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테이블 옆으로 걸어가며 물었다.“무슨 일 있어?”“아니.”그가 안으로 들어오면서 벽에 표구되어 걸려있는 그림을 훑어보았다.“그냥 단순히 하정원 씨의 미술관을 참관하러 왔을 뿐이야.”그녀가 당황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낮에 올 줄 몰라?”그가 그림에서 시선을 거두며 답했다.“낮엔 시간이 안 나.”하정원이 혀를 차더니 다시 고개를 숙이고 표구를 계속했다.“이 밤에 미술관 참관하러 왔다니. 정신이 어떻게 된 거야 뭐야.”진여훈이 그녀를 바라보며 눈썹을 찌푸렸다.“너 말 좀 예쁘게 해.”“난 쭉 이랬거든.”하정원이 순간 뭔가를 떠올렸는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아참, 나 이제 당신 동생이잖아. 그럼, 오빠로서 존중을 해줘야 하나?”진여훈이 헛웃음을 지었다.“할아버지께서 우리 남매보고 잘 지내라고 하셨잖아. 설마 이렇게 얼렁뚱땅 넘기려고?”“그 말 들어봤어?”“무슨 말.”하정원이 씩 웃었다.“사람은 고쳐 쓰는 거 아니라는 말. 당신은 뭐 나랑 잘 지낼 마음이 있기나 해?”진여훈은 답을 하지 않았다.하정원이 손을 휙휙 내저었다.“됐어. 나도 당신과 내가 잘 지낼 수 있을 거라고 기대도 안 했거든. 당신이 나를 욕하지 않는 걸로 아주 감사하다고 생각해.”그는 흔들리는 시선으로 그 자리에 서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정원이 다시 표구에 집중했다. 그녀는 그가 돌아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일을 하다 고개를 드니 그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왜 아직도 안 가고 거기 서 있어?”진여훈이 창밖을 내다봤다.“비와.”그녀가 황당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당신 차 있잖아. 비 오는 게 무슨 걱정이야.”“그럼 넌, 돌아갈 차 있어?”하정원이 순간 멍해졌다. 몇초 후 그녀는 빗줄기가 장대같이 쏟아지는 창밖을 바라보았다.“설마 나 데리러 온 거야?”그는 대답이 없었다.하정원은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다. 진여훈은 자신을 싫어했다. 이혼하고도 자신을 싫어하는데, 그가 무슨 이유로 자신을 데리러 왔겠는가?
어떤 것들은 눈으로는 보이지 않고 마음으로 봐야 한다.-날이 화창하고 볕이 따뜻한 날이었다.하정원은 세 아이를 데리고 놀이공원에서 놀았다. 그런데 하필 그곳에서 민서율과 진여훈 두 사람을 만났다.두 사람은 그들보다 늦게 도착했다.강유이는 웃으며 그들에게 달려갔다.“서율 오빠, 여훈 삼촌!”강시언과 강해신은 하정원을 바라봤고 하정원은 팔짱을 두르며 혀를 찼다.“내 동생이 언제부터 저 녀석이랑 같이 놀았지?”게다가 진여훈이 놀이공원을 온다고?정말 희한한 일이었다.민서율은 그들을 보고 말했다.“우연이네요.”강해신은 코웃음을 쳤다.“그러게, 정말 우연이네요.”우연이다 못해 뜻밖이었다.하지만 민서율은 혼자가 아니라 진여훈과 함께 있었기에 굳이 따지고 들고 싶지 않았다.그렇게 아이들은 무리 지어 저희끼리 놀러 갔다.그렇게 하정원과 진여훈 두 사람은 그곳에 버려졌고 한참 뒤에야 하정원이 어렵사리 입을 뗐다.“어젯밤에는 고마웠어.”어제 그가 우산을 남겨준 덕에 비를 맞지 않을 수 있었다.진여훈은 덤덤히 대꾸했다. “그런데 넌 언제부터 놀이공원에 올 만큼 한가했어?”하정원은 진여훈을 훑어봤다. 오늘 그는 캐주얼한 옷을 입고 있어 놀기 좋은 차림이었다.진여훈이 이렇게 캐주얼하게 입는 건 아주 드문 일이었다. 보통은 조금 정식적인 차림이거나 정장을 입었었다.진여훈은 그녀를 바라봤다.“너도 시간이 있는데 나는 시간 있으면 안 돼?”하정원은 시선을 옮기며 당당하게 말했다.“내가 너랑 같아?”그녀는 원래 한가해지고 싶으면 한가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진여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정원은 길가에 인형 뽑기 기계가 있는 걸 보고 문득 하고 싶어져 그곳으로 다가가 동전을 게임머니로 바꿨다.등 뒤에서 진여훈의 목소리가 들렸다.“할 줄 알아?”“날 얕보는 거야?”하정원은 스틱을 잡고 조종하기 시작했다.“난 인형 뽑기 고수야.”하지만 그 말은 곧 부정당했다.인형을 집긴 집었지만 꺼내지는 못했다. 매번 중요한 순간에 인형이 떨어
그들은 저녁이 되어서야 어쩔 수 없이 돌아갔다.원래 강유이 등 세 아이는 하정원과 같은 차를 타려 했는데 하필 네 아이가 같은 차를 타게 됐다.하정원은 그들이 자신을 버리는 걸 보고 혀를 찼다.“진짜 너무해.”아이들은 분명 사전에 짜놓았을 것이다.진여훈은 차창을 내리고 시선을 들었다.“안 가?”하정원은 당황했다.그러나 그녀는 무언가 떠올랐는지 코웃음을 쳤다.“난 네 차 안 앉을래.”그날 진여훈이 구청에 자신을 버리고 간 일을 그녀는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진여훈이 또 무슨 속셈인지 누가 알겠는가?진여훈은 하정원이 여전히 그 일로 삐져 있는 걸 알고 온화한 어조로 말했다.“이번에는 진짜 바래다줄게.”“진짜 바래다준다고?”하정원은 코웃음을 쳤다.“네가 날 고속도로에 버릴지 내가 어떻게 알아?”예전이었다면 하정원의 반박에 진여훈은 인내심이 닳아 기사더러 출발하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지금 전혀 짜증이 나지 않았다.“안 그래.”하정원은 그를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왠지 이혼하고 나니 진여훈이 이상하게 변한 것 같았다.하지만 하정원은 결국 차에 탔다.가는 길 내내 차 안은 조용했고 아무도 그 고요한 분위기를 깨부수지 않았다.진여훈은 고개를 돌려 하정원을 바라봤다. 그녀는 줄곧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창문 유리에 비친 그녀의 얼굴을 보니 정신이 딴 데 팔린 것 같기도, 생각에 잠긴 것 같기도 했다. 어쩐지 조금 슬퍼 보이는 표정이었다.진여훈은 시선을 거둔 뒤 헛기침했다.“밥 뭐 먹고 싶어?”하정원은 그의 목소리를 듣고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너랑 내가 밥을 먹는다고?”진여훈은 그녀를 보며 미간을 살짝 구겼다.“그렇지 않으면?”하정원은 잠깐 넋을 놓고 있다가 갑자기 그의 옆자리에 앉으며 말했다.“솔직히 얘기해 봐.”그녀는 진여훈에게 바짝 다가갔다.“설마 귀신이라도 씐 거야?”운전하던 기사는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진여훈은 이를 악물고 웃으며 그녀에게 다
“지현아, 무슨 허튼소리를 하는 거야?”천지현의 아버지는 안색이 흐려졌다.그도 진씨 집안 체면을 고려해야 했다. 설사 진씨 집안이 정말 하정원을 이미지 메이킹 해줬다고 해도 앞에서 그런 얘기를 할 수는 없었다.천지현은 이를 악물었다.“허튼소리라뇨? 하정원만 아니었으면 전 이미 경원 씨랑 결혼했을 거예요. 다른 사람의 남자친구를 빼앗는 불여우가 제 앞에서 깨끗한 척하고 있잖아요.”“진여훈 씨, 당신 이 여자 싫어하는 거 아니었어요? 그런데 왜 이런 빌어먹을 여자에게 홀린 거예요?”천지현은 차갑게 코웃음을 치면서 하정원을 바라봤다.“빌어먹을, 벌써 진씨 집안을 손에 넣어서 자기편을 만들다니. 내가 보기엔 아마 할아버지와 손자의 시중을 드...”“짝!”천지현의 아버지가 천지현의 뺨을 때렸다. 천지현은 넋이 나갔다.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아빠?”천지현의 아버지는 화가 나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너 지금 네가 무슨 소리를 한 건지 알고 있어?”진여훈의 앞에서 진여훈의 할아버지까지 입에 담다니, 만약 그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그의 성격을 봤을 때 천지현의 아버지는 자신의 딸을 지키지 못했을 것이다.천지현은 어깨를 움찔 떨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전 사실대로 얘기했을 뿐이에요. 쟤 같은 여자는...”“하정원이 어떤 여자인데요? 그리고 천지현 씨도 그렇게 떳떳하지는 않을 텐데요.”진여훈은 냉담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눈동자에서 느껴지는 한기에 천지현은 두려움이 들었다.“무... 무슨 뜻이죠?”진여훈은 웃음을 터뜨렸다.“당신은 김씨 집안 큰 도련님 김경원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것 같네요. 그는 이미 결혼했어요. 다만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이 극히 드물 뿐이죠.”“말도 안 돼요!”천지현의 안색이 순식간에 돌변했다.“거짓말하지 말아요. 경원 씨에게 여자가 많다고 해도 그는 솔로예요. 저야말로 그의 떳떳한 여자친구라고요!”진여훈은 소매를 느슨하게 만들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천지현은 바닥에 자빠졌다. 김경원의 뒤로 그가 감싸는 여자와 여덟 살 된 아들을 본 그녀는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흘렀다.천지현의 아버지는 그 모습을 더는 보고 있기 힘들었다. 딸 때문에 그는 체면을 심하게 구겼다.“그만해. 나랑 돌아가.”“안 갈 거예요.”천지현은 그를 떨쳐냈다.“오늘 똑똑히 물어야겠어. 김경원, 이 짐승만도 못한 놈. 감히 날 가지고 놀아?”김경원은 등 뒤의 아내를 달래며 그녀더러 아들을 데리고 먼저 룸으로 들어가라고 했다. 그러고는 짜증 가득한 얼굴로 천지현을 바라봤다.“가지고 놀았다고?”김경원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쳤다.“너도 그때 나랑 자고 싶었잖아. 내가 언제 강요했어? 너도 그냥 놀아본 거였잖아. 너처럼 뻔뻔하고 끈질긴 여자는 정말 처음이야.”천지현의 아버지는 김경원이 자신의 딸을 모욕하자 안색이 순식간에 흐려졌다.“김경원, 선 넘지 마.”“선 넘지 말라고요? 선 넘은 건 당신 딸이죠. 제가 여자 여럿 만난 건 사실이에요. 당신 딸도 제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었다고요. 그런데 수치도 모르고 저한테 달라붙잖아요. 짜증 나서 헤어지자고 했더니 싫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지금은 제 아내랑 아들에게까지 손을 쓰려고 했어요.”김경원은 자신의 정장을 툭툭 털며 말했다.“자기가 먼저 들이대 놓고 제가 일편단심이길 원하더라고요. 심지어 결혼을 해달라니 꿈 깨라고 해요. 자기가 뭐라고?”“김경원!”천혁재는 화가 났다. 하지만 구경꾼들이 점점 더 늘어나니 더 이상 체면을 구길 수 없었다. 그는 천지현을 노려봤다.“이제 이놈이 어떤 놈인지 알겠어? 이제 마음 접어. 나랑 돌아가.”“안 갈래요. 아빠, 저 그냥 못 넘어가요.”천지현은 큰 충격을 받았다.“내가 얼마나 사랑했는데,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김경원은 차갑게 코웃음 쳤다. 그는 천지현이 내뱉은 사랑이라는 말을 하찮게 생각하는 듯했고 심지어 싫은 듯했다.천혁재는 천지현의 뺨을 때리며 화를 냈다.“정신 좀 차려. 창피하지도 않니?”하정원은 사람
그가 만났던 여자들은 그의 돈을 탐냈다. 돈만 받으면 끈질기게 달라붙지 않고 흔쾌히 헤어졌다. 아무래도 일방적인 감정이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천지현은 김경원에게 성가신 인물이었다.천지현은 천씨 집안의 딸이고 천지현이 먼저 그에게 다가갔다. 김경원은 그녀에게 여자친구라는 신분을 줬지만 외부에 공개한 적은 없고 그저 천지현의 몇몇 지인들만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천지현과 헤어진 이유는 관계가 지속되면 천지현이 그의 집까지 찾아와 난리를 피울까 걱정됐기 때문이다. 또 그는 아내와 아들을 지켜야 했기 때문에 그녀와 작별을 고했다.그런데 김경원이 예전에 하정원에게 작업을 건 적이 있어서 하정원은 천지현이 자기 남자친구를 빼앗아 갔다고 오해했다. 하정원은 누명을 쓴 셈이었다.그런 생각이 들자 진여훈은 안색이 좋지 않았다.하정원은 자신이 그렇게 염불을 외우던 팔보채를 먹느라 진여훈의 기분을 눈치채지 못했다.같은 시각, 진씨 집안.진철은 원래 진여훈이 돌아오면 함께 밥을 먹을 생각이었는데 강유이가 말했다.“외증조할아버지, 기다리지 않아도 돼요. 삼촌 밥 집에 와서 먹지 않을 거예요.”강성연은 고개를 돌려 강유이를 바라봤다.“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강유이는 비밀스럽게 웃었다.“삼촌 외숙모랑 같이 있어요. 오늘 분명 외식할걸요.”강유이는 하정원을 당숙모라고 부르는 게 습관이 되어 고치고 싶지 않았다.진철은 웃으면서 그릇과 젓가락을 들었다.“그럼 됐다. 걔네 기다리지 말고 우리는 먼저 먹자.”진여훈은 늦은 시간에 하정원을 집까지 바래다줬다. 하정원은 하루 종일 놀아서 피곤한 상태인 데다가 밥까지 배불리 먹은 탓에 잠이 쏟아져 차 안에서 잠이 들었다.하정원의 집에 도착해서 기사는 차를 멈춰 세웠고 고개를 돌려 하정원을 깨울 생각이었는데 진여훈이 조용히 하라고 손짓했다.그 뜻을 알아챈 기사는 곧바로 고개를 돌린 뒤 담배를 들고 차에서 내렸다.하정원은 고개를 돌려 의자 등받이에 기대었다. 차가 멈췄지만 그녀는 여전히 깨지 않았다.진여훈은 차에서 내
진여훈은 하정원을 침대 위에 내려놓은 뒤 침대로 그녀의 머리를 바쳤다. 하정원은 줄곧 깊은 잠에 빠져 경계심이 전혀 없었다.진여훈은 그녀 대신 이불을 덮어주고 침대 옆에 잠깐 서 있다가 조명을 끄고 침실에서 나왔다.한혜숙은 그가 위층에서 내려오자 천천히 일어났다.“여훈아.”진여훈은 걸음을 멈추고 몸을 비틀어 그녀를 바라봤다.“어머님, 무슨 일 있으세요?”“정원이 데려다줘서 고마워.”“별거 아니에요.”그는 이내 고개를 숙였다.“그러면 전 먼저 돌아가 보겠습니다.”한혜숙은 고개를 끄덕였다.진여훈의 뒷모습이 문밖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한혜숙은 감개했다. 그녀는 사실 진여훈이 꽤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하정원은 왜 그의 좋은 점을 보지 못하는지 의문이었다.하정원은 일찍 잠이 들어 일찍 깼다. 그녀가 깨어났을 때는 아침 여섯 시였다.그러나 눈을 뜬 그녀는 자신이 침실에 누워있는 걸 발견하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어제 차에서 잠든 것 같은데 언제 돌아온 거지?하정원은 세수를 하고 물을 마시러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아래층에서는 도우미가 일어나 아침을 하고 있었다.“아가씨, 벌써 깨셨어요?”하정원은 탁자 앞에 서서 물을 한 잔 따른 뒤 뭔가 떠올리고 말했다.“저 어젯밤 어떻게 돌아왔어요?”도우미는 웃으며 말했다.“진여훈 도련님이 바래다주셨어요.”컵을 들던 하정원의 손이 멈칫했다.“그 사람이 저 데려다준 건 알아요. 그런데... 누가 절 방에 데려다준 거예요?”그녀는 최근 잠을 잘 자지 못했다. 그런데 하필 어제 죽은 것처럼 자서 기억이라고는 전혀 없었다.도우미가 대답했다.“당연히 진여훈 도련님이 방까지 안아주셨죠.”하정원은 넋이 나갔다.수십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봤지만 진여훈일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그의 성격을 생각하면 그녀를 방까지 안아다 주는 게 아니라 기껏해야 깨웠을 것이다.그런데 도우미가 그녀를 속일 이유는 없었다. 그렇다면 정말 진여훈이...정말 희한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김경원 결혼 사실
하정원은 멍청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그녀와 진여훈을 이어주려 하고 있었다.이혼까지 했는데 왜 그러는 걸까?“숙모, 삼촌 싫어해요?”“네 삼촌이 날 싫어하는 거야.”강유이는 하정원을 물끄러미 바라봤다.“그러면 숙모는 삼촌 싫어해요?”하정원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네 삼촌이 날 싫어하는데 나도 당연히 싫지.”“우리 삼촌이 숙모를 싫어하지 않는다면요?”“...”하정원은 뜸을 들였다.“그래도 싫어.”“왜요?”강유이의 시선이 그녀를 지나쳐 뒤쪽으로 향했다.하정원은 컵을 들고 웃으며 말했다.“거만하고 위선적이고 성격도 나쁘고 전혀 다정하지 않잖아.”압박감 어린 그림자가 그녀의 뒤에 섰다.“그게 나에 대한 네 평가야?”하정원은 몸을 부르르 떨더니 고개를 돌렸다. 진여훈이 금테 안경을 쓰고 정장을 입은 채 그녀의 뒤에 꼿꼿이 서 있었다. 안경을 쓰면 외모가 가려진댔는데 진여훈만큼 안경이 잘 어울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매너가 좋고 말수가 적어 보이며 내성적인 듯하면서도 은근히 사악한 느낌이 들어 더 매력적이었다.하정원은 입을 뻐끔거리며 말했다.“내가 뭐 잘못 말했어?”진여훈이 거만하지 않고 위선적이지 않으며 사납지 않다고?진여훈은 시선을 내려뜨리고 하정원을 바라봤다.“그거 루머 생성이야.”하정원은 돌연 웃음을 터뜨렸다.“루머는 무슨, 난 사실만 얘기해.”진여훈은 더는 그녀와 다투지 않았다. 그는 의자를 꺼내 자리에 앉았고 하정원은 의아한 듯 물었다.“이게 뭐 하는...”진여훈은 덤덤히 말했다.“아침 먹으려고.”강유이가 웃었다.“삼촌도 저처럼 아침을 안 먹었나 보네요.”하정원은 할 말이 없었다. 그가 아침을 먹든 말든 왜 자신에게 얘기한단 말인가?그녀가 언제 먹지 말라고 한 적이 있나?정말 이상한 남자였다.그런데 강유이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며 활짝 웃어 보였다.“숙모, 삼촌. 전 오빠들이랑 같이 밥 먹을게요. 천천히 드세요!”“어... 유이야...”하정원은 강유이를 부르려 했지만 강유이는 이미 떠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