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연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언제 가는데요?”반지훈은 그녀를 빤히 바라보며 작게 대답했다.“내일.”그는 눈썹을 치켜올렸다.“나랑 떨어지는 게 싫나 보네?”강성연은 입을 꾹 다물고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반지훈이 보기에 그 모습은 더없이 유혹적이었다. 강성연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그윽했다.반지훈은 강성연의 허리를 잡고 그녀와 자리를 뒤바꿨다.“반지훈 씨, 당신 아직 나한테 어디에 가는지 얘기 안 해줬어요.”강성연은 그를 때리고 발로 차며 발버둥 쳤지만 두 손은 그에게 단단히 붙잡혔다....다음 날.아침 햇살 한 줄기가 커텐 틈 사이를 통해 방 안에 쏟아졌다.강성연은 환한 햇살 때문에 잠에서 깼다. 몸을 뒤척이며 습관적으로 옆에 있는 사람을 끌어안으려고 했는데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강성연은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녀의 옆자리는 차게 식어있었다.아래층으로 내려온 뒤 강성연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침이 준비된 걸 발견했다. 반지훈은 없었지만 우유가 담긴 컵 아래 쪽지 한 장이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예쁜 글씨체였다.“나 올 때까지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강성연은 쪽지를 구겨버렸다.“하, 어젯밤에 밤새 못살게 굴더니 내가 잠들자마자 아침 일찍 도망갔다 이거지?”남자는 정말 믿을 수 없었다.무언가 떠올린 강성연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그와 조사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적은 없다.서울 공항.반지훈은 라운지에서 잡지를 읽고 있었다.그는 검은색 터틀넥을 입고 있었는데 티가 때마침 목젖 부근을 가려 섹시함이 물씬 풍겼다.짙은 회색 재킷은 양옆으로 벌어져 있었고 슬랙스를 입은 그는 기다란 다리를 겹치고 있어 흰 발목이 드러났다.고혹적인 분위기가 흐르는 반지훈 때문에 그곳을 지나치는 스튜어디스들은 마음이 설렜다.희승이 밖에서 안으로 들어왔다.“대표님, 비행기 출발 시간이 20분 정도 미뤄졌습니다.”페이지를 넘기던 손이 잠깐 멈칫했지만 짜증 난 것 같지는 않았다.“괜찮아.”희승이 말
희영은 깨달은 얼굴이었다.“그렇군요. 그런데 대표님은 아세요?”강성연은 캐리어를 이끌고 차 앞에 섰다.“몰라요. 그래서 서프라이즈 해주려고요.”밤 11시 50분, s국 센시티로 향하는 비행기가 이륙했다. 거의 10시간 가까이 비행해 이튿날 아침 10시쯤에 도착할 수 있었다.기나긴 비행 중 잠깐 깨어났을 때 보니 창밖은 환했다. 두꺼운 구름이 바로 아래쪽에 희게 깔려 있었고 하늘 끝 푸른 빛이 교차하는 곳에서 지구 반대편에 있는 달을 볼 수 있었다.10시가 되고 비행기는 고도를 낮추며 s국 도시 위를 비행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곳곳에 고층 건물이 있었고 점점 더 그것들과 가까워졌다.작게 축소된 거리는 마치 도시의 맥락처럼 얽혀 있었다.30분 뒤, 비행기가 센시티 공항 활주로에 착륙했다.“밤새 비행기를 탔더니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네요.”희영은 캐리어를 끌며 강성연과 함께 걸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비행기를 탄 건 처음이었다.강성연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괜찮아요. 익숙해지면 돼요.”두 사람은 공항 출구에서 나왔고 강성연은 택시 하나를 불러세웠다.기사가 차창을 내리자 강성연은 유창한 영어로 말했다.“애뉴얼 호텔로 가주세요.”강성연은 s국 센시티에 무척 익숙했다. 온라인으로 예약한 애뉴얼 호텔에 도착한 두 사람은 신분증으로 쉽게 들어갈 수 있었다.희영은 캐리어를 내버려 둔 뒤 곧장 침대에 뛰어들었고 부드러운 매트리스에 몸이 반동을 느꼈다.“너무 편해요. 드디어 침대에서 잘 수 있겠네요.”고개를 든 희영은 침대맡에 한국어로 된 소개서 가 있는 걸 보았다.“어, 여기 호텔에 한국어 번역이 돼 있네요?”강성연은 짐을 정리한 뒤 슬리퍼로 갈아신었다.“애뉴얼 호텔 사장이 한국인이거든요. 이 호텔을 찾는 손님도 대부분 한국인이고요.”애뉴얼은 센시티에서 6성급 호텔로 가격대도 다른 호텔보다 꽤 높았다. 국내 재벌들도 출장할 때 대부분 애뉴얼 호텔에 묵었다.희영은 더는 묻지 않았다. 두 사람은 오후까지 쉬다가 레스토랑을 예약했
“네. 지금은 저만의 주얼리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어요. 참.”강성연은 그를 향해 소개했다.“이분은 제 친구 희영이에요.”울리프는 그녀를 향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희영도 다급히 미소로 회답했다.강성연이 그녀에게 소개했다.“울리프 씨는 사셀의 주주예요. 예전에 내가 사셀에 있을 때 많이 돌봐줬어요.”“울리프 씨, 식사는 하셨어요?”강성연은 울리프를 바라보며 여유롭게 영어로 말했다.울리프는 고개를 끄덕였다.“금방 먹었어. 존스 씨랑 함께 귀한 손님을 초대했지. 참, 그분도 Z국의 사업가인데 아주 젊고 잘생겼어.”강성연은 그가 말한 사업가가 누군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때마침 그녀의 시선이 그의 등 뒤에서 걸어오는 사람들에게 옮겨졌다.그들은 걸으면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고 그중 맨 앞에 선 남자는 구김 하나 없는 정장을 입고 차가우면서도 고혹적인 분위기를 내뿜고 있었다.무심코 고개를 든 그는 멀지 않은 곳에서 낯익은 이를 보았다. 순간 파문 하나 없던 눈동자에 약간의 놀라움이 스쳤고 곧이어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그의 뒤에 서 있던 희승 또한 강성연을 보았다. 그런데 그의 동생까지 이곳에 올 줄은 몰랐다.이게 무슨 상황이지?“존스.”울리프는 손을 들어 인사를 건넸고 반지훈 옆에 서 있던 금발의 남자가 회답했다. 강성연을 본 순간 그는 살짝 놀란 얼굴로 말했다.“울리프 씨, 이분은 누구시죠?”울리프가 소개했다.“Zora씨라고 예전에 사셀의 디자이너였어요.”강성연은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먼저 존스에게 손을 내밀었다.“안녕하세요.”미인이 먼저 인사를 건넸으니 당연히 받아줘야 했다.“안녕하세요, Zora씨. 처음 뵙겠습니다.”반지훈은 표정이 돌연 굳었다.강성연은 잠깐 그를 무시하다가 시선을 옮겨 그를 보며 싱긋 웃었다.“반지훈 씨도 센시티에 계셨군요. 이런 우연이 다 있네요.”반지훈은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할 뿐, 대답하지 않았다.존스는 두 사람을 보며 의외라는 듯 말했다.“아는 사이세요?”강성연은 눈썹을 치
울리프는 놀란 얼굴로 그녀를 보았다.“Zora, 결혼했어?”강성연은 씩 웃으며 말했다.“네.”“그랬군. 그럼 남편도 센시티에 있는 거야? 같이 식사나 할까?”울리프는 이렇게 아름답고 재능도 넘치는 그녀와 결혼한 운 좋은 남자가 누군지 궁금했다.강성연은 일부러 탄식하며 말했다.“저도 그러고 싶은데 남편이 어떤 여자랑 바람이 났는지 연락이 안 되네요.”“...”반지훈과 희영, 희승 모두 어이가 없었다.울리프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은 동정하듯 그녀를 보며 말했다.“불행이군. 하지만 Zora 너처럼 아름답고 뛰어난 여자는 더 좋은 남자를 만날 수 있을 거야.”강성연은 싱긋 웃었다.“고마워요. 그러면 소개라도 해주실래요?”울리프 또한 웃었다.“네가 원한다면 얼마든지.”반지훈의 얼굴에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는 주변 사람들을 향해 웃어 보이더니 이를 악물며 말했다.“저랑 강성연 씨는 나눌 얘기가 있어서 저녁은 따로 하시죠.”말을 마친 반지훈은 강성연이 대답하기도 전에 사람들의 놀란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의 손목을 잡고 자리를 떴다.방문이 ‘삑’ 소리를 내며 열렸다.반지훈은 룸 키를 가져다 대더니 강성연을 그대로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강성연은 그의 손을 뿌리쳤다.“반지훈 씨, 뭐 하는... 읍!”반지훈은 그녀를 벽으로 밀치면서 거칠게 키스했다.그의 눈빛은 어두우면서도 뜨거웠다. 강성연이 거절할 수 없을 정도로 치명적인 유혹이었다. 하지만 그의 뜻대로 흘러가게 놔둘 생각이 없던 강성연은 그의 입술을 깨물었다.반지훈은 헛숨을 들이키며 그윽하게 그녀를 바라봤다.“날 물었어?”강성연은 고개를 돌렸다.“반 대표님, 이렇게 여자를 방으로 끌어들이는 건 적절치 않은 것 같네요.”강성연이 삐진 것 같자 반지훈은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태연하게 말했다.“내 아내 데리고 방으로 돌아오는 게 뭐 어때서?”“아내요?”강성연은 손가락으로 그의 가슴팍을 밀어내며 코웃음을 쳤다.“그냥 아는 사이라면서요?”반지훈은 시선을 내리뜨리며
“그럼 당신이 먼저 얘기해요.”반지훈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그는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강성연...그녀가 자초한 것이다!한참 뒤에야 반지훈은 그녀를 안고 욕실로 들어갔다.강성연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니 여전히 화가 난 표정이었다. 반지훈은 그녀 대신 옷끈을 정리한 뒤 기다란 손가락으로 그녀의 피부를 훑었다. 강성연은 평소와 달랐다.반지훈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정말 나한테 화난 거야?”강성연은 대꾸하지 않았다.반지훈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더니 부드러운 미소를 흘리며 말했다.“나랑 계속 그렇게 얘기할 셈이야?”그는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부끄럽지도 않나 봐.”강성연은 가운을 몸에 두르며 그를 흘겨봤다.“당신이 더 뻔뻔하죠. 내가 뭐 부끄러울 게 있어요?”반지훈은 몸을 일으키더니 두 손으로 화장대를 짚으며 그녀를 품 안에 가뒀다. 그는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알겠어. 성연아, 내가 미안해.”강성연은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나 씻을 거니까 나가요.”반지훈은 고개를 끄덕인 뒤 몸을 일으켰다.“알겠어. 밖에서 기다릴게.”강성연은 샤워를 마친 뒤 자신의 옷을 들고 욕실에서 걸어 나왔다.거실에서 반지훈은 검은색 베스트를 입고 금 테두리 안경을 쓴 채로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을 보고 있었다. 마디마디 분명한 손가락이 아주 빠른 속도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일에 몰두하는 그의 모습은 아주 매혹적이었다. 안경까지 끼고 있으니 어쩐지 차갑고 금욕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그의 바쁜 모습에 강성연은 그를 방해하지 않기로 했다.자리를 뜨려는데 등 뒤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오늘 밤은 여기서 자.”강성연은 신발을 갈아신으며 웃었다.“싫어요.”의자를 옮긴 반지훈은 안경을 벗고 그녀를 향해 걸어가더니 곧장 그녀를 안아 들었다.“반지훈 씨, 내려줘요!”강성연은 씩씩거리며 그의 어깨를 때렸다. 반지훈은 화가 난 내 모습이 보이지 않는 걸까?내가 더 화를 내야 하나?반지훈은 그녀를 침대에 내려놓은 뒤 이불을 덮어
강성연은 더 묻지 않았다.그는 희승이 희영에게 알려주지 않은 원인을 알았다. 아마 그녀가 아는 걸 원하지 않아서겠지.강성연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희영은 그녀가 다른 걸 걱정하는 줄 알았다. 희영은 갑자기 정색한 얼굴로 말했다.“언니, 걱정하지 마세요. 대표님은 절대 바람피우실 분이 아니에요.”강성연은 입꼬리를 끌어올렸다.“그걸 어떻게 알아요?”희영은 가슴팍을 치면서 장담했다.“제 인격을 걸고 장담합니다.”강성연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희영 씨한테 인격이 있던가요?”희영은 입을 비죽이다가 말을 바꾸었다.“그러면 제 미약한 월급으로 맹세할게요.”강성연은 웃었다.희영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대표님은 선이 명확한 분이세요. 언니는 대표님이 인정한 첫 번째 여자고요. 전 예전에 대표님 같은 남자는 절대 결혼하지 못할 거로 생각했어요.”“예전에는 어땠는데요?”무료해서일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강성연은 반지훈이 과거에 어떤 모습이었는지 알지 못했다.희영은 입가를 가리며 몰래 웃었다.“언니한테 몰래 알려드릴게요. 대표님 어릴 때는 지금처럼 포커페이스가 아니었어요. 어릴 때는 구천광 도련님한테 괴롭힘당해서 자주 울었어요.”강성연은 흠칫했다. 반지훈이 어릴 때 구천광한테 괴롭힘당해서 울었다고?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았다.그런데 어쩐지 속 시원했다. 강성연은 반지훈이 어릴 때부터 계속 포커페이스인 줄 알았다.별안간 무언가를 떠올린 강성연이 물었다.“구천광 씨랑 반지훈 씨는 어릴 때부터 자주 같이 놀았다면서요. 그런데 구씨 집안과 반씨 집안은 왜 아무런 교집합이 없는 것 같죠?”구씨 집안은 정치 쪽, 반씨 집안은 사업 쪽에 종사해 이익이 충돌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구천광이 어릴 때부터 반지훈과 함께 놀았다면 두 집안은 사이가 가까워야 했다.하지만 밖의 소문을 들어보면 구씨 집안과 반씨 집안이 사이가 좋다는 얘기는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희영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몸을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구씨 집안 가주님과 대
모든 미디어가 미영이 다시 버려질지 주목하고 있었지만 반준성의 행동은 그들의 예상을 완전히 뒤엎었다.결혼한 지 10년이 지났음에도 불화설은 전혀 들리지 않았다.그 뒤로 서울시 사람들 사이에는 이런 얘기가 퍼졌다. 반준성은 절대 회식 자리에 여자를 부르지 않는다고, 만약 누군가 여자를 부른다면 곧바로 화를 내며 자리를 뜬다고 말이다. 그리고 과거 자주 스캔들에 휘말려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내리던 미영은 절대 로맨스가 있는 캐릭터를 연기하지 않았다.서로를 믿지 않아서가 아니다.상대를 너무 믿기 때문에, 상대방의 기분을 너무 존중해서였다.강성연은 속눈썹을 파르르 떨며 탄식했다.“아저씨께서는 아내를 엄청 사랑하셨나 보네요?”연씨 집안 그 일이 없었다면...반준성은 사랑하는 여자를 잃지 않았을 것이다.희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숨을 쉬었다.“15년 전 사모님께서 s국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한 뒤로 대표님 아버지께서는 말수가 적어지셨어요. 그리고 계속 옛 저택에 머무시는 것도 사모님께서 그곳을 좋아하셨기 때문이에요.”강성연은 흠칫했다. 반준성이 대도시보다 세상과 동떨어진 듯한 옛 저택에 살기를 선택한 건 그 이유 때문이었다. 반준성은 반지훈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재혼하지 않았다.사실 강성연은 살짝 감동했다. 사람들은 모두 아름답고 행복한 결말을 좋아한다. 그래서 슬픔과 죽음이 선사한 이별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하지만 이 세상에 그렇게 아름답고 행복한 결말이 몇 개나 될까?눈앞의 사람을 아끼는 것 외엔 다른 방법이 없다.아침을 먹은 뒤 방으로 돌아가는 길에 강성연과 희영은 우연히 존스를 마주쳤다.존스는 삼십 대 초반처럼 보였다. 눈썹뼈가 뚜렷하고 콧대가 높으며 눈이 움푹 들어간 것이 아주 전형적인 서방 미남 얼굴이었다. 그는 외출하려는 건지 캐주얼한 차림에 장갑을 끼고 있었다. “Zora씨.”존스는 두 사람에게 다가가며 미소를 지었다.“우연이네요. 방금 아침 드셨어요?”강성연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네
남은 몇 명도 달려들어 그녀를 둘러싸고 많은 질문을 했다. 성연은 침착하게 대답했고, 소통에는 전혀 문제가 없어 보였다. 존스는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옆에 있던 곱슬머리 남자는 그의 어깨에 팔꿈치를 얹고 눈썹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존스, 설마 저 사람한테 관심 있는 거 아니지?" "내가?" 존스는 그를 한 번 쳐다보고는 씩 웃었다. “조금 관심있어. 하지만 그녀는 기혼자야” "기혼? 그럼 정말 기회가 없겠네" 곱슬머리 남자는 어깨를 으쓱했다. 존스는 골프채를 잡고 잔디밭에서 공을 쳤으나 빗나간 것 같았다. 옆에 있던 파란 머리는 웃었다. "Zora양이 공 다루는 솜씨가 좋은 것 같네" 그는 성연이 있는 쪽을 쳐다보았고, 존스도 그의 시선을 따라 바라보았다. 멀지 않은 곳에서 성연은 양손에 골프채를 쥐고 있었고, 정확하게 공을 홀에 넣었다. “꽤 잘 치네" 존스는 이를 보고 눈빛을 반짝였다. 그의 주변에는 골프를 칠 줄 아는 여성이 거의 없었다. 규수의 여인이 아웃도어형 스포츠를 즐기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성연은 온 정신을 골프에 집중해서 존스가 자신의 옆에 서 있는 것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성연의 이마에서 땀이 흐르는 것을 본 듯, 그는 손수건을 꺼내고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줬다. 희영이 불쑥 앞으로 다가와 존스의 팔을 잡았다. “뭐하시는거죠?” 성연은 어리둥절해 하며 의심스러운 듯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 존스는 자신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스스로도 당황한 듯 약간 어색한 표정으로 손을 떼었다. “죄송해요, 친구분의 오해를 샀네요. 다른 뜻은 없었어요. 다른 여성 친구였어도 똑같이 했을 겁니다” 희영은 날카로운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그녀는 이 외국인이 어떤 목적을 갖고 있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성연은 웃었다. “존스 씨는 정말 상냥하시네요” 대중적인 훈남 스타일. "여성분들에게 상냥하게 대해야 하지 않을까요?" 존스가 웃으며 대답했다. 성연은 갑자기 느껴지는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