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안예지가 누군가에 의해 계단에서 밀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기에 충분했다. 성연은 어쩔 줄을 몰라하며 지훈의 이마에 가볍게 뽀뽀하고 눈가를 쓰다듬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정도 증거라면 충분히 입증할 수 있어요”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근데 안 선생님도 아세요?” 지훈은 눈을 가늘게 떴다. “내가 찾아뵙고 말해 볼게”“여보, 고마워요” 성연은 그의 허리를 껴안고 그녀의 뺨을 그의 단단하고 따뜻한 가슴에 비볐다. 지훈은 입술을 그녀의 귓가에 대고 웃으며 낮게 말했다. "정말 고마우면 이따 저녁에 성의를 보여줘" 어둠이 온 도시를 뒤덮었다. 짙은 밤의 어둠이 네온 조명과 교차되며 물들었다. 명승희는 바에 홀로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오늘 아영의 일이 알려지면서 그녀는 성연을 '협박'할 만한 것이 사라졌다. 어쨌든 그녀도 직접 보고 깨달았다. 어떠한 말과 협박도 성연에게는 통하지 않을 것이다. 송아영의 이 일조차도, 그녀가 직접 손을 쓰지 않더라도 반지훈이 손을 쓸 것이고, 심지어 육예찬도 그녀를 도울 것이다. 만약 그녀가 폭로했다면, 그녀는 지금쯤 끔찍한 미래에서 살고 있겠지? 하지만 좋아하는 남자의 관심을 얻지 못했는데, 그녀가 어찌 달가워할 수 있겠는가? 그녀는 이마를 짚고 테이블 위에 기대어 또 몇 잔의 술을 연거푸 들이켰다. 바 앞으로 다가온 한성연은 핸드백을 내려놓고 앉으며 눈쌀을 찌푸렸다. “아가씨가 원하는 걸 얻지 못한 것 같네요” 명승희는 술잔을 들고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당신이랑 강성연의 싸움에서, 이긴 적 있어요?” 그 한마디는 한성연의 분노를 들끓게 했다. 그녀는 이긴 것은 고사하고 반지훈에게 손을 댔다는 이유로 그녀의 집을 패가망신하게 했다. 그녀가 대답하지 않자 명승희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당신도 할 수 없는 일에 나를 끌어들이려 하지 마요” 그녀는 술잔을 내려놓은 후, 돈을 바에 놓고 계산하겠다고 말한 뒤 취한 채 술집을 나섰다. 한성연은 화가 나서 이를 갈았다. 하나
그녀는 멈칫하다가 눈을 내리깔고 담담하게 말했다.“고마워요.”한성연은 침대 곁으로 걸어갔다.“전 그중 한 사람을 잡았어요. 강성연이 그렇게 악독할 줄은 몰랐어요, 사람을 고용해 당신을 강간하려고 하다니.”명승희는 멍해졌고 김진수는 안절부절못했다.“아가씨, 무슨 뜻이에요? 반지훈 대표의 사모님이 사람을 보냈다는 거예요?”한성연은 원래 명승희를 강간한 후 강성연에게 덤터기를 씌울 생각이었다. 명승희가 강성연을 미워하게 되면 그녀와 손을 잡게 될 거다.하지만 명승희는 운이 좋아 못된 일을 당하지 않았고, 한성연은 이 일을 강성연이 한 짓이라고 거짓말을 했다.“믿지 않으면 제가 그 사람을 데려올게요, 당신들이 직접 심문해요.”그녀는 명승희의 표정을 자세히 관찰했다.“제가 명승희 아가씨에게 경고했었잖아요, 강성연은 교활한 여자라고. 그녀는 자신의 미움을 산 사람을 절대 내버려 두지 않아요.”명승희는 다시 한번 침묵했다.*다음날.강성연은 육 씨 가문에 가서 반지훈이 준 “증거”를 육예찬에게 건네주었다. 육예찬은 안예지의 차트를 보면서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어디에서 찾은 거예요?”강성연은 가볍게 웃었다.“당연히 반지훈이 찾은 거지요. 오빠가 아영이에게 감사 인사를 받을 기회를 줄게요.”육예찬은 자료를 보면서 웃었다.육예찬은 강성연과 육 씨 저택에서 나와 배웅해 주려고 했다. 갑자기 길가에 있던 마스크를 쓴 남자가 유리병을 꺼내더니 안에 든 액체를 강성연에게 뿌리려고 했다.“조심해요!”육예찬은 깜짝 놀라면서 무의식적으로 그녀를 보호했다. 지윤은 재빨리 외투로 유리병을 감쌌고 남자를 걷어찼다.지윤의 외투가 부식되었다.“지윤씨.”강성연은 표정이 확 변하더니 다가가 그녀의 손을 살폈다. 지윤의 손바닥에 물집 몇 개가 생겼다.“이건......”부식된 외투를 본 강성연은 얼굴이 좀 창백해졌다! 농도가 높은 황산이었다!육예찬은 다가가 남자를 바닥에 짓눌렀고 마스크를 벗겨냈다. 남자의 얼굴을 보는 순간 육예찬 뿐만 아니라 강성연도 깜짝
강성연은 멍하니 있다가 곧 머리를 끄덕였다.그녀는 경찰과 함께 취조실에 들어갔고 경찰의 물음을 모두 솔직하게 대답했다. 경찰은 그녀의 표정을 보고 강성연이 거짓말하지 않았다는 걸 눈치챘고, 김진수의 주장만으로 확증할 수 없었다.강성연은 바로 풀려났다. 그녀가 경찰서를 나서자 반지훈의 차가 밖에 세워진 것이 보였다.아마 지윤이 반지훈에게 통지했을 거다.검은색 양복을 입은 반지훈이 차에서 내리자 바람에 머리카락이 좀 날렸다. 그의 표정은 좀 굳어있었고 싸늘한 눈빛은 사람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강성연이 다가가자 그는 힘껏 그녀를 그러안았으며 손에 핏줄이 튀어 올랐다. 그는 강성연의 정수리에 뽀뽀하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강성연은 그의 품에 안겨 말했다.“미안해요.”그의 심장은 아주 빠르게 뛰고 있었다. 반지훈의 심장만이 지금 그의 긴장과 걱정을 티 내고 있었다.반지훈은 그녀의 이마에 입 맞춤하며 말했다.“당신만 무사하면 괜찮아.”강성연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이 일을 조사하기 전에 먼저 움직이지 마요, 네?”반지훈은 어두운 눈빛으로 담담하게 말했다.“당신의 뜻대로 할게.”육예찬은 명승희를 찾아갔다. 명승희는 어젯밤 사건에 놀라 계속 아파트에 있었다.그녀는 예전에 지내던 아파트에 계속 지냈기에 육예찬이 찾아오자 매우 기뻐했다.“아직도 내가 살던 곳을 기억하고 있네.”육예찬은 문 앞에 서있었고 들어가려는 뜻이 없었다.“당신의 매니저가 경찰서에 들어간 걸 알아?”명승희는 멍해졌다.“뭐?”김진수가 경찰서에 들어갔다고?육예찬은 복도 창가에 서서 아파트 아래의 경치를 바라보았다.“김진수가 강성연한테 농도 높은 황산을 뿌려 구속되었어. 반지훈 대표의 태도에 따라 결과가 결정될 거야.”명승희는 제자리에 굳어졌다.그녀의 표정을 보아하니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어떻게 그럴 수가...... 그렇다면 강성연 아가씨는......”“김진수의 계획대로 되지 않았어. 강성연의 얼굴은 멀쩡해.”육예찬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
그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떠났다.명승희 뺨에 눈물 자국이 천천히 말라갔다. 그녀는 벽에 기대 천천히 마음을 가라앉혔다.*TG 그룹.연희승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자료를 반지훈에게 건네주었다.“어젯밤 명승희 아가씨가 있었던 술집 지하주차장의 CCTV를 확인했어요. 확실히 건달 몇 명에게 강간당할 뻔했어요.”반지훈은 자료를 슥 확인한 다음 테이블 위에 놓았다.“그 사람들을 찾아내.”연희승은 고개를 끄덕였다.그가 떠난 후 반지훈은 의자에 기대 이마를 주물렀다. 지윤에게서 누군가가 강성연에게 농도 높은 황산을 뿌렸다고 들었을때 그는 가슴에 쿵 하고 내려앉았다.이번에 범인이 누구든 그는 절대 가만히 앉아있지 않을 거다.연희승은 CCTV 화면을 통해 바로 그 사람들을 찾아냈다. 그와 지윤은 그 사람들이 자주 다니는 당구실에 찾아갔다.당구실에 들어가 보니 무직 청년 한 무리가 모여있었고 지윤과 연희승을 보고 우르르 몰려왔다.“너희들은 누구야?”연희승이 입을 열기도 전에 지윤이 움직였다.청년 10명은 당연히 지윤의 상대가 아니었고 곧 바닥에 쓰러져 아우성이었다.구석에 숨어있던 두 남자는 벌벌 떨고 있었다.연희승은 명승희의 사진을 꺼내 그들에게 보여주었다.“이 여자를 본 적이 있어?”골절된 남자가 머리를 끄덕였다.“본, 본 적 있습니다. 어젯밤 그 여자입니다.”연희승이 물었다.“누가 너희들에게 이 여자를 강간하라고 사주한 거지?”남자는 눈알을 굴리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지윤이 총을 꺼내자 남자의 표정이 순식간에 바뀌었다.“한 아가씨입니다!”이름 묻지 않아도 연희승은 그 “한 아가씨”가 누구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그와 지윤은 당구실을 떠났다. 차 앞에서 연희승은 지윤이 총을 가지고 놀자 표정이 바뀌었다.“총을 가지고 다니는 것도 모자라 장난까지 치는 거예요?”난 이렇게 죽고 싶지 않다고.지윤은 그를 흘깃 보더니 방아쇠를 당겼다. 총구에서 파란색 불이 나타났다.“......”방풍 라이터였구나.연희승은 반지훈
“모두 성연이가 스스로 저지른 짓이야. 난 도와줄 수 없어, 우리 한 씨 가문이 성연이 때문에 망가지면 안 돼.”한수찬은 더 이상 두 모녀를 보지 않고 무표정으로 위층에 올라갔다.한성연은 온몸을 덜덜 떨었다.설마 내가 한 일이 들통난 거야?......“부잣집 아가씨 단톡방”에서 한성연이 한 씨 가문에서 쫓겨난 일에 대해 의논이 분분했기 때문에 강성연도 바로 알게 되었다.그녀는 지윤에게서 한성연이 사람을 사주해 명승희를 강간한 뒤 자신에게 덤터기를 씌우려고 했다는 걸 알고 어이가 없어 웃었다.정말 가만히 있는 데도 날 가만 놔두지 않는구나.여직원이 문밖에서 노크했다.“강성연 대표님, 명승희 아가씨가 만나길 청합니다.”강성연은 펜을 돌리더니 눈을 깜빡거렸다.“들어오라고 하세요.”명승희는 전보다 좀 기가 죽은 얼굴로 사무실에 들어왔다.“김진수를 대신해 사과하러 온 거예요. 김진수는 나의 매니저이고 오랫동안 국외에서 훈련했어요. 한성연의 이간질에 넘어가 그렇게 극단적인 짓을 저지른 거예요.”상대방이 진지하게 사과하고 그녀도 부상을 입지 않았으니 탓하기도 난처했다.“명승희 아가씨, 다음부터 매니저를 잘 단속하세요. 전 이해할 수 있지만 반지훈씨는 모르겠어요.”명승희는 허리를 숙였다.“감사해요.”강성연은 아무 말도 없이 그녀가 사무실을 떠나는 걸 지켜보았다.그녀는 김진수가 15일 동안 구류되었다고 들었다. 김진수가 풀려난다 하여도 회사에서는 더 이상 그를 명승희 곁에 남겨두지 않을 거다.이건 충분히 작은 대가였다.점심, 강성연은 손수 만든 도시락을 들고 TG 그룹에 왔다. 카운터 직원이 그녀에게 반지훈은 회의 중이라고 하자 강성연은 사무실에서 기다렸다.그녀는 사무실 소파에 앉아 의자를 돌려 큰 창문 밖의 경치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의자를 빙글빙글 돌리면서 놀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누군가가 그녀의 의자를 잡으면서 물었다.“재미있어?”반지훈은 의자에 앉아있는 그녀를 그러안았다. 어렴풋이 기억 속에 이와 비슷한 장면이 떠올랐다.그
연희승은 반나절 동안 머뭇거리더니 이렇게 말했다.“별일은 아니고, 그저...... 선생님을 때렸다고 합니다.”강성연은 숨을 길게 내쉬더니 고개를 돌려 반지훈을 바라보았다.“당신 아들의 꼴 좀 봐요.”반지훈은 헛기침을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내 잘못이야. 돌아가서 혼내줄게.”강성연과 반지훈이 학교에 찾아가 보니 강해신과 강유이는 교장실에서 꾸짖음을 당하고 있었다.강해신은 부상을 입지 않았고 도리어 그에게 맞은 중년 선생님의 얼굴에 멍이 들었으며, 손등에 이빨자국이 남았다고 한다.강유이는 강성연을 보더니 억울한 표정으로 달려와 안겼다.“엄마!”강성연은 강유이를 품에 안으며 물었다.“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그녀는 해신과 유이가 절대 이유 없이 선생님을 때리지 않을 걸 알고 있었다. 꼭 무슨 이유거나 오해가 있을 거다.교장은 반지훈이 들어오는 걸 보고 재빨리 일어섰다.“반지훈 대표님께서 어찌 오셨어요......”반지훈은 강해신을 흘깃 보았다.“아들이 학교에서 선생님을 때렸다고 들었습니다.”“걱정하지 마세요. 지금 이유를 물어보고 있는 중이었습니다.”교장은 몸을 숙이면서 식은땀을 닦았다.이 두 아이가 반지훈의 자식이 아니었다면 그는 관례에 따라 일찍부터 퇴학시켰을 것이다. 하지만 이 두 아이가 선생님과 합의를 보려고 하지 않으니 그도 방법이 없었다.반지훈은 강해신에게 걸어가 그를 내려다보았다.“왜 선생님을 때린 거야?”강해신은 고개를 들더니 당당하게 대답했다.“유이를 괴롭혀서 때렸어요.”괴롭혔다고?강성연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교장은 무기력하게 웃으며 말했다.“이성훈 선생님이 어떻게 아이들을 괴롭힐 수 있겠습니까? 이성훈 선생님도 오해라고 말했습니다.”강해신은 팔짱을 끼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이성훈 선생님은 유이만 사무실에 불러 숙제를 도와준다고 하더니 자꾸 만졌어요. 제가 두 눈으로 똑똑하게 보았어요!”교장의 표정이 좀 변했다.이런 일이 소문난다면 학교의 명성도 망할 거다.그가 조심스럽게 반지훈의
반지훈은 무표정이었지만 눈에서 분노가 꿈틀거리고 있었다.“당신이 유이에게 손을 댄 건가요?” “전...... 전 아닙니다. 유이 아버님, 오해입니다. 저는 그저 유이 숙제를 도와 주었습니다, 유이가 너무 극단적으로 생각하네요.”이성훈은 이렇게 변명했다.반지훈이 아무런 말도 없이 싸늘한 눈빛으로 이성훈을 바라보자 이성훈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강해신이 곁에서 콧방귀를 뀌었다.“선생님은 분명히 유이를 괴롭혔어요!”이성훈은 당황한 마음을 감추며 변명했다.“강해신 학생, 선생님을 모함하지 마세요!”이성훈이 온 힘을 다해 변명하고 있을 때 침묵하고 있던 강성연이 무심하게 웃었다.“제가 보기에는 오해가 아닌 것 같네요.”이성훈은 다시 변명했다.“사모님, 증거 없이 그런 말을 하면 안 됩니다.”“증거가 없는 건 아닙니다. 학부모회를 하던 날 뒤뜰에서 이성훈 선생님을 봤었어요.”강성연이 고의적으로 뒤뜰이라고 언급하자 그는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는 강성연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 거라 생각했었다.강성연은 직설적으로 말했다.“그 아이는 당신이 학교 선생님이라고 말했어요. 제가 그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귀띔할 필요 없죠?”교장은 이성훈을 바라보며 물었다.“이성훈,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전...... 전 억울합니다!”반지훈은 그의 변명을 듣지 않고 소파에 앉아 양복 단추를 풀었다.“제 딸이 괴롭힘을 당했으니 전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제 딸은 누구나 함부로 건드릴 수 없어요.”교장은 이마에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그는 반지훈 앞에 걸어가 살짝 허리를 숙이면서 말했다.“반지훈 대표님,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꼭 이 일을 명백히 조사하겠습니다.”반지훈은 담담하게 그를 바라보았다.“당신을 믿을 수 있을까요?”교장은 멈칫하다가 당당하게 말했다.“반지훈 대표님, 절 믿어주세요.”기껏해야 이성훈더러 한참 동안 외국에 나가있으라고 하면 되잖아, 이 “스캔들”만 막을 수 있으면 돼.반지훈은 점점 어두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비록 똑똑히 조사하겠다고 말했지만 조훈이 오지 않았다면 아마 그저 흐지부지하게 끝났을 거다.반지훈은 사실 일찍부터 이 점을 눈치챘으나 교장이 결정을 내린 걸 보고 몸을 일으켰다.“그렇다면 학교의 답장을 기다리겠습니다.”교장은 연신 허리를 굽실거렸고 등이 축축이 젖어있었다.“걱정하지 마세요.”반지훈은 남아서 이 일을 처리하고 강성연은 먼저 아이들을 데리고 교장실에서 나왔다.강해신이 가는 길 내내 잔소리를 늘여놓자 강성연은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네가 여동생을 지켜줘서 정말 기뻐. 하지만 선생님을 때린 건 확실히 네가 잘못한 거야.”그녀는 몸을 숙여 강해신의 이마에 딱밤을 때렸다.“때린 것도 모자라 온 학교에 소문을 내다니.”강해신은 이마를 주물렀다.“알면 또 뭐 어때요? 원래부터 그 선생님은 쓰레기예요. 제가 마음에 놓이지 않아 몰래 따라간 게 아니라면 유이는 놀라서 어쩔 바를 몰랐을 거예요.”강성연은 미간을 찌푸리고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유이를 바라보았다. 강성연은 그 모습에 가슴이 아팠다.아마 유이는 이 사건 때문에 한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릴 거다.해신이 아니라 그녀가 현장에 있어도 이성훈을 병신으로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다.그녀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해신에게 물었다.“저번에 그 예쁘게 생긴 남자아이는 너희와 같은 반 친구니?”강유이는 고개를 들더니 맑은 눈을 깜빡이면서 물었다.“엄마, 한태군을 말하는 거예요? 한태군은 저번 학기에 전학해온 친구인데 오빠를 제치고 1등을 했었어요.”강해신은 그녀의 말에 쯧쯧 혀를 찼다.“그 계집애처럼 생긴 놈? 내가 고의적으로 봐준 게 아니라면 어떻게 1등을 할 수 있겠어?”강유이는 예전 생기발랄한 모습으로 회복했다. 이번 일이 그녀에게 큰 트라우마로 남지 않은 듯했다.“오빠는 나르시시즘이 너무 강해. 분명 한태군이 더 공부를 잘하잖아.”두 아이가 싸우자 강성연은 이마를 주물렀다.반지훈이 일을 처리하고 차에 타니 차에 앉아 그를 기다리고 있던 강성연이 고개를 돌리며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