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훈은 의미심장하게 수지를 흘깃 보았다.“저와 수지 아가씨를 오해했을 거예요.”수지의 눈에서 의아한 빛이 잠깐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아, 그 아가씨를 말하는 거예요? 정말 죄송해요, 전 그날의 일 때문에 그 아가씨가 오해할 줄은 몰랐어요.”큰어르신은 좀 불쾌해 했다.“무슨 장난을 하는 거야? 수지 아가씨는 너의 은인이잖아. 네가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거의 죽을 뻔 할 때 강성연은 어디에 있었지?”“이혼을 했으면 완전히 인연을 끊어. 너도 강성연이 너의 생사에 대해 관심이 없다는 걸 깨닫게 되었잖아.”반지훈의 병이 엄중해져 입원할 때 강성연은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었다. 만약 수지와 X의 항체가 없다면 그가 어떻게 이 정도로 빨리 회복될 수 있겠는가?비록 3년 전의 일은 강성연과 상관이 없었고 반지훈은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했었다.그리고 강성연은 그때의 사고로 유산했으며 아버지와 희영까지 잃게 되었기 때문에 확실히 좀 가련했다.하지만 큰어르신은 자신의 손자가 또 무슨 사고가 날까 걱정되어 둘이 연을 끊길 바랐다.수지는 조용히 곁에서 듣고 있었다.그들이 꽤 오래 전에 이혼했다는 소식을 수지는 알고 있었다. 3년 동안 숨어있다가 다른 신분으로 반지훈 앞에 나타난 그녀는 “수지”라는 이름으로 다시 큰어르신과 반지훈의 신임을 얻게 되었다.하지만 그녀는 강성연 그 천한 것이 아직까지 살아있을 줄은 몰랐다.하지만 그녀가 살아있어도 괜찮다.예전 그녀가 그런 사고를 만들 수 있었으니, 과거의 사고를 재현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그녀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그 아가씨는 반 대표님의 전처였어요?”“수지 아가씨는 아직 결혼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손에 들고 있는 와인 잔을 흔들자 와인이 출렁이면서 아름다운 빛을 냈다.수지는 머뭇거리다가 눈을 내리깔았다.“네, 선생님은 많은 일을 저에게 맡기고 있어요. 너무 바빠서 연애할 시간도 없었어요.”반지훈은 무심하게 물었다.“좋아하는 사람은 있나요?”수지
“하지만 전 반지훈 대표가 그녀를 아주 사랑하고 있다는 걸 눈치챌 수 있어요.”수지는 이렇게 말하면서 반지훈의 표정을 자세하게 살폈다.하지만 반지훈은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그가 창문을 조금 내리자 차가운 바람이 차 안으로 들어와 그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어디서 그걸 눈치챈 거예요?”수지는 멈칫하더니 자연스럽게 대답했다.“여자의 직감이지요.”반지훈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사람의 마음은 움직이는 거예요. 예전에는 사랑했었겠죠.”수지는 속으로 깜짝 놀랐다. 설마 반지훈과 강성연 사이에 무슨 틈이라고 생긴 건가?그녀는 넌지시 물었다.“설마 반지훈 대표가 마음이 변한 거예요?”반지훈은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더니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수지 아가씨는 어떻게 생각하나요?”그녀는 심장이 떨렸다. 예전에 반지훈은 그녀를 제대로 본 적이 없었으며 여태껏 그녀는 반지훈의 눈빛이 자신에게 머무르기를 바라왔다.그녀가 병실에서 고의적으로 넘어졌을 때 반지훈은 그녀를 밀치지 않았다. 만약 그 천한 년이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면......“집에 도착했네요.”반지훈은 시선을 거두었다.“수지 아가씨, 들어가세요.”수지는 빙긋 웃었다.“고마워요.”그녀는 차에서 내리려고 하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고개를 돌렸다.“반지훈 대표님, 요즘 시간 있어요?”반지훈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스스럼없이 대답했다.“네.”그녀는 차문을 닫은 후 의기양양한 얼굴로 떠났다.그녀가 떠난 뒤에서야 연희승은 시동을 걸었고, 반지훈은 차 안의 향수 냄새가 역겨워 창문을 모두 내렸다.연희승은 백미러로 이를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강성연 아가씨는 대표님을 미남계를 사용해도 괜찮다고 해요?”외부인인 그도 수지가 반지훈 대표에게 마음이 있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반지훈 대표와 약속을 잡으려고 했다.반지훈은 어두워진 눈빛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강성연은 정원에 있는 정자에서 티 타임을 즐기고 있었다. 휴대폰에 문자 한 통이 뜬 뒤에서
“허.”아리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창 밖을 바라보았다.“반지훈이 감염된 M 바이러스는 변이된 새 바이러스야. 지금 반지훈은 감염 말기에 진입했어.”수지의 표정이 확 변했으며 두 손을 꽉 잡고 있었다.그때 남호연은 그녀에게 그것이 M 바이러스라고만 말했었고 다른 건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처음부터 강성연이 감염되게 할 생각이었다.그 후 만약 강성연의 함정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얼굴이 망가지지 않았을 것이고 남호연도 그렇게 그녀를 대하지 않았을 것이다.그녀는 계속 남호연 곁에 남아있으면 결과가 더 비참해질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Z국으로 돌아간 후 그 일을 꾸며 남호연에게서 벗어나려고 했다.갈 곳이 없었던 그녀는 수지를 만나게 되었으며, 수지가 아리의 학생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아리는 토론토 예술 아카데미의 강사지만 사실 존스의 삼촌이었으며 바이러스를 포함한 의학에 대해 꽤 연구가 있었다.심지어 그는 X와 선후배 사이였다.그리하여 그녀는 수지의 신분을 얻기 위해 화재를 꾸몄던 것이다.수지가 큰 화재에 목숨을 잃은 후, 그녀는 수지의 가족으로 가장하여 시체를 수령하고 수속을 했다. 그녀는 알리바이가 있었기 때문에 경찰은 간단한 일만 물은 후 그녀를 보냈다.그녀는 수지의 신분을 없애지 않았으며 수지의 카드에 있는 돈으로 성형 수술을 했다. 상처가 회복되는 1년 동안 그녀는 수지의 신분으로 아리에게 접근했다.아리는 화재에서 얼굴이 상한 그녀를 가련하게 여겨 그녀를 남겼다. 수지는 전에 대학교에 있었던 일을 남김없이 그녀에게 말했기 때문에 아리는 조금도 의심을 품지 않았다.그녀는 남호연이 자신을 발견할까 두려워 계속 얌전하게 아리 곁에 있었다.아리는 줄곧 의학 연구에서 X를 뛰어넘으려고 했고, X가 실종된 후에도 바이러스에 대한 연구를 포기하지 않았다.남호연이 죽고, 바이러스의 일이 드러나자 레겔은 직접 찾아와 아리의 도움을 청했다.그녀는 이 기회에 아리에게 반지훈을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아리가 그를 구한다면 그녀에게도 기회가
어르신은 고개를 끄덕였다.“시간이 필요할 거다. 지훈이는 이제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X에게 빨리해달라고 전해주길 바란다.”수지는 미소를 지었다.“걱정하지 마세요. 전 꼭 반지훈 씨를 구할 거예요.”수지는 병실로 들어갔다. 반지훈은 침대에 기대어 잡지를 읽고 있었는데 준수한 얼굴에는 핏기가 전혀 없었다.반지훈은 책을 펼치면서 시선 한 번 들지 않고 말했다.“살 방법이 없나 보네요.”“그럴 리가요?”수지는 침대 옆에 서서 입술을 깨물었다.“전 꼭 당신을 구할 거예요.”반지훈이 정말 죽을까?아니, 사실 그녀는 당시 반지훈을 공격할 생각이 없었고, 총으로 반지훈을 겨느리는 순간 후회했다.그녀는 빌어먹을 강성연에게 총을 쏠 생각이었으니 말이다.모두 강성연 때문이었다. 강성연이 없었다면 반지훈이 그녀를 대신해 총에 맞았을 리가 없었고 감염됐을 리도 없었다.페이지를 넘기던 반지훈이 잠깐 멈추면서 미간을 구겼다.“수지 씨는 절 아주 오랫동안 알고 있었던 것 같네요.”그 말에 수지는 얼어붙었다.반지훈은 잡지를 닫고 고개를 들어 수지의 시선을 마주했다. 수지의 눈빛이 잠깐 빛났고 그녀는 찔리는지 시선을 피하며 웃었다.“사실 전 당신에게 호감을 품고 있었어요. 반지훈 씨가 이렇게 젊은 나이에 죽는 걸 바라지 않아요.”“그래요?”그는 시선을 거두고 잡지를 탁자 위에 내려두더니 그녀를 보며 웃었다.“그럼 수지 씨가 절 구해주길 기대할게요.”수지는 순간 가슴이 두근거렸다.만약 반지훈이 그때 그녀를 그렇게 대하지 않았다면, 그녀를 그렇게 혐오하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하지만 아쉽게도 그녀는 지금 수지고, 더 이상 서영유가 될 수 없었다.반지훈은 그녀를 살펴보더니 그윽한 눈빛으로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수지 씨가 하이힐을 신은 모습이 어떨지 모르겠네요.”수지는 살짝 놀랐다. 그녀가 하이힐을 신지 않는 이유는 수지 같아 보이지 않을까 걱정돼서였고 혹시나 키때문에 다른 것을 들킬까 봐 두려워서였다.하지만 반지훈은 수지를 몰랐다.“반
수지는 웃었다.“그렇지.”“그것보다 수지 씨 예전에 사셀에서 일했었죠?”강성연의 말에 수지의 미소가 굳었다.“그랬지. 근데 왜?”강성연은 그녀가 인정하자 안색 하나 바뀌지 않고 말했다.“이상하네요. 9년 전에 저도 사셀에 있었는데 절 모르시나요?”수지는 클러치를 꽉 잡으며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한때 사고를 당한 적이 있어 기억을 잃었어.”수지는 고개를 숙여 시간을 확인했다.“이따 선생님이랑 만나서 대책을 얘기해봐야 해서 먼저 가볼게.”말을 마친 뒤 그녀는 곧장 강성연의 곁을 지나쳤다. 강성연은 그녀의 떠나는 뒷모습을 보면서 생각에 잠겼다.병실 밖에 선 강성연은 우연히 반지훈과 희승의 대화를 듣게 됐다.희승은 반지훈에게 보고하고 있었다. 레겔이 최근 Y국의 재벌 여 선생님과 만난 적이 있다고 한다. 레겔이 이렇게 Y국의 재벌 여 선생님을 회유하려 하는 것은 그의 재력 때문이다.그들의 든든한 금고가 되어주었던 롭이 무너진 뒤 그의 재산 중 절반은 황실이 몰수했고 나머지는 정부가 가져갔다.레겔이 항체를 독점해 주변 국가의 병원이나 귀족들에게 파는 이유가 항체를 이용해 정세를 뒤집기 위해서였다.희승은 그를 보며 말했다.“언론에서 대표님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대표님을 통해 그 항체가 효과가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은 것 같아요.”반지훈은 이불 위에 손을 올렸다.“여씨 집안이 이 일에 간섭했다는 거 할아버지도 알고 있어?”희승은 고개를 저었다.“아뇨.”반지훈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잠시 뒤 고개를 돌린 그는 벽에 기대어 서 있는 강성연을 보며 살짝 웃었다.“거기 서서 뭐 해?”희승은 고개를 돌렸고 그제야 강성연과 지윤이 문 앞에 서 있다는 걸 눈치챘다.강성연이 안으로 들어왔다.“당신들이 얘기 나누는 거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요.”희승은 지윤과 함께 밖으로 나갔고 병실 안에는 두 사람만 남았다.강성연은 창가에 서서 그를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반지훈이 꾀병을 부리는 게 아니란 걸 알고 있었다. 그의 준수한 얼
사고 때문에 기억을 잃었다고 하면서 사셀에 다닌 건 기억하다니, 얼마나 큰 사고였길래 얼굴을 전부 갈아엎은 걸까?그녀는 수지가 아니었다. 설사 성형을 했다고 해도 수지의 모습이 조금 남아있어야 할 텐데 전혀 달랐다.반지훈은 그녀가 성형했다는 걸 보아냈다. 분명 성형을 하기 전 얼굴이 망가진 적이 있어 ‘수지’가 사고를 당해 성형하게 됐다고 꾸며낸 것 같았다.수지가 사셀에 있었다는 걸 알고 있고 그녀의 신분으로 위장할 수 있다면 분명 수지와 가까운 사이일 거다.그러니 수지가 3년 전 누구랑 접촉한 적이 있는지 조사한다면 알 수 있을지도 몰랐다.강성연은 뭔가 떠올린 건지 입을 열었다.“조금 전 희승 씨가 Y국 재벌 여 선생님에 관해 말하던데 지금 사셀의 대표가 그예요. 그러니까 Y국의 여 선생님이 레겔의 금고란 말인가요?”반지훈은 웃음을 터뜨렸다.“어쩌면 그냥 자선사업을 하고 싶은 걸지도 모르잖아?”강성연은 중얼거렸다.“왜 그렇게 잘 알아요?”반지훈은 고개를 숙여 그녀의 손바닥을 주물렀다.“그는 여씨 집안의 사람이야. 우리 반씨 집안과 좀 관계가 있는 셈이지.”“무슨 관계요?”반지훈은 웃었다.“우리 할머니가 여씨 일가 사람이거든.”강성연은 놀랐다.반지훈의 할머니가 여씨 일가 사람이라고?그러고 보니 반씨 집안사람들에 대해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지만 반지훈의 할머니에 대해서는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반지훈이 말하지 않으니 굳이 묻지 않은 거다.겨우 이틀 사이, 언론은 반지훈의 병세를 알게 되었고 심지어 병원 1층에 몰려들어 항체가 효과가 있는지 물었다.그리고 적지 않은 기자들이 총회 건물 밖에 몰려들었다. 하지만 모습을 드러낸 관련 인사는 그저 간단한 설명만 했고 그의 얼버무리려는 태도에 네티즌과 대중들은 화가 났다.X가 연구한 항체도 사람들의 의심을 받았고 명성도 위태로운 상황이었다.“아리 씨, 항체에 문제가 없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서재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아리는 창문 앞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담배 연
“나한테서 그 항체를 가지고 싶은 건 아니지?”X는 안색 하나 바뀌지 않고 그의 핑계를 까발렸다. 아리는 다소 난감한 얼굴이었지만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했다.X는 몸을 일으켜 탁자 앞으로 걸어갔다. 그는 두 손으로 탁자를 짚으며 말했다.“그 항체는 줄 수 있어. 하지만 내게 약속 하나 해줘야겠어.”노크하려던 수지는 안에서 들리는 소리에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진짜 X가 메트로폴리탄의 헨리라니!심지어 그는 반지훈을 치료할 수 있는 항체를 갖고 있었다.수지의 안색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 무언가 떠올린 그녀는 입꼬리를 끌어올렸다.역시 죽으라는 법은 없었다. 만약 그녀가 항체를 손에 넣어 반지훈을 구한다면 정정당당하게 반지훈과 함께 있을 수 있을 거다.강성연은 3년 전 불이 났었던 아파트에 도착했다. 그 아파트는 한인 타운에 있는 아파트였고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도 대부분 한국인이었다.아파트는 완전히 새로워졌지만 사람이 타죽은 적이 있다 보니 창고나 다름없이 변했다.그녀는 집주인에게 물었다.“저 방에서 살던 수지 씨, 전에 누군가와 접촉한 적이 있나요? 예를 들면 친구요.”집주인은 잠깐 고민하다가 대답했다.“있어요. 아직 기억해요. 수지 씨가 당시 얼굴을 다친 여자를 집에 데려온 적 있는데 그 여자는 집 밖에 거의 나가지 않았어요. 가끔 나오긴 하는데 얼굴을 꽁꽁 싸매고 나왔어요.”강성연은 시선을 내리뜨렸다.“그 여자에 대해 기억하시나요?”집주인은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오래전 일이라 잘 기억나지 않네요. 그리고 얼굴도 잘 보지 못했어요. 그냥 키가 큰 한국인인 것만 기억해요.”집주인이 떠나고 난 뒤 강성연은 복도에 멈춰 서서 떠나지 않았다. 그 층은 잡동사니로 가득 차 있었고 복도는 새롭게 페인트칠이 되어 있었지만 천장에 거뭇거뭇한 흔적이 있었다.얼굴을 잃어 꽁꽁 싸매고 있는 한국인. 3년 전의 화재로 수지가 타죽었다면 그 여자는 수지의 신분을 대신했을 거다.강성연의 눈빛이 점점 어두워졌다. 그녀가 수지의 신분을 대신한 건
전화 건너편의 사람이 뭐라고 하자 수지가 대답했다.“아리 씨는 레겔 씨를 도울 생각이 없었어요. 오직 저만이 도울 수 있어요. 제가 X에게 있는 항체를 손에 넣어 반지훈을 구한다면 사람들의 믿음을 얻을 수 있을 거예요. 이제는 당신들이 이 거래를 할지 말지에 달려있어요.”수지는 전화를 끊은 뒤 고개도 돌리지 않고 복도를 떠났다. 복도에서 나온 지윤은 병실로 들어가는 사람을 서늘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강성연은 차 안에 앉아서 차창을 반쯤 내리고 창밖을 바라보았다.지윤이 병원에서 나와 차에 올라타자 강성연이 물었다.“수지 씨는 아직 떠나지 않은 건가요?”“네.”지윤이 대답했다.강성연은 시선을 내렸다. 비록 반지훈이 일부러 수지에게 관심 있는 척 보여 수지가 자신에게 기회가 있다고 착각하게 할 생각이었지만 그래도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설마 반지훈의 곁에 착 달라붙어 떠나지 않으려는 것일까? 여자와 남자가 단둘이 병실에 있다니, 혹시나 수지가 참지 못하고 달려든다면 지금 반지훈의 상태에 그녀를 밀어낼 수 있을까?스스로 괴로움을 자초한 꼴이었다.“아가씨, 수지 씨가 헨리 씨의 신분을 알아냈습니다.”그 말에 강성연이 위기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라졌다.“그녀가 어떻게 안 거죠?”“조금 전 수지 씨가 레겔의 사람에게 연락했습니다. 그녀는 헨리 씨가 X라면서 그의 손에 새로운 항체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그 항체를 얻을 생각인 듯합니다. 아마 내일쯤 움직일 것 같습니다.”지윤의 말에 강성연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지윤을 그곳에 남긴 덕에 많은 것을 알아냈다.수지는 X의 항체를 손에 넣을 생각인 듯했다. 어르신에게 내일이면 항체가 도착할 것이라고 자신감에 가득 차서 말한 이유가 있었다.강성연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그렇게 항체를 갖고 싶어 하는데 기회를 한 번 줘야겠네요.”다음 날, 세관 검사.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은백색 상자를 들고 세관을 빠져나와 차 앞에 서 있던 경호원 세 명에게 그 상자를 건넸다.경호원은 상자를 들고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