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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화

Penulis: 일립
한 시간 후, 배시혁이 기세등등해서 따져 물었다.

“하연서, 뭐 하자는 거야?”

이윽고 배시혁의 시선이 하연서의 머리로 향했고 살짝 멈칫했다.

“다쳤어?”

“응.”

배시혁을 바라보는 하연서의 눈은 덤덤하기 그지없었다.

“어제 뒤차가 와서 박는 바람에 병원에 다녀왔어.”

배시혁이 켕기는 게 있는 듯한 눈빛을 하고는 얼른 하연서 옆에 앉았다.

“심하게 다친 거야? 하고 싶었던 말이 이거였어?”

“아니. 살짝 까졌어.”

하연서가 티 나지 않게 거리를 두며 느긋하게 말했다.

“파혼은 진심이야. 내 몫으로 된 회사 주식도 가져갈 거야...”

다른 사람은 몰라도 배시혁은 잘 알고 있었다. 배씨 가문에서는 혼외자인 배시혁을 거들떠보지도 않았기에 배시혁이 사업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건 다 하연서가 배시혁에게 사업 자금을 대주고 아낌없는 지원을 해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연서는 배시혁이 젊은 나이에 성공했다는 이미지를 만들어주기 위해 그녀가 뒤에서 얼마나 도왔는지 외부인에게 전혀 알리지 않았다. 게다가 지금은 배시혁이 배씨 가문 후계자 자리를 따내는 중요한 시기였기에 회사에 일이 터지는 걸 용납할 수 없었다.

“연서야, 그런 농담 재미없으니까 하지 마.”

배시혁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한 번만 더 말할게.”

하연서가 배시혁의 눈동자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했다.

“나 지금 매우 진지해.”

배시혁은 누구보다 하연서를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하연서의 눈동자에 담긴 의미를 읽어낼 수가 없었다.

“연서야, 어제 안 들어왔다고 화난 거야? 오늘은 곁에 있어 줄게...”

“어제 정말 회사에 있었던 거 맞아?”

하연서가 배시혁의 말을 잘랐다.

“진 비서랑 통화했는데 오후부터 자리를 비웠다고 하던데?”

할 말을 잃은 배시혁은 가슴이 철렁해 자기도 모르게 해명했다.

“업무 시찰하러 갔는데 진 비서가 깜빡했나 보지.”

“그래?”

하연서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어떡하지? 나 진 비서랑 통화한 적 없는데.”

배시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지금 장난해?”

“숨기는 게 없으면 내 말장난에 놀아나지도 않았겠지.”

하연서가 되물었다.

“너 정말...”

배시혁도 멍청하진 않았기에 하연서가 뭔가 눈치챘다는 걸 알았다.

“내가 잘못한 게 있으면 그냥 속 시원하게 말해. 이렇게 배배 꼬지 말고.”

배시혁이 난감하다는 듯 미간을 주무르며 말했다.

“연서야, 우리 한평생 함께해야 하는 사이야. 언제까지 이렇게 제멋대로 굴래.”

“이러면 둘 다 힘들어지는 거 몰라?”

하연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덤덤한 눈빛으로 배시혁을 바라봤다. 앞에 앉아 있는 남자는 전에 그녀를 품에 꼭 끌어안은 채 하고 싶은 대로 해도 좋다고, 그래야 귀엽다고 말한 그 남자가 맞았다. 남자의 인내심이라는 것도 다 보존 법칙을 따랐기에 다른 여자에게 인내심을 쓰면 그녀에 쓸 인내심이 없어지는 것이다.

하연서의 눈빛에 배시혁은 점점 마음이 불안해져 결국 꼬리를 내리는 수밖에 없었다.

“연서야, 그만하자. 가지고 싶은 게 있으면 말해. 다 줄 테니까.”

“하연우가 좋아?”

갑작스러운 한마디에 배시혁이 그대로 굳어버리더니 이내 정신을 차리고 반박했다.

“무슨 헛소리야? 연우는 네 동생이잖아. 내가 어떻게 연우를 좋아해?”

“근데 왜 같이 있었던 거야?”

하연서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지끈거리는 머리가 더는 흥분해서는 안된다고 알려주는 것 같았다. 마음이 너무 아파 온몸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였지만 그래도 아랑곳하지 않고 배시혁을 바라봤다.

“왜 나를 속인 거야? 왜 하필 하연우냐고.”

“어제 연우랑 행사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예상치 못한 사고가 나서 병원에 데려다준 것뿐이야. 믿든지 말든지 알아서 해.”

“연우는 혹시나 네가 오해할까 봐 얘기하지 말라고 한 거고.”

배시혁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래도 나는 네가 너그러운 사람이니까 그런 황당한 생각은 하지 않을 거라고 했는데 연우 말이 맞았네.”

“하연서, 제멋대로 구는 것도 정도껏 하지, 연우 네 동생이야. 그렇게 몰아세우면 뭐가 좋은데?”

배시혁의 말투가 점점 거칠어졌다.

“이제 우리 두 사람을 엮어서 의심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일단 머리 좀 식혀.”

배시혁이 마지막으로 한마디 덧붙였다.

“파혼은 못 들은 걸로 할게.”

멀어지는 배시혁을 보며 하연서는 머리가 너무 아파 부를 힘조차 없었다.

‘젠장. 도움이 안 되는 몸 같으니.’

...

배시혁 뿐만 아니라 문자를 받은 사람 모두 하연서가 억지 부리는 거라고 생각했다. 앞으로 하루 간 하연서의 핸드폰은 배터리가 닳을 정도로 불티나게 전화가 걸려 왔지만 하연서는 하나도 받지 않고 짐 정리하며 별장을 떠날 준비 했다.

한편, 배시혁이 병실에 들어서자마자 하씨 내외가 성큼 다가왔다.

“시혁아, 연서가 보낸 문자 어떻게 된 거야? 너희 무슨 일 있어?”

어머니 이연희가 다급하게 물었다.

“다음 주면 약혼식인데 지금 무슨 차질이 생기면 꼴이 우스워지잖니.”

“이제 와서 체면 생각하는 거야? 당신이 낳은 딸이야. 얼마나 속 썩이는지 봐봐.”

하도영이 소리를 질렀다.

“그게 내 탓이에요? 어릴 때 그런 가정에 있었는데 어떻게 바르게 자라겠어요?”

이연희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반박했다.

“다 제 탓이에요.”

배시혁이 난감한 표정으로 침대에 누운 하연우를 바라봤다.

“어제 연우를 병원에 데려다주는 걸 봤나 봐요. 미리 말했어야 하는 건데.”

“어떻게 이런.”

이연희가 화냈다.

“연우가 다쳤는데 병원에 데려다주는 게 뭐 어때서? 동생을 챙기지 않는 것도 모자라 이게 무슨...”

이연희는 질투에 사로잡혀 사리 판단하지 못하는 하연서가 부끄럽다는 듯 말을 하다 말았다.

“엄마, 화내지 마요. 다 제 잘못이에요...”

하연우가 입술을 앙다물며 말했다.

“오빠한테 부탁한 내가 문제에요. 현장에 스태프들이 그렇게 많은데...”

하연우가 이렇게 말하며 배시혁을 바라봤다.

“오빠, 이 일로 언니가 파혼까지 거론하니 이제 어떡해요?”

“우리가 파혼할 일은 없어.”

배시혁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약혼식은 다음 주에 예정대로 진행할 거야. 연서 그렇게 막무가내인 사람 아니니까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화해할 거야.”

이 말에 하도영과 이연희도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그렇게 오래 만났는데 이 시점에 어그러지면 앞으로 다른 사람을 볼 면목이 없어진다. 게다가 배시혁은 배씨 가문을 물려받을 가능성이 높은 사람이었기에 하씨 가문에서 이렇게 좋은 장사를 마다할 리가 없었다.

그렇게 각자 다른 생각을 품은 세 사람은 하연우의 눈동자에 스친 억울함을 눈치채지 못했다.

...

하연서가 약혼식이 3일 뒤에 예정대로 진행된다는 걸 알았을 때는 이미 별정에서 나와 시 중심의 한 아파트로 이사한 뒤였다. 소파에서 드라마를 보다가 약혼식 사회자의 전화를 받은 하연서는 손으로 관자놀이를 살살 주물렀다.

배시혁은 늘 그랬듯 냉전만 하면 하연서가 먼저 꼬리를 내리길 기다렸고 당연히 하연서가 먼저 물러설 거라고 생각했다. 매번 배시혁이 원하는 대로 해주긴 했지만 하연서는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도대체 나를 얼마나 덜떨어진 사람으로 생각하는 거야...’

하연서도 이번엔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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