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이는 그녀가 사람과 접촉하거나, 이야기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혹시 방금 들은 그 소문 때문인가?소문의 진실 여부는 그저 들리는 말만 듣고 알 수 없었다.어쨌든 그건 당사자만이 알 수 있는 일이었다.강유이와 진예은은 비록 한 지붕 아래 살고 있긴 했지만 말을 나눈 건 고작 열 마디도 채 되지 않았다. 그것도 대부분 강유이가 물었고, 그녀가 대답한 게 전부였다.그 외에는 부딪히지도 않았으니 이야기를 나눌 기회는 더더욱 없었다.강유이의 상처는 이제 딱지가 앉아 완전히 다 나았다. 그녀는 무용 공연 재시험을 치고 겨우 점수를 채울 수 있었다.공연장을 나가던 그녀는 웬 스무 살 좀 넘어 보이는 양복 입은 남자가 진예은한테 치근덕거리는 모습을 발견했다.진예은의 표정에서 짜증과 거부감이 느껴졌다. 강유이는 그 모습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그녀가 성큼성큼 다가가 남자가 잡고 있는 그녀의 팔을 잡았다.“저기요, 그쪽 우리 학원 학생 아니죠. 이손 놓지 않으면 당장 경비원 부를 거예요.”남자가 강유이를 훑어보더니 인상을 쓰며 콧방귀를 뀌었다.“네가 뭔데? 왜 쓸데없는 일에 참견하지?”강유이가 남자의 손을 힘껏 쳐냈다.“제가 좀 쓸데없는 일에 나서길 좋아하거든요.”남자가 막 강유이한테 손을 대려던 그때, 등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걔한테 손가락 하나 댔다 봐요.”남자가 고개를 돌리고 그들 쪽으로 다가오는 한태군을 바라보았다. 남자가 화를 참으며 정장 소매를 걷어올렸다.“어떻게, 여기 이 계집이 한태군 도련님 여자친구라도 되나 봐요?”“제가 그렇다고 하면요?”한태군이 남자 앞에 마주 섰다.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말했다.“좋아요. 도련님 얼굴 봐서 오늘은 이만하죠.”그가 강유이 뒤에 서있는 진예은을 바라보고 코웃음을 치더니 옆에 주차되어 있는 차를 몰고 그곳을 벗어났다.그제야 정신을 차린 강유이가 팔짱을 끼며 한태군을 바라보았다.“누구더러 네 여자친구래?”한태군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번뜩 정신을 차린 강유이는 거울로 자신의 뒤에 서있는 진예은의 모습을 확인했다.방금 씻고 나온 그녀 역시 옷을 갈아입으려는 듯했다. 기숙사에는 전신 거울이 딱 하나였고 마침 강유이가 점령하고 있었다.강유이가 난감한 표정으로 웃으며 아무 옷이나 집어 들고 말했다.“난 다 골랐으니까, 이제 네가 골라.”그녀가 막 방으로 들어가려던 그때.“난 그 옷이 괜찮은 것 같아.”놀란 유이가 고개를 돌려 진예은이 가리킨 옷을 바라보았다. 그건 자신의 팔에 걸쳐진 베이비블루 원피스였다.강유이가 그 원피스를 빼내서 되물었다.“이거?”진예은이 고개를 끄덕였다.“고마워.”강유이가 활짝 웃으며 들고 있던 옷을 말아 쥐고 서둘러 침실로 들어갔다.아홉시가 될 때쯤, 강유이는 학교 문 앞에서 그를 기다렸다.많은 학생들이 학교에서 나오고 또 학교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십분을 넘게 기다려도 한태군은 나타나지 않았다.강유이가 자신의 입술을 살짝 깨물고 휴대폰을 꺼내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그런데 전화를 받은 사람은 한태군이 아니라 리사였다.“어쩐 일이야, 강유이?”리사는 두 사람이 있을 때만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냈다.순간 당황하던 강유이가 곧바로 표정을 굳혔다.“한태군 전화를 왜 네가 받아.”“한태군 전화를 왜 내가 못 받겠어. 한태군한테 볼일 있나 본데, 미안하게 됐어. 그가 나한테 널 상대할 시간이 없다는 말을 전해달라고 했거든…”강유이는 리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전화를 끊어버렸다.휴대폰을 쥔 손에 힘이 실렸다. 어쩔 수 없는 불안감이 덮쳐왔다. 몇 년 전, 한태군은 공항에서 그 말을 한 후, 냉정하게 그녀에게 등을 돌렸었다. 그녀는 현재 그때 느꼈던 감각이 자꾸만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설마, 한태군이 정말로 그녀를 갖고 논 걸까?다른 한편, 전화를 받은 리사가 잔뜩 긴장한 채로 주변을 살폈다. 그녀는 고용인들이 거실에 없는걸 확인하고, 한태군의 생일을 입력하며 비밀번호를 풀려고 시도했다.인증 실패.그녀가 이를 악물고 강유이의 생일을
강유이가 미처 무슨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진예은이 허리를 숙이며 아이를 안아주었다.“연서야, 나 보고 싶었어?”여자아이가 그녀의 목을 파고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쭈뼛쭈뼛거리며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진예은이 진연서를 베이비시터에게 건네주자 베이비시터가 아이를 안고 집안으로 들어갔다.그제야 퍼뜩 정신을 차린 유이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서… 설마 네 딸이야?”진예은한테 정말로 아이가 있었단 말인가!진예은이 고개를 돌리더니 유이에게 되물었다.“너도 그 소문 믿어?”강유이가 머리를 저었다.소문을 믿진 않았다. 하지만 아이와 그녀가 도대체 무슨 관계인지 궁금했다.아이는 이제 한 살 정도 되어 보였고 진예은은 그녀와 비슷한 나이였다. 만약 정말 진예은의 아이라면 그녀가 열여섯에…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진예은이 팔짱을 꼈다.“쟤는 그날, 네가 봤던 그 남자의 딸이야.”강유이가 놀라 되물었다.“그 너한테 찝쩍거리던?”그녀가 집안으로 들어갔다.“그 남자는 내 오빠야.”강유이는 그녀의 뒤를 따르며 현관으로 들어가 슬리퍼로 갈아 신었다.“오빠라고. 그런데 왜…”그날 진예은한테 매달리던 남자는 꽤나 험악해 보였다. 때문에 절대 두 사람이 남매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진예은이 냉장고에서 주스 두 병을 꺼내 한 병을 그녀에게 건넸다.“웃기지. 난 그 남자 동생인데, 그 남자는 내가 자기가 남긴 오점을 처리해 주는 도구로밖에 안 보더라고.”그녀가 소파에 앉았다. 그녀는 이런 남매 관계에 이미 익숙해져 있는 것 같았다. 그녀한테 가족이란 절대 가슴 따뜻한 그런 게 아니었다.강유이가 그녀의 곁에 앉았다. 잠시 후, 유이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그러니까 네가 휴학한 원인이 소문으로 떠돌던 그런 일 때문이 아니라, 네 오빠의 딸 때문이었어?”진예은은 느긋하게 주스를 마시며 다른 한 손으로 휴대폰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어쩔 수 없었어. 오빠가 어떤 귀족 딸이랑 약혼을 했는데, 이 아이가 걸림돌이 되어버렸거든. 만약 이 아이를 인정
강유이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지더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숨을 고를 줄 몰랐던 그녀는 억지로 숨을 참을 수밖에 없었다. 얼굴이 점점 빨개지고 당장 질식할 것만 같았다.한태군이 드디어 그녀의 입술을 놓아주었다. 그가 눈물을 잔뜩 머금은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미안해, 유이야.”잔뜩 서러웠던 유이가 결국 눈물 한 방울을 톡 떨어트렸다.“미안하다 한 마디면 다야? 이 거짓말쟁이.”그가 그녀의 눈물을 조심스럽게 닦아주었다.“너를 바람맞힐 생각은 없었어. 갑자기 사정이 생겨서…”하필 한태군의 어머니한테서 척추 종양이 발견되어 떼어내야 한다는 진단을 받게 되었다. 종양을 떼내지 않으면 반신불수가 될 수도 있다고 했다.그가 유이한테 이유를 설명하려고 했지만 유이는 이미 그를 수신차단한 뒤였다.“사정이 있었으면 나한테 전화를 해야 할 거 아니야…”그녀가 눈물을 닦으며 옆으로 고개를 휙 돌렸다.“내가 뭐 그렇게 쪼잔한 사람인 줄 알아? 네 전화를 리사가 받게 하질 않나. 너 내가 그 애를 싫어하는 걸 알면서…”한태군의 눈빛이 싸해졌다. 그가 잠깐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네가 나한테 전화한 줄 몰랐어.”강유이가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그가 몸을 일으키더니 휴대폰을 들고 집사한테 연락했다. 그의 안색이 어두웠다.“거실에 설치된 감시카메라 녹화 영상, 지금 저한테 보내주세요.”그의 휴대폰에는 그녀한테서 걸려온 통화기록이 남아있지 않았다. 이건 분명 리사가 자신의 휴대폰을 건드린 것도 모자라, 함부로 그의 전화를 받고 기록까지 삭제했다는 말이었다.그의 휴대폰 비밀번호는 추측하기 어렵지 않았다.보아하니 전에 그녀가 그의 노트북 비밀번호를 본 것 같았다.집사가 녹화 영상을 그에게 전송했다. 그가 영상을 확인하기 전에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오늘 일은 내가 다음에 다 보상해 줄게.”그녀가 그의 손을 밀어냈다. 그녀는 아직 화가 풀리지 않았다.“다음은 없어.”한태군이 피식 웃었다.그는 휴대폰 속에서
하지만 한태군은 허를 찌르는 쪽이었다. 겉으로는 온화한척하면서, 뒤로는 싹을 잘라낼 계략을 꾸미고 있었다.한재욱이었다면 적어도 그녀를 ‘생명의 은인’으로 생각하고 어느 정도 감안해 줄 것이다.하지만 한태군은 겉으로는 한재욱의 체면을 생각해 주는 척하며, 뒤로는 그녀를 가만두지 않았다.“집사님,”한태군이 피터를 바라보았다.“저애에게 집안에서 가장 힘든 일을 맡겨주세요. 저희 가문은 쓸모없는 사람은 키우지 않습니다. 가사도우미 분들한테 저 애가 허튼짓을 하지는 않는지 주시하라고도 해주세요. 만약 잠깐이라도 게으름을 피우면, 물 한 모금도 주지 마세요.”피터가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리사는 뺨에서 느껴지는 고통을 신경 쓰지도 못하고, 멍하니 바닥에 주저앉아있을 뿐이었다.그녀는 예전에 집에서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을 정도로 곱게 컸었다. 그런데 한 씨 가문에 들어온 이후로 못 해본 일이 없었다.한 씨 가문에서 그녀는 가사도우미만도 못했다. 하지만 이대로 쫓겨나면 더욱 힘들어질 게 분명했다.이대로는 안 된다. 그녀는 어떻게든 지금의 신세에서 벗어나야만 했다.-이튿날, 강유이는 가방을 메고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그녀는 책을 돌려주러 도서관으로 가는 중이었다.복도를 지나던 그녀가 문뜩 걸음을 멈췄다. 한태군이 해당화 나무 아래에 서 있었다. 하얀색 셔츠를 입은 모습이 깔끔하고 단정해 보였다.햇볕이 촘촘한 나뭇가지 사이를 뚫고 그를 비추었다. 어렴풋하게 보이던 그가 점점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강유이가 그에게 다가갔다.“여긴 어쩐 일이야?”그가 그녀를 바라보았다.“널 기다리고 있었어.”그녀가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이미 수신거부도 풀었는데. 넌 전화할 줄도 모르냐?”이렇게 무작정 기다리다니. 만약 그녀가 오늘 외출하지 않았다면 하루 종일 기다리고 있을 생각이었나?한태군이 그녀한테 한걸음 다가가며 미소 지었다.“네가 화나서 내 전화 안 받으면 어떡해.”그녀가 머리를 숙이고 자기 신발만 바라보았
한태군이 그녀를 돌아보았다.“왜?”유이가 고개를 푹 수그렸다.“알았다면 뭐 라도 사 왔을 거 아니야. 빈손으로 병문안 오는 법이 어딨어.”적어도 꽃다발이나 과일 바구니라도 준비해 왔어야 했다.한태군은 조그마한 입을 삐죽 내밀고 있는 강유이의 얼굴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미래 며느리가 병문안 와준 걸로 충분히 기뻐하셨을 거야.”“미래… 뭐?”강유이가 순간 얼어붙었다. 그녀가 토끼 눈을 한 채 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며느리?”한태군은 눈썹만 찡긋거릴 뿐, 대답하지 않았다.강유이가 새빨개진 얼굴로 그를 밀쳤다.“누가 너한테 시집간대? 이, 이 파렴치한 놈!”그녀가 황급히 뛰어가 버렸다.한태군은 어쩔 줄 몰라 하며 무작정 앞으로 뛰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눈 깜빡할 새에 화요일이 되었다.반재신은 최근 졸업 논문 때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기에 다른 일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막 연구실에서 나오던 그의 귀에 한태군과 강유이가 사귄다는 말이 들려왔다.“진짜야? 반 씨 가문의 공주님과 한 씨 가문의 도련님이 진짜로 사귀어?”“내 이 두 눈으로 직접 두 사람이 주말에 같이 나가 노는 걸 봤다니까. 거짓말일 리가 있겠어?”반재신이 순식간에 두 사람 뒤로 다가갔다.“방금 그 말, 다시 한 번 해봐.”갑작스러운 그의 등장에 두 사람이 화들짝 놀라 몸을 부르르 떨었다.소문을 전해 들은 반재신이 강유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아니나 다를까, 연습실을 나온 강유이는 반재신이 벽에 기대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그녀가 빠른 걸음으로 그에게 다가갔다.“오빠 논문 다 썼어?”반재신이 팔짱을 끼고 그녀를 쏘아보았다.“응. 내가 논문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사이에 한 뭐시기 그놈이랑 붙어먹었다 이거지?”강유이가 당황했다.“아… 아니야.”하지만 어쩐지 양심이 찔렸다. 그녀의 동요를 반재신은 정확히 알아챌 수 있었다.“이제 나한테 거짓말까지 한다 이거지?”그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오빠는 한태
“미안한데.”진예은이 어깨를 으쓱거렸다.“나도 한태군에 대해서 잘 몰라.”그녀는 불과 몇 년 전에서야 한태군과 처음 만났었다.한태군은 어렸을 때 이미 한 씨 노부인의 박해를 피해 Z 국으로 보내졌었다. 그때도 그녀는 한태군을 잘 몰랐다.단지 한태군이라는 그녀의 사촌 오빠가 있는데 그녀와 생일이 한 달 차이 밖에 안 난다는 말만 전해 들었을 뿐이었다.하지만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사촌 오빠라는 사람은 절대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간단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어른들은 그가 나이도 어린데 다방면으로 재능이 넘친다고 칭찬했다. 금융, 컴퓨터, 증권, 미디어 산업, 게임, 심지어 주얼리까지 각종 분야를 정통하고 있었다.내부인 중 누군가가 그런 말을 한 적 있었다. 한태군 정도의 자질이면 몇 년 내로 한 씨 집안이 재기에 성공할 거라고. 그리고 그는 그걸 하나하나 증명해 보였다.몇 년 전, 한재욱이 그를 데리고 각종 연회에 참석했을 때, 그는 수많은 의심과 괴롭힘을 당했었다. 하지만 번마다 전혀 기죽지 않고 침착하게 상황을 대처했다.상업계 사람들은 상황에 따라 변한다. 서로 손을 잡아도 수틀리면 뒤통수를 치는 일이 끊이질 않았다. 똑똑하지 못하고 변화에 제때에 반응하지 못하는 놈은 잡아먹히는 게 이 바닥의 룰이다.한태군은 마치 쉽게 길들어지지 않는 한 마리의 야생마 같았다.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어려워했다. 그는 마치 적의 포위를 거침없이 뚫고 가는 적토마와 같아, 동종 업계 사람들이 아무리 막아내려 해도 막아낼 수 없었다.이대로만 큰다면, 경력도 더 늘 것이고, 그러면 아무도 그의 상대가 되지 못할 것이다.강유이가 말을 잇지 못했다. 진예은 조차 그를 모르는데 자신은…정말로 그를 이해할 수 있을까?“네가 한태군의 적도 아니고, 뭘 그렇게 걱정해.”진예은이 그녀의 곁을 지나치며 말했다.“오빠가 너에 대한 애정을 그렇게 노골적으로 드러내는데 누가 누굴 손에 쥐고 흔들지는 아직 장담할 수 없는 거야.”강유이는 한태군의 예외에 속했다. 그
도대체 자신이 강유이보다 못한 게 뭐가 있단 말인가?그녀가 주먹을 꽉 쥐었다. 순간, 머릿속에 묘한 수가 떠올랐다.정연이 한희운의 팔짱을 끼고 귀빈들 앞에 나타났다. 몸조리를 잘 한 덕분에 정신도 맑았고, 예전처럼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자신보다 신분이 낮은 가문에 시집간 제국의 공주였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자애롭고 친절한 평범한 가정의 현모양처였다.그녀가 샴페인 잔을 들더니 적극적으로 귀빈들을 향해 술을 권했다.한희운이 그녀를 배려해, 도우미한테 그녀의 샴페인을 주스로 바꾸어 달라고 부탁했다.“당신은 퇴원한지도 얼마 안 됐으니까, 술은 마시지 마.”그녀가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조금은 괜찮아요. 제가 애도 아니고.”한희운이 그녀의 옆 머리를 귀 뒤로 넘겨주며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내 눈엔 항상 애로 보여.”곁에 있던 사람들이 웃으며 두 사람을 놀려주었다.“가주님과 사모님께서는 결혼한 지 이렇게나 오래되었는데도, 아직 신혼처럼 알콩달콩 하시네요. 아주 깨가 쏟아집니다.”“자네도 남은 날을 즐겁게 보내고 싶다면, 돌아가서 자네 와이프와 한번 시도해 보게.”강유이는 그들을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자기 엄마, 아빠가 떠올랐다.그녀의 엄마, 아빠 역시 결혼한 지 몇 년이나 지났는데 질리지도 않는지, 시도 때도 없이 애정표현을 서슴지 않았다. 유이는 그런 부모님들의 모습이 이해되지 않았다.하지만 나중에 같은 반 친구들한테서 들으니, 그들의 부모님들은 자신의 엄마 아빠와 사뭇 달랐다.어떤 이들은 이혼하기도 했고, 또 어떤 이들은 매일같이 다투고, 싸우기도 했다. 심지어 어던 부모는 일하느라 바빠 자주 만나지 못하고, 불안정한 감정 때문에 재혼을 거듭하기도 했다. 그리고 또 어떤 친구들의 부모님은 아무리 서로를 미워하는 나날을 보내더라도 이혼을 택하지 않고 현재를 유지하는 방법을 택하기도 했다.오늘날 한태군의 부모님들이 저렇게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니 그녀는 저도 모르게 궁금해졌다. 나중에 자신도 결혼하게 되면 저들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