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아무것도 아니에요.”심유진은 예전 일을 회상해도 그렇게 힘들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그저 하은설이 요리 솜씨가 없어 자신이 임신했을 때 다른 임산부보다 적게 먹어 별이가 저체중으로 태어난 정도다. 그래도 건강한 정도였다.이곳은 산후조리라는 개념이 없었다. 더구나 한국에서처럼 산후 도우미가 없었기에 그 기간 심유진은 자신의 힘과 하은설의 돌봄으로 버텼다.다행히 심유진은 몸이 건강해 산후 후유증이 없었다.“어렸을 때랑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죠.”심유진은 웃었다.심유진은 가볍게 말했으나 허태준은 가슴이 아렸다.심유진이 말하는 아무것도 아닌 일은 허태준에게 있어서 엄청난 일이었다.그녀가 당한 고통은 모두 자신 때문이었다.허태준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심유진에게 더욱 잘해주는 것밖에 없었다.그렇다 해도 그 때문에 받은 상처는 씻을 수 없을 것이다.허태준의 얼굴이 점차 어두워지는 것을 보며 심유진은 조금 미안해졌다.“자책하지 말아요. 내가 임신한 것도 당신은 몰랐잖아요.”“다음에 내가 임신하면 매일 맛있는 음식 해줘요.”“다음?”허태준은 두 눈을 크게 뜨며 심유진을 쳐다봤다.“좋아요.”자신이 말을 잘못한 사실을 알아챈 심유진은 재빨리 덧붙였다.“지금 당장이란 말은 아니에요. 진정해요! 별이가 아직 어려요. 적어도 초등학교는 들어가야죠.”심유진은 둘째를 꺼리지 않았다.자신과 같은 어린 시절을 물려주는 게 싫어 심유진은 딩크족을 선택했다. 그러나 아이를 키우다 보니 아이를 여러 명 낳는 것 또한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능력도 되니 잘 키울 자신도 있었다. 그리고 아이 아빠의 유전자도 우수했다.그러나 둘째를 낳는 일은 그녀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아니었다.가장 먼저 심유진은 아이 아빠의 동의를 구해야 했다. 아이 아빠가 동의하는 것 같으니, 다음으로 별이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심유진은 별이에게 이런 말을 꺼낸 적이 없었다.남자를 찾을 생각도 없었고 별이가 아직 어려 정확한 판단을 할 거로 생각지도 않았다.별이가 더 커서
별이는 손가락을 굽히며 심유진에게 말했다.“케익, 쵸콜릿, 아이스크림, 치킨...”전부 별이가 좋아하는 음식이었고 심유진이 별이에게 잘 먹이지 않는 음식이기도 했다.심유진의 얼굴이 굳어가는 것을 보자 별이는 눈치 빠르게 육윤엽의 품으로 들어가며 애교를 부렸다.“할아버지, 엄마가 화내요!”육윤엽은 핸드폰을 받아 들고 심유진에게 다급히 해명했다.“알아요, 많이 안 먹였죠, 당연히. 모든 음식을 조금 맛보게 했을 뿐이에요.”모든 음식을 맛만 보게 했다라...그러나 별이가 통통해졌겠지.심유진은 자신이 빨리 육윤엽을 알지 않은 것에 안도했다. 아니면 별이를 대하는 것을 볼 때 재벌 3세마냥 통통하게 먹였을 것이 뻔했다.“내일 데려올게요.”심유진은 말에 육윤엽은 내키지 않았다.“며칠만 더 있다가 데려 가요. 별이와 익숙해진 지 얼마 안 됐어요. 별이가 없으면 너무 외로울 것 같아요.”심유진은 육윤엽을 동정하지 않았다.“더 이상 별이를 뒀다간 말을 더욱 안 들을 거예요.”별이는 화면에 혀를 내보이며 심유진의 말에 반박했다.“내가 언제요! 제가 얼마나 말을 잘 듣는데.”“그래? 그럼 계속 할아버지 집에 있다가 돼지가 될래?”심유진은 일부러 별이를 놀래켰다.“잊지 마. 너무 많이 먹으면 잡아먹는다~”이건 별이가 제일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의 대사였다. 애니메이션의 여주인공 부모님이 너무 많이 먹어 돼지로 변한 장면은 별이가 제일 무서워하는 장면이었다.그 말에 별이는 깜짝 놀라며 육윤엽의 품으로 뛰어들며 말했다.“나 내일 집으로 갈래요!”육윤엽은 눈을 치켜뜨며 심유진을 바라보았다.“이렇게 애를 놀리는 게 어디 있어요?”“하하.”심유진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었다.별이가 잠에 들 시간이 되자 육윤엽은 도우미더러 별이를 씻기게 했다.별이가 가자 육윤엽은 물었다.“그 친구, 괜찮아요?”별이를 육윤엽의 집에 맡기면서 김욱은 하은설이 연인에게 차인 후 심유진이 위로 중이라는 핑계를 대었다.육윤엽의 병 때문에 그에게 많은 일들은 사실대로
“내일부터 출근할 거예요. 그리고 별이도 데리고 올 거고요.”심유진은 자신의 시선을 허태준의 목 위에 올리려 노력했다. 이렇게 해야만 엉뚱한 상상을 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었다.“도우미는 나 대신 찾아봐 줘요.”심유진은 오늘 중개회사와 연락하여 내일 그녀가 퇴근하기 전에 하은설을 돌봐줄 도우미를 보내기로 하였다.완전히 모르는 사람이었기에 중개회사가 아무리 안전을 보장한다 하러라도 심유진은 마음이 놓이지 않아 허태준에게 부탁했다.“그래요.”허태준은 승낙하며 두 손을 허리춤으로 가져가 심유진이 반응을 하기도 전에 하반신을 가리던 수건을 풀었다.“악!”심유진은 아연실색하며 손으로 두 눈을 가렸다.“그만해요!”허태준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침대로 걸어와 잠옷을 걸치며 말했다.“다 본 적 있잖아요.”심유진은 허태준의 말에 한참이나 말을 잇지 못했다.“별이는 아버님한테 가서 잘 있어요?”허태준은 옷을 다 입은 후에야 침대에 오를 수 있게 되었다.허태준은 세날이나 별이를 만나지 못했음에도 육윤엽에게 자신과 심유진의 동거 사실을 들킬가봐 영상통화도 하지 못한 채 심유진을 통해 별이의 안부를 물었다.“잘 있다 말다요.”심유진은 비웃었다.“지금 집으로 오려고 하지도 않아요! 양심도 없는 자식!”허태준은 그런 그녀를 다독였다.“별이와 아버님의 사이가 좋으면 기뻐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기뻐할 게 뭐가 있어요?”심유진은 별이를 생각하면 할수록 열이 올랐다.“아빠가 곁에 있으니까 엄마를 아주 무시하더라고요. 당신을 믿고 까불던 거랑 똑같았어요!”“왜 이런 아들을 낳았는지 몰라요!”심유진의 원망 어린 푸념을 들은 허태준은 턱을 만지며 생각했다.‘혹시... 별이로 육 씨네 두 남자를 대적할 수 있을지도 몰라.’**심유진은 이틀이나 무단결석했음에도 누구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그 원인은...새로 온 직원이 심유진과 친하지 않았고 모든 일에 관심이 없었다.심유진을 머리 아프게 하는 건 오로지 마리아였다.그날 백화점에서 바
마리아는 힐끗 보고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핸드폰의 비밀번호를 풀었다.심유진은 재빨리 자신의 핸드폰 번호를 저장했다.핸드폰을 다시 마리아에게 건네줄 때 눈에 띠는 메세지가 들어왔다.[나를 도와주지 않으면 네가 했던 일 다 폭로할 거야.]심유진은 그 메세지를 보고 얼어버렸다.그 찰나, 마리아는 순식간에 핸드폰을 가져가 책상 위에 엎어 놓았다.마리아의 안색은 매우 어두워졌고 그녀는 힘겹게 괜찮은 척하려 했다.심유진은 남의 프라이버시를 엿들을 생각이 없었기에 아무것도 보지 못한 척 다른 말을 건넸다.“김욱 씨랑 같이 프랑스 출장을 간 사람은 누구예요?”“루씨요.”마리아는 답했다.부서 내의 모든 동료의 이름을 아는 심유진이었지만 이건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그래서 이마저도 오래 대화를 하지는 못했다.“그렇구나.”심유진은 머리를 끄덕이며 한참을 침묵했다.“참 아쉽겠네요.”마리아의 갑작스러운 말에 심유진은 다시 제정신으로 돌아왔다.“네?”심유진은 마리아의 눈빛에 당혹스러움을 보였다.“유진 씨가 원래 프랑스로 출장 가기로 한 거잖아요!”마리아는 한숨을 쉬었다.“나도 원래 유진 씨한테 부탁해서 대리 구매할 리스트를 정리해 두었는데... 면세점이 많이 싸잖아요!”심유진은 움찔했다.“아직 기회가 있는걸요.”심유진은 마리아를 위로했다.“앞으로 자주 출장 가게 될 텐데 그때 부탁하면 되잖아요.”“자주요?”마리아는 입술을 깨물며 천천히 되물었다.“김욱 씨랑요?”“네.”심유진은 앞으로 자신이 겪게 될 어려움에 기분 또한 가라앉았다.“너무 부럽네요!”마리아는 웃으며 말했지만 입가는 경직되었다.“회사 경비로 여행도 하고 멋진 김욱 씨랑 같이 있고~”“마리아 씨에게 양보할까요?”심유진은 농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마리아는 손사래를 쳤다.“김욱 씨는 저를 거들떠보지도 않을걸요.”“누가 그래요?”심유진은 반박했다.“어리고 예쁜 데다 능력도 있고, 누가 감히 그래요?”마리아는 씁쓸하게 웃었다.“됐어요, 이 얘기는 그만하고
“마리아?”육윤엽은 턱을 만지며 진지하게 생각하는 듯 보였다.“괜찮죠. 그런데 걔가 좋아할지 모르겠네요. 내 말도 듣지 않고.”“저의 결혼만 쉽게 관여하시는 거죠?”“아니에요!”육윤엽은 볼멘소리로 말했다.“몇 친구들만 소개해 줬을 뿐이에요. 앞으로 어떻게 발전하던지 그건 내 관여할 바가 아니죠.”육윤엽의 말은 옳았다.“그러고보니...”육윤엽은 불연듯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Mike 엄은 어땠어요? 연락 해요?”심유진은 자신이 쏘아올린 말을 후회했다.“아니요.”심유진은 사실대로 말했다.“잘 맞지 않는 것 같아요.”“몇 번이나 만났다고 맞지 않다고 느꼈어요?”육윤엽은 그녀의 말을 믿지 않고 잠시 침묵하다 물었다.“아직 허태준을 그리워하는 건 아니죠?”심유진은 찔려 침묵했다.그에게 거짓말을 할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진실을 말할 수도 없었다.“당신은 허태준과 맞지 않아요!”육윤엽은 다시 한번 그녀에게 경고했다.“사랑이 다가 아니에요. 그 사람 가족관계가 복잡한데 엮여서 좋을 일이 없을 거예요.”“그 사람이 해결하고 있어요.”심유진은 허태준의 편을 들었다.“YT 그룹은 곧 망할 거예요. 그러면 그 사람 형제들도 얼마 못 가요.”“그건 잘못 알고 있는 거예요.”육윤엽은 그녀의 말을 반박했다.“YT 그룹이 곧 망하기 때문에 그 사람들은 더욱 날뛸 거예요. 어떤 일들을 꾀할 수도 있죠. 아무튼, 내 말을 들어요. 허태준을 멀리 해야 해요.”심유진은 입을 달싹이다 그의 강경한 모습을 보며 말을 하지 않았다.**별이는 심유진이 데리러 올 것을 알고 일찍 아래로 내려갔다.밖의 차소리를 듣고는 손의 장난감을 던져버리고 타닥타닥 달려 나갔다.도우미는 그런 별이를 따라다니며 소리쳤다.“도련님, 조심하세요!”심유진은 지금 화면을 본 적이 있었다. 그건 심연희가 주연인 영화였다.지금은 그런 일이 자신에게 일언 난 것이다.“엄마!”별이는 빠르게 달려왔다. 그의 달림은 작은 바람을 일으켰다.심유진은 팔을 벌려 별이를 품에
이로써 그 말이 증명된 듯싶다. 자식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부모님이라는 것.심유진은 형체마저 제대로 알아낼 수 없는 ‘글자’를 물끄러미 보더니 육윤엽에게 물었다.“천부적인 재능이 있다고요? 난 아무리 봐도 모르겠는데.”그녀의 질의에도 육윤엽은 흔들리지 않았다. 심지어 디테일하게 하나씩 짚어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여기 좀 보시고 다시 평가하시죠. 얼마나 매끄럽고 날카롭습니까. 보는 이로 하여금 이런 느낌이 동시에 드는 건 쉽지 않은 일인데. 힘의 강약까지 고스란히 느껴지지 않습니까? 여기 이 부분 또한 대단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그래요?”심유진은 무심한 듯 두 팔을 감싸안은 채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그럼, 여기에 뭐가 적혀 있는지 알아볼 수 있습니까?”순간 육윤엽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버렸다.고개까지 갸웃거리며 이리저리 한참을 보았으나 도통 뭐라고 적혀 있는지 알 수 없었다.옆에서 답을 기다리고 있을 심유진이 신경 쓰여 그는 찍을 수밖에 없었다.“하... 티... 주...”“아니에요! 완전 틀렸어요.”한 글자도 제대로 읽지 못하자 별이는 불끈 화를 내며 정성껏 만든 자기 ‘작품’을 도로 앗아왔다.그러고는 한 글자씩 짚어가며 정답을 알려주기 시작했다.“허... 태... 준, 우리 아빠 이름이란 말이에요.”별이의 말에 그는 순간 땅속으로 꺼져 들어가고 싶었다. 당황하고 뻘쭘한 마음에 한동안 토 씨 하나 뱉지 못할 만큼.그런 모습이 마냥 우습기만 한 심유진은 불 난 집에 부채질까지 했다.“아직도 별이한테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유명한 서예가로 될 것 같냐고요?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만 거두어도 될 것 같은데.”그러자 육윤엽은 고개를 획 돌리며 매서운 눈빛으로 말했다. 입 좀 다물고 그만 좀 해라고.이때 별이는 ‘허태준’이라고 적혀 있는 종이를 조심스럽게 접기 시작했다. 마치 귀중한 보물을 대하는 듯이 아주 조심스럽게.“저 이거 집으로 가져갈 거예요.”별이는 득의양양한 모습으로
육윤엽은 기어이 저녁 밥을 먹고 가라면 심유진과 별이를 붙잡았다.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담소도 좀 나누다가 두 사람은 슬슬 자리에서 일어나 그만 가려고 했다.차에 오르고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뒷좌석에 앉아 있는 별이에게 졸음이 밀려왔다. 배불리 먹고 신나게 놀아서 인지 피곤했던 별이는 끝끝내 버티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푹 잤다.집에 도착한 심유진은 아래 층에서 허태준에게 전화를 걸었다.“별이 잠 들었어요. 안고 올라가야 할 것 같은데.”그러자 허태준은 두말하지 않고 바로 내려와 별이를 들어 안고 집으로 향했다.인제 제법 무거운 별이임에도 그는 전혀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체력적으로 남녀 사이에 꽤 차이가 난다는 점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직접 보고 나니 저도 모르게 혀를 내두르게 했다.“외할아버지 집에 있는 동안 우리 별이 엄청 잘 먹었어요. 살도 제법 찐 것 같고. 한 번 들어 안고 나면 아주 진이 다 빠질 정도예요. 태준 씨 아니었으면 저 혼자서 안고 올라가지 못했을 거예요.”떡 벌어진 어깨와 넓은 품속으로 쏙 안긴 별이는 무척이나 편안해 보인다.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싶다.심유진의 칭찬에 허태준은 입가에 미소가 일었다.“앞으로 힘쓸 일은 나한테 맡겨요.”“그렇게 할게요.”심유진은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대답했다.엘리베이터에 오르자 심유진은 말머리를 돌리며 물었다.“은설이는 자요?”“잘 모르겠는데요. 저녁 먹고 자기 방으로 돌아간 뒤로 나오지 않았어요.”“컨디션은 어때 보였어요? 괜찮아 보이던가요?”“적어도 어제 보다는 좋아 보이던데.”“도우미는요? 왔었나요? 사람이 어때 보였어요?”“왔었어요. 사람이 어떠한지는 은설 씨한테 물어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저랑은 별다른 소통하지 않았거든요.”“네.”연달아 질문을 날리던 심유진은 답을 듣고 나서 고개를 끄덕였다.순간 엘리베이터 안은 조용해졌고 허태준은 무엇인가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한참을 기다렸으나 여전히 고요하기만 했다. 더 이
엄마인 심유진을 만났을 때보다 훨씬 더 기뻐하며 흥분하는 듯했다.기분 탓일까? 심유진은 질투가 난 듯 이간질을 하려고 했다.“별아, 그렇게 좋아? 근데 엄마가 알기로는 조금 전 외할아버지 댁에서는 외할아버지가 세상 제일 좋다며 한 것 같은데. 아빠보다는 외할아버지가 더 좋다고 별이가 그러지 않았어?”하지만 그녀의 의도와 달리 별이도 허태준도 낚지 않았다.별이는 아주 당당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외할아버지는 우리 집안의 어른이잖아요. 별이는 손자로서 당연히 기쁘게 해드릴 의무가 있다고 봅니다.”조리 정연하게 말하는 별이의 모습에 허태준은 절로 흐뭇했다.사랑이 듬뿍 담긴 손길로 별이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우리 별이 말이 맞아. 아주 잘했어.”허태준의 칭찬까지 등에 업은 별이는 점점 어깨가 으쓱거렸다.지금 이 상황이 달갑지 않은 심유진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물었다.“그럼, 엄마가 좋아 아니면 아빠가 좋아?”“엄마요.”별이는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말했다. 고민 일도 없이 바로.“엄마, 이 질문만 벌써 몇 번째인지 아세요?”같은 질문을 여러 번이나 하고 있는 심유진이 언짢아 별이는 숨김없이 자기의 정서를 고스란히 드러냈다.“음…”훅 치고 들어오는 질문에 심유진은 잠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한 번도 아니고 이미 여러 번 물어본 듯 기억이 새물새물 떠올랐다.아들한테 이런 소리를 들으니 다소 체면이 깎이는 듯했다.“내가 한 번을 하든 두 번을 하든 그게 무슨 상관인데? 엄마는 앞으로 별이한테 계속 물어볼 거야. 우리 아들 귀가 닳도록 물어볼 거라고.”심유진은 별이의 귀를 살포시 잡아당기며 기고만장한 모습을 보였다.이에 별이는 입만 삐죽거리며 허태준의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였다.“참, 여자들이란… 우리 아빠 힘들겠어요.”그러자 허태준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덩달아 속삭였다.“그러니 앞으로 엄마 말씀 잘 들어. 아빠 좀 덜 힘들게.”“아이고, 이게 누구야? 우리 별이 아니야?”이때 살짝 어색해진 분위기를 깨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