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유진은 술집에서 일어나는 지저분한 일들이 심연희에게 일어날까 걱정했다. 하지만 심연희가 부른다고 심유진이 혼자 달려갈 만큼 어리석지 않았다. 만약 남자들이 있다면 심유진이 나서도 손을 쓸 수 없을 뿐 아니라 혹시 이게 심연희가 판 함정일 수도 있지 않은가. 심유진은 머리를 굴려 누구에게 연락할까 고민했다.그 순간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여형민 씨한테 연락을 해봐야겠네.”**여형민의 차가 아파트 입구로 들어왔다.“유진 씨 뒤에 앉아요.”“네.”심유진은 조수석 문고리를 놓고 뒷좌석 문을 열었다.그녀가 차에 올라타자 앞에 누군가가 앉아있는 게 보였다.“어? 허 대표님?”심유진은 백미러로 보이는 그의 얼굴에 왠지 모르게 심장이 두근거렸다.“같이 계실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제가 괜히 형민 씨한테 연락해서……”“괜찮아요. 둘 다 안 자고 있었거든요. 오랜만에 모여 얘기하느라 시간이 이렇게 된 줄도 몰랐네요.”심유진은 허태준을 힐끔 바라보았다.“그나저나 유진 씨 언제 여동생이 생긴 거죠? 지금까지 여동생 얘기는 들은 적이 없었는데 말이에요.”여형민은 분위기를 풀어보려는 듯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아, 그게 여동생은 부산에 있었거든요. 남자친구 때문에 잠깐 대구에 온 거예요.”“남자친구도 있는 사람이 이 밤중에 왜 유진 씨보고 데리러 오라는 거죠?”여형민의 말에는 가시가 돋아 있었다.“아 그 남자친구가 좀 보수적이라 술집에 못 가게 한다고 몰래 갔나 봐요.”“어쩐지…… 그래서 유진 씨가 대신 가는 거구나? 힘들겠네요.”심유진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저었다.**여형민은 차를 빠르게 몰아 30분도 안돼 동성로에 도착했다.그동안 심유진은 줄곧 심연희와 카톡을 통해 그녀가 무사한지 확인했다.차는 골목 입구에만 세울 수 있어서 세 사람이 함께 차에서 내려 길거리를 걸어 들어갔다.새벽 두시가 넘은 시간 동성로에는 술에 취해 비틀거리거나 벽을 잡고 토하는 사람이 보였다. 더러운 것을 보자 심유진은 얼른 고개를 돌려
퀸 바는 총 세 층으로 구성되었는데 1층은 로비, 2층은 바, 3층은 VIP룸이었다.1층에서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 입구에 직원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주민등록증을 확인해야만 출입이 가능했다.2층으로 올라가자마자 심유진은 귀청을 찢을 듯한 음악에 깜짝 놀라 두 귀를 틀어막았다.바 안 조명은 어두웠고 정수리 위 색조명은 야릇한 보라색을 띠고 있었으며 사람마다 얼굴색이 똑같았다.트렌디한 옷차림의 젊은이들이 무대 중앙에서 자유롭게 춤을 추고 있었고 주위 테이블에는 삼삼오오 사람들이 가득 모여앉아 있었다.심연희는 자신이 2층 여자 화장실에 갇혀있다고 했다.심유진은 지나가는 직원을 잡고 소리 높여 여자 화장실 위치를 여러 번이나 물었다. 그러다가 제스처까지 더해가며 묻자 그제야 알아들은 직원이 대답했다.“여자 화장실이요? 여기서 끝까지 쭉 직진하다가 왼쪽으로 턴하시면 돼요.”직원도 같은 방법으로 그녀에게 길을 알려주었다.세 사람은 힘겹게 인파를 뚫고 지나갔다. 몇몇 여자들이 잔뜩 겁에 질린 표정으로 화장실에서 나오고 있었다.심유진은 저도 모르게 발걸음을 다그쳤다.화장실 입구에는 염색에 문신까지 한 젊은이들이 잔뜩 모여있었다. 그들은 저마다 손가락 사이에 담배를 낀 채 다양한 자세로 입구를 막아서고 있었다.스멀스멀 연기가 피어오르면서 코를 찌르는 듯한 냄새가 풍겨오자 심유진은 코가 간지러워 돌아서서 힘차게 재채기했다.그들 뒤에는 민머리 사내가 능글맞은 미소를 지은 채 거센 힘으로 여자 화장실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아가씨, 반항하지 말고 나와서 오빠랑 놀아!”허태준은 미간을 찌푸린 채 심유진의 손을 잡고 화장실 옆 직원사무실 통로로 향했다. 여형민도 그들의 뒤를 따랐다.이곳은 드나드는 사람이 별로 없는 데다 무대 중앙과 멀리 떨어졌기에 상대적으로 조용했다.적어도 정상적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허태준은 여형민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차키.”여형민은 호주머니 안에서 차키를 꺼내 그에게 던져주며 물었다.“왜?”허태준은 차키를 심유진에
“...네.”심연희는 그의 카리스마에 깜짝 놀랐는지 조금 전과 달리 흥분을 가라앉혔다.“그쪽 상황 체크할 수 있게 연락 끊지 마.”하지만 허태준이 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휴대폰 너머로 쾅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이윽고 심연희는 기겁하며 비명을 질렀다.“악! 들어왔어요!”심유진은 깜짝 놀라 허태준의 당부는 잊고 그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화장실로 뛰어가려고 했다.“우리 빨리 가서 구해요!”하지만 이윽고 허태준이 그녀를 도로 잡아당겼다.허태준은 그녀에게 휴대폰을 돌려주며 어깨를 누르더니 허리 숙여 그녀와 눈높이를 맞추었다.“내 말 들어, 지금 바로 나가. 심연희 씨 아무 일 없게 할게.”그는 심유진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확신에 찬 말투로 말했다. 그의 말에 그녀의 심장은 점차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다.“네.”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허태준과 여형민은 화장실로 돌아왔다.왼쪽 문은 이미 열렸고 입구를 지키는 사람은 두 명밖에 남지 않았으며 나머지 사람들은 죄다 안으로 들어갔다.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그들은 심연희의 울부짖는 소리와 남자들의 방자한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언니! 구해줘!”“언니 불러도 소용없어! 오빠라고 부르면 내가 예뻐해 줄 수도 있는데!”“오지 마! 오지 말라고! 악!”허태준과 여형민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더니 동시에 계단을 밟았다.문밖을 지키고 있던 두 사람은 인기척을 느끼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오는 사람이 남자라는 것을 확인하고 별로 신경 쓰지 않았지만 허태준과 여형민이 그들 앞으로 걸어가자 그제야 다시 고개를 들었다.“눈멀었어? 남자 화장실은 맞은 편에 있는 거 안 보여?”빨간 머리 깡패가 입에 담배를 문 채 짜증 난 듯 욕설을 퍼부었다.숨 막히는 전자담배 연기가 몽땅 허태준의 얼굴을 향해 뿜어졌다. 그 속에는 짙은 알코올 향도 섞여 있어 허태준은 짜증 난 듯 뒤로 물러서더니 다리를 뻗어 그를 힘 있게 걷어찼다.빨간 머리 깡패는 배를 움켜잡은 채 바닥을 굴러다니며 고통을 호소했다
“이 손 놔! 내 몸에 손대지 마!”절망에 빠진 심연희는 울부짖으며 말했다.너무 세게 운 탓에 그녀의 메이크업은 이미 엉망진창이 되어버리고 말았다.핑크색 옷깃이 좌우로 찢기며 어깨가 반쯤 드러났다.대머리 깡패는 소리를 듣고 곧바로 고개를 돌렸다.바닥에 쓰러진 자신의 부하를 보고 그는 깜짝 놀람과 동시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젠장, 당신들 누구야?!”그는 심연희를 내려놓더니 옆에 놓은 걸레를 잡고 힘 있게 허태준에게 내동댕이쳤다.“감히 내 일을 망쳐!”허태준은 눈도 깜빡하지 않고 맨손으로 걸레를 잡은 다음 대머리 깡패가 반응하기도 전에 앞으로 확 잡아당겼다. 그러자 대머리 깡패는 그대로 걸레와 함께 그의 앞으로 끌려왔다.대머리 깡패가 앞으로 넘어지려고 할 때 허태준이 잽싸게 옆으로 비켰다. 그러고는 다리를 들어 그대로 대머리 깡패의 오금을 발로 걷어찼다.철퍽 소리와 함께 대머리 깡패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심유진은 조심스럽게 취객들 사이를 스쳐 지나갔다. 쓸데없는 싸움이 일어날까 봐 최대한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하려던 것이었다.여형민의 차에 올라타자마자 그녀는 허태준의 분부대로 모든 창문을 닫았다.그녀는 바를 나서자마자 경찰에 신고했고 지금 그녀가 해야 할 일은 바로 차 안에서 경찰이 오기까지 얌전히 기다리는 것이었다.그녀는 휴대폰을 꼭 잡은 채 불안한 마음으로 창밖을 내다보며 허태준의 연락을 기다렸다.그녀의 심장은 너무 긴장한 탓에 계속 불규칙적으로 뛰고 있었다.10분 정도 지나자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밤에 보는 경광등은 유난히 눈에 띄었다.마치 사막을 오래 거닐다가 본 오아시스처럼 심유진은 흥분한 나머지 눈물을 흘릴 뻔했다. 그녀는 다급히 차에서 내려 경찰차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여기에요! 제가 신고했어요!”심유진이 경찰들을 데리고 퀸 바로 돌아갔을 때 1층 로비에는 사람들이 잔뜩 몰려있었고 위아래로 바삐 돌아다니는 사람도 있었다.경찰이 한 사람을 잡고 물었다.“무슨 일이에요?”“2층 화장실에서 싸움 났어요
심유진을 발끌을 돌려 곧바로 심연희 앞으로 걸어갔다.그녀는 심연희의 팔을 붙잡더니 옷깃을 잡고 여며주며 물었다.“어때? 다친 데는 없어?”심연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허태준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허 대표님...”그녀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괜찮으세요?”“응.”허태준은 그녀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심연희는 아랫입술을 꽉 깨문 채 억울한 눈빛을 지어 보였다.“어떻게 된 일이에요?”경찰이 어두운 표정으로 물었다.심연희가 먼저 입을 열었다.“저 사람...”그녀는 꿈쩍하지 않고 쓰러져있는 대머리 깡패를 가리키며 말했다.“날 강간하려고 했어요... 다행히도 허 대표님께서 제때 도착하셔서... 그렇지 않으면... 그렇지 않으면 난...”말을 마친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현장 상태가 그녀가 한 말과 일치했기에 경찰도 길게 묻지 않았다.“몽땅 데려가서 사건경위서 작성해.”유일하게 따라온 여경이 나서서 그녀를 위로했다.깡패들은 허태준과 여형민에게 호되게 맞은 탓에 경찰의 부축이 있어야만 겨우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바를 나서는 길에서도 그들은 여전히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 우두머리로 보이는 대머리 깡패는 겁 없이 허태준을 위협하기까지 했다.“너 이 자식, 딱 기다려!”심연희는 심유진에게서 자신의 팔을 빼더니 소심하게 허태준 옆으로 다가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사과했다.“죄송합니다, 허 대표님... 이런 일에 휘말리게 만들어서 죄송해요.”허태준은 그녀와 거리를 유지하며 담담한 말투로 대답했다.“괜찮아.”심연희는 두 눈을 깜빡이더니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그녀는 아랫입술을 힘껏 깨물었다. 립스틱이 사라지자 핏기 없는 입술이 고스란히 드러났다.**경찰은 깡패들을 죄다 경찰차에 태웠고 여형민은 그들의 뒤를 따르게 되었다.허태준은 뒷좌석 문을 열더니 심유진을 불렀다.“이리 와.”심유진이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네?”“타.”허태준의 명령은 짧고 심플했지만 그속에
심연희는 부끄러운 마음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신세만 지네요.”여형민은 애써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괜찮아요, 당연한 일을 하는 것뿐인데요.”심유진은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그를 힐끗 쳐다보았지만 그의 속마음을 직접 드러내진 않았다.**엘리베이터에 오르자마자 여형민은 18, 19, 20층 버튼을 순서대로 눌렀다.“...엥?”심연희는 고개를 돌려 의아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왜 세 층이나 누르는 거예요?”여형민은 입을 꾹 다문 채 미소를 짓더니 의미심장한 말투로 말했다.“잠시 뒤면 알게 될 거예요.”엘리베이터는 곧 18층에 도착했고 문이 열리자 여형민이 내리더니 입구를 향해 손을 흔들며 말했다.“안녕히 가세요, 심연희 씨.”“엥?”심연희는 깜짝 놀라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하지만 여형민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엘리베이터 문이 도로 닫혔다.심연희는 또다시 심유진을 바라보았다.“여 변호사님 18층에 살아.”심유진이 그녀에게 해명을 늘어놓았다.“난 19층에 살고 허 대표님은 20층에 사셔.”“모두 이 건물에 산단 말이야?”심연희는 적잖이 깜짝 놀랐다.“아닌데!”그녀는 심유진과 허태준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두 사람 사귀는 사이 아니야? 왜 같이 살지 않는 거야?”예상치 못한 질문에 심유진은 순간 할 말을 잃고 말았다.하지만 그녀가 핑계를 생각해 내기 전에 허태준이 물었다.“그럼 심연희 씨는 남자친구와 함께 살아?”그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마치 알아서는 안 될 일을 발견한 것처럼 얘기했다.심연희는 곧바로 손을 저으며 말했다.“아니에요! 저와 정재하는 모두 가정교육을 엄격하게 받아서...”그러자 허태준이 비아냥거리는 듯한 말투로 물었다.“심연희 씨 뜻은 나랑 당신 언니가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거야?”“아니에요!”심연희는 당황한 나머지 횡설수설했다.“그런 뜻은 아니었어요! 허 대표님, 절대 오해하지 마세요!”“띵!”엘리베이터는 마침 19층에 도착했다.심유진은 심연희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심유진은 두 눈을 질끈 감더니 북받쳐 오르는 화를 꾹 눌러 담고 욕실을 가리키며 말했다.“세면대 바로 옆에 플러그가 있어. 거기서 말려.”“...응.”심연희는 얌전히 플러그를 뽑더니 드라이기를 안은 채 욕실로 들어갔다.심유진은 침대에서 내려와 티슈로 바닥에 떨어진 물을 깨끗하게 닦았다.심연희가 머리를 말리고 나왔을 때 심유진은 이미 잠이 든 상태였다.심연희는 그녀의 침대에 올라가 이불속으로 쏙 들어가더니 그녀의 팔을 잡고 부르기 시작했다.“언니~”심연희는 심유진이 잠에서 깰 때까지 끊임없이 그녀를 불렀다.심유진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짜증 난 말투로 물었다.“왜?”심연희는 깜짝 놀라 아랫입술을 꾹 깨문 채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난...”그녀는 겁먹은 듯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잠이 안 와서... 언니랑 얘기나 하려고 했지. 졸, 졸리면 그냥 자, 괜찮아.”그녀는 손등으로 눈물을 닦더니 애써 괜찮은 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난 신경 쓰지 마.”말을 마친 그녀는 곧바로 몸을 돌려 심유진을 등지고 누웠다.심유진은 심연희가 코를 들이키는 소리도 들을 수 있었고 그녀의 손이 움직이는 것도 똑똑히 볼 수 있었다.그녀는 마음속으로 길게 한숨을 내쉰 뒤 결국 타협하기로 마음먹었다.“무슨 얘기하고 싶은데?”그녀의 말투는 조금 전보다 많이 부드러워졌다.“언니, 그냥 자!”심연희가 다급히 말했다.“진짜 난 신경 쓰지 않아도 돼!”“괜찮아, 나 안 졸려.”심유진은 마음과 반대되는 말밖에 꺼낼 수 없었다.“너랑 얘기하다가 잘래.”심연희는 반신반의하며 몸을 돌렸다.“진짜?”“응.”심연희는 곧바로 심유진을 껴안더니 그녀의 품에 얼굴을 비비적거렸다.“언니가 최고야!”“하하.”심유진은 어쩔 수 없이 마음에도 없는 미소를 지었다.“언니, 왜 집에 남자가 사는 흔적이 하나도 없는 거야?”심연희가 물었다.“보니까 욕실에도 온통 언니 물건뿐이던데~”“나 혼자 사는데 당연히 내 물건밖에 없지.”“그럼 허 대표님께선 단 한
7시를 조금 넘겼는데 심유진은 심연희의 부름 소리를 이기지 못하고 침대에서 일어났다.통틀어 잠을 청한 시간이 두 시간도 되지 않았기에 그녀는 눈을 반쯤 감은 채 끊임없이 하품을 했다.반면 심연희는 피곤한 기색 하나 없이 생기가 넘쳤다.“언니, 빨리 와! 늦으면 싱싱한 재료를 살 수 없단 말이야!”그녀는 심유진을 끌고 힘차게 밖으로 걸어 나갔다.마트는 채소 시장이 아니었기에 매일 8시 반에 정식으로 영업을 시작했다.그녀들이 도착했을 때 점원은 금방 실어 온 채소들을 가게 안으로 옮기고 있었다. 게다가 일부 진열대는 텅텅 비어있었고 저울대와 카운터 앞에도 사람 하나 없었다.심연희는 입구에서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언니, 왜 8시 반부터 영업한다고 얘기하지 않았어? 이럴 줄 알았으면 메이크업이라도 하고 나왔을 텐데!”심유진은 지친 나머지 반박할 힘도 없었다.**심연희는 점원에게 가장 좋은 닭고기와 갈비 두 줄, 그리고 약간 곁들어진 반찬을 요구했다.그녀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메뉴를 세어보았다.“양념갈비, 목이버섯 참마 볶음에 삼계탕이면 충분하겠지?”그러자 심유진이 대충 둘러대며 말했다.“충분해.”“그럼... 언니 레시피 알아?”심유진은 순간 잠에서 깼다.“응?”심연희는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내가 단 한 번도 요리한 적이 없거든, 그래서... 언니 도움이 필요할지도 몰라.”하지만 사실이 증명해 주다시피 심연희에게 필요한 건 도움뿐만이 아니었다.그녀는 요리의 기본도 아예 몰랐다.갈비는 물에 데쳐야 하고 목이버섯은 물에 담가야 하며 탕을 끓일 때 냄비를 사용해선 안 된다는 것도 몰랐다. 게다가 할 줄 아는 것도 없었다. 채소를 썰 줄도, 볶을 줄도 모를 뿐만 아니라 가스레인지를 켜는 방법도 몰랐다.뜨거운 기름이 그녀의 손에 튀는 바람에 국자까지 내동댕이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심유진은 결국 참지 못하고 그녀를 밀어냈다.“내가 할게. 허 대표님한테는 그냥 네가 직접 만든 음식이라고 해.”“어?”심연희는 입술을 꽉 깨문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