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진도하도 오늘 집 내부를 처음 구경하게 됐는데 부모님의 말씀대로 정말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좋았다.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로 옆에 화장실이 있었고, 그 옆에는 가정부 방이 따로 있었다. 또 그 옆에는 아이들 방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아이들이 가지고 놀 갖가지 장난감과 각종 아이 용품들로 가득했다.다음으로 보이는 건 넓은 거실이었는데, 남향이라 따스한 햇볕이 스며들었고, 소파와 텔레비전 그리고 에어컨까지 구비되어있어 몸만 들어오면 될 정도였다. 부부는 계단을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며 감탄하고 또 감탄했다."두 분 어떠세요? 마음에 들어요?""마음에 들다마다! 너무 좋아.""여기는 집 내부도 큰데 마당도 딸려 있고 저쪽 뒤에는 텃밭도 있더구나. 너희 엄마랑 거기서 채소를 심어도 되겠다."두 사람의 상당히 만족한 듯한 평에 진도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고는 손뼉을 한번 치며 말했다."두 분 결정하신 거죠? 그럼 지금 당장 이사해요, 우리."그러자 유서화가 말했다."여기는 없는 물건이 없을 정도로 뭐가 너무 많아서 따로 가지고 올 필요도 없을 것 같아. 오늘은 집에 가서 이불 정도만 가지고 오고 나머지는 천천히 하자."진용진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네 엄마 말이 맞다. 그리고 혹시 여기 있기 불편해지면 다시 시골로 내려갈 수도 있고."두 사람은 별장에서 휴식을 조금 취하고는 이불을 가지러 시골로 내려갔다. 진도하도 같이 가고 싶었지만 유서화에 의해 거절당했다.부모님이 떠나는 걸 확인한 진도하는 강유진한테 전화를 걸었다. 강유진이 그한테 이 별장을 선물했다는 걸 진도하가 이미 눈치를 채고 있었다. 신호가 얼마 안 가 강유진의 맑고 깨끗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떻게 고민은 좀 해보셨어요?"진도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별장, 당신이 준 거죠?"그러자 강유진이 살짝 웃으며 말했다."마음에 들어요?""마음에 들긴 하는데... 제가 돈을 한 푼도 내지 않고 여기에 사는 건 마음이 좀 불편하네요. 이렇게 하죠. 저한
진도하가 강유진한테 물었다."네? 뭐라고요? 쓰레기랑 겸상이 어쨌다고요?"마음이 복잡했던 진도하가 강유진이 낮은 목소리로 하는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하고는 되물었다. 그러자 강유진이 별거 아니라는 듯이 답했다."아니에요. 못 들은 거로 해요."진도하는 그녀의 말에 더 묻지는 않았고, 이번에는 강유진이 대화 주제를 돌렸다."진도하 씨, 수행비서 하기로 약속도 했으니, 이제 출근해야겠죠?""네? 저더러 지금 당장 출근하러 오라는 거예요?"진도하는 그녀의 말에 당황한 듯했다.‘이 여자는 뭐가 항상 이렇게 급해? 그리고 내가 언제 하겠다고 했어!’강유진이 당연한 걸 뭘 묻냐는 태도로 말했다."당연한 거 아니에요? 나는 독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의학 쪽도 모르는데, 진도하 씨가 내 옆으로 와서 누가 독을 탔는지, 어떤 방법으로 독을 탔는지 당연히 봐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강유진의 말이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진도하가 막 입을 열려고 할 때, 갑자기 전화기 너머로 강유진의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 나 지금 배가 너무 아파요. 독이 몸속에 퍼져서 이런 거 아니에요? 아이고... 아파.""나 이러다 죽는 거 아니에요?!"강유진이 오바하는 소리를 들은 진도하는 못 말리겠다는 듯 입을 열었다."주소 보내줘요. 지금 갈 테니까."강유진은 그제야 마음에 들었는지 앓는 소리도 안 내고 말했다."네~ 금방 보낼게요."진도하는 전화를 끊기 전 한 마디 덧붙였다."참, 모르는 것 같아서 얘기해 주는 건데, 독 때문에 배가 아픈 경우는 없어요. 이럴 때는 차라리... 화장실 한번 가보지 그래요?"그러자 강유진이 얼굴을 붉히며 빽 하고 소리를 질렀다."시끄러워요!!"진도하는 한 방 먹은 강유진의 얼굴을 상상하며 자신도 모르게 소리 내어 웃었다.‘띠링’하는 소리와 함께 강유진의 집 주소가 도착했다. 진도하는 주소지를 훑어보고는 부모님께 외출한다는 메모를 남기고 집을 나섰다.한편.장민준은 음모 가득한 얼굴을 하고는 해성 그룹 산하의 철거
"좋아, 이 형님한테 맡겨."조해만이 흔쾌히 알겠다고 했다. 그가 이 일을 수락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로는, 노부부하고 그런 일이 벌어졌는데 자신이 다시 찾아가지 않아도 어차피 그 집 아들이 조만간 자신한테 찾아오리라 판단했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아까 장민준이 얘기를 꺼낸 여성이었다. 조해만은 얼마 전 장민준 커플과의 식사 자리에서 같이 온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가 꽤 마음에 들었는데, 장민준이 그 여자를 자기 눈앞에 대령한다고 하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거래가 성사되고 조해만은 벌써 기대가 되는 듯 헤실헤실했고, 장민준은 자신이 손해 보는 장사라고 잠깐 생각을 했지만 이내 오늘 오전 있었던 일을 생각하며 이 정도 감수는 별거 아니라고 자신을 위로했다.거래를 마치고 나온 장민준이 이민영한테 전화를 걸었다."자기야, 내가 해만이 형님한테 부탁해 뒀어. 형님이 오늘 저녁 부하들 데리고 직접 진도하를 찾아가 손 좀 봐주겠대."이민영도 오전에 있었던 일이 생각이 났는지 흥분하기 시작했다. "아주 다시는 기어오르지 못하게 철저하게 밟아주라고 해!""걱정 마, 진도하는 이제 끝이니까."두 사람은 진도하를 망가트릴 생각에 서로 사악하게 웃어댔다....한편.진도하는 강유진이 보낸 주소지를 보고 어느새 그녀의 집 앞에 도착했다. 초인종을 누르자 문이 금방 열렸고, 진도하는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급히 고개를 돌렸다. 강유진이 엉덩이를 간신히 가릴 정도의 펑퍼짐한 티셔츠 하나만 입은 채 매끈한 다리를 그대로 드러내고 그를 반겼기 때문이다."제가 올 줄 뻔히 아시는 분이, 옷 좀 제대로 입고 있으시면 안 됩니까?"진도하가 야속한 듯 물었다. 그는 현재 못 볼 꼴이라도 본 사람처럼 강유진 쪽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태도가 불만인 듯한 강유진이 되물었다."내가 뭘 제대로 안 입었다고 그래요? 내 집인데 그러면 내가 회사에서처럼 갖춰 입을까요?"진도하는 일리 있는 말에 말문이 막혔지만 이내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강유진이 옆에서 궁금한 듯 물었다."왜요? 무슨 일 있어요?""아니요. 엄마가 사촌 누나랑 오늘 식사 같이하자고 해서요."강유진은 고개를 한 번 끄덕하더니 독에 대해 다시 물었다."그래서 내가 어떻게 독에 중독됐는지는 알겠어요? 아빠도 지금 조사 중이긴 한데 아직 그 어떤 실마리도 못 찾았어요."진도하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제가 강유진 씨 곁에 쭉 있었던 것도 아니니까 당연히 어떠한 경로로 독에 중독됐는지는 모르죠."그러고 진도하는 잠깐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다시 말을 이었다."하지만 체내에 축적된 독소의 양으로 봤을 때, 아마 장기간 복용했거나 장기간 접촉했을 거예요. 수사는 이렇게 두 방면으로 해보세요."강유진은 살짝 실망한 듯 고개를 끄덕이다가 이내 눈이 초롱초롱해져서는 물었다."그럼 진도하 씨가 알아봐 주면 되겠네요.""저 범인 잡기 전까지 잠도 제대로 못 잘 것 같은데..."강유진이 불안에 떠는 모습에 진도하는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 냉큼 수락했다."알겠어요. 제가 알아볼게요."진도하의 긍정적인 대답에 강유진은 신이 났는지 덥석 그를 껴안아 버렸다. 이상한 건 진도하 정도의 감지 능력이면 충분히 피할 수 있었겠지만, 그는 피하지 않고 그대로 안겨버렸다. 아마 못 피한 것이 아니라 안 피한 것일 수도 있겠다.강유진한테 안겨버린 진도하는 머리가 아찔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티셔츠 한 장만 달랑 입고 달려든 탓에 진도하는 그녀의 체온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고, 그녀의 심장 뛰는 소리까지 생생히 들렸다.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진도하가 강유진을 얼른 밀쳤다. 그러자 그녀가 살짝 부루퉁한 얼굴을 하며 말했다."성운시 최고 미녀가 이렇게 먼저 안기는데 감히 날 떼어내요? 남자 맞아요?""이런 미인을 앞에 두고 어떻게 그런 태연자약한 얼굴을 할 수 있냐고요!"강유진은 자기가 말하고도 깜짝 놀랐다. 이런 행동을 하는 건 사람들이 아는 강유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마음속에서는 현재 난리가 났다.‘어머, 얼음 마녀라고 불리는
유서화는 진서희의 말에 민망해하면서 울컥했다. 진서희가 이렇게나 매정하게 선을 그을 줄은 몰랐다.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한 진용진이 얼른 일어나서는 진서희 편을 들어줬다."당신 그쯤 해. 애가 먹고 싶다는데 알아서 주문하게 놔둬."그러고는 유서화한테 눈치를 줬다. 유서화도 그제야 자신이 부탁할 입장이라는 걸 상기했는지 얼른 그녀의 비위를 맞춰줬다."서희야, 숙모가 미안해. 자, 얼른 다시 너 먹고 싶은 거 주문하도록 해.""아이고, 나는 항상 이 입이 문제야."유서화는 자신보다 한참 나이도 어린 조카 앞에서 최대한 자신을 낮췄다. 하지만 그럼에도 진서희는 기분이 풀리지 않은 듯 냉정하게 말했다."됐어요. 식사할 기분 아니에요."그때 옆에서 듣고만 있던 진도하가 더는 못 봐주겠던지 얼굴을 굳히며 진서희를 질타했다."누나는 그 나이 먹도록 어른 공경 같은 건 할 줄 몰라? 어디서 어른들 눈치 보게 만들어!""그리고 다른 사람도 아니고 누나한테는 삼촌이랑 숙모잖아!"그러자 진서희가 냉소적인 얼굴을 하며 비아냥거렸다."야, 기분 나쁘니까 자꾸 엮지 말아 줄래? 너희 부모님 나한텐 삼촌과 숙모가 아니라 그냥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일개 친척일 뿐이거든?"진서희의 매정한 말에 진용진과 유서화 부부는 기분이 많이 상한 듯 서로를 붙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서희 너는 형님 딸이라는 애가 어쩜 그렇게 매정한 말만 하는 거냐."진서희는 눈앞에 놓인 물을 한 모금 마시더니 이내 피식 웃으며 답했다."제가 틀린 말 했어요? 그렇잖아요. 돈 필요할 때만 찾아오는 주제에, 스스로 뻔뻔하다고는 생각을 안 하세요?""제가 돈과 능력이 없었으면 저한테 이렇게 친절하게 구셨을까요? 저한테 이런 비싼 레스토랑에서 밥 한 끼 먹자고 하셨겠느냐고요?"진서희는 그 말을 끝으로 가방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앞으로는 이런 쓸데없는 일로 저희 부모님께 연락하지 마세요. 오늘 엄마 아빠 아니었으면 저 이 자리에 나오지도 않았어요.""그리고 아까 저한테 부탁했던 일 말
진서희는 단번에 이 카드가 무슨 카드인지 알아봤다. 진도하가 꺼내든 카드는 일명 ‘블랙카드’로 한도가 없고 전 세계적으로 10장밖에 발급되지 않은 카드이다. 또한, 이 카드를 소지하고 있는 사람은 다 각 나라의 최상위 재벌들이었다. 진서희도 이 블랙카드를 사진으로밖에 접해 보지 못했다.‘왜 이게 진도하 손에...?’진도하는 진서희의 놀란 얼굴을 보지 못한 채 태연하게 카드를 웨이터에게 넘겨줬다. 일행은 함께 룸에서 나와 카운터로 향했고, 마침 웨이터도 계산을 끝낸 듯 진도하에게 도로 카드를 넘겨주었다. 진도하가 막 카드를 다시 호주머니에 넣으려고 하자 진서희가 그의 행동을 제지하며 약간 흥분한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너 그거 블랙카드 아니야?"진도하가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되물었다."왜?"그러자 진서희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나 그 카드 한 번 봐도 돼?"진도하는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곧 대수롭지 않다는 듯 카드를 넘겨줬다. 진서희는 떨리는 마음으로 카드를 건네받고는 이내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검색하더니 실물과 대비하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던 그녀의 눈이 점차 커지더니 자신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이거 진짜로 그 블랙카드 맞는 것 같은데?’‘하지만 이 별 볼 일 없는 놈이 어떻게 이 카드를 가지고 있는 거지?’"네가 어떻게 이 카드를 가지고 있는 거야?"그리고는 몰상식한 한 마디를 덧붙였다."너 혹시 훔쳤니???"그녀는 도저히 훔친 게 아니고서는 이 상황을 설명할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가 속해 있는 해성 그룹의 사장조차도 이 카드를 소유하지 못했으니까. 기가 막힌 얼굴을 한 진도하가 막 대답을 하려고 입을 벌렸을 때였다.‘우당탕탕!’갑자기 한 무리의 사람들이 해운 호텔 안으로 들이닥쳤다. 그들 손에는 야구 방망이와 쇠 파이프가 들려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심에는 얼굴에 살이 가득한 대머리가 서 있었는데, 바로 조해만이었다.조해만은 오늘 장민준이 송금한 금액을 확인하고는 바로 진도하의
"그냥 여기 있어. 저것들도 사람들 다 보는 곳에서는 함부로 손대지 못할 테니까!"유서화는 말로 그치지 않고 얼른 아들 앞을 막고 서서는 진도하를 감쌌다. 가녀린 몸으로 자신보다 덩치도 큰, 아들 하나 지키려고 필사적인 엄마를 보며 진도하는 순간 울컥하며 코끝이 시려왔다.유서화는 덜덜 떨리는 몸을 하고서도 행여나 깡패들이 자기 아들을 강제로 끌고 갈까 봐 진도하의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 엄마로서의 본능이자 사랑이었다. 진도하는 그녀가 자신을 지키려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진용진도 얼른 아들 곁으로 다가가 깡패들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내 아들 건드릴 생각하지 마!!"조해만은 유서화의 말대로 지금 상당히 골치가 아팠다. 여기는 해운 호텔이었고 일개 깡패가 설칠 만할 곳이 아니었다. 해운 호텔 사장한테 찍혔다가는 성운시에서 더 이상 발을 붙이고 다닐 수 없을 테니까.조해만이 진도하를 어떻게 밖으로 끌고 갈지 한참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 진도하가 맞잡은 유서화의 손을 조심스레 풀고는 자신 앞을 막아선 부모님들을 피해 조해만이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나가자."부부가 놀란 표정으로 다시 한번 제지하려고 하자, 진도하가 몸을 틀어 낮은 목소리로 그들을 향해 속삭였다."엄마, 아빠, 걱정하지 마세요. 저 5년 동안 군부에만 있었어요. 이 정도는 껌이니까 안심하세요."진도하는 두 사람을 안심시키고는 호텔 출입구 쪽으로 발을 옮겼다. 그에 조해만도 부하들한테 눈짓을 한 번 하고는 호텔을 나가려고 했다. 그때 조해만은 출입구 쪽에서 잔뜩 긴장한 듯 떨고 있는 진서희를 발견했다. 그리고 진서희를 정확히 가리키며 말했다."어이, 너! 너도 따라 나와! 일 끝나면 우리랑 좀 놀아줘야겠어."진서희는 몸을 덜덜 떨며 뒤로 슬금슬금 도망치기 시작했다.그러자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조해만이 진서희의 머리채를 한 움큼 잡더니 그대로 호텔 밖으로 강제로 끌고 나왔다. 그러고 호텔 밖에 나와서야 잡고 있던 머리채를 풀어줬고 진서희는 넋이 나간 사
강유진은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를 내며 조해만의 앞으로 걸어오더니 이내 ‘짝!’하는 소리와 함께 조해만의 뺨을 때렸다."죽고 싶어? 내가 누군지 몰라?"강유진이 당당한 말투와 몸짓으로 그를 찍어 눌렀다. 태생적으로 너무나도 당연하게 사람들 위에 군림한 군주처럼 말이다.진도하도 상당히 놀란 듯했다. 그저 가녀리고 가끔은 철없는 부잣집 아가씨인 줄로만 알았던 강유진이 왕의 아우라를 뿜어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이쯤에서 진도하의 머릿속에 피어오르는 의문이 하나 있었으니.‘그런데 왜 내 앞에서는 한 번도 이런 모습을 보여 준 적 없는 것 같지?’진도하는 강유진을 보며 계속 의문을 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조해만이 반격할 것을 염두에 두며 언제든 공격할 준비를 했다. 자신을 위해 나서준 강유진을 털끝조차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구석에서 쭈그려 앉아 벌벌 떨기만 했던 진서희도 깜짝 놀랐다. 그 ‘얼음 마녀’가 갑자기 이곳에 나타났으니까. 동시에 안심도 됐다. 그녀가 왔으니 모든 것이 빠르게 정리가 될 것이라고. 조해만도 해성 그룹을 상대로 애먼 짓은 못할 테니까.강유진한테 한 대 얻어맞은 조해만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갚아줘야겠다거나 분노가 아닌 의문이었다."네가 누군데요?"조해만의 목소리가 살짝 떨려있었는데, 그것은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화를 억지로 누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조해만도 멍청이는 아니어서 건드려도 되는 사람과 안 되는 사람 정도는 감으로 구분할 수 있었는데, 그것이 조해만이 여태까지 성운시에서 살아남은 이유이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자신을 힘차게 때린 이 여자는 누가 봐도 후자였다. 그래서 그도 억지로 화를 눌러가며 그녀의 신분을 먼저 확인하려고 하고 있다. 강유진은 손으로 자기 자신을 가리키며 어이가 없어 하며 물었다."내가 누구냐고? 내가 누군지를 몰라?""그럼, 백 선생은 알려나?"조해만은 그녀의 말에 눈이 삽시에 커져서는 말까지 더듬었다."백... 백 선생을 그쪽이 어떻게 알지?"조해만은 백 선
“선우 씨가요? 내 이름을 걸고 말이에요?”진도하는 주선우를 흘겨보았다.주선우가 두 눈을 반짝이며 열정 가득한 모습을 보니 이 일에 꽤나 열을 올리고 있다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맞아요. 형님은 형님 할 일을 계속하면 되고 상고성의 일은 제가 알아서 처리할게요.”주선우가 말했다.“어쨌든 이곳은 항상 형님이 말하는 대로 될 거예요.”진도하는 그 말에 잠시 마음이 흔들렸다.무엇보다도 그는 문득 자신의 조상, 진씨 가문의 창시자를 떠올렸다.스승님이 말하길 진씨 가문의 창시자는 원래 세계의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일부러 문파를 세웠고 그들이 이 세계에 도착했을 때 머무를 곳과 수련 자원을 마련해 놓았다고 했다.지금 비록 자신이 조상처럼 높은 경지에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이 작은 상고성에서라면 문파를 세우고 보호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그러면 이주안, 현지수, 강고수 같은 사람들이 이 세계로 오게 될 경우 바로 상고성으로 올 수 있을 것이다.이런 생각이 들자 진도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 일은 조금 더 생각해보도록 하죠.”그러자 주선우는 안절부절못한 듯 서둘러 말했다.“형님, 생각할 것도 없어요! 지금 형님의 대부경 5단계 실력으로 문파를 세우는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아요. 더구나 이미 대부경 7단계 두 명을 넘어섰잖아요!”“하지만 수련 자원과 공법은 어디서 구할 수 있죠?”진도하가 물었다.문파를 세운다고 해도 중요한 건 공법과 자원이다. 이런 것들이 없다면 문파는 제대로 성장할 수 없다.그러자 주선우는 아무렇지 않은 듯 웃으며 말했다.“그건 다 준비돼 있잖아요.”그러고는 고문파의 대문을 향해 입술을 쓱 내밀었다.진도하는 그제야 주선우의 뜻을 알아차렸다.그는 고문파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마침 단전이 파괴된 고문파 사람들은 자신들의 짐을 챙겨 들고 차례차례 걸어나오고 있었다.주선우는 그들을 향해 외쳤다.“짐만 챙겨 나가. 공법과 자원은 모두 두고 가야 해. 알았어? 만약 몰래 가지고 나가는 걸 나한테 들키면 그땐
그 말을 들은 열몇 명의 수련자들은 더욱 두려워졌다.이때 문 밖에서 시끄럽고 혼란스러운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자 수련자들은 의아한 표정으로 문 쪽을 바라보았다.곧 그들 앞에 나타난 사람들은 다름 아닌 같은 문파의 동료들이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놀란 표정이 가득했다.“이...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일흔 명이 넘는 동료들이 입가에 피를 흘리고 창백한 얼굴로 절망적인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었다.“너희 단전이 파괴된 거야?”금세 누군가가 상황을 깨닫고는 두려움에 떨며 물었다.하지만 그 수련자들은 아무 말 없이 진도하와 은소혜를 비켜 지나 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이 광경을 목격한 나머지 수련자들은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비록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들은 동료들의 단전이 파괴된 것이 바로 진도하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진도하는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10!”“9!”“8!”세 개의 숫자가 떨어지자마자 그중 한 명이 기운을 모아 자신의 단전을 가격했다.첫 번째로 나선 사람이 나오자 두 번째, 세 번째로 자진해서 단전을 파괴하는 이들이 연달아 나왔다.결국 열몇 명 모두 단전을 스스로 파괴했다.그제야 진도하는 만족한 듯 몸을 돌려 문을 나섰고 은소혜도 뒤를 따랐다.두 사람은 독고 청의와 주선우가 기다리고 있던 곳으로 돌아왔다.독고 청의가 물었다.“다 해결된 거죠?”“네, 해결됐어요.”진도하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자 주선우가 물었다.“그럼 저들을 그냥 이렇게 놔둬도 되는 거예요?”진도하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그냥 두죠.”비록 그들이 고천혁과 함께 악행을 저질렀지만 이제 그들은 단전이 파괴된 폐인이 되었으니 굳이 끝까지 몰아붙일 필요는 없었다. 게다가 때로는 살아 있는 것이 죽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울 때도 있으니까.주선우는 고개를 끄덕이고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가 갑자기 흥분한 듯 진도하에게 말했다.“형님! 고천혁도 죽고 고문파도 거의 전멸했으니 이제 상고성에는 더 이상 문파가 없어졌어요.”“네?”진
그 한 마디가 마치 천둥소리처럼 크게 울려 퍼졌다.은소혜는 귀를 문지르며 속으로 생각했다.‘도하의 실력이 점점 강해지고 있구나.’문 앞에 있던 독고 청의와 주선우를 비롯한 다른 수련자들도 본능적으로 귀를 막았다.진도하의 목소리는 고문파의 본거지에 울려 퍼졌고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들었을 것이다.아니나 다를까 1분도 지나지 않아 십여 명의 수련자들이 장검을 들고 진도하 앞에 분노에 찬 얼굴로 모습을 드러냈다.그들 중 선두에 선 마흔 즈음의 중년 남자가 화난 표정으로 진도하를 노려보며 말했다.“우리 고문파 앞에서 감히 고함을 치다니, 너 죽고 싶어?”그러자 진도하는 무표정하게 대답했다.“고천혁은 이미 죽었어. 너희도 단전을 스스로 파괴하면 목숨만은 살려줄게.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죽음을 맞이하게 될 거야.”그 중년 남자는 갑자기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너희 둘 미쳤어? 여기가 어딘 줄이나 알아? 감히 여기서 그런 허튼 소리를 하다니, 죽고 싶어서 안달이 났구나!”단전을 자진 파괴한 고문파 수련자들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기에 그는 고천혁이 죽었다는 사실도, 다른 수련자들이 이미 단전을 스스로 파괴했다는 사실도 전혀 몰랐다.그는 진도하를 분노에 찬 눈빛으로 바라보며 바로 칼을 뽑을 듯한 기세였다.진도하는 화를 내지 않았고 그저 웃으며 중년 남자에게 물었다.“너희 고문파 사람들은 모두 여기에 있어?”그와 동시에 진도하는 자신의 감지력을 넓혀 주변을 탐지했다.중년 남자는 대답 대신 화를 내며 소리쳤다.“어서 나가! 안 그러면 우리 세 개 주성의 수장님이 돌아오시면 넌 반드시 죽을 거야!”그는 진도하와 은소혜가 풍기는 강력한 기운을 느끼고 자신이 그들을 상대할 수 없음을 직감했다.그러나 평소 상고성에서 악명을 떨치며 권력을 휘두르던 그는 이들을 딱히 신경 쓰지 않고 세 개 주성의 수장을 언급하며 그들을 위협하고 쫓아내려고 했다.이때 은소혜가 칼을 들고 중년 남자 옆으로 성큼 다가가며 말했다.“네가 말하는 ‘세 개 주성의 수장’이 고
그때 백발의 노인이 말했다.“길을 안내해드릴까요?”“좋습니다!”진도하는 고개를 끄덕였다.이미 고천혁을 제거한 이상 고문파의 나머지 사람들도 빨리 처리해야 했다. 그들을 놓쳐서 도망가게 한다면 더 큰 골칫거리가 될 것이 분명했다.이런 생각이 들자 진도하는 말했다.“어르신, 젊은 분 한 분만 보내주세요. 어르신께서 굳이 함께 가실 필요는 없습니다.”백발의 노인은 진도하의 뜻을 알아차리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철수야, 네가 발도 빠르고 민첩하니 진 대사님을 안내해드려라.”“알겠습니다!”철수는 사람들 속에서 뛰어나와 신나게 말했다.“진 대사님, 저를 따라오시죠!”“가요!”진도하는 고개를 끄덕이고 한 발짝 앞으로 나서며 철수의 팔을 가볍게 잡았다.“철수 씨는 방향만 알려주면 돼요.”“알겠습니다!”철수는 곧장 대답했다.“이 길 끝까지 가서 왼쪽으로 꺾으면 됩니다!”철수가 방향을 알려주자 진도하는 환허보를 발휘해 고문파 본거지로 빠르게 향했다. 가는 동안 철수는 입을 틀어막고 있었고 언제든지 토할 것처럼 보였지만 이를 악물고 참아냈다. 은소혜와 독고 청의 일행도 그 뒤를 따랐다.얼마 지나지 않아 단전을 자진 파괴한 고문파 수련자들이 진도하의 눈에 들어왔다.그들도 진도하를 보자마자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우린 이미 단전을 끊었는데 왜 또 우리를 죽이려는 거야?”그들은 진도하를 두려워하며 물었다.그러자 진도하는 냉담하게 대답했다.“걱정하지 마. 나는 약속은 꼭 지켜.”“그런데 왜...”그들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진도하를 바라보았다.그러나 진도하는 대답하지 않고 철수에게 다시 방향을 물었다. 철수가 또 다른 방향을 가리키자 진도하는 곧바로 그 자리를 떠났다.단전이 파괴된 고문파의 수련자들은 진도하가 사라지자 그제야 긴장을 풀고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그들은 서로 눈을 마주쳤고 얼굴에는 씁쓸한 표정만 남아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상고성에서 위세를 떨치던 수련자들이 이제는 단전이 파괴된 폐인이 되었으니 당연히 감
그 수련자는 눈빛이 흔들리며 혼란스러워졌다.진도하는 분노에 차 소리쳤다.“설마 나를 직접 나서게 만들 생각이야?”고문파의 수련자들이 자진하여 단전을 끊고 있을 때 진도하는 자신의 감지력을 모두 풀어놓았다. 혹시라도 누군가가 거짓으로 단전을 끊는 척할까 염려했기 때문이다.지금 진도하 앞에 있는 이 수련자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 그는 자신의 단전을 때리는 시늉만 했을 뿐 실제로는 기운을 모으지 않았고 피를 뱉는 척까지 했다. 그의 단전은 멀쩡했다.그 수련자는 복잡한 눈빛으로 진도하를 바라보더니 침을 몇 번 삼키며 눈을 감았다. 이어서 그는 제대로 자신의 단전을 향해 손바닥을 내리쳤다.퍽.이번엔 진짜로 선홍빛의 피가 튀어나왔다.그제야 진도하는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꺼져!”그 수련자는 단전이 파괴된 고통을 억지로 참고 비틀거리면서 자리를 떠났다.곧 고문파의 수련자들은 모두 단전을 스스로 끊고 떠났다. 그제야 진도하는 용음검을 거두었다.그는 뒤돌아 은소혜와 그녀 뒤에 있는 수련자들을 보며 물었다.“우리는 사상자가 있어?”“사상자는 없지만 부상자는 몇 명 있어.”은소혜가 대답했다.조금 전 그들이 고문파의 수련자들과 싸울 때 은소혜는 계속해서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고 위험한 상황이 생길 때마다 바로 달려갔기 때문에 다행히 죽은 사람은 없고 몇 명의 부상자만 나왔을 뿐이었다.“그래도 부상 당한 사람들은 이미 치료를 받았어. 지금 다들 몸 상태가 좀 허약할 뿐이지 큰 문제는 없어.”은소혜가 덧붙였다.그러자 진도하는 안도하며 품에서 약병을 꺼냈다.“이 약들은 내가 직접 만든 거예요. 수련에 큰 도움이 될 테니 모두 한 알씩 가져가요.”이들은 진도하의 부탁을 거절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그를 도왔기에 진도하는 그들에게 깊은 감사를 느끼고 있었다. 그는 수련자들에게 보답하고 싶어 이 약을 내놓은 것이었다.진도하는 약병을 가장 가까이 있던 수련자에게 건네주었고 그 수련자는 약을 하나 꺼낸 다음 옆 사람에게 다시 약병을 넘겼다.바로 그
진도하는 말을 마치자마자 다시 한번 용음검을 뽑아들고 고문파의 수련자들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검 끝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살기가 고문파의 수련자들을 압도했고 이에 모두가 침묵 속에 휩싸였다.‘어떻게 해야 하지?’아무도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그들이 망설이는 사이 은소혜와 독고 청의를 비롯한 다른 수련자들이 모두 다가와 고문파 수련자들을 포위했다.그들의 숫자는 고문파보다 적었지만 그들의 전의와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그들은 무기를 움켜쥔 채로 고문파의 수련자들을 차가운 눈빛으로 응시했으나 말은 하지 않았다. 그들의 의도는 명확했다. 시간이 다 되면 진도하와 함께 일제히 달려들겠다는 것이다.“남은 시간은 50초.”진도하의 냉혹한 목소리가 울렸다.고문파의 수련자들은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그 누구도 진도하의 검을 견딜 자신이 없었고 죽고 싶지도 않았다.“내가 단전을 끊으면 정말로 날 살려줄 거야?”갑자기 누군가가 물었다.진도하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대부경 1단계의 수련자였다.진도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스스로 단전을 끊는 자는 살려 보낼 거야.”“그 말 꼭 지켜.”그 남자는 그렇게 말한 뒤 손에 기운을 모아 자신의 단전을 향해 내리쳤다.퍽.남자는 입에서 피를 뿜어내며 단전의 파괴로 인한 고통을 억지로 참아냈다. 그는 이를 악물고 진도하를 바라보며 말했다.“이제 난 가도 되는 거지?”“가.”진도하가 고개를 끄덕였다.첫 번째로 단전을 끊은 자는 몸을 돌려 휘청거리며 멀리 걸어갔다. 10미터쯤 걸어간 뒤 누구도 그를 쫓지 않자 그는 단전을 움켜쥐고 빠르게 거리 끝으로 도망쳤다.이 광경을 본 고문파의 다른 수련자들은 진도하가 정말로 그 남자를 놓아주었다는 사실에 더욱 망설이기 시작했다.진도하는 다시 한번 말했다.“남은 시간은 이제 30초.”이 말을 듣자 고문파의 수련자들은 모두 당황했다.퍽.또 한 명의 수련자가 기운을 모아 자신의 단전을 내리쳤다.“푸우...”그는 피를 뱉어내고 몸을 돌려 떠나갔다.진도하는
진도하의 영적 기운이 섞인 외침은 천지를 진동시키는 것 같았다.은소혜와 다른 일행들, 그리고 고문파의 수련자들까지도 순간 멈칫하며 진도하를 바라보았다.진도하가 어깨에 메고 있는 고천혁을 보자 은소혜 일행은 놀라움과 기쁨이 섞인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진도하가 또다시 대부경 7단계의 수련자를 처치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진도하는 대부경 7단계가 아니었지만 그 이상의 실력을 보였다.반면 고문파의 수련자들은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당황스러워했다.“우리 문주님이 죽었어?”“어떻게 문주님이 저놈을 이기지 못할 수 있어?”고문파의 수련자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은 고천혁이 다른 수련자들과 겨루는 모습을 여러 번 봐왔고 고천혁이 대부경 7단계의 수련자 앞에서조차도 주눅 들지 않는 모습을 목격했었기 때문이다.상대가 아무리 강하더라도 고천혁이 옥판을 꺼내 들면 그 즉시 상대는 가루가 되어 사라지곤 했다. 그런데 이번엔 고천혁이 실패했다니.그들은 마음이 혼란과 두려움으로 가득 찼고 더 싸워야 할지 망설이기 시작했다.진도하는 고천혁의 시체를 땅에 던지고 고문파 수련자들을 향해 냉정하게 말했다.“고문파의 수련자들, 잘 들어라! 고천혁은 죽었어! 너희가 자진해서 단전을 끊는다면 목숨만은 살려줄게! 그렇지 않으면 너희를 맞이할 건 죽음뿐이니까 각오해!”진도하의 말이 떨어지자 고문파의 수련자들은 모두 침묵에 잠겼다.그들의 얼굴에는 망설임이 드러났다. 단전을 자진해서 끊어야 할지, 아니면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할지 갈등에 빠진 것이다.그때 누군가 외쳤다.“우리를 속이려 해도 소용없어! 단전을 끊으면 결국 죽을 운명 아니야?”진도하는 그 말을 한 이를 바라보았다.“음? 대부경 4단계군.”그 대부경 4단계의 남자는 고문파의 다른 수련자들을 향해 돌아서더니 외쳤다.“모두 속지 마요! 죽을 각오로 싸우면 어쩌면 살 수 있는 길이 있을지도 몰라요! 단전을 끊는다는 건 우리 목숨을 칼 위에 올려놓는 거나 다름없어요. 저놈들이 우리를 살려줄지 죽일지는
쿵.거대한 굉음이 울렸지만 이번에는 피가 튀지 않았다.고천혁은 순간 멍해졌다.그는 속으로 생각했다.‘설마 진도하 몸에 또 무슨 비장의 무기가 있단 말이야?’그는 재빨리 진도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그리고 그 순간 진도하가 크게 외쳤다.“아아아!”이 외침은 매우 고통스럽게 들렸고 천지를 뒤흔들 듯했다. 고천혁은 그 외침에 영혼마저 뽑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다음 순간 한 줄기 빛이 진도하의 어깨뼈에서 튀어나왔다.퍽.그 빛줄기는 바로 고천혁의 가슴 앞에 닿았다.크게 놀란 고천혁은 생각했다.‘이건 또 뭐야?’그는 서둘러 옥판을 조종해 방어하려 했다.그리고 그제야 공격해 온 것이 뼈 한 조각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곧바로 그 뼈 조각이 옥판과 충돌했다.쾅.두 물체가 부딪히며 엄청난 에너지가 폭발했다.끼익.옥판은 깨졌고 수많은 조각으로 부서져 주변으로 흩어졌다.“젠장!”고천혁은 차가운 숨을 내뱉었다.옥판을 소유한 이후 그는 거의 무적이었는데 귀일경 이하에서는 그와 맞설 자가 없었다.옥판 덕분에 그는 상고성과 다른 두 주성의 문파를 멸망시키고 3대 주성의 수장이 될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 그의 비장의 무기가 산산조각이 났다니?고천혁은 얼어붙은 채 믿기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의 어두운 눈빛 속에 갑작스럽게 빛이 스쳤다.‘뭐지?’뼈 조각은 옥판을 부순 후 고천혁을 향해 빠르게 날아오고 있었다.눈 깜짝할 사이였다.“오지 마!”고천혁의 얼굴은 공포로 일그러졌다. 그는 급히 몸을 뒤로 뺐지만 그의 속도는 뼈의 속도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쉭.뼈 조각은 고천혁의 호신 영기에 부딪혔다.쾅.고천혁의 호신 영기는 산산조각이 났다.“뭐야?”고천혁의 눈이 커졌다.뼈 조각은 여전히 속도를 줄이지 않고 고천혁의 가슴을 뚫고 지나갔다. 고천혁은 움직임을 멈췄고 얼굴에 당혹감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가슴에는 축구공만 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그는 그 자세를 유지한 채 3초간 서 있다가 결국 땅
고천혁은 말을 마치자마자 손에 들고 있던 옥판을 던졌다.옥판은 빠르게 회전하며 진도하와 고천혁 사이에 자리 잡았다.하지만 진도하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어차피 스승님이 준 비취색 목걸이가 있으니 이 목걸이는 귀일경의 전력을 막아낼 수 있었다.그러니 옥판의 힘도 충분히 막아낼 수 있다고 믿었다. 그것이 진도하가 가진 자신감이었다.진도하는 마음을 굳혔다. 만약 옥판의 공격을 막지 못한다면 바로 스승님이 준 비취색 목걸이를 꺼낼 생각이었다.하지만 그 순간 옥판에서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슝.옥판에서 수많은 빛줄기가 쏟아져 나왔고 곧이어 검기와 영기가 진도하를 완전히 뒤덮었다.진도하는 반응할 틈도 없이 공격을 당했다.따다다다.그 빛줄기들이 빗방울처럼 진도하의 몸을 강타했고 그의 몸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고천혁은 잔인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이건 네가 자초한 일이야!”옥판은 여전히 회전 중이었고 진도하의 호신 영기는 이미 산산조각이 났다. 그의 몸에는 상처가 끊임없이 늘어났다.진도하는 저항하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상처가 늘어날 뿐만 아니라 죽음의 기운이 그의 온몸을 감싸고 있었다.진도하는 자신의 수명이 빠르게 소진되고 있음을 느꼈다. 피가 다 흘러나가기도 전에 그의 수명은 모두 사라질 듯했다.“아아아!”진도하는 크게 소리치며 억지로 체내의 영기를 끌어모았다.다시 한번 호신 영기를 형성했지만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고민했다.그러나 죽음의 기운에 압도당해 비취색 목걸이조차 꺼낼 수 없었다.이것이 옥판의 무서움인가? 고천혁이 3대 주성의 수장이 될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던 건가?수많은 수련자들이 그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그 순간 호신 영기는 다시 산산조각이 났다.끝없이 쏟아지는 빛줄기들이 진도하를 향해 끊임없이 날아왔다.푹. 푹. 푹.진도하의 몸은 점점 더 많은 상처로 가득 찼고 그의 영기도 계속 소모되었다.결국 진도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