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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화

Penulis: 일립
“용감한 시민이 되려는 거죠.”

연수호가 차를 운전하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난 누나 보자마자 알아봤어요. 삼촌이 내가 하는 말 듣고 도와주겠다고 선뜻 나선 거 있죠? 삼촌이 신세 지는 거 싫어하거든요.”

“삼촌, 내 말이 맞죠?”

연지훈이 침묵하자 연수호는 자기 말이 맞다고 생각하고는 우쭐거리며 눈썹을 추켜세웠다.

“화와 복은 늘 함께라는 말 오늘과 참 어울리는 말 같아요. 누나는 사고를 당해도 우리한테 당했으니 앞으로 복 받을 일만 남았어요.”

“운전을 그렇게 해놓고 잘났다는 거야?”

연지훈이 엄숙하게 쏘아붙이자 연수호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누나 위로해 주려고 그러잖아요. 그런 일을 겪었으니 기분이 엉망일 텐데.”

“난 괜찮아요.”

하연서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틀린 말도 아니잖아요.”

화와 복은 늘 함께라는 말이 맞았다. 하연서는 지금까지 살면서 오늘이 제일 홀가분했고 앞으로는 배시혁의 약혼녀도, 하씨 가문의 아가씨도 아닌 하연서로 살기로 했다. 유일하게 아쉬운 점이라면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하연서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닥치는대로 사리라 마음먹었다. 아파트 단지에 도착한 하연서는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전했다.

“데려다줘서 고마워요. 추돌 사고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고 나도 아무 일 없으니 더는 신경 쓰지 마요.”

하연서가 이렇게 말하더니 차에서 내렸다. 연수호는 멀어지는 하연서의 뒷모습을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사람 참 좋아 보이는데 왜 그런 몹쓸 병에 걸린 걸까요?”

“삼촌, 누나 설마 죽을 거 알고 모든 걸 내려놓는 거 아니에요?”

약혼식을 떠올린 연수호가 씩씩거리며 핸들을 퍽 내리쳤다.

“사람도 아니지. 가족보다 체면이 더 중요하다는 거잖아요.”

연지훈은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창밖을 내다봤다. 어둠 속에 가려진 예쁜 눈동자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삼촌, 정말 이대로 내버려둘 거예요?”

착하기로 소문난 연수호는 하연서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의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종양 상태가 썩 좋지는 않다고 하던데...”

“검사보고서 좀 보내봐.”

연지훈이 시선을 거두더니 시트에 몸을 기댄 채 더는 아무 말도 하기 싫다는 듯 눈을 지그시 감았다. 연수호가 화들짝 놀라더니 이렇게 되물었다.

“삼촌, 관여하게요? 대박. 오늘 해가 서쪽에서 뜬 게 틀림없어요...”

“닥쳐.”

연지훈이 목소리를 낮게 깔았지만 짜증까지 감출 수는 없었다. 연수호가 침을 꼴깍 삼키더니 입을 다물며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삼촌 오늘따라 이상한데.’

...

이튿날.

오랜만에 단잠을 이룬 하연서는 몸이 홀가분했다. 준비를 마치고 아침 사러 이어폰을 끼고 나간 하연서는 느긋하게 콧노래까지 흥얼거렸다.

순간 누군가 그녀의 팔을 힘껏 부여잡았고 그녀는 그 힘에 못 이겨 뒤로 물러서다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화가 난 배시혁의 얼굴이 시야에 들어오자 기분이 잡친 하연서가 미간을 찌푸렸다.

“뭐 하자는 거야? 불러도 못 들은 척하기로 한 거야?”

하연서가 느긋하게 이어폰을 뺐다.

“노이즈 캔슬링이 워낙 잘 돼서 개가 짖어도 몰라.”

“너 정말...”

배시혁은 하연서가 그를 욕하는 게 아닌지 의심했지만 늘 그를 중심으로 맴돌던 하연서가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다. 찾아온 목적을 떠올린 배시혁은 일단 화를 가라앉히고 어색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어폰을 끼고 있었던 거야? 너무 급해서 말이 헛나갔네.”

“연서야. 어제 약혼식에서 있었던 일은 문제 삼지 않을게. 너만 기분 좋다면야 뭐든 되지. 그러니까 더는 성질 부리지 마. 응?”

배시혁이 이렇게 말하며 하연서의 손을 잡으려는데 하연서가 피하는 바람에 실패했다. 뒤로 몇 걸음 물러선 하연서는 덤덤한 표정으로 배시혁을 따라온 하연우를 바라봤다.

“시혁 씨, 우린 이미 끝났어.”

“연서야, 홧김에라도 그런 말은 하지 마.”

배시혁의 인내심이 바닥나고 있었다.

“이번엔 선을 넘었어.”

“언니, 시혁 오빠가 밤새 언니를 찾았어요. 정말 많이 걱정하고 있다고요...”

하연우가 앞으로 한 걸음 다가서며 나른하게 말했다.

“시혁 오빠가 언니 얼마나 좋아하는데 언니는 왜 그 마음을 몰라주고 자꾸만 오빠를 괴롭히는 거예요?”

“밤새 같이 있었나 보지?”

하연서가 중점을 캐치하고 되묻자 하연우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나... 나는 시혁 오빠랑 같이 사과하고 싶어서 그랬어요. 언니. 나랑 시혁 오빠 정말 아무 사이 아니에요. 나는 못 믿어도 오빠는 믿어야 하는 거잖아요.”

“그렇게 오래 만났는데 시혁 오빠가 어떤 사람인지 몰라요?”

하연우가 배시혁을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어제 연 대표님이 언니 대신 나서서 오빠를 얼마나 몰아세웠는데요...”

연지훈 얘기가 나오자 배시혁의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하연서에게 캐물었다.

“그러는 너는 어제 연지훈 씨랑 어디 갔는데? 하연서, 너 잘 숨긴다. 연지훈 씨는 언제부터 알고 지냈는데?”

“약혼식에서 너 대신 나서준 것도 미리 계획한 거지? 일부러 약혼식 망치고 모든 잘못을 나랑 연우한테 돌려서 사람들이 내가 잘못한 거라고 여기게 하려고?”

이 말에 하연서가 웃음을 터트렸다. 배시혁의 머리로는 절대 이런 추측을 할 리가 없었다. 그렇다는 건 하연우가 어젯밤 알게 모르게 배시혁 앞에서 떠들었다는 의미였다. 한마음 한뜻으로 배시혁만 바라본 게 몇 년인데 연지훈과 놀아났다는 하연우의 이간질에 바로 넘어갔으니 정말 어이가 없었다.

“지금 이 상황이 웃겨?”

배시혁의 안색이 점점 어두워졌다.

“다 너 위해서 그러는 거잖아. 지금 후회해도 늦지 않았어. 내가 너그러이 용서해 줄게. 연지훈 씨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그러는 거야? 너는 연지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하연우를 믿는다, 이거지?”

하연서가 하연우를 가리키며 경멸에 찬 웃음을 짓자 배시혁도 말문이 막혔다. 이에 하연우가 얼른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언니, 그런 게 아니라...”

“너만 떳떳하면 뒤에서 누가 뭐라고 떠들까 봐 두려워하지도 않았겠지.”

배시혁이 하연우 앞을 막아서며 편을 들었다. 하연서는 여기서 더 참으면 닌자라도 될 것 같아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래.”

하연서가 숨을 길게 들이쉬며 입을 열었다.

“둘이 얼마나 떳떳한지 내가 들려줄까?”

“시혁 씨, 작년 기념일 때 어디 있었어? 하연우 쫑파티 갔지?”

“오랫동안 준비한 서프라이즈를 선보이려고 전화했는데 일이 바빠서 기념일까지 까먹었다고 했었지? 근데 웬걸? 하연우가 올린 인스타에 시혁 씨 얼굴이 떡하니 올라왔던데?”

“그리고 저난달에 나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서 전화했는데 아무리 전화해도 받지 않더라. 쓰러져서 병원에 실려 갔는데 이튿날이 되어서야 찾아왔지?”

“그날 밤엔 어디 있었는데? 하연우 옆에 있었잖아. 그래. 생리가 와서, 배가 아파서 곁에 있어 줘야 했겠지.”

하연서가 덤덤하게 얘기했지만 사실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진 상태였다. 배시혁이 여러 번 버렸으니 이제 하연서 차례였다.

“시혁 씨, 우린 진작 끝났어야 했어.”

“나는...”

배시혁이 떨리는 목소리로 설명하려는데 멀지 않은 곳에서 다가오는 그림자를 보고 눈동자가 어두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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