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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화

Penulis: 일립
호텔을 나서는데 한 소년이 튀어나와 흥분한 표정으로 하연서를 막아섰다.

“누나, 너무 대단한데요? 모여든 하객이 그렇게 많은데 배씨 가문과 하씨 가문 체면을 전혀 봐주지 않은 거잖아요.”

“누나, 나는 아까 그 연놈에게 따귀 한 대씩은 나눠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누구세요?”

하연서는 갑자기 나타나 친한 척하는 소년이 살짝 당황스러웠다.

“나는...”

소년이 난감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한 주 전에 내가 운전했는데 실수로 누나가 탄 택시를 들이박았어요.”

“아...”

하연서는 따질 생각이 없는 듯 느긋하게 말했다.

“누나, 누나는...”

“수호야.”

연지훈의 경고에 연수호가 입을 다물었지만 하연서를 바라보는 눈빛만큼은 여전히 뜨거웠다. 상류사회에서 가식적인 사람들만 봐왔던 연수호는 갑자기 나타난 용사에게 흥미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다른 사람의 일에는 신경조차 쓰지 않던 삼촌 연지훈이 직접 나섰으니 더 신기했다.

하연서가 연지훈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까는 고마웠어요.”

“별거 아니에요.”

얼핏 보기엔 덤덤한 표정이었지만 사실 연지훈은 긴장하고 있었다.

“어디 가요? 데려다줄게요.”

“아니에요. 차 잡아서 갈게요.”

“차를 왜 잡아요?”

연수호가 하연서를 끌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호의는 끝까지 베풀어야 호의죠. 그 어떤 택시도 우리 삼촌의 마이바흐보다 편할 순 없어요.”

“저번에 병원에 데려다줬는데 도망가는 바람에 속죄할 기회조차 없었잖아요. 보상의 의미로 데려다주게 해요.”

연수호가 하연서를 마이바흐 뒷좌석에 앉히더니 익살스럽게 웃었다.

“누나, 기회 좀 줘요.”

하연서는 그동안 억지로 잡고 있던 걸 포기하는 데 모든 힘을 쏟아부은 터라 더 거절할 힘이 없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차에 앉으니 머리가 다시 지끈거리는 것 같아 주소를 알려주고 감사 인사를 전하고는 다른 사람이 그녀의 상태를 눈치채기 전에 창문에 기대 눈을 감았다.

...

한편, 배씨 가문 사람과 하씨 가문 사람이 모인 대기실은 유난히 저기압이었다. 배씨 가문 어르신 배진수가 어두운 표정으로 상석에 앉아 있었다. 아까는 사람이 많아 나서지 않았지만 지금은 배시혁의 얼굴을 볼수록 화가 치밀어 올라 찻잔을 들어 배시혁의 발치에 던졌다.

“쓸모없는 놈. 도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연서가 이러는 거야.”

“저 아무것도 안했어요...”

배시혁이 고개를 숙인 채 켕기는 게 있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다 오해예요. 연서에게 잘 설명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나 봐요.”

“오해?”

배진수가 경멸에 찬 웃음을 지으며 하연우를 바라봤다. 굳이 입을 열지 않아도 느껴지는 강압적인 아우라에 하연우가 몸을 움츠리며 이연희 뒤로 숨어들었다. 이에 배시혁이 얼른 말을 이어갔다.

“연우랑은 아무 상관도 없어요. 연서가 생각이 많아서 의심한 것뿐이지...”

“둘이 정말 아무 사이 아닌지는 너만 알겠지.”

배진수가 배시혁의 말을 날카롭게 잘라버리더니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아까 연서 편만 들었어도 연서가 그렇게 떠나진 않았을 거다.”

“배시혁. 나는 네가 여러 후손 중에 제일 똑똑한 애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한 짓거리를 보니까 너도 별 볼 일 없는 놈이었어.”

“어르신, 오늘 일 시혁이 잘못만은 아니잖아요.”

하도영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우리가 연서를 너무 오냐오냐하면서 키웠어요. 어떻게 이렇게 쪽팔린 짓을. 집에 돌아가면 잘 혼낼게요.”

“혼내야 할 사람은 따로 있네.”

배진수는 하씨 가문이 하연서에게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편애할 줄은 몰랐다. 하연서가 맞은 따귀만 생각하면 마음이 아팠던 배진수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비가 돼서 정도라는 걸 알았다면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손찌검을 하지는 않았겠지.”

“자네도 돌아가서 잘 반성하게. 도대체 누가 하씨 가문 사람인지 잘 생각해 보고 말이네.”

배진수는 시종일관 하연서의 편을 들며 하씨 가문 사람들에게 하연서야말로 진정한 하씨 가문 아가씨임을 알려줬다. 배진수가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지 모를 리 없는 하씨 가문 사람들이 하나같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지팡이를 잡고 자리에서 일어난 배진수가 배시혁 앞으로 다가가더니 감히 어길 수 없는 명령을 내렸다.

“연서 달래서 데려오지 않으면 너도 배씨 가문으로 돌아올 생각하지 마.”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 손주며느리는 연서 하나니까.”

배진수가 정색하며 말했다.

“고작 이런 일로 연씨 가문까지 끌어들였으니 잘 처리해야 할 거야. 건수 잘못 잡히면 우리 다 망하는 거라고.”

배시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할아버지.”

배진수가 나가고 나서야 대기실 분위기가 살짝 좋아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하연우가 작은 소리로 울먹이는 게 들렸다. 이연희는 그런 하연우가 마음 아팠는지 얼른 품에 꼭 끌어안으며 말했다.

“아이고, 내 새끼. 네가 울긴 왜 울어? 다 너희 언니가 저지른 일인데. 너랑은 아무 상관 없으니까 울지 마.”

“하연서 그 쓰레기 같은 게 주제도 모르고 날뛰었으니 이제 어떻게 얼굴 들고 다니나 내가 두고 볼 거예요.”

하연호가 씩씩거리며 말했다.

“연우를 끌어내릴 생각이나 하고. 미친 거 아니에요? 같은 가족이라는 게 쪽팔릴 정도예요.”

“오빠, 그런 말 하지 마요...”

하연우가 울먹였다.

“다 내 잘못이에요.”

“연호 씨가 한 말 틀린 거 없어.”

배시혁이 차갑게 쏘아붙였다. 오늘 이렇게 난리를 쳤으니 하연서가 다시 배시혁의 곁으로 돌아간다 해도 웃음거리가 되는 걸 면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웃음거리가 되더라도 다 하연서가 자초한 일이었다. 얌전하게 약혼하면 자연스럽게 배시혁의 약혼녀가 될 수 있는데 난동을 부렸으니 하연서가 어떻게 수습할지 궁금했다.

“먼저 들어가요.”

배시혁이 차키를 들며 말했다.

“나는 연서 찾으러 가볼게요.”

“오빠.”

하연우가 냉큼 따라나서며 배시혁의 팔을 잡았다.

“같이 가요. 내가 직접 설명하고 싶어요. 혼자 감당하게 놔둘 수는 없어요.”

배시혁은 하연우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거절할 수 없어 한참 망설이다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연서가 너 반만 따라갔으면 좋겠다.”

...

하연서가 다시 깨어났을 때는 아직 마이바흐에 있었고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눈을 비비며 시선을 보내온 사람이 누군지 확인하려는데 다른 쪽에 앉은 연지훈이 풍경을 내다보는 게 보였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 속에 어우러진 연지훈의 옆모습은 마치 예술 잡지에 나올 법한 그림 같았다.

과분할 정도로 예쁜 남자는 경제 잡지에 나온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더 예뻤다. 하연서는 지금까지 뒤에서 배시혁을 돌보며 자연스럽게 연지훈에 관한 많은 기사를 보게 되었고 그의 명석한 두뇌와 교묘한 수단에 놀라면서 언젠간 배시혁을 만날 기회가 생긴다면 꼭 이것저것 물어보며 배우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이런 일로 엮이게 될 줄은 몰랐다.

생각에 잠겨 있던 하연서는 연지훈의 시선에도 피하지 않고 태연하게 마주했다.

“연지훈 씨, 왜 나를 도와준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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