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훈은 의미심장하게 수지를 흘깃 보았다.“저와 수지 아가씨를 오해했을 거예요.”수지의 눈에서 의아한 빛이 잠깐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아, 그 아가씨를 말하는 거예요? 정말 죄송해요, 전 그날의 일 때문에 그 아가씨가 오해할 줄은 몰랐어요.”큰어르신은 좀 불쾌해 했다.“무슨 장난을 하는 거야? 수지 아가씨는 너의 은인이잖아. 네가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거의 죽을 뻔 할 때 강성연은 어디에 있었지?”“이혼을 했으면 완전히 인연을 끊어. 너도 강성연이 너의 생사에 대해 관심이 없다는 걸 깨닫게 되었잖아.”반지훈의 병이 엄중해져 입원할 때 강성연은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었다. 만약 수지와 X의 항체가 없다면 그가 어떻게 이 정도로 빨리 회복될 수 있겠는가?비록 3년 전의 일은 강성연과 상관이 없었고 반지훈은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했었다.그리고 강성연은 그때의 사고로 유산했으며 아버지와 희영까지 잃게 되었기 때문에 확실히 좀 가련했다.하지만 큰어르신은 자신의 손자가 또 무슨 사고가 날까 걱정되어 둘이 연을 끊길 바랐다.수지는 조용히 곁에서 듣고 있었다.그들이 꽤 오래 전에 이혼했다는 소식을 수지는 알고 있었다. 3년 동안 숨어있다가 다른 신분으로 반지훈 앞에 나타난 그녀는 “수지”라는 이름으로 다시 큰어르신과 반지훈의 신임을 얻게 되었다.하지만 그녀는 강성연 그 천한 것이 아직까지 살아있을 줄은 몰랐다.하지만 그녀가 살아있어도 괜찮다.예전 그녀가 그런 사고를 만들 수 있었으니, 과거의 사고를 재현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그녀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그 아가씨는 반 대표님의 전처였어요?”“수지 아가씨는 아직 결혼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손에 들고 있는 와인 잔을 흔들자 와인이 출렁이면서 아름다운 빛을 냈다.수지는 머뭇거리다가 눈을 내리깔았다.“네, 선생님은 많은 일을 저에게 맡기고 있어요. 너무 바빠서 연애할 시간도 없었어요.”반지훈은 무심하게 물었다.“좋아하는 사람은 있나요?”수지
“하지만 전 반지훈 대표가 그녀를 아주 사랑하고 있다는 걸 눈치챌 수 있어요.”수지는 이렇게 말하면서 반지훈의 표정을 자세하게 살폈다.하지만 반지훈은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그가 창문을 조금 내리자 차가운 바람이 차 안으로 들어와 그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어디서 그걸 눈치챈 거예요?”수지는 멈칫하더니 자연스럽게 대답했다.“여자의 직감이지요.”반지훈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사람의 마음은 움직이는 거예요. 예전에는 사랑했었겠죠.”수지는 속으로 깜짝 놀랐다. 설마 반지훈과 강성연 사이에 무슨 틈이라고 생긴 건가?그녀는 넌지시 물었다.“설마 반지훈 대표가 마음이 변한 거예요?”반지훈은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더니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수지 아가씨는 어떻게 생각하나요?”그녀는 심장이 떨렸다. 예전에 반지훈은 그녀를 제대로 본 적이 없었으며 여태껏 그녀는 반지훈의 눈빛이 자신에게 머무르기를 바라왔다.그녀가 병실에서 고의적으로 넘어졌을 때 반지훈은 그녀를 밀치지 않았다. 만약 그 천한 년이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면......“집에 도착했네요.”반지훈은 시선을 거두었다.“수지 아가씨, 들어가세요.”수지는 빙긋 웃었다.“고마워요.”그녀는 차에서 내리려고 하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고개를 돌렸다.“반지훈 대표님, 요즘 시간 있어요?”반지훈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스스럼없이 대답했다.“네.”그녀는 차문을 닫은 후 의기양양한 얼굴로 떠났다.그녀가 떠난 뒤에서야 연희승은 시동을 걸었고, 반지훈은 차 안의 향수 냄새가 역겨워 창문을 모두 내렸다.연희승은 백미러로 이를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강성연 아가씨는 대표님을 미남계를 사용해도 괜찮다고 해요?”외부인인 그도 수지가 반지훈 대표에게 마음이 있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반지훈 대표와 약속을 잡으려고 했다.반지훈은 어두워진 눈빛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강성연은 정원에 있는 정자에서 티 타임을 즐기고 있었다. 휴대폰에 문자 한 통이 뜬 뒤에서
“허.”아리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창 밖을 바라보았다.“반지훈이 감염된 M 바이러스는 변이된 새 바이러스야. 지금 반지훈은 감염 말기에 진입했어.”수지의 표정이 확 변했으며 두 손을 꽉 잡고 있었다.그때 남호연은 그녀에게 그것이 M 바이러스라고만 말했었고 다른 건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처음부터 강성연이 감염되게 할 생각이었다.그 후 만약 강성연의 함정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얼굴이 망가지지 않았을 것이고 남호연도 그렇게 그녀를 대하지 않았을 것이다.그녀는 계속 남호연 곁에 남아있으면 결과가 더 비참해질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Z국으로 돌아간 후 그 일을 꾸며 남호연에게서 벗어나려고 했다.갈 곳이 없었던 그녀는 수지를 만나게 되었으며, 수지가 아리의 학생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아리는 토론토 예술 아카데미의 강사지만 사실 존스의 삼촌이었으며 바이러스를 포함한 의학에 대해 꽤 연구가 있었다.심지어 그는 X와 선후배 사이였다.그리하여 그녀는 수지의 신분을 얻기 위해 화재를 꾸몄던 것이다.수지가 큰 화재에 목숨을 잃은 후, 그녀는 수지의 가족으로 가장하여 시체를 수령하고 수속을 했다. 그녀는 알리바이가 있었기 때문에 경찰은 간단한 일만 물은 후 그녀를 보냈다.그녀는 수지의 신분을 없애지 않았으며 수지의 카드에 있는 돈으로 성형 수술을 했다. 상처가 회복되는 1년 동안 그녀는 수지의 신분으로 아리에게 접근했다.아리는 화재에서 얼굴이 상한 그녀를 가련하게 여겨 그녀를 남겼다. 수지는 전에 대학교에 있었던 일을 남김없이 그녀에게 말했기 때문에 아리는 조금도 의심을 품지 않았다.그녀는 남호연이 자신을 발견할까 두려워 계속 얌전하게 아리 곁에 있었다.아리는 줄곧 의학 연구에서 X를 뛰어넘으려고 했고, X가 실종된 후에도 바이러스에 대한 연구를 포기하지 않았다.남호연이 죽고, 바이러스의 일이 드러나자 레겔은 직접 찾아와 아리의 도움을 청했다.그녀는 이 기회에 아리에게 반지훈을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아리가 그를 구한다면 그녀에게도 기회가
어르신은 고개를 끄덕였다.“시간이 필요할 거다. 지훈이는 이제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X에게 빨리해달라고 전해주길 바란다.”수지는 미소를 지었다.“걱정하지 마세요. 전 꼭 반지훈 씨를 구할 거예요.”수지는 병실로 들어갔다. 반지훈은 침대에 기대어 잡지를 읽고 있었는데 준수한 얼굴에는 핏기가 전혀 없었다.반지훈은 책을 펼치면서 시선 한 번 들지 않고 말했다.“살 방법이 없나 보네요.”“그럴 리가요?”수지는 침대 옆에 서서 입술을 깨물었다.“전 꼭 당신을 구할 거예요.”반지훈이 정말 죽을까?아니, 사실 그녀는 당시 반지훈을 공격할 생각이 없었고, 총으로 반지훈을 겨느리는 순간 후회했다.그녀는 빌어먹을 강성연에게 총을 쏠 생각이었으니 말이다.모두 강성연 때문이었다. 강성연이 없었다면 반지훈이 그녀를 대신해 총에 맞았을 리가 없었고 감염됐을 리도 없었다.페이지를 넘기던 반지훈이 잠깐 멈추면서 미간을 구겼다.“수지 씨는 절 아주 오랫동안 알고 있었던 것 같네요.”그 말에 수지는 얼어붙었다.반지훈은 잡지를 닫고 고개를 들어 수지의 시선을 마주했다. 수지의 눈빛이 잠깐 빛났고 그녀는 찔리는지 시선을 피하며 웃었다.“사실 전 당신에게 호감을 품고 있었어요. 반지훈 씨가 이렇게 젊은 나이에 죽는 걸 바라지 않아요.”“그래요?”그는 시선을 거두고 잡지를 탁자 위에 내려두더니 그녀를 보며 웃었다.“그럼 수지 씨가 절 구해주길 기대할게요.”수지는 순간 가슴이 두근거렸다.만약 반지훈이 그때 그녀를 그렇게 대하지 않았다면, 그녀를 그렇게 혐오하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하지만 아쉽게도 그녀는 지금 수지고, 더 이상 서영유가 될 수 없었다.반지훈은 그녀를 살펴보더니 그윽한 눈빛으로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수지 씨가 하이힐을 신은 모습이 어떨지 모르겠네요.”수지는 살짝 놀랐다. 그녀가 하이힐을 신지 않는 이유는 수지 같아 보이지 않을까 걱정돼서였고 혹시나 키때문에 다른 것을 들킬까 봐 두려워서였다.하지만 반지훈은 수지를 몰랐다.“반
수지는 웃었다.“그렇지.”“그것보다 수지 씨 예전에 사셀에서 일했었죠?”강성연의 말에 수지의 미소가 굳었다.“그랬지. 근데 왜?”강성연은 그녀가 인정하자 안색 하나 바뀌지 않고 말했다.“이상하네요. 9년 전에 저도 사셀에 있었는데 절 모르시나요?”수지는 클러치를 꽉 잡으며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한때 사고를 당한 적이 있어 기억을 잃었어.”수지는 고개를 숙여 시간을 확인했다.“이따 선생님이랑 만나서 대책을 얘기해봐야 해서 먼저 가볼게.”말을 마친 뒤 그녀는 곧장 강성연의 곁을 지나쳤다. 강성연은 그녀의 떠나는 뒷모습을 보면서 생각에 잠겼다.병실 밖에 선 강성연은 우연히 반지훈과 희승의 대화를 듣게 됐다.희승은 반지훈에게 보고하고 있었다. 레겔이 최근 Y국의 재벌 여 선생님과 만난 적이 있다고 한다. 레겔이 이렇게 Y국의 재벌 여 선생님을 회유하려 하는 것은 그의 재력 때문이다.그들의 든든한 금고가 되어주었던 롭이 무너진 뒤 그의 재산 중 절반은 황실이 몰수했고 나머지는 정부가 가져갔다.레겔이 항체를 독점해 주변 국가의 병원이나 귀족들에게 파는 이유가 항체를 이용해 정세를 뒤집기 위해서였다.희승은 그를 보며 말했다.“언론에서 대표님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대표님을 통해 그 항체가 효과가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은 것 같아요.”반지훈은 이불 위에 손을 올렸다.“여씨 집안이 이 일에 간섭했다는 거 할아버지도 알고 있어?”희승은 고개를 저었다.“아뇨.”반지훈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잠시 뒤 고개를 돌린 그는 벽에 기대어 서 있는 강성연을 보며 살짝 웃었다.“거기 서서 뭐 해?”희승은 고개를 돌렸고 그제야 강성연과 지윤이 문 앞에 서 있다는 걸 눈치챘다.강성연이 안으로 들어왔다.“당신들이 얘기 나누는 거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요.”희승은 지윤과 함께 밖으로 나갔고 병실 안에는 두 사람만 남았다.강성연은 창가에 서서 그를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반지훈이 꾀병을 부리는 게 아니란 걸 알고 있었다. 그의 준수한 얼
사고 때문에 기억을 잃었다고 하면서 사셀에 다닌 건 기억하다니, 얼마나 큰 사고였길래 얼굴을 전부 갈아엎은 걸까?그녀는 수지가 아니었다. 설사 성형을 했다고 해도 수지의 모습이 조금 남아있어야 할 텐데 전혀 달랐다.반지훈은 그녀가 성형했다는 걸 보아냈다. 분명 성형을 하기 전 얼굴이 망가진 적이 있어 ‘수지’가 사고를 당해 성형하게 됐다고 꾸며낸 것 같았다.수지가 사셀에 있었다는 걸 알고 있고 그녀의 신분으로 위장할 수 있다면 분명 수지와 가까운 사이일 거다.그러니 수지가 3년 전 누구랑 접촉한 적이 있는지 조사한다면 알 수 있을지도 몰랐다.강성연은 뭔가 떠올린 건지 입을 열었다.“조금 전 희승 씨가 Y국 재벌 여 선생님에 관해 말하던데 지금 사셀의 대표가 그예요. 그러니까 Y국의 여 선생님이 레겔의 금고란 말인가요?”반지훈은 웃음을 터뜨렸다.“어쩌면 그냥 자선사업을 하고 싶은 걸지도 모르잖아?”강성연은 중얼거렸다.“왜 그렇게 잘 알아요?”반지훈은 고개를 숙여 그녀의 손바닥을 주물렀다.“그는 여씨 집안의 사람이야. 우리 반씨 집안과 좀 관계가 있는 셈이지.”“무슨 관계요?”반지훈은 웃었다.“우리 할머니가 여씨 일가 사람이거든.”강성연은 놀랐다.반지훈의 할머니가 여씨 일가 사람이라고?그러고 보니 반씨 집안사람들에 대해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지만 반지훈의 할머니에 대해서는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반지훈이 말하지 않으니 굳이 묻지 않은 거다.겨우 이틀 사이, 언론은 반지훈의 병세를 알게 되었고 심지어 병원 1층에 몰려들어 항체가 효과가 있는지 물었다.그리고 적지 않은 기자들이 총회 건물 밖에 몰려들었다. 하지만 모습을 드러낸 관련 인사는 그저 간단한 설명만 했고 그의 얼버무리려는 태도에 네티즌과 대중들은 화가 났다.X가 연구한 항체도 사람들의 의심을 받았고 명성도 위태로운 상황이었다.“아리 씨, 항체에 문제가 없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서재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아리는 창문 앞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담배 연
“나한테서 그 항체를 가지고 싶은 건 아니지?”X는 안색 하나 바뀌지 않고 그의 핑계를 까발렸다. 아리는 다소 난감한 얼굴이었지만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했다.X는 몸을 일으켜 탁자 앞으로 걸어갔다. 그는 두 손으로 탁자를 짚으며 말했다.“그 항체는 줄 수 있어. 하지만 내게 약속 하나 해줘야겠어.”노크하려던 수지는 안에서 들리는 소리에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진짜 X가 메트로폴리탄의 헨리라니!심지어 그는 반지훈을 치료할 수 있는 항체를 갖고 있었다.수지의 안색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 무언가 떠올린 그녀는 입꼬리를 끌어올렸다.역시 죽으라는 법은 없었다. 만약 그녀가 항체를 손에 넣어 반지훈을 구한다면 정정당당하게 반지훈과 함께 있을 수 있을 거다.강성연은 3년 전 불이 났었던 아파트에 도착했다. 그 아파트는 한인 타운에 있는 아파트였고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도 대부분 한국인이었다.아파트는 완전히 새로워졌지만 사람이 타죽은 적이 있다 보니 창고나 다름없이 변했다.그녀는 집주인에게 물었다.“저 방에서 살던 수지 씨, 전에 누군가와 접촉한 적이 있나요? 예를 들면 친구요.”집주인은 잠깐 고민하다가 대답했다.“있어요. 아직 기억해요. 수지 씨가 당시 얼굴을 다친 여자를 집에 데려온 적 있는데 그 여자는 집 밖에 거의 나가지 않았어요. 가끔 나오긴 하는데 얼굴을 꽁꽁 싸매고 나왔어요.”강성연은 시선을 내리뜨렸다.“그 여자에 대해 기억하시나요?”집주인은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오래전 일이라 잘 기억나지 않네요. 그리고 얼굴도 잘 보지 못했어요. 그냥 키가 큰 한국인인 것만 기억해요.”집주인이 떠나고 난 뒤 강성연은 복도에 멈춰 서서 떠나지 않았다. 그 층은 잡동사니로 가득 차 있었고 복도는 새롭게 페인트칠이 되어 있었지만 천장에 거뭇거뭇한 흔적이 있었다.얼굴을 잃어 꽁꽁 싸매고 있는 한국인. 3년 전의 화재로 수지가 타죽었다면 그 여자는 수지의 신분을 대신했을 거다.강성연의 눈빛이 점점 어두워졌다. 그녀가 수지의 신분을 대신한 건
전화 건너편의 사람이 뭐라고 하자 수지가 대답했다.“아리 씨는 레겔 씨를 도울 생각이 없었어요. 오직 저만이 도울 수 있어요. 제가 X에게 있는 항체를 손에 넣어 반지훈을 구한다면 사람들의 믿음을 얻을 수 있을 거예요. 이제는 당신들이 이 거래를 할지 말지에 달려있어요.”수지는 전화를 끊은 뒤 고개도 돌리지 않고 복도를 떠났다. 복도에서 나온 지윤은 병실로 들어가는 사람을 서늘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강성연은 차 안에 앉아서 차창을 반쯤 내리고 창밖을 바라보았다.지윤이 병원에서 나와 차에 올라타자 강성연이 물었다.“수지 씨는 아직 떠나지 않은 건가요?”“네.”지윤이 대답했다.강성연은 시선을 내렸다. 비록 반지훈이 일부러 수지에게 관심 있는 척 보여 수지가 자신에게 기회가 있다고 착각하게 할 생각이었지만 그래도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설마 반지훈의 곁에 착 달라붙어 떠나지 않으려는 것일까? 여자와 남자가 단둘이 병실에 있다니, 혹시나 수지가 참지 못하고 달려든다면 지금 반지훈의 상태에 그녀를 밀어낼 수 있을까?스스로 괴로움을 자초한 꼴이었다.“아가씨, 수지 씨가 헨리 씨의 신분을 알아냈습니다.”그 말에 강성연이 위기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라졌다.“그녀가 어떻게 안 거죠?”“조금 전 수지 씨가 레겔의 사람에게 연락했습니다. 그녀는 헨리 씨가 X라면서 그의 손에 새로운 항체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그 항체를 얻을 생각인 듯합니다. 아마 내일쯤 움직일 것 같습니다.”지윤의 말에 강성연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지윤을 그곳에 남긴 덕에 많은 것을 알아냈다.수지는 X의 항체를 손에 넣을 생각인 듯했다. 어르신에게 내일이면 항체가 도착할 것이라고 자신감에 가득 차서 말한 이유가 있었다.강성연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그렇게 항체를 갖고 싶어 하는데 기회를 한 번 줘야겠네요.”다음 날, 세관 검사.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은백색 상자를 들고 세관을 빠져나와 차 앞에 서 있던 경호원 세 명에게 그 상자를 건넸다.경호원은 상자를 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