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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화

Penulis: 일립
“와, 진짜 대박. 오늘 약혼식의 주인공이 저 여자일 줄이야.”

소년이 경악을 금치 못하며 무대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하연서를 보며 흥분했다.

“와, 대단하지 않아요? 배씨 가문이 얼마나 공을 들인 약혼식인데 말 한마디에 파투 낸 거 아니에요.”

“삼촌, 오늘 이 약혼식 정말 잘 온 거 같아요.”

소년은 흥분하느라 옆에 선 연지훈이 하연서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는 걸 발견하지 못했다. 불빛조차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는 연지훈의 눈동자에 뭔지 모를 감정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배시혁이 빠른 속도로 하연서에게 다가가더니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억지로 하연서를 껴안았다.

“정말 죄송합니다. 연서가 분위기를 띄운다고 무리한 농담을 했네요.”

“그렇지? 연서야?”

성대를 긁듯 내뱉은 배시혁의 말은 경고의 의미가 잔뜩 들어 있었다. 하연서는 여전히 아무 표정이 없었지만 또박또박 이렇게 말했다.

“농담하는 거 아니야.”

연회장이 다시 술렁이기 시작했다. 순간 표정이 어두워진 배시혁이 이를 악물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캐물었다.

“도대체 뭐 하자는 거야. 하연서, 양가 어르신들이 다 난감해져야 정신 차릴 거야?”

“파혼하겠다고 했는데 신경조차 쓰지 않았잖아요.”

배시혁을 바라보는 하연서의 눈빛에 아무런 감정도 들어있지 않았다.

“오늘 양가 어르신들이 난감해진 건 다 시혁 씨가 독단적으로 행동하면서 약혼식을 강행한 결과야.”

무슨 상황인지 살피러 온 하씨 가문 사람들이 마침 하연서가 하는 말을 듣게 되었다. 이연희가 하연서를 확 잡아당기며 말했다.

“미쳤어? 성질을 부려도 정도라는 게 있어야지 어쩌려고 그래. 얼른 다시 설명해.”

“이미 다 설명했어요.”

하연서는 말귀를 알아먹지 못하는 그들을 보며 인내심을 잃었다.

“내가 파혼하겠다고 몇 번을 말했어요? 몇 번을 더 말해야 하는데욥?”

“결혼이 애들 장난이야? 애초에 시혁이랑 결혼하겠다고 한 것도 너잖아. 네가 원하는 대로 해주니까 이제 와서 파혼하겠다고? 하연서. 너 지금 몇 살인데 그래? 왜 아직도 이렇게 제멋대로야?”

하도영은 하객들이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하연서의 머리를 꾹 누르며 하객들에게 사과하게 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평소에 너무 오냐오냐하는 바람에 이렇게 웃음거리를 만들었네요. 약혼식은 계속될 예정이니 즐겨주세요...”

하지만 하연서는 예전과 달리 미친 듯이 하도영의 손을 뿌리쳤다.

“내가 말했잖아요...”

철썩.

하도영이 하연서의 반항을 막으려 힘껏 하연서의 따귀를 내리쳤다.

“더는 쪽팔리게 하지 마.”

마음이 싸늘하게 식어버린 하연서가 자신을 둘러선 사람들을 바라보며 바람에 나부껴 언제든 떨어질 낙엽처럼 씁쓸하게 웃었다. 배시혁이 차가운 눈빛으로 하연서를 바라보며 하연서가 후회하길 기다렸다.

“사람을 궁지에 몰아넣고 이제 와서 제멋대로 나온다고 뭐라 하면 나은 사람이 된 것 같아요? 나은 사람 되기 참 쉽네.”

차가운 목소리가 유유히 들려왔다. 사람들의 의아한 눈빛 속에 연지훈이 무대로 걸어가자 하객들이 차가운 아우라를 이기지 못하고 자기도 모르게 길을 터줬다. 연지훈이 이런 아수라장에 끼어들 줄은 누구도 몰랐기에 현장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먼저 정신을 차린 배시혁이 그쪽으로 성큼 다가가 입을 열었다.

“대표님, 상황이 우스워졌네요. 그게...”

연지훈이 차가운 눈빛으로 쏘아봤다. 배시혁은 그 눈빛에서 차가움과 살기를 느끼고 자기도 모르게 입을 다물고는 연지훈이 하연서 옆으로 다가가 티 나지 않게 하객들의 시선을 가려주는 걸 물끄러미 바라봤다.

“하연서 씨가 그러잖아요. 파혼하겠다고.”

연지훈이 차갑게 물었다.

“이게 그렇게 알아듣기 힘든 말인가요?”

“그게...”

겁을 먹은 하도영이 우물쭈물하더니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앞에 선 사람은 연씨 가문의 수장이었고 심기를 잘못 건드리는 날엔 하씨 가문도 풍비박산 나고 말 것이다.

“다른 의견 없으면 하연서 씨가 말한 대로 하죠.”

연지훈이 아래 선 하객들에게 선포했다.

“오늘부로 하씨 가문과 배씨 가문의 약혼은 취소입니다.”

“대표님, 이건 저랑 연서 둘 사이의 일인데 무슨 자격으로 나서는 거죠?”

배시혁이 난감한 표정으로 연지훈을 넘어 하연서를 바라보더니 얼마 남지 않은 인내심으로 이렇게 말했다.

“연서야, 너도 그만해.”

“언니, 다 내 잘못이에요. 화내고 싶으면 나한테 내요. 양가 어르신들 난감하게 하지 말고...”

하연우가 말캉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연우는 늘 그랬듯 기회만 있으면 착하고 얌전한 여자인 척 연기했다.

이 말에 하연서가 하연우를 힐끔 쳐다보더니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그래. 다 네 잘못이야. 언니의 짝이라는 걸 알면서도 유부남을 꼬시고 세컨드가 되려 했지.”

놀라운 스캔들에 현장이 다시 술렁이기 시작했다. 약혼식이 시작되기도 전에 에피타이저로 이런저런 재밌는 이야기가 올라온 것이다.

하연우도 하연서가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기에 어쩔 바를 몰라 했다. 전에는 하연서가 아무리 제멋대로 나와도 양가 어르신의 체면을 위해 꾹 참았는데 오늘은 아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하연서.”

잔뜩 약이 오른 배시혁이 말했다.

“무슨 헛소리야? 연우 네 동생이잖아. 어떻게 그런 말로 모함할 생각을 해?”

순간 표정이 변하는 배시혁을 보며 하연서는 참 우수웠다. 약혼녀가 따귀를 맞을 땐 꿈쩍도 하지 않더니 처제를 위해서 발끈하고 있으니 말이다. 누가 봐도 이는 마음이 완전히 하연우를 향해 있다는 의미였다.

눈앞에 서 있는 이 남자는 하연서가 6년을 사랑한 남자였고 평생 그 어떤 상처도 받지 않게 해주겠다고 약속한 남자였지만 결국 그 약속은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하연서의 정서를 눈치챘는지 연지훈이 외투를 벗어 하연서에게 입혀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가요.”

하연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고 싶은 일을 끝냈으니 더 남아있을 필요도 없었다. 쪽팔리는 건 그들이지 그녀가 아니었기에 하연서는 하이힐을 신고 대범하게 무대를 내려갔다. 날리는 치맛자락이 하연서의 고귀하면서도 도도한 아우라를 보여줬다.

“하연서.”

배시혁이 다급하게 하연서의 이름을 부르며 따라가려 했지만 연지훈이 손을 들어서 막았다.

“자기 여자 하나 못 지키면 쓰레기 아닌가?”

연지훈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경고하듯 말했다.

“무슨 자격으로 붙잡으려는 거지?”

그 자리에 얼어붙은 배시혁이 하연서를 따라가는 연지훈의 뒷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하도영은 하연서가 이대로 가버리면 정말 파혼인데 가문끼리 진행하던 사업이 끊기기라도 할까 봐 속이 바질바질 타들어갔다. 생각을 정리한 하도영이 가문을 이끄는 사람으로서 하연서의 뒷모습을 향해 소리쳤다.

“그 문을 나가면 다시는 하씨 가문으로 들어올 생각하지 마.”

하지만 하연서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래요.”

하연서가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12살 때 집에 돌아가지 않은 걸로 생각할게요.”

하연서가 이 말만 남기고 홀가분한 표정으로 문을 나섰다. 미련 없이 떠나는 하연서를 보며 무대에 남겨진 사람들의 표정이 어두워질 대로 어두워졌다.

화가 치밀어오른 하도영이 가슴을 부여잡고 이연희를 노려봤다.

“당신이 낳은 딸이 얼마나 대단한지 봐봐. 언제까지 제멋대로 나오나 보자고. 무릎 꿇고 싹싹 빌게 해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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