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유진은 두 눈을 질끈 감더니 북받쳐 오르는 화를 꾹 눌러 담고 욕실을 가리키며 말했다.“세면대 바로 옆에 플러그가 있어. 거기서 말려.”“...응.”심연희는 얌전히 플러그를 뽑더니 드라이기를 안은 채 욕실로 들어갔다.심유진은 침대에서 내려와 티슈로 바닥에 떨어진 물을 깨끗하게 닦았다.심연희가 머리를 말리고 나왔을 때 심유진은 이미 잠이 든 상태였다.심연희는 그녀의 침대에 올라가 이불속으로 쏙 들어가더니 그녀의 팔을 잡고 부르기 시작했다.“언니~”심연희는 심유진이 잠에서 깰 때까지 끊임없이 그녀를 불렀다.심유진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짜증 난 말투로 물었다.“왜?”심연희는 깜짝 놀라 아랫입술을 꾹 깨문 채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난...”그녀는 겁먹은 듯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잠이 안 와서... 언니랑 얘기나 하려고 했지. 졸, 졸리면 그냥 자, 괜찮아.”그녀는 손등으로 눈물을 닦더니 애써 괜찮은 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난 신경 쓰지 마.”말을 마친 그녀는 곧바로 몸을 돌려 심유진을 등지고 누웠다.심유진은 심연희가 코를 들이키는 소리도 들을 수 있었고 그녀의 손이 움직이는 것도 똑똑히 볼 수 있었다.그녀는 마음속으로 길게 한숨을 내쉰 뒤 결국 타협하기로 마음먹었다.“무슨 얘기하고 싶은데?”그녀의 말투는 조금 전보다 많이 부드러워졌다.“언니, 그냥 자!”심연희가 다급히 말했다.“진짜 난 신경 쓰지 않아도 돼!”“괜찮아, 나 안 졸려.”심유진은 마음과 반대되는 말밖에 꺼낼 수 없었다.“너랑 얘기하다가 잘래.”심연희는 반신반의하며 몸을 돌렸다.“진짜?”“응.”심연희는 곧바로 심유진을 껴안더니 그녀의 품에 얼굴을 비비적거렸다.“언니가 최고야!”“하하.”심유진은 어쩔 수 없이 마음에도 없는 미소를 지었다.“언니, 왜 집에 남자가 사는 흔적이 하나도 없는 거야?”심연희가 물었다.“보니까 욕실에도 온통 언니 물건뿐이던데~”“나 혼자 사는데 당연히 내 물건밖에 없지.”“그럼 허 대표님께선 단 한
7시를 조금 넘겼는데 심유진은 심연희의 부름 소리를 이기지 못하고 침대에서 일어났다.통틀어 잠을 청한 시간이 두 시간도 되지 않았기에 그녀는 눈을 반쯤 감은 채 끊임없이 하품을 했다.반면 심연희는 피곤한 기색 하나 없이 생기가 넘쳤다.“언니, 빨리 와! 늦으면 싱싱한 재료를 살 수 없단 말이야!”그녀는 심유진을 끌고 힘차게 밖으로 걸어 나갔다.마트는 채소 시장이 아니었기에 매일 8시 반에 정식으로 영업을 시작했다.그녀들이 도착했을 때 점원은 금방 실어 온 채소들을 가게 안으로 옮기고 있었다. 게다가 일부 진열대는 텅텅 비어있었고 저울대와 카운터 앞에도 사람 하나 없었다.심연희는 입구에서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언니, 왜 8시 반부터 영업한다고 얘기하지 않았어? 이럴 줄 알았으면 메이크업이라도 하고 나왔을 텐데!”심유진은 지친 나머지 반박할 힘도 없었다.**심연희는 점원에게 가장 좋은 닭고기와 갈비 두 줄, 그리고 약간 곁들어진 반찬을 요구했다.그녀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메뉴를 세어보았다.“양념갈비, 목이버섯 참마 볶음에 삼계탕이면 충분하겠지?”그러자 심유진이 대충 둘러대며 말했다.“충분해.”“그럼... 언니 레시피 알아?”심유진은 순간 잠에서 깼다.“응?”심연희는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내가 단 한 번도 요리한 적이 없거든, 그래서... 언니 도움이 필요할지도 몰라.”하지만 사실이 증명해 주다시피 심연희에게 필요한 건 도움뿐만이 아니었다.그녀는 요리의 기본도 아예 몰랐다.갈비는 물에 데쳐야 하고 목이버섯은 물에 담가야 하며 탕을 끓일 때 냄비를 사용해선 안 된다는 것도 몰랐다. 게다가 할 줄 아는 것도 없었다. 채소를 썰 줄도, 볶을 줄도 모를 뿐만 아니라 가스레인지를 켜는 방법도 몰랐다.뜨거운 기름이 그녀의 손에 튀는 바람에 국자까지 내동댕이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심유진은 결국 참지 못하고 그녀를 밀어냈다.“내가 할게. 허 대표님한테는 그냥 네가 직접 만든 음식이라고 해.”“어?”심연희는 입술을 꽉 깨문 채
심유진은 택시 문을 닫은 뒤 빠른 걸음으로 그녀에게 걸어갔다.심연희는 그녀의 가방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방문 카드!”그러자 심유진이 말했다.“나한테 방문 카드 없어.”심연희는 단번에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말투도 쌀쌀맞아졌다.“방문 카드도 없으면서 여기까진 왜 왔어? 내 우스운 꼴이라도 보려고 온 거야?”그녀의 태도에 심유진은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녀는 원래 경호원에게 사정하여 심연희를 안에 들여보내려고 했지만 갑자기 생각이 바뀌었다.“친구랑 이 부근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김에 나한텐 방문 카드가 없다고 얘기해주려고 왔지.”심유진은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나 먼저 갈게. 허 대표님한테 다시 한번 연락해 봐. 미팅 끝났을지도 모르잖아.”“심유진 씨!”회전문이 열리자 전에 만났던 경호원이 달려 나와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다.“무슨 일로 오셨어요?”심유진은 재빨리 자본주의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마침 지나가던 길이었어요.”“네?”경호원은 흠칫 놀라더니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그럼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고마워요,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심유진이 대답했다.심연희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다가 심유진이 몸을 돌려 자리를 뜨려고 할 때 그녀를 붙잡았다.“언니, 여기 경호원이랑 아는 사이야?”심유진이 입을 열기도 전에 경호원이 먼저 나서서 대답했다.“아니에요! 저희가 심유진 씨를 아는 겁니다!”“왜요?”심연희는 의아했다.“허 대표님 명령이었거든요.”경호원은 겁에 질린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허 대표님께서 심유진 씨가 오셨을 때 길을 막으면 저희를 몽땅 해고한다고 하셨거든요.”심유진은 그 말을 듣고 흠칫 놀랐다. 마음속으로 거대한 파문이 일었지만 겉으로 조금도 티 내지 않았다. 그녀는 전에 허태준이 이런 말을 꺼낸 기억이 없었다. 아무래도 경호원이 일부러 과장해서 얘기한 듯싶었다. 이렇게 생각을 마치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심연희의 표정은 왠지 모르게 더욱 어두워졌다
심유진이 심연희에게 물었다.“몇인분 가지고 왔어?”음식은 모두 심유진이 만들었기 때문에 심연희는 자신의 진심 어린 마음을 담고자 직접 포장했다.포장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에 심유진은 그녀에게 맡기고 확인하지도 않았다. 때문에 그녀가 대체 몇 인분을 준비했는지 알 수 없었다.심연희는 고개를 숙여 그녀의 시선을 회피한 채 불안한 말투로 물었다.“허 대표님 것만 준비했어, 왜?”“아무것도 아니야.”심유진도 심연희가 생각이 짧았다고 나무랄 자격이 없었다. 여형민이 따져 묻지 않았다면 그녀도 이부분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먼저 올라가. 허 대표님 사무실은 69층에 있어. 도착하면 직원한테 구체적인 위치 물어봐. 난 나가서 여 변호사님한테 줄 음식을 사 올 테니까. 어제 많이 도와주셨잖아.”심연희는 그제야 여형민을 떠올렸다.“아! 여 변호사님!”그녀는 입을 틀어막은 채 고뇌에 빠진 듯 연기하며 말했다.“내가 왜 이 사실을 잊고 있었지!”마침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그녀는 순간 표정이 돌변하여 심유진에게 말했다.“그럼 수고해 줘, 언니~”그러고는 재빨리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심유진은 비록 심연희가 같이 가줄 거란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단호한 그녀의 태도에 언짢은 기분이 들었다.그녀는 이대로 심연희를 상관하지 않고 자리를 뜨면 여형민에게 미움을 사게 될 상상까지 하게 되었다.휴대폰 진동이 울려 확인해 보니 여형민이 보낸 문자메시지였다.[설마 정말 날 잊은 건 아니죠?]말 한마디에 심유진은 그가 얼마나 실망했을지 알 수 있었다.그녀는 결국 마음이 약해져서 대답했다.[아니에요. 지금 바로 보내드릴게요. 사무실 몇 층이에요?]**심유진은 옆 건물 스타벅스에서 커피와 샌드위치를 산 다음 69층으로 올라갔다.여형민의 말에 의하면 그가 대구에 새로 세운 변호사사무소와 CY 그룹 대표 사무실은 같은 층에 있지만 단독으로 떨어져 있다고 한다. 두 사무실을 이어주는 문은 오직 여형민과 허태준만이 열 수 있다고 했다.
심연희를 포함해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그녀의 말에 깜짝 놀랐다.웨이브 머리 여자가 가장 먼저 이성을 되찾고 물었다.“당신이 허 대표님한테 다른 마음을 품고 핑곗거리를 찾아 접근하는 여자가 아니라 진짜 가족이라는 걸 증명할 수 있어요?”말을 마친 그녀는 고개를 돌려 심연희를 노려보았다.심연희는 조금 전 굳건한 태도를 거두고 눈물을 흘리며 심유진의 품에 안겼다.“언니! 저 사람들이 날 괴롭혔어! 난 그저 허 대표님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었을 뿐인데 내가 꼬리 친다고 얘기하잖아!”심연희가 그녀를 언니라고 부르는 것을 듣고 웨이브 머리 여자는 단번에 표정이 돌변했다.“당신이 이 여자 언니예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허 대표님 친구라고 했단 말이에요! 역시 두 사람 모두 좋은 의도로 찾아온 게 아니네요! 소진 씨, 빨리 경호원들 불러서 이 사람들 내쫓아요!”“네!”이름을 불린 여자가 곧바로 테이블 위 전화기를 들어 올렸다.CY 그룹 경호원들 모두 그녀를 알고 있었기에 그녀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저 허 대표님 가족 맞아요, 안 믿기신다면--”그녀는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 들며 말했다.“제가 지금 당장 허 대표님께 연락할 수도 있어요.”“이런 사기 수단은 조금 전 당신 동생이 이미 사용했었어요.”웨이브 머리 여자는 비꼬듯 말을 이었다.“방법 한 번 바꿔봐요.”심유진은 눈빛으로 심연희에게 눈치를 주었다.심연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억울한 말투로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허 대표님께서 내 연락을 두 번이나 끊어버리셨어.”심유진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말했다.“그건 아마 허 대표님 미팅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일 거예요.”웨이브 머리 여자는 활짝 미소를 지어 보였고 그 속에 담긴 비웃음도 점점 짙어졌다.“허 대표님 오늘 오전에 미팅 없어요! 좀 허술하지 않은 핑계 좀 대보죠?”심유진은 의아했다.여형민은 전에 허태준이 사용하는 번호가 두 개라고 얘기했었다. 하나는 업무용이고 다른 하나는 개인용이라고 했었다. 그녀가 저장해 놓은
“네?”심유진은 본능적으로 주머니를 등 뒤로 숨기며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아니에요.”심연희는 타이밍 맞춰 자신이 든 주머니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이게 허 대표님 거예요!”허태준은 힐끔 스쳐보기만 할 뿐 별로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내 사무실로 가.”그는 심유진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은 깜짝 놀란 나머지 입이 떡 벌어졌다.심연희는 이를 꽉 깨문 채 그들의 뒤를 따랐다.**허태준의 사무실은 심유진이 상상한 것보다 퍽 작았다. 면적은 그의 안방과 비슷했는데 사무 존과 손님 존 두 존으로 나뉘었다.사무 존에는 테이블 하나, 의자 그리고 책이 가득 담긴 책장이 있었고 손님 존에는 소파 한 개와 티테이블 한 개가 놓여있었다. 그사이에는 선명한 경계선이 없었기에 비교적 공간이 넓어 보였다.사무실 안은 온통 검은색, 흰색, 회색 세 가지 컬러였고 사진만 보면 다들 서재로 오해할 것이다.허태준은 심유진을 소파에 앉힌 다음 손을 뻗어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그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무슨 일로 찾아왔어?”그의 중저음 목소리에는 은은한 부드러움이 뒤섞여 있었다.심연희 앞에서 일부러 연기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너무 과도한 설정에 심유진은 불편한 듯 표정을 구겼다.“심연희가...”그녀는 딱딱한 자세로 옆에 앉아있는 심연희를 보며 말했다.“어젯밤 일로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려고 찾아왔어요.”심연희는 곧바로 미소를 지으며 허리 숙여 손에 든 주머니를 허태준 앞에 있는 티 테이블 위에 놓았다.그녀는 아무래도 특별히 호텔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었는지 심유진에게서 빌렸던 후드티 대신 회색 니트를 입고 있었다. 니트는 오버핏인데다 옷깃이 넓어 몸을 숙일 때 그녀의 검은색 레이스 속옷이 다 보일 정도였다.“어젯밤... 고마웠어요, 허 대표님. 이건 제 소소한 마음이니까 받아주세요.”심연희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 부끄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고마워.”허태준은 내내 심유진의 얼굴만 뚫어져라
심연희는 그녀보다 더 당황스러웠다.“죄송합니다, 허 대표님. 미처 몰랐어요!”그녀는 다급히 음식들을 도로 주머니에 넣으며 상황을 마무리 지으려고 했다.“제가 밥 살게요! 대표님께서 좋아하시는 레스토랑에서 마음껏 주문하세요!”“그럴 필요 없어.”허태준은 단칼에 거절했다.“어제 내가 당신을 구해준 건 단지 당신 언니가 걱정돼서 그랬던 것뿐이야. 고마워할 거면 당신 언니한테 고마워해.”심연희는 순간 표정이 굳어졌다.하지만 그녀는 재빨리 활짝 미소를 지어 보이며 심유진에게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언니에겐 항상 고마운 마음뿐이죠~ 하지만 허 대표님께서 저를 구하시다가 다치기까지 하셨는데 당연히 고맙다는 인사 정도는 해야죠~”다쳤다고?심유진은 본능적으로 허태준을 휙 쳐다보았다.어제 그녀가 경찰들을 데리고 퀸 바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여형민이 그들을 제압한 뒤였기에 과정을 확인하진 못했다. 게다가 그에게 아무런 이상도 없었기에 아무 일도 없는 줄 알았던 것이다.그도 부상을 입었단 말인가?“진짜 고마우면--”허태준은 잠시 멈칫하더니 심유진을 확 끌어안으며 말했다.“언니를 좀 빌려줬으면 하는데.”심유진과 심연희는 동시에 또 한 번 멈칫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심연희는 억지 미소를 지은 채 복잡한 눈빛으로 심유진을 보며 말했다.“좋아요. 그럼... 먼저 호텔로 돌아가 볼게요.”그녀는 주머니를 든 채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심유진에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저녁에 다시 만나, 언니~”심연희는 다급히 자리를 떴다.심유진은 그녀가 손으로 얼굴을 닦는 모습을 발견했다.“연희--”그녀가 심연희의 뒤를 따라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허태준이 갑자기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그 타이밍에 심연희는 문을 박차고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심연희 우는 것 같아요, 가서 확인하고 올게요.”심유진은 다급히 허태준의 손을 뿌리치려고 했다.하지만 허태준의 손은 마치 그녀의 몸에 붙기라도 한 듯 좀처럼 떼어낼 수 없었다.“너 심연희 싫어하잖아?”그의
허태준은 우아하게 자신의 셔츠 단추를 하나둘씩 풀어 헤쳤다.심유진은 느긋하게 그를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셔츠가 풀어지는 방향을 따라 시선이 아래로 옮겨졌다.밖에 드러난 그의 얼굴과 목은 이미 눈으로 목격했었다. 그의 하얀 피부에는 잡티 하나 없었다. 가슴골과 복근에는 탄탄한 근육 외에 다른 건 보이지 않았다.심유진은 미간을 찌푸린 채 다급히 재촉했다.“빨리 셔츠 벗어요.”허태준은 피식 웃으며 비아냥거리는 듯한 말투로 물었다.“이렇게 급해?”심유진은 그제야 조금 전 자신이 얼마나 야한 말을 뱉었는지 깨달았다.“난... 그냥 몸에 생긴 상처를 확인하고 싶은 것뿐이에요.”그녀는 순간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허태준은 그녀를 힐끗 쳐다보더니 셔츠를 옆에 벗어던졌다.그는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은 채 부드러운 입술로 그녀의 귓가에 뜨거운 숨을 불어넣었다.“다른 걸 원하면... 해도 돼.”그의 중저음 목소리는 아주 부드러웠다. 그 속에는 웃음기도 뒤섞여 있었는데 그녀를 놀리면서도 꼬시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심유진은 부끄러운 마음에 얼굴이 뜨거워졌다. 그녀는 그를 밀어내고 싶으면서도 그의 상처를 건드릴까 봐 두려웠다.허태준은 심유진의 불안에 떠는 눈초리와 다리 위에 꼭 잡은 두 손을 보고는 결국 놀리려던 마음을 도로 거두었다.그는 조금만 더 기다리기로 마음먹었다.적절한 시기가 찾아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무슨 생각해?”허태준은 그녀를 놓아주더니 입꼬리를 씩 올리며 물었다.“난 그냥 약 발라달라고 벗은 건데 얼굴은 왜 이렇게 빨개?”조금 전 그가 그냥 그녀를 놀린 것뿐이라는 걸 눈치챈 심유진은 참지 못하고 이를 꽉 깨문 채 매서운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허태준은 입꼬리를 더 세게 올리더니 두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여기.”그는 몸을 돌려 자신의 허리를 만지며 말했다.“좀 아파.”그의 손가락이 닿은 곳에 눈에 띄는 멍 자국이 있었는데 주먹만큼 했다.보기만 해도 아픈게 느껴질 정도였다.“병원에 가봤어요?”“아니.”허태준은 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