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간 지윤과 시언이는 병원에서 강성연과 함께 있어 줬고 반지훈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차 안에서 강성연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가을에 들어서서 그런지 거리 양쪽의 은행나무가 노랗게 변했다.바닥에 떨어진 노란색 나뭇잎은 마치 금빛의 카펫을 깔아놓은 듯했고 주위의 이국적인 건물들이 색채를 더했다.낙엽은 지나가는 차량에 따라 이리저리 날렸다.강성연은 강시언을 데리고 스턴 가든에 도착했다. 안에 들어가 보니 역시나 X가 거실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아버지.”강성연은 강시언을 데리고 그를 향해 걸어갔다.X는 강시언을 보고 말했다.“이 아이는 누구니?”“제 아이예요.”강성연은 강시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강시언이라고 해요.”X는 찻잔을 내려놓고 웃었다.“아들도 한 명 있었구나. 꽤 컸네.”강시언이 대답했다.“한 명이 아니라 세 명이에요. 저한테 남동생이랑 여동생이 있어요.”X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드러났다. 강성연은 웃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지윤이 강시언을 데리고 이곳저곳 구경하게 했고 자신은 거실에서 X와 대화를 나눴다. X는 그녀와 남호연 사이의 계략들을 듣고는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남씨 집안이 결국 실패할 줄은 몰랐네.”“남호연은 자기 할아버지가 바이러스를 연구한 첫 사람이라고 했어요. 아버지, 그의 할아버지를 아세요?”“내 아버지가 안다.”그는 찻잔을 들고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그는 M국 센니아 의대 최초의 대학원생이었어. 바이러스 유전자 세포에 관한 연구를 하다가 발각돼서 학교에서 자퇴를 권했다고 하더라.”강성연은 경악했다.“왜 자퇴를 권한 거죠?”“바이러스 유전자 세포를 연구한 취지는 좋았지만 그가 태어난 그 시대에는 바이러스에 관한 연구를 허락하지 않았어.”X는 강성연을 보며 말했다.“당시 그 시대 사람들은 바이러스 연구를 장악하지 못했어. 그리고 종교를 신앙하는 이도 있었는데 그들은 두려움을 느꼈고 심지어 다른 목적이 있는 건 아닐까 의심까지 하는 경우도 있었어.”강성연
후기는 감염된 지 3년이 지난 뒤다. 끝없이 각혈하고 면역력이 약해지며 미열이 지속된다. 결국에는 간이 견디지 못해 사망에 이르게 된다.강성연은 무언가 떠오른 건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참, 만약... 만약 M 바이러스가 잠복기 없이 감염되자마자 열이 나고 각혈까지 한다면 그런 유형의 바이러스는 뭐죠?”X는 몸을 돌려 그녀를 보았다.“그건 M 바이러스 변종이야. 그건 일반적인 M 바이러스보다 발병 속도가 빠르고 심지어 감염된 뒤 수명이 3, 4년밖에 되지 않아.”3, 4년이라니...강성연의 안색이 돌연 창백해졌다.왜 이렇게 된 걸까? 겨우 3, 4년의 수명이라니. 반지훈은 이미 3년째다!“성연아, 왜 그래?”X가 의아한 얼굴로 그녀를 보았다.강성연은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아버지, 감염된다면 아무런 방법이 없는 거예요?”X는 사색에 잠긴 듯 미간을 구겼다.“현재 의학 기술로는 아직 그 병리를 연구할 수 없어. 몇 년 뒤라면 가능할지도 몰라. 만약 진짜 감염됐다면 방법이 없어. 나도 네 어머니가 후기에 접어들었을 때 시험한 적이 있는데 소용이 없었어. 변종 M은 일반적인 바이러스보다 훨씬 더 다루기 어려워.”“아버지가 보관한 그 항체도 소용이 없나요?”반지훈의 수명이 불과 1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강성연은 무너질 것만 같았다. 일찍 눈치챘어야 하는데.리비어 아저씨는 반지훈이 심하게 앓고 있다고 했을 뿐, 그녀에게 어떤 병인지는 알려주지 않았다.그리고 반지훈도 그녀에게 얘기한 적이 없었다. 자신에게 수명이 얼마나 남았는지 반지훈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일을 숨기고 그녀에게 이혼을 강요했다. 자신이 오래 살지 못한다는 걸 알고 그녀에게 떠나라고 강요한 것이다.그는 3년을 고통 속에서 보냈을 것이다. 강성연이 그 사실을 알게 됐을 때도 반지훈은 절대 그녀의 앞에서 괴롭고 힘든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성연아, 반씨 집안 그 사람 때문에 그러는 거지?”X는 눈치챘다.강성연은 살짝 당황하며 고개
경호원이 문밖에 나타났다.“반 대표님, 희승 형님, 강성연 씨께서 오셨습니다.”반지훈은 흠칫하다가 놀라지 않은 척 태연히 대꾸했다.“들어오라고 해.”그는 원래 시언이가 그녀와 함께 있으면 며칠간 그녀와 보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강성연은 결국 그를 찾아왔다.강성연은 밖에서 안으로 들어왔다.그녀의 표정은 조금 어둡고 덤덤해서 아무런 이상함도 느낄 수 없었다.희승은 방에서 나가며 문을 닫았고 강성연은 책상 앞으로 걸어갔다.“일부러 나 안 만나려고 한 거예요?”반지훈은 개의치 않는다는 듯이 웃었다.“내가 그랬어?”강성연은 그의 앞에 있는 서류를 한쪽으로 치우고 말했다.“네. 퇴원할 때도 보러 오지 않았잖아요. 왜요? 약속을 어길 생각이에요?”그는 웃기만 할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강성연은 두 손으로 책상을 짚었다.“반지훈 씨, 약속을 어길 생각이라면 내일부터 난 다시는 당신 앞에 나타나지 않을 거예요.”반지훈은 꼼짝하지 않고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이 약간 어두웠다.강성연은 책상 위에 앉으며 그에게 몸을 기울였다. 해초처럼 부드러운 긴 머리가 그녀의 앞으로 쏟아지자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강성연은 손가락으로 그의 가슴팍에 있는 냅킨을 건드리며 말했다.“말하지 않는다면 묵인한 걸로 생각할게요. 그러면 내가 마지막으로.”“마지막으로 뭐?”반지훈이 목소리를 짜냈다. 그는 그녀의 손목을 잡았고 책상 위의 서류가 와르르 바닥에 떨어졌다. 강성연은 미처 막을 새도 없이 그의 품에 안겼다.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알면서 뭘 물어요?”그는 뜨거운 가슴팍으로 그녀를 끌어안았다.“성연아, 왜 날 찾아온 거야?”강성연은 그의 가슴팍에 기대며 말했다.“당신이 보고 싶어서요.”반지훈은 고개를 숙이고 그녀에게 입을 맞췄다. 두 사람은 서로의 몸을 맞대고 서로의 숨결이 섞일 정도로 가까이 붙었다. “왜 마지막이라고 해?”그는 그녀에게 입맞춤하는 것에 집중하면서 다시 물었다.강성연은 잠시 숨 쉴 틈이
화가 난 강성연은 콧소리를 내며 그의 품에 안겨 꼼짝하지 않았다.“피곤해요.”반지훈이 몸을 돌렸다.“피곤해?”강성연은 나른하게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당신이 알아서 해요.”“요망하긴.”반지훈은 그녀에게 깊게 키스하며 뜨거운 밤을 보냈다.다음날.강성연은 깨어난 뒤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 밖에서 들리는 인기척에 고개를 들어보니 어르신이 두 경호원과 함께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강성연을 보자 어르신은 살짝 당황하더니 이내 미간을 구겼다.“네가 왜 여기 있어?”강시언과 희승이 때마침 아래층으로 내려왔고 희승의 표정이 살짝 달라졌다. 그는 전전긍긍하며 그에게 다가갔다.“어르신, 오셨어요.”“내가 얘기하지 않았었니? 내 말을 귓등으로 들은 거야?”어르신은 강성연이 반지훈에게 접근하는 걸 희승이 그냥 내버려 뒀다고 그를 나무랐다.희승이 입을 열기도 전에 강시언이 차갑게 말했다.“엄마가 아빠도 못 만나요?”“너희 왜 이렇게 뻔뻔해?”어르신은 호통을 쳤다. 그의 증손자인 시언의 체면도 봐주지 않고 말이다.강성연은 덤덤한 얼굴로 앞치마를 벗으며 웃었다.“어르신, 저랑 반지훈 씨가 만나는 걸 막고 싶으세요? 어르신은 반지훈 씨 마음을 막을 수 있으신가요?”“무슨 뜻이냐?”“어르신도 보았다시피 3년 전이든 3년 뒤든 어르신은 저와 반지훈 씨의 감정을 막지 못해요.”어르신의 어두워진 표정과 옆에서 느껴지는 놀란 시선을 무시하고 강성연은 느긋하게 말했다.“제가 미운 건 알아요. 저 때문에 반지훈 씨가 바이러스에 감염됐으니 말이에요. 하지만 3년 전 누가 총을 쏜 건지 아세요? 총을 쏜 사람은 어르신께서 가장 아끼던 서영유였어요.”어르신은 경악했다.“무, 무슨 얘기를 하는 거냐?”“남호연 씨가 저한테 전부 얘기했어요. 3년 전, 반지훈 씨를 바이러스에 감염시킨 사람은 자신이라고. 하지만 총을 쏜 사람은 서영유였어요.”강성연은 차갑게 웃었다.“맞아요, 만약 반지훈 씨가 저 대신 총을 맞지 않았더라면 감염되지도 않았겠죠. 하지만 어르신은
틀림없이 어르신도 매우 후회될 것이다.“대표님?”희승은 반지훈이 계단에 서 있는 걸 보고 당황했다.조금 전 한 말을 전부 들었을까?반지훈은 천천히 아래층으로 내려와 강성연의 앞에 섰다. 그는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난 네가 이미 떠난 줄 알았어.”강성연은 식탁 위에 수저를 놓으며 말했다.“가기 전에 아들이랑 아이 아빠에게 아침이라도 해줘야지 않겠어요?”아이 아빠라는 말에 반지훈은 따스한 미소를 지었다.“이제 우리 할아버지 며칠 동안 밥도 잘 못 먹고 잠도 못 자면서 반성하겠네.”강성연은 시언에게 우유를 건네주며 말했다.“난 솔직히 얘기한 것뿐이에요. 내가 뭐 잘못했어요?”반지훈은 씩 웃더니 옆에 사람이 있는 것도 무시하고 그 자리에서 그녀를 안았다. 그는 그녀의 머리카락에서 나는 향기를 맡으며 말했다.“아니, 잘했어.”강성연은 옆에 사람이 있는 걸 보고는 얼굴을 붉히며 팔꿈치로 그를 밀어냈다.“장난치지 말고 얼른 아침 먹어요. 난 잠시 뒤에 돌아가야 해요.”“엄마, 또 가요?”이미 자리에 앉아 아침을 먹고 있던 강시언은 돌아간다는 말에 실망한 기색을 내비쳤다.강성연은 순간 심장이 철렁해 손을 뻗어 아이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엄마는 M국에 잠시 돌아갈 생각이야. 며칠 있다가 금방 올 거야. 그동안 엄마 대신 아빠 잘 보살피고 있어.”강시언은 고개를 끄덕였다.엄마는 겨우 며칠 떠나는 거였다. 오랫동안 떠나서 있는 것이 아니다...반지훈은 웃었고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그렇게 내가 걱정돼?”강성연은 느긋하게 달걀 껍데기를 까면서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답했다.“네. 다시 돌아왔을 때 안 보일까 봐 걱정돼서요.”반지훈은 살짝 당황했다. 그녀가 뭘 걱정하는지 알게 된 그는 평온한 얼굴로 평소처럼 웃으며 말했다.“그럴 리 없어.”**이틀 뒤.M국 산페이아스 성.검은색 승용차 한 대가 천천히 센니아 의대 캠퍼스 안을 달렸다. 창밖을 내다보니 불꽃처럼 붉은 단풍나무가 보였고 느긋한 걸음으로 거리를 누
X는 한참동안 넋을 잃고는 고개를 숙였다. “그래, 너의 존재가 바로 그녀가 나에게 보여주는 성공의 증거이구나…” 차가 실험동 앞에서 멈추었다. 문밖에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기다리고 있었는데, 두 명 모두 M국 사람이었다. 나이는약 30대로, 모두 흰색 업무용 의료복을 입고 있었으며 가슴 주머니에 ID카드를 달고 있었다. 머리를 기른 남자는 X를 보고 웃으며 격하게 반기었다. "정말 돌아오셨습니까?" "내가 돌아온 건 일단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마. 원장님에게도" X가 그에게 분부하니,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이 분은…” 성연은 M국 언론에 얼굴을 내민 적이 없으니, 그들이 모르는 게 당연했다. X는 성연을 보며 그에게 소개했다. “은희의 딸, 앨리스야” 남자와 여자 모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사무실에서 성연은 여자가 건넨 커피를 건네받으며 웃었다. "샤샤 언니, 고마워요" 샤샤는 마노의 옆에 앉았다. 그녀는 마노의 조수이자 아내였다. “천만에요. 마노와 저도 아가씨가 은희 씨의 따님이실 줄은 몰랐어요” 마노는 X를 바라보았다. “은희 씨는 그때…” 그는 말을 마치기도 전에 샤샤의 팔꿈치에 부딪혔다. “보스가 왜 갑자기 실험실로 돌아왔지?” 그녀는 X에게 다시 물었다.X는 커피를 마시며 대답했다. “이전 연구를 계속하려면 사람이 두 사람 정도는 필요하지” 마노는 어리둥절해했다. “네? 무증상 바이러스 실험 연구를 진행하시려구요?” “이번엔 변종 무증상 바이러스야, 한번 해보고 싶어” X가 잔을 내려놓았다. 샤샤는 마노와 눈이 마주쳤다. 둘 다 난감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저희는 감염된 사람의 혈액을 채취해야 하는데, 이제와서 어디서...” “제 피를 쓰세요” 성연은 당황하지 않고 말했다. “어머니가 무증상 감염자셨어요. 임신하기 전에 그 항체를 맞으셨고, 제 혈액 속에 무증상 바이러스의 유전자가 들어 있어요” 마노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말도 안돼, 이런 일은 1000분의 1 확률인데, 정말 한 건
마노는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의 피로 새로운 항체를 만들었다고 해도, 피를 뽑아 분해한 뒤 비활성혈 상태라면, 항체의 생존율이 굉장히 낮아요”즉, 매번 피를 뽑을 때마다 몇 초 밖에 안되는 짧은 분해 추출 기회가 있는 셈이다. 한번 실패하면 다시 피를 뽑아야 하니, 얼마나 많은 피를 뽑아야 하는가!만약 성공하지 못한다면, 피를 다 빼야 하나? X는 그의 걱정을 이해했다. 그도 원래 이 방법을 사용하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성연이 그를 믿는다고 말한 것을 생각하니, 그것도 그에게 약간의 심리적 부담을 주었다. 그는 그녀의 믿음을 저버리고 싶지 않았지만, 동시에 실패를 걱정했다. 당시의 그는 빠른 시간 안에 항체를 개발하지 못해 연은희를 구하지 못했다. 지금의 그는 할 수 있을까? 그 자신도 모른다. 그는 몇 년 동안 죄책감 속에서 살아왔다. 그는 무엇을 하든 상관없었지만, 실험만큼은 다시 하고 싶지 않았다. ‘엄마가 항체를 가져간 것도 실패하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겠죠?’ 귓가에 맴도는 말이 그의 결심을 굳혔고, 그는 정신을 가다듬고 대답했다. "해봐야 알지" 마노가 물었다. “그럼 앨리스 양도 동의했나요?” X는 자료를 내려놓고 웃으며 말했다. “그녀를 실망시킬 수 없겠지?”“그때 은희 씨 일을 가슴에 담아두고 계신 거라면, 최선을 다해 도와드리겠습니다. 제가 지금 바로 보스를 대신해서 연락을 돌려볼게요” ** S국, 장도 별장. 노랗게 마른 잎이 나비처럼 나무에서 떨어져 땅으로 돌아갔다.지훈은 책상 앞에 앉아 책을 뒤적거렸으나 마음은 딴 곳에 가 있었다. 고개를 돌려 창밖을 내다보는 그의 눈빛은 깊고 농후했다. 희승은 커피 한 잔을 들고 서재로 들어가 책상 위에 커피를 내려놓았다. "대표님. 성연 씨가 M국에 가서 뭐하시는지 묻지 않으십니까?" 지훈은 주먹을 쥔 채 입술에 대고 기침을 몇 번 했다. “그녀가 말하고 싶을 때 자연스럽게 말해 줄 거야” 원래 그는 하루라도 그녀를 만나지 않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
잠시 후, 그는 책을 덮었다. “가자, 가서 보자” 명란당은 가로수길에 위치해 있었다. 인사동 최고 맛집으로, “인사동 핫플레이스”로 불렸다. 복고풍의 건물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어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었다. 근처에는 골동품을 파는 전당포, 이색 중식당, 보석 가게, 주점, 카페 등이 있었다. 오가는 행인 대부분은 동양인 이였으며, 외국인도 있었다. 호화스러운 명란당 VIP룸에 두 사람이 서 있었다. 옆에 앉아 있던 다도 전문가는 우려낸 보이차를 다기에 따르고 찻물이 일렁거리지 않을때 까지 몇 초간 기다렸다. 이후 왼쪽부터 순서대로 손님 잔에 차를 따랐다. 큰 어르신은 찻잔을 들고 입을 열었다. "수지 양은 어느나라 사람인가? 다도에 대해 잘 아는 것 같군" 맞은편에 앉아 있는 여인은 하얀 자켓에 차분한 블랙 셔츠를 입고 있어, 시크한 분위기를 풍겼다. 검은 머리를 짧게 자르고 어깨까지 가지런히 빗어 귀 뒤로 넘겼다. 이목구비가 아름다웠으나 예리해 보였다. 수지는 미소 지었다. “아버지는 중국계, 어머니는 일본계이십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S국에 왔고, 다도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다” "그렇군" 큰 어르신은 찻잔을 내려놓았다. "X가 당신의 상사인데, 그 사람은 지금 어디 있지?" "선생님은 행방을 밝히지 말라고 하셨고, 저에게 이 자리에 갈 때 무언가를 전달해 달라 하셨습니다" 수지는 뒤에 있는 사람에게 구리로 된 상자를 건네달라 지시했다. 상자를 열자, 안에 있는 것이 깨지지 않도록 금벨벳 실크 천이 싸여져 있었다. 조심스럽게 감싸진 그 물건이 큰 어르신의 눈앞에 나타나자, 큰 어르신은 멍해졌다. "이건…." “최초의 무증상 바이러스” 수지의 얼굴색은 변하지 않았다. “당시 남 선생님이 개발한 것인데, 안타깝게도 남 선생님의 연구는 실패했습니다. 저희 선생님이 이것을 가지고 계신 이유는 이것이 있어야 지만 30년 전 그 바이러스에 대한 해독약을 개발할 수 있기 때문이죠” 30년 전 그 재난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