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던 행인들도 어느새 발걸음을 멈추고 이 상황을 구경하고 있었다. 이민영이 이를 꽉 깨물며 말했다."진도하, 너 너무하는 거 아니야?!"그러자 진도하가 담담히 받아쳤다."너무하다고? 사람도 아닌 짐승한테 이러는 게 뭐가 너무하다는 거지?"이민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진도하를 노려만 보다가 잔뜩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비켜!"진도하는 그녀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은 채 제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이민영은 어느새 몰려든 사람들이 자신을 향해 손가락질하자 쪽팔림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지금은 진도하와 말싸움할 때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는지 화를 꾹 참고는 진도하 옆을 지나 빠른 걸음으로 달아났다.그 모습에 장민준도 얼른 도망가려는 찰나, 진도하가 손가락을 가볍게 한 번 튕기더니 이내 ‘털썩!’하는 소리와 함께 장민준이 그대로 바닥에 절을 했다. 있는 힘껏 꿇은 탓에 이마가 다 까져 피도 흘렀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큰소리로 웃으며 장민준을 비웃었다."하하하, 이거 자세 한번 정확하네.""그러게요. 하하하.""하하하, 너무 웃겨. 방금 들은 얘긴데 저 두 사람 사실은 집 살 돈도 없었대요."화가 머리끝까지 난 이민영은 온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고, 장민준은 독기 가득한 눈빛으로 진도하를 노려보고 있었다.두 사람이 허겁지겁 도망가고 난 자리에서 사람들은 아직도 아까 일을 회상하며 껄껄 웃어댔다.이때, 김부장이 진도하 옆으로 다가오더니 예의를 갖춰 말을 건넸다."진도하 씨, 불쾌함과 불편함을 안겨드려 정말 죄송합니다."김 부장이 허리를 90도로 꺾으며 말을 이어갔다."해당 직원은 바로 해고 조치시켰습니다. 불쾌하게 해드린 점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혹 원하시는 것이 있으시거나 궁금하신 점이 있으시면 저한테 말씀을 해주시면 됩니다."진도하는 김 부장의 태도를 보고는 어느 정도 기분이 풀린 듯 아까 받았던 열쇠를 흔들어 보이며 물었다."이 집, 진짜 저한테 주는 거 맞아요?""네, 맞습니
"이건 제가 군부대를 나왔을 때 받았던 퇴직금인데 두 분이 생활비로 쓰세요. 비밀번호는 엄마 생일이에요."유서화는 아들과 은행카드를 번갈아 보더니 이내 웃으며 말했다."아들, 엄마가 그럼 우리 아들이 힘들게 번 돈 잘 맡아두고 있을게. 그러다 너 결혼 할 때 다시 돌려줄게."그 말에 진도하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엄마, 두 분 검소하게 사시는 건 저도 너무 존중해요. 하지만 엄마, 쪼들려 사는 거랑 검소하게 사는 건 다르잖아요. 정 그러시면 낭비만 하지 않으시면 되잖아요. 그러니까 제가 준 돈 너무 아끼려고 하지 마시고 사고 싶은 거 다 사세요. 엄마 아들은 이제부터 더 많은 돈을 벌게 될 테니까.""걱정하지 마요. 한 달 후면 제가 이 성운시에서 제일 돈이 많은 사람이 되어 있을 테니까."유서화는 아들의 말에 대충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그래그래, 알겠어."진도하는 당연하게 자신을 믿지 않는 엄마를 보며 답답하기도 했지만, 그들이 살아온 시간을 생각하고는 이내 이해를 했다.‘그래, 지금부터 증명해 보이면 되는 거야. 더는 걱정 안 해도 된다는 걸 두 분이 직접 두 눈으로 보게 되면, 그때는 진심으로 안심하시겠지.’이때, 서수진이 병실 문을 열고 들어와서는 말을 건넸다."아저씨, 이제 퇴원하셔도 돼요."진용진이 그녀의 말에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드디어 퇴원할 수 있는 거야? 아이고, 그것참 잘됐네."그리고는 신발을 신더니 신이 나서 퇴원할 준비를 했다.진도하가 서수진 옆으로 다가가 물었다."우리 아빠 이제 진짜 괜찮아지신 거 맞죠?"서수진은 그런 진도하를 보며 갸우뚱했다."진도하 씨가 의사 시면서 아버지 상처는 안 봐 드렸어요?"그러자 진도하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네, 차마 제 눈으로는 못 보겠더라고요..."진도하는 진용진이 생명에 위협이 없다는 것만 확인하고는 모든 치료를 다 병원 의료진한테 맡겼다. 한창 전장에 있었을 때, 이것보다 더한 상처들도 많이 봐왔던 그였지만 다친 상대가 자신의 아버지가 되자 마음이 쓰
"새집이라고??"유서화와 진용진이 동시에 물었다."네."진도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게 무슨 말이니?""가 보면 알아요."말을 끝낸 진도하가 얼른 근처에 있는 택시를 잡았다. 그러자 유서화가 또다시 물었다."여기서 많이 멀어? 멀지 않은 거면 우리 걸어가도 되는데. 택시 탈필요 없어."진도하가 택시 뒷문을 열어젖히고는 두 사람을 꾸역꾸역 태웠다."멀어요. 도보로 1시간 정도 걸려요."그러자 유서화가 소스라치게 놀랐다."도보로 1시간이나 걸린다고?? 그러면 택시비만 얼마야!""..."진도하는 두 사람을 택시에 태운 후 아무런 대꾸도 없이 택시 앞좌석에 앉았다.그러자 유서화도 이내 생각을 바꾼 듯 말했다."그래, 네 아빠가 퇴원 한 날인데 이 정도 사치는 부리지 뭐."택시는 한참을 달려 스카이타운 앞에 멈춰 섰다. 택시에서 내려 주위를 둘러보던 유서화가 깜짝 놀라서 말했다."여기 너무 깔끔하고 화려하고 좋다."단지 내부에는 아름다운 꽃과 나무들이 가지런히 심겨 있었고 중심에는 강물도 흐르고 있었다. 또한, 어른들을 위한 휴식 공간도 마련되어 있는 동시에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도 갖춰지어 있었다. 그리고 옆에는 여러 명의 보안요원이 깔끔한 복장을 한 채 흐트러짐 없는 모습으로 단지를 거닐며 순찰을 돌고 있었다.시골집에만 있었던 유서화도 일전 사람들을 통해 스카이타운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이곳이 상당히 비싼 데다가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곳이라는 걸 아는 그녀는 불안한 목소리로 진도하를 향해 물었다."아들, 여기는 왜 온 거야?""좀 있으면 알게 돼요."진도하는 안내표시를 따라 부모님을 데리고 A구역 1호 별장으로 향했다. A구역은 가장 눈에 띄는 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고, 별장 앞에는 햇빛을 가리는 고층 빌딩이 하나도 없었다. 진도하는 별장 문을 열쇠로 열고는 부모님을 향해 말했다."엄마, 아빠, 얼른 들어오세요."진용진과 유서화는 문 앞에 멈춰 서서 계속 주위만 둘러보며 설마 하는 표정으로 물었다."아들, 네
사실 진도하도 오늘 집 내부를 처음 구경하게 됐는데 부모님의 말씀대로 정말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좋았다.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로 옆에 화장실이 있었고, 그 옆에는 가정부 방이 따로 있었다. 또 그 옆에는 아이들 방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아이들이 가지고 놀 갖가지 장난감과 각종 아이 용품들로 가득했다.다음으로 보이는 건 넓은 거실이었는데, 남향이라 따스한 햇볕이 스며들었고, 소파와 텔레비전 그리고 에어컨까지 구비되어있어 몸만 들어오면 될 정도였다. 부부는 계단을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며 감탄하고 또 감탄했다."두 분 어떠세요? 마음에 들어요?""마음에 들다마다! 너무 좋아.""여기는 집 내부도 큰데 마당도 딸려 있고 저쪽 뒤에는 텃밭도 있더구나. 너희 엄마랑 거기서 채소를 심어도 되겠다."두 사람의 상당히 만족한 듯한 평에 진도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고는 손뼉을 한번 치며 말했다."두 분 결정하신 거죠? 그럼 지금 당장 이사해요, 우리."그러자 유서화가 말했다."여기는 없는 물건이 없을 정도로 뭐가 너무 많아서 따로 가지고 올 필요도 없을 것 같아. 오늘은 집에 가서 이불 정도만 가지고 오고 나머지는 천천히 하자."진용진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네 엄마 말이 맞다. 그리고 혹시 여기 있기 불편해지면 다시 시골로 내려갈 수도 있고."두 사람은 별장에서 휴식을 조금 취하고는 이불을 가지러 시골로 내려갔다. 진도하도 같이 가고 싶었지만 유서화에 의해 거절당했다.부모님이 떠나는 걸 확인한 진도하는 강유진한테 전화를 걸었다. 강유진이 그한테 이 별장을 선물했다는 걸 진도하가 이미 눈치를 채고 있었다. 신호가 얼마 안 가 강유진의 맑고 깨끗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떻게 고민은 좀 해보셨어요?"진도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별장, 당신이 준 거죠?"그러자 강유진이 살짝 웃으며 말했다."마음에 들어요?""마음에 들긴 하는데... 제가 돈을 한 푼도 내지 않고 여기에 사는 건 마음이 좀 불편하네요. 이렇게 하죠. 저한
진도하가 강유진한테 물었다."네? 뭐라고요? 쓰레기랑 겸상이 어쨌다고요?"마음이 복잡했던 진도하가 강유진이 낮은 목소리로 하는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하고는 되물었다. 그러자 강유진이 별거 아니라는 듯이 답했다."아니에요. 못 들은 거로 해요."진도하는 그녀의 말에 더 묻지는 않았고, 이번에는 강유진이 대화 주제를 돌렸다."진도하 씨, 수행비서 하기로 약속도 했으니, 이제 출근해야겠죠?""네? 저더러 지금 당장 출근하러 오라는 거예요?"진도하는 그녀의 말에 당황한 듯했다.‘이 여자는 뭐가 항상 이렇게 급해? 그리고 내가 언제 하겠다고 했어!’강유진이 당연한 걸 뭘 묻냐는 태도로 말했다."당연한 거 아니에요? 나는 독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의학 쪽도 모르는데, 진도하 씨가 내 옆으로 와서 누가 독을 탔는지, 어떤 방법으로 독을 탔는지 당연히 봐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강유진의 말이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진도하가 막 입을 열려고 할 때, 갑자기 전화기 너머로 강유진의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 나 지금 배가 너무 아파요. 독이 몸속에 퍼져서 이런 거 아니에요? 아이고... 아파.""나 이러다 죽는 거 아니에요?!"강유진이 오바하는 소리를 들은 진도하는 못 말리겠다는 듯 입을 열었다."주소 보내줘요. 지금 갈 테니까."강유진은 그제야 마음에 들었는지 앓는 소리도 안 내고 말했다."네~ 금방 보낼게요."진도하는 전화를 끊기 전 한 마디 덧붙였다."참, 모르는 것 같아서 얘기해 주는 건데, 독 때문에 배가 아픈 경우는 없어요. 이럴 때는 차라리... 화장실 한번 가보지 그래요?"그러자 강유진이 얼굴을 붉히며 빽 하고 소리를 질렀다."시끄러워요!!"진도하는 한 방 먹은 강유진의 얼굴을 상상하며 자신도 모르게 소리 내어 웃었다.‘띠링’하는 소리와 함께 강유진의 집 주소가 도착했다. 진도하는 주소지를 훑어보고는 부모님께 외출한다는 메모를 남기고 집을 나섰다.한편.장민준은 음모 가득한 얼굴을 하고는 해성 그룹 산하의 철거
"좋아, 이 형님한테 맡겨."조해만이 흔쾌히 알겠다고 했다. 그가 이 일을 수락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로는, 노부부하고 그런 일이 벌어졌는데 자신이 다시 찾아가지 않아도 어차피 그 집 아들이 조만간 자신한테 찾아오리라 판단했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아까 장민준이 얘기를 꺼낸 여성이었다. 조해만은 얼마 전 장민준 커플과의 식사 자리에서 같이 온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가 꽤 마음에 들었는데, 장민준이 그 여자를 자기 눈앞에 대령한다고 하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거래가 성사되고 조해만은 벌써 기대가 되는 듯 헤실헤실했고, 장민준은 자신이 손해 보는 장사라고 잠깐 생각을 했지만 이내 오늘 오전 있었던 일을 생각하며 이 정도 감수는 별거 아니라고 자신을 위로했다.거래를 마치고 나온 장민준이 이민영한테 전화를 걸었다."자기야, 내가 해만이 형님한테 부탁해 뒀어. 형님이 오늘 저녁 부하들 데리고 직접 진도하를 찾아가 손 좀 봐주겠대."이민영도 오전에 있었던 일이 생각이 났는지 흥분하기 시작했다. "아주 다시는 기어오르지 못하게 철저하게 밟아주라고 해!""걱정 마, 진도하는 이제 끝이니까."두 사람은 진도하를 망가트릴 생각에 서로 사악하게 웃어댔다....한편.진도하는 강유진이 보낸 주소지를 보고 어느새 그녀의 집 앞에 도착했다. 초인종을 누르자 문이 금방 열렸고, 진도하는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급히 고개를 돌렸다. 강유진이 엉덩이를 간신히 가릴 정도의 펑퍼짐한 티셔츠 하나만 입은 채 매끈한 다리를 그대로 드러내고 그를 반겼기 때문이다."제가 올 줄 뻔히 아시는 분이, 옷 좀 제대로 입고 있으시면 안 됩니까?"진도하가 야속한 듯 물었다. 그는 현재 못 볼 꼴이라도 본 사람처럼 강유진 쪽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태도가 불만인 듯한 강유진이 되물었다."내가 뭘 제대로 안 입었다고 그래요? 내 집인데 그러면 내가 회사에서처럼 갖춰 입을까요?"진도하는 일리 있는 말에 말문이 막혔지만 이내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강유진이 옆에서 궁금한 듯 물었다."왜요? 무슨 일 있어요?""아니요. 엄마가 사촌 누나랑 오늘 식사 같이하자고 해서요."강유진은 고개를 한 번 끄덕하더니 독에 대해 다시 물었다."그래서 내가 어떻게 독에 중독됐는지는 알겠어요? 아빠도 지금 조사 중이긴 한데 아직 그 어떤 실마리도 못 찾았어요."진도하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제가 강유진 씨 곁에 쭉 있었던 것도 아니니까 당연히 어떠한 경로로 독에 중독됐는지는 모르죠."그러고 진도하는 잠깐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다시 말을 이었다."하지만 체내에 축적된 독소의 양으로 봤을 때, 아마 장기간 복용했거나 장기간 접촉했을 거예요. 수사는 이렇게 두 방면으로 해보세요."강유진은 살짝 실망한 듯 고개를 끄덕이다가 이내 눈이 초롱초롱해져서는 물었다."그럼 진도하 씨가 알아봐 주면 되겠네요.""저 범인 잡기 전까지 잠도 제대로 못 잘 것 같은데..."강유진이 불안에 떠는 모습에 진도하는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 냉큼 수락했다."알겠어요. 제가 알아볼게요."진도하의 긍정적인 대답에 강유진은 신이 났는지 덥석 그를 껴안아 버렸다. 이상한 건 진도하 정도의 감지 능력이면 충분히 피할 수 있었겠지만, 그는 피하지 않고 그대로 안겨버렸다. 아마 못 피한 것이 아니라 안 피한 것일 수도 있겠다.강유진한테 안겨버린 진도하는 머리가 아찔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티셔츠 한 장만 달랑 입고 달려든 탓에 진도하는 그녀의 체온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고, 그녀의 심장 뛰는 소리까지 생생히 들렸다.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진도하가 강유진을 얼른 밀쳤다. 그러자 그녀가 살짝 부루퉁한 얼굴을 하며 말했다."성운시 최고 미녀가 이렇게 먼저 안기는데 감히 날 떼어내요? 남자 맞아요?""이런 미인을 앞에 두고 어떻게 그런 태연자약한 얼굴을 할 수 있냐고요!"강유진은 자기가 말하고도 깜짝 놀랐다. 이런 행동을 하는 건 사람들이 아는 강유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마음속에서는 현재 난리가 났다.‘어머, 얼음 마녀라고 불리는
유서화는 진서희의 말에 민망해하면서 울컥했다. 진서희가 이렇게나 매정하게 선을 그을 줄은 몰랐다.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한 진용진이 얼른 일어나서는 진서희 편을 들어줬다."당신 그쯤 해. 애가 먹고 싶다는데 알아서 주문하게 놔둬."그러고는 유서화한테 눈치를 줬다. 유서화도 그제야 자신이 부탁할 입장이라는 걸 상기했는지 얼른 그녀의 비위를 맞춰줬다."서희야, 숙모가 미안해. 자, 얼른 다시 너 먹고 싶은 거 주문하도록 해.""아이고, 나는 항상 이 입이 문제야."유서화는 자신보다 한참 나이도 어린 조카 앞에서 최대한 자신을 낮췄다. 하지만 그럼에도 진서희는 기분이 풀리지 않은 듯 냉정하게 말했다."됐어요. 식사할 기분 아니에요."그때 옆에서 듣고만 있던 진도하가 더는 못 봐주겠던지 얼굴을 굳히며 진서희를 질타했다."누나는 그 나이 먹도록 어른 공경 같은 건 할 줄 몰라? 어디서 어른들 눈치 보게 만들어!""그리고 다른 사람도 아니고 누나한테는 삼촌이랑 숙모잖아!"그러자 진서희가 냉소적인 얼굴을 하며 비아냥거렸다."야, 기분 나쁘니까 자꾸 엮지 말아 줄래? 너희 부모님 나한텐 삼촌과 숙모가 아니라 그냥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일개 친척일 뿐이거든?"진서희의 매정한 말에 진용진과 유서화 부부는 기분이 많이 상한 듯 서로를 붙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서희 너는 형님 딸이라는 애가 어쩜 그렇게 매정한 말만 하는 거냐."진서희는 눈앞에 놓인 물을 한 모금 마시더니 이내 피식 웃으며 답했다."제가 틀린 말 했어요? 그렇잖아요. 돈 필요할 때만 찾아오는 주제에, 스스로 뻔뻔하다고는 생각을 안 하세요?""제가 돈과 능력이 없었으면 저한테 이렇게 친절하게 구셨을까요? 저한테 이런 비싼 레스토랑에서 밥 한 끼 먹자고 하셨겠느냐고요?"진서희는 그 말을 끝으로 가방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앞으로는 이런 쓸데없는 일로 저희 부모님께 연락하지 마세요. 오늘 엄마 아빠 아니었으면 저 이 자리에 나오지도 않았어요.""그리고 아까 저한테 부탁했던 일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