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훈은 시선을 내리뜨며 그녀의 정수리에 입을 맞췄다. 무언가 말하고 싶었는데 별안간 심하게 기침하기 시작했다.몸을 일으킨 강성연은 마음 아픈 얼굴로 말했다.“반지훈 씨, 괜찮아요?”반지훈은 손을 들어 입을 가리며 기침했다. 고개를 돌리는 순간 손바닥에서 따듯한 액체가 느껴졌고 반지훈은 잠시 당황했다. 그는 강성연이 눈치채지 못하게 주먹을 움켜쥔 채로 손을 내렸다. 그는 강성연을 향해 싱긋 웃어 보였다.“난 괜찮아. 그냥 사레들린 거야.”강성연은 입을 비죽였다.“배고프지는 않아요? 뭐 좀 먹을래요?”반지훈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말했다.“그 말 하니까 갑자기 배고프네. 네가 해준 음식 먹고 싶어.”강성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알겠어요. 내가 음식 해줄게요. 기다리고 있어요.”문가에 선 그녀는 때마침 리비어와 마주쳐서 말했다.“리비어 삼촌, 잠깐 저 대신 지훈 씨 좀 봐주세요.”리비어는 고개를 끄덕였다.강성연이 떠난 뒤 리비어는 병실로 들어갔고 반지훈이 손바닥을 펴서 보는 걸 보았다.“각혈했어요?”리비어는 알고 있었다.반지훈은 흠칫하더니 손을 움켜쥐었다.“네.”무언가 떠올린 그는 시선을 들어 그를 보았다.“어떻게 아셨어요?”리비어가 대답했다.“지금 당신은 상태가 좋지 않아요.”반지훈은 피가 묻은 손바닥을 움켜쥐며 덤덤한 어조로 말했다.“제가 어떤 상황인지 아시나요?”리비어는 시선을 내리뜨리며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당신은 M 바이러스에 감염됐어요.”병실 안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반지훈은 입을 꾹 다물더니 한참 뒤에 힘겹게 입을 열었다.“성연이는 알고 있나요?”“아직 몰라요. 라이언 의사랑 저를 빼고는 아무도 몰라요.”리비어가 대답했다.반지훈의 시선이 어둑어둑한 창밖으로 향했다. 그는 M 바이러스를 알고 있었다. 그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치료가 불가능해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M 바이러스를 치료할 수 있는 사람이 딱 한 명 있는데 그 사람은 이미 수십 년 전에 사라졌다.게다가 M 바이러스는
그러다가 잠복기가 끝나면 감염자는 지속해 각혈하게 되고 면역력도 현저히 떨어진다. 암 환자는 암세포가 더 빨리 퍼져나가고 신진대사도 활발히 진행되어 혈소판 수치가 비정상적이 된다. 그리고 몇 년 안에 갑작스레 죽게 된다.반지훈은 쓴웃음을 지었다.“그래서 전 얼마나 더 살 수 있나요?”리비어는 미간을 구겼다.“지금 당신 상황을 보면 3, 4년 정도 살 수 있어요.”...강성연은 직접 만든 음식을 가지고 병원에 도착했다. 병실에 들어서니 반지훈이 홀로 침대 위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리비어는 없었다.“반지훈 씨, 저녁 가지고 왔어요.”그녀는 침대 옆에 가서 앉더니 저녁을 침대 옆 서랍 위에 올려놓았다.반지훈은 창밖에서 시선을 거두고 그녀를 보더니 덤덤히 웃었다.“그래. 나 먹여주라.”강성연은 거절하지 않았다. 그녀는 도시락을 열더니 침대 옆에 앉아 숟가락을 들어 그의 입가에 가져다 댔다.반지훈이 음식을 먹자 강성연이 물었다.“리비어 아저씨는 갔어요?”“응. 일 있다고 먼저 갔어.”강성연은 그에게 음식을 먹이면서 웃었다.“맛있어요?”반지훈은 시선을 내리뜨리며 웃어 보였다.“네가 한 건데 어떻게 감히 맛없다고 하겠어?”강성연은 입을 비죽였다.반지훈이 음식을 비우자 강성연은 침대 옆 서랍에 놓인 도시락을 정리하고 말했다.“저녁엔 내가 옆에 있어 줄게요.”반지훈의 미련 가득한 눈빛이 그녀에게 멈추었다. 그는 어렵사리 ‘응’이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내뱉었다.강성연은 간호사에게 간이침대 하나를 부탁했고 베개를 베고 누웠다. 반지훈은 옆으로 누워 그녀를 보았다.“성연아.”“네?”강성연은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왜 그래요?”반지훈은 그윽한 눈빛으로 말했다.“만약... 내가 너한테 숨기는 게 있다면 나를 탓할 거야?”뜸을 들이던 강성연은 한참 뒤에야 이불을 끌어 올리며 말했다.“아뇨. 당신이 나한테 뭔가를 숨긴다면 그건 날 위해서겠죠.”반지훈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그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반지훈은 덤덤히 대답했다.“응. 입원할 필요 없어.”그는 희승을 보며 말했다.“귀국하게 티켓 준비해 둬. 모레 아침 비행기로.”희승은 당황했다.“하지만 몸이...”“내 몸은 내가 제일 잘 알아.”반지훈은 이미 결정을 내린 듯했다.희승은 난감한 얼굴로 반지훈의 할아버지를 보았고 할아버지는 소맷자락을 펄럭이며 말했다.“돌아가고 싶으면 돌아가. 난 간섭하지 않을 거다.”그는 화를 내며 병실을 떠났다.강성연은 이를 악물며 반지훈의 앞에 섰다.“어르신 말대로 해요. 며칠 뒤에 간다고 해도 늦지 않아요.”비행기를 오랫동안 타야 하는데 혹시나 상처가 벌어진다면 어떡한단 말인가?반지훈은 무덤덤한 눈빛으로 그녀를 보며 입을 꾹 다물었다. 강성연은 그의 눈빛을 보는 순간 심장이 철렁했다. 어쩐지 익숙하지 않은 느낌이었다.“반지훈 씨?”“난 반드시 돌아가야 해.”반지훈은 몸을 일으켰고 별다른 설명 없이 옆으로 걸어가 옷을 들었다.그가 윗옷을 벗을 때 강성연은 그의 등 뒤에 붕대가 감겨 있는 걸 똑똑히 보았다. 총상을 제외하고 칼에 베인 듯한 새로운 상처가 있었다. 아마 그날 밤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과 싸우다가 생긴 상처인 듯했다.강성연은 그의 등 뒤에 서더니 갑자기 그를 와락 끌어안았다. 그의 몸에서 온기가 느껴졌지만 체온이 조금 낮았다.반지훈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그는 곧바로 몸을 돌리며 그녀를 떼더니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하지 마.”그가 셔츠를 입자 강성연은 그를 대신해 단추를 잠갔다. 반지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녀를 말리지도 않았다.단추를 다 잠근 뒤 강성연은 시선을 내리뜨리며 말했다.“반지훈 씨, 나한테... 뭐 숨기는 거 있어요?”강성연은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그녀는 반지훈이 오늘따라 이상하게 그녀를 멀리하는 걸 느꼈다.반지훈의 그윽한 눈동자는 마치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호수 같았다.“묻지 않았으면 좋겠어.”양복바지를 집어 든 반지훈은 강성연이 멍한 얼굴로 그 자리에 서 있자 미간을 살짝 좁혔다.
찻잔을 들던 강성연의 손이 멈칫했다. 그녀는 시선을 내리뜨며 말했다.“아뇨. 저희랑 협력하기로 한 파트너예요.”오늘 반지훈이 퇴원한 뒤로 그녀는 반지훈을 보지 못했다. 심지어 희영도 그가 뭘 하는지 알지 못했다.차를 한 모금 마신 강성연은 갑자기 속이 울렁거려 입을 막고 화장실로 달려갔다.“Zora씨?”존스가 등 뒤에서 불렀지만 강성연은 대답할 수 없었다. 화장실로 달려가자마자 그녀는 세면대에 대고 점심에 먹은 것까지 전부 토했다.강성연은 수도꼭지를 틀어놓고 토사물을 씻어내렸다. 그러나 이내 속이 또 메슥거려 아무것도 나오지 않을 때까지 토했다. 그러고 나서 물로 얼굴을 씻은 뒤 휴지로 닦았다.화장실에서 나와보니 존스가 밖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존스는 강성연의 파랗게 질린 얼굴을 보고 말했다.“어디 불편해요?”“괜찮아요. 상한 음식을 먹었나 봐요.”강성연은 손을 저었다.“제가 병원까지 데려다줄까요?”존스의 질문에 강성연은 고개를 저으며 억지로 웃어 보였다.“진짜 괜찮아요. 마음만 받을게요. 전 돌아가서 쉬어야겠어요.”“그래요.”존스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객실로 돌아온 뒤 강성연은 따뜻한 물 한 잔을 마셨다. 그러나 물을 삼키자마자 또 속이 울렁거려 욕실로 달려가 토했다.강성연은 거울 속 자신의 창백한 얼굴을 마주했다. 위가 화끈거리는 걸 보니 정말 상한 음식을 먹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그녀는 먹은 게 없었다.누군가 벨을 누르자 강성연은 그제야 느긋하게 걸어가 문을 열었다. 반지훈을 보자 강성연은 살짝 당황했다.반지훈은 안으로 들어온 뒤 문을 닫으며 물었다.“어디 아파?”강성연은 눈을 깜박였다. 존스가 그를 만나 뭐라고 한 걸까? 강성연은 팔을 뻗어 반지훈의 목에 팔을 두르더니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네. 좀 아프네요. 나랑 같이 있어 줄래요?”반지훈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안아 들더니 방 안으로 들어가 그녀를 침대 위에 내려놓았다.“어디가 아픈데?”평소랑 달리 조곤조곤한 어조였다
강성연은 두 팔 벌려 그를 안은 뒤 그의 가슴팍에 고개를 묻었다.“알겠어요. 난 당신을 믿어요.”반지훈은 시선을 내리뜨렸다. 그의 눈동자는 마치 깊은 소용돌이에 빠진 것처럼 암담해졌다.**남호연은 무슨 소식을 들은 건지 휴대폰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그의 등 뒤에 서 있던 부하들은 고개를 숙인 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중 한 남자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리비어가 이 일에 끼어들었습니다. 그리고 반서준 씨도 돌아왔어요. 자기 손자가 다친 걸 알게 됐으니 절대 우리를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남호연은 창문 앞에 서서 전자담배를 피웠다. 유리 위에 연기가 번지면서 창문이 비춘 광경이 흐릿해졌다.“그 사람들이 반서준의 손에 들어갔다면 돌아오지 못할 거야.”남자는 안색이 흐렸다.“이제 어떻게 합니까?”남호연은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물었다.“레겔 쪽은 뭐라고 해?”남자가 대답했다.“저희 쪽에서 책임지고 처리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병원 쪽도 아마 반지훈이 감염된 사실을 알게 됐을 겁니다...”남호연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그는 서서히 고개를 돌렸다.“일단 사람부터 처리해. 바이러스 일은 아는 사람이 너무 많으면 안 되거든. 아직은 때가 아니야.”반지훈이 죽는다면 파라다이스는 무너질 것이다. 하지만 바이러스에 관한 소문이 갑자기 퍼진다면 조사국 사람이 이 일에 간섭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오히려 그들에게 불리했다.그는 자신이 얻은 성과가 물거품이 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전에 그는 반씨 집안이 그들의 후계자가 어떻게 약도 없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죽는지를 보여줄 생각이었다.어두컴컴한 지하실 안은 불빛이 어두웠다.남호연은 방 앞에 도착했다. 방은 크지 않았고 침대 하나에 서랍이 있었다. 서랍 위에는 피가 묻은 거즈와 각종 소염제가 있었고 침대 위에는 온몸에 붕대를 감은 채 얼굴 반쪽만 내놓고 링거를 맞는 사람이 있었다.발걸음 소리가 들리자 서영유는 눈을 떴다. 하지만 목이 메어 소리를 낼 수 없었다.남호연은 침대 옆에 앉더니 손을
성연은 고개를 돌려 그들을 보았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짐작할 수 있었고 굳이 그들에게 묻지 않았다. 리비어는 고개를 돌려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고 그녀에게 말했다. "혁이와 나는 할 일이 좀 있단다. 성연이는 먼저 돌아가렴" 성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때 희영이 달려왔다. “언니” 그녀는 숨을 헐떡였다. “여기 계셨네요, 어디 가신 줄 알았어요” “무슨 일 있어?” 그녀는 숨을 돌린 뒤 황급히 말했다. "대표님 상태가 좋지 않아요. 큰 어르신이 모시고 오라 하셨어요" 성연은 희영을 따라 급히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는 희승과 큰 어르신이 있었고 그 외에그녀가 본 적이 없는 남자 몇 명도 있었다. 아마 '파라다이스'의 사람일 것이다. 지훈은 창백한 얼굴을 하고 이마에 식은땀을 흐르는 채 누워 있었고, 큰 어르신은 개인 의사를 불러 그의 체온을 측정하게 했다. 의사는 체온계를 살폈다. "대표께서 미열이 있으신데,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그가 희승에게 묻자 희승은 깜짝 놀라며 대답하였다. "아침에 대표님이 돌아오실 때 어디불편해 보이셨어요" 성연은 흠칫하였다. 아침에? 설마 지훈이 어젯밤부터 미열이 있었나? 큰 어르신은 고개를 돌려 성연을 노려보았다. "어젯밤 지훈이는 너와 있었는데, 너는 애를 어떻게 돌본게냐? 미열인 줄도 몰랐던거냐?" "저는…" 그녀는 입술을 약간 떨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는 지훈에게 그녀와 함께 있어달라고 했고, 밤에 그는 그녀와 잠을 잤다. 그의 몸에 상처가 있어서 그녀는 몸을 뒤척일 때도 조심하였다. 그리고 아침에 지훈은 그녀에게 아프다고 말하지 않았다. 뒤에 있던 남성들은 한번 보니 대충 그녀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그녀를 본 거는 처음이라 꽤 흥미로워하는 눈치였다. 큰 어르신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지훈이가 너와 함께 한 이후로 걱정을 끼치지 않는 날이 없구나! 이러다가 네가 조만간 지훈이를 죽이겠어!" 방 안의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큰 어르신의 한마디에
"네" 성연의 시선이 아래를 향했다. “죄송해요, 열나는 줄 몰랐어요” 지훈은 손을 뻗어 그녀의 차가운 손등을 감싸며 입가에 웃음을 띄웠다. “난 너 걱정시키기 싫어서 말 안 했던 거야. 성연아, 미안해야 할 사람은 나야” 그가 그녀를 속인 것이다. 그는 자신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은 발병 기간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미열이 지속될 수도, 각혈을 할 수 있고, 체력이 저하될 수 있었다. 그는 3년에서 4년 정도의 시간밖에 없었다. 성연이 무슨 말을 하려 하자 큰 어르신이 문 밖에서 나타났다. "지훈아, 깨어났느냐?" "예"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큰 어르신은 성연을 힐끗 쳐다보았다. “너는 나가 있거라. 내 지훈이랑 할 말이 있다” 성연은 입을 닫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일어나 걸어나갔다. 지훈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눈빛은 점점 어두워졌다. 방 안에 그들만 남게 되자 큰 어르신은 물었다. "솔직히 말해 봐라, 도대체 어떻게 된 거냐?" 오늘 개인 의사와 상담한 결과 의사를 통해 그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보통 사람들은 미열을 앓으면 하룻밤을 자고 땀을 흘리면 회복될 수 있지만, 지훈은 어젯밤부터 다음날까지 회복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은 그를 걱정하게 했다. 지훈도 큰 어르신을 숨길 생각은 없었다. "저 바이러스에 감염됐습니다" 한마디.큰 어르신의 안색을 바꾸었다. "할아버지, 저를 위해 비밀로 해 주셨으면 합니다. 아버지나 아이들, 성연이도 몰라야 해요" 지훈은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큰 어르신은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고는 이를 악물었다. “어쩌다 감염된 거냐” 지훈은 침착한 표정으로 말했다. "총에 맞았을 때 총알에 그런 게 있었어요" "너 설마 네 목숨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게냐? 우리 회사에는 이제 너밖에 없는데, 너는 아직도 그 덜 자란 아이 세명만 감싸고 도는거냐!" 큰 어르신은 굵은 목소리로 호통쳤다. 시언과 해신이 반가의 자손이기는 하지만, 그 아이들은 고작 어린애다. 아
한참 뒤, 그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성연아, 우리 이혼하자” 그녀는 그 자리에 뻣뻣하게 굳어져 머리 속이 하얘졌다. 믿을 수 없는 듯 그를 쳐다보았다. “당신…뭐라했어요?” 지훈은 시선을 거두어 그녀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의 눈빛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내 말은, 우리 이혼하자” 이혼….두 글자가 그녀의 가슴을 깊이 찔렀다. 그가 이혼을 제기할 날이 올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애썼다. “이유는요?” 그녀는 그의 얼굴에서 감정을 읽으려고 했지만, 그의 창백한 얼굴은 변하지 않았고, 그 깊은 눈동자는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바다처럼 아무런 흔들림도, 감정도 없었다. "이유는 없어. 그냥…지겹다" 성연은 옆에 놓인 두 손을 움켜쥐었다.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파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지겨워......?" 그는 말이 없었다. 성연은 그의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래로 드리운 긴 속눈썹은 그녀의 눈빛 속 감정을 감추어 주었다. 그녀는 힘없이 웃으며 말했다. “지훈 씨, 지금 장난하는 거죠? 큰 어르신이 뭐라고 하셔서 그러는 거예요…?” "할아버지는 내 가족이야. 무슨 말을 하셨건 넌 물어볼 자격이 없어. 이혼은 내가 제기한 거야, 할아버지와는 상관없어. 넌 동의만 하면 돼" 지훈은 냉담한 눈빛을 보였다. "걱정 마, 이혼 후에도 자녀 양육권은 줄 테니. TG 지분 절반을 나눠줄 께. 그 돈으로 평생 쓰기에 충분할 꺼야" “지훈 씨!” 눈시울을 붉히며 그의 멱살을 잡아당기던 성연의 손이 떨리고 목이 메었다. "도대체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결혼하자던 건 당신인데 이젠 이혼을 하자니! 또 저를 속이는 거 맞죠, 이혼하자는 것도 저 속이는 거잖아요, 저한테 숨기는 일 있죠…." “너같이 사사건건 꼬치꼬치 캐묻는 여자 정말 짜증나, 내가 지겹다고. 내가 지겹다고 하는게 너 속이는 거 같아?” 지훈은 조롱하듯 웃으며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의 손을 뿌리쳐 옷깃을 여미며 말했다. "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