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태군이 그녀를 돌아보았다.“왜?”유이가 고개를 푹 수그렸다.“알았다면 뭐 라도 사 왔을 거 아니야. 빈손으로 병문안 오는 법이 어딨어.”적어도 꽃다발이나 과일 바구니라도 준비해 왔어야 했다.한태군은 조그마한 입을 삐죽 내밀고 있는 강유이의 얼굴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미래 며느리가 병문안 와준 걸로 충분히 기뻐하셨을 거야.”“미래… 뭐?”강유이가 순간 얼어붙었다. 그녀가 토끼 눈을 한 채 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며느리?”한태군은 눈썹만 찡긋거릴 뿐, 대답하지 않았다.강유이가 새빨개진 얼굴로 그를 밀쳤다.“누가 너한테 시집간대? 이, 이 파렴치한 놈!”그녀가 황급히 뛰어가 버렸다.한태군은 어쩔 줄 몰라 하며 무작정 앞으로 뛰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눈 깜빡할 새에 화요일이 되었다.반재신은 최근 졸업 논문 때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기에 다른 일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막 연구실에서 나오던 그의 귀에 한태군과 강유이가 사귄다는 말이 들려왔다.“진짜야? 반 씨 가문의 공주님과 한 씨 가문의 도련님이 진짜로 사귀어?”“내 이 두 눈으로 직접 두 사람이 주말에 같이 나가 노는 걸 봤다니까. 거짓말일 리가 있겠어?”반재신이 순식간에 두 사람 뒤로 다가갔다.“방금 그 말, 다시 한 번 해봐.”갑작스러운 그의 등장에 두 사람이 화들짝 놀라 몸을 부르르 떨었다.소문을 전해 들은 반재신이 강유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아니나 다를까, 연습실을 나온 강유이는 반재신이 벽에 기대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그녀가 빠른 걸음으로 그에게 다가갔다.“오빠 논문 다 썼어?”반재신이 팔짱을 끼고 그녀를 쏘아보았다.“응. 내가 논문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사이에 한 뭐시기 그놈이랑 붙어먹었다 이거지?”강유이가 당황했다.“아… 아니야.”하지만 어쩐지 양심이 찔렸다. 그녀의 동요를 반재신은 정확히 알아챌 수 있었다.“이제 나한테 거짓말까지 한다 이거지?”그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오빠는 한태
“미안한데.”진예은이 어깨를 으쓱거렸다.“나도 한태군에 대해서 잘 몰라.”그녀는 불과 몇 년 전에서야 한태군과 처음 만났었다.한태군은 어렸을 때 이미 한 씨 노부인의 박해를 피해 Z 국으로 보내졌었다. 그때도 그녀는 한태군을 잘 몰랐다.단지 한태군이라는 그녀의 사촌 오빠가 있는데 그녀와 생일이 한 달 차이 밖에 안 난다는 말만 전해 들었을 뿐이었다.하지만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사촌 오빠라는 사람은 절대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간단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어른들은 그가 나이도 어린데 다방면으로 재능이 넘친다고 칭찬했다. 금융, 컴퓨터, 증권, 미디어 산업, 게임, 심지어 주얼리까지 각종 분야를 정통하고 있었다.내부인 중 누군가가 그런 말을 한 적 있었다. 한태군 정도의 자질이면 몇 년 내로 한 씨 집안이 재기에 성공할 거라고. 그리고 그는 그걸 하나하나 증명해 보였다.몇 년 전, 한재욱이 그를 데리고 각종 연회에 참석했을 때, 그는 수많은 의심과 괴롭힘을 당했었다. 하지만 번마다 전혀 기죽지 않고 침착하게 상황을 대처했다.상업계 사람들은 상황에 따라 변한다. 서로 손을 잡아도 수틀리면 뒤통수를 치는 일이 끊이질 않았다. 똑똑하지 못하고 변화에 제때에 반응하지 못하는 놈은 잡아먹히는 게 이 바닥의 룰이다.한태군은 마치 쉽게 길들어지지 않는 한 마리의 야생마 같았다.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어려워했다. 그는 마치 적의 포위를 거침없이 뚫고 가는 적토마와 같아, 동종 업계 사람들이 아무리 막아내려 해도 막아낼 수 없었다.이대로만 큰다면, 경력도 더 늘 것이고, 그러면 아무도 그의 상대가 되지 못할 것이다.강유이가 말을 잇지 못했다. 진예은 조차 그를 모르는데 자신은…정말로 그를 이해할 수 있을까?“네가 한태군의 적도 아니고, 뭘 그렇게 걱정해.”진예은이 그녀의 곁을 지나치며 말했다.“오빠가 너에 대한 애정을 그렇게 노골적으로 드러내는데 누가 누굴 손에 쥐고 흔들지는 아직 장담할 수 없는 거야.”강유이는 한태군의 예외에 속했다. 그
도대체 자신이 강유이보다 못한 게 뭐가 있단 말인가?그녀가 주먹을 꽉 쥐었다. 순간, 머릿속에 묘한 수가 떠올랐다.정연이 한희운의 팔짱을 끼고 귀빈들 앞에 나타났다. 몸조리를 잘 한 덕분에 정신도 맑았고, 예전처럼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자신보다 신분이 낮은 가문에 시집간 제국의 공주였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자애롭고 친절한 평범한 가정의 현모양처였다.그녀가 샴페인 잔을 들더니 적극적으로 귀빈들을 향해 술을 권했다.한희운이 그녀를 배려해, 도우미한테 그녀의 샴페인을 주스로 바꾸어 달라고 부탁했다.“당신은 퇴원한지도 얼마 안 됐으니까, 술은 마시지 마.”그녀가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조금은 괜찮아요. 제가 애도 아니고.”한희운이 그녀의 옆 머리를 귀 뒤로 넘겨주며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내 눈엔 항상 애로 보여.”곁에 있던 사람들이 웃으며 두 사람을 놀려주었다.“가주님과 사모님께서는 결혼한 지 이렇게나 오래되었는데도, 아직 신혼처럼 알콩달콩 하시네요. 아주 깨가 쏟아집니다.”“자네도 남은 날을 즐겁게 보내고 싶다면, 돌아가서 자네 와이프와 한번 시도해 보게.”강유이는 그들을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자기 엄마, 아빠가 떠올랐다.그녀의 엄마, 아빠 역시 결혼한 지 몇 년이나 지났는데 질리지도 않는지, 시도 때도 없이 애정표현을 서슴지 않았다. 유이는 그런 부모님들의 모습이 이해되지 않았다.하지만 나중에 같은 반 친구들한테서 들으니, 그들의 부모님들은 자신의 엄마 아빠와 사뭇 달랐다.어떤 이들은 이혼하기도 했고, 또 어떤 이들은 매일같이 다투고, 싸우기도 했다. 심지어 어던 부모는 일하느라 바빠 자주 만나지 못하고, 불안정한 감정 때문에 재혼을 거듭하기도 했다. 그리고 또 어떤 친구들의 부모님은 아무리 서로를 미워하는 나날을 보내더라도 이혼을 택하지 않고 현재를 유지하는 방법을 택하기도 했다.오늘날 한태군의 부모님들이 저렇게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니 그녀는 저도 모르게 궁금해졌다. 나중에 자신도 결혼하게 되면 저들처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녀를 불쌍하게 여기고, 한 씨 가문에서 그녀를 학대한다고 생각할 것이다.중요한 건 한재욱은 이 일에 대해 전혀 아는 게 없었다.한재욱은 최근 항상 바쁘다 보니 집에 온 시간이 적었다. 그녀는 한재욱이 자신의 모습을 보면 무조건 진상을 추궁할 것이라고 믿었다.사람들이 모여있는 지금이 그녀한텐 기회였다. 아무리 한 씨 가문에서 한태군의 입김이 세다고 해도, 가족의 체면을 생각하면 절대 자신을 더 이상 어쩌지 못할 것이다.한재욱한테 자신의 고충을 알려줘야 했다. 그래야만 자신이 그에게 독립을 요구해도 그가 거절하지 못할 것이다.한태군의 공제에서 잠시 벗어날 수만 있으면 된다. 그렇게만 된다면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손에 넣을 자신이 있었다.그녀가 한재욱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아버지 저… 전 그냥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려고 한 것뿐인데. 혹시 제가 잘못한 건가요?”한재욱이 미간을 찌푸렸다. 오늘은 조카며느리의 퇴원 기념 연회였다. 그런데 자신의 양녀인 리사가 저런 옷을 입고 나선 건 확실히 보기 좋지 않았다.“얼른 가서 옷 갈아입지 않고 뭐 해.”리사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한태군의 눈치를 살필 뿐이었다.정연은 그녀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쨌든 그녀는 한재욱의 생명의 은인이었다. 만약 이 일이 소문이라도 나게 된다면 한 씨 가문이 배은망덕하다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네 아버지 말씀 들어. 얼른 가서 옷부터 갈아입거라.”정연이 메이드에게 그녀를 데리고 갈 것을 지시했다.리사가 메이드를 밀어내며 정연의 앞으로 달려가 무릎을 꿇었다. 그녀가 울며 호소했다.“사모님, 저 태군 오빠가 저를 싫어한다는 것도 알고, 또 제 존재가 이 집안 체면을 깎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어요. 저 이 집에서 나가서 살아도 괜찮아요. 절대 다시는 태군 오빠의 눈에 거슬리지 않을게요.”참으로 훌륭한 연기였다. 리사의 말속에 숨은 뜻을 모든 사람들이 눈치챌 수 있었다.한태군이 새로 들어온 양녀를 싫어
그건 예전에 그녀가 한태군을 부르던 호칭이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 입에서 그 호칭을 듣게 되자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한태군과 한재욱이 서재로 들어갔다. 옷을 갈아입고 아래층으로 내려온 리사는 마침 혼자 있는 강유이를 보게 되었다.그녀가 대놓고 한태군에게 반항할 수 있었다는 건, 더 이상 한태군의 보복이 두렵지 않다는 걸 뜻했다. 왜냐하면 이제 벌어질 일이야말로 이번 시나리오의 하이라이트기 때문이다.한태군은 강유이를 무척 아꼈다. 강유이 때문에 자신을 일부러 더 괴롭혔었다.그런데 만약 강유이가 더럽혀진다면? 그래도 한태군은 계속 강유이에게 애정을 쏟을 수 있을까?리사가 옆 테이블로 다가가 술잔을 들었다. 그리고 미리 손가락 틈새에 끼워두었던 약을 떨어뜨렸다.술에 떨어트린 약이 순식간에 기포가 되어 사라져버렸다.강유이가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틈에, 그녀의 술잔을 약이든 술잔과 바꿔치기했다.“유이야.”강유이가 고개를 돌렸다. 순간 그녀의 표정이 굳어졌다. 언제부턴가 리사가 술잔을 들고 자신의 곁에 서 있었다.리사가 태연자약하게 미소 지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나랑 짠하지 않을래? 설마 여기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나 무안하게 하려는 건 아니지?”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었기에 강유이는 절대 거절하지 못할 것이다.강유이는 주변 사람들이 두 사람 쪽을 힐끗 거리는 걸 알아챘다. 이곳은 한 씨 가문의 연회였다. 확실히 자신은 리사의 말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그녀가 시선을 내리며 자기 앞에 있는 술잔을 들었다.리사는 그녀가 손에 든 술잔을 빤히 쳐다보았다. 긴장되기도 했지만, 당장 그녀가 그 술을 마시길 더 바랐다.강유이가 술잔을 입가에 가져다 댔다. 리사가 이상할 정도로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순간 멈칫했다.“언제까지 보고 있을 거야.”리사의 표정이 순간 굳어졌다. 하지만 곧바로 언제 그랬냐는 듯 원래 표정으로 돌아갔다.“내가 같이 마셔줄게.”강유이의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리사가 먼저 술잔을 비웠다.강유이
리사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손에 쥐고 있는 술잔을 깨뜨리고 싶은 심정이었다.화가 난 강유이가 그의 허리를 꼬집으며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내가 언제 네 여자친구가 되겠다고 했어.”한태군이 스스럼없이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았다.“지금. 거절할 거야?”그녀가 볼에 바람에 넣으며 웅얼거렸다.“우리 오빠가 허락하지 않을 거야.”그가 그녀의 콧등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훑었다.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눈에 사랑스러움이 가득했다.“내가 그 허락 꼭 받아 낼 게.”정연이 후후 소리 내어 웃더니 한희운과 함께 그들 쪽으로 다가왔다.“태군아, 너 왜 자꾸 유이 놀려.”한희운이 곧바로 맞장구쳤다.“그러게 말이야. 우리 아들이 가족한테까지 숨기며 아무도 몰래 연애를 했단 말이지.”한태군이 미소 지었다.“지금 이렇게 공개하잖아요.”정연이 한 걸음 나서며 강유이의 손을 잡았다.“난 원래 우리 유이가 엄청 마음에 들었었어. 이제 태군이 여자친구가 되었다고 하니 더더욱 기쁜걸.”강유이는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녀는 너무나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한태군이 강유이를 자기 여자친구라고 소개한 일로, 리사가 피우려던 소란이 묻혀버렸다.반 씨 가문과 한 씨 가문이 사돈을 맺게 되면 앞으로 한 씨 가문은 승승장구할 일밖에 없게 될 것이다.어느새 사람들이 리사의 존재를 잊고 한태군의 연애를 축복해 주었다.리사는 순식간에 사람들에게 밀려 뒤로 물러났다. 그녀는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화가 나 이를 악물었다.도대체 자신의 계획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분명 강유이가 그 술을 마시기만 하면 끝 날 일이었다. 그러면 리사는 자신이 바라던 일을 이루게 될 것이다. 그런데 강유이가 운 좋게 넘어가 버렸다.한태군이 리사를 힐끗 바라보았다.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아있었다.잠시 후, 그가 술잔을 피터에게 건넸다. 한태군이 피터의 귓가에 속삭였다.“이거 성분 분석해 주세요. 이 술 분명 문제가 있을 겁니다.”술잔
차를 세운 피터가 시동을 껐다. 그가 백미러로 뒷좌석을 힐끗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담겨있지 않았다.“너 정말로 도련님이 너를 위해 집을 마련해 줬다고 생각한 거야?”리사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무슨 뜻이에요?”피터는 답이 없었다.장정 몇몇이 다가와 문을 열고 그녀를 끌어내리려고 하자 그녀가 미친 듯이 발버둥 쳤다.“안 가요. 저 돌아갈래요. 아버지를 뵈어야—”“어르신을 찾아가도 쓸모없을 거야. 이번 일은 어르신도 상관 안 하시기로 했어.”리사가 강제로 차에서 끌어내려졌다. 그녀가 울며 발악했다.“싫어요. 나 이런 촌구석에 있기 싫단 말이에요. 한태군을 만나야겠어요!”차량 한 대가 다가와 멈춰 섰다. 한태군이 차에서 내리자 장정들이 공손하게 도련님께 인사를 올렸다.리사가 빠르게 그의 앞으로 기어갔다. 그녀가 그의 바짓가랑이를 부여잡고 울며 빌었다.“태군 오빠, 나한테 왜 이러는 거예요. 아무리 내가 싫어도 어떻게 아버지의 뜻을 거르고 나를 이런 촌구석으로 보낼 수 있어요!”뒤에 있던 남자가 그에게서 리사를 떼어냈다. 그리고 그녀의 반항을 신경 쓰지도 않는다는 듯이 그녀를 제압해 눌렀다.한태군이 옷깃을 정리하며 싸늘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내가 경고했었던 것 같은데.”리사는 마치 누군가가 자신의 목을 꽉 쥐고 있는 것처럼 아무 소리도 나가지 않았다.“난 이미 말했었어. 네가 자기 분수도 모르고 설치는 것도 괜찮다고. 대신 그 대가는 꼭 치러야 할 거라고.”한태군이 그녀를 내려다보았다.“너 그런 허접한 연기를 꾸며내면 거기 사람들이 다 네 편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리사의 몸이 점점 더 세게 떨려났다.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아… 아니… 난 그런 게…”한태군이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하지만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똑똑한 척은 혼자 다 하더니. 참 멍청하단 말이야. 내 앞에서 그따위 연기를 하고, 그걸 내가 밝히지 않았다고 해서 네가 정말로 잘했다고 생각한 건가?”리사는 지독한 불안감이 몰려와 미
리사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그녀는 드디어 지난 몇 년 간 한태군이 그녀한테 흔들리지 않았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그는 진작 기억을 회복했었던 것이다.“너 유이한테 약을 먹여서 순결을 잃고 더럽혀진 기분을 느끼게 하고 싶었잖아. 그럼 어디 여기 암시장에서 그 기분을 마음껏 느끼며 살아봐.”한태군이 돌아섰다.리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걷잡을 수 없는 공포가 가슴을 옥죄어왔다.그녀가 장정들에게 끌려갔다. 아무리 소리 지르고 울고 발악해 보아도 사람들은 못 본척할 뿐이었다.늦은 밤, 한재욱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홀로 거실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그때 한태군이 집으로 돌아왔다.“리사는 새로운 집에 잘 데려다줬어?”한태군이 그를 바라보며 담담하게 웃었다.“네. 무척 마음에 들어 했어요.”한재욱이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한참 동안 침묵하던 그가 입을 열었다.“태군아, 그 해 교통사고가 있던 날, 정말로 누군가가 일부러 그런 거니?”그는 아직까지도 믿어지지 않았다. 리사 그 작은 계집이 그렇게까지 했을까 하는 의심이 앞섰다.계단 앞에 멈춰 선 한태군이 대답했다.“작은아버지께서 의심스러우시면 사람을 시켜 그녀의 친오빠인 리염의 행방에 대해 조사해 보세요.”한재욱이 침묵했다.증거가 없는 일에 한태군은 절대 함부로 말을 꺼내지 않았다. 보아하니 그는 정말로 무언가를 알아낸 것 같았다.-이틀 뒤.수업을 마친 강유이는 도서관에 들러 책 두 권을 빌렸다. 도서관을 나오던 그녀는 마침 입구에서 줄리안나와 마주쳤다.줄리안나가 성큼성큼 그녀에게로 다가오더니 강유이의 어깨를 밀치며 말했다.“강유이, 너 아무리 리사가 싫어도 그렇지. 어떻게 리사를 한 씨 집안에서 쫓아낼 수가 있어!”강유이는 어쩐지 줄리안나의 말이 우습게 느껴졌다.“이보세요 줄리안나 씨. 도대체 내가 어떻게 리사를 한 씨 집안에서 쫓아냈단 말이세요?”“그럼 아니란 말이야? 한 씨 가문에서 리사를 내보냈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게 너랑 상관있다고 했어. 네가 한태군의 여자친구 자격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