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을 갈아 신은 곽 회장이 되물었다."수술?""네, 제 나이에 아이를 낳는 건 너무 위험하대요."곽 부인은 곽 회장의 눈을 피하며 말했다."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어차피 딸도 있는데 위험하다면 아이를 지을 수 밖에."곽 부인은 놀란 눈빛으로 곽 회장을 바라봤다. 그녀는 단 한 번도 곽 회장의 이해를 바란 적이 없었다. 이율 덕분에 잠깐 놀란 적은 있지만 곽 회장이 변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다른 한편 이율에게도 좋은 소식이 있었다. 그녀가 드디어 임신을 한 것이다.강성연은 강현을 통해 임신 소식을 알자마자 이율을 만나러 달려왔다. 이율은 입덧이 너무 심해서 어쩔 수 없이 휴가를 신청했다. 그래서 강성연은 입덧에 좋다는 새콤한 음식을 잔뜩 사 들고 찾아갔다.이율은 새콤한 사탕 한 알을 먹으며 말했다."고마워요, 대표님."강성연은 이율의 침대에 걸터앉으며 말했다."회사 밖에서는 대표님 말고 언니라고 부르는 건 어때?"이율은 잠깐 멈칫하더니 금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좋아요, 언니."같은 시각, 강유이는 강시언, 강해신과 함께 강아지 샵으로 왔다. 샵 안의 수많은 강아지 중에서 그녀는 도무지 고를 수가 없었다.직원은 먼저 푸들을 보여줬지만, 강유이는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녀의 시선은 우연히 갈색 말라뮤트에게 멈췄다. 말라뮤트의 파란색 눈동자는 아주 순수해 보였다."오빠, 나 얘로 할래."강시언과 강해신은 묵묵히 서로를 바라봤다. 마치 강유이가 대형견을 선택할 줄 알았다는 듯이 말이다. 복슬복슬한 대형견을 거절할 수 있는 여자는 없었다.직원이 새끼 말라뮤트에게 문제는 없는지 검사했고 강유이는 한쪽에 서서 그 장면을 바라봤다. 말라뮤트는 조용히 검사받고 있었다."이름은 뭐로 할까?"강해신은 팔짱을 끼며 말했다."이번에는 좀 이름 같은 이름으로 하면 안 돼?"강해신은 남들처럼 영어로 된 듣기 좋은 이름은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예전의 말라뮤트처럼 '용돈'이라고 부르지 않길 바랄 뿐이었다. 물론 용돈도 '기프티콘'으로 불
하정원의 열정에 강유이는 약간 어색한 표정으로 금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금이요.""그... 금이?"'이렇게 예쁜 아이한테 왜 촌스러운 이름을...'하정원은 억지 미소를 지었다. 강시언과 강해신은 그녀의 반응이 너무 공감되었다.강시언은 턱을 괴고 하정원을 훑어봤다. 그는 여전히 어디선가 그녀를 만난 적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다 문뜩 지난번 레스토랑에서 민서율의 곁에 서 있던 여자가 떠올랐다."기억났어요. 아주머니는 저희 숙모죠?""숙모?"강유이와 강해신은 놀란 표정으로 진여훈의 얼굴을 떠올렸다.하정원은 심호흡하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 호칭은 쓰지 말았으면 좋겠는데."하정원은 삼 남매를 데리고 레스토랑에 왔다. 강아지는 잠깐 가게에 맡겨두고 말이다. 그녀는 삼 남매를 그냥 보내기 싫었다. 게다가 그녀는 강유이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마음속으로는 이미 민서율의 신붓감으로 여기고 있었다.강시언과 강해신은 하정원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강유이가 화장실을 간 틈을 타서 강해신이 단호하게 말했다."숙모, 민서율은 아직 우리 유이와 만날 자격이 없어요."하정원은 자칫 물을 뿜어낼 뻔했다. 그녀는 우아하게 입을 닦으며 물었다."뭐라고?""유이한테 자꾸 민서율 얘기를 꺼낼 때부터 이미 눈치챘거든요."하정원은 어색한 표정으로 마른기침을 했다."그건 유이 일이지, 너희들 일이 아니야."강해신은 팔짱을 끼며 말했다."유이 일이 저희 일이에요. 유이랑 결혼하려면 일단 저희의 마음에 들어야 하거든요.""서율이가 뭐 어때서? 잘 생겼지, 다정하지... 비록 너희 집안만큼 잘 살지는 않지만, 그래도 나가면 도련님 소리는 듣는다고."미래에 가업을 물려받을 예정인 데다가 유명한 친척을 많이 둔 민서율은 서울에서도 꽤 잘나가는 축에 속했다. 하지만 강해신은 손을 저으며 말했다."그래도 안 돼요. 아빠가 이미 말씀하셨거든요. 유이 미래 남편은 우리 집안보다 더 부유하고, 우리 아빠보다 더 잘생겨야 한다고요."강시언도 공감한다는 듯 머
강유이는 한태군 때문에 보름이나 축 처져 있었다. 나중에는 그가 죽은 줄 알고, 온 집안사람이 강유이 앞에서 조심스럽게 행동했다.강시언이 말했다."벌써 한씨 집안 일을 돕고 있어. 여준우 삼촌도 곧 우리 집안의 경쟁 상대가 될지도 모른다고 했어.""흥, 말도 안 돼.""해신아, 이건 얕볼 일이 아니야. 회사 운영에서 경력은 아주 중요하거든. 빅토리아대학교의 경영학과에서 전액 장학금을 주고 한태군을 입학시켰대. 몇 년 후면 우리보다 훌쩍 앞설지도 몰라."빅토리아대학교는 Y국에서도 아주 유명한 대학이었다. 빅토리아대학교의 경영학과를 나온 사람은 전부 국제적인 경영 인재 및 리더로 평가받았다.강해신은 턱을 괴며 말했다."그럼 우리도 빅토리아대학교로 가면 되겠네."강해신은 한태군보다 못하다는 말을 듣기 싫었다. 강시언은 잠깐 침묵하다가 말했다."유이도 같이 가자.""하지만 유이는 공부를 싫어하잖아...""우리가 도와주면 되지."사실 강유이의 성적은 나쁜 축이 아니었다. 초등학교 때는 똑똑한 머리로 줄곧 훌륭한 성적을 유지하고는 했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 자만해서인지 공부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강시언은 자신이라도 그녀의 공부를 감독해야겠다고 생각했다.강시언은 강유이의 미래 남편이 그녀의 재능이 아닌 미모와 집안만 보고 결혼하려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서 유이의 미래 남편에 대해 엄격한 요구를 정한 것이다. ...하정원은 놀란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봤다."뭐? 유이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그렇다니까요."강해신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는 민서율이 강유이를 포기할 수 있도록 더 자신만만한 자태로 말했다.하정원은 난감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10대 꼬마들이 남녀 사이의 감정을 알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아직은 급할 것 없었다. 결혼 상대를 결정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이기 때문에 민서율에게도 충분히 기회가 있었다.화장실에 다녀온 강유이는 이상한 분위기를 눈치채고 눈썹을 치켜 올렸다."무슨 얘기를 하고
곽의정은 스르르 눈을 떴다. 서도준은 그녀를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겼다."이러다 잠들겠어.""안 그래도 잠들 뻔했어."서도준은 곽의정의 볼을 따라 점점 아래로 뽀뽀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정신이 번쩍 든 그녀는 손을 들어 그를 밀어냈다."안돼!"서도준은 추호도 밀려나지 않고 뽀뽀를 계속하며 말했다."오늘 동생이랑 만났어?""응..."강현과 이율은 진성에서 설을 보냈다. 그래서 곽의정은 마침 진성에 온 김에 그녀를 만나러 갔다. 이율은 임신 4개월 차에 들어섰고, 양가 부모님과 상의 끝에 아이를 낳은 다음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다.서도준은 곽의정이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을 보고 그녀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어깨에 얼굴을 비비적댔다. 그러자 곽의정이 큰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간지러워.""우리는 언제 결혼식을 올릴까?"곽의정은 멈칫하며 서도준을 바라봤다. 그녀는 지금껏 그에게 명확한 답을 주지 않았다.서도준은 원래 결혼 같은 것은 하나 마나 똑같다고 생각하는 타입의 사람이었다. 하지만 곽의정을 만나고 나서부터는 마치 중독된 것처럼 더 많은 것을 원하게 되었다. 더구나 곽의정이 애교 많은 타입이 아니라 더욱 애가 탔다.곽의정은 서도준의 목을 감싸 안으며 말했다."왜? 내가 도망가기라도 할까 봐?""설마 도망갈 생각인 건 아니지?"곽의정은 서도준의 입술에 짧게 입을 맞추며 말했다."그럴 리가. 이번 생은 너 없이 못 살게 되었는걸."...반씨 저택.저택에는 경사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났다. 한 가족은 식탁 앞에 둘러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강성연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물었다."연 비서님은 왜 안 왔어요?"반준성은 웃으면서 말했다."좋은 일이 있는 모양이더구나."강성연은 멈칫하며 반지훈을 바라봤다. 반지훈은 그녀에게 반찬을 집어주며 말했다."지윤 씨도 안 왔네?"이때 강유이가 끼어들어 말했다."지윤 언니는 격투 경기를 보러 갔어요. 희승 아저씨도 같이 간 것 같던데요."강성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윤은 원래부터 격투에
연희승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지윤 씨는 도대체 왜...""어이, 너! 이쪽으로 와봐."연희승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거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 무리의 사람이 그들을 에워싸기 시작하더니, 밍크코트를 입고 시가를 피우는 남자가 천천히 걸어왔다. 그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지윤을 바라봤다."너 실력이 꽤 좋아 보이던데 우리 클럽에 들어오지 않을래? 우리 클럽에 들어오면 2억보다 훨씬 큰돈을 만질 수 있을 거야."대부분 격투 선수에게 다 스폰서가 있다. 경기 중에 승자를 걸고 도박하는 사람도 물론 있기 때문에, 스폰서는 지윤처럼 훌륭한 선수를 놓치지 않으려 하는 게 당연했다.지윤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관심 없어요."지윤은 격투에 관심만 있을 뿐, 직업으로 먹고 살 생각은 없었다. 취미 생활에 굳이 목숨을 걸 필요도 없고 말이다. 강성연을 만난 다음의 그녀는 이런 생각을 더욱 굳히게 되었다.남자는 약간 불쾌한 표정으로 물었다."너 우리를 무시하는 거야?"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았던 연희승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래도 설날인데 언성을 높이지 말고 좋게 좋게 말해요.""안경쟁이가 어디서 감히 끼어들어? 내가 마음에 들었다는데 고맙다고 넙죽 엎드리지 못할망정 감히 토를 달아?"남자가 언성을 높이자 부하들이 옷 소매를 걷으며 위협했다. 연희승은 느긋하게 안경을 벗더니 주머니에서 꺼낸 손수건으로 닦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머리도 들지 않고 차분하게 말했다."누가 마음에 들었다고요?""영웅 놀이라도 하려는 거야? 현실은 얼마나 잔혹한지 오늘 좀 배워야겠다."남자는 부하가 건네는 라이터로 새 시가에 불을 붙이며 말했다."반쯤 죽여버려."부하들은 슬금슬금 연희승을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연희승은 안경을 주머니 속에 넣고 머리를 들었다. 그리고 주먹을 휘두르는 한 남자의 머리를 잡고 몇 미터 밖으로 차버렸다. 다른 남자들도 연이어 공격했지만 연희승은 1대 6으로 손쉽게 모든 공격을 피했다. 그들은 아무리 빨리 움직여도 연
차에 올라탄 두 사람은 빠르게 멀어져갔다. 평소 사람으로 북적이던 거리는 설날인 관계로 아주 한적했다.지윤은 턱을 괴고 창문에 기대 연희승을 바라보며 말했다."아까는 내일 아침까지 기다려야 하는 줄 알았어요.""저도 밤새 싸울 생각은 없었거든요.""만약 반 대표님이 위험에 빠졌다면, 그 속도로 퍽이나 구할 수 있겠어요?"연희승은 피식 웃으며 답했다."위험에 빠진 대표님을 왜 제가 구해요? 저는 비서이지, 보디가드가 아니에요."더구나 반지훈은 연희승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아니었다.지윤은 혀를 끌끌 차면서 말했다."역할 구분이 참 명확하네요.""그럼요. 비서 월급을 받고 보디가드 일까지 할 필요는 없잖아요. 게다가 그건 보디가드의 일자리를 뺏는 거예요.""참고로 저 녹음하고 있어요."연희승은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으며 지윤을 바라봤다."그런 게 어디 있어요!"지윤은 창밖의 고깃집으로 가리키며 말했다."녹음을 지우고 싶다면 고기를 사줘요.""상금을 받은 사람 따로, 밥을 사는 사람 따로 있는 거예요?""그렇다고 해서 수표로 고깃값을 낼 수는 없잖아요.""..."할 말을 잃은 연희승은 고깃집 밖에 차를 세웠다. 설날에도 문을 닫지 않은 고깃집에는 사람이 아주 많았다. 그리고 대부분이 커플이었다.직원은 두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저희 요즘 커플 세트를 주문하면 반값으로 해드리는 활동을 하고 있어요."두 사람은 어색한 표정으로 말했다."저희가 커플 같아요?""저희가 커플 같아요?"직원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두 사람은 원가로 세트를 주문하고 구석진 자리를 찾아 앉았다. 앞에는 젊은 커플이 앉아 있었는데 주변 환경도 잊은 듯 열정적으로 키스를 나누고 있었다.연희승은 마른세수를 했다. 요즘 젊은이는 사상이 너무 지나치게 개방된 감이 있었다. 반대로 지윤은 전혀 어색함 없이 키스하는 커플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적나라한 눈빛에 오히려 어색해진 커플은 주섬주섬 일어날 준비를 했다. 핑크색 머리의 여자는 화
앞서 걷던 희승은 한참을 걸어가고 나서야 지윤이 따라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그러다 길 잃어버리면 나도 책임 못 져요.”지윤이 시선을 내려뜨리며 아련한 눈빛을 감췄다.“내가 혼자 돌아가지도 못할까 봐서요.”희승이 팔짱을 끼고 물었다.“그래서 이제 뭐 하고 싶어요?”지윤이 아직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하는 건 진작 눈치챘었다. 그녀가 말하지 않아도 그는 알 수 있었다.설은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날이다. 그는 부모가 없었기에 최근 몇 년 동안은 반 씨 가문에서 설을 보냈었다. 그에게 있어서 반 씨 가문은 가족이나 마찬가지였다.지윤의 부모도 국내에 없었기에 이런 시기일수록 가족 생각이 나는 게 당연했다.“나 불꽃놀이를 한 번도 해본 적 없어요.”지윤이 그를 보며 말했다.희승이 당황하며 되물었다.“네?”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다시 한번 말했다.“나 불꽃놀이를 한 번도 해본 적 없다고요.”희승이 잠깐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요.”그가 떠나고 한참이 지났다. 지윤은 기다란 벤치에 앉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매서운 칼바람이 그녀의 뺨을 스쳤지만 그녀는 동상처럼 우두커니 그 자리에 앉아 움직이지 않았다.희승이 크고 작은 주머니를 잔뜩 들고 나타나서야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궁금한 표정으로 다가갔다.“이렇게나 많이 샀어요?”그가 입꼬리를 씩 올렸다.“불꽃놀이 한 번도 해본 적 없다면서요. 적게 사면 또 갔다 오라고 할 것 같으니까 한 번에 많이 샀어요. 아주 실컷 놀아볼 수 있게 해줄게요.”두 사람은 해변에서 불꽃놀이를 시작했다.손끝에서 피어오른 불꽃이 밤 하늘 위에서 팡 하고 터지며 모래사장 위에 있는 사람들을 비추었다. 지윤이 허공에서 휘황찬란하게 피어난 불꽃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설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희승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언제나 싸늘한 표정만 짓고 있던 그녀의 얼굴 위로 알록달록한 빛이 스며들었다. 웃는
-하 씨 가문.“짝!”하진석이 하정원의 뺨을 내려쳤다. 위층에서 소리를 들은 한혜숙이 급히 아래층으로 내려왔다.“여보 지금 뭐 하는 거야?”하정원은 방금 맞은 따귀가 아프지도 않다는 듯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자신의 뺨을 쓰다듬었다. 잔뜩 화가 난 하진석이 테이블 위에 있는 사진을 바닥에 내던졌다.“결혼까지 한 애가 조신치 못하게 다른 남자와 놀아나? 네가 아주 내 속을 뒤집으려고 환장했구나!”한혜숙이 하정원 옆으로 다가가 바닥에 널브러진 사진을 주워 들었다. 전부 하정원이 다른 남자와 데이트하는 장면이 포착된 파파라치 컷이었다.“정원이 네가 어떻게…”한혜숙이 고개를 들고 하정원을 바라보았다. 목 끝까지 욕설이 차올랐지만 왼쪽 뺨이 미세하게 부어오른 딸아이의 얼굴을 보고 차마 내뱉지 못했다.자신의 딸이 이렇게까지 된 건 그들 부모의 탓도 있었다.“욕 다 하셨어요?”하정원이 긴 머리를 뒤로 넘기며 싱긋 웃었다.“두 분이 결혼하라고 해서 했어요. 두 분 뜻대로 충분히 따라줬으니까 그 뒤에 제가 어떻게 사는지는 상관하지 마시죠?”“너—”하진석이 다시 손을 번쩍 쳐들었다.“장인어른.”진여훈이 언제 왔는지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를 확인한 하진석이 그제야 천천히 손을 내리고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얼굴에는 온통 진여훈에 대한 미안함뿐이었다.“내가 애를 잘못 키웠어. 정말 자네를 볼 면목이 없네.”진 씨 가문과 하 씨 가문의 정략결혼은 두 가문 모두한테 이득이 되는 결혼이었다.이번 하정원의 스캔들은 하 씨 가문 뿐만 아니라 진 씨 가문의 얼굴까지 깎게 되었다.진여훈이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와 하정원을 힐끗 쳐다보았다.“화 좀 가라앉히세요. 장인어른. 일단 정원이는 제가 데리고 가겠습니다. 저희 둘이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지 잘 얘기해 볼게요.”하진석이 고개를 끄덕였다.진여훈이 하정원의 팔목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 겉보기에는 그냥 팔을 잡은 것처럼 보였지만 실은 힘을 실어 잡아끌고 있었다.정원으로 나오자 진여훈이 그녀의 손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