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AS 그룹은 호텔 파티 센터에서 성대한 파티를 주최하여 AS의 기사회생을 축하했다.AS그룹은 S국에서 성립된 지 60년이 되었으나 예전에는 매우 상황이 좋지 않았다. 원래 대표가 파산을 선포한 후 AS그룹은 누구도 인수받으려고 하지 않는 골치거리가 되었다.데이브 덕분에 AS는 기사회생했으며 그는 AS의 가장 큰 주주이자 대표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대학교에 다닐 때 AS에서 알바를 한 적이 있고 AS가 매우 좋았기 때문에 이렇게 몰락하는 것이 안타까워 AS를 인수한 것이라고 매체 앞에서 말했었다.이건 매우 감동적이고 유쾌한 답이었다. 일단 사실 여부는 제쳐두고, 데이브가 AS를 책임진 뒤로 AS의 시장 가치는 1년 사이에 70%나 올랐으며 S국에서 2번째로 큰 기업이 되어 승승장구했다.데이브는 각계의 지인들을 요청하여 함께 축하하려고 했다. 그 중 헨리에게 보낸 초대장은 강성연에게 전달되었으며 강성연은 헨리 대신 파티에 참석하게 되었다.커다란 파티장은 손님들로 북적거렸고 아직 파티가 시작되지 않았기 때문에 다들 한가롭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가장 많이 언급되는 화제는 상업계의 에피소드 외에 헨리의 신비한 딸에 대한 것이었다.그들은 M국의 헨리가 데이브와 지인 사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헨리는 지하 세계의 사람이지만 귀족과 같은 권력을 누리고 있기 때문에 상업계의 인사들과도 접촉이 있었다.그리고 헨리는 얼마 전에 딸을 다시 찾은 것이니 헨리의 딸과 결혼한다면 헨리의 모든 재산을 계승받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하지만 헨리의 신분으로 그의 딸은 왕자나 백작과도 결혼할 자격이 있었다.그리고 헨리의 딸은 S국에서 레겔 프린스의 접견을 거절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매우 흥미진진해하고 있었다.모든 손님들이 이미 도착했기 때문에 문 앞에 누군가가 나타나자 모든 사람들이 시선이 그곳으로 집중되었다.훤칠하게 생긴 여자는 목이 높은 블라우스에 와인색 정장을 입고 있었으며 루비 목걸이를 끼고 있었다.9부 정장 바지 밑으로 가느다란 발목이 보였으며 7센치
강성연이 말을 마치자 뒤에서 은색 상자를 안고 있던 사람이 앞으로 나서서 상자를 열었다. 상자 내부는 메탈 실크 패브릭으로 되어 있었는데 그 안에는 아주 정교하고 투명한 구룡옥배가 들어있었다.헨리가 이 나라의 골동품을 수집하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는 건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심지어 그것은 천금으로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물건이었다.역시나 데이브는 아주 기뻐했다.“저 대신 헨리 씨께 감사 인사를 전해주세요. 이 축하 선물 정말 마음에 드네요.”그는 옆 사람에게 그것을 건넸다.강성연이 옆 사람이 건네준 잔을 들고 데이브와 건배할 때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수군거리고 있었다. 감탄하는 사람도 있고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었다.“그녀가 정말 앨리스였다니.”“왜 가면을 쓰고 있는 걸까요? 누군가 그녀의 얼굴을 보는 게 두려운 걸까요?”“헨리 씨는 그녀를 아주 잘 보호하고 있어요. 언론도 그녀의 정보를 전혀 알아내지 못했잖아요. 모습을 드러낼 때도 가면을 쓰고 있으니 신비롭네요.”강성연은 그런 의논을 신경 쓸 겨를도 없이 곧장 그와 협력에 관한 얘기를 나눴다.데이브는 살짝 당황하더니 이내 웃어 보였다.“앨리스 씨는 AS랑 협력할 생각인가 보군요. 아쉽지만 한발 늦었어요.”늦었다니?그럴 리가?그녀는 이미 레겔을 앞섰다.잔을 든 강성연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강성연은 겉으로는 크게 내색하지 않고 아쉬운 얼굴로 말했다.“그런가요? 제가 한발 늦은 모양이군요. 그런데 누가 데이브 씨와의 협력할 기회를 잡은 건지 궁금하네요.”데이브는 꺼릴 것 없다는 듯이 거침없이 대답했다.“반지훈 씨입니다. Z국 사람인데 제 오랜 친구죠. 전 그와 협력하기로 약속했습니다.”반지훈이라는 말에 강성연의 안색이 돌변했다.데이브는 다른 곳을 바라보며 웃었다.“반지훈 씨가 오셨네요.”강성연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녀가 들고 있던 잔이 살짝 떨렸다. 마치 숨을 빼앗긴 사람처럼, 눈앞의 광경에 그녀는 눈이 따가웠다.반지훈은 휠체어에 앉아있었고 3년 전과는 몹시 다
“아가씨!”지윤이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종업원은 무척 당황한 얼굴로 허리를 숙이며 사과했다.강성연은 깔끔하게 손수건을 꺼내 닦으며 웃었다.“괜찮아요, 가보세요.”반지훈은 그녀를 보며 말했다.“제가 드레스 한 벌 준비하라고 할게요. 앨리스 씨한테 잘 어울릴 것 같네요. 파티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말이에요.”도중에 자리를 뜨려는 그녀의 의도를 읽은 것인지, 파티가 끝나지 않았다는 말로 반지훈은 그녀를 붙잡았다.데이브는 웃었다.“그러네요. 앨리스 씨가 제 파티에 참석해주셨는데 술을 흘린 옷을 입고 있을 수는 없죠. 이렇게 하면 제가 손님을 잘 대접하지 못했다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으니 말이에요.”강성연은 고개를 들며 흔쾌히 받아들였다.“그러면 부탁드릴게요, 반지훈 씨.”객실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을 때도 지윤이 함께 하게 했다. 강성연은 다른 사람이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게 지윤이 막을 것을 알고 있었다.문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지윤은 반지훈의 사람이 가져다준 옷을 강성연에게 건네주었다.강성연은 문을 닫은 뒤 정장을 벗고 루비 브로치를 뺐다. 반지훈이 휠체어에 앉은 모습과 리비어 아저씨가 반지훈이 심하게 앓고 있다는 말을 떠올리자 강성연의 눈빛이 조금 어두워졌다.그녀는 입고 있던 옷을 전부 벗은 뒤 반지훈이 사람을 시켜 보낸 물건을 집어 들었다. 안에는 보라색 상자가 있었고 상자를 열어보니 검푸른 드레스가 들어있었다.3년 전 그녀가 구씨 집안 파티에서 입었던 옷과 아주 비슷했다.다만 네크라인 뒷면의 디자인은 뚫려있는 게 아니라 얇은 베일로 돼 있었다.그가 왜...드레스를 쥔 손이 파르르 떨렸다. 강성연이 이제 막 드레스를 입었는데 전등이 갑자기 꺼졌다. 객실뿐만 아니라 복도의 전등까지 전부 말이다.“지윤 씨.”그녀는 문을 지키고 서 있던 지윤을 불렀다.“제가 가보겠습니다.”지윤이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강성연은 어둠에 적응하여 방에서 나왔다. 그녀는 이것이 정전이 아니라 누군가 고의로 한
반지훈은 싱긋 웃으며 그윽한 눈빛으로 말했다.“날 보고 싶지 않았다면 방에서 나오지 않으면 될 텐데 말이야.”강성연이 방에서 나왔다는 건 그를 보고 싶어 했다는 것이다.데이브는 이번 파티의 보안에 아주 신경을 썼다고 했다. 게다가 그녀는 헨리의 딸이었으니 누가 감히 쉽게 그녀를 건드릴까?물론 반지훈을 제외하면 말이다.게다가 반지훈은 떳떳한 얼굴이었다.강성연은 심장이 철렁했다. 사실 그녀는 정전 당시 누군가 의도적으로 그랬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강성연은 웃음을 터뜨렸다.“반지훈 씨는 뻔뻔한 점이 예전이랑 똑같네요.”반지훈은 인정하는 건지 대답하지 않았다.강성연은 더는 그와 얘기를 나누고 싶지 않아 지윤에게 말했다.“우린 가요.”지윤은 고개를 끄덕였고 반지훈을 힐끗 보고는 강성연의 뒤를 따랐다.그러나 등 뒤에서 낮은 목소리가 다시 한번 울려 퍼졌다.“데이브와 협력할 생각이라면 차라리 나랑 협력해.”강성연의 걸음이 뚝 멈췄다.반지훈이 다가와 그녀의 옆에 섰다.“연씨 집안을 위해서라도 넌 동의할 거야.”말을 마친 뒤 그는 먼저 걸음을 옮겨 자리를 떴다.주먹을 쥐고 있던 강성연은 천천히 손에서 힘을 풀었다. 입술에서 아직 그의 온기와 숨결이 느껴졌다.천 일 넘게 떠나있던 남자를 잊을 수 있을까?아니, 그녀는 단 한 번도 잊지 않았다.반지훈의 이름은 마치 양귀비처럼 한 번 손대면 인이 박여 끊으려야 끊을 수 없고 만지고 싶어도 만질 수 없다. 우습게도 그녀는 여전히 그 키스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파티장으로 돌아온 뒤 반지훈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휠체어에 앉아 데이브와 함께 외국인들과 담소를 나눴다.강성연은 눈을 가늘게 떴다. 아무리 봐도 아픈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데 휠체어에 앉아있다니, 진짜 아픈 건지 아니면 엄살을 부리는 건지 알 수 없었다.“앨리스 씨도 오셨네요. 그 드레스는 반지훈 씨가 선물하신 건가요? 아름답네요.”데이브의 시선이 강성연에게 멈췄다. 여전히 가면을 쓰고 있었지만 형언할
반지훈은 어두운 서재 안에 앉아서 미간을 주무르고 있었다. 희승이 따뜻한 물 한 잔 들고 서재로 들어왔다.최근 몇 년 사이, 반지훈은 수면제를 먹어야만 잠이 들 수 있었다.“반 대표님, 강성연 씨에 관한 것을 조사해 볼까요?”그녀가 어떻게 헨리와 가까워졌는지, 친자 확인은 어떻게 된 건지 궁금했다.반지훈의 눈빛이 어두워졌다.“그럴 필요 없어. 그녀와 메트로폴리탄의 관계는 대충 짐작 가거든.”리비어가 당시 왜 그녀의 어머니에게 충성을 다했는지, 심지어 강성연을 왜 그렇게 감쌌는지 이유가 명확했다.반지훈은 약상자에서 약 하나를 꺼냈지만 먹지 않았다.희승은 그를 보았다.“강성연 씨는 S국에 도착하자마자 노골적으로 레겔 씨를 건드렸어요. 그리고 오늘 밤 데이브의 파티에 모습을 드러낸 걸 보면 데이브를 끌어들이려는 것 같아요.”반지훈의 입꼬리가 의미심장하게 올라갔다.“하지만 그들은 내가 먼저 데이브를 끌어들였다는 걸 결코 예상하지 못할 거야.”레겔 뿐만 아니라 헨리도 몰랐을 것이다.그가 강성연에게 S국에 올 기회를 준 것도 진작 준비를 마쳐서일 것이다. 그래서 강성연은 연씨 집안 관할 지역을 놓고 레겔과 대놓고 싸웠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강성연이 연씨 집안을 위해 자신에게 연락할 것이라고 확신했다.반지훈은 수면제를 먹었다. 가장 보고 싶었던 여자를 만나 상사병이 나아서일까, 약효가 나타나기도 전에 반지훈은 잠이 들었다.오히려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한 건 강성연이었다. 그녀는 밤새 뒤척이며 잠들지 못했다.눈을 감으면 머릿속에 온통 반지훈의 모습이 떠올랐다.강성연은 침대맡의 전등을 켠 뒤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가서 커튼을 열었다. 은은한 달빛이 그녀의 몸 위로 드리워져 고즈넉한 아름다움이 있었다.강성연의 휴대폰에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 이때쯤이면 M국은 저녁 시간일 것이다.X가 보낸 문자였다.“데이브와의 협력을 다른 사람에게 빼앗겼다면서?”강성연은 지윤이 그에게 얘기했겠다고 생각해 답장했다.“네, 실망을 안겨드렸네요.”“실망이라
그녀는 두 경호원더러 밖에서 지키게 한 뒤 지윤과 함께 별장 안으로 들어갔다. 희승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오셨네요.”그는 지윤을 힐끗 보고 말했다.“대표님께서 혼자 올라오시라고 했습니다.”강성연은 걸음을 멈춘 뒤 지윤을 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려요. 난 괜찮아요.”지윤은 잠깐 주저했지만 반박하지 않고 강성연이 위층으로 올라가는 걸 지켜보았다.희승은 그녀를 훑어보더니 갑자기 웃어 보였다.“지윤 씨 실력이 좋다고 들었는데 시간 있으시면 언제 한 번 대결해 볼까요?”지윤은 희승을 힐끗 쳐다보더니 미간을 찌푸리지도, 고민하지도 않고 대답했다.“죽고 싶은 게 아니면요.”“...”강성연이 서재에 들어섰다. 남자는 그녀를 등진 채로 창가 앞에 서 있었다. 셔츠 하나 걸치고 있는데 예전처럼 사람을 안심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쓸쓸함이 조금 느껴졌다.그녀가 뒤에 서 있는 걸 느꼈는지 반지훈이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3년 동안 잘 지냈어?”강성연은 팔짱을 두른 채로 명확히 대답했다.“나랑 협력에 관한 일을 의논할 생각 아니었나요? 왜 갑자기 상관없는 얘기를 하시는 거죠?”반지훈은 몸을 돌려 다시 물었다.“잘 지냈어?”강성연은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말했다.“아주 잘 지냈죠. 자유롭고 여유롭게 말이에요.”그녀가 말을 마치자 반지훈이 말했다.“난 잘 못 지냈어.”강성연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의 눈동자에 잠시 이채가 감돌았지만 이내 사라졌다. 반지훈이 가까이 다가오자 강성연은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반지훈은 재빨리 팔을 뻗어 그녀의 뒤에 있는 책상을 짚으며 그녀를 품에 가뒀다.익숙한 기운이 다시금 자신을 감싸자 강성연은 잠깐 정신이 혼미해졌다.“성연아, 보고 싶었어.”강성연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그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성연아, 보고 싶었어.보고 싶었다고?당시 그녀를 밀어낸 사람은 다름 아닌 그였다.강성연은 차가운 얼굴로 무표정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몸 양옆으로 늘어뜨린 손을 움켜쥐었다.“반지
반지훈은 웃었다. 쓸쓸한 미소였다. 그는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널 만나면 참지 못할까 봐. 어젯밤 널 만났을 때처럼 말이야.”반지훈이 다가왔고 강성연은 피할 곳이 없었다.“성연아, 네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네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을 거야. 그런데 네가 나타났어.”3년간의 인내와 자제였다. 그는 강성연을 떠올리지 않기 위해 노력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속일 수는 있어도 자신은 속일 수 없었다.주먹을 꽉 쥐고 있던 강성연은 서서히 손에서 힘을 풀었다. 내리뜨린 속눈썹이 그녀의 눈동자에 담긴 감정을 감추었다. 그녀는 한참 뒤에야 손을 빼내며 말했다.“우선 협력에 관한 일부터 의논해요.”반지훈은 시선을 내리뜨리며 소리 없이 웃었다. 그는 책상 위에서 서류 하나를 들었다.“이건 데이브가 준 후보자 명단이야.”강성연은 당황했다.“그걸 왜 당신에게 줬죠?”본론을 얘기할 때가 되니 강성연은 예전과 같은 모습이었다. 그것만으로도 반지훈은 만족스러웠다.그는 그녀의 앞에 서더니 자료를 건네주었다.“그가 걱정하는 일이 우리가 걱정하는 일이기 때문이야.”서류를 건네받은 강성연은 열 개 넘는 이름을 확인했고 그중에는 데이브의 이름도 있었다.“데이브 씨가 대통령 후보라고요?”강성연은 깜짝 놀랐다. 데이브가 AS그룹을 이어받지 않았는가?반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데이브의 배경은 헨리가 얘기해줬겠지. 데이브 가문은 정계야. 그의 할아버지는 지지난번 대통령이었어. 부임한 지 3년도 안 돼 사고를 당하셨지.”강성연은 그를 보았다. 공적인 일에 반지훈은 아주 진지했다. 그는 예전처럼 침착하고 차분하게 말했다.“데이브는 자기 할아버지의 죽음이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고 생각해. 그래서 그는 수년간 비즈니스에만 관심 있는 투자자인 척했어.”반지훈은 강성연이 넋을 놓고 자신을 바라보자 일부러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무슨 문제 있어?”반지훈이 갑자기 다가오자 강성연은 문득 정신을 차리며 시선을 옮겼다. 그녀는 태연한 척하며 말했다.“그게 데이브 씨가 당신
그는 정말 도박할 수 있을까?그런데 그는 하필 도박에서 이겼다.강성연은 지윤이 그를 다치게 할 수 없었다. 반지훈이 들러붙는 모습에 비겁하다고 했지만 본인은?떠나보내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그녀도 똑같이 비겁한 것 아닐까?등 뒤의 사람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난 자신만만한 게 아니야. 그냥 널 믿는 거지.”그는 손을 뻗어 손바닥이 위로 향하게 하여 그녀의 손을 움켜쥐었다. 마디마디 불거진 손가락이 그녀의 손가락과 빈틈없이 얽혔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성연아, 미안해.”“미안하단 말이 무슨 소용이죠?”강성연은 어두워진 눈빛으로 자조하듯 웃었다. 그녀는 손을 빼내고 그의 품에서 나와 그의 옆에 섰고 그를 보지 않고 말했다.“아빠도, 희영 씨도, 아이도 죽었는데. 내가 그날 빗속에서...”“아이라니?”반지훈은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옅은 갈색의 눈동자에 복잡하고 또 경악한 감정이 아주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강성연은 입을 달싹거리기만 할 뿐 대답하지 않았다. 반지훈은 그녀가 임신했던 사실을 모를 것이다.반지훈은 몸을 일으켜 그의 옆에 서더니 그녀를 돌려세우며 말했다.“성연아, 너... 임신했었어?”임신했었다니...“왜, 왜 나한테 얘기하지 않았어?”반지훈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지며 안색이 더욱더 창백해졌다.강성연은 그를 바라보며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그녀는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잊었어요? 나랑 이혼하는 사실을 발표했던 날, 난 당신을 찾아갔어요. 그런데 당신은 날 만나주지 않았죠.”반지훈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무언가 말하고 싶은 얼굴이었는데 입술을 꾹 다물고 있었고 덤덤한 얼굴에 우울함이 드려졌다.이혼을 발표한 건 그의 뜻이 아니었지만 알고는 있었다.강성연은 덤덤하게 웃어 보였다.“빗속에서 한 시간을 기다렸는데 당신은 끝내 날 만나주지 않았죠.”“성연아, 난...”“반지훈 씨.”강성연은 차분한 표정으로 그의 말허리를 잘랐다.“난 당신을 미워하고 싶지만 미워할 이유가 없어요. 그 일들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