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서를 나서면서 나는 경찰이 방금 한 말을 계속 떠올렸다.그곳은 외진 산으로 감시 카메라도 없었고 그날 캠핑을 간 사람들은 유수미와 박찬호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있었다.“걱정하지 마세요. 우리는 반드시 진범을 찾아내서 따님에게 정의를 돌려줄 겁니다.”경찰은 내가 딸을 잃은 것이 안타까워서 본래 증거물로 남겨둬야 할 손목시계를 나에게 돌려주었다.햇빛이 내 머리 위에서 쨍쨍 내리쬐고 있었지만 나는 그것을 전혀 느끼지 못한 채 시체처럼 거리를 걸었다.지난 이틀 동안 박찬호의 모든 말과 행동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그가 범인일까? 유수미 모녀와 함께 있기 위해 희망이를 직접 죽인 건 아닐까?!’온몸이 얼음물에 빠진 듯 추워서 덜덜 떨렸다.나는 집에 돌아와 그에게 물어보려 했다.그러나 집 앞에 도착하자 음식 냄새가 풍겼다.내가 문을 열기도 전에 박찬호가 먼저 문을 열었다.그의 눈은 여전히 빨갛고 입가에는 억지웃음을 띠고 있었다.“하린아, 발소리를 듣고 네가 돌아온 줄 알았어.”나는 잠시 멈칫하며 어색함을 느꼈다.예전에 이 말은 모두 내 대사였으니까.그를 지나쳐 들어가니 테이블 위에 음식이 가득 놓여 있었다. 향기는 괜찮았지만, 비주얼은 좋지 않았다.그는 내 뒤에서 조용히 말했다.“내가 요리할 줄 모르는 거 알잖아. 이게 다 영상 보면서 하나씩 배운 거야. 그러니까 조금만 먹어줘...”항상 정장에 넥타이를 맨 엘리트의 형상이었던 그가 앞치마를 입고 있으니 조금 어색했다. “난 너와 밥 먹으러 온 게 아니야. 너에게 물어볼 게 있어.”나는 소파에 앉았다.그는 즉시 부엌으로 가서 따뜻한 물 한 잔을 붓고 그 안에 레몬 조각을 하나 넣어 주었다.“먼저 물 한 잔 마셔. 오늘 밖이 더웠지.”나는 그의 손에 든 물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는 물컵을 내 앞에 두고 또다시 앞치마에 손을 닦았다.“주방에 국도 끓여놨어. 너 갈비탕 좋아하잖아? 그래서 특별히 배운 거야. 요즘 너 제대로 밥도 안 챙겨 먹었을 거잖아. 가서
“안돼!”박찬호는 깜짝 놀라 두 손을 들고 한 걸음 물러섰고 감히 나에게 더 이상 가까이 다가오지 못했다.나는 그를 노려보며 안전한 거리로 물러날 때까지 지켜보았다.“나는 너와 다시 화해하러 온 게 아니야. 물어볼 게 있어!”쓸데없는 말은 한마디도 하고 싶지 않았다.박찬호는 긴장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먼저 그걸 내려놔. 자신에게 상처 주지 말고.”내가 스스로 상처를 줄 리는 절대 없었다.희망이를 죽인 범인이 아직 잡히지 않았으니 나는 잘살아있어야 했다.나는 유리 조각을 내려놓았지만, 박찬호가 다시 이상한 행동을 할까 봐 손에 쥐고 있었다.“찬호야, 네가 희망이를 죽인 거야?”내 질문이 끝나자 거실은 숨소리 하나 없이 조용해졌다.박찬호의 눈이 점점 커지더니 가슴이 격하게 움직였다.“나를 의심해?”그는 자신을 가리켰다.“네 눈에 내가 그렇게 짐승보다 못한 놈으로 보이냐?! 내 손으로 친딸을 죽이게?!”그의 반응이 너무 격렬해서 진짜인지 가짜인지 헷갈렸다.“오늘 경찰서에서 전화가 와서 산 위에서 희망의 시계를 찾았대.”나는 시계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너도 알다시피 희망이가 외출할 때 난 항상 시계를 채워주었고 절대 벗지 못하게 했어.”박찬호는 눈썹을 찌푸렸다.“그래서?”“근데 경찰은 너희가 캠핑한 곳에서 이 시계를 찾았고 시계에는 돌로 부신 흔적이 남아 있었어. 그러니까 희망이가 떨어지기 전에 누군가 일부러 구슬려서 시계를 벗게 했다거나 직접 빼앗았다는 거지.”나는 냉정하게 사실을 말했다.박찬호는 마치 얼어붙은 듯 보였다. 그는 분명히 이 일을 처음 듣는 것 같았고 그 반응은 연기로 나온 충격이 아닌 것 같았다.“네 말은 희망이가 누군가에게 살해당했다는 거야?!”“그래. 그리고 내가 가장 먼저 의심하는 사람은 너야.”나는 유리 조각을 들어 그를 겨누었다.그가 만약 범인이라면 나는 주저 없이 그와 함께 죽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하지만 그는 절망에 가득 차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어떻게 내가 그럴 수
내 심장은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고 거의 가슴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그럼 왜 희망이를 산 아래까지 데려가지 않았어? 데려갔으면 누군가 그녀들을 봤을 수도 있고 그러면 희망이도... 죽지 않았을 수도 있었잖아.”나는 눈시울이 붉어졌다.박찬호는 눈을 감고 말했다.“희망이가 산 위의 나비가 너무 예쁘다고 좀 더 보고 싶다고 했거든.”나는 묘지 위의 그 흰색 나비를 다시 떠올렸다.이때 문밖에서 다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 유수미의 목소리는 조금 초조했다.“찬호 오빠, 나를 차단해서 오빠랑 연락이 안 되잖아. 문 좀 열어줘. 오빠 보러 사랑이도 데리고 왔단 말이야. 이제부터 사랑이를 오빠 친딸로 생각해. 오빠도 사랑이를 예뻐하잖아?”나는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박찬호의 얼굴에는 죄책감이 가득했다.“문 열어.”내가 명령하자 박찬호는 내 말대로 문을 열었다.순간 유수미가 그의 품에 안겨 왔지만, 그는 역겹다는 듯 제지했다.“왜 그래?”유수미가 애처롭게 바라보며 말했다.“오빠가 슬프다는 걸 알아. 하지만...”유수미는 거실에 앉아있는 나를 보더니 말을 잇지 못했다.나는 태연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계속해.”그녀는 민망한 표정으로 쑥스러운 듯 말했다.“하린 언니도 있었네. 난 아직도 무덤에서 희망이랑 함께 있는 줄 알았는데.”나는 돌려 말하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유수미, 내 딸 죽음과 너 관련 있지?”순간 그녀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며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하지만 그녀는 이내 침착하게 말했다.“하린 언니, 왜 나를 모함해? 나도 딸 키우는 사람이야. 희망이가 그렇게 사랑스러운데 내가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겠어?”그녀는 예전처럼 박찬호가 나서서 자신을 위해 말해주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하지만 이번에 그는 오히려 내 앞으로 물러나서 냉정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수미야, 마지막으로 한 번만 묻는다. 그날 너 다시 산꼭대기로 올라갔어?”그의 말투는 너무 심각해서 조금 무서울 정도였다.나
“높은 곳에서 발을 헛디뎌 떨어진 것 같습니다...”경찰이 내 앞에서 말했지만 나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내 눈에 보이는 건 내 딸, 작고 사랑스러운 희망이 뿐이었다.겨우 5살인 그녀는 천사처럼 귀여웠지만, 그녀의 반짝이는 큰 눈은 지금 영원히 감겨 있었다.나는 천천히 그녀 앞에 무릎을 꿇고 상처투성이의 작은 손을 쥐었다. 아이에게 채워준 전화 시계는 이미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희망아, 눈 좀 뜨고 엄마 봐줄래? 엄마가 네가 가장 좋아하는 인형을 사 왔어. 너 앞으로 날마다 안고 자겠다고 했잖아? 그런데 어떻게 혼자 몰래 잠들 수 있어?”하지만 내가 아무리 불러도 희망이는 대답하지 않았다.희망의 손바닥을 펼쳐본 순간, 나는 그녀가 우리 세 식구를 그린 그림을 발견했고 결국 참지 못하고 소리 내어 울었다.지금은 새벽 3시, 한 시간 전에 나는 희망이와 아이의 아빠 박찬호가 캠핑하던 산기슭에서 그녀의 시신을 발견했다.어제 오후, 외출 전만 해도 활발하게 뛰어놀던 아이였고 내가 직접 희망이를 박찬호의 차 뒷좌석에 안아서 태웠다.“희망아, 오늘 밤 아빠와 산에 가서 텐트에서 자는 거야. 신나지?”희망이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또 나에게 약간 두렵다는 손짓을 했다.그녀는 말을 하지 못했다. 태어날 때부터 그랬다.나는 아직도 그때 했던 말을 기억한다.“희망아, 두려워하지 마. 아빠가 지켜줄 거야.”희망이가 태어나서 다섯 해가 지났지만, 박찬호는 항상 핑계를 대며 그녀의 생일을 함께 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내가 사전에 99번이나 부탁해서야 겨우 승낙을 받은 것이었다.그는 차에 오르면서 나를 불만스럽게 바라보았다.“끝났어? 어두워지면 갈 필요도 없어.”그는 희망이와 함께 캠핑하고 일몰을 보러 간다고 약속했지만 내가 함께 가는 건 허락하지 않았다.희망이는 아빠와 함께 생일을 보내고 싶어 했다. 작년 생일 소원이 바로 이것이었다.“알았어. 다 됐어.”문을 닫기 전, 나는 희망이의 전화 시계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혹시 무슨
경찰 앞에서 나는 전화를 끊고 바로 박찬호의 연락처를 차단했다.경찰은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아이 아빠에게 정말 안 보여 줄 거예요?”내 목소리는 떨리고 갈라졌다.“형사님이면 아이를 살인범에게 보여주겠어요?”내가 희망이를 안고 비틀거리며 구급차에 오를 때, 의사가 말했다.“아이는 추락사고로 죽은 게 아니에요.”희망이는 내장 출혈로 고통받다가 죽었다. 죽기 전에 아마 도움을 요청하려고 했는지 손으로 흙을 파내다가 손톱이 다 벗겨져 열 손가락은 모두 피투성이였다.하지만 아무도 구해주지 않아 그 아이는 절망 속에서 서서히 죽어갔다.나는 안치소에서 밤새도록 앉아있었다. 해가 뜨자 의사는 나에게 아이를 빨리 묻어주라고 권했다.나도 희망이가 차가운 안치소에 누워 있는 걸 원하지 않았다.나는 장례식장에 전화를 걸어 그녀의 시신을 옮기고 그녀가 손에 쥔 가족 그림을 갖고 집으로 돌아와 장례를 준비하려고 했다.집에 돌아오자마자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바닥에는 미처 치우지 못한 장난감이 흩어져 있었고 벽에는 희망이가 그린 그림이 있었으며 탁자 위에는 희망이의 책들이 놓여 있었다.나는 순간 그녀가 웃으며 뛰어와서 ‘엄마, 사랑해요!’라고 손짓하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희망아, 너 엄마가 늙을 때까지 함께 있어 준다고 하지 않았어? 왜 먼저 간 거야?’내가 소파에 앉아 장난감을 품에 안고 울고 있을 때 유수미가 한 장의 사진과 함께 문자를 보내왔다. [정말 행복해. 찬호는 아이를 진짜 잘 챙겨줘. 그가 좋은 아빠가 될 줄 알았다니까.]배경에 그녀의 인생샷이 있는 걸 보니 사진은 그녀의 집에서 찍은 모양이었다. 박찬호는 품에 그녀의 딸 사랑이를 안고 식탁에 앉아 숟가락으로 밥을 먹이고 있었다.이 따뜻한 장면은 내 눈을 아프게 찔렀다.내가 희망이를 낳은 지 5년이 되었지만, 박찬호는 한 번도 밥을 먹여준 적이 없었다. 심지어 기저귀를 갈 거나 재워준 적도 없었다.우리도 원래는 사랑하는 사이였다. 그도 희망이를 임신했을 땐 내 배에
유수미는 박찬호의 뒤에 서서 애처롭게 나를 바라보았다.“하린 언니, 찬호 오빠는 오늘 출장 갔다가 돌아왔잖아. 근데 사랑이가 보고 싶다고 졸라서 그래서 집에 초대한 거야. 언니가 내게 화내는 건 괜찮지만, 내 딸을 죽으라고 저주한 건 너무 한 거 아니야?”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고 그녀를 보는 박찬호의 표정은 너무 안쓰러웠다.“수미야, 울지 마. 그녀 스스로 벌을 받을 날이 올 거야.”박찬호가 그녀를 위로했다.내 얼굴은 아파서 감각이 없었고 마음은 이미 재가 되었다.그녀의 딸은 죽지 않고 박찬호의 품에 안겨 밥을 먹고 있었지만 내 딸은 정말로 죽었다.박찬호와 결혼한 건 하늘이 내게 내린 벌이었다.“하린아, 벙어리가 된 건 네 딸이지 네가 아니잖아! 여기서 불쌍한 척하지 마. 보기만 해도 역겨우니까!”박찬우가 나에게 고함쳤다.내 마음은 다시 한번 찢어졌다.나를 욕할 수는 있지만 희망이를 욕해서는 안 된다.나는 손을 들어 그의 뺨을 힘껏 후려쳤다.찰싹!박찬호는 멍해 있다가 고개를 돌려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았다.“감히 날 때려?!”“네가 나를 때릴 수 있는데, 나는 못 때릴까?”나는 냉소를 지었다.박찬호는 잠시 멍해 있다가 나를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하린아, 너 오늘 도대체...”“하린 언니, 전에 찬호 오빠가 언니는 변덕이 많아서 소름 끼친다고 했을 때 나는 안 믿었거든. 그런데 이제 보니 감정 기복이 정말 너무 심해서 무서워! 때리려면 날 때려. 자, 날 때리면 속이 시원할 거야.”유수미는 갑자기 내 앞에 와서 울면서 내 손을 얼굴에 가져갔다.나는 역겨워서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실랑이하던 와중에 그녀는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얼굴을 감싸고 바닥에 주저앉았다.그녀의 얼굴에는 손톱으로 길게 긁힌 빨간 자국이 나 있었다.“하린아! 너 진짜 미친 거 아냐?!”박찬호는 분노로 치를 떨며 나를 밀쳤다.나는 거의 날아가다시피 티 테이블 위에 넘어져 테이블 위의 물건들을 모두 바닥에 떨어뜨렸다.쨍그랑거리는 큰
“사망 증명서. 글씨 못 읽어?”나는 서류를 그에게서 낚아챘다. 그가 만진 흔적이 남은 것만으로도 역겨웠기 때문이다.박찬호는 나를 빤히 바라보며 묘한 눈빛을 띄웠다.“하린아, 너 미친 거 아니야? 희망이는 네 친딸이야. 날 속이려고 이런 걸까지 위조한 거야?”나의 눈물은 이미 다 말라버려서 더 이상 울 수 없었다.“그래. 희망이는 내 딸이지. 너랑은 상관없어.”내가 발걸음을 떼려는데 유수미가 갑자기 달려들어 내 손에서 서류를 낚아챘다.그녀는 수상한 표정으로 서류를 꼼꼼히 읽어보았다. 사망 원인까지 놓치지 않고 읽어보던 그녀는 그제야 안도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하린 언니,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가 있어? 희망이도 분명 오빠 딸이잖아. 비록 언니가 내 딸을 저주했지만 그래도 나는 오빠의 딸이 무사하길 바라.”그녀는 사망 증명서를 내 손에 쥐여주고 비웃듯 나를 한 번 쳐다봤다.“네가 질투하는 건 알아. 근데 이젠 좀 그만해.”“꺼져!”나는 그를 세게 밀쳐내고 집을 나섰다.그들이 있는 곳이라면 나는 구역질이 나왔다.차에 올라타려는데 박찬호가 차 문을 막았다.“하린아, 장난치지 마. 희망이는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죽었어. 내가 산밑에서 발견했을 때 희망이는 이미 죽어있었어.”나는 박찬호의 눈을 똑바로 마주쳤다.한때는 정말 사랑했던 눈이었다.하지만 지금은 그 눈을 도려내 땅에 묻어버리고 싶다.“무슨 헛소리야?! 오늘 아침 캠핑 끝나고 출장 가야 해서 택시를 불러 집에 보냈어. 그런데 어떻게 산 아래에서 죽었다는 거야! 너 질투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애는 갖고 장난치지 마!”그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며 나에게 소리쳤다.웃음이 나왔다.나는 이미 다 알아봤다. 그는 분명 택시를 불렀다.하지만 그 차는 예약이 갑자기 취소돼서 희망이를 데리고 집에 올 수가 없었다.내 말을 듣고 나서야 박찬호는 휴대폰을 꺼내 확인했다. 확실히 예약이 취소된 걸 보자 그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다.“말도 안 돼. 택시가 안 왔으면 희망이는 너나
장례식장에서 입관사는 희망에게 새 백설 공주 드레스를 입혀주었다.희망이는 백설 공주 이야기를 무척 좋아했고 일곱 명의 친구가 있는 백설 공주가 참 부럽다고 말하곤 했다.그녀는 어릴 때부터 말을 못 했고, 그래서 다른 아이들이랑 잘 어울리지 못했다. 심지어 부모들마저도 아이들에게 ‘희망이랑 놀면 벙어리가 옮는다’라며 못 놀게 했다.희망이는 늘 외톨이였다.그런데 이젠 나도 외톨이가 되었다.아침 첫 햇살이 희망이의 창백한 얼굴에 닿자 나는 조심스럽게 그녀를 묘지로 데려왔다.이곳은 평지라서 높은 산도 없고 절벽도 없고 들개도 없었다.묻기 전, 나는 내가 준비해둔 인형을 희망의 품에 안기며 마지막으로 말했다.“희망아, 다음 생엔 날개가 있는 작은 동물로 태어나렴. 날아다닐 수 있는 동물로 태어나면 넘어지지 않잖아.”내가 말을 마치자 온몸이 새하얀 나비 한 마리가 내 가슴에 내려앉았다.마치 희망이가 돌아온 듯 나비는 날개를 파닥였다.“엄마, 나 날개가 생겼어.”“엄마, 나 때문에 마음 아파하지 마. 울지 마.”그제야 나는 참지 못하고 눈물이 터져 나왔다.이때 갑자기 등 뒤에서 박찬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하린아! 희망이는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아무리 찾아도 애가 안 보이는데 넌 왜 묘지까지 와 있는 거야? 미쳤어?! 도대체 애를 어디에 숨긴 거야?!”그는 내 멱살을 잡고 있는 힘껏 흔들었다.나비는 날아갔다.나는 나비가 사라지는 방향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하얀색이 점점 작아지더니, 결국 눈앞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찬호야. 여기 봐봐.”나는 한발 물러서며 희망이의 사진이 새겨진 묘비를 가리켰다.“보여? 네 딸은 이제 여기에 영원히 묻혔어.”묘비에 새겨진 사진과 이름을 보자 박찬호의 얼굴은 핏기가 가시고 백지장같이 새하얗게 질렸다.그는 미친 듯 묘비를 붙잡고 외쳤다.“말도 안 돼! 그럴 리 없어! 난 분명히 집에 보냈어. 집에 돌아가라고 했다고! 그러니 죽을 리가 없어. 절대로 죽을 리가 없다고!”희망이가 살았을 때 아빠는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