체면을 전혀 생각지 않은 말이다.입술을 단단히 오므린 무진의 새카만 눈동자에서 짙은 냉기를 뿜어냈다.목현수는 무진의 기세에 눌리지 않았다. 오히려 얼굴 표정 하나 바뀌지 않은 채 입술에 호선을 그었다.“당신은 나를 이길 수 없으니 허세를 부릴 필요가 없습니다.”“그럼 목 선생은 똑똑히 알고 계셔야겠습니다. 당신 것이 아니었던 것은 영원히 당신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을요.” 무진도 차가운 음성으로 받아쳤다.목현수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건 두고 볼 일이죠.”무진은 결국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어쨌든 성연의 사형이었다. 자신이 지나치게 말하는 것도 좋지 않을 터.그리고 자신과 성연 사이에는 깊은 신뢰와 애정이 있으니 걱정할 게 없었다.목현수, 마음이 있으면 얼마든지 해 보라지.자신은 여태껏 두려워 물러난 적이 없다.한 차례 설전을 벌인 두 사람은 서로가 눈에 거슬리자 헤어져 각자의 볼일을 봤다.화장실을 다녀오던 무진은 마침 계산을 마치고 돌아오는 목현수를 다시 만났다.목현수를 먼저 룸에 들여보낸 후에 무진도 따라 들어갔다.성연은 두 사람이 앞뒤로 나란히 들어오는 것을 보고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어째서 이렇게 오래 걸렸어요?”“계산하러 나가면서 강 대표님과
밖으로 나오자 무진이 말했다.“여기 온 뒤로 놀기만 하는 거 아니야? 아직 학교에 안 가봤지? 마침 잘됐다. 내가 데려고 갈까?”무진은 성연의 의견을 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도 사심도 숨어 있었다. 자신이 직접 성연을 데리고 학교에 가면서 목현수를 떨궈내고 싶었다.누군가 그들 두 사람의 세계에 끼어 들어 방해하지 않도록.무진의 뜻대로 하고 싶지 않은 확실했던 목현수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이러는 건 어때? 마침 가는 길인데, 지금 내가 살고 있는 Y국에 가보는 건. 오늘 차를 직접 몰고 와서 바람도 쐴 겸 드라이브하는 것도 좋겠다. 학교는 너무 급하게 서두르지 않아도 돼.”성연은 이 제의가 그런대로 괜찮다고 생각했다. 고개를 들어 무진을 바라보았다.그러나 무진이 고개를 살짝 저으며 말했다.“우리 전용비행기를 타자. 그러면 빨리 갔다 올 수 있어.”그는 단 1분도 목현수와 같이 있고 싶지 않았다.성연은 또 유럽을 좀 둘러보고 싶었다. 파리에서 Y국 사이에는 오래된 관광명소가 아주 많아서 한 번 구경하고 싶었다.그래서 성연이 대답했다.“급하지 않아요. 한 번 둘러보면서 바람 쐬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거기 경치가 정말 아름답대요.”말하면서 성연은 무진의 소매를 잡아당겨 흔들기도 했다. 그 동작은 무의식적인 애교의 표현이었다.무진은 어쩔 수 없이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언제든 성연 앞에서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는 무진.때로는 세상의 진귀한 모든 것들을 성연에게 주고 싶었다. 그런데 성연에게서 이런 눈빛을 언제 받아볼 수 있단 말인가? 도저히 자신이 거절할 수 없는 애교였다.“그렇게 오래 차를 타면 피곤하지 않아?” 무진이 친절하게 물었다.차를 잠깐 타는 건 괜찮지만, 시간이 길어지면 불편하다.무진이 성연을 개인 비행기에 태우려는 주된 이유다.물론 목현수와 동행하고 싶지 않은 것도 일부 있지만.“괜찮아요. 무진 씨도 나를 너무 우습게 보는거예요?” 성연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알았어, 이따가 불편하면 말해줘.”
목현수는 앞에서 차를 몰았고, 무진과 성연은 뒷좌석에 앉았다.도중에 많은 아름다운 경치들을 구경하느라 성연은 심심하지 않았다. 마음에 든 풍경들을 모두 휴대폰으로 찍었다.간식을 먹으면서 창밖으로 풍경을 구경하는 게 무척 즐거웠다.무진이 수시로 옆에서 휴지를 건넨다, 음료수를 건넨다 하며 세심하게 성연을 살폈다.목현수는 백미러를 통해 두 사람이 함께 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강무진 같이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이 자신을 한없이 낮추며 성연을 돌보고 있었다.정말 보기 드문 모습이라 할 만했다.그리고 무진이 성연을 바라볼 때와 다른 사람을 보는 시선이 다르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아차렸다.그 눈에 담긴 깊은 애정을 숨길 생각을 하지 않았다.성연도 그 모습에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북성에 있을 때부터 성연은 강무진에게서 늘 이런 보살핌을 받은 게 분명했다.목현수는 묵묵히 그 모든 모습을 지켜보면서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히 차를 몰았다.성연과 무진 사이에는 다른 누구도 끼어들 수 없는 분위기가 있었다.지금은 입을 열기에 적당한 시기가 아님을 목현수도 알았다.이렇게 여기저기 둘러보며 그들 세 사람은 Y국, 옥스퍼드대학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막 Y국에 들어섰을 때 목현수가 한 가지 제안을 했다.“성연아, 너 내 저택에 놀러 가지 않을래? 여기에 부동산을 하나 장만했는데, 아주 아름다워. 네 마음에 들 거라 믿어.”성연이 입을 열기도 전에 무진이 먼저 거절했다.“아무래도 묵 선생을 더 이상 귀찮게 하지 않는 게 좋겠군요. 제가 성연일 데리고 가능한 빨리 입학 수속을 처리하겠습니다. 그 후에 학교를 둘러보는 게 이후에 도움이 될 듯합니다.”무진한 말들은 모두 이치에 합당했고 성연을 위한 고려가 돋보였다.목현수만이 성연을 자신의 곁에 두고 싶지 않은 무진의 마음을 눈치채고 있었다.목현수가 다시 권했다.“오래는 걸리지 않아요. 반나절이면 한 바퀴 둘러볼 수 있습니다. 금방이죠.”그러면서 목현수가 성연을 쳐다보았다.“설마 이렇게 오랜만에 만났
30분 가까이 운전해서 목적지에 도착했다.성연은 차에서 내려 앞의 장면을 보고 좀 멍해졌다.눈 앞에 자리한 것은 시선이 닿는 곳마다 예술적 향취가 배어 있는 고성이다.고성의 벽면은 담쟁이덩굴이 빼곡하게 뒤덮고 있었다. 중간중간 섞여 있는 이름 모를 들꽃이 청순하면서 예뻤다.목현수도 성연을 따라 차에서 내렸다. “들어가자.”“사형, 이... 이곳에 사는 거예요?” 성연이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쳐다보았다.목현수는 살짝 고개를 끄덕인 후에 두 사람을 데리고 성 안으로 들어갔다.“차는?” 성연은 입구에 세운 차를 가리키며 물었다. 설마 차를 그냥 두고 들어가는 건가, 하고 생각하면서.“이따가 사람이 와서 몰고 올 테니, 두 사람은 그냥 따라 들어와.” 목현수가 성 안으로 들어갔다.뒤에 서 있던 성연은 무진의 손을 잡고 따라 들어갔다.하지만 성연을 더 놀라게 할 게 아직 남아 있었다.두 사람이 막 안으로 들어섰을 때, 유럽 명문귀족 가문에서나 볼법한 복장을 한 10여명의 고용인들이 입구 양 옆에 줄지어 서서는 자신들을 향해 허리를 숙이며 깍듯하게 인사했다.목현수를 향한 성연의 동공이 충격으로 흔들렸다.“사형이 정말 성공하긴 했나 봐요. 와, 정말 대단하네, 대단해.”목현수는 웃기만 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용인들을 각자의 일을 하도록 제 자리로 돌려보낸 목현수가 성연에게 말했다.“내가 성 내부를 구경시켜 줄게.”성 내부를 둘러보면 볼수록 성연은 속으로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유럽 쪽의 저택은, 특히 이런 고성은 결코 돈으로 살 수 있는 게 아니었다.어느 정도의 신분이나 지위가 없다면 이런 곳을 살 엄두도 못 낼 터.그리고 저택에 이렇게 많은 고용인들을 두고 부린다는 것은 그냥 사치스럽다는 말로는 부족했다.고성 뒤편에는 라벤더로 뒤덮인 정원이 있었다.푸른 하늘과 푸른 나무를 배경으로 눈에 펼쳐진 보라색 향연이 무척 아름다웠다.산들바람이 스치고 지나가자 공기 중에 온통 라벤더 향이 가득했다.성연은 두 팔을 활짝
예민주는 곧바로 기분이 나빠졌다.원래 길을 잃은 두 아이가 펑펑 울게 만든 다음에, 무진에게 아이들이 그다지 순하지 않다는 걸 보여줄 생각이었다.그러나 예상 외로 아이들은 영리한 데다가 일찌감치 철도 들었다. 졸지도 떠들지도 않은 데다가 얌전하게 장난감을 가지고 놀 줄 어떻게 알 수 있을까!무진은 오후에 회의가 있어서 점심 휴식 시간이 제한적이었다.어떻게 해야 아이들을 여기에 좀 더 머물 수 있게 할 수 있을지, 예민주도 아직 좋은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두 아이가 이렇게 영리한 핑계를 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그들 부자 세 사람만 지낼 기회를 절대 줄 수가 없었기에.결국 세 사람이 대표 집무실에 함께 있게 되었다.“어떻게 된 거야? 이건 그렇게 둘러댈 일이 아니야.”“너 계속 큰소리로 말하지 마! 이렇게 시끄러운 것도 몰라?”이제 세 사람은 이미 오후 내내 함께 있게 되었다. 특히 지금 무진은 회의를 하러 갔기에, 대표실에는 그들 세 사람밖에 없었다. 예민주는 이미 싫어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나른한 자태로 소파에 기댄 예민주의 얼굴에는 온통 경멸하는 표정만 가득했다.집에서도 이렇게 엄하게 꾸지람을 들은 적이 없었기에, 사진은 정말 억울해서 입을 열었다가 다시 예민주에게 말려들곤 했다.사진이 낮은 소리로 울먹이면서 말했다.“그런데 아줌마, 우리는 그냥 게임을 하고 있었어요.”예민주는 이제 숨기지 않고 냉담한 목소리로 바로 호통을 쳤다. “조용히 해! 아무도 너희들 응석을 받아주지 않아!”예민주의 말투는 아주 야박해서 두 아이가 감당할 수 있을지도 전혀 꺼리지 않았다.역시나 예민주의 말이 막 떨어지자, 사진은 이미 엉엉 울기 시작했다.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가뜩이나 초롱초롱한 사진의 두 눈은 지금 완전히 눈물에 젖은 가련한 모습이었다.사무는 평소 집에서는 여동생을 싫어하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사실은 몹시 마음이 아팠다.한 손으로 여동생을 가볍게 안고 달래면서 말했다.“괜찮아, 괜찮아. 좀 있다가 아
“예민주가 무슨 일인들 못하겠어?” 성연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차갑게 내뱉었다. 예민주의 모습을 떠올리자, 한바탕 구역질이 났다.클래식한 파텍필립 손목시계를 힐끗 보고서, 다음 순간 성연은 이미 성큼성큼 방문을 나섰다.“빨리 안 따라오고 뭐 해!” 문 앞에 도착한 성연이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는 서한기를 보면서 소리쳤다.10여 분 후, WS그룹 1층.두 손으로 운전대를 꼭 잡은 채, 성연은 아주 멋진 드리프트 솜씨로 차를 건물 입구에 세웠다.주차 도우미 직원과는 불과 1미터도 채 안 되는 거리만 남았기에, 직원은 이미 쓰러질 지경이었다.“무즌 주차를 이렇게 해요?” 이렇게 거친 주차 방식을 보자, 직원은 마음속으로 화가 났다.무의식적으로 차 안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면서, 한바탕 퍼부으려고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운전석의 차문이 열리고 성연이 차에서 내렸다.자신에게 다가온 직원의 눈길을 마주하고서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보았다.한바탕 퍼부으려던 직원은 성연의 깊은 눈빛을 마주하자 결국 말문이 막혔다.“차는 주차장으로 옮기지 말고 여기에 그래도 놔 둬요! 만약 내가 돌아왔을 때 차가 다른 곳에 있다면, 당신은 이 일을 계속할 수 없을 겁니다!”“하지만 아가씨, 이건 규정에 맞지 않습니다.”성연은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거리낌 없이 말했다.“나를 믿어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말이 끝나자, 성연은 대답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안으로 걸어갔다. 마치 뒤에 천군만마가 있는 것처럼 당당하고 기세 등등한 걸음걸이였다.성연의 곁에는 아무도 다가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1층의 안내 데스크.“대표님은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데스크의 여직원은 계속 그 자리에 있었기에, 방금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두 한눈에 볼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당황스러운 마음을 억누른 채 최선을 다해 응대할 수밖에 없었다.“약속을 하셨습니까?”성연은 입술을 오므린 채 가볍게 웃었다.“대표님은 어디 계세요?”“죄송합니다만, 대표
‘그 여자는 분명히 그 다른 쪽이라고 했어. 즉, 그 여자가 알려준 건 잘못된 방향이었어.’‘만약 그 여자가 방향을 몰랐다면, 위치를 말하지 않았을 거야. 그러나 그 여자는 그렇게 자신있게 위치를 말했어.’‘그건 자신이 있다는 말이야!’이렇게 생각하자, 예민주에 대한 사무의 인상은 더욱 좋지 않았다.다음 순간, 턱을 살짝 든 사무가 두 여자를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제 여동생이 아직 저쪽에 있어요. 잠깐만요, 제가 가서 여동생을 데리고 올게요.”여동생이 있다는 말을 듣자 좀 놀랐지만, 소년이 돌아서는 걸 보자 그제서야 비로소 대답했다.“아, 여동생! 그래, 그래.”화장실에 간 후, 사무와 사진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 못된 여자가 혹시 함정이라도 파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기에.하지만 아버지가 아직 거기에 있다는 걸 떠올리자,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 한다는 첫 교훈도 얻게 되었다. 이 놀이는 오후 내내 계속되었다.한편 다른 한쪽. 시재 백화점에 갔다가 별장으로 돌아온 성연은 양 손에 큰 봉투 두 개를 들고 있었다. 그 안에는 온갖 장난감이 가득했다.이것들은 모두 성연이 업무를 마친 뒤에 특별히 아이들을 위해 고른 장난감이다. ‘요 며칠 동안 정말 너무 바빴어. 집에 돌아오면 이미 늦은 밤이거나, 좀 일찍 집에 돌아와도 저녁을 먹고 다시 일하느라 정신이 없었지.’성연은 여전히 아이들에게 빚을 진 듯한 느낌이었다.집을 열자 거실은 조용했다. 위층에서도 별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우리 사진이, 사무? 엄마가 돌아왔어!”눈살을 살짝 찌푸리면서 성연이 말했지만, 아이들의 열정적인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사진아? 사무야? 너희들 집에 있니?”“사무야?”아래층에서 계속 몇 번이나 소리쳐도 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이렇게 큰 집에 성연 자신의 목소리만 울릴 뿐.“보스, 아이들은 지금 집에 없습니다.”이때 서한기가 부랴부랴 달려왔다.“집에 없다니?” 성연이 눈썹을 바짝 세웠다. 순간 마음속에
“그 여자는 이전에 엄마하고 알고 지냈던 것 같아. 다만 아직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모르겠어.”“그럼 이따가 우리 어떡하지?” 사진이 약간 지친 듯한 기색으로 말했다.오전 내내 이곳을 왔다갔다했으니 아이에게는 에너지 소모가 컸다.그리고 방금 위층으로 올라갈 때, 아이들은 여전히 아주 자신있게 서한기보고 먼저 가라고 했다. 그때는 자신감이 가득했지만 지금은 ‘후회막심’이다.‘지금 아직 한기 아저씨가 있다면. 바로 집에 가서 편하게 누워서 쉴 텐데.’“일단은 우리 계획대로 그 여자한테 엄마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마. 우리가 아빠를 찾으러 온 건 그 여자하고 상관이 없어.”원래 신중한 사무지만, 지금 사무의 말은 오빠라는 사무의 입장과 아주 딱 맞게 진지했다.두 아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방금 전에 화장실에 가겠다고 한 건 핑계였지만, 막상 바깥에 나오자 화장실에 가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한참을 가도 식당 창문이나 작은 방은 곳곳에 있는데, 예민주가 말한 화장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그 여자가 우리를 속인 건 아니겠지?”억울한 듯이 분홍색 입술을 삐죽 내민 채 사진은 움직이기도 귀찮았다.여동생의 이런 모습을 보자, 사무는 그 자리에 선 채 눈을 반짝이며 한 바퀴 둘러보았다.“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딴 데 가지 말고. 알았지?”말을 마친 사무는 왔던 길을 다시 달려갔다.“오늘 가지는 좀 맛이 없어.”“그래도 괜찮은데. 먹기 싫으면 나한테 줘.”사무는 식사 중이던 두 아가씨의 앞으로 갔다.“누나, 실례합니다. 여기 화장실이 어디에 있어요?”목소리는 여리지만 태도는 아주 공손했다.밥을 먹고 있던 두 아가씨는 그 말을 듣자 먹던 동작을 멈췄다. 사무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갑자기 눈빛을 반짝였다.‘어디서 이렇게 귀여운 아이가 온 거야?’ ‘뚜렷한 이목구비에 심플한 검은색 스웨터만 입었는데도 잘 어울리는 걸.’‘얼굴의 통통한 젖살이 큐티 작살인데!’‘그야말로 너무나 귀여운 아이야!’사무는
두 아이를 보면서 예민주는 더욱 초조했다.마음속에 잘 기억해 놓은 뒤, 예민주의 노기는 빠르게 수그러들었다. 다시 아이들을 바라볼 때는 이미 이전의 온화한 모습을 회복했다.“사진아, 너희들은 이전에 외국에서 잘 살았다면서? 그런데 왜 갑자기 귀국한 거야?”마치 큰 언니가 아이들을 배려하는 듯 예민주는 아주 잘 알고 있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나 지금 두 아이는 이미 이 여자의 목적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 당연히 경계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엄마의 집이 바로 여기에 있어요. 엄마가 한번 가보자고 해서 돌아왔어요.”목소리는 아직 어린 티가 나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해맑은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또박또박 말하는 사진의 대답은 가히 ‘예술의 경지’라 해도 좋을 정도였다.‘아까까지만 해도 술술 잘 말하더니, 갑자기 왜 이렇게 빈틈이 없어진 거야?’예민주는 기분이 좀 꿀꿀했지만 그래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이번에 돌아와서 낯선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니? 너희들이 오늘 이곳에 와서 아빠를 찾는 것 같은데, 누가 너희들에게 뭔가 말한 거 아니야?”예민주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춘 채 계속 집요하게 물었다. 무진이 자신의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무진에게 등을 진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사진은 혼란스러운 모습으로 눈썹을 찌푸린 채 예민주를 쳐다보았다.“아줌마, 우리하고 함께 여기서 논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왜 계속 그런 거만 물어봐요?”“맞다. 아줌마, 우리 엄마 알지요? 우리 엄마한테 지금 데리러 오라고 하면 안 돼요?” “오늘 우리를 괴롭힌 사람들을 엄마가 꼭 혼내 주게요!”“맞아요, 맞아요! 누가 우리를 괴롭힌 걸 알면, 엄마가 반드시 호되게 혼을 내줄 거예요.”두 아이가 서로 주고받으면서 한 마디씩 하는데, 호흡이 기가 막히게 잘 맞았다. 예민주는 표정이 붉어졌다는 것도, 심지어 심장박동도 빨라졌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이 두 녀석의 말을 들으니, 송성연이 이 두 녀석을 아주 진지하게 단
예민주가 무진을 보러 매일 회사에 올 수는 없는 노릇.그러나 자신이 잘 쓰는 방법을 사용해서 WS그룹에 자기 부하를 하나 심었다.매일 무진의 스케줄을 예민주는 똑똑히 알고 있었다.오늘 아침 전화한 사람은 두 아이가 몰래 대표실에 들어갔는데, 줄곧 대표님을 아빠라고 불렀다고 말했다.평소 기발한 행동을 해서 명문가에 시집가려는 여자들도 적지 않다.운성 경제의 명맥을 쥐고 있는 무진과 누가 관계를 맺고 싶지 않겠는가!매일 프런트에서 자칭 ‘강무진의 아내'라고 주장하는 여자들을 몇 명이나 상대해야 하는지 모를 정도였다.‘거의 대부분은 프론트에서 차단되지.’‘그런데 오늘 대표 집무실로 직접 들어온 아이들이 있다니.’원래 예민주는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머릿속에 문득 성연의 모습이 번뜩였다.‘결국 당황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황급히 회사로 달려왔는데.’‘뜻밖에도 정말 송성연과 관계가 있었어!’예민주는 다시 눈앞의 이 두 아이에게 눈길을 돌렸다.예민주의 눈빛에 음험한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너희들은 평소에 엄마하고 같이 있지 않니?”사진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그래요, 매일 엄마하고만 같이 있어요. 그래서 아빠가 보고싶어요.”아이가 자신에게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자, 예민주는 내친 김에 계속 캐물었다.“너희들은 이전에 줄곧 외국에 있었는데, 아빠 가족들이 너희들을 찾지 않았어?”“아빠 가족들요?” 뭔가를 눈치챈 듯, 사진이 고개를 돌려서 옆에 있는 오빠를 바라보았다. 눈빛을 교환한 두 아이는 자신들만 알 수 있는 작은 신호들을 사용했다.‘이 여자는 그냥 회사를 좀 구경하게 해 주는 게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는 것 같아!’사무는 두 손을 꼭 잡은 채 작은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아주머니, 이게 잘 안 들어가는데요? 좀 도와 주실래요?”갑자기 사무의 목소리가 들렸다. 손에는 어디서 났는지 모르는 레고 블록을 든 채.예민주는 계속 묻고 싶었지만, 사무가 성깔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서 어쩔 수 없이 그 요청을
남자는 전혀 표정이 변하지 않은 채 조용히 두 아이를 바라보았다. 약간 쉰듯한 목소리에서는 차가운 기운을 발산하고 있었다.예민주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이 두 아이 귀엽지 않아요? 오히려 오빠가 그렇게 쫓아냈는데, 만약 누군가 영상이라도 찍었다면, 회사의 명성에 영향을 주지 않겠어요?”“누가 감히 우리 WS그룹을 함부로 보도할 수 있겠어?”무진의 말에는 힘찬 기세가 담겨 있었다.무진이 결코 지나치게 허풍을 떠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실력을 가지고 있으니 이렇게 강경할 수 있는 것이다.무진이 이렇게 말하자 예민주는 잠시 할 말이 없었다.하지만 잠시일 뿐!다시 무진에게 다가간 예민주가 작은 소리로 무진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사실 쟤들은 이 참에 오빠하고 잠시 함께 있기 위한 핑계였어요.”예민주가 다가오자, 순간 그윽한 향기가 무진의 코에 스며들었다.무의식적으로 미간을 찌푸린 무진이 몸을 살짝 옆으로 움직였다. 두 사람 사이에 막 좁혀졌던 거리가 다시금 벌어졌다.무진은 다른 사람의 접근을 절대 좋아하지 않는다. 이렇게 접근해서 기회를 틈타 상류층으로 오르려는 여자들도 적지 않았다.심지어 한 번만 만나려고 머리를 쥐어짜내는 사람들도 있다.그런 사람들은 이미 습관이 되었다.매번 비서진이 쉽게 대처했지만,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은 예민주다.자신의 여자 친구인.무진의 이런 습관을 예민주도 사실 잘 알고 있다. 평소에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 예민주는 절대로 이렇게 짙은 향수를 뿌리지 않는다.그래야 무진이 자신과 함께 있을 때, 무진이 이렇게 배척하지 않을 테니까.하지만 지금 예민주는 이 ‘금기’를 잊어버린 게 분명했다.방금 무진의 동작은 지금 예민주의 눈에는 적나라한 거부이자 분명한 소외감이었다.그러나 예민주는 감히 이 억눌린 마음을 마음속에 묻어두어야 했다.겉으로는 그래도 아무렇지 않은 척 가장했다.입가에 줄곧 미소를 지은 채 아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나는 애들하고 얘기를 해 볼게요. 애들이 왜 대표실을
“감탄할 수밖에 없어! 저 아가씨가 사랑 앞에서 저렇게 자신을 낮출 수 있다니!”“내가 말하고 싶은 건, 우리 대표님 여자친구는 정말 총명하다는 거야!”“뭔데? 뭔데? 나만 모르는 거야?”“...”회사에서는 업무 시간에 뒷담화를 하지 못하도록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그러나 어떻게 그런 일이 없을까?어떻게 다 금지할 수 있을까?지금 회사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여전히 신나게 떠들어대고 있었다.오히려 당사자들은 그렇게 호들갑스러운 모습이 아니었다.아이들을 데리고 이미 회사 식당에 온 예민주는 룸에 도착했다.평소에 무진은 사실 사실 이쪽에는 거의 오지 않았다. 손건호가 식사를 가지고 오면 늘 대표 집무실에서 식사를 했다.하지만 여전히 무진을 위한 개인 공간이 갖춰져 있었다.바깥의 인테리어도 좋지만, 내부 공간은 여전히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바로 돈이 있어서 좋은 점!단지 식사를 하는 공간이지만, 룸 안에는 대형TV와 편안하고 넓은 가죽 소파가 갖춰져 있었다. 또 각종 커피 메이커, 정수기, 그리고 국외에서 수입한 첨단 설비들이 갖춰져 있어서 그야말로 작은 휴게실이나 다름없었다.“아줌마, 회사 구경을 시켜준다고 하지 않았어요? 방에는 왜 왔어요?”사진은 자신의 작은 다리를 열심히 움직이면서 무진과 가까워지려고 노력했다.하지만 남자들이 이동하는 속도를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오빠, 나 아빠 옆에 있고 싶어.”무진의 행동이 이렇게 소원하자, 사진은 작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억울한 듯한 표정으로 오빠를 바라보면서 위로를 얻으려고 했다.여동생을 힐끗 본 사무가 침울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나도 어쩔 수가 없어.”“엉엉. 사진이한테는 너무 어려워!” 두 눈에 눈물을 머금은 채 슬피 우는 소녀의 울음소리가 마음을 아프게 했다.예민주는 들어오기 전에 미리 장난감과 먹을 걸 준비해 달라고 시켰다.지금 이미 예민주가 시킨 물건들을 보내왔다.이쪽을 보니 무진은 옆에 있는 아이의 마음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쳐다보지도 않았다.
“얘들아, 너희들은 어느 집 아이들인데 지금 회사에 있는 거니?”온화한 모습으로 살짝 몸을 숙인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예민주의 모습에는 어떤 허세도 보이지 않았다.두 아이는 이전에 이 여자를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아빠와 사이가 좋은 모습을 본 데다가, 이렇게 부드러운 태도인 걸 보고는 무의식적으로 ‘우호적’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흥분한 표정으로 초롱초롱한 눈빛을 빛내면서 사진이 가장 먼저 대답했다.“저희는 여기를 구경하고 싶어요.”사진은 여린 목소리로 거절할 수 없는 이유를 말했다.고개를 살짝 끄덕인 예민주는 고개를 돌려서 무진을 한 번 보았다. 무진은 복잡한 눈빛으로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그래, 그럼 아줌마가 너희들 회사 구경을 시켜줄까?”“이제 곧 점심 시간이야. 너희들도 회사 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 있어. 아줌마가 맛있는 걸 사줄까?”예민주의 제안은 시원시원하고 아주 열정적이라서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어느새 다가온 무진이 눈썹을 치켜세우면서 말했다.잘 이해가 되지 않는 듯한 목소리였다.“민주야, 이 두 아이는 내력이 분명하지 않아. 그렇게 애들을 여기 남겨두고 놀게 하다가, 무슨 일에 엮일 지도 몰라.”“괜찮아요. 이 두 아이가 무슨 나쁜 생각을 가지고 있겠어요. 그저 단지 여기를 지나다가 궁금해서 좀 더 구경하고 싶을 뿐일 거예요.”예민주가 시간을 보니 마침 12시가 다 되었다.“같이 한 바퀴 돌아볼래요? 오빠도 한참동안 나하고 함께 있지 못했잖아요.”철이 든 모습의 예민주가 기대에 찬 시선으로 무진을 바라보았다.결국 무진의 마음속 예민주에 대한 미안함이 이성에 승리를 거두었다.두 아이는 지금도 무진에 대해서 희망을 품고 있었다.‘사무실에 있을 때는 우리한테 냉담했지만, 결국 우리 친아빠야.’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잘 알지 못해서 잘못했던 부분이 있을 수도 있어.’모두 처음 겪은 일이기에, 잠시 동안 기분이 다운되어 있었던 아이들도 마음을 놓았다.‘어렵게 왔는데, 아빠하고 좀 더 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