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훈은 걸음을 멈췄지만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난 죽음이 두렵지 않아. 난 다만 그녀 앞에서 죽을까 봐 두려운 것뿐이야.”반지훈은 고개를 돌렸다.“내일 시언이 불러서 같이 있게 해줘.”**다음 날, 강성연은 침대에 앉아 신문을 보고 있었다.역시나 남호연이 죽고 바이러스의 진실이 수면 위로 드러나자 그 사람들은 모든 걸 남씨 집안 탓으로 돌렸다.그들은 남씨 집안과 함께했던 일들에 관해서는 입 뻥끗하지 않았다. 그들은 남씨 집안이 연구한 기술을 이용했지만 남씨 집안이 망하고 남호연이 죽어 그에 연루될 걱정이 없었다.“엄마!”그 목소리에 강성연은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돌려 문밖을 바라보았다.곧이어 그녀의 눈시울이 붉어졌다.“시언아?”강시언은 빠르게 침대 옆으로 걸어갔고 강성연은 아이를 꼭 끌어안았다.“시언아, 정말 너야? 엄마 정말 너희들이 너무 보고 싶었어!”아이들은 이제 여덟 살이었다. 예전에는 조그마했었는데 3년이란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졌다.강시언은 강성연을 안았다.“엄마, 저희도 엄마 너무 보고 싶었어요. 저희는 계속 엄마가 돌아오길 기다렸어요.”“엄마, 울지 마세요.”강시언은 그녀의 눈물을 닦아줬다. 아들이 자신 때문에 마음 아파하자 강성연은 눈물을 닦고 웃음을 터뜨렸다.“그래. 엄마가 또 꿈을 꾸는 건 아니겠지?”강성연은 손으로 아이의 앳된 얼굴을 감쌌다. 정말 그녀의 아이 강시언이었다.S국에서 시언이 자신의 옆에 나타날 줄은 몰랐다.강시언은 고개를 저었다.“엄마, 당연히 꿈이 아니죠.”“그래. 이제는 꿈이 아니지.”그를 이렇게 만질 수 있는데 어떻게 꿈일 수가 있겠는가?“우리 시언이 정말 빨리 컸네. 엄마가 침대에 앉아있는데도 엄마랑 눈높이가 같아. 해신이랑 유이도 너 같을지 모르겠네.”아이는 반지훈과 아주 똑 닮았다.“해신이랑 유이는 당연히 저보다 크지 않죠. 전 이제 1m 50cm예요.”강시언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제가 큰다면 엄마랑 동생들을 지킬 수 있겠죠.”강성연은 뜸을 들이다가 손을
이틀간 지윤과 시언이는 병원에서 강성연과 함께 있어 줬고 반지훈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차 안에서 강성연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가을에 들어서서 그런지 거리 양쪽의 은행나무가 노랗게 변했다.바닥에 떨어진 노란색 나뭇잎은 마치 금빛의 카펫을 깔아놓은 듯했고 주위의 이국적인 건물들이 색채를 더했다.낙엽은 지나가는 차량에 따라 이리저리 날렸다.강성연은 강시언을 데리고 스턴 가든에 도착했다. 안에 들어가 보니 역시나 X가 거실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아버지.”강성연은 강시언을 데리고 그를 향해 걸어갔다.X는 강시언을 보고 말했다.“이 아이는 누구니?”“제 아이예요.”강성연은 강시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강시언이라고 해요.”X는 찻잔을 내려놓고 웃었다.“아들도 한 명 있었구나. 꽤 컸네.”강시언이 대답했다.“한 명이 아니라 세 명이에요. 저한테 남동생이랑 여동생이 있어요.”X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드러났다. 강성연은 웃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지윤이 강시언을 데리고 이곳저곳 구경하게 했고 자신은 거실에서 X와 대화를 나눴다. X는 그녀와 남호연 사이의 계략들을 듣고는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남씨 집안이 결국 실패할 줄은 몰랐네.”“남호연은 자기 할아버지가 바이러스를 연구한 첫 사람이라고 했어요. 아버지, 그의 할아버지를 아세요?”“내 아버지가 안다.”그는 찻잔을 들고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그는 M국 센니아 의대 최초의 대학원생이었어. 바이러스 유전자 세포에 관한 연구를 하다가 발각돼서 학교에서 자퇴를 권했다고 하더라.”강성연은 경악했다.“왜 자퇴를 권한 거죠?”“바이러스 유전자 세포를 연구한 취지는 좋았지만 그가 태어난 그 시대에는 바이러스에 관한 연구를 허락하지 않았어.”X는 강성연을 보며 말했다.“당시 그 시대 사람들은 바이러스 연구를 장악하지 못했어. 그리고 종교를 신앙하는 이도 있었는데 그들은 두려움을 느꼈고 심지어 다른 목적이 있는 건 아닐까 의심까지 하는 경우도 있었어.”강성연
후기는 감염된 지 3년이 지난 뒤다. 끝없이 각혈하고 면역력이 약해지며 미열이 지속된다. 결국에는 간이 견디지 못해 사망에 이르게 된다.강성연은 무언가 떠오른 건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참, 만약... 만약 M 바이러스가 잠복기 없이 감염되자마자 열이 나고 각혈까지 한다면 그런 유형의 바이러스는 뭐죠?”X는 몸을 돌려 그녀를 보았다.“그건 M 바이러스 변종이야. 그건 일반적인 M 바이러스보다 발병 속도가 빠르고 심지어 감염된 뒤 수명이 3, 4년밖에 되지 않아.”3, 4년이라니...강성연의 안색이 돌연 창백해졌다.왜 이렇게 된 걸까? 겨우 3, 4년의 수명이라니. 반지훈은 이미 3년째다!“성연아, 왜 그래?”X가 의아한 얼굴로 그녀를 보았다.강성연은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아버지, 감염된다면 아무런 방법이 없는 거예요?”X는 사색에 잠긴 듯 미간을 구겼다.“현재 의학 기술로는 아직 그 병리를 연구할 수 없어. 몇 년 뒤라면 가능할지도 몰라. 만약 진짜 감염됐다면 방법이 없어. 나도 네 어머니가 후기에 접어들었을 때 시험한 적이 있는데 소용이 없었어. 변종 M은 일반적인 바이러스보다 훨씬 더 다루기 어려워.”“아버지가 보관한 그 항체도 소용이 없나요?”반지훈의 수명이 불과 1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강성연은 무너질 것만 같았다. 일찍 눈치챘어야 하는데.리비어 아저씨는 반지훈이 심하게 앓고 있다고 했을 뿐, 그녀에게 어떤 병인지는 알려주지 않았다.그리고 반지훈도 그녀에게 얘기한 적이 없었다. 자신에게 수명이 얼마나 남았는지 반지훈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일을 숨기고 그녀에게 이혼을 강요했다. 자신이 오래 살지 못한다는 걸 알고 그녀에게 떠나라고 강요한 것이다.그는 3년을 고통 속에서 보냈을 것이다. 강성연이 그 사실을 알게 됐을 때도 반지훈은 절대 그녀의 앞에서 괴롭고 힘든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성연아, 반씨 집안 그 사람 때문에 그러는 거지?”X는 눈치챘다.강성연은 살짝 당황하며 고개
경호원이 문밖에 나타났다.“반 대표님, 희승 형님, 강성연 씨께서 오셨습니다.”반지훈은 흠칫하다가 놀라지 않은 척 태연히 대꾸했다.“들어오라고 해.”그는 원래 시언이가 그녀와 함께 있으면 며칠간 그녀와 보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강성연은 결국 그를 찾아왔다.강성연은 밖에서 안으로 들어왔다.그녀의 표정은 조금 어둡고 덤덤해서 아무런 이상함도 느낄 수 없었다.희승은 방에서 나가며 문을 닫았고 강성연은 책상 앞으로 걸어갔다.“일부러 나 안 만나려고 한 거예요?”반지훈은 개의치 않는다는 듯이 웃었다.“내가 그랬어?”강성연은 그의 앞에 있는 서류를 한쪽으로 치우고 말했다.“네. 퇴원할 때도 보러 오지 않았잖아요. 왜요? 약속을 어길 생각이에요?”그는 웃기만 할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강성연은 두 손으로 책상을 짚었다.“반지훈 씨, 약속을 어길 생각이라면 내일부터 난 다시는 당신 앞에 나타나지 않을 거예요.”반지훈은 꼼짝하지 않고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이 약간 어두웠다.강성연은 책상 위에 앉으며 그에게 몸을 기울였다. 해초처럼 부드러운 긴 머리가 그녀의 앞으로 쏟아지자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강성연은 손가락으로 그의 가슴팍에 있는 냅킨을 건드리며 말했다.“말하지 않는다면 묵인한 걸로 생각할게요. 그러면 내가 마지막으로.”“마지막으로 뭐?”반지훈이 목소리를 짜냈다. 그는 그녀의 손목을 잡았고 책상 위의 서류가 와르르 바닥에 떨어졌다. 강성연은 미처 막을 새도 없이 그의 품에 안겼다.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알면서 뭘 물어요?”그는 뜨거운 가슴팍으로 그녀를 끌어안았다.“성연아, 왜 날 찾아온 거야?”강성연은 그의 가슴팍에 기대며 말했다.“당신이 보고 싶어서요.”반지훈은 고개를 숙이고 그녀에게 입을 맞췄다. 두 사람은 서로의 몸을 맞대고 서로의 숨결이 섞일 정도로 가까이 붙었다. “왜 마지막이라고 해?”그는 그녀에게 입맞춤하는 것에 집중하면서 다시 물었다.강성연은 잠시 숨 쉴 틈이
화가 난 강성연은 콧소리를 내며 그의 품에 안겨 꼼짝하지 않았다.“피곤해요.”반지훈이 몸을 돌렸다.“피곤해?”강성연은 나른하게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당신이 알아서 해요.”“요망하긴.”반지훈은 그녀에게 깊게 키스하며 뜨거운 밤을 보냈다.다음날.강성연은 깨어난 뒤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 밖에서 들리는 인기척에 고개를 들어보니 어르신이 두 경호원과 함께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강성연을 보자 어르신은 살짝 당황하더니 이내 미간을 구겼다.“네가 왜 여기 있어?”강시언과 희승이 때마침 아래층으로 내려왔고 희승의 표정이 살짝 달라졌다. 그는 전전긍긍하며 그에게 다가갔다.“어르신, 오셨어요.”“내가 얘기하지 않았었니? 내 말을 귓등으로 들은 거야?”어르신은 강성연이 반지훈에게 접근하는 걸 희승이 그냥 내버려 뒀다고 그를 나무랐다.희승이 입을 열기도 전에 강시언이 차갑게 말했다.“엄마가 아빠도 못 만나요?”“너희 왜 이렇게 뻔뻔해?”어르신은 호통을 쳤다. 그의 증손자인 시언의 체면도 봐주지 않고 말이다.강성연은 덤덤한 얼굴로 앞치마를 벗으며 웃었다.“어르신, 저랑 반지훈 씨가 만나는 걸 막고 싶으세요? 어르신은 반지훈 씨 마음을 막을 수 있으신가요?”“무슨 뜻이냐?”“어르신도 보았다시피 3년 전이든 3년 뒤든 어르신은 저와 반지훈 씨의 감정을 막지 못해요.”어르신의 어두워진 표정과 옆에서 느껴지는 놀란 시선을 무시하고 강성연은 느긋하게 말했다.“제가 미운 건 알아요. 저 때문에 반지훈 씨가 바이러스에 감염됐으니 말이에요. 하지만 3년 전 누가 총을 쏜 건지 아세요? 총을 쏜 사람은 어르신께서 가장 아끼던 서영유였어요.”어르신은 경악했다.“무, 무슨 얘기를 하는 거냐?”“남호연 씨가 저한테 전부 얘기했어요. 3년 전, 반지훈 씨를 바이러스에 감염시킨 사람은 자신이라고. 하지만 총을 쏜 사람은 서영유였어요.”강성연은 차갑게 웃었다.“맞아요, 만약 반지훈 씨가 저 대신 총을 맞지 않았더라면 감염되지도 않았겠죠. 하지만 어르신은
틀림없이 어르신도 매우 후회될 것이다.“대표님?”희승은 반지훈이 계단에 서 있는 걸 보고 당황했다.조금 전 한 말을 전부 들었을까?반지훈은 천천히 아래층으로 내려와 강성연의 앞에 섰다. 그는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난 네가 이미 떠난 줄 알았어.”강성연은 식탁 위에 수저를 놓으며 말했다.“가기 전에 아들이랑 아이 아빠에게 아침이라도 해줘야지 않겠어요?”아이 아빠라는 말에 반지훈은 따스한 미소를 지었다.“이제 우리 할아버지 며칠 동안 밥도 잘 못 먹고 잠도 못 자면서 반성하겠네.”강성연은 시언에게 우유를 건네주며 말했다.“난 솔직히 얘기한 것뿐이에요. 내가 뭐 잘못했어요?”반지훈은 씩 웃더니 옆에 사람이 있는 것도 무시하고 그 자리에서 그녀를 안았다. 그는 그녀의 머리카락에서 나는 향기를 맡으며 말했다.“아니, 잘했어.”강성연은 옆에 사람이 있는 걸 보고는 얼굴을 붉히며 팔꿈치로 그를 밀어냈다.“장난치지 말고 얼른 아침 먹어요. 난 잠시 뒤에 돌아가야 해요.”“엄마, 또 가요?”이미 자리에 앉아 아침을 먹고 있던 강시언은 돌아간다는 말에 실망한 기색을 내비쳤다.강성연은 순간 심장이 철렁해 손을 뻗어 아이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엄마는 M국에 잠시 돌아갈 생각이야. 며칠 있다가 금방 올 거야. 그동안 엄마 대신 아빠 잘 보살피고 있어.”강시언은 고개를 끄덕였다.엄마는 겨우 며칠 떠나는 거였다. 오랫동안 떠나서 있는 것이 아니다...반지훈은 웃었고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그렇게 내가 걱정돼?”강성연은 느긋하게 달걀 껍데기를 까면서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답했다.“네. 다시 돌아왔을 때 안 보일까 봐 걱정돼서요.”반지훈은 살짝 당황했다. 그녀가 뭘 걱정하는지 알게 된 그는 평온한 얼굴로 평소처럼 웃으며 말했다.“그럴 리 없어.”**이틀 뒤.M국 산페이아스 성.검은색 승용차 한 대가 천천히 센니아 의대 캠퍼스 안을 달렸다. 창밖을 내다보니 불꽃처럼 붉은 단풍나무가 보였고 느긋한 걸음으로 거리를 누
X는 한참동안 넋을 잃고는 고개를 숙였다. “그래, 너의 존재가 바로 그녀가 나에게 보여주는 성공의 증거이구나…” 차가 실험동 앞에서 멈추었다. 문밖에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기다리고 있었는데, 두 명 모두 M국 사람이었다. 나이는약 30대로, 모두 흰색 업무용 의료복을 입고 있었으며 가슴 주머니에 ID카드를 달고 있었다. 머리를 기른 남자는 X를 보고 웃으며 격하게 반기었다. "정말 돌아오셨습니까?" "내가 돌아온 건 일단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마. 원장님에게도" X가 그에게 분부하니,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이 분은…” 성연은 M국 언론에 얼굴을 내민 적이 없으니, 그들이 모르는 게 당연했다. X는 성연을 보며 그에게 소개했다. “은희의 딸, 앨리스야” 남자와 여자 모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사무실에서 성연은 여자가 건넨 커피를 건네받으며 웃었다. "샤샤 언니, 고마워요" 샤샤는 마노의 옆에 앉았다. 그녀는 마노의 조수이자 아내였다. “천만에요. 마노와 저도 아가씨가 은희 씨의 따님이실 줄은 몰랐어요” 마노는 X를 바라보았다. “은희 씨는 그때…” 그는 말을 마치기도 전에 샤샤의 팔꿈치에 부딪혔다. “보스가 왜 갑자기 실험실로 돌아왔지?” 그녀는 X에게 다시 물었다.X는 커피를 마시며 대답했다. “이전 연구를 계속하려면 사람이 두 사람 정도는 필요하지” 마노는 어리둥절해했다. “네? 무증상 바이러스 실험 연구를 진행하시려구요?” “이번엔 변종 무증상 바이러스야, 한번 해보고 싶어” X가 잔을 내려놓았다. 샤샤는 마노와 눈이 마주쳤다. 둘 다 난감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저희는 감염된 사람의 혈액을 채취해야 하는데, 이제와서 어디서...” “제 피를 쓰세요” 성연은 당황하지 않고 말했다. “어머니가 무증상 감염자셨어요. 임신하기 전에 그 항체를 맞으셨고, 제 혈액 속에 무증상 바이러스의 유전자가 들어 있어요” 마노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말도 안돼, 이런 일은 1000분의 1 확률인데, 정말 한 건
마노는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의 피로 새로운 항체를 만들었다고 해도, 피를 뽑아 분해한 뒤 비활성혈 상태라면, 항체의 생존율이 굉장히 낮아요”즉, 매번 피를 뽑을 때마다 몇 초 밖에 안되는 짧은 분해 추출 기회가 있는 셈이다. 한번 실패하면 다시 피를 뽑아야 하니, 얼마나 많은 피를 뽑아야 하는가!만약 성공하지 못한다면, 피를 다 빼야 하나? X는 그의 걱정을 이해했다. 그도 원래 이 방법을 사용하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성연이 그를 믿는다고 말한 것을 생각하니, 그것도 그에게 약간의 심리적 부담을 주었다. 그는 그녀의 믿음을 저버리고 싶지 않았지만, 동시에 실패를 걱정했다. 당시의 그는 빠른 시간 안에 항체를 개발하지 못해 연은희를 구하지 못했다. 지금의 그는 할 수 있을까? 그 자신도 모른다. 그는 몇 년 동안 죄책감 속에서 살아왔다. 그는 무엇을 하든 상관없었지만, 실험만큼은 다시 하고 싶지 않았다. ‘엄마가 항체를 가져간 것도 실패하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겠죠?’ 귓가에 맴도는 말이 그의 결심을 굳혔고, 그는 정신을 가다듬고 대답했다. "해봐야 알지" 마노가 물었다. “그럼 앨리스 양도 동의했나요?” X는 자료를 내려놓고 웃으며 말했다. “그녀를 실망시킬 수 없겠지?”“그때 은희 씨 일을 가슴에 담아두고 계신 거라면, 최선을 다해 도와드리겠습니다. 제가 지금 바로 보스를 대신해서 연락을 돌려볼게요” ** S국, 장도 별장. 노랗게 마른 잎이 나비처럼 나무에서 떨어져 땅으로 돌아갔다.지훈은 책상 앞에 앉아 책을 뒤적거렸으나 마음은 딴 곳에 가 있었다. 고개를 돌려 창밖을 내다보는 그의 눈빛은 깊고 농후했다. 희승은 커피 한 잔을 들고 서재로 들어가 책상 위에 커피를 내려놓았다. "대표님. 성연 씨가 M국에 가서 뭐하시는지 묻지 않으십니까?" 지훈은 주먹을 쥔 채 입술에 대고 기침을 몇 번 했다. “그녀가 말하고 싶을 때 자연스럽게 말해 줄 거야” 원래 그는 하루라도 그녀를 만나지 않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