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의 흔들림이 있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전혀 흠이 되지 않았다. 선생님들은 역시 소문대로 훌륭한 학생이라며 머리를 끄덕였다. 때로는 실수 하나 없는 공연보다는, 실수를 자연스럽게 대처하는 능력이 더욱 높게 평가받는 법이다.줄리안나는 끝까지 버텨낸 강유이가 약간 대단한 감도 들었다. 그래도 감점은 피하지 못할 것이니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곧이어 오델리의 독무가 끝나고 음악이 잦아들자, 강유이는 털썩 주저앉았다. 선생님 중 한 명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괜찮아?"무대 곁에 서서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학생은 덜덜 떨리는 손가락으로 강유이를 가리키며 말했다."선생님, 유이 신발에 피가 흥건해요!"선생님은 후다닥 무대 위로 올라가 강유이의 신발을 벗기고 상태를 확인했다. 그리고 신발 속에서 빨갛게 물든 못을 뽑아냈다.강유이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못을 넣은 사람보다는 자신의 불찰부터 반성했다."죄송해요, 선생님. 그래도 저는 최선을 다했어요.""얼른 유이를 양호실로 데려다줘."강유이가 발레 수업을 하다 말고 양호실에 갔다는 소식은 금방 반재신의 귀에 들어갔다. 그는 두말없이 양호실로 달려갔고 발가락에 붕대를 감은 강유이를 보고서는 표정이 무섭게 식어갔다."이게 무슨 일이야?"강유이를 양호실로 데려온 여학생이 자초지종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반재신의 분위기는 더욱 차가워졌다.강유이는 머리를 들고 말했다."오빠, 나 괜찮아.""이게 어딜 봐서 괜찮은 거야?"반재신은 곁에 있던 여학생을 향해 머리를 돌리며 물었다."신발 안에 못을 넣은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아냈어?"여학생은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지만 곧 무언가 생각난 듯 손뼉을 쳤다."그러고 보니 조금 전 줄리안나가 휴게실에 들어간 적 있다는 말을 들었어. 우리 과 학생도 아니면서 왜 왔는지 모르겠네."'줄리안나...'강유이는 이번 사건의 범인이 누군지 알 것 같았다. 반재신도 마찬가지인 듯 피식 웃으며 말했다."줄리안나
강유이는 덤덤하게 머리를 숙여 줄리안나의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바라봤다."줄리안나, 나도 너랑 비슷한 일을 한 적 있어. 근데 리사는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좋은 사람이 아니야. 그러니 너도 이성적으로 잘 생각해 봐."줄리안나는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이게 어디서 착한 척이야? 누가 없던 일로 해달래? 당장 선생님한테 일러바쳐, 너 그런 사람이잖아.""그러면 네 말대로 일러바쳐서 퇴학 당해볼래? 그게 네가 원하는 거야?"줄리안나는 눈에 띄게 멈칫했다. 강유이는 무표정한 얼굴로 이어서 말했다."네 아버지가 퇴학 이유를 물어보면 또 어떻게 대답할 건데?"줄리안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만약 내가 리사의 말대로 집안 믿고 나대는 사람이라면 진작에 너를 퇴학시켰어. 눈엣가시인 사람을 없애 버리기 위해서라면 이유는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으니까. 리사도 마찬가지야. 리사는 자기가 나한테 어떤 짓을 했는지 언급한 적도 없지? 리사는 선처받지 못하면 너와 만날 수도 없는 곳에 있었을 거야. 사람은 겉만 보고 판단하면 안 돼. 사실도 한 사람의 말만 듣고 판단하면 안 되고. 리사에 대해서는 영원히 말하고 싶지 않으니까, 다시는 이런 일 없었으면 좋겠다."줄리안나는 무안한 표정으로 주먹을 꼭 쥐었다. 그녀가 강유이에 대한 미움은 리사의 말에서 비롯되었다. 강유이는 잔인하고 이기적인 악녀이고, 리사는 착하고 다정한 친구라는 게 그녀의 판단이었다. 하지만 강유이가 태연한 표정으로 솔직하게 하는 말을 들어보니 자신이 오해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기 시작했다.강유이가 리사를 싫어한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강유이의 위치에서 리사를 괴롭히기도 식은 죽 먹기였다. 리사는 한씨 집안의 성씨를 받지도 못한 양녀일 뿐이었으니 말이다. 상류사회의 괴롭힘이 어떤 것인지 줄리안나는 잘 알고 있다. 만약 강유이가 리사의 말대로 잔인한 사람이었다면 둘은 애초에 친구가 되지도 못했을 것이다.강유이는 이불을 끌어 올리며 말했다."이만 나가봐."줄리안나는 입
한태군이 걸음을 멈추고 느긋하게 옷소매를 정리했다.“네가 뭔데.”반재신이 한태군 앞으로 돌아가더니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경고했다.“오늘 일, 결국 너희 가문에서 리사 그 화근을 똑바로 관리하지 못해서 벌어진 일이야. 걔 때문에 내 동생이 다쳤어. 내가 꼭 언젠가 이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할 거야.”한태군은 미간을 찌푸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튿날 강유이는 교무실로 찾아가 선생님한테 줄리안나에 대한 처벌을 취소해 달라고 부탁했다. 선생님이 놀란 표정으로 유이를 바라보았다.“그 아이의 잘못을 정말 이대로 덮을 생각이니?”“이미 저한테 사과도 했고, 줄리안나한테 한 번 더 기회를 주고 싶어요. 전 그 애가 자기 잘못을 뉘우칠 거라고 믿어요.”유이의 마음이 확고한 것을 알아본 선생님은 줄리안나에 대한 처벌을 취소할 것을 약속했다.급하게 교무실로 향하던 줄리안나는 건물 밑에서 마침 강유이와 맞닥뜨렸다.줄리안나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역시 네 말을 믿을 게 아니었어.”강유이가 미간을 찌푸렸다.“무슨 말이야?”줄리안나가 강유이를 돌아보며 이를 악물었다.“너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고, 사실은 날 퇴학시키지 못해 안달 났잖아. 축하해, 곧 네 뜻대로 될 거니까.”계단을 오르는 줄리안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강유이가 눈살을 찌푸렸다.이렇게 쉽게 자기가 퇴학당할 거라고 단정 짓다니.보아하니 주변에서 적지 않게 떠들어 댄 것 같았다.교무실로 호출당한 줄리안나는 이미 퇴학당할 마음의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실은 그것도 리사가 그녀에게 말해줘서 알게 되었다. 리사는 자신이 강유이때문에 퇴학당했다고 말했었다.선생님한테 호출당했는데, 마침 아래서 강유이와 마주치기까지 했으니 더욱 리사의 말에 확신이 갔다.때문에 선생님이 그녀한테 반성문을 써서 제출하라는 말을 했을 때에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저 퇴학당하는 거 아니었나요?”선생님이 되물었다.“누가 그런 소리를 한 거야?”줄리안나가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원래는 벌로 일 년
유리창에 유이의 형체가 비쳤던 건지, 화들짝 놀란 그녀가 이어폰을 벗고 유이를 돌아보았다.강유이 역시 당황한 표정으로 그녀를 마주 보았다.눈앞의 여자는 담백한 얼굴에 놀라울 정도의 미모는 아니었지만, 보면 볼수록 매력적인 얼굴이었다. 그녀는 남들이 말하는 요즘 얼굴을 갖고 있었는데 어딘가 우아한 느낌이 들었다.강유이가 어색하게 웃었다.“미안해. 노크했는데 네가 못 들은 것 같아서 들어왔어.”여자가 한참 동안 유이를 바라보더니 잠시 후 시선을 피했다. 그녀가 미지근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나 기타 연습 계속해야 되는데.”“알았어. 그럼 난 방해 그만하고 나가볼게.”강유이가 자각적으로 방에서 나왔다.이틀 뒤 연극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강유이가 가방을 메고 발을 쩔뚝거리며 스튜디오로 향했다. 삼일 째가 되자 다친 발가락이 더욱 부어올라 걷는 것도 아팠다.스튜디오 문 앞에 도착한 유이의 눈에 한태군이 어떤 여자와 대화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그 여자는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룸메이트였다.두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까지는 들리지 않았다.강유이는 한태군과 알고 지낸 시간이 꽤나 길었다. 한태군은 다른 여자한테 잘 웃지 않았다. 하지만 저 여자와 이야기를 나눌 때에는 웃고 있었다.강유이는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서서 입술만 깨물고 있었다. 가슴속에서 알 수 없는 상실감이 느껴졌다.자신에게만 웃어주던 사람이 갑자기 다른 여자한테 웃어주니 마음이 불편했다.쳇, 바람둥이 같은 놈!그때 강유이를 발견한 여자가 그에게 뭐라 말하더니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한태군이 고개를 돌렸다. 그는 절뚝절뚝 다가오는 강유이를 가만히 서서 바라보았다.강유이는 일부러 그를 못 본척하며 지나치려 했다.한태군이 그녀의 길을 막아섰다.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뭐 하는 거야?”“너 아직 다 회복 안 됐잖아.”“수업에는 지장 없어. 나 들어가 봐야 돼.”강유이가 그를 밀어냈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아예 그를 돌아가려고 했지만 한태군이 길쭉한 다리를
한태군이 그녀의 눈가를 쓰다듬었다.“질투하는 냄새가 여기까지 나는데, 이래도 아니라고?”“그런 냄새 안 나거든!”“맛보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냄새가 나는지 안 나는지 알 수 있겠어.”강유이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뭘 맛봐?”그의 시선이 그녀의 입술에 머물렀다.그 눈빛이 어찌나 뜨거웠던지 강유이는 그제야 그가 말한 의미를 알아차렸다. 그녀가 고개를 옆으로 휙 돌렸다.“억지꾼.”한태군이 눈초리를 휘며 웃었다.“내가 왜 억지꾼이야.”“너 걔한테도 이래?”강유이는 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났다.한태군이 어딘가 달라진 것 같았다.그가 점점 더 사악해지고 못된 놈이 되어가는 것 같았다.한태군이 실눈을 뜨고 물었다.“누구?”그녀가 웅얼거리며 말했다.“내 룸메이트.”그가 멈칫거렸다. 그녀가 인상을 쓰며 따지는 모습에 그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바보야, 이러고도 질투하는 게 아니야?”화가 난 강유이가 아예 대답을 하지 않았다.그가 그녀의 얼굴을 들어 올리더니 크림처럼 부드러운 그녀의 피부를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진예은은 내 사촌 동생이야.”강유이가 의심의 눈초리로 물었다.“하지만 전혀 혼혈처럼 안 생겼는데.”한태군은 한눈에 보아도 혼혈인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하지만 그 여자는 완전히 동양인의 얼굴이었다.한태군이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우리 어머니가 정실 왕비셨거든. 외할머니가 낳으신 친딸. 그리고 이모는 외할아버지의 정부가 낳은 자식이었어. 진예은은 동양인인 자기 아버지를 많이 닮은 거고, 나는 어머니를 닮았을 뿐이야.”강유이는 그제야 조금 이해가 됐다. 자신의 룸메이트 엄마가 황실 사생아였다니. 그렇다면 그녀와 한태군은 확실히 혈연관계가 있는 사촌 남매가 맞았다.그녀는 저도 모르게 시름이 놓였다.한태군이 가볍게 그녀의 이마에 딱밤을 때렸다.“이젠 허튼 생각하지 마.”그녀가 입을 삐쭉거렸다.“안 했거든…”“괜찮아.”한태군이 그녀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더니 시선을 고정한 채 말했다.“적어도 이제 이것
강유이는 그녀가 사람과 접촉하거나, 이야기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혹시 방금 들은 그 소문 때문인가?소문의 진실 여부는 그저 들리는 말만 듣고 알 수 없었다.어쨌든 그건 당사자만이 알 수 있는 일이었다.강유이와 진예은은 비록 한 지붕 아래 살고 있긴 했지만 말을 나눈 건 고작 열 마디도 채 되지 않았다. 그것도 대부분 강유이가 물었고, 그녀가 대답한 게 전부였다.그 외에는 부딪히지도 않았으니 이야기를 나눌 기회는 더더욱 없었다.강유이의 상처는 이제 딱지가 앉아 완전히 다 나았다. 그녀는 무용 공연 재시험을 치고 겨우 점수를 채울 수 있었다.공연장을 나가던 그녀는 웬 스무 살 좀 넘어 보이는 양복 입은 남자가 진예은한테 치근덕거리는 모습을 발견했다.진예은의 표정에서 짜증과 거부감이 느껴졌다. 강유이는 그 모습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그녀가 성큼성큼 다가가 남자가 잡고 있는 그녀의 팔을 잡았다.“저기요, 그쪽 우리 학원 학생 아니죠. 이손 놓지 않으면 당장 경비원 부를 거예요.”남자가 강유이를 훑어보더니 인상을 쓰며 콧방귀를 뀌었다.“네가 뭔데? 왜 쓸데없는 일에 참견하지?”강유이가 남자의 손을 힘껏 쳐냈다.“제가 좀 쓸데없는 일에 나서길 좋아하거든요.”남자가 막 강유이한테 손을 대려던 그때, 등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걔한테 손가락 하나 댔다 봐요.”남자가 고개를 돌리고 그들 쪽으로 다가오는 한태군을 바라보았다. 남자가 화를 참으며 정장 소매를 걷어올렸다.“어떻게, 여기 이 계집이 한태군 도련님 여자친구라도 되나 봐요?”“제가 그렇다고 하면요?”한태군이 남자 앞에 마주 섰다.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말했다.“좋아요. 도련님 얼굴 봐서 오늘은 이만하죠.”그가 강유이 뒤에 서있는 진예은을 바라보고 코웃음을 치더니 옆에 주차되어 있는 차를 몰고 그곳을 벗어났다.그제야 정신을 차린 강유이가 팔짱을 끼며 한태군을 바라보았다.“누구더러 네 여자친구래?”한태군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번뜩 정신을 차린 강유이는 거울로 자신의 뒤에 서있는 진예은의 모습을 확인했다.방금 씻고 나온 그녀 역시 옷을 갈아입으려는 듯했다. 기숙사에는 전신 거울이 딱 하나였고 마침 강유이가 점령하고 있었다.강유이가 난감한 표정으로 웃으며 아무 옷이나 집어 들고 말했다.“난 다 골랐으니까, 이제 네가 골라.”그녀가 막 방으로 들어가려던 그때.“난 그 옷이 괜찮은 것 같아.”놀란 유이가 고개를 돌려 진예은이 가리킨 옷을 바라보았다. 그건 자신의 팔에 걸쳐진 베이비블루 원피스였다.강유이가 그 원피스를 빼내서 되물었다.“이거?”진예은이 고개를 끄덕였다.“고마워.”강유이가 활짝 웃으며 들고 있던 옷을 말아 쥐고 서둘러 침실로 들어갔다.아홉시가 될 때쯤, 강유이는 학교 문 앞에서 그를 기다렸다.많은 학생들이 학교에서 나오고 또 학교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십분을 넘게 기다려도 한태군은 나타나지 않았다.강유이가 자신의 입술을 살짝 깨물고 휴대폰을 꺼내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그런데 전화를 받은 사람은 한태군이 아니라 리사였다.“어쩐 일이야, 강유이?”리사는 두 사람이 있을 때만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냈다.순간 당황하던 강유이가 곧바로 표정을 굳혔다.“한태군 전화를 왜 네가 받아.”“한태군 전화를 왜 내가 못 받겠어. 한태군한테 볼일 있나 본데, 미안하게 됐어. 그가 나한테 널 상대할 시간이 없다는 말을 전해달라고 했거든…”강유이는 리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전화를 끊어버렸다.휴대폰을 쥔 손에 힘이 실렸다. 어쩔 수 없는 불안감이 덮쳐왔다. 몇 년 전, 한태군은 공항에서 그 말을 한 후, 냉정하게 그녀에게 등을 돌렸었다. 그녀는 현재 그때 느꼈던 감각이 자꾸만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설마, 한태군이 정말로 그녀를 갖고 논 걸까?다른 한편, 전화를 받은 리사가 잔뜩 긴장한 채로 주변을 살폈다. 그녀는 고용인들이 거실에 없는걸 확인하고, 한태군의 생일을 입력하며 비밀번호를 풀려고 시도했다.인증 실패.그녀가 이를 악물고 강유이의 생일을
강유이가 미처 무슨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진예은이 허리를 숙이며 아이를 안아주었다.“연서야, 나 보고 싶었어?”여자아이가 그녀의 목을 파고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쭈뼛쭈뼛거리며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진예은이 진연서를 베이비시터에게 건네주자 베이비시터가 아이를 안고 집안으로 들어갔다.그제야 퍼뜩 정신을 차린 유이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서… 설마 네 딸이야?”진예은한테 정말로 아이가 있었단 말인가!진예은이 고개를 돌리더니 유이에게 되물었다.“너도 그 소문 믿어?”강유이가 머리를 저었다.소문을 믿진 않았다. 하지만 아이와 그녀가 도대체 무슨 관계인지 궁금했다.아이는 이제 한 살 정도 되어 보였고 진예은은 그녀와 비슷한 나이였다. 만약 정말 진예은의 아이라면 그녀가 열여섯에…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진예은이 팔짱을 꼈다.“쟤는 그날, 네가 봤던 그 남자의 딸이야.”강유이가 놀라 되물었다.“그 너한테 찝쩍거리던?”그녀가 집안으로 들어갔다.“그 남자는 내 오빠야.”강유이는 그녀의 뒤를 따르며 현관으로 들어가 슬리퍼로 갈아 신었다.“오빠라고. 그런데 왜…”그날 진예은한테 매달리던 남자는 꽤나 험악해 보였다. 때문에 절대 두 사람이 남매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진예은이 냉장고에서 주스 두 병을 꺼내 한 병을 그녀에게 건넸다.“웃기지. 난 그 남자 동생인데, 그 남자는 내가 자기가 남긴 오점을 처리해 주는 도구로밖에 안 보더라고.”그녀가 소파에 앉았다. 그녀는 이런 남매 관계에 이미 익숙해져 있는 것 같았다. 그녀한테 가족이란 절대 가슴 따뜻한 그런 게 아니었다.강유이가 그녀의 곁에 앉았다. 잠시 후, 유이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그러니까 네가 휴학한 원인이 소문으로 떠돌던 그런 일 때문이 아니라, 네 오빠의 딸 때문이었어?”진예은은 느긋하게 주스를 마시며 다른 한 손으로 휴대폰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어쩔 수 없었어. 오빠가 어떤 귀족 딸이랑 약혼을 했는데, 이 아이가 걸림돌이 되어버렸거든. 만약 이 아이를 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