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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화

"이건 제가 군부대를 나왔을 때 받았던 퇴직금인데 두 분이 생활비로 쓰세요. 비밀번호는 엄마 생일이에요."

유서화는 아들과 은행카드를 번갈아 보더니 이내 웃으며 말했다.

"아들, 엄마가 그럼 우리 아들이 힘들게 번 돈 잘 맡아두고 있을게. 그러다 너 결혼 할 때 다시 돌려줄게."

그 말에 진도하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엄마, 두 분 검소하게 사시는 건 저도 너무 존중해요. 하지만 엄마, 쪼들려 사는 거랑 검소하게 사는 건 다르잖아요. 정 그러시면 낭비만 하지 않으시면 되잖아요. 그러니까 제가 준 돈 너무 아끼려고 하지 마시고 사고 싶은 거 다 사세요. 엄마 아들은 이제부터 더 많은 돈을 벌게 될 테니까."

"걱정하지 마요. 한 달 후면 제가 이 성운시에서 제일 돈이 많은 사람이 되어 있을 테니까."

유서화는 아들의 말에 대충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래그래, 알겠어."

진도하는 당연하게 자신을 믿지 않는 엄마를 보며 답답하기도 했지만, 그들이 살아온 시간을 생각하고는 이내 이해를 했다.

‘그래, 지금부터 증명해 보이면 되는 거야. 더는 걱정 안 해도 된다는 걸 두 분이 직접 두 눈으로 보게 되면, 그때는 진심으로 안심하시겠지.’

이때, 서수진이 병실 문을 열고 들어와서는 말을 건넸다.

"아저씨, 이제 퇴원하셔도 돼요."

진용진이 그녀의 말에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드디어 퇴원할 수 있는 거야? 아이고, 그것참 잘됐네."

그리고는 신발을 신더니 신이 나서 퇴원할 준비를 했다.

진도하가 서수진 옆으로 다가가 물었다.

"우리 아빠 이제 진짜 괜찮아지신 거 맞죠?"

서수진은 그런 진도하를 보며 갸우뚱했다.

"진도하 씨가 의사 시면서 아버지 상처는 안 봐 드렸어요?"

그러자 진도하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네, 차마 제 눈으로는 못 보겠더라고요..."

진도하는 진용진이 생명에 위협이 없다는 것만 확인하고는 모든 치료를 다 병원 의료진한테 맡겼다. 한창 전장에 있었을 때, 이것보다 더한 상처들도 많이 봐왔던 그였지만 다친 상대가 자신의 아버지가 되자 마음이 쓰려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서수진은 그의 마음을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얘기했다.

"오늘 아침에 확인해 보니 상처에 딱지가 생겼더라고요. 이제는 아물기만 하면 돼요. 팔에 한 깁스는 한 달 뒤에 와서 푸시면 되고요."

진도하가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알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뭘요."

서수진이 더 할 말이 남은 듯 그를 향해 몸을 돌리려는데, 그때 복도 끝에서 간호사 호출이 들려왔다. 그녀는 그 소리에 반사적으로 다시 몸을 돌려 그쪽으로 뛰어갔다. 서수진이 병실을 나간 후, 진도하는 접수실로 내려가 퇴원 절차를 밟은 후 부모님을 모시고 병원을 나가는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했다.

세 명이 한참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을 때, 서수진이 그들 쪽을 향해 부리나케 달려왔다. 그녀는 진도하 앞에 멈춰 선 후 숨을 한 번 고르고는 용기를 내서 말했다.

"진도하 씨, 전화번호 좀 주실 수 있어요?"

"네, 그럼요."

전화번호를 묻는 그녀에게 진도하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서수진이 병원에서 자신의 부모님을 얼마나 극진히 간호했는지 알고 있었던 터라 그는 흔쾌히 자신의 번호를 넘겼다.

서수진은 번호를 넘겨받은 뒤 간단히 인사를 하고는 또다시 급히 뛰어갔다. 진도하에게서 멀어지는 그녀의 얼굴이 얼마나 빨갛게 달아올랐는지는 그 누구도 몰랐다. 서수진은 그날 독에 중독된 환자를 구하는 그의 자신감 넘치고 여유로운 모습이 그녀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진도하한테 호감을 품게 된 것이었다.

한편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후, 유서화는 진도하를 바라보며 은근슬쩍 말을 꺼냈다.

"수진이는 애가 참 성격도 좋고 착해. 병원에 있을 때 우리를 얼마나 살갑게 챙겨주던지."

"어휴~ 네가 이민영이랑 약혼만 안 했으면 수진이와 짝이 되었어도 참 잘 어울렸을 것 같은데. 애가 착하지, 성격도 좋지, 거기에 직장도 좋지. 뭐 하나 빠지는 데가 없어."

"..."

진도하는 유서화의 말에 어색한 웃음만 지어 보였다.

병원에서 나온 후, 유서화와 진용진은 익숙한 듯 버스 정거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진도하가 얼른 그들을 제지했다.

"엄마, 아빠, 우리 시골집으로 안 갈 거예요."

그러자 유서화가 의문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집으로 안 가면 어디로 가는데?"

"저희 새집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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