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훈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차는 천천히 장도 별장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반지훈은 아들과 어떻게 지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지만 아들과 가깝게 지내고 싶기는 했다.다행히도 강시언이 그를 난처하게 만들지 않고 먼저 그에게 말을 걸었다. 반지훈은 지금 17살 이전의 기억만 갖고 있으니 여덟 살 넘는 남자아이와 이내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강성연은 고개를 돌려 그들 부자를 힐끗 쳐다본 뒤 나지막한 목소리로 희승에게 물었다.“17살의 반지훈 씨는 저런 모습이었나요?”희승은 고개를 끄덕였다.“네.”희승은 어쩐지 그리운 얼굴이었다.“대표님은 예전에 저런 모습이셨어요. 대표님 어머님께서 사고를 당하기 전까지는요.”강성연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는 반지훈에게 시선을 돌렸다. 지금의 반지훈은 차갑고 쉽게 다가갈 수 없는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쉽게 친해질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기억을 잃어서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적어도 잠재의식 속에는 그들이 존재했다.그가 어떤 모습이든 그가 반지훈이라는 점은 변함없다.반지훈은 장도 별장이 낯설었다. 별장으로 돌아온 뒤 그는 주위를 한참 동안 둘러보다가 강성연에게 물었다.“우리 방은 어디 있어?”우리 방이라는 말에 강성연의 걸음이 멈췄다. 그녀는 희승에게 짐을 부탁한 뒤 반지훈의 앞에 섰다.“우리 방이 아니라 당신 방이에요. 날 따라와요.”반지훈은 강성연의 뒤를 따르며 미간을 팍 구겼다.“부부라면 같은 방에서 지내야 하는 거 아니야?”강성연은 재밌다는 듯이 말했다.“그렇죠. 우리는 부부였지만 3년 전 당신이 내게 이혼하자고 한 뒤로 따로 살았어요.”반지훈의 눈동자에 티 나지 않게 놀라움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위층으로 올라가는 강성연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방에 도착한 뒤 반지훈은 주위를 쓱 둘러본 뒤 미간을 구겼다. 확실히 여자와 함께 살았던 흔적은 전혀 없었다.강성연은 뒷짐을 진 채로 그에게 다가가 웃어 보였다.“왜요? 설마 나랑 같이 지내고 싶어요?”반
강성연이 의아해하자 여 노부인이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예전이었다면 지훈이는 S국 일에 관여하지 않았을 거야.”그 말에 강성연은 뜻밖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자세히 생각해보면 반지훈과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반지훈은 집안에 관해 얘기하지 않았었다. TG그룹의 오너라는 점, 그게 다였다.그런데 언제부터 반지훈이 관여하기 시작한 걸까? 강성연의 어머니가 연씨 집안과 관계가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연씨 집안과 반씨 집안의 원한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의심했기 때문일까?여 노부인은 그녀를 보며 말했다.“네가 연혁의 외손녀라는 건 알고 있다.”장도 별장, 반지훈이 아래층으로 내려왔고 안으로 들어온 희승이 때마침 그와 마주쳤다. 희승은 흠칫하며 말했다.“대표님?”반지훈은 거실을 지나쳤다. 거실의 가구들은 전부 새것 같았고 이곳에서 잠깐 지낸 건지 사람의 향기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우리 이곳에서 지낸 지 얼마나 됐지?”희승은 뺨을 긁적였다.“몇 달 됐어요.”반지훈은 미간을 구겼다.“겨우 몇 달이라고?”“네. 아, 대표님은 기억하지 못하시죠.”희승은 그제야 그 사실을 떠올렸다.“대표님은 몇 달 전에 S국에 왔고 그때 이 별장을 사서 잠깐 지내기로 했죠.”“그럼 그 몇 달 동안 계속 강성연과 따로 지냈다는 말이야?”반지훈은 어쩐지 그 일을 따져 물었다.희승은 헛기침했다.“강성연 씨는 가끔 찾아와서 같이 있어 주셨습니다.”반지훈은 무언가 떠올랐는지 어두워진 눈빛으로 말했다.“그럼 나랑 강성연이 진짜 이혼했다는 말이야?”희승은 어색하게 웃음을 쥐어 짜냈다.“그런 셈이죠.”희승은 반지훈의 불쾌한 기색을 읽고 다급히 해명했다.“겉으로는 이혼했다고 했지만 사실 대표님은 사인하지 않으셨어요.”잔뜩 구겨져 있던 반지훈의 미간이 살짝 풀렸다. 그러나 어딘가 이상했다.“강성연은 사인했어?”강성연이 그와 이혼하려 했다는 말인가?희승은 쓰게 웃었다. 그는 기억을 잃은 반지훈에게 어떻게 3년 전의 일을 설명해야 할지 감을 잡지
강성연은 테이블 위에 시선을 고정했다.“반지훈 씨랑 지내면서 그에게 남다른 부분이 있다는 걸 발견했어요. 비록 반지훈 씨가 제멋대로에다가 따지는 것도 좋아하고 질투도 많지만 가끔은 바보처럼 귀여울 때도 있어요. 그리고 중요한 순간에는 다른 건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절 지키려고 하고 심지어 몸을 던져 절 구해줘요. 절 이렇게 사랑하는 남자를 제가 어떻게 포기할 수 있겠어요?”여 노부인은 입구를 바라보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강성연은 무언가 느껴진 건지 고개를 돌렸다. 어느샌가 반지훈이 문밖에 서 있었다. 강성연은 살짝 당황했다. 조금 전 했던 얘기를 전부 다 들은 걸까?여 노부인이 웃었다.“며칠 푹 쉬지, 이렇게 부랴부랴 여기까지 찾아왔네? 내가 성연이를 난처하게 만들까 봐 걱정돼서 그래?”반지훈은 강성연에게서 시선을 뗐다. 항상 무표정하던 얼굴에 약간의 어색함이 엿보였지만, 반지훈은 일부러 침착한 척 말했다.“할머니, 흰 머리카락이 왜 이렇게 많이 나셨어요?”여 노부인은 반지훈의 기억에 문제가 생겼다는 걸 알고 있었다. 반지훈의 기억 속 그녀는 여전히 그 시절에 멈춰있었다.“늙어서 그래. 젊었을 때랑은 다르지.”그녀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지훈아. 네 아내 잘 아껴줘야 해.”반지훈과 시선이 마주치자 강성연은 눈썹을 치켜세웠다. 그녀의 눈동자에서 웃음기가 보였다.두 사람은 앞뒤로 나란히 엘리베이터에서 나왔다. 반지훈은 시선을 들어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더니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 강성연의 팔뚝을 잡았다. 그 바람에 강성연은 뒤로 한 걸음 물러서게 되면서 벽에 등을 기댔다.반지훈은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조금 전 한 말이 전부 사실이라면 우리...”반지훈의 목젖이 위아래로 움직였다.“왜 이혼했어?”강성연은 그의 시선을 똑바로 바라보다가 한참 뒤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기억을 회복하면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있을 텐데요?”반지훈은 살짝 당황한 건지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강성연은 시선을 내리뜨리며 손을 보더니
“너...”반지훈은 재빨리 그날 일을 떠올렸다. 그는 본능적인 욕망에 따라 움직인 것이었고 자신을 통제할 수도 없었다. 반지훈은 그녀를 놓아준 뒤 골치 아프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그게 내 잘못이야?”먼저 입을 맞춘 건 강성연이었다. 강성연이 먼저 꼬신 거란 말이다! 어찌 됐든 반지훈은 그녀를 만지면 자신을 통제할 수 없었다.강성연은 그의 팔을 잡고 말했다.“됐어요. 안 놀릴게요. 얼른 집으로 돌아가요.”집으로 돌아간다라...반지훈은 얼떨떨해 보였다. 그녀의 입에서 집으로 돌아간다는 말을 들으니 어쩐지 아주 친숙하면서 익숙한 기분이 들었다.강성연은 그의 팔에 팔짱을 꼈다. 다른 이들이 보기에 그들은 보기 좋은 커플처럼 보였고 어색한 느낌이라고는 전혀 없었다.장도 별장으로 돌아오니 반지훈이 걱정스러웠던 반지훈의 할아버지가 경호원들이 일에 소홀했다고 야단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반지훈이 돌아오자 어르신은 그제야 멈췄다. 그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말했다.“외출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말이라도 해야지.”기억을 잃은 건 둘째 치고 감히 외출까지 하다니,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긴다면 어르신은 견디지 못할 것 같았다.반지훈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할머니 만나러 간 건데 그것도 얘기해야 해요?”“너...”어르신은 살짝 놀랐다. 그의 눈동자에 당황스러움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흐려진 안색으로 말했다.“할머니를 만나러 갔다고? 잘 지내는 것 같아 보였어?”반지훈은 코웃음을 쳤다.“할아버지가 직접 가서 보세요.”계단 입구를 지난 뒤 반지훈은 고개를 돌려 강성연을 보았다. 강성연은 그를 따라가지 않았다. 반지훈이 뭐라 말하려고 입을 달싹이는데 강성연이 어르신에게 다가갔다.“할아버님.”어르신은 살짝 당황했다. 그는 강성연이 자신을 할아버님이라고 부른 것 때문에 약간 놀란 듯했다. 그가 기억하기론 강성연은 단 한 번도 그를 할아버님이라고 부른 적이 없다.강성연은 웃으며 말했다.“인생은 짧아요. 하실 얘기가 있다면 직접 얼굴 보고 전하
“메트로폴리탄에는 내 사람이 많아. 그런데 날 걱정하는 거야?”X는 지윤의 어깨를 두드렸다.“넌 아직 젊으니까 계속 메트로폴리탄에 있을 수는 없어. 이곳저곳 다니면서 세상 물정도 좀 알고 그래야지. 그리고 네가 성연이 곁에 있어야 내 마음이 놓일 것 같아.”강성연은 X가 지윤을 자신에게 줄 줄은 몰랐다. 지윤은 그곳에서 자랐기에 메트로폴리탄을 떠난 뒤 생활에 익숙지 않을 거다.강성연이 무슨 말을 하려는데 지윤이 먼저 입을 열었다.“알겠어요. 강성연 씨 곁을 꼭 지킬게요.”강성연은 또 한 번 놀랐다.멀지 않은 곳에 있던 반지훈은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강성연이 두 남자와 오랫동안 얘기를 나눠서인지 언짢은 표정이었다.옆에 있던 희승은 반지훈을 바라보았다. 반지훈은 질투가 정말 심했다.강시언의 앞에 선 강성연은 허리를 숙인 뒤 아이의 뺨을 어루만졌다.“시언아, 엄마랑 아빠 먼저 돌아갈게.”“네, 엄마. 먼저 돌아가세요.”강시언은 발꿈치를 들고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제가 졸업하면 귀국해서 엄마랑 동생들이랑 같이 있을 거예요.”강성연은 아쉬운 얼굴로 그를 안았다.“너 자신을 잘 보호해야 해. 아프지 말고, 상처받지 말고, 할아버지 말씀도 잘 듣고. 알겠지?”강시언은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세요, 엄마. 그렇게 할게요.”반지훈은 강시언의 뒤에 선 뒤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꼬맹이, 널 괴롭히는 사람이 있다면 아빠 이름을 대.”강시언은 코웃음을 쳤다.“전 괴롭힘 받을 정도로 멍청하지 않아요.”반지훈은 아이의 부드러운 뺨을 꼬집으며 말했다.“하, 잘났네?”강시언은 그의 손을 쳐내면서 말했다.“아빠나 엄마 괴롭히지 마세요. 그렇지 않으면 제가 귀국해서 가만두지 않을 거니까요.”“자식, 버릇없긴.”반지훈이 따라가려는데 강시언이 X의 곁으로 달려가 그에게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강성연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둘 다 유치해, 정말.”반지훈은 캐리어를 끌고 강성연의 옆에 섰다.“유치하다니, 유치한 건 네
강유이는 반지훈의 앞으로 달려갔다.“아빠, 병은 다 나았어요?”반지훈은 넋이 나갔다. 그는 마음의 준비가 안 된 건지 꼼짝하지 않았다.강유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아빠?”희승은 다급히 유이를 한쪽으로 데려간 뒤 몸을 숙여 아이를 보았다.“대표님께서 사고를 좀 당하셔서 기억이 온전치 않아요.”그는 머리를 가리키며 말했다.강유이는 눈을 깜빡였다.“아빠가 바보가 됐다는 말이에요?”희승의 입꼬리가 살짝 떨렸다.강성연은 유이의 곁으로 걸어가 허리를 숙인 뒤 아이의 헝클어진 땋은 머리를 정리해주며 말했다.“아빠의 기억은 17살 때에 멈춰있어. 그래서 당분간 우리가 기억나지 않을 거야.”강유이와 강해신은 서로 시선을 주고받은 뒤 반지훈을 바라보았다. 마치 가엾은 사람을 보듯 눈물이 그렁그렁했다.반지훈은 주먹으로 입술을 가린 뒤 헛기침하면서 시선을 피했다.“곧 기억날 거야.”강성연은 몸을 일으킨 뒤 그를 보며 말했다.“기억 안 나도 상관없어요. 오빠 한 명 많아져도 괜찮으니까, 그렇지 얘들아?”강유이는 고개를 끄덕였다.“네, 아빠가 아빠가 아니어도 괜찮아요. 그냥 오빠 해요. 저희 의로 맺은 아버지도 있거든요!”반지훈은 너무 화가 나서 몸을 흠칫 떨며 안색이 어두워졌다.“너희 의붓아버지가 누군데?”“남우주연상 받은 아저씨요!”“남우주연상 받은 아저씨가 누군데?”반지훈의 이마에 핏줄이 불거졌다. 그의 아이들에게 의붓아버지가 있다니?강유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큰일이었다. 아빠는 의붓아버지도 기억하지 못했다.강성연은 두 아이더러 먼저 차에 오르게 했다.반지훈은 그녀에게 다가가 말했다.“아직 못 물어봤...”강성연이 몸을 돌리자 두 사람의 거리가 확 좁혀졌다. 강성연이 고개를 들고 반지훈이 때마침 고개를 내리고 있어서 거리가 아주 가까웠다.시선을 내리뜨린 반지훈은 부드러운 붉은 입술에 시선이 닿자 저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다.강성연은 입꼬리를 끌어올렸다.“남우주연상 받은 아저씨는 당신 친구 구천광 씨예요. 이 대답은 마
그러니까 진짜 몹쓸 놈은 나란 말인가?반지훈의 아버지가 반지훈을 바라보자 강성연이 입을 열었다.“아버님, 반지훈 씨...”“지훈이 일은 나도 알고 있다.”반지훈의 아버지가 손을 들어 그녀의 말허리를 잘랐다. 그는 그녀를 보며 말했다.“걱정하지 않아도 돼. 난 널 탓하지 않는다. 이놈이 어떻게 되든 다 이놈 운명이지. 숨만 붙어있으면 된다.”“...”반지훈은 혹시 내가 주워 온 아이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방으로 돌아온 뒤 강성연은 현관에 이르렀고 갑자기 누군가 그녀의 뒤에 다가왔다. 반지훈은 손으로 벽을 짚은 뒤 그녀를 품에 안았다.“얘기 좀 해.”강성연은 잠깐 뜸을 들이다가 이내 활짝 웃어 보였다.“반지훈 씨, 저랑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데요?”“내가 예전에 너한테 미안할 짓 했어? 내가 바람을 피웠어? 아니면...”반지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현관의 하얀 불빛이 그의 준수한 얼굴 위로 쏟아졌다. 그의 눈썹뼈와 높이 솟은 콧날은 더욱 부드러워 보였고 그의 눈동자도 환하면서 그윽한 것이 마치 바다 위 물결처럼 보였다.강성연은 손을 들어 그의 좁혀진 미간을 주물렀다.“내가 말했잖아요. 기억 날 때까지 기다리라고요.”그는 살짝 차가운 강성연의 손끝을 움켜쥐었다. 밤이 되면 감수성이 풍부해지기 마련인데 반지훈은 또 이성을 잃고 자기도 모르게 그녀에게 다가갔다.눈앞에 있는 입술과 이제 곧 닿을 듯한 열기는 강성연의 손끝에 막혔다. 반지훈은 미처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강성연은 몸을 돌려 그를 벽에 밀쳤다.“반지훈 씨, 못된 상상은 하지 말아요.”강성연은 여우 같은 교활한 웃음을 띠면서 장난스럽게 그를 쳐다보았다.미처 예상하지 못한 반지훈은 꼼짝하지 않고 서 있었다.강성연은 그를 놓아주었다.“안전을 위해서 일단은 따로 자야겠어요.”강성연이 몸을 돌려 방에서 나가려 하는데 손목이 붙잡혔다. 반지훈의 목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왔다.“왜 따로 자야 해?”강성연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반지훈은 그녀의 등 뒤에서 어깨를 감싼 뒤 어
“네.”강성연은 신문을 접은 뒤 고개를 들었다.“오늘 저도 회사 가야 하니까 같이 못 있어 줘요.”“너도 출근해?”“아니면 당신이 나 먹여 살릴래요?”강성연은 눈썹을 치켜세우면서 웃었다. 그녀는 테이블 위에 놓인 우유 한 컵을 전부 다 마신 뒤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내가 널 먹여 살리지 못한다는 거야?”반지훈은 강성연을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아내도 출근해야 할 만큼 그의 처지가 좋지 않다는 말인가?그 말에 강성연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녀는 반지훈의 곁으로 걸어가더니 손으로 테이블을 짚은 뒤 몸을 굽혀 그를 바라보며 속상한 얼굴로 말했다.“당신이 내가 돈을 너무 많이 써서 집안 말아먹을 거라고 해서 출근하는 거예요. 당신이 똑똑하고 독립적인 여자를 좋아한다고 했다고요.”“내... 가 그런 말을 했다고?”반지훈은 미간을 구기며 잠깐 생각해 보았지만 떠오르는 건 없었다.강성연은 손가락으로 그의 입술을 꾹 누르며 매혹적으로 말했다.“여보, 나 출근해야 해요. 나 너무 보고 싶어 하지 말아요.”반지훈의 목젖이 위아래로 움직였다. 하지만 강성연은 그가 어떤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먼저 자리를 떴다.반지훈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그는 억지로 자신의 충동을 억누르고 있었다. 어쩐지 강성연이 그를 희롱하는 데 재미가 들린 것 같았다.soul 주얼리 회사.강성연은 프런트 데스크로 걸어갔고 직원이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안녕하세요, 어떤 주얼리를 구입하실 생각이신가요?”강성연은 검은색 안경테를 벗고 살짝 미소 지었다.“반크 디렉터님 계시나요?”“반크 디렉터님은...”“강성연 씨?”다른 여직원이 나타나 놀란 얼굴로 강성연을 바라보았다. 그 여직원은 soul의 오래된 직원이었다.“정말 강성연 씨예요? 강성연 씨는...”강성연이 웃으며 말했다.“저 돌아왔어요. 반크 아저씨는요?”“반크 디렉터님은 사무실에 계세요. 제가 안내할게요!”여직원은 다급히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고 고개를 돌려 신입사원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