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의 흔들림이 있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전혀 흠이 되지 않았다. 선생님들은 역시 소문대로 훌륭한 학생이라며 머리를 끄덕였다. 때로는 실수 하나 없는 공연보다는, 실수를 자연스럽게 대처하는 능력이 더욱 높게 평가받는 법이다.줄리안나는 끝까지 버텨낸 강유이가 약간 대단한 감도 들었다. 그래도 감점은 피하지 못할 것이니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곧이어 오델리의 독무가 끝나고 음악이 잦아들자, 강유이는 털썩 주저앉았다. 선생님 중 한 명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괜찮아?"무대 곁에 서서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학생은 덜덜 떨리는 손가락으로 강유이를 가리키며 말했다."선생님, 유이 신발에 피가 흥건해요!"선생님은 후다닥 무대 위로 올라가 강유이의 신발을 벗기고 상태를 확인했다. 그리고 신발 속에서 빨갛게 물든 못을 뽑아냈다.강유이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못을 넣은 사람보다는 자신의 불찰부터 반성했다."죄송해요, 선생님. 그래도 저는 최선을 다했어요.""얼른 유이를 양호실로 데려다줘."강유이가 발레 수업을 하다 말고 양호실에 갔다는 소식은 금방 반재신의 귀에 들어갔다. 그는 두말없이 양호실로 달려갔고 발가락에 붕대를 감은 강유이를 보고서는 표정이 무섭게 식어갔다."이게 무슨 일이야?"강유이를 양호실로 데려온 여학생이 자초지종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반재신의 분위기는 더욱 차가워졌다.강유이는 머리를 들고 말했다."오빠, 나 괜찮아.""이게 어딜 봐서 괜찮은 거야?"반재신은 곁에 있던 여학생을 향해 머리를 돌리며 물었다."신발 안에 못을 넣은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아냈어?"여학생은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지만 곧 무언가 생각난 듯 손뼉을 쳤다."그러고 보니 조금 전 줄리안나가 휴게실에 들어간 적 있다는 말을 들었어. 우리 과 학생도 아니면서 왜 왔는지 모르겠네."'줄리안나...'강유이는 이번 사건의 범인이 누군지 알 것 같았다. 반재신도 마찬가지인 듯 피식 웃으며 말했다."줄리안나
강유이는 덤덤하게 머리를 숙여 줄리안나의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바라봤다."줄리안나, 나도 너랑 비슷한 일을 한 적 있어. 근데 리사는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좋은 사람이 아니야. 그러니 너도 이성적으로 잘 생각해 봐."줄리안나는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이게 어디서 착한 척이야? 누가 없던 일로 해달래? 당장 선생님한테 일러바쳐, 너 그런 사람이잖아.""그러면 네 말대로 일러바쳐서 퇴학 당해볼래? 그게 네가 원하는 거야?"줄리안나는 눈에 띄게 멈칫했다. 강유이는 무표정한 얼굴로 이어서 말했다."네 아버지가 퇴학 이유를 물어보면 또 어떻게 대답할 건데?"줄리안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만약 내가 리사의 말대로 집안 믿고 나대는 사람이라면 진작에 너를 퇴학시켰어. 눈엣가시인 사람을 없애 버리기 위해서라면 이유는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으니까. 리사도 마찬가지야. 리사는 자기가 나한테 어떤 짓을 했는지 언급한 적도 없지? 리사는 선처받지 못하면 너와 만날 수도 없는 곳에 있었을 거야. 사람은 겉만 보고 판단하면 안 돼. 사실도 한 사람의 말만 듣고 판단하면 안 되고. 리사에 대해서는 영원히 말하고 싶지 않으니까, 다시는 이런 일 없었으면 좋겠다."줄리안나는 무안한 표정으로 주먹을 꼭 쥐었다. 그녀가 강유이에 대한 미움은 리사의 말에서 비롯되었다. 강유이는 잔인하고 이기적인 악녀이고, 리사는 착하고 다정한 친구라는 게 그녀의 판단이었다. 하지만 강유이가 태연한 표정으로 솔직하게 하는 말을 들어보니 자신이 오해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기 시작했다.강유이가 리사를 싫어한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강유이의 위치에서 리사를 괴롭히기도 식은 죽 먹기였다. 리사는 한씨 집안의 성씨를 받지도 못한 양녀일 뿐이었으니 말이다. 상류사회의 괴롭힘이 어떤 것인지 줄리안나는 잘 알고 있다. 만약 강유이가 리사의 말대로 잔인한 사람이었다면 둘은 애초에 친구가 되지도 못했을 것이다.강유이는 이불을 끌어 올리며 말했다."이만 나가봐."줄리안나는 입
한태군이 걸음을 멈추고 느긋하게 옷소매를 정리했다.“네가 뭔데.”반재신이 한태군 앞으로 돌아가더니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경고했다.“오늘 일, 결국 너희 가문에서 리사 그 화근을 똑바로 관리하지 못해서 벌어진 일이야. 걔 때문에 내 동생이 다쳤어. 내가 꼭 언젠가 이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할 거야.”한태군은 미간을 찌푸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튿날 강유이는 교무실로 찾아가 선생님한테 줄리안나에 대한 처벌을 취소해 달라고 부탁했다. 선생님이 놀란 표정으로 유이를 바라보았다.“그 아이의 잘못을 정말 이대로 덮을 생각이니?”“이미 저한테 사과도 했고, 줄리안나한테 한 번 더 기회를 주고 싶어요. 전 그 애가 자기 잘못을 뉘우칠 거라고 믿어요.”유이의 마음이 확고한 것을 알아본 선생님은 줄리안나에 대한 처벌을 취소할 것을 약속했다.급하게 교무실로 향하던 줄리안나는 건물 밑에서 마침 강유이와 맞닥뜨렸다.줄리안나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역시 네 말을 믿을 게 아니었어.”강유이가 미간을 찌푸렸다.“무슨 말이야?”줄리안나가 강유이를 돌아보며 이를 악물었다.“너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고, 사실은 날 퇴학시키지 못해 안달 났잖아. 축하해, 곧 네 뜻대로 될 거니까.”계단을 오르는 줄리안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강유이가 눈살을 찌푸렸다.이렇게 쉽게 자기가 퇴학당할 거라고 단정 짓다니.보아하니 주변에서 적지 않게 떠들어 댄 것 같았다.교무실로 호출당한 줄리안나는 이미 퇴학당할 마음의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실은 그것도 리사가 그녀에게 말해줘서 알게 되었다. 리사는 자신이 강유이때문에 퇴학당했다고 말했었다.선생님한테 호출당했는데, 마침 아래서 강유이와 마주치기까지 했으니 더욱 리사의 말에 확신이 갔다.때문에 선생님이 그녀한테 반성문을 써서 제출하라는 말을 했을 때에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저 퇴학당하는 거 아니었나요?”선생님이 되물었다.“누가 그런 소리를 한 거야?”줄리안나가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원래는 벌로 일 년
유리창에 유이의 형체가 비쳤던 건지, 화들짝 놀란 그녀가 이어폰을 벗고 유이를 돌아보았다.강유이 역시 당황한 표정으로 그녀를 마주 보았다.눈앞의 여자는 담백한 얼굴에 놀라울 정도의 미모는 아니었지만, 보면 볼수록 매력적인 얼굴이었다. 그녀는 남들이 말하는 요즘 얼굴을 갖고 있었는데 어딘가 우아한 느낌이 들었다.강유이가 어색하게 웃었다.“미안해. 노크했는데 네가 못 들은 것 같아서 들어왔어.”여자가 한참 동안 유이를 바라보더니 잠시 후 시선을 피했다. 그녀가 미지근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나 기타 연습 계속해야 되는데.”“알았어. 그럼 난 방해 그만하고 나가볼게.”강유이가 자각적으로 방에서 나왔다.이틀 뒤 연극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강유이가 가방을 메고 발을 쩔뚝거리며 스튜디오로 향했다. 삼일 째가 되자 다친 발가락이 더욱 부어올라 걷는 것도 아팠다.스튜디오 문 앞에 도착한 유이의 눈에 한태군이 어떤 여자와 대화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그 여자는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룸메이트였다.두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까지는 들리지 않았다.강유이는 한태군과 알고 지낸 시간이 꽤나 길었다. 한태군은 다른 여자한테 잘 웃지 않았다. 하지만 저 여자와 이야기를 나눌 때에는 웃고 있었다.강유이는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서서 입술만 깨물고 있었다. 가슴속에서 알 수 없는 상실감이 느껴졌다.자신에게만 웃어주던 사람이 갑자기 다른 여자한테 웃어주니 마음이 불편했다.쳇, 바람둥이 같은 놈!그때 강유이를 발견한 여자가 그에게 뭐라 말하더니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한태군이 고개를 돌렸다. 그는 절뚝절뚝 다가오는 강유이를 가만히 서서 바라보았다.강유이는 일부러 그를 못 본척하며 지나치려 했다.한태군이 그녀의 길을 막아섰다.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뭐 하는 거야?”“너 아직 다 회복 안 됐잖아.”“수업에는 지장 없어. 나 들어가 봐야 돼.”강유이가 그를 밀어냈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아예 그를 돌아가려고 했지만 한태군이 길쭉한 다리를
한태군이 그녀의 눈가를 쓰다듬었다.“질투하는 냄새가 여기까지 나는데, 이래도 아니라고?”“그런 냄새 안 나거든!”“맛보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냄새가 나는지 안 나는지 알 수 있겠어.”강유이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뭘 맛봐?”그의 시선이 그녀의 입술에 머물렀다.그 눈빛이 어찌나 뜨거웠던지 강유이는 그제야 그가 말한 의미를 알아차렸다. 그녀가 고개를 옆으로 휙 돌렸다.“억지꾼.”한태군이 눈초리를 휘며 웃었다.“내가 왜 억지꾼이야.”“너 걔한테도 이래?”강유이는 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났다.한태군이 어딘가 달라진 것 같았다.그가 점점 더 사악해지고 못된 놈이 되어가는 것 같았다.한태군이 실눈을 뜨고 물었다.“누구?”그녀가 웅얼거리며 말했다.“내 룸메이트.”그가 멈칫거렸다. 그녀가 인상을 쓰며 따지는 모습에 그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바보야, 이러고도 질투하는 게 아니야?”화가 난 강유이가 아예 대답을 하지 않았다.그가 그녀의 얼굴을 들어 올리더니 크림처럼 부드러운 그녀의 피부를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진예은은 내 사촌 동생이야.”강유이가 의심의 눈초리로 물었다.“하지만 전혀 혼혈처럼 안 생겼는데.”한태군은 한눈에 보아도 혼혈인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하지만 그 여자는 완전히 동양인의 얼굴이었다.한태군이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우리 어머니가 정실 왕비셨거든. 외할머니가 낳으신 친딸. 그리고 이모는 외할아버지의 정부가 낳은 자식이었어. 진예은은 동양인인 자기 아버지를 많이 닮은 거고, 나는 어머니를 닮았을 뿐이야.”강유이는 그제야 조금 이해가 됐다. 자신의 룸메이트 엄마가 황실 사생아였다니. 그렇다면 그녀와 한태군은 확실히 혈연관계가 있는 사촌 남매가 맞았다.그녀는 저도 모르게 시름이 놓였다.한태군이 가볍게 그녀의 이마에 딱밤을 때렸다.“이젠 허튼 생각하지 마.”그녀가 입을 삐쭉거렸다.“안 했거든…”“괜찮아.”한태군이 그녀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더니 시선을 고정한 채 말했다.“적어도 이제 이것
강유이는 그녀가 사람과 접촉하거나, 이야기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혹시 방금 들은 그 소문 때문인가?소문의 진실 여부는 그저 들리는 말만 듣고 알 수 없었다.어쨌든 그건 당사자만이 알 수 있는 일이었다.강유이와 진예은은 비록 한 지붕 아래 살고 있긴 했지만 말을 나눈 건 고작 열 마디도 채 되지 않았다. 그것도 대부분 강유이가 물었고, 그녀가 대답한 게 전부였다.그 외에는 부딪히지도 않았으니 이야기를 나눌 기회는 더더욱 없었다.강유이의 상처는 이제 딱지가 앉아 완전히 다 나았다. 그녀는 무용 공연 재시험을 치고 겨우 점수를 채울 수 있었다.공연장을 나가던 그녀는 웬 스무 살 좀 넘어 보이는 양복 입은 남자가 진예은한테 치근덕거리는 모습을 발견했다.진예은의 표정에서 짜증과 거부감이 느껴졌다. 강유이는 그 모습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그녀가 성큼성큼 다가가 남자가 잡고 있는 그녀의 팔을 잡았다.“저기요, 그쪽 우리 학원 학생 아니죠. 이손 놓지 않으면 당장 경비원 부를 거예요.”남자가 강유이를 훑어보더니 인상을 쓰며 콧방귀를 뀌었다.“네가 뭔데? 왜 쓸데없는 일에 참견하지?”강유이가 남자의 손을 힘껏 쳐냈다.“제가 좀 쓸데없는 일에 나서길 좋아하거든요.”남자가 막 강유이한테 손을 대려던 그때, 등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걔한테 손가락 하나 댔다 봐요.”남자가 고개를 돌리고 그들 쪽으로 다가오는 한태군을 바라보았다. 남자가 화를 참으며 정장 소매를 걷어올렸다.“어떻게, 여기 이 계집이 한태군 도련님 여자친구라도 되나 봐요?”“제가 그렇다고 하면요?”한태군이 남자 앞에 마주 섰다.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말했다.“좋아요. 도련님 얼굴 봐서 오늘은 이만하죠.”그가 강유이 뒤에 서있는 진예은을 바라보고 코웃음을 치더니 옆에 주차되어 있는 차를 몰고 그곳을 벗어났다.그제야 정신을 차린 강유이가 팔짱을 끼며 한태군을 바라보았다.“누구더러 네 여자친구래?”한태군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번뜩 정신을 차린 강유이는 거울로 자신의 뒤에 서있는 진예은의 모습을 확인했다.방금 씻고 나온 그녀 역시 옷을 갈아입으려는 듯했다. 기숙사에는 전신 거울이 딱 하나였고 마침 강유이가 점령하고 있었다.강유이가 난감한 표정으로 웃으며 아무 옷이나 집어 들고 말했다.“난 다 골랐으니까, 이제 네가 골라.”그녀가 막 방으로 들어가려던 그때.“난 그 옷이 괜찮은 것 같아.”놀란 유이가 고개를 돌려 진예은이 가리킨 옷을 바라보았다. 그건 자신의 팔에 걸쳐진 베이비블루 원피스였다.강유이가 그 원피스를 빼내서 되물었다.“이거?”진예은이 고개를 끄덕였다.“고마워.”강유이가 활짝 웃으며 들고 있던 옷을 말아 쥐고 서둘러 침실로 들어갔다.아홉시가 될 때쯤, 강유이는 학교 문 앞에서 그를 기다렸다.많은 학생들이 학교에서 나오고 또 학교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십분을 넘게 기다려도 한태군은 나타나지 않았다.강유이가 자신의 입술을 살짝 깨물고 휴대폰을 꺼내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그런데 전화를 받은 사람은 한태군이 아니라 리사였다.“어쩐 일이야, 강유이?”리사는 두 사람이 있을 때만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냈다.순간 당황하던 강유이가 곧바로 표정을 굳혔다.“한태군 전화를 왜 네가 받아.”“한태군 전화를 왜 내가 못 받겠어. 한태군한테 볼일 있나 본데, 미안하게 됐어. 그가 나한테 널 상대할 시간이 없다는 말을 전해달라고 했거든…”강유이는 리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전화를 끊어버렸다.휴대폰을 쥔 손에 힘이 실렸다. 어쩔 수 없는 불안감이 덮쳐왔다. 몇 년 전, 한태군은 공항에서 그 말을 한 후, 냉정하게 그녀에게 등을 돌렸었다. 그녀는 현재 그때 느꼈던 감각이 자꾸만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설마, 한태군이 정말로 그녀를 갖고 논 걸까?다른 한편, 전화를 받은 리사가 잔뜩 긴장한 채로 주변을 살폈다. 그녀는 고용인들이 거실에 없는걸 확인하고, 한태군의 생일을 입력하며 비밀번호를 풀려고 시도했다.인증 실패.그녀가 이를 악물고 강유이의 생일을
강유이가 미처 무슨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진예은이 허리를 숙이며 아이를 안아주었다.“연서야, 나 보고 싶었어?”여자아이가 그녀의 목을 파고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쭈뼛쭈뼛거리며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진예은이 진연서를 베이비시터에게 건네주자 베이비시터가 아이를 안고 집안으로 들어갔다.그제야 퍼뜩 정신을 차린 유이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서… 설마 네 딸이야?”진예은한테 정말로 아이가 있었단 말인가!진예은이 고개를 돌리더니 유이에게 되물었다.“너도 그 소문 믿어?”강유이가 머리를 저었다.소문을 믿진 않았다. 하지만 아이와 그녀가 도대체 무슨 관계인지 궁금했다.아이는 이제 한 살 정도 되어 보였고 진예은은 그녀와 비슷한 나이였다. 만약 정말 진예은의 아이라면 그녀가 열여섯에…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진예은이 팔짱을 꼈다.“쟤는 그날, 네가 봤던 그 남자의 딸이야.”강유이가 놀라 되물었다.“그 너한테 찝쩍거리던?”그녀가 집안으로 들어갔다.“그 남자는 내 오빠야.”강유이는 그녀의 뒤를 따르며 현관으로 들어가 슬리퍼로 갈아 신었다.“오빠라고. 그런데 왜…”그날 진예은한테 매달리던 남자는 꽤나 험악해 보였다. 때문에 절대 두 사람이 남매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진예은이 냉장고에서 주스 두 병을 꺼내 한 병을 그녀에게 건넸다.“웃기지. 난 그 남자 동생인데, 그 남자는 내가 자기가 남긴 오점을 처리해 주는 도구로밖에 안 보더라고.”그녀가 소파에 앉았다. 그녀는 이런 남매 관계에 이미 익숙해져 있는 것 같았다. 그녀한테 가족이란 절대 가슴 따뜻한 그런 게 아니었다.강유이가 그녀의 곁에 앉았다. 잠시 후, 유이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그러니까 네가 휴학한 원인이 소문으로 떠돌던 그런 일 때문이 아니라, 네 오빠의 딸 때문이었어?”진예은은 느긋하게 주스를 마시며 다른 한 손으로 휴대폰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어쩔 수 없었어. 오빠가 어떤 귀족 딸이랑 약혼을 했는데, 이 아이가 걸림돌이 되어버렸거든. 만약 이 아이를 인정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