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도 제가 지훈이를 사랑하는 걸 알고 계시잖아요. 전 지훈이를 위해 그렇게 했던 거예요!"큰어르신은 그녀를 뿌리쳤다."지훈이를 위해서? 지훈이까지 해쳐놓고 지훈이를 위해서라고 말하는 거냐?"서영유는 동공이 수축되었다."아닙니다. 그 일은 정말 제가 한 게 아니에요. 현지의 일은 확실히 제가 한 거예요. 하지만 지훈이의 일은 윤혁의 짓이란 말이에요. 전 정말 모르고 있었어요!"큰어르신은 펑펑 울고 있는 서영유의 얼굴을 보지 않았다."난 원래 널 믿었고 널 보호하려고 했다. 하지만 네가 한 짓은 너무 도를 지나쳤어. 그리고 지훈이는 내 손자야."그날 밤 일이 서영유와 관련이 없다 하여도 지금까지 그녀가 저지른 건 작은 잘못이 아니었다. 그녀는 이미 범죄를 저지르고 있었다.큰어르신이 어떻게 사람의 목숨도 안중에 두지 않는 사람을 손자 곁에 둘 수 있겠는가?큰어르신은 몸을 돌렸다."자수하거라."자수?서영유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내가 어떻게 자수할 수 있어? 감옥에 가면 내 인생을 망치는 것과 다름이 없잖아!그녀는 별안간 테이블에 있던 가위로 자신을 찌르려고 했다. 큰어르신이 반응하기도 전에 희호는 재빨리 그녀를 제압했다.그리고는 바닥에 떨어진 가위를 멀리 걷어찼다."서영유 아가씨, 진정해요."희호는 그녀가 한 짓을 알고 매우 실망했지만 계속 바보 같은 짓을 하는 걸 보고 있을 수 없었다.서영유는 흐느끼면서 말했다."제가 자살하게 내버려 둬요. 전 감옥에 들어가면 안됩니다. 제가 저지른 일 때문에 서 씨 가문의 명성이 더러워지면 안돼요. 죽은 부모가 저에 대해 실망하는 것도 싫고요. 할아버지, 저의 부모에게 약속하셨잖아요, 절 잘 키워줄 거라고요. 제발 이렇게 빌게요, 절 감옥에 보내지 마세요. 감옥만 아니면 어디라고 좋습니다!"큰어르신이 대답하지 않자 그녀는 울면서 큰어르신에게 기어갔다."할아버지, 제가 여태껏 할아버지 곁에 있지 않았나요? 절 손녀처럼 예뻐했잖아요. 그러니 한 번만 봐주세요. 정말 감옥에 가고 싶지 않아요.
그는 혼잣말을 하고 있는 듯하였다.강성연은 눈을 내리깔면서 이렇게 말했다."좀 나아졌어요?""나아져도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현지 아버지는 자조적으로 말했다."아내도 죽고 딸도 죽었는데 전 왜 살아있는지 모르겠습니다."현지 아버지는 이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누구라도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강성연은 눈을 내리깔았다."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잘 아실 겁니다."현지 아버지는 멈칫하더니 멋쩍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네, 저도 인정합니다. 저희는 그 돈을 탐내지 말아야 했습니다."그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이렇게 말했다."사실 저희도 딸의 소식을 들었을 때 매우 슬펐습니다. 훈련 캠프에 찾아가 물어보니 자살이라고 하더군요, 저희 부부는 정말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훈련 캠프에서는 저희에게 배상금을 주면서 부검결과를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저희가 서울 호텔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 한 여자가 우리를 찾아왔습니다."그는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지 힘들게 입을 열었다."그녀는 저희에게 딸의 죽음이 당신과 관련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당신 때문에 현지가 죽은 것이라고요. 그녀가 당신의 회사 주소를 알려줬기 때문에 저와 아내가 찾아갔던 겁니다. 저와 아내가 그 돈에 이성을 놓았던 겁니다. 어쨌든 딸이 죽었으니 돈이라도 더 얻을 생각이었지요. 하지만......"그는 얼굴을 가리면서 울었다."그 여자는 정말 저희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전 일찍부터 경계하고 있었지만 결국 피하지 못한 거지요."현지 아버지는 매우 후회하고 자책했다.하지만 후회와 자책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강성연은 더 이상 그와 이야기하지 않고 묵묵히 병실에서 나왔다. 마침 반지훈도 통화가 끝났다.강성연은 그에게 다가갔다."반...... 아버님 쪽은 어떻게 되었어요?""역시 할아버지는 서 씨 가문의 은혜를 보고 그 여자를 놓아줬어."반지훈은 어두운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강성연은 입술을 깨물더니 그의 싸늘한 손을 잡았다."할아버지는 서영유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되었잖아
"노부인, 오셨어요?"강성연은 웃으면서 그녀를 맞이했다.남여진 부인은 자애롭게 웃었다."네가 정식적으로 회사를 성립했다고 들었다. 당연히 내가 와서 너를 지지해줘야지."강성연은 남여진을 존중했기 때문에 그녀 앞에 쪼그려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면 남여진은 힘들게 고개를 들면서 그녀와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없었다."부인께서 지지해주시면 꼭 불티나게 팔릴 겁니다. 아마 서울시의 동종업자들이 저를 다 질투하겠죠?"남여진 부인은 싱글벙글 웃었다."너도 참, 나를 추어올리기만 하는구나."강성연은 휠체어를 밀면서 귀빈실로 향했다. 그리고 이미 준비한 찻잔을 부인에게 건네주었다."노부인, 최근 무탈하셨죠?""걱정하지마, 잘 지내고 있어."남여진 부인은 찻잔에 담긴 차를 호호 불었다."한동안 널 보지 못해서 이 늙은이를 잊은 줄 알았어."강성연은 배시시 웃었다."그럴 리가요. 제가 누굴 잊어도 부인은 잊을 수 없죠."남여진 부인은 차를 마시면서 말했다."예전에 나와 1년 안에 너의 주얼리를 세계에 알리겠다고 약속했잖아. 지금 보아하니 1년도 필요 없겠어."강성연은 멈칫하다가 낮게 웃으며 말했다."지금 그저 시작이 좋은 것에 불과해요."남여진 부인은 손을 저었다."시작이 좋은 것도 좋은 거지. 아니면 내가 오늘 왜 널 찾아왔겠니? 지금 좋은 기회가 생겼어."기회?강성연이 반응하기도 전에 남여진 부인은 이렇게 말했다."다음달 초, S국의 칸 주얼리 쇼가 바로 너의 기회야. 네가 칸 주얼리 쇼에 가본 적이 있다는 걸 알지만 그건 사셀을 대표해서 간 거잖아. 이번에 너는 스스로의 브랜드를 대표하여 갈 수 있어."강성연은 확실히 칸 주얼리 쇼에 초청된 적이 있었다. 예전 그녀는 사셀에 있을 때 "한국풍"의 주얼리로 칸에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S국 사람들은 zora가 사셀의 주얼리 디자이너라는 것만 알고 있었고 그녀의 작품도 사셀 브랜드 작품에 속했다.저작권이 강성연 손에 없으니 그녀는 그저 명성만 얻은 것이었다.하지만 soul
강성연은 웃음이 터졌다.반지훈의 말대로 반지훈의 할아버지는 서씨 집안의 체면을 생각해 서영유를 봐주겠지만 반지훈의 아버지는 그런 걸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이 방법이라면 서영유를 막다른 길에 몰아넣고 빠져나갈 구멍까지 철저히 막을 수 있었다.서영유는 평생을 숨어서 살 거나 얌전히 감옥에 가야 할 것이다.**골목길에 있는 눈에 띄지 않는 모텔 안.방 안에 숨어있던 서영유는 도시 전체로 퍼져나간 자신의 수배 소식을 알고는 표정이 무섭게 변했다.반씨 집안은 그녀를 절벽 끝으로 내몰았다.빌어먹을. 처음부터 난 반지훈과 망할 강성연의 손아귀에 놀아난 거였어!반씨 집안이 먼저 매정하게 굴었으니 날 탓하지 말아!서영유는 휴대폰을 들더니 단 한 번도 먼저 연락한 적 없던 해외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잠시 뒤 전화 건너편에서 남자의 냉소가 들렸다.“왜, 이제야 내가 떠오르나 보지?”서영유는 입술을 깨물었다. 벼랑 끝으로 내몰리지만 않았다면 절대 그를 찾지 않았을 것이다!“남호연 씨, 나 좀 구해줘요.”“널 구해달라고?”남자의 목소리에서는 그 어떤 온기도 느껴지지 않았다.“내가 왜 널 구해야 하지?”상대의 비아냥에 서영유의 표정이 굳었다. 하지만 그를 제외하고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서영유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더니 이를 악물었다.“남호연 씨, 예전에 나랑 약속했잖아요. 내가 당신을 도와 반씨 집안을 상대한다면 날 도와주겠다고요.”“하.”남자는 조롱 섞인 어조로 말했다.“반지훈이 너에게 반씨 집안 사모님 자리 안 주겠다고 했나 보네. 그래서 화가 나서 내가 떠올랐나 보지?”“남호연 씨, 날 도와준다면 뭐든 할게요...”“서영유. 난 주제 파악 못 하는 여자는 싫어해.”남자는 그 말에 웃음을 터뜨리며 그녀의 말허리를 잘랐다.“내가 너랑 한 번 잤다고 해서 조건 없이 널 도울 거라는 생각은 집어치워. 알겠어?”수모를 당한 서영유는 얼굴에서 핏기가 서서히 사라졌고 어깨가 파르르 떨렸다.“진심이라면 일단 날 도와 반지
강성연은 미간을 구겼다.“난 그 여자들을 말한 거예요!”반지훈은 가볍게 웃었다.“넌 아니야?”“...”단단히 화가 난 강성연은 그의 손에서 머리카락을 빼냈다.“당신을 덮치는 건 이미 싫증 났는데 다른 남자 덮치면 안 돼요?”반지훈은 별안간 차가워진 얼굴로 말했다.“누굴 덮치고 싶은데?”강성연은 일부러 희승을 바라보았다.백미러를 통해 무언가를 눈치챈 희승은 겁에 질린 얼굴로 버벅거렸다.“강... 강성연 씨, 전, 전, 전 남자 좋아합니다!”말을 마친 그는 자신의 혀를 깨물고 싶었다.“푸흡.”강성연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고 반지훈은 그녀를 보며 못 말린다는 듯 말했다.“짓궂긴.”밤이 되고 강성연은 죽도록 시달렸다.힘들어서 기절한 듯 잠이 든 강성연을 바라보며 반지훈은 화가 나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했다. 그는 허리를 숙여 그녀의 입술, 콧방울, 이마에 입술을 맞췄다. 아주 귀한 것을 대하듯, 혹여라도 솜사탕처럼 손에 쥐면, 입에 넣으면 녹아버릴까 걱정됐다.그는 몸을 일으킨 뒤 욕실 안으로 들어가 찬물로 샤워했다.실크 재질의 잠옷을 입은 그는 욕실에서 나온 뒤 휴대폰 화면이 번쩍이는 걸 보았다.침대 옆에 다가가 휴대폰을 든 그는 문자 내용을 확인하자마자 눈빛이 차갑게 돌변했다.반지훈은 서재에 들어간 뒤 등을 켰고 노란색의 따뜻한 조명이 러그 위 책상에 드리워졌다. 그는 의자에 앉더니 서영유에게 연락했다.반지훈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감히 나한테 연락해?”“지훈아, 너 나한테 정말 잔인하다.”서영유는 쓴웃음을 지었다.하지만 반지훈은 그녀와 더 얘기를 나눌 생각은 없었다.“네가 보낸 문자 무슨 뜻이야?”서영유는 웃음을 터뜨렸다.“네 어머니를 죽인 게 누군지 궁금하지 않아?”반지훈의 눈동자가 싸늘하게 변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서영유는 느긋한 태도로 말을 이어갔다.“지훈아, 이건 내가 너한테 하는 마지막 연락이야. 내가 얘기해줄 수 있는 건 당시 너희 어머니를 납치했던 게 연씨 집안이 아니었다는
“그날 저랑 연씨 어르신이랑 식사하게 됐을 때 연씨 어르신이 저한테 그러시더라고요. 어르신 아버님이 연씨 어르신 다리 하나를 부러뜨렸고 연씨 어르신의 아버지까지 죽였다고요. 그게 사실인가요?”반지훈의 할아버지가 그것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연씨 집안과 반씨 집안 중 누가 옳고 누가 틀린 걸까?그러나 예상 밖으로 반지훈의 할아버지는 화가 난 얼굴로 말했다.“연혁 그놈이 너한테 그렇게 얘기했니?”강성연은 부인하지 않았다.반지훈의 할아버지는 코웃음을 치더니 차가워진 얼굴로 말했다.“사람을 모함하네. 우리 아버지는 연혁을 이용해 연씨 집안을 협박할 셈이었어. 하지만 진짜 연혁에게 손을 댄 적은 없다. 걔 다리가 부러진 건 우리 집안과는 상관없는 일이야.”강성연은 다소 의아했다.“사실이 아니란 말이죠?”반지훈의 할아버지는 누군가 자기 아버지를 모함하는 걸 참을 수 없었다.“당연하지. 우리 아버지는 귀족들의 위선적인 모습을 혐오해. 그런 분이 어떻게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애한테 손을 대겠어? 연혁 그놈이 헛소리를 지껄인 거야.”강성연은 사색에 잠겼다.연혁은 반지훈의 할아버지가 그랬다고 했고 반지훈의 할아버지는 아니라고 했다. 역시 반씨 집안과 연씨 집안의 악연에는 의문점이 많았다.“그놈이 너한테 또 뭐라고 하더냐?”반지훈의 할아버지는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너한테 반지훈을 어쩌라고 하지 않든?”강성연은 고개를 저었다.“아니요.”강성연이 설명했다.“절 이용해 지훈 씨를 상대하지는 않을 거예요.”반지훈의 할아버지는 살짝 당황했다. 저번에 서영유가 한 말 때문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강성연을 의심했던 그는 그녀의 설명을 듣자 가시방석에 앉은 듯 불편했다.TG그룹.희승은 반지훈이 s국행 티켓을 준비하라고 하자 조금 놀랐다.“대표님, s국에 가시려고요?”반지훈은 서류를 내려놓으며 말했다.“뭐 문제 있어?”희승은 입을 비죽이더니 궁금한 듯 물었다.“갑자기 s국은 왜 가려고 하십니까? 어르신께서는 대표님이 s국 가는 걸 계속 반대하셨
강성연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언제 가는데요?”반지훈은 그녀를 빤히 바라보며 작게 대답했다.“내일.”그는 눈썹을 치켜올렸다.“나랑 떨어지는 게 싫나 보네?”강성연은 입을 꾹 다물고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반지훈이 보기에 그 모습은 더없이 유혹적이었다. 강성연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그윽했다.반지훈은 강성연의 허리를 잡고 그녀와 자리를 뒤바꿨다.“반지훈 씨, 당신 아직 나한테 어디에 가는지 얘기 안 해줬어요.”강성연은 그를 때리고 발로 차며 발버둥 쳤지만 두 손은 그에게 단단히 붙잡혔다....다음 날.아침 햇살 한 줄기가 커텐 틈 사이를 통해 방 안에 쏟아졌다.강성연은 환한 햇살 때문에 잠에서 깼다. 몸을 뒤척이며 습관적으로 옆에 있는 사람을 끌어안으려고 했는데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강성연은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녀의 옆자리는 차게 식어있었다.아래층으로 내려온 뒤 강성연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침이 준비된 걸 발견했다. 반지훈은 없었지만 우유가 담긴 컵 아래 쪽지 한 장이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예쁜 글씨체였다.“나 올 때까지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강성연은 쪽지를 구겨버렸다.“하, 어젯밤에 밤새 못살게 굴더니 내가 잠들자마자 아침 일찍 도망갔다 이거지?”남자는 정말 믿을 수 없었다.무언가 떠올린 강성연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그와 조사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적은 없다.서울 공항.반지훈은 라운지에서 잡지를 읽고 있었다.그는 검은색 터틀넥을 입고 있었는데 티가 때마침 목젖 부근을 가려 섹시함이 물씬 풍겼다.짙은 회색 재킷은 양옆으로 벌어져 있었고 슬랙스를 입은 그는 기다란 다리를 겹치고 있어 흰 발목이 드러났다.고혹적인 분위기가 흐르는 반지훈 때문에 그곳을 지나치는 스튜어디스들은 마음이 설렜다.희승이 밖에서 안으로 들어왔다.“대표님, 비행기 출발 시간이 20분 정도 미뤄졌습니다.”페이지를 넘기던 손이 잠깐 멈칫했지만 짜증 난 것 같지는 않았다.“괜찮아.”희승이 말
희영은 깨달은 얼굴이었다.“그렇군요. 그런데 대표님은 아세요?”강성연은 캐리어를 이끌고 차 앞에 섰다.“몰라요. 그래서 서프라이즈 해주려고요.”밤 11시 50분, s국 센시티로 향하는 비행기가 이륙했다. 거의 10시간 가까이 비행해 이튿날 아침 10시쯤에 도착할 수 있었다.기나긴 비행 중 잠깐 깨어났을 때 보니 창밖은 환했다. 두꺼운 구름이 바로 아래쪽에 희게 깔려 있었고 하늘 끝 푸른 빛이 교차하는 곳에서 지구 반대편에 있는 달을 볼 수 있었다.10시가 되고 비행기는 고도를 낮추며 s국 도시 위를 비행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곳곳에 고층 건물이 있었고 점점 더 그것들과 가까워졌다.작게 축소된 거리는 마치 도시의 맥락처럼 얽혀 있었다.30분 뒤, 비행기가 센시티 공항 활주로에 착륙했다.“밤새 비행기를 탔더니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네요.”희영은 캐리어를 끌며 강성연과 함께 걸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비행기를 탄 건 처음이었다.강성연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괜찮아요. 익숙해지면 돼요.”두 사람은 공항 출구에서 나왔고 강성연은 택시 하나를 불러세웠다.기사가 차창을 내리자 강성연은 유창한 영어로 말했다.“애뉴얼 호텔로 가주세요.”강성연은 s국 센시티에 무척 익숙했다. 온라인으로 예약한 애뉴얼 호텔에 도착한 두 사람은 신분증으로 쉽게 들어갈 수 있었다.희영은 캐리어를 내버려 둔 뒤 곧장 침대에 뛰어들었고 부드러운 매트리스에 몸이 반동을 느꼈다.“너무 편해요. 드디어 침대에서 잘 수 있겠네요.”고개를 든 희영은 침대맡에 한국어로 된 소개서 가 있는 걸 보았다.“어, 여기 호텔에 한국어 번역이 돼 있네요?”강성연은 짐을 정리한 뒤 슬리퍼로 갈아신었다.“애뉴얼 호텔 사장이 한국인이거든요. 이 호텔을 찾는 손님도 대부분 한국인이고요.”애뉴얼은 센시티에서 6성급 호텔로 가격대도 다른 호텔보다 꽤 높았다. 국내 재벌들도 출장할 때 대부분 애뉴얼 호텔에 묵었다.희영은 더는 묻지 않았다. 두 사람은 오후까지 쉬다가 레스토랑을 예약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