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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화

Penulis: 일립
약혼식 날짜가 닥쳤다.

배씨 가문 어르신 배진수가 하연서를 예뻐했기에 약혼식은 매우 성대하게 열렸고 많은 가문의 친지들이 모여들었다. 화려하기 그지없는 연회장에는 웃음소리가 떠나질 않았다.

배시혁이 문 앞에서 웃으며 하객을 맞이했지만 마음이 매우 다급했다. 시간이 거의 되는데 하연서가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배진수가 그런 배시혁에게 다가가 어두운 표정으로 물었다.

“연서랑 싸운 거냐?”

배시혁이 얼른 부정했다.

“그런 거 아니에요. 할아버지.”

“그러길 바라야 할 거야.”

배진수가 언짢은 표정으로 배시혁을 노려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연서는 내가 점찍어둔 손주며느리야. 오늘 약혼식에 차질이라도 생기면 집에 돌아올 생각하지 마.”

“걱정하지 마세요. 아무 일 없을 거예요.”

배시혁과 얘기를 나누던 배진수가 하연서를 보고는 활짝 웃었다.

“연서야.”

배시혁의 시선이 배진수를 따라갔다. 하얀 드레스를 입고 하이힐을 신은 하연서가 그들을 향해 서서히 걸어오고 있었다. 마음을 짓누르던 돌이 사라진 배시혁이 우쭐거리며 눈썹을 추켜세웠다.

‘성질부리면 뭐 해? 결국 이렇게 돌아올 거면서.’

하지만 하연서는 그런 배시혁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배진수에게 다가갔다.

“왜 이렇게 늦게 왔어?”

“할아버지,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연서가 두고 온 물건이 있어서 가지러 갔다고. 그래서 시간이 지체된 거예요.”

배시혁이 한발 먼저 대답하더니 자연스럽게 하연서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연서야, 앞으로 이런 일은 다른 사람 보내. 아니면 할아버지가 이렇게 좋은 날 둘이 싸운 줄 알잖아.”

배시혁의 말은 흠잡을 데 없었다. 둘의 금실이 얼마나 좋은지 보여주면서 하연서에게 오늘 같은 날 제멋대로 굴어서는 안 된다고 귀띔하고 있었다.

하연서는 그런 배시혁을 한참 동안 물끄러미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배진수는 그런 두 사람이 수상해 번갈아 봤지만 이 자리에서 따지긴 귀찮았다.

“그래. 별일 없으면 됐어. 오늘 연씨 가문 사람들도 오니까 이따...”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배진수는 멀지 않은 곳에 보이는 사람을 보고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

“말하니까 바로 오네. 연 대표, 왔어요?”

배시혁이 멈칫했다.

‘할아버지가 연지훈 씨를 불렀다고?’

인주시에서 연씨 가문은 첫손가락에 꼽힐 만큼 대단한 가문이었다. 산업이 크고 인재가 많기로 소문났지만 그중에서도 연지훈의 능력이 제일 뛰어났다. 공부를 마치고 귀국하자마자 가족 기업을 물려받았고 고작 몇 년 사이에 비즈니스 폭을 넓히면서 승승장구했다. 지금까지 연지훈은 경제 신문에서만 얼굴을 드러냈고 상류 가문의 사교 모임에는 나타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배시혁은 그런 연지훈이 그의 약혼식에 참석할 줄은 꿈에도 몰랐기에 얼굴에 화색이 돌더니 하연서를 버려두고 배진수의 뒤를 따라 연지훈을 마중하러 나갔다.

하연서는 드디어 조용해진 것에 감사하며 약혼식을 시작하기 전에 뭐든 먹어두려 했다. 물론 누군가 뒤에서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는 건 눈치채지 못한 채 말이다.

연지훈 옆에 선 소년이 의아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삼촌, 저 여자 어디서 본 것 같은데요?”

연지훈이 덤덤한 눈빛으로 소년을 쏘아보며 말했다.

“얌전히 있어.”

소년이 답답하다는 듯 입을 꾹 다물었다.

‘설마 내가 이렇게 올드한 방식으로 저 여자에게 대시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

한편, 하연서가 케이크 한 조각을 베어 무는데 뒤에서 하연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니, 와줘서 정말 다행이에요. 나는 언니가 아직도 시혁 오빠한테 화난 줄 알았는데.”

하연우가 말캉한 목소리로 말끝을 올리자 순진해 보이면서도 귀여웠다. 아무것도 모르는 척 연기할 때 나오는 목소리였다.

“언니, 저번 일은 내가 잘못했어요. 시혁 오빠가 내 말을 듣는 바람에 오해가 생겼지 뭐에요.”

하연우가 하연서의 손을 잡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탓할 거면 나를 탓해요.”

더는 봐주기 힘들었던 하연서가 무표정으로 손을 빼냈다. 이에 이연희가 언짢은 표정으로 말했다.

“동생이 사과하잖아. 지금 그게 무슨 태도야?”

둘째 오빠 하연호도 불쾌하다는 듯 말했다.

“하연서, 좋은 말로 할 때 말 들어.”

“사과하면 꼭 받아줘야 한다는 법이 있어요?”

하연서가 하씨 가문 사람들을 바라봤다. 하연우 편을 들며 하연우 뒤에 선 그들이 오히려 한 가족 같았다. 이 집에서 왕따는 늘 하연서였다. 전에는 목숨 걸고 어떻게든 가족에 녹아들려고 했지만 지금은 포기했다. 한평생이 얼마나 짧은 데 쓸데없는 곳에 낭비할 시간이 없었다.

“그리고...”

하연서가 하연우를 힐끔 쳐다보더니 말했다.

“나한테 사과해야 할 일이 차고 넘쳤어요.”

하연우는 믿는 구석이 있어 무엇을 하나 자신감이 넘쳤고 사람의 마음을 잘 읽어냈다. 게다가 더 중요한 건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탐욕스러움과 멍청하지 않은 두뇌까지 가지고 있었다.

하연서는 진작 하연우가 무슨 생각으로 쩍하면 배시혁을 불러내는지 잘 알고 있었다. 처음엔 배시혁도 하연서에게 불만을 털어놓았다.

“연우는 도대체 왜 그렇게 성가시게 하는 거야?”

하지만 그것도 잠시, 배시혁의 불만은 점점 줄어들었고 하연우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발 벗고 나서는 상황이 많아졌다. 그만큼 마음이 하연우를 향해 기운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노는 면에서 하연서는 엉망진창이었기에 하연우를 이길 방법이 없었다.

이길 수 없다면 상대하지 않는 것도 좋은 방법이었다. 게다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얻는다고 일 년 더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아무 소용이 없었다.

하연서가 생각에 잠겨있는데 무대에서 사회자가 마이크를 테스트하자 하도영이 가문의 수장으로서 진중한 목소리로 하연서에게 당부했다.

“좋은 날 아니냐. 너무 제멋대로 굴지 말고 철 좀 들어. 네가 그러면 우리 하씨 가문의 체면이 뭐가 되니.”

하연서는 대꾸하지 않고 성큼성큼 무대로 향했다. 이에 짜증이 잔뜩 치밀어오른 하연호가 불만을 쏟아냈다.

“야, 하연서. 너는 교양이라는 게 없어? 아버지가 너...”

하도영이 하연호의 팔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됐어. 너도 그만해.”

하연호가 하연우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연우야, 쓰레기한테 사과할 필요 없어. 하씨 가문의 피가 흐르는 게 뭔 대수라고. 정말 너랑은 비길 수도 없이 형편없어.”

하연우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빠, 언니한테 그러지 마요...”

“너니까 편드는 거지. 연서가 고마워한 적 있어? 양심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년.”

하연호가 경멸에 찬 표정으로 콧바우기를 뀌었다.

“애초에 하씨 가문으로 들이는 게 아닌데. 동생은 너 하나면 됐어.”

하지만 이내 경고의 의미가 담긴 하도영의 눈빛을 보고 어쩔 수 없이 입을 다물었다.

한편, 하연서의 목소리가 연회장을 가득 메웠다.

“이 자리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여러분들의 기대를 부응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불빛 아래 하연서의 하얀 드레스가 은은한 빛을 내며 하연서의 잘빠진 몸매를 드러냈다. 그녀는 마치 높은 곳에 핀 장미처럼 고귀하면서도 우아했다.

하객들의 의아한 눈빛 속에 하연서가 메추리알처럼 큰 다이아몬드 반지를 빼더니 정확하게 샴페인 잔으로 쌓은 탑에 넣었다.

“일방적으로 파혼할 생각입니다. 저 하연서는 앞으로 배시혁과 아무 사이가 아닙니다.”

말이 끝나기 바쁘게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엥? 뭐야? 내가 잘못 들은 거 아니지? 하연서가 파혼?”

“대박. 뭐에 씐 거 아니야? 키링이 드디어 신분 상승하는 건데 포기한다고?”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연회장 중앙에 선 연지훈은 아무 표정이 없었다. 차가운 아우라가 연지훈을 연회장에 있는 다른 사람과 정확하게 구분해 냈다.

옆에 있던 소년이 이마를 탁 치며 말했다.

“아, 기억났다. 저 여자 그날 우리가 차로 박고 병원에 데려다줬는데 검사만 하고 도망간 여자예요. 머리에 악성 종양이 자라고 있다고 들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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