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프라이버시입니다.”피고 측 변호사가 바로 입장을 밝혔다.이때 판사가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조제법의 출처 문제는 이 사건에 매우 중요하므로 피고 측에서 대답해 주십시오.”양희지는 어쩔 수 없이 솔직하게 대답했다.“수비대의 고진성 씨입니다.”공혜리는 눈살을 찌푸렸다.‘그렇게 스스로 연구 개발했다며 강조하더니 고진성 할아버지에게서 얻은 조제법이었어?”원고 측 변호사가 말했다.“제삼자의 출석을 요청합니다.”“허락합니다.”판사가 말했다.“제삼자의 존재가 있다는 가정하에 원본 샘플은 어디서 났습니까? 우리 측에서는 원본 샘플의 현장 검사도 요청합니다.”변호사의 매서운 공격이 연이어 두 번 펼쳐졌다.“네, 그러죠.”양희지가 조윤미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조윤미는 얼마 남지 않은 연고를 들고 마지못해 여지윤에게 넘겼다.여지윤이 연고를 잡고 뚜껑을 여는 순간, 평온했던 그녀의 얼굴빛이 확 변했다.경악, 놀라움 등 여러 가지 감정들이 그녀의 얼굴에 나타났다.그녀는 연고를 꼼꼼히 살펴보고는 조심스럽게 냄새까지 맡았다. 애써 진정하려고 했지만 놀란 감정은 그녀의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났다.“이 연고, 어디에서 났어요?”여지윤이 직접 물었다.그녀가 직접 피고 측에 질문을 던진 것은 처음이었지만 그녀의 말 속도는 평소보다 훨씬 빨랐다.양희지가 대답했다.“고진성 씨께서 선물로 주셨습니다. 어디서 났는지는... 고진성 씨 본인만 아시겠죠.”이때 공혜리가 물었다.“여지윤 씨, 혹시 이 연고는 백초당의 연고입니까?”여지윤은 미간을 구기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아니요.”“백초당의 힐링 크림에 비하면 어때요?”공혜리가 또 물었다.여지윤은 조금 부끄러운 듯했지만 그래도 솔직히 대답했다.“하늘과 땅 차이가 나듯이 힐링 크림은 이 연고 앞에서 아무것도 아닙니다.”자신이 개발한 제품을 이렇게 공개적으로 부정하는 것을 보니 여지윤은 정직한 사람임이 분명했다.곧이어 고진성이 도착했다.양희지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그... 그게 무슨 소리예요?”여지윤은 사회에 초입한 소녀처럼 부끄러워하더니 얼굴이 순식간에 빨개졌다.평생 결혼을 하지 않은 그녀가 사모님이라 불렸는데도 화를 내지 않은 걸 보면 그녀가 얼마나 교양 있는 여자인지 보아낼 수 있었다.“제 사부님은 옥의 신이십니다. 정말 모르십니까?”염무현이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여지윤의 두 손은 걷잡을 수 없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의 눈에는 빛이 반짝였다.그녀는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애써 가라앉히며 물었다.“그 사람의 제자라는 걸 어떻게 증명해요?”염무현은 가방에서 준비한 금바늘 세트를 꺼내 양손으로 여지윤 앞에 가져다 놓았다.여지윤은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조심스럽게 바늘 주머니를 열더니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러고는 마치 극도로 소중한 보물을 다루듯이 손끝으로 바늘 주머니를 쓸어보았다.“사부님께서 쪽지를 남겨주셨어요. 직접 사모님의 이름이 쓰인 쪽지였는데 너무 급하게 오느라 깜빡 잊고 안 챙겨왔네요. 보시겠으면 제가 다시 가지러 가겠습니다.”염무현은 염라대왕으로서 당연히 이런 실수를 저질렀을 리가 없다. 그 쪽지는 사실 바로 그의 바지 주머니 안에 있었다.그가 여지윤에게 거짓말을 했던 건 사부님과 사모님의 관계를 잘 몰랐기 때문이다.‘서로의 존재를 알고 있을 뿐, 사생활에는 터치를 안 하는 걸까? 아니면 사부님이 여색을 밝히는 사람이라 여러 여자들 사이를 누비면서 그녀들에게 모두 비밀로 한 것일까?만약 후자라면 쪽지 하나에 사부님의 모든 것이 들통날 것이다.비록 그가 염무현을 종종 속이곤 했지만 염무현은 원칙 있는 사람이었다. 스승님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행동은 결코 허용하지 않았다.“괜찮아요. 사슴 가죽 바늘 주머니가 있는 걸 보니 그 사람의 제자가 맞네요.”여지윤이 고개를 들더니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이 금바늘 세트는 몇 대째 이어져 온 당신 사부님의 보물이었어요. 제자의 의술이 사부를 뛰어넘을 때만이 그 금바늘의 주인이 될 수 있죠.”“그래요? 사부님이 저에게는 그런 말씀을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름다운 사모님을 놔두고 떠나다니, 드라마에서 나오는 나쁜 남자네.“그 사람, 불치병에 걸렸어.”여지윤이 설명했다.뭐라고?염무현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옥의 신이 가지고 있는 가장 대단한 기술이 바로 의술이었다.염무현처럼 훌륭한 제자도 가르쳤는데 자신의 병을 치료할 수 없다니?여지윤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장난치는 거 아니야. 그 불치병은 젊은 시절부터 시작되었어. 시간이 지나면서 증세가 점점 더 심해졌지. 그 사람이 의술을 익히 알고 있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오래 살지도 못했을 거야.”“그렇군요. 그런데 사부님께서 잘도 숨기셨군요. 제가 오랫동안 옆에서 의술을 공부했는데도 전혀 알아채지 못했으니 말이에요.”염무현은 충격이 가시지 않았다.불치병을 앓고 있으면서도 옥의 신이 될 수 있었다니. 그는 실로 대단한 사람이었다.“그래, 고집이 너무 세서 문제지.”여지윤이 쓴웃음을 지으면서 말을 이어갔다.“우리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아무도 없는 곳으로 숨은 게 아닐까? 그러면 딱 설명이 되었다.사부님은 귀찮아서 도망간 것이 아닌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것이었다.“마지막 순간에 무현 씨처럼 훌륭한 제자를 찾았으니 마음이 얼마나 뿌듯했겠어?”여지윤은 그처럼 뿌듯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마음이 씁쓸하기도 했다.물론 염무현에게 한 칭찬은 모두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옥연고가 바로 그 증거였다.사실 힐링 크림의 주인은 여지윤이 아닌 옥의 신이었다. 그가 젊었을 때 만들어낸 옥연고는 효과가 별로여서 나중에는 헌신짝처럼 버려졌다.여지윤은 쓰레기를 정리하던 중 힐링 크림의 조제법을 발견했는데 조금의 개량을 거쳐 완제품을 만들었다.여지윤의 아버지는 이를 발견한 후 재빨리 딸의 이름으로 특허출원을 낸 것이다.힐링 크림은 리프팅 효과가 있다지만 여지윤의 요구에는 훨씬 못 미쳤다. 그래서 그녀는 힐링 크림을 단 한 번도 중요시하게 생각한 적 없었다.그래서인지 가족이 힐링 크림을 제품으로
“칠요보연.”“현염초.”“그리고 진원천정이 필요해.”여지윤이 약초의 이름을 하나씩 말할 때마다 염무현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다.이 세 가지 약초는 모두 천재지보급이라 돈을 주고도 못 사는 경우가 대다수였다.백년 산삼은 드물긴 하지만 높은 가격만 지불한다면 충분히 구할 수 있었다.다른 곳에 가서 찾을 필요도 없었다. 특히 백초당 같은 스케일의 제약 회사 약재 창고에도 백년 산삼이 100개 이상이 보관되어 있을 텐데 말이다.일반인에게는 백년 산삼도 쉽게 구할 수 없는 대단한 약재이다. 하지만 진정한 천재지보에 비하면 겸상조차 할 수 없는 하찮은 존재였다.여지윤은 백초당의 후계자로서 당연히 약재에 대해 많이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런 그녀조차 구하기 힘들어하는 약재이니 그 희소성은 말할 것도 없었다.사실 염라대왕이라 불리는 염무현도 이 약재들은 의학 서적에서나 보던 이름일 뿐이었다.아마 그의 사부인 옥의 신도 세 가지 약재의 실물을 본 적이 없을 것이다.꼭 필요한 약재가 부족하니 다른 수를 써봐도 소용이 없었다.여지윤은 온갖 방법을 동원해 그 세 가지 약재를 구해보려고 했으나 매번 실패했다.여지윤의 기분이 가라앉은 걸 발견한 염무현은 웃으면서 말했다.“사모님, 걱정하지 마시고 모든 걸 저에게 맡기세요.”“방법이 있는 거야?”여지윤의 얼굴색이 조금 밝아졌다.염무현이 고개를 끄덕였다.“아마도요. 다만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아요.”“그거야 당연히 기다릴 수 있지. 그 사람의 병이 위독한 건 맞지만 죽을 문턱에 이른 건 아니라고.”여지윤은 흥분을 주체할 수 없었다.“의술을 익히 알고 있으니 그래도 스스로 병세를 조절할 수 있는 것 같더라고.”염무현은 걱정하지 말라는 의미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구하기 어려운 약재들이었으나 찾을 수만 있다면 그는 반드시 손에 넣을 방법이 있었다.여지윤은 자신이 조금 실수했다는 것을 깨닫고는 마음을 진정시킨 후 다시 염무현에게 물었다.“무현 씨는 오늘 여기에 왜 온 거야? 오늘 사건이랑 관련이 있어
물론 아랫사람으로서 손윗사람의 사생활까지 추측하는 건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라 이쯤에서 그만하기로 했다.법정에서 피고인 측은 유력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해 점점 더 열세에 처했다.승리의 저울은 이미 원고인 측을 향해 기울어졌다.원고 측 변호사팀은 하나같이 만면에 희색을 띠었고 우승을 직감했다.이 소송에서 승리를 거머쥐는 건 이제 시간문제였다.양희지는 더 이상 만회할 기회가 없다는 생각에 연신 한숨만 나왔다.공혜리도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비록 염무현을 맹신하지만 지금은 누가 봐도 그들에게 불리한 상황이라 현시점에서 판을 뒤집는 방법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이때, 여지윤이 다시 돌아왔고 얼굴에는 기쁨이 고스란히 드러났다.따라서 양희지는 이번에 진짜 끝장났다는 것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판사님, 발언할 기회를 주시기 바랍니다.”여지윤은 그녀에게 뿌듯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변호사팀을 무시하고 대뜸 판사에게 부탁했다.판사가 고개를 끄덕였다.“원고인, 발언하세요.”비서가 마이크를 가져오자 여지윤이 운을 뗐다.“조사를 이미 마쳤는데 피고인 측의 조제법은 원고인 측에서 신청한 특허를 침해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비록 유사한 점이 많지만 분류와 비율 면에서 현저한 차이가 있죠. 그동안 저희가 착각하고 피고인 측이 표절하고 침해한 줄 알았는데 이제는 오해라고 확신합니다. 따라서 저는 원고인 신분으로 이 자리에서 고소를 취하하도록 하겠습니다.”뭐?!사람들은 하나같이 넋을 잃었고, 법정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심지어 판사마저 불가사의했다. 누가 봐도 승소할 상황에서 뜬금없는 대반전이라니?오해? 증거가 이렇게나 많은데 그게 대체 무슨 말이지?여지윤이 말을 이어갔다.“그리고 서면으로 힐링 크림의 특허권을 포기하겠다고 성명할게요.”공혜리는 어안이 벙벙했다. 속으로는 무현 님이 진짜 해냈다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까다롭기로 소문 난 백초당 둘째 부인의 장녀를 어떻게 설득한 거지?반면, 양희지는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이제 다시 특허
여지윤의 말투에 비아냥거림이 가득했다.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양희지의 어여쁜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나이도 여지윤이 더 많았고, 신분을 따져 봐도 명백한 증거를 거머쥔 원고인이지 않은가?그런데도 먼저 양보했으니 큰 은혜를 베풀었다고 할 수 있다.다만 양희지는 납득이 안 갔다. 이미 고소를 취하하기로 한 이상 아무리 불만이 있더라도 체면을 세워주기 마련일 텐데 왜 면전에서 그녀를 비꼬는 거지?“이쪽이 양희지라면, 당신이 공혜리겠네?”여지윤이 공혜리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공혜리는 흠칫 놀라며 조심스레 대답했다.“네, 맞아요.”진정한 여장부 앞에서는 그녀마저 어림없었다.게다가 이미 한 소리 들은 양희지 때문에 더더욱 걱정되었고, 심지어 속으로는 혼날 각오까지 마쳤다.그러나 예상외로 얼음장처럼 차갑던 여지윤의 얼굴이 순식간에 환하게 변했다.여지윤은 서둘러 다가가 공혜리의 손을 덥석 붙잡고 활짝 웃었다.“능력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어쩌면 이렇게 예쁘고 성격마저 똑 부러졌을까?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든단 말이야. 누구처럼 눈에 거슬리지도 않고!”마지막 한 마디는 비수가 따로 없었다.옆에 있는 양희지는 납득이 불가하다는 듯 두 눈을 부릅떴다.똑같은 피고인으로서 왜 그녀만 이런 수모를 당해야 하냐는 말이다.공혜리가 완전무결한 미인이라고? 자신이 더 못 한 게 뭐가 있지?물론 장본인도 어리둥절했다.“대표님, 이게 대체 무슨...”비록 어렸을 때부터 주변에서 미녀라는 칭찬을 많이 들어서 이미 익숙했지만 갑작스러운 극찬에 쑥스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1분 전만 해도 적대적인 관계로서 죽이지 못해 안달이지 않은가?사실 정확하게 말해서는 일방적인 패배에 가깝기는 했다.만약 여지윤이 급하게 말을 바꾸고 소송을 취하하지 않았더라면 혜리 그룹은 큰코다칠 게 뻔했고 YH그룹은 끝장났을 것이다.저승사자가 따로 없던 사람이 갑자기 180도 변하면서 칭찬을 늘어놓는데 누구라도 패닉에 빠지기 마련이다.“대표님은 무슨, 너무 딱딱하잖아.”여지윤이 일부
그럴 리가? 만약 사실이라면 여지윤이 왜 소송을 취하한다는 말이지? 코앞까지 다가온 이익을 포기하다니?양희지는 한시라도 빨리 김준휘에게 연락해서 확인하고 싶어 안날 났다.여지윤은 공혜리와 연락처를 교환했고, 당분간 서해시에 있으니 언제든지 찾아오라고 했다.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빠르게 전화를 건 양희지는 한껏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오빠! 해결했어요.”“이겼어?”김준휘가 놀란 목소리로 되물었다.기쁨에 취한 그녀는 상대방의 반응을 미처 눈치채지 못하고 신이 나서 대답했다.“결정적인 순간에 대반전이 있었어요. 이게 다 준휘 오빠가 도움을 준 덕분이죠. 아니면 패소할 게 뻔했어요.”김준휘는 어리둥절했다. 이렇게 해도 승소하다니? 장난하나?“내가 얘기했잖아. 괜찮아, 별일도 아닌 걸 가지고.”김준휘는 애써 대수롭지 않은 척 말했다. 이렇게 큰 공로를 가로채게 생겼는데 당연히 놓칠 수는 없지.양희지가 들떠서 말했다.“준휘 오빠에게 별일 아닐지 모르지만 우리 그룹한테는 생사가 달린 중요한 사건이었죠. 당연히 제대로 감사 인사를 드려야 하지 않겠어요? 이렇게 하죠, 저녁에 내가... 아니, 저희 가족 전체가 음식을 대접할 테니까 혹시 시간 돼요?”김준휘가 겸손하게 사양했다.“괜찮아, 한 가족끼리 예의를 왜 차려?”그는 아직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는데 제대로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만약 말실수라도 한다면 들통나기 마련이니까.“괜찮긴 뭐가 괜찮아요? 그런 줄 알고, 이따가 봐요.”양희지가 막무가내로 밀어붙였다.법정 밖.공혜리는 그녀를 붙잡고 놓지 않는 여지윤을 어렵사리 떼어내고 자기 차로 걸어갔다.열정이 어찌나 대단한지 당최 대처할 방법이 없었다.“휴, 민망해라... 드디어 지윤 이모와 헤어졌어요. 너무 웃어서 얼굴에 쥐가 날 뻔했네요.”공혜리는 차에 타자마자 재잘재잘 말했다.“그리고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지윤 씨 표정에서 언뜻 보이는 그 자애로운 미소는 대체 뭐죠? 무현 님은 왜 그런지 알고 계시나요?”염무현의 관심은 누가
“당신들 누구야! 지금 뭐 하는 거지? 경고하는데 꼼짝하지 않은 게 좋을 거야. 아니면 경찰에 신고할 테니까! 폭력을 남용하여 인신 자유를 박탈하는 죄명으로 고소당할 줄 알아.”혜리 그룹, 영업팀.검은 옷차림의 사내들이 갑자기 우르르 들이닥치더니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그들은 사무실을 겹겹이 에워싸서 아무도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했고, 외출이나 통화도 금지했다.일개 회사 직원이 어찌 이런 상황을 겪어 봤겠는가? 이내 공기 중에 긴장감이 맴돌기 시작했고 다들 몸 사리기 급급했다.태로운은 발을 동동 굴렀지만 겉으로는 센 척했다.“공 대표가 우리를 직접 스카우트한 거야. 회사가 위기를 무사히 극복할 수 있는지는 우리 영업팀이 하기 나름이야. 지금 이런 짓을 하고도 아무런 악영향이 없을 거로 장담해? 공 대표는 어디 있지? 당장 나와서 설명하라고 해!”그는 바보가 아닌지라 그동안 어둠의 세계에서 왕이라 불리는 자가 공씨 가문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비록 나중에 손을 씻고 바른길에 들어섰지만, 사실 지금까지도 선두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공씨 가문의 식구가 아닌 이상 간덩이가 배 밖으로 나왔다고 혜리 그룹까지 찾아와서 행패를 부리겠는가?따라서 지금 같은 상황이 발생했다는 건 공혜리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뜻했다.태로운이 그녀를 찾은 것도 나름대로 이해는 갔다.“뭐가 그리 급하지? 피할 수 없다면 그냥 즐겨.”선두에 선 사람은 다름 아닌 김범식이다.제집 안방마냥 책상에 걸터앉은 그는 싸늘한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보기만 해도 등골이 오싹했다.“그... 그게 무슨 뜻이야?”태로운은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일부러 센 척하며 말했다.김범식이 냉소를 지었다.“본인이 무슨 짓을 했는지 속으로 뻔하지 않나?”비록 당황하기 그지없었지만 억울한 듯, 아무 영문을 모른다는 듯 뻔뻔스럽게 되받아쳤다.“멀리서 혜리 그룹까지 출근하러 왔더니 태도가 고작 이 모양 이 꼴이라니? 너무한다는 생각은 안 들어?”이때, 카랑카랑한 여자 목소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