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부터 출근할 거예요. 그리고 별이도 데리고 올 거고요.”심유진은 자신의 시선을 허태준의 목 위에 올리려 노력했다. 이렇게 해야만 엉뚱한 상상을 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었다.“도우미는 나 대신 찾아봐 줘요.”심유진은 오늘 중개회사와 연락하여 내일 그녀가 퇴근하기 전에 하은설을 돌봐줄 도우미를 보내기로 하였다.완전히 모르는 사람이었기에 중개회사가 아무리 안전을 보장한다 하러라도 심유진은 마음이 놓이지 않아 허태준에게 부탁했다.“그래요.”허태준은 승낙하며 두 손을 허리춤으로 가져가 심유진이 반응을 하기도 전에 하반신을 가리던 수건을 풀었다.“악!”심유진은 아연실색하며 손으로 두 눈을 가렸다.“그만해요!”허태준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침대로 걸어와 잠옷을 걸치며 말했다.“다 본 적 있잖아요.”심유진은 허태준의 말에 한참이나 말을 잇지 못했다.“별이는 아버님한테 가서 잘 있어요?”허태준은 옷을 다 입은 후에야 침대에 오를 수 있게 되었다.허태준은 세날이나 별이를 만나지 못했음에도 육윤엽에게 자신과 심유진의 동거 사실을 들킬가봐 영상통화도 하지 못한 채 심유진을 통해 별이의 안부를 물었다.“잘 있다 말다요.”심유진은 비웃었다.“지금 집으로 오려고 하지도 않아요! 양심도 없는 자식!”허태준은 그런 그녀를 다독였다.“별이와 아버님의 사이가 좋으면 기뻐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기뻐할 게 뭐가 있어요?”심유진은 별이를 생각하면 할수록 열이 올랐다.“아빠가 곁에 있으니까 엄마를 아주 무시하더라고요. 당신을 믿고 까불던 거랑 똑같았어요!”“왜 이런 아들을 낳았는지 몰라요!”심유진의 원망 어린 푸념을 들은 허태준은 턱을 만지며 생각했다.‘혹시... 별이로 육 씨네 두 남자를 대적할 수 있을지도 몰라.’**심유진은 이틀이나 무단결석했음에도 누구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그 원인은...새로 온 직원이 심유진과 친하지 않았고 모든 일에 관심이 없었다.심유진을 머리 아프게 하는 건 오로지 마리아였다.그날 백화점에서 바
마리아는 힐끗 보고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핸드폰의 비밀번호를 풀었다.심유진은 재빨리 자신의 핸드폰 번호를 저장했다.핸드폰을 다시 마리아에게 건네줄 때 눈에 띠는 메세지가 들어왔다.[나를 도와주지 않으면 네가 했던 일 다 폭로할 거야.]심유진은 그 메세지를 보고 얼어버렸다.그 찰나, 마리아는 순식간에 핸드폰을 가져가 책상 위에 엎어 놓았다.마리아의 안색은 매우 어두워졌고 그녀는 힘겹게 괜찮은 척하려 했다.심유진은 남의 프라이버시를 엿들을 생각이 없었기에 아무것도 보지 못한 척 다른 말을 건넸다.“김욱 씨랑 같이 프랑스 출장을 간 사람은 누구예요?”“루씨요.”마리아는 답했다.부서 내의 모든 동료의 이름을 아는 심유진이었지만 이건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그래서 이마저도 오래 대화를 하지는 못했다.“그렇구나.”심유진은 머리를 끄덕이며 한참을 침묵했다.“참 아쉽겠네요.”마리아의 갑작스러운 말에 심유진은 다시 제정신으로 돌아왔다.“네?”심유진은 마리아의 눈빛에 당혹스러움을 보였다.“유진 씨가 원래 프랑스로 출장 가기로 한 거잖아요!”마리아는 한숨을 쉬었다.“나도 원래 유진 씨한테 부탁해서 대리 구매할 리스트를 정리해 두었는데... 면세점이 많이 싸잖아요!”심유진은 움찔했다.“아직 기회가 있는걸요.”심유진은 마리아를 위로했다.“앞으로 자주 출장 가게 될 텐데 그때 부탁하면 되잖아요.”“자주요?”마리아는 입술을 깨물며 천천히 되물었다.“김욱 씨랑요?”“네.”심유진은 앞으로 자신이 겪게 될 어려움에 기분 또한 가라앉았다.“너무 부럽네요!”마리아는 웃으며 말했지만 입가는 경직되었다.“회사 경비로 여행도 하고 멋진 김욱 씨랑 같이 있고~”“마리아 씨에게 양보할까요?”심유진은 농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마리아는 손사래를 쳤다.“김욱 씨는 저를 거들떠보지도 않을걸요.”“누가 그래요?”심유진은 반박했다.“어리고 예쁜 데다 능력도 있고, 누가 감히 그래요?”마리아는 씁쓸하게 웃었다.“됐어요, 이 얘기는 그만하고
“마리아?”육윤엽은 턱을 만지며 진지하게 생각하는 듯 보였다.“괜찮죠. 그런데 걔가 좋아할지 모르겠네요. 내 말도 듣지 않고.”“저의 결혼만 쉽게 관여하시는 거죠?”“아니에요!”육윤엽은 볼멘소리로 말했다.“몇 친구들만 소개해 줬을 뿐이에요. 앞으로 어떻게 발전하던지 그건 내 관여할 바가 아니죠.”육윤엽의 말은 옳았다.“그러고보니...”육윤엽은 불연듯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Mike 엄은 어땠어요? 연락 해요?”심유진은 자신이 쏘아올린 말을 후회했다.“아니요.”심유진은 사실대로 말했다.“잘 맞지 않는 것 같아요.”“몇 번이나 만났다고 맞지 않다고 느꼈어요?”육윤엽은 그녀의 말을 믿지 않고 잠시 침묵하다 물었다.“아직 허태준을 그리워하는 건 아니죠?”심유진은 찔려 침묵했다.그에게 거짓말을 할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진실을 말할 수도 없었다.“당신은 허태준과 맞지 않아요!”육윤엽은 다시 한번 그녀에게 경고했다.“사랑이 다가 아니에요. 그 사람 가족관계가 복잡한데 엮여서 좋을 일이 없을 거예요.”“그 사람이 해결하고 있어요.”심유진은 허태준의 편을 들었다.“YT 그룹은 곧 망할 거예요. 그러면 그 사람 형제들도 얼마 못 가요.”“그건 잘못 알고 있는 거예요.”육윤엽은 그녀의 말을 반박했다.“YT 그룹이 곧 망하기 때문에 그 사람들은 더욱 날뛸 거예요. 어떤 일들을 꾀할 수도 있죠. 아무튼, 내 말을 들어요. 허태준을 멀리 해야 해요.”심유진은 입을 달싹이다 그의 강경한 모습을 보며 말을 하지 않았다.**별이는 심유진이 데리러 올 것을 알고 일찍 아래로 내려갔다.밖의 차소리를 듣고는 손의 장난감을 던져버리고 타닥타닥 달려 나갔다.도우미는 그런 별이를 따라다니며 소리쳤다.“도련님, 조심하세요!”심유진은 지금 화면을 본 적이 있었다. 그건 심연희가 주연인 영화였다.지금은 그런 일이 자신에게 일언 난 것이다.“엄마!”별이는 빠르게 달려왔다. 그의 달림은 작은 바람을 일으켰다.심유진은 팔을 벌려 별이를 품에
이로써 그 말이 증명된 듯싶다. 자식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부모님이라는 것.심유진은 형체마저 제대로 알아낼 수 없는 ‘글자’를 물끄러미 보더니 육윤엽에게 물었다.“천부적인 재능이 있다고요? 난 아무리 봐도 모르겠는데.”그녀의 질의에도 육윤엽은 흔들리지 않았다. 심지어 디테일하게 하나씩 짚어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여기 좀 보시고 다시 평가하시죠. 얼마나 매끄럽고 날카롭습니까. 보는 이로 하여금 이런 느낌이 동시에 드는 건 쉽지 않은 일인데. 힘의 강약까지 고스란히 느껴지지 않습니까? 여기 이 부분 또한 대단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그래요?”심유진은 무심한 듯 두 팔을 감싸안은 채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그럼, 여기에 뭐가 적혀 있는지 알아볼 수 있습니까?”순간 육윤엽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버렸다.고개까지 갸웃거리며 이리저리 한참을 보았으나 도통 뭐라고 적혀 있는지 알 수 없었다.옆에서 답을 기다리고 있을 심유진이 신경 쓰여 그는 찍을 수밖에 없었다.“하... 티... 주...”“아니에요! 완전 틀렸어요.”한 글자도 제대로 읽지 못하자 별이는 불끈 화를 내며 정성껏 만든 자기 ‘작품’을 도로 앗아왔다.그러고는 한 글자씩 짚어가며 정답을 알려주기 시작했다.“허... 태... 준, 우리 아빠 이름이란 말이에요.”별이의 말에 그는 순간 땅속으로 꺼져 들어가고 싶었다. 당황하고 뻘쭘한 마음에 한동안 토 씨 하나 뱉지 못할 만큼.그런 모습이 마냥 우습기만 한 심유진은 불 난 집에 부채질까지 했다.“아직도 별이한테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유명한 서예가로 될 것 같냐고요?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만 거두어도 될 것 같은데.”그러자 육윤엽은 고개를 획 돌리며 매서운 눈빛으로 말했다. 입 좀 다물고 그만 좀 해라고.이때 별이는 ‘허태준’이라고 적혀 있는 종이를 조심스럽게 접기 시작했다. 마치 귀중한 보물을 대하는 듯이 아주 조심스럽게.“저 이거 집으로 가져갈 거예요.”별이는 득의양양한 모습으로
육윤엽은 기어이 저녁 밥을 먹고 가라면 심유진과 별이를 붙잡았다.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담소도 좀 나누다가 두 사람은 슬슬 자리에서 일어나 그만 가려고 했다.차에 오르고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뒷좌석에 앉아 있는 별이에게 졸음이 밀려왔다. 배불리 먹고 신나게 놀아서 인지 피곤했던 별이는 끝끝내 버티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푹 잤다.집에 도착한 심유진은 아래 층에서 허태준에게 전화를 걸었다.“별이 잠 들었어요. 안고 올라가야 할 것 같은데.”그러자 허태준은 두말하지 않고 바로 내려와 별이를 들어 안고 집으로 향했다.인제 제법 무거운 별이임에도 그는 전혀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체력적으로 남녀 사이에 꽤 차이가 난다는 점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직접 보고 나니 저도 모르게 혀를 내두르게 했다.“외할아버지 집에 있는 동안 우리 별이 엄청 잘 먹었어요. 살도 제법 찐 것 같고. 한 번 들어 안고 나면 아주 진이 다 빠질 정도예요. 태준 씨 아니었으면 저 혼자서 안고 올라가지 못했을 거예요.”떡 벌어진 어깨와 넓은 품속으로 쏙 안긴 별이는 무척이나 편안해 보인다.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싶다.심유진의 칭찬에 허태준은 입가에 미소가 일었다.“앞으로 힘쓸 일은 나한테 맡겨요.”“그렇게 할게요.”심유진은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대답했다.엘리베이터에 오르자 심유진은 말머리를 돌리며 물었다.“은설이는 자요?”“잘 모르겠는데요. 저녁 먹고 자기 방으로 돌아간 뒤로 나오지 않았어요.”“컨디션은 어때 보였어요? 괜찮아 보이던가요?”“적어도 어제 보다는 좋아 보이던데.”“도우미는요? 왔었나요? 사람이 어때 보였어요?”“왔었어요. 사람이 어떠한지는 은설 씨한테 물어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저랑은 별다른 소통하지 않았거든요.”“네.”연달아 질문을 날리던 심유진은 답을 듣고 나서 고개를 끄덕였다.순간 엘리베이터 안은 조용해졌고 허태준은 무엇인가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한참을 기다렸으나 여전히 고요하기만 했다. 더 이
엄마인 심유진을 만났을 때보다 훨씬 더 기뻐하며 흥분하는 듯했다.기분 탓일까? 심유진은 질투가 난 듯 이간질을 하려고 했다.“별아, 그렇게 좋아? 근데 엄마가 알기로는 조금 전 외할아버지 댁에서는 외할아버지가 세상 제일 좋다며 한 것 같은데. 아빠보다는 외할아버지가 더 좋다고 별이가 그러지 않았어?”하지만 그녀의 의도와 달리 별이도 허태준도 낚지 않았다.별이는 아주 당당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외할아버지는 우리 집안의 어른이잖아요. 별이는 손자로서 당연히 기쁘게 해드릴 의무가 있다고 봅니다.”조리 정연하게 말하는 별이의 모습에 허태준은 절로 흐뭇했다.사랑이 듬뿍 담긴 손길로 별이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우리 별이 말이 맞아. 아주 잘했어.”허태준의 칭찬까지 등에 업은 별이는 점점 어깨가 으쓱거렸다.지금 이 상황이 달갑지 않은 심유진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물었다.“그럼, 엄마가 좋아 아니면 아빠가 좋아?”“엄마요.”별이는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말했다. 고민 일도 없이 바로.“엄마, 이 질문만 벌써 몇 번째인지 아세요?”같은 질문을 여러 번이나 하고 있는 심유진이 언짢아 별이는 숨김없이 자기의 정서를 고스란히 드러냈다.“음…”훅 치고 들어오는 질문에 심유진은 잠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한 번도 아니고 이미 여러 번 물어본 듯 기억이 새물새물 떠올랐다.아들한테 이런 소리를 들으니 다소 체면이 깎이는 듯했다.“내가 한 번을 하든 두 번을 하든 그게 무슨 상관인데? 엄마는 앞으로 별이한테 계속 물어볼 거야. 우리 아들 귀가 닳도록 물어볼 거라고.”심유진은 별이의 귀를 살포시 잡아당기며 기고만장한 모습을 보였다.이에 별이는 입만 삐죽거리며 허태준의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였다.“참, 여자들이란… 우리 아빠 힘들겠어요.”그러자 허태준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덩달아 속삭였다.“그러니 앞으로 엄마 말씀 잘 들어. 아빠 좀 덜 힘들게.”“아이고, 이게 누구야? 우리 별이 아니야?”이때 살짝 어색해진 분위기를 깨뜨
하은설은 그렇게 한참 동안 울고불고 난리를 쳤다. 자기한테 잘해 주지 말라며.심유진과 별이는 번갈아 가며 하은설을 얼리고 닥쳤고 그들이 노력한 끝에 하은설은 마침내 울음을 그칠 수 있었다.별이는 심지어 오늘 하은설과 함께 자겠다며 예전이나 지금이나 하은설에 대한 자기감정은 변함이 없음을 확신해 주었다.좋은 마음으로 한 말인데, 하마터면 하은설은 그런 별이의 마음에 감동되어 또다시 눈물을 쏟을 뻔했다.정신을 쏙 빼놓는 듯한 시간을 뒤로 하고 심유진은 마침내 두 사람을 방으로 돌려보냈다.기진맥진한 몸을 이끈 채 그녀도 자기 침실로 돌아왔다.허태준은 고생한 심유진을 위해 마사지를 자처하며 꼼꼼히 주물러 주었다.“다들 자요?”“네. 내일 아침에 별이 등교는 제가 할 테니 태준 씨는 은설이 데리고 병원에 가주세요.”“갑자기요?”허태준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어디 아픈 곳이라도 있는 거예요?”“그건 아니고.”피곤함이 잔뜩 묻어 있는 심유진은 어쩔 수 없어 했다.“허택양 씨가 지내고 있는 그 병원으로 데리고 가주세요. 은설이가 만나서 얘기 똑바로 하고 끝낼 모양이에요.”“말려야 하는 거 아니에요? 말려야 해요.”허태준은 이 일에 대해 찬성하지 않았다.허택양 같은 인간과 더 이상 얽히 필요도 없고 그런 인간 때문에 시간 낭비할 것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말렸는데 듣지 않아요.”심유진도 피곤하기는 매한가지이다.“허택양 씨한테 그동안 너무 당한 거 같아 속에서 내려가지 않나 봐요. 만나서 얘기하지 않는 이상 평생 끙끙 앓을지도 몰라요.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분풀이라도 좀 하고 싶은 모습인데 찾아가서 때리거나 아니면 욕하거나 둘 중 하나겠죠. 아직 회복 중이고 몸도 허약하니 너무 흥분하지 않게 태준 씨가 옆에서 좀 지켜봐 주세요. 그러다가 쓰러질지도 몰라요.”이에 허태준은 입술을 사리물었다.“알았어요.”…심유진과 별이는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허태준은 지금 홀로 거실에 앉아 하은설을 기다리고 있다
하은설을 보게 되는 순간 초점을 잃었던 그의 눈은 순간 빛이 나기 시작했다.최선을 다해 입꼬리를 올리며 웃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은설아, 왔어.”유난히 즐거워하는 허택양이다.“저 왔어요.”하은설도 심유진만큼이나 프로페셔널하여 바로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이상함을 감지하지 못한 허택양은 그녀와 담소를 나누고 나서 본론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무척이나 서두르는 모습으로.“너 지난번에 소송 취소한다고 한 거 말이야…”“경찰서에 이미 다녀왔어요.”하은설은 그가 내민 손을 꼭 잡고 이를 악물었다.용솟음치는 역겨운 기억과 그 시간을 애써 억누르며 말을 이어나갔다.“근데 신고자가 제가 아니어서 취소할 수 없다고 그랬어요.”울먹이는 모습과 더불어 무척이나 억울한 듯한 표정까지 보이면서.그 말에 허택양은 눈에 훤히 보이게 당황했다.“심유진 씨는? 만나지 않았어?”“아니요. 앞으로 절대 다시 심유진 찾으러 가지 않을 거예요.”독을 품은 듯한 모습으로 하은설은 그들에 대한 한을 털어 놓았다.“심유진, 허태준 때문에 당신이 이렇게 된 거잖아요. 심유진 이름 석 자만 들어도 엮겨우니 다시는 입에 올리지도 마세요. 앞으로 다시는 만나지 않을 거고 인연 끊고 살 거예요.”“그럼, 난 어떡해? 소송은 어떻게 할 건데?”단호한 하은설의 모습에 허택양은 점점 불안했다.“택양 씨, 제가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요.”완쾌되지 않은 하은설은 오래 서 있을 수 없다.하여 의자를 그의 병상 옆으로 가져와 천천히 앉은 뒤 말을 이어갔다.“소송 취소하는 것 보다 우리 측에서 변호사 찾아서 심유진 걔들 고소하는 건 어때요? 허태준이 신고할 때 당신이 심유진 납치했다고 그랬다던데요. 경찰이 나한테 알려준 거예요. 근데 심유진 납치한 적 없잖아요. 그럼, 가짜 신고를 했다고 경력 낭비했다고 고소하고 당신 명예까지 침범했다고 그러면 되잖아요. 어때요?”허택양의 생각대로라면 하은설은 응당 심유진을 찾아가서 크게 한바탕 싸워야 한다.그러고 나서 심유진 스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