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훈은 다시 컴퓨터 스크린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건 "앨리스"라고 적인 자료였는데 내용이 아주 적었고 사진 한 장도 없었다.이때 그의 휴대폰으로 문자 한 통이 도착했고 S국에서 지내고 있던 옛 지인 데이브였다.**며칠 후 헨리 딸인 "앨리스" 아가씨가 레겔 프린스의 만남을 거절했다는 소식에 다들 의논이 분분했다.앨리스는 M국 황실의 중시를 받아 귀족 권력을 누리고 있는 헨리 선생님의 딸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S국 황실 귀족이었으니 정말 보기 드문 일이었다.그리고 앨리스는 레겔의 만남만 거절한 것이다. 황실이 앨리스 아가씨와의 만남을 요청했을 때 앨리스는 거절하지 않았다.화려하고도 장엄한 흰색 홀, 하녀가 곁에서 차를 따르고 있었다.안나 여왕은 올해 쉰 살이 넘었으며 큰공주의 조카딸로 밀러 황실을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녀의 노란색 눈동자를 본 강성연은 한 사람이 떠올랐다.강성연은 처음 황실의 접견을 받는 것이 아니었다. 9년 전 그녀는 디자이너 Zora의 신분으로 안나 여왕의 딸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때 안나 여왕의 딸은 결혼할 예정이었으며 한국 스타일을 좋아했기 때문에 그녀더러 한국 스타일 왕관을 디자인하라고 했었다.강성연은 처음 안나 여왕을 보게 된 것인데 여왕은 우아하면서도 대범했다."앨리스 아가씨의 얼굴을 보니 한 사람이 떠오르네요."강성연은 여왕이 이렇게 말할 줄 몰라 멈칫했다.그녀는 웃으면서 물었다."누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안나 여왕은 우아하게 찻잔을 들었다."연 백작의 손녀를 닮았어요."강성연은 눈을 내리깔면서 웃었다."네, 사실 그분은 저의 어머니입니다."안나 여왕은 깜짝 놀랐다."당신은 연 백작의 증손녀인가요?"강성연이 고개를 끄덕이자 안나 여왕은 찻잔을 내려놓으면서 말했다."그렇군요. 그러니까 연 왕작의 일에 손을 쓴 것이군요."강성연은 머뭇거리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알고 계셨어요?"안나 여왕은 빙긋 웃었다."당연히 알고 있지요. 저의 삼촌이 한 일을 전 다 알고 있어요. 연 씨 가문은
저녁, AS 그룹은 호텔 파티 센터에서 성대한 파티를 주최하여 AS의 기사회생을 축하했다.AS그룹은 S국에서 성립된 지 60년이 되었으나 예전에는 매우 상황이 좋지 않았다. 원래 대표가 파산을 선포한 후 AS그룹은 누구도 인수받으려고 하지 않는 골치거리가 되었다.데이브 덕분에 AS는 기사회생했으며 그는 AS의 가장 큰 주주이자 대표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대학교에 다닐 때 AS에서 알바를 한 적이 있고 AS가 매우 좋았기 때문에 이렇게 몰락하는 것이 안타까워 AS를 인수한 것이라고 매체 앞에서 말했었다.이건 매우 감동적이고 유쾌한 답이었다. 일단 사실 여부는 제쳐두고, 데이브가 AS를 책임진 뒤로 AS의 시장 가치는 1년 사이에 70%나 올랐으며 S국에서 2번째로 큰 기업이 되어 승승장구했다.데이브는 각계의 지인들을 요청하여 함께 축하하려고 했다. 그 중 헨리에게 보낸 초대장은 강성연에게 전달되었으며 강성연은 헨리 대신 파티에 참석하게 되었다.커다란 파티장은 손님들로 북적거렸고 아직 파티가 시작되지 않았기 때문에 다들 한가롭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가장 많이 언급되는 화제는 상업계의 에피소드 외에 헨리의 신비한 딸에 대한 것이었다.그들은 M국의 헨리가 데이브와 지인 사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헨리는 지하 세계의 사람이지만 귀족과 같은 권력을 누리고 있기 때문에 상업계의 인사들과도 접촉이 있었다.그리고 헨리는 얼마 전에 딸을 다시 찾은 것이니 헨리의 딸과 결혼한다면 헨리의 모든 재산을 계승받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하지만 헨리의 신분으로 그의 딸은 왕자나 백작과도 결혼할 자격이 있었다.그리고 헨리의 딸은 S국에서 레겔 프린스의 접견을 거절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매우 흥미진진해하고 있었다.모든 손님들이 이미 도착했기 때문에 문 앞에 누군가가 나타나자 모든 사람들이 시선이 그곳으로 집중되었다.훤칠하게 생긴 여자는 목이 높은 블라우스에 와인색 정장을 입고 있었으며 루비 목걸이를 끼고 있었다.9부 정장 바지 밑으로 가느다란 발목이 보였으며 7센치
강성연이 말을 마치자 뒤에서 은색 상자를 안고 있던 사람이 앞으로 나서서 상자를 열었다. 상자 내부는 메탈 실크 패브릭으로 되어 있었는데 그 안에는 아주 정교하고 투명한 구룡옥배가 들어있었다.헨리가 이 나라의 골동품을 수집하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는 건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심지어 그것은 천금으로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물건이었다.역시나 데이브는 아주 기뻐했다.“저 대신 헨리 씨께 감사 인사를 전해주세요. 이 축하 선물 정말 마음에 드네요.”그는 옆 사람에게 그것을 건넸다.강성연이 옆 사람이 건네준 잔을 들고 데이브와 건배할 때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수군거리고 있었다. 감탄하는 사람도 있고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었다.“그녀가 정말 앨리스였다니.”“왜 가면을 쓰고 있는 걸까요? 누군가 그녀의 얼굴을 보는 게 두려운 걸까요?”“헨리 씨는 그녀를 아주 잘 보호하고 있어요. 언론도 그녀의 정보를 전혀 알아내지 못했잖아요. 모습을 드러낼 때도 가면을 쓰고 있으니 신비롭네요.”강성연은 그런 의논을 신경 쓸 겨를도 없이 곧장 그와 협력에 관한 얘기를 나눴다.데이브는 살짝 당황하더니 이내 웃어 보였다.“앨리스 씨는 AS랑 협력할 생각인가 보군요. 아쉽지만 한발 늦었어요.”늦었다니?그럴 리가?그녀는 이미 레겔을 앞섰다.잔을 든 강성연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강성연은 겉으로는 크게 내색하지 않고 아쉬운 얼굴로 말했다.“그런가요? 제가 한발 늦은 모양이군요. 그런데 누가 데이브 씨와의 협력할 기회를 잡은 건지 궁금하네요.”데이브는 꺼릴 것 없다는 듯이 거침없이 대답했다.“반지훈 씨입니다. Z국 사람인데 제 오랜 친구죠. 전 그와 협력하기로 약속했습니다.”반지훈이라는 말에 강성연의 안색이 돌변했다.데이브는 다른 곳을 바라보며 웃었다.“반지훈 씨가 오셨네요.”강성연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녀가 들고 있던 잔이 살짝 떨렸다. 마치 숨을 빼앗긴 사람처럼, 눈앞의 광경에 그녀는 눈이 따가웠다.반지훈은 휠체어에 앉아있었고 3년 전과는 몹시 다
“아가씨!”지윤이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종업원은 무척 당황한 얼굴로 허리를 숙이며 사과했다.강성연은 깔끔하게 손수건을 꺼내 닦으며 웃었다.“괜찮아요, 가보세요.”반지훈은 그녀를 보며 말했다.“제가 드레스 한 벌 준비하라고 할게요. 앨리스 씨한테 잘 어울릴 것 같네요. 파티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말이에요.”도중에 자리를 뜨려는 그녀의 의도를 읽은 것인지, 파티가 끝나지 않았다는 말로 반지훈은 그녀를 붙잡았다.데이브는 웃었다.“그러네요. 앨리스 씨가 제 파티에 참석해주셨는데 술을 흘린 옷을 입고 있을 수는 없죠. 이렇게 하면 제가 손님을 잘 대접하지 못했다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으니 말이에요.”강성연은 고개를 들며 흔쾌히 받아들였다.“그러면 부탁드릴게요, 반지훈 씨.”객실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을 때도 지윤이 함께 하게 했다. 강성연은 다른 사람이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게 지윤이 막을 것을 알고 있었다.문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지윤은 반지훈의 사람이 가져다준 옷을 강성연에게 건네주었다.강성연은 문을 닫은 뒤 정장을 벗고 루비 브로치를 뺐다. 반지훈이 휠체어에 앉은 모습과 리비어 아저씨가 반지훈이 심하게 앓고 있다는 말을 떠올리자 강성연의 눈빛이 조금 어두워졌다.그녀는 입고 있던 옷을 전부 벗은 뒤 반지훈이 사람을 시켜 보낸 물건을 집어 들었다. 안에는 보라색 상자가 있었고 상자를 열어보니 검푸른 드레스가 들어있었다.3년 전 그녀가 구씨 집안 파티에서 입었던 옷과 아주 비슷했다.다만 네크라인 뒷면의 디자인은 뚫려있는 게 아니라 얇은 베일로 돼 있었다.그가 왜...드레스를 쥔 손이 파르르 떨렸다. 강성연이 이제 막 드레스를 입었는데 전등이 갑자기 꺼졌다. 객실뿐만 아니라 복도의 전등까지 전부 말이다.“지윤 씨.”그녀는 문을 지키고 서 있던 지윤을 불렀다.“제가 가보겠습니다.”지윤이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강성연은 어둠에 적응하여 방에서 나왔다. 그녀는 이것이 정전이 아니라 누군가 고의로 한
반지훈은 싱긋 웃으며 그윽한 눈빛으로 말했다.“날 보고 싶지 않았다면 방에서 나오지 않으면 될 텐데 말이야.”강성연이 방에서 나왔다는 건 그를 보고 싶어 했다는 것이다.데이브는 이번 파티의 보안에 아주 신경을 썼다고 했다. 게다가 그녀는 헨리의 딸이었으니 누가 감히 쉽게 그녀를 건드릴까?물론 반지훈을 제외하면 말이다.게다가 반지훈은 떳떳한 얼굴이었다.강성연은 심장이 철렁했다. 사실 그녀는 정전 당시 누군가 의도적으로 그랬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강성연은 웃음을 터뜨렸다.“반지훈 씨는 뻔뻔한 점이 예전이랑 똑같네요.”반지훈은 인정하는 건지 대답하지 않았다.강성연은 더는 그와 얘기를 나누고 싶지 않아 지윤에게 말했다.“우린 가요.”지윤은 고개를 끄덕였고 반지훈을 힐끗 보고는 강성연의 뒤를 따랐다.그러나 등 뒤에서 낮은 목소리가 다시 한번 울려 퍼졌다.“데이브와 협력할 생각이라면 차라리 나랑 협력해.”강성연의 걸음이 뚝 멈췄다.반지훈이 다가와 그녀의 옆에 섰다.“연씨 집안을 위해서라도 넌 동의할 거야.”말을 마친 뒤 그는 먼저 걸음을 옮겨 자리를 떴다.주먹을 쥐고 있던 강성연은 천천히 손에서 힘을 풀었다. 입술에서 아직 그의 온기와 숨결이 느껴졌다.천 일 넘게 떠나있던 남자를 잊을 수 있을까?아니, 그녀는 단 한 번도 잊지 않았다.반지훈의 이름은 마치 양귀비처럼 한 번 손대면 인이 박여 끊으려야 끊을 수 없고 만지고 싶어도 만질 수 없다. 우습게도 그녀는 여전히 그 키스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파티장으로 돌아온 뒤 반지훈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휠체어에 앉아 데이브와 함께 외국인들과 담소를 나눴다.강성연은 눈을 가늘게 떴다. 아무리 봐도 아픈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데 휠체어에 앉아있다니, 진짜 아픈 건지 아니면 엄살을 부리는 건지 알 수 없었다.“앨리스 씨도 오셨네요. 그 드레스는 반지훈 씨가 선물하신 건가요? 아름답네요.”데이브의 시선이 강성연에게 멈췄다. 여전히 가면을 쓰고 있었지만 형언할
반지훈은 어두운 서재 안에 앉아서 미간을 주무르고 있었다. 희승이 따뜻한 물 한 잔 들고 서재로 들어왔다.최근 몇 년 사이, 반지훈은 수면제를 먹어야만 잠이 들 수 있었다.“반 대표님, 강성연 씨에 관한 것을 조사해 볼까요?”그녀가 어떻게 헨리와 가까워졌는지, 친자 확인은 어떻게 된 건지 궁금했다.반지훈의 눈빛이 어두워졌다.“그럴 필요 없어. 그녀와 메트로폴리탄의 관계는 대충 짐작 가거든.”리비어가 당시 왜 그녀의 어머니에게 충성을 다했는지, 심지어 강성연을 왜 그렇게 감쌌는지 이유가 명확했다.반지훈은 약상자에서 약 하나를 꺼냈지만 먹지 않았다.희승은 그를 보았다.“강성연 씨는 S국에 도착하자마자 노골적으로 레겔 씨를 건드렸어요. 그리고 오늘 밤 데이브의 파티에 모습을 드러낸 걸 보면 데이브를 끌어들이려는 것 같아요.”반지훈의 입꼬리가 의미심장하게 올라갔다.“하지만 그들은 내가 먼저 데이브를 끌어들였다는 걸 결코 예상하지 못할 거야.”레겔 뿐만 아니라 헨리도 몰랐을 것이다.그가 강성연에게 S국에 올 기회를 준 것도 진작 준비를 마쳐서일 것이다. 그래서 강성연은 연씨 집안 관할 지역을 놓고 레겔과 대놓고 싸웠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강성연이 연씨 집안을 위해 자신에게 연락할 것이라고 확신했다.반지훈은 수면제를 먹었다. 가장 보고 싶었던 여자를 만나 상사병이 나아서일까, 약효가 나타나기도 전에 반지훈은 잠이 들었다.오히려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한 건 강성연이었다. 그녀는 밤새 뒤척이며 잠들지 못했다.눈을 감으면 머릿속에 온통 반지훈의 모습이 떠올랐다.강성연은 침대맡의 전등을 켠 뒤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가서 커튼을 열었다. 은은한 달빛이 그녀의 몸 위로 드리워져 고즈넉한 아름다움이 있었다.강성연의 휴대폰에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 이때쯤이면 M국은 저녁 시간일 것이다.X가 보낸 문자였다.“데이브와의 협력을 다른 사람에게 빼앗겼다면서?”강성연은 지윤이 그에게 얘기했겠다고 생각해 답장했다.“네, 실망을 안겨드렸네요.”“실망이라
그녀는 두 경호원더러 밖에서 지키게 한 뒤 지윤과 함께 별장 안으로 들어갔다. 희승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오셨네요.”그는 지윤을 힐끗 보고 말했다.“대표님께서 혼자 올라오시라고 했습니다.”강성연은 걸음을 멈춘 뒤 지윤을 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려요. 난 괜찮아요.”지윤은 잠깐 주저했지만 반박하지 않고 강성연이 위층으로 올라가는 걸 지켜보았다.희승은 그녀를 훑어보더니 갑자기 웃어 보였다.“지윤 씨 실력이 좋다고 들었는데 시간 있으시면 언제 한 번 대결해 볼까요?”지윤은 희승을 힐끗 쳐다보더니 미간을 찌푸리지도, 고민하지도 않고 대답했다.“죽고 싶은 게 아니면요.”“...”강성연이 서재에 들어섰다. 남자는 그녀를 등진 채로 창가 앞에 서 있었다. 셔츠 하나 걸치고 있는데 예전처럼 사람을 안심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쓸쓸함이 조금 느껴졌다.그녀가 뒤에 서 있는 걸 느꼈는지 반지훈이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3년 동안 잘 지냈어?”강성연은 팔짱을 두른 채로 명확히 대답했다.“나랑 협력에 관한 일을 의논할 생각 아니었나요? 왜 갑자기 상관없는 얘기를 하시는 거죠?”반지훈은 몸을 돌려 다시 물었다.“잘 지냈어?”강성연은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말했다.“아주 잘 지냈죠. 자유롭고 여유롭게 말이에요.”그녀가 말을 마치자 반지훈이 말했다.“난 잘 못 지냈어.”강성연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의 눈동자에 잠시 이채가 감돌았지만 이내 사라졌다. 반지훈이 가까이 다가오자 강성연은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반지훈은 재빨리 팔을 뻗어 그녀의 뒤에 있는 책상을 짚으며 그녀를 품에 가뒀다.익숙한 기운이 다시금 자신을 감싸자 강성연은 잠깐 정신이 혼미해졌다.“성연아, 보고 싶었어.”강성연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그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성연아, 보고 싶었어.보고 싶었다고?당시 그녀를 밀어낸 사람은 다름 아닌 그였다.강성연은 차가운 얼굴로 무표정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몸 양옆으로 늘어뜨린 손을 움켜쥐었다.“반지
반지훈은 웃었다. 쓸쓸한 미소였다. 그는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널 만나면 참지 못할까 봐. 어젯밤 널 만났을 때처럼 말이야.”반지훈이 다가왔고 강성연은 피할 곳이 없었다.“성연아, 네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네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을 거야. 그런데 네가 나타났어.”3년간의 인내와 자제였다. 그는 강성연을 떠올리지 않기 위해 노력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속일 수는 있어도 자신은 속일 수 없었다.주먹을 꽉 쥐고 있던 강성연은 서서히 손에서 힘을 풀었다. 내리뜨린 속눈썹이 그녀의 눈동자에 담긴 감정을 감추었다. 그녀는 한참 뒤에야 손을 빼내며 말했다.“우선 협력에 관한 일부터 의논해요.”반지훈은 시선을 내리뜨리며 소리 없이 웃었다. 그는 책상 위에서 서류 하나를 들었다.“이건 데이브가 준 후보자 명단이야.”강성연은 당황했다.“그걸 왜 당신에게 줬죠?”본론을 얘기할 때가 되니 강성연은 예전과 같은 모습이었다. 그것만으로도 반지훈은 만족스러웠다.그는 그녀의 앞에 서더니 자료를 건네주었다.“그가 걱정하는 일이 우리가 걱정하는 일이기 때문이야.”서류를 건네받은 강성연은 열 개 넘는 이름을 확인했고 그중에는 데이브의 이름도 있었다.“데이브 씨가 대통령 후보라고요?”강성연은 깜짝 놀랐다. 데이브가 AS그룹을 이어받지 않았는가?반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데이브의 배경은 헨리가 얘기해줬겠지. 데이브 가문은 정계야. 그의 할아버지는 지지난번 대통령이었어. 부임한 지 3년도 안 돼 사고를 당하셨지.”강성연은 그를 보았다. 공적인 일에 반지훈은 아주 진지했다. 그는 예전처럼 침착하고 차분하게 말했다.“데이브는 자기 할아버지의 죽음이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고 생각해. 그래서 그는 수년간 비즈니스에만 관심 있는 투자자인 척했어.”반지훈은 강성연이 넋을 놓고 자신을 바라보자 일부러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무슨 문제 있어?”반지훈이 갑자기 다가오자 강성연은 문득 정신을 차리며 시선을 옮겼다. 그녀는 태연한 척하며 말했다.“그게 데이브 씨가 당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