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연은 고개를 돌려 그들을 보았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짐작할 수 있었고 굳이 그들에게 묻지 않았다. 리비어는 고개를 돌려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고 그녀에게 말했다. "혁이와 나는 할 일이 좀 있단다. 성연이는 먼저 돌아가렴" 성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때 희영이 달려왔다. “언니” 그녀는 숨을 헐떡였다. “여기 계셨네요, 어디 가신 줄 알았어요” “무슨 일 있어?” 그녀는 숨을 돌린 뒤 황급히 말했다. "대표님 상태가 좋지 않아요. 큰 어르신이 모시고 오라 하셨어요" 성연은 희영을 따라 급히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는 희승과 큰 어르신이 있었고 그 외에그녀가 본 적이 없는 남자 몇 명도 있었다. 아마 '파라다이스'의 사람일 것이다. 지훈은 창백한 얼굴을 하고 이마에 식은땀을 흐르는 채 누워 있었고, 큰 어르신은 개인 의사를 불러 그의 체온을 측정하게 했다. 의사는 체온계를 살폈다. "대표께서 미열이 있으신데,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그가 희승에게 묻자 희승은 깜짝 놀라며 대답하였다. "아침에 대표님이 돌아오실 때 어디불편해 보이셨어요" 성연은 흠칫하였다. 아침에? 설마 지훈이 어젯밤부터 미열이 있었나? 큰 어르신은 고개를 돌려 성연을 노려보았다. "어젯밤 지훈이는 너와 있었는데, 너는 애를 어떻게 돌본게냐? 미열인 줄도 몰랐던거냐?" "저는…" 그녀는 입술을 약간 떨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는 지훈에게 그녀와 함께 있어달라고 했고, 밤에 그는 그녀와 잠을 잤다. 그의 몸에 상처가 있어서 그녀는 몸을 뒤척일 때도 조심하였다. 그리고 아침에 지훈은 그녀에게 아프다고 말하지 않았다. 뒤에 있던 남성들은 한번 보니 대충 그녀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그녀를 본 거는 처음이라 꽤 흥미로워하는 눈치였다. 큰 어르신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지훈이가 너와 함께 한 이후로 걱정을 끼치지 않는 날이 없구나! 이러다가 네가 조만간 지훈이를 죽이겠어!" 방 안의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큰 어르신의 한마디에
"네" 성연의 시선이 아래를 향했다. “죄송해요, 열나는 줄 몰랐어요” 지훈은 손을 뻗어 그녀의 차가운 손등을 감싸며 입가에 웃음을 띄웠다. “난 너 걱정시키기 싫어서 말 안 했던 거야. 성연아, 미안해야 할 사람은 나야” 그가 그녀를 속인 것이다. 그는 자신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은 발병 기간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미열이 지속될 수도, 각혈을 할 수 있고, 체력이 저하될 수 있었다. 그는 3년에서 4년 정도의 시간밖에 없었다. 성연이 무슨 말을 하려 하자 큰 어르신이 문 밖에서 나타났다. "지훈아, 깨어났느냐?" "예"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큰 어르신은 성연을 힐끗 쳐다보았다. “너는 나가 있거라. 내 지훈이랑 할 말이 있다” 성연은 입을 닫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일어나 걸어나갔다. 지훈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눈빛은 점점 어두워졌다. 방 안에 그들만 남게 되자 큰 어르신은 물었다. "솔직히 말해 봐라, 도대체 어떻게 된 거냐?" 오늘 개인 의사와 상담한 결과 의사를 통해 그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보통 사람들은 미열을 앓으면 하룻밤을 자고 땀을 흘리면 회복될 수 있지만, 지훈은 어젯밤부터 다음날까지 회복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은 그를 걱정하게 했다. 지훈도 큰 어르신을 숨길 생각은 없었다. "저 바이러스에 감염됐습니다" 한마디.큰 어르신의 안색을 바꾸었다. "할아버지, 저를 위해 비밀로 해 주셨으면 합니다. 아버지나 아이들, 성연이도 몰라야 해요" 지훈은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큰 어르신은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고는 이를 악물었다. “어쩌다 감염된 거냐” 지훈은 침착한 표정으로 말했다. "총에 맞았을 때 총알에 그런 게 있었어요" "너 설마 네 목숨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게냐? 우리 회사에는 이제 너밖에 없는데, 너는 아직도 그 덜 자란 아이 세명만 감싸고 도는거냐!" 큰 어르신은 굵은 목소리로 호통쳤다. 시언과 해신이 반가의 자손이기는 하지만, 그 아이들은 고작 어린애다. 아
한참 뒤, 그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성연아, 우리 이혼하자” 그녀는 그 자리에 뻣뻣하게 굳어져 머리 속이 하얘졌다. 믿을 수 없는 듯 그를 쳐다보았다. “당신…뭐라했어요?” 지훈은 시선을 거두어 그녀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의 눈빛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내 말은, 우리 이혼하자” 이혼….두 글자가 그녀의 가슴을 깊이 찔렀다. 그가 이혼을 제기할 날이 올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애썼다. “이유는요?” 그녀는 그의 얼굴에서 감정을 읽으려고 했지만, 그의 창백한 얼굴은 변하지 않았고, 그 깊은 눈동자는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바다처럼 아무런 흔들림도, 감정도 없었다. "이유는 없어. 그냥…지겹다" 성연은 옆에 놓인 두 손을 움켜쥐었다.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파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지겨워......?" 그는 말이 없었다. 성연은 그의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래로 드리운 긴 속눈썹은 그녀의 눈빛 속 감정을 감추어 주었다. 그녀는 힘없이 웃으며 말했다. “지훈 씨, 지금 장난하는 거죠? 큰 어르신이 뭐라고 하셔서 그러는 거예요…?” "할아버지는 내 가족이야. 무슨 말을 하셨건 넌 물어볼 자격이 없어. 이혼은 내가 제기한 거야, 할아버지와는 상관없어. 넌 동의만 하면 돼" 지훈은 냉담한 눈빛을 보였다. "걱정 마, 이혼 후에도 자녀 양육권은 줄 테니. TG 지분 절반을 나눠줄 께. 그 돈으로 평생 쓰기에 충분할 꺼야" “지훈 씨!” 눈시울을 붉히며 그의 멱살을 잡아당기던 성연의 손이 떨리고 목이 메었다. "도대체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결혼하자던 건 당신인데 이젠 이혼을 하자니! 또 저를 속이는 거 맞죠, 이혼하자는 것도 저 속이는 거잖아요, 저한테 숨기는 일 있죠…." “너같이 사사건건 꼬치꼬치 캐묻는 여자 정말 짜증나, 내가 지겹다고. 내가 지겹다고 하는게 너 속이는 거 같아?” 지훈은 조롱하듯 웃으며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의 손을 뿌리쳐 옷깃을 여미며 말했다. "귀
성연은 미소를 지으며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희영은 짐을 꾸리고 있었다. "희승에게 지훈 씨가 어디로 갔는지 물어봐 주세요" 희영은 어리둥절해 하다가 휴대전화를 꺼내 희승에게 전화를 걸었다. 희승이 무언가를 말하자희영은 깜짝 놀랐다. “오후 비행기 아니었어?” 희승이 무슨 말을 하고는 전화를 끊었고, 희영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대표님께서 이미 귀국하셨어요" 성연의 안색이 좋지 않자 희영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언니, 대표님과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어제 무슨 일 있었어요?" 그녀는 성연이 대표 방에서 나간 뒤부터 화가 난 상태로 저녁 식사도 하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희승에게도 물었지만 희승은 알려주지 않았다. “나랑 이혼을 하려 해요” "이......뭐요? 이혼?" 희영은 그녀에게 다가와 반문했다. "대표님이 이혼하신다고요? 농담하는 거 아니죠?" 희영조차도 그의 말이 장난이라고 생각하는데 성연이라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지훈은 자신을 피하기 위해 돌아가는 비행기 시간까지 앞당겼다. 그가 정말 그녀와 이혼하고 싶은걸까? 정말 싫증났나…. 비행기 안, 성연은 신문을 뒤적거리다가 마침 의사와 간호사 몇 명이 총에 맞았다는 기사를 보게 되었다. 사고가 난 병원은 바로 지훈이 입원해 있던 그 병원이었다.어쩐지 리비어 아저씨가 요즘 s국이 떠들썩 하다고 했는데, 그 사람들이 한 짓인가? 그런데 그들은 왜 그 간호사와 의사를 죽였을까?z국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벌써 저녁이었다. 성연은 블루오션이나 반가 저택이 아닌 본가 집으로 향했다. 강진은 침대에 누우려다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아래층으로 내려와 문을 열었다. 성연이 짐을 들고 문 밖에 서 있는 것을 보고 어리둥절했다. "성연아, 너…." 성연은 그를 안았다. "아빠, 저 돌아왔어요" 강진은 멍하니 있다가 그녀의 감정을 느낀 듯 머리를 만지며 속삭였다. "돌아왔으니 됐다. 무슨 일 있니?" 성연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웃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딸이 불행해 지는 걸 원하지 않아 떠나면서 말했다. "성연아, 자신을 불행하게 할 필요 없어. 네가 그와 이혼하더라도 이곳은 영원히 너의 집이야. 아빠는 언제든지 네가 돌아오는 것을 환영한단다" 성연은 멈칫 하다 고개를 숙이고 웃어보였다. 그녀도 아빠가 그녀를 위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그녀가 고통받는 걸 원치 않아 한다. 하지만 그녀는 단지 왜 지훈이 그녀와 이혼해야 하는지 알고 싶을 뿐이다. 그 사실을 알기 전까지 그녀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이전에는 그가 끈질기게 매달렸지만, 이번에는, 그녀 차례다! 다음 날. TG그룹. 희영을 통해 지훈이 회사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성연은 정성껏 꾸민 후 도시락을 싸들고 TG에 왔다. 희승은 사무실에서 나오다가 아름답고 우아하게 차려 입은 한 여인을 보고 어리둥절해하였다. "성연 씨, 왜…." 그는 성연이 원래 예쁜 것을 알고 있었지만 대표와 함께 한 후로는 화장을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에 화장 한 성연의 모습은 조금 놀라웠다. 성연은 문을 가리켰다. “들어가도 돼요?” 희승은 당황했다. 대표가 그녀를 들여보내지 말라고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문을 밀고 들어갔다. 지훈은 서류를 보고 있었고, 고개조차 들지 않았다. 왜냐면 그는 이미 문 밖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그녀가 온 걸 눈치 챘기 때문이다. 성연은 도시락을 탁자 위에 놓았다. 그는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 있어?" "뭐 안 먹었죠? 제가 직접 만든 디저트 먹어볼래요?" 성연은 도시락을 열었다. 하지만 그는 슬쩍 쳐다보기만 하였다. "일단 놔둬, 아직 바빠" 성연은 도시락통을 덮고 한쪽으로 밀어 둔 채 꿀 떨어지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저는 당신 바쁜 거 보고 있을게요" 지훈은 서류를 한 장 넘기다가 잠시 멈칫 하고 말을 잇지 못했다. 그가 바쁜 와중에도 성연은 그를 방해하지 않고 이따금씩 그의 뒤에 있는 책장에 진열된 책을 훑어보고, 또
성연은 다시 그의 차가운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그녀는 그의 몸에 바짝 달라붙어 은밀한 의도를 가지고 그를 감쌌다.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알았다. 지훈은 무관심했다. 그가 자랑하던 자제력이 때문이 아니라면, 그녀는 이미 그에게 있어 관심 대상이 아닌 것 이다. 그녀는 천천히 입술을 떼었다. 숨쉬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녀는 그가 정말 싫증이 난 거라고 믿어야 한다. 사랑하지 않는 걸까? 아니면 그가 그녀를 강제로 떠나게 하려는 걸까? 그녀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지훈 씨, 만약 제가 포기하지 않는다고 하면요?” 지훈은 멈칫했으나 이내 표정을 숨기고 고개를 돌렸다. “돌아가” 성연은 다가가 그를 안았다. 지훈은 몸을 바짝 긴장한 채 들어올린 손을 천천히 거둬들여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녀를 꼭 껴안아주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려 애썼다. 그녀의 목소리는 가냘펐다. "지훈 씨, 나는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믿지 않아요. 비록 사랑하지 않더라도, 나는 당신이 나를 다시 사랑하게 할 방법을 찾을 거예요" 지훈의 눈빛 속 당혹스러움은 이내 빠르게 사라졌다. 비록 그녀에 대한 사랑이 조금이라도 사라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그는 성연을 품에서 떼어놓았다. "일단 돌아가. 저녁에 데리러 갈게. 아이들 앞에서는 연기라도 해야지" 성연은 입을 닫았다. 비록 좀 서운하지만, 적어도 그들 사이에는 아이라는 연결 고리가 남아 있었다. 그녀가 사무실을 나설 때, 헛웃음 참을 수 없었다. 그녀와 그는 결국 아이라는 핑계를 가져야만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반지훈... 그는 정말 진심일까? 성연이 떠난 뒤 희승은 서류를 들고 사무실로 들어왔다. 지훈은 창가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고, 재떨이에 담배꽁초가 몇 개 더 있었는데, 희승은 그가 이렇게 많이 피우는 것을 처음 보았다. "대표님, 이 이혼 합의서는 정말…" 희승은
지훈은 재떨이를 한쪽으로 옮기고 손끝으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렸다. “연혁은 알아?” 그가 말하는 것은 s국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였다. 희승은 멈칫 하다 대답했다. “제 생각엔, 연혁도 알 것 같습니다” ** 성연은 곧 사람들에 의해 육가로 끌려갔다. 그녀는 연혁이 그녀를 찾아온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연희정이 그녀를 서재로 데려오자 연혁은 뒷짐을 지고 창가에 서서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반지훈과 너가 s국에서 습격을 당했느냐?" 성연은 담담하게 웃어 보였다. “소식이 빠르시네요” "허허, 그래도 s국이 내 영역이잖니. 사람들이 소식을 들으면 바로 나한테 보고하는 걸 보니 그 사람들도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 같구나" 연혁은 당황하지 않고 몸을 돌려 그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내 말에 틀린 것 없다. 네가 반지훈과 함께 있으면 설사 나라 할지라도 너에게 반가를 상대하라 할 수는 없겠지만,그들도 손 쓸 수는 없을게다" 성연은 앞으로 나아갔다. "연혁 선생님, 반가와 당신들의 연가의 일, 혹시 당신이 잘못 알고 있는것 같다고 생각해 본적 있으십니까?" 연혁은 정색하고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너는 아직도 반가를 돕겠다는 소리를 하는게냐?” 성연은 반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 그가 기분 상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녀는 줄곧 묻고 싶었다. "자, 그럼 직접적으로 묻겠습니다. 15년 전 반지훈의 생모가 납치된 일이 당신과 관계가 있습니까?" 연혁은 코웃음쳤다. "반가 사람들이 다 나라고 하지 않았니? 내가 뭘 더 설명해야 해?" 성연은 약간의 기대가 있었다. "그러니까 당신이 한 짓이 아니잖아요, 맞죠?" 연혁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내가 아니라고 할 수 있지. 하지만 반가와 연가 사이에 원한은 절대 풀릴 수 없다” 그녀는 침묵했다, 과연 그랬다. 연혁은 15년 전에 일어난 일을 알고 있었지만 반가는 그를 의심했고, 그는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았다. 그가 반가를 원망하고 반가가 어떻게 말하든 자신과는 관계 없기 때문이다. 그
성연은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엄마랑 아는 사이셨어요. 아저씨가 말해 주셨어요. 저희 엄마가 무증상 바이러스에 감염되어서 돌아가셨다고” 연희정은 입을 가린 채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연혁은 그 자리에 굳어 안색이 순식간에 변했다. 연혁은 연희정에게 성연을 데리고 나가라고 했다. 그는 혼자 조용한 서재에 있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색이 점점 나빠졌다. 연희정은 그녀와 함께 아래층으로 내려가며 갑자기 물었다. "성연아, 방금 한 말이 사실이니, 너희 엄마가 정말…" “네, 리비어 아저씨는 저를 속이지 않아요” 성연은 리비어가 어머니의 사인을 가지고 그녀를 속일 리는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방금 연혁의 안색을 떠올리고 약간의 의문을 가졌다. "이모, 외할아버지가 바이러스 얘기를 듣고 왜 안색이 변했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그녀가 이모라 부르자 연희정의 마음은 흐뭇해졌다. 한참 후에야 그녀는 마지못해 대답했다. "나도 몰라, 네 외할아버지는 네 엄마가 감염된 것을 몰랐고. 나조차도 몰랐다. 어쩐지 X와 함께 떠나더니…" “이제서야 그때 은희가 X만이 자신을 구할 수 있다고 한 이유를 알겠다. 하지만 결국 X는 은희를 구하지 못했지만…” 연희정의 눈빛에는 실의가 가득했다. 성연에게 말했다. “바이러스가 치료약이 없는 건 안다. X가 개발한 약으로 억제할 수 있다 하더라도 당시 연희의 상황은 전염병이 지나간 1년 후였어....” 연희정이 갑자기 멈추었다. "이모, 왜 그러세요?" 성연은 그녀의 안색이 점차 창백해지자 갑자기 걱정되었다. 연희정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바이러스의 잠복기는 1년, 즉 네 엄마는 전염병이 발생한 해에 이미 감염됐다는 뜻인데, 그럴 가능성이 크지 않아" 성연은 의아해했다.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연희정은 그녀에게 설명했다. "30년 전 그 재앙은 뒤늦게 터진 거야. 조사관이 감염의 원인이한 호텔의 물 탱크와 관련이 있다고 했는데 당시 네 엄마는 그 호텔에 가지 않았어. 게다가 바이러스에 감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