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병이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부서졌고 건장한 남성은 그 자리에서 쓰러지면서 피가 줄줄 흐르는 머리를 부여잡았다.다른 이들은 그녀의 무자비함에 깜짝 놀라 감히 무턱대고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주경우는 욕을 내뱉으며 소리를 질렀다.“쓸모없는 놈들, 여자 하나 처리하지 못해? 당장 덤벼!”먼저 기선을 제압한 강성연은 2, 3명을 거뜬히 해치웠지만 아직도 7, 8명이 남았다.강성연은 힐을 신고 있었고 이내 힘도 빠졌다. 바닥에는 유리 조각이 가득했다.한 남자가 덤벼들어 그녀를 소파 위로 쓰러뜨리자, 강성연은 무릎을 굽혀 그를 공격했고 남자는 아픈 듯 몸을 웅크리면서 넘어졌다.다른 두 명이 그녀를 제압해 소파 위에 눕히자 주경우가 명령을 내렸다.“가면 벗겨.”수연은 팔짱을 두른 채로 그들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그들의 손이 가면에 닿는 순간, 문밖에 있던 자들이 주경우의 발치로 쓰러졌고 두 남자는 움직임을 멈췄다.룸 안으로 쳐들어온 경호원들은 전문적인 훈련을 거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이내 주경우의 부하들을 전부 쓰러뜨렸다.수연은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더니 테이블 밑으로 숨어 덜덜 떨면서 귀를 막았다.당황한 주경우는 험악한 표정으로 말했다.“당신들 누구야? 내가 누군지 알기는 해?”검은 옷을 입은 경호원들이 길을 내주자 뒤에서 중년 남성 한 명이 걸어 나왔다. 그는 다름 아닌 구세준이었다.주경우의 안색이 순식간에 잿빛이 되었다. 그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구... 구세준 씨?”수연은 얼굴이 창백하게 질리면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구 씨 가문의 가주가 오다니?구 씨 집안사람이 오다니!강성연은 소파에서 몸을 일으켜 앉은 뒤 떨어지려는 가면을 붙잡았다. 강성연 또한 놀랐다. 구세준이라면 구천광의 아버지가 아닌가?구세준은 뒷짐을 진 채로 주경우의 앞에 섰다. 그는 싱긋 미소 지으며 말했다.“주 사장님 이름을 제가 어떻게 모를 수가 있겠습니까?”주경우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지만 대놓고 뭐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는 불쾌한 표정으로
주경우가 공손하게 말했다.“이해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주경우는 뒤이어 상처를 입은 두 남성에게 말했다.“지금 당장 이 얌전치 못한 여자를 골드 룸살롱 사장에게 넘겨서 혼쭐내.”“주 사장님, 다시는 안 그럴게요. 진짜 안 그럴게요!”수연은 바닥에서 일으켜 세워져서 끌려나갔고 주경우는 다급히 사람들을 데리고 떠났다.반지훈과 희승이 이내 문밖에 모습을 드러냈다. 엉망진창이 된 룸과 겁을 먹은 강성연을 본 순간 반지훈의 미간이 좁혀졌다.반지훈은 강성연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는 팔에 힘을 주며 고개를 돌려 구세준을 바라봤다.“고맙습니다, 아저씨.”구세준은 손을 내저었다.“고맙긴. 나랑 한 약속 잊지 마.”반지훈은 강성연을 끌어안고 골드 룸살롱에서 나왔다. 서늘한 밤바람에 반지훈은 겉옷을 벗어 강성연에게 걸쳐추고는 희승에게 차를 가져오라고 분부했다.강성연은 반지훈의 품에 기댄 채로 그의 옷깃을 꽉 잡았다.“반지훈 씨...”반지훈은 팔에 힘을 주며 그녀를 더욱 힘껏 끌어안았다. 그는 고개 숙여 강성연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미안, 너 혼자 룸에 남기는 게 아니었는데. 내가 소홀했어.”강성연은 고개를 저은 뒤 그의 따뜻한 품에 뺨을 붙였다.“난 괜찮아요. 그들은 날 다치게 하지 않았어요. 우리가 잘못 생각했어요. 김아린 씨는 일주일 뒤 아버지가 은퇴한다는 걸 이제 막 알게 됐어요. 주경우는 그 틈을 파고들 생각이었던 거예요.”반지훈은 강성연의 복슬복슬한 정수리에 턱을 올려놓았다. 바람에 머리카락이 휘날리며 그의 팔에 살짝 감겼다.“아까 구세준 씨 만나러 갔던 거예요?”반지훈은 덤덤히 그렇다고 했다.강성연은 고개를 들어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구세준 씨랑 어떤 약속을 한 거예요?”반지훈은 신분을 밝히는 게 불편했기에 구세준에게 도와달라고 했을 거다. 구세준은 윗줄 사람이었고 주경우는 윗줄에 있는 사람들과 관련이 있었기에 구세준의 신분으로 그를 제압할 수 있었다.구세준이 나서줬기에 주경우는 아마 다시는 그들을 건
강성연은 줄곧 그 일을 신경 쓰고 있었고 오늘 밤 구세준을 보자 문득 그 일이 떠올랐다.반지훈은 손바닥으로 강성연의 얼굴을 받쳐 들며 나지막하게 웃었다.“나 궁금하라고 일부러 그러는 거야?”“아니에요...”강성연은 그의 손목을 잡았다.“구천광 씨 어머니가 한 남자랑 만나고 있었어요. 남여진 씨가 그 남자를 알고 있더라고요. 이름이 한재욱이라고 하던데요. 참.”강성연은 무언가 떠올랐는지 말을 이어갔다.“남여진 씨가 말하길 그 사람 동임 회사랑 해외 프로젝트 협력하러 국내로 온 거래요.”동임 회사는 안지성의 회사였다.반지훈은 갑자기 강성연을 침대 위에 내려놓은 뒤 몸을 일으켰다. 그는 천천히 셔츠 단추를 풀었다.“한재욱이라고.”강성연은 침대에 누웠다.“네. 그렇게 들었어요.”반지훈은 와이셔츠를 벗고 건장한 몸을 그대로 드러냈다. 벨트도 풀어서 허리춤이 널널했다.그는 갑자기 강성연을 안아 들었고 강성연은 당황했다.“뭐 하는 거예요?”그는 강성연을 안아 들고 욕실로 향했다.“씻으려고.”강성연은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얄미운 듯 그를 때렸다.“나 진지한 얘기 하고 있잖아요.”반지훈은 웃음을 터뜨렸다.“샤워하면서 하면 되지.”밤이 깊어졌고 투명 커튼이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렸다. 방 안의 노란 조명이 바닥에 드리워져 유난히 고즈넉했다.반지훈의 품에 안긴 채로 얼굴을 붉힌 그녀의 모습은 아주 아름다웠다.반지훈이 강성연의 뺨에 붙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자 아름다운 얼굴이 그대로 드러났다.“너한테 우리 어머니에 관해서 한 번도 얘기한 적 없는 것 같네.”강성연은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반지훈은 강성연에게 어머니에 관한 일을 얘기한 적 없었다. 강성연이 아는 것이라고는 3년 전 희영의 입에서 들은 것이 전부였다.강성연은 눈동자를 굴렸다.“예전에 희영 씨가 얘기해줘서 들은 적 있어요. 당신 어머니가 당신 아버지랑 결혼하기 전에 구 씨 집안 가주의 여자친구였다는 거.”“응. 맞아.”반지훈은 강성연의 뺨을 어루만지
강성연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어쩐지 대극장에서 구천광의 어머니는 강성연이 반지훈의 아내란 걸 안 순간 갑자기 태도가 냉랭해지더라니.강성연은 그녀의 남편이 사랑하는 여자 아들의 아내이고 그녀의 남편은 아직도 한미영을 잊지 못했으니 그 어떤 여자가 자기 남편이 평생 다른 여자를 그리워하는 걸 참을 수 있을까?하지만 구천광의 어머니와 한재욱은 또 어떻게 된 일일까?한재욱...한재욱...강성연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당신 어머니 이름이 한미영인데 그러면 한재욱은...”반지훈의 시선이 강성연의 얼굴에 멈췄다.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y국에는 큰 가문이 두 개 있어. 하나는 한 씨 집안이고 다른 하나는 여 씨 집안이야. 한 씨 집안의 장손 한희운은 11년 전 y국 황실 공주와 결혼했어. 그 때문에 한 씨 집안은 지금 y국 황실 친척이 되었지.”반지훈의 표정이 조금 굳어졌다.“우리 어머니는 한 씨 집안에서 입양한 딸이라 한희운의 고모라고 할 수 있어. 그리고 한재욱은 우리 어머니의 오빠라고 할 수 있지.”강성연은 무척 놀랐다.반지훈의 그윽한 눈동자에는 그 어떤 파문도 일지 않았다.“우리 어머니는 한 씨 집안에서 잘 지내지 못했어. 그래서 z국으로 도망친 거야.”반지훈은 강성연을 품에 안고 그녀의 눈꼬리에 입을 맞췄다.“사실 구천광의 어머니가 한재욱과 함께 있는 걸 봤다고 했을 때 놀랍지 않았어. 구천광의 아버지도 알고 있는 일이거든.”“구천광 씨 아버지도 알고 있다고요?”강성연은 그의 품에서 넋을 놓았다.반지훈은 소리 없이 웃었다.“구천광의 어머니는 한재욱과 만난 지 오래됐어. 구천광의 아버지는 그저 모르는 척한 거야. 사랑하지도 않는 여자랑 결혼해서 오랫동안 냉대했으니 부인이 외도했다고 비난할 수 없었던 거겠지.”강성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러고 보면 구천광의 어머니와 구세준의 결혼은 아주 안타까웠다. 사람들 앞에서는 수십 년 동안 서로 사랑하는 척해야 했지만 결국에는 익숙하지만 낯선 사람이었다.하지만 그날 강성연은
“알려줘요.”강성연이 반지훈의 팔을 흔들었고 반지훈은 웃었다.“10월 23일.”강성연은 눈을 깜빡였다.“다음 달이네요?”강성연은 중얼거리며 말했다.“우리 아직 같이 겨울 보낸 적은 없으니까 겨울 되면 진성에 눈 보러 가요. 진성은 10월 말이면 눈이 내려요. 그쪽에 천연 스키장이 있는데 겨울이 되면 사람이 엄청 많아요. 우리 해신이랑 유이도 데리고...”말을 끝내기도 전에 반지훈이 소리 없이 다가가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돌려 입술에 입을 맞췄다.한참 뒤에야 반지훈은 미련 가득한 표정으로 강성연을 놓아줬다. 그는 손가락으로 강성연의 입술을 문질렀다.“예전에 함께 하지 못했던 겨울, 평생 같이 보내자.”강성연은 세 번의 겨울 모두 m국 산페이아스 성에서 보냈다. 겨울이면 새하얗게 눈이 뒤덮이는 그곳에서 반지훈 없이 1095일의 기나긴 밤을 보냈다.반지훈도 마찬가지였다.강성연은 그의 품을 파고들면서 그의 목에 팔을 감았다.“반지훈 씨, 나 유혹하는 거예요?”반지훈은 당황했고 이내 웃음기가 점점 더 짙어졌다.“내가?”강성연은 그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어떡해요. 나 갑자기 아침 먹기 싫어졌어요. 내가 먹고 싶은 건...”“그러면 성연이 입맛에 맞춰줘야지.”반지훈은 강성연을 안아 들었다. 우아하고 고고하던 천사가 타락하는 듯한 모습이었다.*밤새 괴롭힘당한 수연은 골드 룸살롱 근처의 작은 골목길에 버려졌다. 옷으로 몸을 가리지도 못하고 머리는 잔뜩 흐트러진 데다가 얼굴이 멍으로 얼룩덜룩했다.청소부 아주머니는 쓰레기통 옆에 수연이 쓰러져 있자 혼비백산하며 소리를 질렀다.수연은 마음씨 좋은 아주머니 덕분에 병원으로 실려 갔다. 비를 맞은 탓에 몸이 덜덜 떨렸고 의식 또한 흐릿했다.다시 깨어났을 때 수연은 김아린이 팔짱을 두르고 무표정한 얼굴로 벽에 기대어 서 있는 모습을 보았다.수연은 고통을 참으려고 이를 악물었다.“날 비웃으러 온 거야?”“비웃는다고?”김아린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창밖을 바라봤다.“비웃고 싶긴 해. 그런
주경우 부인의 집안은 부유했고 그들은 중매를 통해 결혼한 사이였다. 주경우처럼 악랄한 사람은 부인에게 화풀이를 하지 못하면 애인이 그 화를 감당해야 했다.김아린은 커피를 한모금 마셨다. 그녀의 얼굴에서는 그 어떤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강성연은 김아린을 보았다.“후회해요?”김아린은 잠깐 뜸을 들이가가 고개를 숙여 컵 안에 담긴 진한 커피를 바라보았다.“후회가 아니에요. 그냥 불쌍한 것 같아서요.”“저도 예전에 두 사람을 불쌍하게 여긴 적이 있어요.”강성연은 테이블 위 펜을 돌렸다.“난 가끔 그런 생각을 해요. 만약 그 사람들이 본인들의 끝을 예상했다면 후회했을까요?”김아린은 웃었다.“당신이 말한 그 두 사람, 설마 반지훈 씨를 좋아했던 그 두 여자예요?”강성연은 부주의로 펜을 떨굴뻔했지만 잽싸게 움직인 덕에 바닥에 떨어뜨리지는 않았다.“맞아요.”강성연은 머쓱했다.김아린은 다리를 꼬고 앉아 우아하게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반 대표님이 매력 넘치시긴 하죠. 그래서 여자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잖아요. 부인인 당신이 있는데도 말이에요.”강성연은 미간을 주물렀다. 예전에 강성연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반지훈은 여자들이 너무 꼬인다는 점만 제외하면 다 좋았다. 만약 강성연이 먼저 그를 손에 넣지 않았다면 아마 수많은 여자들이 그에게 홀렸을 거다.강성연은 갑자기 화제를 돌렸다.“참, 아린 씨 아버지랑 구세준 씨 사이가 좋으신가요?”김아린은 고개를 저었다.“사이가 엄청 좋다고 할 수는 없어요. 그저 예전에 같이 일한 적 있는 동료일 뿐이죠.”강성연은 문득 깨달았다. 그날 밤 구세준이 주경우에게 한 말은 아마 핑계일 것이다.구세준은 김 씨 집안이 아니라 반지훈의 체면을 봐줬을 거다.김아린의 휴대폰에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 무슨 내용인지 김아린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김아린은 휴대폰을 보더니 집에 급한 일이 있다면서 soul 주얼리를 떠났다.강성연은 그녀의 다급한 안색을 보고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아마 큰 일이 있
직원이 반지훈을 데리고 정원으로 향했다. 테라스에 있는 카페에 한 남자가 앉아있었다.계단을 오르는 발걸음 소리에 남자는 그제야 고개를 돌려 반지훈을 보았다.“반 대표가 날 만나러 오다니, 내 영광이네.”“안지성 아저씨가 제 연락처를 당신에게 줬나 보네요.”반지훈은 의자를 당겨 느긋하게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한재욱이 직원을 불렀다.“뭐 마실래?”반지훈은 덤덤히 말했다.“아무거나요.”한재욱은 직원에게 말했다.“블루마운틴 하나 더 주세요.”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안지성 씨가 네 연락처를 준 건 맞아. 어쨌든 난 네 외삼촌이니까.”“외삼촌이요?”반지훈은 눈을 치켜뜨며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우리 반 씨 집안은 당신을 친척이라고 인정한 적 없는데요.”한재욱은 웃었다.“아직도 네 어머니 일로 우리를 탓하는구나. 사실 우리 한 씨 집안은 너희 어머니에게 꽤 잘해줬어. 네 어머니가 우리랑 같은 핏줄은 아니었지만 말이야.”“꽤 잘해줬다고요?”반지훈은 냉소를 흘렸다.“한 씨 집안은 딸이 없어 결혼으로 집안에 이득을 가져올 수 없었기에 고아를 입양한 거죠. 당신들은 한 씨 집안의 지위를 공고히 하기 위해 우리 어머니가 자신을 희생하기를 바랐잖아요.”한재욱의 흐려진 안색을 보고 반지훈은 피식 웃었다.“당신들이 필요했던 건 딸이 아니라 이득을 얻는 데 쓰일 도구 아니었나요?”한미영은 용모가 출중했고 연예계에서도 보기 드물 정도로 무척 아름다웠다. 한 씨 집안은 y국에서 그녀의 출중한 외모를 이용해 그녀를 상류층에 보내려고 했다. 그녀의 매력에 심취한 남자들은 이성을 잃고 그녀에게 엄청난 재물공세를 했다.그것으로 인해 가장 큰 이득을 본 것은 한 씨 집안이었다. 그들은 한미영을 딸로 여기는 게 아니라 상류층 사교계의 꽃으로 여겼다.한재욱은 웃음기를 서서히 거두어들였다.“한 씨 집안 때문에 걔가 손해 본 적은 없어.”“그렇긴 해요.”반지훈은 직원이 건네준 커피잔을 들며 덤덤한 어조로 대꾸했다.“정말 남자랑 잠자리라도 한다면 가치가
반지훈은 걸음을 멈추고 냉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한재욱은 커피잔을 들고 말했다.“우연이네. 내 조카손자도 그 학교 다니는데.”*입원한 수연은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고 맞아서 부은 얼굴은 엉망진창이었다. 수연은 거울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한성연은 문밖에 서서 노크했고 수연이 그녀를 보았다.“당신이 여긴 왜 왔어요?”그녀와 한성연은 빈말로도 사이가 좋다고 할 수 없었다. 한성연과 친하게 지내려는 생각도 없었다. 그저 그날 밤 김아린이 반지훈의 부인과 같은 편이라는 비밀을 알려준 게 다였다.“당연히 병문안하러 왔죠.”한성연은 침대 옆에 서서 그녀를 훑어봤다.“주 사장님 정말 사정없으시네요.”수연은 몸을 살짝 떨더니 경악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당신...”한성연이 어떻게 그녀와 주 사장 사이의 일을 아는 걸까?한성연은 그녀의 놀란 표정이 전혀 의외가 아니라는 듯 말했다.“수연 씨는 뒷배가 없으니 그 바닥에서 구르려면 어렵죠.”한성연은 아주 자랑스러운 듯 말했다.“난 한 씨 집안 딸이니 당신과 주 사장의 일을 아는 건 어렵지 않아요.”수연의 안색이 어두워졌다.“뭐예요? 나한테 당신 집안이 대단하다고 자랑하는 거예요?”“당연히 아니죠. 난 수연 씨랑 협력하고 싶어요.”“협력이요?”수연은 의아한 표정이었다.한성연은 창가 옆으로 다가갔다.“수연 씨가 김 씨 집안을 쓰러뜨리고 싶어 하는 거 알아요. 그래서 좋은 소식을 가져왔어요.”수연은 당황했다.“무슨 좋은 소식이요?”한성연은 미소 지었다.“수연 씨에게 아주 좋은 소식이죠. 김아린 씨 삼촌이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서 돌아가셨대요. 김 씨 집안에서 여론 통제하고 있어서 다들 몰라요.”수연은 충격을 받았는지 멍한 얼굴로 앉아있었다.“뭐... 뭐라고요?”수연은 그것이 진짜라는 걸 믿기 어려웠다.침대 옆으로 다가간 한성연은 허리를 살짝 숙여 그녀를 보았다.“이건 주 사장님 쪽 사람 통해서 알게 된 거예요. 그래서 진짜라고 확신할 수 있어요.”수연은 이불을 꽉 쥐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