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예전에 그녀가 한태군을 부르던 호칭이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 입에서 그 호칭을 듣게 되자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한태군과 한재욱이 서재로 들어갔다. 옷을 갈아입고 아래층으로 내려온 리사는 마침 혼자 있는 강유이를 보게 되었다.그녀가 대놓고 한태군에게 반항할 수 있었다는 건, 더 이상 한태군의 보복이 두렵지 않다는 걸 뜻했다. 왜냐하면 이제 벌어질 일이야말로 이번 시나리오의 하이라이트기 때문이다.한태군은 강유이를 무척 아꼈다. 강유이 때문에 자신을 일부러 더 괴롭혔었다.그런데 만약 강유이가 더럽혀진다면? 그래도 한태군은 계속 강유이에게 애정을 쏟을 수 있을까?리사가 옆 테이블로 다가가 술잔을 들었다. 그리고 미리 손가락 틈새에 끼워두었던 약을 떨어뜨렸다.술에 떨어트린 약이 순식간에 기포가 되어 사라져버렸다.강유이가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틈에, 그녀의 술잔을 약이든 술잔과 바꿔치기했다.“유이야.”강유이가 고개를 돌렸다. 순간 그녀의 표정이 굳어졌다. 언제부턴가 리사가 술잔을 들고 자신의 곁에 서 있었다.리사가 태연자약하게 미소 지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나랑 짠하지 않을래? 설마 여기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나 무안하게 하려는 건 아니지?”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었기에 강유이는 절대 거절하지 못할 것이다.강유이는 주변 사람들이 두 사람 쪽을 힐끗 거리는 걸 알아챘다. 이곳은 한 씨 가문의 연회였다. 확실히 자신은 리사의 말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그녀가 시선을 내리며 자기 앞에 있는 술잔을 들었다.리사는 그녀가 손에 든 술잔을 빤히 쳐다보았다. 긴장되기도 했지만, 당장 그녀가 그 술을 마시길 더 바랐다.강유이가 술잔을 입가에 가져다 댔다. 리사가 이상할 정도로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순간 멈칫했다.“언제까지 보고 있을 거야.”리사의 표정이 순간 굳어졌다. 하지만 곧바로 언제 그랬냐는 듯 원래 표정으로 돌아갔다.“내가 같이 마셔줄게.”강유이의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리사가 먼저 술잔을 비웠다.강유이
리사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손에 쥐고 있는 술잔을 깨뜨리고 싶은 심정이었다.화가 난 강유이가 그의 허리를 꼬집으며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내가 언제 네 여자친구가 되겠다고 했어.”한태군이 스스럼없이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았다.“지금. 거절할 거야?”그녀가 볼에 바람에 넣으며 웅얼거렸다.“우리 오빠가 허락하지 않을 거야.”그가 그녀의 콧등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훑었다.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눈에 사랑스러움이 가득했다.“내가 그 허락 꼭 받아 낼 게.”정연이 후후 소리 내어 웃더니 한희운과 함께 그들 쪽으로 다가왔다.“태군아, 너 왜 자꾸 유이 놀려.”한희운이 곧바로 맞장구쳤다.“그러게 말이야. 우리 아들이 가족한테까지 숨기며 아무도 몰래 연애를 했단 말이지.”한태군이 미소 지었다.“지금 이렇게 공개하잖아요.”정연이 한 걸음 나서며 강유이의 손을 잡았다.“난 원래 우리 유이가 엄청 마음에 들었었어. 이제 태군이 여자친구가 되었다고 하니 더더욱 기쁜걸.”강유이는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녀는 너무나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한태군이 강유이를 자기 여자친구라고 소개한 일로, 리사가 피우려던 소란이 묻혀버렸다.반 씨 가문과 한 씨 가문이 사돈을 맺게 되면 앞으로 한 씨 가문은 승승장구할 일밖에 없게 될 것이다.어느새 사람들이 리사의 존재를 잊고 한태군의 연애를 축복해 주었다.리사는 순식간에 사람들에게 밀려 뒤로 물러났다. 그녀는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화가 나 이를 악물었다.도대체 자신의 계획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분명 강유이가 그 술을 마시기만 하면 끝 날 일이었다. 그러면 리사는 자신이 바라던 일을 이루게 될 것이다. 그런데 강유이가 운 좋게 넘어가 버렸다.한태군이 리사를 힐끗 바라보았다.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아있었다.잠시 후, 그가 술잔을 피터에게 건넸다. 한태군이 피터의 귓가에 속삭였다.“이거 성분 분석해 주세요. 이 술 분명 문제가 있을 겁니다.”술잔
차를 세운 피터가 시동을 껐다. 그가 백미러로 뒷좌석을 힐끗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담겨있지 않았다.“너 정말로 도련님이 너를 위해 집을 마련해 줬다고 생각한 거야?”리사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무슨 뜻이에요?”피터는 답이 없었다.장정 몇몇이 다가와 문을 열고 그녀를 끌어내리려고 하자 그녀가 미친 듯이 발버둥 쳤다.“안 가요. 저 돌아갈래요. 아버지를 뵈어야—”“어르신을 찾아가도 쓸모없을 거야. 이번 일은 어르신도 상관 안 하시기로 했어.”리사가 강제로 차에서 끌어내려졌다. 그녀가 울며 발악했다.“싫어요. 나 이런 촌구석에 있기 싫단 말이에요. 한태군을 만나야겠어요!”차량 한 대가 다가와 멈춰 섰다. 한태군이 차에서 내리자 장정들이 공손하게 도련님께 인사를 올렸다.리사가 빠르게 그의 앞으로 기어갔다. 그녀가 그의 바짓가랑이를 부여잡고 울며 빌었다.“태군 오빠, 나한테 왜 이러는 거예요. 아무리 내가 싫어도 어떻게 아버지의 뜻을 거르고 나를 이런 촌구석으로 보낼 수 있어요!”뒤에 있던 남자가 그에게서 리사를 떼어냈다. 그리고 그녀의 반항을 신경 쓰지도 않는다는 듯이 그녀를 제압해 눌렀다.한태군이 옷깃을 정리하며 싸늘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내가 경고했었던 것 같은데.”리사는 마치 누군가가 자신의 목을 꽉 쥐고 있는 것처럼 아무 소리도 나가지 않았다.“난 이미 말했었어. 네가 자기 분수도 모르고 설치는 것도 괜찮다고. 대신 그 대가는 꼭 치러야 할 거라고.”한태군이 그녀를 내려다보았다.“너 그런 허접한 연기를 꾸며내면 거기 사람들이 다 네 편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리사의 몸이 점점 더 세게 떨려났다.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아… 아니… 난 그런 게…”한태군이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하지만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똑똑한 척은 혼자 다 하더니. 참 멍청하단 말이야. 내 앞에서 그따위 연기를 하고, 그걸 내가 밝히지 않았다고 해서 네가 정말로 잘했다고 생각한 건가?”리사는 지독한 불안감이 몰려와 미
리사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그녀는 드디어 지난 몇 년 간 한태군이 그녀한테 흔들리지 않았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그는 진작 기억을 회복했었던 것이다.“너 유이한테 약을 먹여서 순결을 잃고 더럽혀진 기분을 느끼게 하고 싶었잖아. 그럼 어디 여기 암시장에서 그 기분을 마음껏 느끼며 살아봐.”한태군이 돌아섰다.리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걷잡을 수 없는 공포가 가슴을 옥죄어왔다.그녀가 장정들에게 끌려갔다. 아무리 소리 지르고 울고 발악해 보아도 사람들은 못 본척할 뿐이었다.늦은 밤, 한재욱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홀로 거실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그때 한태군이 집으로 돌아왔다.“리사는 새로운 집에 잘 데려다줬어?”한태군이 그를 바라보며 담담하게 웃었다.“네. 무척 마음에 들어 했어요.”한재욱이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한참 동안 침묵하던 그가 입을 열었다.“태군아, 그 해 교통사고가 있던 날, 정말로 누군가가 일부러 그런 거니?”그는 아직까지도 믿어지지 않았다. 리사 그 작은 계집이 그렇게까지 했을까 하는 의심이 앞섰다.계단 앞에 멈춰 선 한태군이 대답했다.“작은아버지께서 의심스러우시면 사람을 시켜 그녀의 친오빠인 리염의 행방에 대해 조사해 보세요.”한재욱이 침묵했다.증거가 없는 일에 한태군은 절대 함부로 말을 꺼내지 않았다. 보아하니 그는 정말로 무언가를 알아낸 것 같았다.-이틀 뒤.수업을 마친 강유이는 도서관에 들러 책 두 권을 빌렸다. 도서관을 나오던 그녀는 마침 입구에서 줄리안나와 마주쳤다.줄리안나가 성큼성큼 그녀에게로 다가오더니 강유이의 어깨를 밀치며 말했다.“강유이, 너 아무리 리사가 싫어도 그렇지. 어떻게 리사를 한 씨 집안에서 쫓아낼 수가 있어!”강유이는 어쩐지 줄리안나의 말이 우습게 느껴졌다.“이보세요 줄리안나 씨. 도대체 내가 어떻게 리사를 한 씨 집안에서 쫓아냈단 말이세요?”“그럼 아니란 말이야? 한 씨 가문에서 리사를 내보냈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게 너랑 상관있다고 했어. 네가 한태군의 여자친구 자격으로
강유이가 피식 웃었다.“예전의 내가 딱 지금 네 모습이었어. 한치의 의심도 없이 그 애를 믿었지. 그런데 걔는 내 믿음을 완전히 짓밟았어. 리사가 너한테 자기야말로 한태군과 어려운 시절을 함께 나눈 소꿉친구라고 했었다고? 그건 나랑 한태군의 추억이야. 도대체 어쩌다 그게 리사의 추억이 되었을까. 리사는 네 앞에서만 그런 말을 할 수 있었을 거야. 정말 떳떳하면 내 앞에서 했겠지.”그녀는 이제야 리사가 왜 한태군을 거리낌 없이 ‘태군 오빠’라고 불렀는지 이해가 갔다.이제 보니 그녀는 한태군이 기억을 잃은 걸 노리고 자신과 한태군의 추억을 그녀의 것으로 둔갑시켰던 것이다.그래서 4년 전 그녀가 한태군을 찾아왔던 것이다.자신이 리사의 속임수를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진작 마음이 다 타 재가 되었을 것이다.줄리안나는 한참 동안 멍하지 서 있었다. 그녀는 믿어지지 않았다.“그… 그럴 리가. 리사가 날 속였을 리가 없어.”“믿든 말든, 그건 네 자유야. 다만 다시는 그 애 일로 나를 찾아오지 마. 나 강유이는 절대 호락호락 당해줄 사람이 아니니까.”강유이가 그녀를 밀어내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기숙사로 돌아온 그녀가 책을 책상 위에 던지듯이 내려놓았다. 그 소리가 조금 컸는지 방에 있던 진예은이 거실로 나왔다.“무슨 일이야?”강유이가 소파에 털썩 주저앉더니 옆에 놓인 쿠션을 때리며 괴롭히기 시작했다.진예은이 팔짱을 끼고 그녀의 곁에 우두커니 섰다.“왜. 또 한태군이랑 싸웠어?”그녀가 웅얼거렸다.“걔랑 상관없는 일이야.”진예은이 냉장고를 열고 캔 콜라 하나를 따서 마셨다.순간 강유이는 한태군이 리사를 위해 준비해 뒀다던 집이 생각났다. 그녀는 속이 콱 막힌 것처럼 답답해졌다.“있잖아. 만약 한 사람이 기억을 잃었는데, 다른 사람이 와서 뭐라 뭐라 하면 기억을 잃은 사람은 그걸 다 믿을까?”진예은이 멈칫하다가 그녀를 흘겨보았다.“기억을 잃어?”결국 돌아 돌아 한태군의 이야기였다.그녀가 소파로 걸아가 다리를 꼬며 앉았다.“꼭 그렇다
청순하면서도 섹시해야 한다는 요구에 딱 들어맞는 여학생이었다!“학생, 잠시만!”갑작스러운 부름에 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돌아보았다. 안경을 쓴 남자가 다가오며 그녀에게 명함을 건넸다.“학생, 잠깐만 시간 좀 내줄 수 있을까? 몇 분이면 되는데.”강유이는 명함을 확인했다. AF 명품 향수 회사의 디렉터라고 적혀있었다.그녀가 고개를 들었다.“디렉터님, 저한테 볼 일 있으세요?”“우리 회사에서 지금 향수 모델을 찾고 있는데. 학생이 우리가 찾고 있는 모델 이미지에 딱 부합되는 것 같아. 그러니가 학생이 우리 좀 도와주면 안 될까?”강유이가 미처 대답을 하기도 전에 그가 진지한 표정으로 설명을 덧붙였다.“보수는 절대 섭섭하지 않게 챙겨줄 테니까 그건 걱정하지 마. 그리고 절대 억지로 장기 계약 같은 걸 하지도 않을 거야. 우리는 지금 딱 학생 같은 이미지의 모델이 필요해. 진짜 광고 하나만 찍어주면 돼.”강유이가 잠시 망설였다.“하지만 전 아직 졸업도 못했고…”“걱정하지 마. 절대 학생 졸업에 방해될 일 없을 거야. 카메라 앞에 몇 번만 서주면 돼. 빠르면 한 시간 정도면 끝날 수도 있어.”그들은 이미지에 부합되는 사람을 찾기 너무 힘들었다. 이번 광고가 요구하는 이미지는 무작정 예쁜 여학생을 찾는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겨우 이미지에 부합되는 학생을 찾아냈는데 그들은 쉽게 이 기회를 놓질 수 없었다.강유이가 잠깐 침묵하다가 명함을 받아들었다.“생각해 볼게요.”상대가 웃으며 답했다.“너무 오래 기다리게는 하지 말아 줘.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삼 일 내로 학생이 나한테 연락해 줬으면 좋겠어. 난 언제든지 시간 되니까.”식당에서 강유이는 광고 제의를 받은 일을 진예은한테 털어놓았다.“어쩌지? 연락해? 하지 마?”진예은이 고개를 들었다.“왜 안가? 학교를 다니면서 그런 경력을 쌓으면, 나중에 졸업하고 더 좋은 엔터 회사와 계약할 수도 있잖아. 너 연극 영화과를 선택했으면 배우가 되려고 선택한 거 아니야?”강유이가 입술을 깨물었다.확
기숙사. 강유이가 진예은의 방문 앞에 멈춰 섰다.그녀의 방 문은 닫혀있지 않고 비스듬하게 열려있었다.유이는 아까 식당에서 둘째 오빠가 했던 말에 대해 오빠 대신 사과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예은아, 나 할 말 있는데…”그녀가 막 문을 열고 들어가려고 하는데 진예은이 다급하게 노트북을 닫으며 고개를 돌렸다.“깜짝 놀랐잖아.”강유이가 고개를 수그렸다.“미안해. 일부러 놀래키울 생각은 아니었어.”“괜찮아. 그 정도는 아니야.”그녀가 책상 위에 어지럽게 흩어져있는 친필 원고를 정리했다.“참, 방금 무슨 말 하려고 하지 않았어?”“나 너한테 사과하려고.”그녀가 움직임을 멈추고 의아한 표정으로 유이를 바라보았다.“사과?”강유이가 또다시 고개를 숙였다.“우리 둘째 오빠 말 너무 마음에 두지 마. 오빠는 그저 내가 걱정돼서…”그녀가 말을 채 끝마치기 전에 문뜩 바닥에 떨어져 있는 친필 원고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진예은 아직 강유이가 그 원고를 주워드는 모습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녀가 책상 위에 놓인 원고를 정리하여 서랍에 넣어두었다.“사과할 필요 없어. 이해해. 그리고 너한테는 좋은 오빠잖아. 너를 엄청 아껴주고 관심해 주던데.”고개를 든 그녀의 얼굴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그녀가 서둘러 다가가 강유이의 손에 들린 원고를 빼앗아 서랍 안에 봉인해 넣었다.강유이가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너…”“강유이 학생.”진예은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애써 미소 지으며 유이를 바라보았다.“비밀 지켜줄 거지? 응?”강유이가 씩 웃으며 답을 하지 않았다.-3일 뒤, 강유이는 AF 한정 향수 회사에 도착했다.안내원이 그녀가 내미는 명함을 보더니 친절하게 그녀를 VIP 대기실로 안내했다.강유이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벽에는 온통 각종 고급스러운 광고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하나같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빌리우드 연예인들이었다.AF는 국제적으로 한정된 명품 브랜드답게 합작하는 연예인들도 모두 거물이었다. 심지어 명승희와 그녀의
하지만 투자자가 갑자기 조건을 변경했고 그들의 가장 큰 시장은 아시아 태평양 권이었다. Z 국은 그들 브랜드의 가장 큰 자본주가 된 것이다.디렉터가 한창 난감해하고 있을 때 강유이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저는 제가 이 브랜드 평판을 깨뜨릴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브랜드 쪽에서 저를 이 향수의 모델로 발탁했고, 저는 이번 광고를 잘 찍을 자신 있어요.”레이린 정이 강유이의 각오를 비웃었다.“아직 학교도 졸업 못한 햇병아리 주제에 감히 어딜 나서? 너 이 광고를 아무나 찍을 수 있는 건 줄 알아? AF가 얼마나 큰 회사인데. 너 지금 이게 소꿉장난 같아?”연예인은 이름만으로도 일종의 호소력을 갖고 있었다. 천만 명의 팬을 거느린 다는 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를 알고 있다는 말이었다. 당연히 홍보 효과도 확실히 볼 것이다.그런데 아직 연예계 입문도 하지 않은 애송이한테 이렇게 큰 브랜드 홍보를 맡기다니. 당연히 질타를 받을 수도 있었다.강유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신중하게 말을 뱉었다.“그럼 지금 당장 촬영해 보고 판단하죠. 만약 제 연기가 여러분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스스로 물러나겠어요.”레이린 정이 콧방귀를 뀌었다.“좋아. 똑똑히 지켜보겠어.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신인이 어느 정도로 잘 표현할 수 있을지.”그녀가 옆 사람에게 의자를 가져오라고 지시하고 자리에 앉았다.촬영 스텝들이 각자의 위치로 돌아갔다. 곧바로 녹화가 시작되었다.‘스위트 로즈’는 소녀의 매력을 방출하는 향기였다.시나리오는 인어공주 동화를 각색해 만들어졌다. 인어는 바다에 빠진 ‘왕자’를 구해 육지로 올려줬다. 그러나 그에게 정체를 들킬까 봐 바닷속으로 들어가 암초 뒤에 숨어서 몰래 그를 지켜보기만 했다.지나가던 공주가 기절한 왕자를 발견하고 그를 깨운다. 왕자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공주에게 그녀의 향수에 대해 묻는다. 왕자는 바로 공주가 자신이 원하는 그 ‘소녀’가 아님을 알아차린다.왕자는 공주를 밀어내고 암초가 있는 곳으로 다가가 암초 뒤에 숨어있는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