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혁이 더 묻기도 전에 사장 김태식이 회의실로 들어왔다. 그의 시선은 곧장 원아에게로 향했다.원아는 잠시 그와 눈을 마주치고는 곧 시선을 돌려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았다.임창만 교수는 김태식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사실 자신이 '염 교수'에게 3차 임상 실험 데이터를 보여 달라고 한 것도 김태식 때문이었다.자신의 연구 결과가 자꾸만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김태식이 임창만 교수를 따로 불러 ‘염 교수'의 임상 연구 데이터를 참고하라고 권유했던 것이다.임창만 교수는 약물의 카테고리가 다를지라도 참고할 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라 생
임창만 교수는 원아의 말을 들으며 감탄했다.‘정말 대단한 젊은이야. 능력도 있고, 성격도 겸손하며, 불쾌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태도를 가지고 있군. 김태식 사장이 뭔가를 꾸미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염 교수는 몇 마디로 적절히 넘기며 자리를 무난히 마무리 짓고 있다니. 그러면서도 참석한 사람들을 불쾌하게 하지 않게 하고 있어...’김태식의 표정이 약간 어두워지더니 다시 말했다.“그러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3차 임상 실험 데이터를 공개해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교수님들도 보실 수 있도록요.”“김 사장님, 말씀드렸잖아
회사로 돌아온 후, 퇴근까지는 30분 정도 남아 있었다.원아는 서둘러 회의를 열어 앞으로의 업무를 대략적으로 정리했다.30분 후, 회의가 끝났다.그녀는 사무실로 돌아와 헨리에게서 온 톡 메시지를 확인했다.[누나, 우리 방학했어요! 누나는 언제 쉬어요?]원아는 잠시 멍해졌다. 예전에도 이맘때쯤 아이들이 겨울방학을 했던 것이 기억이 났다 하지만 올해는 설 연휴가 일찍이라서 방학이 명절과 가까웠다.예전에 원아는 아무리 바빠도 가능한 한 빨리 집에 돌아가 아이들과 시간을 보냈다.가끔은 아이들을 회사에 데려가 놀게 하기도 했고,
“네, 연말이라 일이 많아지죠.”원아는 말했다. 소남이 바쁜 이유를 알고 있기에 마음 한편으로는 안쓰러웠다.그는 문씨 가문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지만, 자신은 그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고 느꼈다. 지금은 그저 아이들을 잘 돌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오현자는 소고기를 썰며 물었다.“문 어르신께서 명절 준비물로 어떤 걸 가지고 오셨나요?”“복조리 같은 설 장식물하고 입춘첩 몇 개요.”원아가 대답했다.“문 어르신께서는 설 분위기를 무척 중요하게 생각하세요. 예전에 제가 고택에서 일할 때는, 명절 전날마다 집
원아는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알고 보니 그 일 때문이었구나... 벌써 6개월이나 지난 일인데, 아직도 그 이야기가 돌고 있다니?’그녀는 주희진을 살려낸 일이 이미 사람들에게 잊혀졌을 거라 생각했었다.“지금도 아직 그 얘기를 하는 사람이 있나요?”원아가 물었다. 만약 소남이 자신의 신분을 감춰주지 않았다면,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시달렸을 것이다.“사람이라면 누구나 병에 걸리죠. 특히 까다로운 병에 걸렸을 때, 수술이나 양약으로 해결되지 않는 경우, 교수님을 떠올리게 돼요. 하지만 교수님을 찾을 수가 없잖아요.”오현자는 설
원아는 아이들에게 공부와 휴식을 균형 있게 하라고, 숙제를 한꺼번에 다 끝내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려다가, 그러면 오히려 아이들이 숙제에 흥미를 잃고 나중에 게을러질까 봐 그만두었다. 그냥 아이들이 위층에서 숙제를 하도록 두었다.아이들이 숙제를 하는 동안, 그녀는 옆에 있을 필요가 없어서 서재로 들어가 연구를 계속했다.그녀가 연구 중인 해독제는 거의 완성 단계였고, 설날 동안 성분 분석과 배합을 마칠 수 있을 것 같았다.시간은 금방 지나갔고, 핸드폰 알람이 울리자 원아는 이미 밤 10시 30분이 된 것을 알게 되었다.그녀는 일
그녀가 만들어준 음식을 먹으면, 소남은 언제나 기운이 나는 기분이 들었다. 아마 그것이 사랑의 힘일 것이다.원아는 미소를 지으며 소남이 식사를 끝낼 때까지 옆에서 지켜보았다.그가 다 먹고 나자, 원아는 일어나 정리하려 했다.“정리는 이따가 해요.”소남은 손을 들어 원아의 손을 잡았다.원아도 다시 자리에 앉아 그를 바라보았다.소남은 말했다.“내일은 예성 어머니의 생신인데 나랑 같이 연회에 가요.”원아는 미간을 찌푸렸다. 원래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소남이 함께 가자고 하니 마음이 복잡했다.“대표님, 안
다른 쪽, 송현욱의 별장.현욱은 이연의 손을 잡고 드레스룸으로 데려갔다.“늦은 밤에 갑자기 드레스룸에 왜 데려온 거예요?”이연은 웃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에는 부드러움이 가득했다.“당신에게 어울리는 옷을 고르려고.”현욱은 대답하며 드레스룸 문을 열었다.이연은 새 옷들이 걸려 있는 것을 보고는 놀라서 물었다.“이거 전부 당신이 날 위해 산 거예요?”“응, 이 옷들은 특별한 자리에서 입기 좋은 것들이라 몇 벌 준비했어. 마음에 드는 게 있나 봐봐.”현욱은 말했다.그는 이연이 평소에 편안하고 캐주얼한 옷을 즐
소남의 앞에서 원아는 아무 일도 없는 듯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 없었다.“출근하기 싫은 거예요?”소남은 그녀의 말을 겉으로는 믿는 척하며 물었다. 하지만 그는 속으로 원아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전날부터 출근 준비를 했던 그녀가, 단순히 출근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그런 표정을 지을 리 없었다.‘무언가 좋지 않은 일이 생긴 것 같아. 하지만 아침부터 무슨 일이 생긴 거지?’소남은 속으로 궁금해하면서도 원아를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원아는 내 앞에서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굳이 진실을 캐
“이건 장기적인 투자예요. 누구도 반대하지 않을 거고, 게다가 당신이 진행 중인 연구도 이제 상용화될 때가 됐어요.” 소남은 원아의 귀에 대고 속삭이며, 살짝 감정이 실린 목소리로 말했다.원아가 진행한 연구는 몇 차례의 임상 실험을 통해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었다. 그 후 회사의 마케팅팀이 시장 조사를 했고, 적절한 가격 조건만 맞으면 대부분의 의료 기관이 그 약품을 대량으로 구입하여 환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혔다. 시장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원아는 소남의 가까운 존재감에 살짝 혼란스러워하며 나지막이
소남은 설계 도면을 디스크에 저장한 후, 모든 자료를 서류 봉투에 넣었다. 모든 작업을 마친 그는 원아도 샤워를 끝냈을 것이라고 짐작하며 그녀의 방으로 향했다.그는 문을 열고 들어갔고, 원아는 이미 샤워를 마치고 화장대 앞에서 꼼꼼하게 스킨케어를 하고 있었다.원아가 고개를 돌려 소남을 보며 말했다. “다 출력했어요?”“다 출력했어요.” 소남이 대답하며 다가 갔고 원아가 일어서자 그녀를 안으며 말했다. “아까 에런한테서 전화가 왔어요.”“무슨 일이죠...” 원아는 갑작스러운 불안감을 느꼈다. 이런 시간에 에런이 전화를
원아는 설계도를 꼼꼼히 살펴보았다.ML그룹의 입찰 이후, 소남이 이렇게 공들여 건축 설계도를 완성한 적이 없었다. 그녀는 설계도의 세부 사항 하나하나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대표님, 이 설계도 정말 멋져요!” 원아는 감탄하며 말했다. 그런데 이 말을 하고 나서야 그녀는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았다.원아는 생물제약 분야에서 일하고 있지만, 지금은 소남의 건축 설계도에 감탄하고 있는 자신이 이상하게 느껴졌다.‘소남 씨가 방금 내가 한 말을 듣고, 내가 그냥 기분 좋으라고 한 말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텐데. 안 그러면
눈이 녹으면서 날씨는 평소보다 더 쌀쌀해졌지만, 이연의 마음은 따뜻했다.예전에는 이연이 감히 송씨 가문 사람들을 마주할 용기도 없었고, 이런 일들을 처리할 결심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현욱의 사랑이 이연의 결심을 굳건하게 해주었다. 즉, 이제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하기로 마음먹었다.“현욱 씨...” 이연이 나지막이 말했다.“난 항상 여기 있어.” 현욱은 그녀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다.“혹시 내가 도울 일이 생기면 꼭 말해줘요.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똑똑하지 않지만, 최선을 다해 당신을 도울 거예요.” 이연은 결심하
현욱이 그런 표정을 짓는 일은 드물었다. 그래서 원아는 그가 무언가 중요한 일에 직면해 있음을 직감했다.“그렇겠죠.” 비비안도 원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2층.현욱은 소남을 찾아가 상황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소남은 현욱의 계획을 듣고 나서 얼굴이 굳어졌다.“알겠어. 앞으로 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 말해.”“이번에는 형님의 도움이 정말 필요해요. 저도 이번만큼은 절대로 사양하지 않을 거예요. 형님은 제 편에 단단히 서주기만 하면 돼요.” 현욱은 말했다.소남의 지지가 있다면, SJ그룹은 쉽게 무너지지 않
막 앉았을 때,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전화는 윤수정에게서 온 것이었다. 재훈은 전화를 받지 않고, 대신 윤수정에게 톡으로 메시지를 보냈다.[형이 확실히 모든 개인 서류들을 전부 다시 발급한 것 같아요. 그 시기가 꽤 이른 편이었는데, 그때는 우리가 이연을 경계하지 않았을 때였죠.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할아버지가 이 문제를 잘 처리하실 거예요.]메시지를 보내고 나서 재훈은 핸드폰을 아무렇게나 내려놓고 소파에 몸을 던졌다.‘송현욱과 이연... 너희 둘이 결혼을 했다고 해도, 내가 너희들을 행복하게 내버려 둘 것 같아!’‘
“할아버지, 지금 금고에 있는 형의 모든 개인 서류를 가지고 한 번 확인해 보세요. 아마 지금은 사용할 수 없는 서류들뿐일 거예요. 할아버지께서 형한테 정략결혼을 추진하실 때, 형은 이미 그때 모든 개인 서류를 다시 재발급 신청을 해서 새롭게 발급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재훈은 마음속의 분노를 억누르며, 최대한 차분하게 송상철에게 이 사실을 전했다.송상철의 얼굴은 화가 난 나머지 핏발이 부풀어 올랐고, 유 집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현욱이 이 녀석 당장 데려와.”“예, 어르신.” 유 집사는 이번 일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재훈이 지난번 T그룹의 입찰사업계획서를 훔치려다 실패한 일이 있었고, 그는 그 책임을 부하에게 돌렸지만, 송상철은 여전히 그 일을 부끄럽게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 재훈은 지금 자신이 직접 모든 것을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럼 네 엄마는 깨어나긴 한 거야?” 송상철이 다시 물었다.“예, 깨어나셨어요.” 재훈은 거실에서 최대한 인내심을 갖고 서 있었다. 송상철이 모든 질문을 끝내야만 재훈이 서재로 가서 금고를 열 수 있기 때문이었다.송재훈은 송상철의 모든 질문이 끝날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며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