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손에서 물건을 건네받은 영은은 그것을 속옷 주머니에 조심스럽게 넣었다.그리고 곧바로 그녀는 블루캐슬 쪽으로 향했다.사거리를 지나고 있을 때, 더러운 손 하나가 영은의 외투 옷자락을 덥석 잡았다.“아가씨, 선심을 베풀어 주세요!”영은이 선글라스를 벗었다.눈살을 찌푸리며 뒤를 돌아보니, 덥수룩한 머리를 한 꾀죄죄한 몰골의 노숙자 하나가 영은의 옷자락을 당기고 있었다. 노숙자는 술에 취해 있었다. 구멍이 뚫린 허름한 겹저고리를 입고 있었는데, 제 빛깔을 모를 정도로 더러웠다. 그의 얼굴 역시 몇 개월 동안 씻지 않은 듯
“고양이는 아마도 제 주인을 찾아가야 할 것 같아. 우리 딸, 엄마 말 잘 들어봐. 일단 고양이가 돌아가게 하자. 집에 도착하면 엄마가 한 마리 사 줄게, 응?”“그래도……. 아직 고양이와 충분히 못 놀았는걸요? 집에 계신 증조할아버지가 동물 키우는 걸 허락 안 하시잖아요.”원원은 엄지손가락을 잘근잘근 씹으며 슬픔이 가득한 큰 눈을 깜박거렸다.문소남이 입술 가장자리를 우아한 자세로 닦으며 말했다.“증조할아버지가 키우지 말라고 하셨지만, 아빠는 키우라고 허락할게. 며칠 후에 우리 네 식구는 따로 나가서 살게 될 거야. 그때 너
영은은 화장실 벽에 기대어 섰다. 말을 듣지 않는 고양이 때문에 화가 나 죽을 지경이었다.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통조림으로 아무리 유혹해도 고양이는 내려올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귀신 같은 놈!’하지만, 영은은 반드시 고양이에게 주사를 놓아야만 했다.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다음 계획을 실천할 수 없었다.영은은 하이힐을 벗고 맨발로 세면대 위로 올라갔다. 고양이를 안아서 내리려는 목적이었다.뜻밖에도, 그 새하얀 페르시안 고양이는 그녀의 의도를 짐작한 것 같았다. 영은이 세면대 위로 올라가자마자 바닥을 향해 뛰어내렸다.고양
갑작스러운 상황에 모두 어쩔 줄을 몰랐다.아직 어린 원원은 놀라 그대로 얼어버렸다. 고양이가 원원에게 달려들었다.어린 원원의 눈이 커졌다.“원원!” 원아는 재빨리 훈아와 원원을 자신의 품으로 끌어안았다. 아이들은 작은 얼굴을 원아의 가슴 속에 파묻었다. 원아는 온몸으로 고양이의 공격을 막았다.흰 고양이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온몸의 하얀 털은 가시처럼 곧게 섰으며, 검푸른 눈에서는 살기가 돌았다. 이윽고 날카로운 발톱이 원아의 스웨터에 박혔다.“저리 가!” 원아는 어깨에 있는 흰 고양이를 떨어뜨리려 애썼다.원아는
익숙한 남자의 뜨거운 기운이 원아를 향해 밀려오고 있었다…….냄새만으로도 안심이 되는 익숙한 남자의 향기가 원아의 콧속을 가득 메웠다. 원아는 차갑지만 맑은 기운을 느끼며, 소남의 목덜미를 껴안았다. 그러자 마음이 서서히 진정되기 시작했다.조금 전까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는데, 소남에게 안기자마자 알 수 없는 슬픔 같은 것이 샘물처럼 솟아오르기 시작했다.원아가 나직이 말했다.“소남 씨…….”소남은 원아를 안아 올려 자신의 무릎 위에 앉혔다.소남의 시선이 원아의 상처 난 목에 닿았다. 그의 얼굴에 아파하는 마음이 드러났다
다행히, 중년의 의사는 송씨 집안 둘째인 송현욱 밑에서 오랫동안 일한 탓인지 그런 말에 쉽게 동요되지 않았다. 만약 그렇지 않았더라면, 이처럼 매서운 기세의 남자 앞에서 부들부들 떨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소남이 원아의 소매를 걷어 올리자, 눈처럼 하얀 피부가 드러났다.중년 의사가 원아의 팔을 멍하니 바라보았다.지금껏 피부 좋은 부잣집 아가씨들을 많이 진료해 봤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여인과 같은 여자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어찌나 뽀얗고 여리던지 마치 아기 피부 같았다.게다가 그 하얀 피부에서는 마치 빛이 나는
보라는 애원이 가득 담긴 눈으로 송현욱을 바라보았다. 계속해서 눈물이 흘러내렸다.“대…… 대표님, 모든 것은 출근할 때 고양이를 데리고 온 제 잘못입니다. 회사에서 내리는 어떠한 벌도 달게 받겠습니다. 치료비도 제가 모두 보상하겠습니다. 대신, 이 고양이를 살려주세요. 이…… 고양이는…… 저에게 정말 소중한 가족이라…….”이를 지켜보던 안익준은 진보라가 다른 남자 앞에서 애원하는 것이 못마땅했다.“현욱, 그만해. 고양이 한 마리 가지고 밑에 직원 힘들게 만들 거 뭐 있어? 검사 후에 될 수 있으면 살려주도록 해.”송현욱은 흥
소파에 앉아 의사에게서 검사 결과를 전해 듣는 소남의 얼굴이 굳어졌다.그는 이 일이 틀림없이 누군가에 의해 계획된 일이라고 생각했다.‘누가 이런 계획은 세웠단 말인가. 대체 누구를 겨냥한 것이지? 다른 사람? 그렇다면, 혹시 원아를 헤치려 한 건 아닐까?’혹시 두 번째 이유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소남의 검은 눈동자가 떨리며 한없이 요동치기 시작했다.그때, 블루캐슬 모니터링 담당 선임 매니저가 들어왔다.그는 감시 카메라 화면을 캡처해 현장에 있던 사람들에게 공개했다. 연회색의 넓은 스카프를 두른 여자가 얼굴 전체를
소남의 앞에서 원아는 아무 일도 없는 듯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 없었다.“출근하기 싫은 거예요?”소남은 그녀의 말을 겉으로는 믿는 척하며 물었다. 하지만 그는 속으로 원아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전날부터 출근 준비를 했던 그녀가, 단순히 출근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그런 표정을 지을 리 없었다.‘무언가 좋지 않은 일이 생긴 것 같아. 하지만 아침부터 무슨 일이 생긴 거지?’소남은 속으로 궁금해하면서도 원아를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원아는 내 앞에서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굳이 진실을 캐
“이건 장기적인 투자예요. 누구도 반대하지 않을 거고, 게다가 당신이 진행 중인 연구도 이제 상용화될 때가 됐어요.” 소남은 원아의 귀에 대고 속삭이며, 살짝 감정이 실린 목소리로 말했다.원아가 진행한 연구는 몇 차례의 임상 실험을 통해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었다. 그 후 회사의 마케팅팀이 시장 조사를 했고, 적절한 가격 조건만 맞으면 대부분의 의료 기관이 그 약품을 대량으로 구입하여 환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혔다. 시장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원아는 소남의 가까운 존재감에 살짝 혼란스러워하며 나지막이
소남은 설계 도면을 디스크에 저장한 후, 모든 자료를 서류 봉투에 넣었다. 모든 작업을 마친 그는 원아도 샤워를 끝냈을 것이라고 짐작하며 그녀의 방으로 향했다.그는 문을 열고 들어갔고, 원아는 이미 샤워를 마치고 화장대 앞에서 꼼꼼하게 스킨케어를 하고 있었다.원아가 고개를 돌려 소남을 보며 말했다. “다 출력했어요?”“다 출력했어요.” 소남이 대답하며 다가 갔고 원아가 일어서자 그녀를 안으며 말했다. “아까 에런한테서 전화가 왔어요.”“무슨 일이죠...” 원아는 갑작스러운 불안감을 느꼈다. 이런 시간에 에런이 전화를
원아는 설계도를 꼼꼼히 살펴보았다.ML그룹의 입찰 이후, 소남이 이렇게 공들여 건축 설계도를 완성한 적이 없었다. 그녀는 설계도의 세부 사항 하나하나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대표님, 이 설계도 정말 멋져요!” 원아는 감탄하며 말했다. 그런데 이 말을 하고 나서야 그녀는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았다.원아는 생물제약 분야에서 일하고 있지만, 지금은 소남의 건축 설계도에 감탄하고 있는 자신이 이상하게 느껴졌다.‘소남 씨가 방금 내가 한 말을 듣고, 내가 그냥 기분 좋으라고 한 말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텐데. 안 그러면
눈이 녹으면서 날씨는 평소보다 더 쌀쌀해졌지만, 이연의 마음은 따뜻했다.예전에는 이연이 감히 송씨 가문 사람들을 마주할 용기도 없었고, 이런 일들을 처리할 결심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현욱의 사랑이 이연의 결심을 굳건하게 해주었다. 즉, 이제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하기로 마음먹었다.“현욱 씨...” 이연이 나지막이 말했다.“난 항상 여기 있어.” 현욱은 그녀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다.“혹시 내가 도울 일이 생기면 꼭 말해줘요.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똑똑하지 않지만, 최선을 다해 당신을 도울 거예요.” 이연은 결심하
현욱이 그런 표정을 짓는 일은 드물었다. 그래서 원아는 그가 무언가 중요한 일에 직면해 있음을 직감했다.“그렇겠죠.” 비비안도 원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2층.현욱은 소남을 찾아가 상황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소남은 현욱의 계획을 듣고 나서 얼굴이 굳어졌다.“알겠어. 앞으로 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 말해.”“이번에는 형님의 도움이 정말 필요해요. 저도 이번만큼은 절대로 사양하지 않을 거예요. 형님은 제 편에 단단히 서주기만 하면 돼요.” 현욱은 말했다.소남의 지지가 있다면, SJ그룹은 쉽게 무너지지 않
막 앉았을 때,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전화는 윤수정에게서 온 것이었다. 재훈은 전화를 받지 않고, 대신 윤수정에게 톡으로 메시지를 보냈다.[형이 확실히 모든 개인 서류들을 전부 다시 발급한 것 같아요. 그 시기가 꽤 이른 편이었는데, 그때는 우리가 이연을 경계하지 않았을 때였죠.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할아버지가 이 문제를 잘 처리하실 거예요.]메시지를 보내고 나서 재훈은 핸드폰을 아무렇게나 내려놓고 소파에 몸을 던졌다.‘송현욱과 이연... 너희 둘이 결혼을 했다고 해도, 내가 너희들을 행복하게 내버려 둘 것 같아!’‘
“할아버지, 지금 금고에 있는 형의 모든 개인 서류를 가지고 한 번 확인해 보세요. 아마 지금은 사용할 수 없는 서류들뿐일 거예요. 할아버지께서 형한테 정략결혼을 추진하실 때, 형은 이미 그때 모든 개인 서류를 다시 재발급 신청을 해서 새롭게 발급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재훈은 마음속의 분노를 억누르며, 최대한 차분하게 송상철에게 이 사실을 전했다.송상철의 얼굴은 화가 난 나머지 핏발이 부풀어 올랐고, 유 집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현욱이 이 녀석 당장 데려와.”“예, 어르신.” 유 집사는 이번 일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재훈이 지난번 T그룹의 입찰사업계획서를 훔치려다 실패한 일이 있었고, 그는 그 책임을 부하에게 돌렸지만, 송상철은 여전히 그 일을 부끄럽게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 재훈은 지금 자신이 직접 모든 것을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럼 네 엄마는 깨어나긴 한 거야?” 송상철이 다시 물었다.“예, 깨어나셨어요.” 재훈은 거실에서 최대한 인내심을 갖고 서 있었다. 송상철이 모든 질문을 끝내야만 재훈이 서재로 가서 금고를 열 수 있기 때문이었다.송재훈은 송상철의 모든 질문이 끝날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며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