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천광은 김아린의 뺨을 꼬집었다.“나이 들어 보이는 게 아니라 성숙한 거지.”김아린의 외모나 분위기는 청순한 소녀의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녀는 성숙하고 분위기 있었다. 이목구비도 뚜렷해서 독특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그녀 같은 스타일은 연예계에서 성숙한 누나 스타일이거나 섹시한 스타일을 추구했다.추서희는 겨우 스물이라 나이가 어렸고 희고 어리며 몸이 마른 스타일이었다. 연예계에는 추서희 같은 스타일이 발에 챌 정도로 널렸다.김아린은 정말로 삐진 건지 고개를 홱 돌렸다.“성숙한 것도 나이 들어 보이는 거죠.”“난 그런 말 한 적 없는데?”구천광은 그녀를 품에 끌어안았다. 김아린은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 그녀의 얼굴에 놀라움이 엿보였다.“아니, 근데 왜 아까부터 말을 놓는 거예요?”구천광은 허스키한 목소리로 웃었다.“네가 좋으니까.”김아린은 다시금 넋을 놓았다. 순간 마음속에서 폭죽이 터지는 것만 같았다. “나도 당신이 좋아.”김아린은 고개를 들어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시선을 내려뜨린 구천광은 손바닥으로 그녀의 목덜미를 감싸면서 더욱 깊이 키스했다. 따스함에 둘러싸인 김아린은 추운 겨울을 잊었다.밖에서는 눈이 흩날리고 있었다. 눈꽃이 유리창 위로 내려앉았고 서리 때문에 화면이 흐릿해졌다.*크리스마스 당일, 사립 초등학교는 매우 떠들썩했다. 크리스마스를 위해 각 반들은 훈훈하게 꾸며졌고 학교 내부도 등불이 환히 켜져 있었다.크리스마스날, 학교는 외부에 개방되기에 학부모들도 교내에서 아이들과 선생님의 공연을 참관할 수 있었다.“아빠, 엄마, 저 오늘 예뻐요?”강유이는 붉은색과 흰색이 어우러진 스웨이드 스커트에 앵클부츠를 신고 있었다. 머리에는 산타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양 갈래까지 해서 무척 예쁘장했다.강유이는 두 사람의 앞에 서서 한 바퀴 빙 돌았고 강성연은 삐뚤어진 아이의 모자를 정돈해 주며 웃었다.“예뻐. 예뻐죽겠어.”반지훈은 강성연을 바라보며 말했다.“크니까 점점 더 너 닮아가는 거 같아.”
강유이의 시선은 줄곧 강해신에게 붙박여 있었다. 그래서 뒤에 선 두 사람의 행동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반지훈은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착하지, 장난치지 마.”“허락하지 않으면 계속 이럴 거예요.”강성연은 삐진 듯 손을 빼내며 등을 돌렸다.반지훈은 미간을 주무르더니 팔을 뻗어 그녀를 안았다.“저녁에 얘기하자.”강성연은 그의 품에 기대어 우쭐한 미소를 지었다.드디어 공연이 시작됐다. 강해신이 무대에 올랐는데 무대 아래 앉아있던 학부모와 다른 반 학생들은 강해신이 남자아이라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왕자역을 맡은 건 강해신 반의 다른 남자아이였다. 그리고 악역인 기사역은 여자아이가 맡았다.불빛이 무대에 집중되었고 멋진 연기 과정에 무대 아래 관중들은 전부 공연에 푹 빠져있었다.기사가 공주님을 잡아가면서 와이어에 매달린 두 아이가 천천히 하늘로 올라갔다.그런데 갑자기 조명이 꺼지고 장내가 소란스러워지면서 이내 여자아이의 비명이 들렸다.사람들은 휴대전화 라이트를 켰고 반지훈은 무언가를 보고 무대로 직진했다. 강성연은 안색이 달라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해신아!”현장 조명이 다시 밝았다. 통제실에서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갑작스러운 트립 사고로 인해 와이어 기계에 고장이 생겨 두 아이가 9m 상공에 매달리게 된 것이다.겁에 질린 여자아이는 울음을 터뜨리며 강해신을 꼭 안고 놔주지 않았다. 강해신은 허공에 매달려 있어 감히 꼼짝하지 못했다. 얼굴이 종잇장처럼 창백했다.반지훈은 곧바로 사람을 시켜 매트를 옮겼고 두 아이가 매달린 곳 바로 아래에 섰다.“해신아.”“아빠, 저...”강해신은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와이어가 조금씩 끊어지고 있었다.반지훈은 그걸 눈치챈 건지 안색이 삽시에 달라졌다.“해신아, 움직이지 마. 아빠를 믿어. 아빠는 너희에게 무슨 일이 생기게 놔두지 않을 거야. 절대 움직이면 안 돼.”강성연은 입을 틀어막았다. 심장이 당장이라도 목구멍에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녀는 부랴부랴 사람들과 함께 매트를 옮기
건물에서 나온 강유이는 벽 뒤에 숨어 고개를 빼꼼 내밀고 살금살금 떠나는 사람을 봤다.강유이는 화단으로 달려가 쪼그리고 앉았다. 그 사람은 학교 주차장에서 주차된 차 앞에 멈춰 섰다.고개를 내민 강유이는 차창이 열리며 안에 어떤 여자가 앉아있는 걸 보았다.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그런데 갑자기 등 뒤에서 손 하나가 나타나 강유이의 입을 틀어막았다. 강유이가 크게 소리를 지르려던 때 등 뒤에 있던 사람이 ‘쉿’ 소리를 냈다.“나야.”당황해서 고개를 돌린 강유이는 자신의 뒤에 서 있던 사람이 한태군임을 발견했다.“태군 오빠, 오빠... 아.”강유이의 입이 한태군의 손에 가로막혔다. 한태군은 검지를 입술에 가져다 댔다.“소리 내지 마.”강유이는 고개를 끄덕였다.한태군은 강유이를 놓아줬고 두 아이는 다시 고개를 내밀고 바라봤다.남자는 차 안의 여자에게 뭐라고 말했고 이내 조수석으로 걸어가 차에 올라탔다.차 안의 여자는 창밖을 바라보았고 한태군은 강유이의 머리를 눌러 고개를 숙이게 했다.한태군은 복잡한 표정으로 학교를 빠져나가는 차를 빤히 쳐다보았다.“태군 오빠.”강유이가 작은 목소리로 불렀으나 한태군은 대꾸하지 않았다. 한태군은 그들이 떠난 걸 확인하고 나서야 그제야 화단 밖으로 걸어 나왔다.강유이는 한태군의 뒤를 따르며 말했다.“태군 오빠, 저 사람들 해신 오빠 해치려는 거지?”그 수상쩍은 사람은 분명 강해신이 당한 사고와 연관이 있을 터였다.한태군은 잠깐 뜸을 들이다가 고개를 돌려 말했다.“아니야.”몇 초 뒤, 한태군은 표정을 굳히며 시선을 돌렸다.“그들은 날 해치려는 거야.”강유이는 놀란 표정이었다. 강유이는 한태군의 앞에 서서 말했다.“왜 오빠를 해치려고 하는 거야? 오빠 저 사람들한테 뭐 잘못한 거 있어?”한태군은 강유이를 바라보았다. 사실은 말하고 싶지 않았지만 강유이의 진지한 표정을 본 한태군은 한숨을 쉬며 손을 뻗어 강유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한태군은 몸을 돌렸다.“네 오빠 보러 돌아가자.”강유이는 입
희승은 멍해졌다.“꼬마 아가씨, 뭐라고 하셨어요?”“수상쩍은 아저씨가 뛰어나가는 걸 봐서 따라가 봤어요. 그 사람들은 차 타고 떠났어요.”강유이의 말에 반지훈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는 한참 뒤에야 엄숙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강유이, 누가 너한테 그러라고 했어?”강유이는 당황했다. 반지훈이 이렇게 큰 소리로 따져 물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강유이는 이를 악물고 미간을 구겼다.“해신 오빠를 해치려는 사람을 그냥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어요. 비록... 비록 그 사람이 해치려던 사람이 해신 오빠가 아니었지만 말이에요.”말을 마친 뒤 강유이는 차마 고개를 들어 반지훈을 쳐다보지 못했다. 아이는 반지훈이 화가 났다는 걸 알고 있었다.반지훈은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교장과 교감에게 먼저 나가보라고 했다. 그들이 떠난 뒤 휴게실에는 몇 명 남지 않았다.강유이는 여전히 고개를 푹 숙인 채 그 자리에 서서 입을 비죽이고 있었다.반지훈은 콧대를 주무르며 말했다.“강유이, 앞으로 이런 일 있으면 아빠한테 얘기해. 너처럼 어린아이들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안 돼. 알겠어?”“네, 알겠어요.”강유이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희승은 반지훈을 바라봤다.“대표님, 꼬마 아가씨 말씀은 그 사람들이 해치려던 게 해신 도련님이 아니라는 거네요?”반지훈은 눈살을 찌푸렸다.강유이는 고개를 들어 희승을 보았다.“그 사람들은 원래 태군 오빠를 해칠 생각이었대요. 그런데 해신 오빠가 태군 오빠 대신 배역을 맡게 됐잖아요.”희승은 의아했다.반지훈의 시선이 강유이를 지나쳐 문밖에 서 있는 한태군에게로 향했다.반지훈이 희승에게 말했다.“유이 데리고 나가 있어.”희승은 강유이의 손을 잡고 아이를 데리고 나갔다. 한태군이 안으로 들어오자 강유이는 고개를 돌려 보았다.밖으로 나갈 때, 강유이는 손을 꺼내며 말했다.“희승 삼촌, 아빠가 태군 오빠를 욕하진 않을까요?”희승은 싱긋 웃었다.“걱정하지 마세요. 그러지 않을 거예요.”“전 안 믿어요. 아빠
몸을 돌린 한태군은 강유이와 시선이 마주치자 억지로 웃어 보였다.강유이는 이를 악물더니 고개를 홱 돌리고 뛰쳐나갔다.강해신의 일 때문에 반지훈은 한재욱에게 한태군을 데려가라고 통보했다. 한재욱은 어떤 상황인지 알고 나서는 잠깐 침묵한 뒤 사람을 시켜 한태군을 데려갔다.그렇게 며칠 동안 한태군과 강해신은 등교하지 않았다.강유이는 텅 빈 두 책걸상을 바라보며 들고 있던 펜을 손에 꼭 쥐었다.반씨 저택.강성연은 서재를 지나칠 때 문이 열린 작은 틈을 통해 반지훈이 창가에 서서 뭔가를 바라보고 있는 걸 보았다.강성연은 팔짱을 두른 채로 문 옆에 기대어 섰다.“태군이를 돌려보낸 거, 태군이가 해신이를 해쳤다고 생각해서예요?”반지훈은 흠칫했다. 그는 천천히 몸을 돌려 강성연을 바라보았다. 그는 한참 뒤에야 입을 뗐다.“걔는 신분이 복잡한 아이야. 유이랑 해신이랑 가까이 지내는 건 적합하지 않아.”강성연은 시선을 내려뜨렸다.“당신 나한테 숨기는 거 있죠.”반지훈은 미간을 좁혔다.강성연은 그의 앞에 섰다.“그 아이의 일 나한테 얘기하지 않았잖아요. 유이는 왜 그 사람들이 원래 태군이를 해치려고 했다고 한 거예요?”한재욱이 한태군을 당분간 그들의 집에서 지내게 한 건, 반지훈이 한태군을 보호해 주길 바라서였다는 건 알고 있었다.하지만 크리스마스 날 강성연은 매우 놀랐다.반지훈은 책상 모서리를 돌아 부드러운 의자로 걸어가 앉았다.“한씨 집안 상속자를 없애려는 사람은 한재욱의 생모야.”강성연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왜죠?”반지훈이 입을 뗐다. 그는 한재욱의 어머니는 한재욱 아버지의 두 번째 아내이고, 한재욱은 그의 형인 한수철과 이복형제라고 했다.한재욱은 한재욱 아버지의 늦둥이였고 한재욱은 한수철의 아들 한희운보다 고작 8살 많았다.한재욱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한씨 집안은 한수철이 장악했다. 하지만 한수철이 2년 전 갑자기 병으로 쓰러지게 되면서 한재욱의 어머니가 한씨 집안을 이어받았다.한재욱의 어머니는 한수철과 한희운 부자를 밀어
만약 한태군이 뭔가 목적을 품고 강해신을 구한 거라면, 심지어 강해신을 구한 뒤 앞으로 빚을 졌다는 이유로 강해신이 본인 대신 사고를 당하게 했다면 확실히 무서운 아이였다.그러한 심성과 세밀하게 판을 짜는 섬세함은 절대 8살짜리 아이가 갖출 수 있는 게 아니었다.그러므로 강성연은 한태군이 다른 의도를 품고 강해신을 구한 것이 아니라고 믿었다. 아무도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으니 말이다.그게 아이라면 더더욱 불가능했다.반지훈은 책상 모서리를 돌아 강성연의 앞에 섰다. 그의 손바닥이 강성연의 뺨을 감쌌다.“그 아이가 위험에 처하는 걸 네가 원하지 않는 건 알아. 하지만 나도 어쩔 수 없어. 우리한테는 세 아이가 있잖아. 난 우리 아이들이 위험한 걸 원하지 않아.”강성연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도통 알 수 없었다.반지훈이 TG그룹으로 돌아가서 사무실에 앉자마자 희승이 노크하고 들어왔다.그는 다시 조사한 자료를 그에게 건넸다.“대표님, 이건 크리스마스 날 학교에서 찍힌 수상한 차입니다.”반지훈은 자료를 건네받은 뒤 눈살을 찌푸렸다.“다른 지역 번호판이네.”희승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다른 지역 번호판입니다. 사람 시켜서 차주 신분 조사하라고 했습니다. 아마 하루 안에 결과가 나올 것 같습니다.”진성, 병원.김아린은 도시락을 들고 엘리베이터에서 나왔고 때마침 추서희, 그리고 그녀의 매니저와 마주쳤다.추서희는 김아린을 향해 인사했다.“언니, 구천광 선배님 보러 오신 거예요?”김아린은 대꾸하고 싶지 않았으나 예의를 갖추기 위해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네.”추서희는 적극적으로 그녀의 팔에 팔짱을 꼈다.“저도 선배님 보러 온 거예요. 같이 가요.”김아린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그녀는 낯선 사람이 친근하게 구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김아린은 팔을 빼내며 웃었다.“그러면 같이 가요.”김아린이 먼저 앞장섰다. 추서희는 입술을 깨물다가 그녀의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은 함께 병실
그건 남동생이 누나에게 보여주는 미소가 아니었다. 오히려 커플 같아 보였다. 혹시 김아린이 구천광의 누나가 아닌 걸까?내가 잘못 안 걸까?그들이 떠난 뒤 김아린은 팔짱을 두르며 침대 옆에 앉았다.“당신도 거절할 줄 아네.”구천광은 그녀가 사 온 도시락을 먹으며 웃음을 터뜨렸다.“당신이 질투가 이렇게 심한데 내가 거절하지 않을 수 있겠어?”김아린이 거리를 좁혔다.“추서희 씨는 당신을 꽤 좋아하는 것 같던데. 몸으로라도 은혜를 갚을 생각인가 봐.”구천광은 눈을 가늘게 뜨면서 그녀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잠시 뒤, 구천광은 웃었다.“네가 이미 몸으로 은혜를 갚았잖아.”김아린은 당황하면서 시선을 피했다.“화제를 정말 잘 돌리네.”구천광의 웃음기가 짙어졌다. 그는 도시락을 탁자 위에 놓은 뒤 팔을 뻗어 그녀를 안았다.“지금 내겐 당신이 있잖아.”김아린은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만약 3년 전 내가 당신한테 구애했다면 날 좋아했을까?”구천광은 눈을 가늘게 떴다.“음, 네가 3년 전에 날 좋아했을까?”김아린은 잠깐 고민했다.“아니.”김아린은 웃으면서 말을 보탰다.“3년 전이었다면 당신은 내 스타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거야.”구천광은 김아린을 보았다.“왜?”김아린은 진지하게 대답했다.“당신은 너무 높은 곳에 있고 난 구렁텅이 안에 있었으니까. 우리 사이에 그렇게 많은 교집합이 없었을 거야.”당시 김아린이 구천광에게 접근한 건 구씨 집안 장손이라는 그의 신분이 필요해서였다. 그녀는 목적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구천광을 좋아할 거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구천광은 그녀의 뺨을 어루만지며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우린 운명인가 봐.”3년 전 만난 적 있었지만 서로 교집합이 없을 거로 생각했다. 그러나 3년 뒤 그들은 많은 일을 겪었다.어쩌면 피할 수 없는 운명일지도 몰랐다.김아린은 시선을 들어 그를 보았다. 두 사람의 입술이 서서히 가까워졌다. 그런데 바로 그때 라민희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아들...”무언가를 본
강성연은 웃었다.연희정은 감개하며 말했다.“두 사람 3년 전에 약혼해서 최대한 빨리 결혼시킬 생각이었어. 그런데 육예찬 그놈이 아영에게 마음이 없을까 걱정돼서 못 했어. 이제 두 사람 3년 동안 감정도 키웠을 텐데 이제는 결혼도 고려해야지.”연희정은 강성연을 보며 말했다.“걔들이랑 같이할 생각이면 내년에 해. 두 커플이 같이 결혼식을 하면 굉장히 떠들썩할 거야.”강성연은 웃었다.“어쩌면 세 커플일지도 몰라요.”연희정은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라민희에게서 전화가 와서 전화를 받았다.“민희야?”라민희가 무슨 얘기를 한 건지 연희정은 흠칫하며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사실이야?”두 사람은 1분 정도 통화했고 연희정은 전화를 끊고 말했다.“구씨 집안에도 좋은 일이 생기려나 보네. 구천광 걔가 여자친구가 생겼대.”강성연은 찻잔을 들었다.“상대는 김아린 씨겠죠.”“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연희정은 의아했다.강성연은 미소를 지었다.“저랑 아영이는 일찌감치 알고 있었어요.”“어쩐지.”연희정은 호탕하게 웃었다.“네가 조금 전에 세 커플이라고 한 게 이것 때문이었구나. 정말 떠들썩하겠네. 세 커플의 결혼 축하주를 한자리에서 마시겠네.”강성연은 연희정과 식사를 마친 뒤 레스토랑에서 나왔다. 강성연은 연희정과 인사를 나눈 뒤 그녀의 차가 떠나는 모습을 배웅했다.강성연은 자신의 차로 걸어갔다. 고개를 돌리니 다른 지역 번호판의 차가 멀지 않은 곳에 멈춰 서 있었다. 다른 지역의 번호판은 서울에서 보기 드문 것이라 몇 번이나 쳐다봤다.차 안에서 여자 한 명이 내렸다. 그 여자는 파티에서 본 적 있는 사람이었는데 한재욱의 파트너였던 나유였다.나유는 강성연을 알아본 건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강성연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우연이네요.”강성연은 미소로 화답했다.“그러게요. 우연이네요. 나유 씨는 식사하러 레스토랑에 오신 건가요?”“네.”나유는 웃으며 말했다.“재욱 씨가 이 레스토랑 음식이 맛있다고 해서 맛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