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혁은 원아가 목소리만 약간 쉰 것 외에는 상태가 크게 나쁘지 않다는 것을 보고 더 이상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어쨌든 원아는 상사였고, 상사가 괜찮다고 하면 부하 직원들은 그저 상사의 명령에 따르기만 하면 되니까.원아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데이터를 확인하려는 찰나, 한 연구원이 두꺼운 서류 뭉치를 들고 실험실로 들어와 그녀 옆으로 다가왔다.“염 교수님, 3차 임상 연구 데이터가 나왔습니다.”“이렇게 빨리요?”원아는 서류를 받으며, 연휴가 끝난 후에야 정리될 거라 생각했었다.“네, 연말이라 데이터 정리가 빨라진 것 같습
원아는 의심을 품고 되물었다.김태식은 원래 연구팀을 담당하는 사람이 아니었다.전에 조재하 교수 사건에 휘말린 후, 소남이 인사팀을 통해 사장 김태식을 새로 고용했는데, 회사의 일상 업무를 관리하도록 맡긴 자리였다. 일상 업무를 관리하는 사람이 연구를 알 리가 없었다.원아도 김태식에게 신약 연구에 대해 알린 적은 없었다.김태식은 원아가 이렇게 반문할 줄은 몰랐는지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나도 우리 회사 실적에 신경 쓰는 것뿐이니까요. 염 교수님, 파일 좀 보내주세요.]원아는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김태식이 누구 쪽의 사
소남은 밥이 담긴 그릇을 원아에게 건네며 말했다.“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고, 먼저 밥부터 먹어요.”원아는 표정을 가다듬고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대표님, 정말로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아요?”비록 서두인 교수의 일은 원아가 자료를 유출한 것이었지만, 지금 HS제약의 사장인 김태식 역시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다만 원아가 더 빨리 손을 써서 김태식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을 뿐이었다.“때가 되면 누구나 꼬리가 드러나게 되어 있어요. 그 전에, 당신 생각엔 김태식이 어떻게 할 것 같아요?” 소남이 물었다.“큰일 났
“여러분, 제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했습니까?” 소남이 다시 물었다.“네, 알겠습니다.” 연구원들이 일제히 대답했다.소남은 원아를 바라보며, 이렇게 하면 충분할 거라는 눈빛을 보냈다.원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대표님, 추가로 하실 말씀 있으신가요?”“없어요. 나머지는 팀원들끼리 얘기하세요.” 소남은 원아가 연구원들에게 할 말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자리에서 일어나 뒤돌아 나갔다.소남이 회의실을 나가자, 몇몇 연구원들은 눈에 띄게 긴장이 풀리는 느낌이었다.소남의 강렬한 기운에 다들 신경이 곤두서고 몸이 굳
“당신이 걱정하는 일은 이미 해결됐으니까, 이제 편하게 밥 먹어요.”소남이 말했다.원아는 더 이상 이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지금 소남 씨도 HS제약 쪽의 상황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을 테고, 내가 아무리 말해도 소남 씨의 처리 방식은 변하지 않을 거야.’점심시간이 끝난 후, 원아는 실험실 연구원들과 함께 회의를 준비하며 신약 출시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회의가 시작되기 전, 그녀는 서둘러 데이터를 검토했고, 임상 데이터가 예상보다 더 좋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데이터의 대부분은 다닐의 노력이 깃든 것이었고, 이러한 결
임창만 교수의 칭찬을 들으며, 원아는 평온한 표정을 유지했다.그 칭찬에는 몇 분의 진심과 함께 약간의 부러움, 심지어는 질투도 섞여 있었다.원아는 그 칭찬들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았다. 왜냐하면 연구의 초반부의 노력은 모두 다닐의 것이었고, 자신은 후반부에 팀을 이끌고 연구를 이어갔기 때문이었다.즉, 앞에서 기초가 잘 닦여 있었기에, 후반부는 상대적으로 더 쉬웠던 것이다. 그래서 원아는 자신이 자랑스러워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고, 자신의 능력은 다닐에 비해 한참 부족했기 때문이다.임창만 교수가 다시 말을 꺼냈다.“염 교수님
수혁이 더 묻기도 전에 사장 김태식이 회의실로 들어왔다. 그의 시선은 곧장 원아에게로 향했다.원아는 잠시 그와 눈을 마주치고는 곧 시선을 돌려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았다.임창만 교수는 김태식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사실 자신이 '염 교수'에게 3차 임상 실험 데이터를 보여 달라고 한 것도 김태식 때문이었다.자신의 연구 결과가 자꾸만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김태식이 임창만 교수를 따로 불러 ‘염 교수'의 임상 연구 데이터를 참고하라고 권유했던 것이다.임창만 교수는 약물의 카테고리가 다를지라도 참고할 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라 생
임창만 교수는 원아의 말을 들으며 감탄했다.‘정말 대단한 젊은이야. 능력도 있고, 성격도 겸손하며, 불쾌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태도를 가지고 있군. 김태식 사장이 뭔가를 꾸미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염 교수는 몇 마디로 적절히 넘기며 자리를 무난히 마무리 짓고 있다니. 그러면서도 참석한 사람들을 불쾌하게 하지 않게 하고 있어...’김태식의 표정이 약간 어두워지더니 다시 말했다.“그러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3차 임상 실험 데이터를 공개해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교수님들도 보실 수 있도록요.”“김 사장님, 말씀드렸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