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이는 책으로 얼굴을 가리고 눈만 팽글팽글 돌리며 물었다."다들 굳이 도서관까지 따라와야했어?"강해신은 강유이를 힐끗 보며 말했다."각자 공부하러 왔는데 뭐가 문제야."강유이는 입을 삐죽 내밀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강시언은 그녀를 대신해 정리한 필기를 건네주며 말했다."문제를 풀기 전에 필기부터 봐."조민은 자신이 중학교 때 만들었던 필기를 꺼내 강시언과 강유이에게 건네줬다."네가 한 필기를 유이가 어떻게 알아보겠어? 그냥 내 필기를 봐."강해신은 두 사람의 필기를 밀어내며 말했다."보기만 해서 뭘 알겠어요. 잘 아는 사람이 직접 가르쳐야지."민서율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가르치는 거라면 내가 제일 잘할걸."조민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됐어. 너희들 중에 중학생 수준에 맞게 가르쳐줄 사람은 한 명도 없어.""..."말문이 막힌 강유이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조민을 바라봤다."저도 중학생인데요.""..."이번에는 조민이 말문이 막힐 차례였다. 강해신의 말에 그녀는 말없이 머리를 돌렸다.과하게 열정적인 그들 덕분에 강유이는 매일 반강제적으로 공부를 했다. 그리고 기말 성적은 반에서 10등, 학교에서 20등이 될 정도로 올랐다.반씨 가문.저녁 식사를 하다가 강유이의 성적이 올랐다는 소리를 들은 반준성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하하, 시언이 돌아오니까 우리 유이도 달라지는구나."강해신은 강유이의 공부보다는 일상생활에 신경 썼다. 하지만 세심한 강시언은 공부에도 신경 쓸 줄 알았다. 세 아이는 그렇게 서로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었다. 덕분에 어른들은 얼마나 시름이 놓이는지 모른다.강성연은 미소를 지으며 강유이에게 반찬을 집어줬다."유이야, 혹시 갖고 싶은 선물은 없어?"강유이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제 성적으로도 선물을 받을 수 있어요?"반지훈은 머리를 들며 말했다."그럼. 성적이 더 오르면 더 큰 선물을 줄 수도 있어. 물론 너한테 달렸겠지."강유이는 잠깐 고민하다가 말했다."저 강아지를 키우고
신발을 갈아 신은 곽 회장이 되물었다."수술?""네, 제 나이에 아이를 낳는 건 너무 위험하대요."곽 부인은 곽 회장의 눈을 피하며 말했다."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어차피 딸도 있는데 위험하다면 아이를 지을 수 밖에."곽 부인은 놀란 눈빛으로 곽 회장을 바라봤다. 그녀는 단 한 번도 곽 회장의 이해를 바란 적이 없었다. 이율 덕분에 잠깐 놀란 적은 있지만 곽 회장이 변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다른 한편 이율에게도 좋은 소식이 있었다. 그녀가 드디어 임신을 한 것이다.강성연은 강현을 통해 임신 소식을 알자마자 이율을 만나러 달려왔다. 이율은 입덧이 너무 심해서 어쩔 수 없이 휴가를 신청했다. 그래서 강성연은 입덧에 좋다는 새콤한 음식을 잔뜩 사 들고 찾아갔다.이율은 새콤한 사탕 한 알을 먹으며 말했다."고마워요, 대표님."강성연은 이율의 침대에 걸터앉으며 말했다."회사 밖에서는 대표님 말고 언니라고 부르는 건 어때?"이율은 잠깐 멈칫하더니 금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좋아요, 언니."같은 시각, 강유이는 강시언, 강해신과 함께 강아지 샵으로 왔다. 샵 안의 수많은 강아지 중에서 그녀는 도무지 고를 수가 없었다.직원은 먼저 푸들을 보여줬지만, 강유이는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녀의 시선은 우연히 갈색 말라뮤트에게 멈췄다. 말라뮤트의 파란색 눈동자는 아주 순수해 보였다."오빠, 나 얘로 할래."강시언과 강해신은 묵묵히 서로를 바라봤다. 마치 강유이가 대형견을 선택할 줄 알았다는 듯이 말이다. 복슬복슬한 대형견을 거절할 수 있는 여자는 없었다.직원이 새끼 말라뮤트에게 문제는 없는지 검사했고 강유이는 한쪽에 서서 그 장면을 바라봤다. 말라뮤트는 조용히 검사받고 있었다."이름은 뭐로 할까?"강해신은 팔짱을 끼며 말했다."이번에는 좀 이름 같은 이름으로 하면 안 돼?"강해신은 남들처럼 영어로 된 듣기 좋은 이름은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예전의 말라뮤트처럼 '용돈'이라고 부르지 않길 바랄 뿐이었다. 물론 용돈도 '기프티콘'으로 불
하정원의 열정에 강유이는 약간 어색한 표정으로 금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금이요.""그... 금이?"'이렇게 예쁜 아이한테 왜 촌스러운 이름을...'하정원은 억지 미소를 지었다. 강시언과 강해신은 그녀의 반응이 너무 공감되었다.강시언은 턱을 괴고 하정원을 훑어봤다. 그는 여전히 어디선가 그녀를 만난 적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다 문뜩 지난번 레스토랑에서 민서율의 곁에 서 있던 여자가 떠올랐다."기억났어요. 아주머니는 저희 숙모죠?""숙모?"강유이와 강해신은 놀란 표정으로 진여훈의 얼굴을 떠올렸다.하정원은 심호흡하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 호칭은 쓰지 말았으면 좋겠는데."하정원은 삼 남매를 데리고 레스토랑에 왔다. 강아지는 잠깐 가게에 맡겨두고 말이다. 그녀는 삼 남매를 그냥 보내기 싫었다. 게다가 그녀는 강유이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마음속으로는 이미 민서율의 신붓감으로 여기고 있었다.강시언과 강해신은 하정원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강유이가 화장실을 간 틈을 타서 강해신이 단호하게 말했다."숙모, 민서율은 아직 우리 유이와 만날 자격이 없어요."하정원은 자칫 물을 뿜어낼 뻔했다. 그녀는 우아하게 입을 닦으며 물었다."뭐라고?""유이한테 자꾸 민서율 얘기를 꺼낼 때부터 이미 눈치챘거든요."하정원은 어색한 표정으로 마른기침을 했다."그건 유이 일이지, 너희들 일이 아니야."강해신은 팔짱을 끼며 말했다."유이 일이 저희 일이에요. 유이랑 결혼하려면 일단 저희의 마음에 들어야 하거든요.""서율이가 뭐 어때서? 잘 생겼지, 다정하지... 비록 너희 집안만큼 잘 살지는 않지만, 그래도 나가면 도련님 소리는 듣는다고."미래에 가업을 물려받을 예정인 데다가 유명한 친척을 많이 둔 민서율은 서울에서도 꽤 잘나가는 축에 속했다. 하지만 강해신은 손을 저으며 말했다."그래도 안 돼요. 아빠가 이미 말씀하셨거든요. 유이 미래 남편은 우리 집안보다 더 부유하고, 우리 아빠보다 더 잘생겨야 한다고요."강시언도 공감한다는 듯 머
강유이는 한태군 때문에 보름이나 축 처져 있었다. 나중에는 그가 죽은 줄 알고, 온 집안사람이 강유이 앞에서 조심스럽게 행동했다.강시언이 말했다."벌써 한씨 집안 일을 돕고 있어. 여준우 삼촌도 곧 우리 집안의 경쟁 상대가 될지도 모른다고 했어.""흥, 말도 안 돼.""해신아, 이건 얕볼 일이 아니야. 회사 운영에서 경력은 아주 중요하거든. 빅토리아대학교의 경영학과에서 전액 장학금을 주고 한태군을 입학시켰대. 몇 년 후면 우리보다 훌쩍 앞설지도 몰라."빅토리아대학교는 Y국에서도 아주 유명한 대학이었다. 빅토리아대학교의 경영학과를 나온 사람은 전부 국제적인 경영 인재 및 리더로 평가받았다.강해신은 턱을 괴며 말했다."그럼 우리도 빅토리아대학교로 가면 되겠네."강해신은 한태군보다 못하다는 말을 듣기 싫었다. 강시언은 잠깐 침묵하다가 말했다."유이도 같이 가자.""하지만 유이는 공부를 싫어하잖아...""우리가 도와주면 되지."사실 강유이의 성적은 나쁜 축이 아니었다. 초등학교 때는 똑똑한 머리로 줄곧 훌륭한 성적을 유지하고는 했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 자만해서인지 공부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강시언은 자신이라도 그녀의 공부를 감독해야겠다고 생각했다.강시언은 강유이의 미래 남편이 그녀의 재능이 아닌 미모와 집안만 보고 결혼하려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서 유이의 미래 남편에 대해 엄격한 요구를 정한 것이다. ...하정원은 놀란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봤다."뭐? 유이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그렇다니까요."강해신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는 민서율이 강유이를 포기할 수 있도록 더 자신만만한 자태로 말했다.하정원은 난감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10대 꼬마들이 남녀 사이의 감정을 알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아직은 급할 것 없었다. 결혼 상대를 결정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이기 때문에 민서율에게도 충분히 기회가 있었다.화장실에 다녀온 강유이는 이상한 분위기를 눈치채고 눈썹을 치켜 올렸다."무슨 얘기를 하고
곽의정은 스르르 눈을 떴다. 서도준은 그녀를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겼다."이러다 잠들겠어.""안 그래도 잠들 뻔했어."서도준은 곽의정의 볼을 따라 점점 아래로 뽀뽀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정신이 번쩍 든 그녀는 손을 들어 그를 밀어냈다."안돼!"서도준은 추호도 밀려나지 않고 뽀뽀를 계속하며 말했다."오늘 동생이랑 만났어?""응..."강현과 이율은 진성에서 설을 보냈다. 그래서 곽의정은 마침 진성에 온 김에 그녀를 만나러 갔다. 이율은 임신 4개월 차에 들어섰고, 양가 부모님과 상의 끝에 아이를 낳은 다음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다.서도준은 곽의정이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을 보고 그녀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어깨에 얼굴을 비비적댔다. 그러자 곽의정이 큰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간지러워.""우리는 언제 결혼식을 올릴까?"곽의정은 멈칫하며 서도준을 바라봤다. 그녀는 지금껏 그에게 명확한 답을 주지 않았다.서도준은 원래 결혼 같은 것은 하나 마나 똑같다고 생각하는 타입의 사람이었다. 하지만 곽의정을 만나고 나서부터는 마치 중독된 것처럼 더 많은 것을 원하게 되었다. 더구나 곽의정이 애교 많은 타입이 아니라 더욱 애가 탔다.곽의정은 서도준의 목을 감싸 안으며 말했다."왜? 내가 도망가기라도 할까 봐?""설마 도망갈 생각인 건 아니지?"곽의정은 서도준의 입술에 짧게 입을 맞추며 말했다."그럴 리가. 이번 생은 너 없이 못 살게 되었는걸."...반씨 저택.저택에는 경사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났다. 한 가족은 식탁 앞에 둘러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강성연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물었다."연 비서님은 왜 안 왔어요?"반준성은 웃으면서 말했다."좋은 일이 있는 모양이더구나."강성연은 멈칫하며 반지훈을 바라봤다. 반지훈은 그녀에게 반찬을 집어주며 말했다."지윤 씨도 안 왔네?"이때 강유이가 끼어들어 말했다."지윤 언니는 격투 경기를 보러 갔어요. 희승 아저씨도 같이 간 것 같던데요."강성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윤은 원래부터 격투에
연희승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지윤 씨는 도대체 왜...""어이, 너! 이쪽으로 와봐."연희승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거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 무리의 사람이 그들을 에워싸기 시작하더니, 밍크코트를 입고 시가를 피우는 남자가 천천히 걸어왔다. 그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지윤을 바라봤다."너 실력이 꽤 좋아 보이던데 우리 클럽에 들어오지 않을래? 우리 클럽에 들어오면 2억보다 훨씬 큰돈을 만질 수 있을 거야."대부분 격투 선수에게 다 스폰서가 있다. 경기 중에 승자를 걸고 도박하는 사람도 물론 있기 때문에, 스폰서는 지윤처럼 훌륭한 선수를 놓치지 않으려 하는 게 당연했다.지윤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관심 없어요."지윤은 격투에 관심만 있을 뿐, 직업으로 먹고 살 생각은 없었다. 취미 생활에 굳이 목숨을 걸 필요도 없고 말이다. 강성연을 만난 다음의 그녀는 이런 생각을 더욱 굳히게 되었다.남자는 약간 불쾌한 표정으로 물었다."너 우리를 무시하는 거야?"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았던 연희승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래도 설날인데 언성을 높이지 말고 좋게 좋게 말해요.""안경쟁이가 어디서 감히 끼어들어? 내가 마음에 들었다는데 고맙다고 넙죽 엎드리지 못할망정 감히 토를 달아?"남자가 언성을 높이자 부하들이 옷 소매를 걷으며 위협했다. 연희승은 느긋하게 안경을 벗더니 주머니에서 꺼낸 손수건으로 닦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머리도 들지 않고 차분하게 말했다."누가 마음에 들었다고요?""영웅 놀이라도 하려는 거야? 현실은 얼마나 잔혹한지 오늘 좀 배워야겠다."남자는 부하가 건네는 라이터로 새 시가에 불을 붙이며 말했다."반쯤 죽여버려."부하들은 슬금슬금 연희승을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연희승은 안경을 주머니 속에 넣고 머리를 들었다. 그리고 주먹을 휘두르는 한 남자의 머리를 잡고 몇 미터 밖으로 차버렸다. 다른 남자들도 연이어 공격했지만 연희승은 1대 6으로 손쉽게 모든 공격을 피했다. 그들은 아무리 빨리 움직여도 연
차에 올라탄 두 사람은 빠르게 멀어져갔다. 평소 사람으로 북적이던 거리는 설날인 관계로 아주 한적했다.지윤은 턱을 괴고 창문에 기대 연희승을 바라보며 말했다."아까는 내일 아침까지 기다려야 하는 줄 알았어요.""저도 밤새 싸울 생각은 없었거든요.""만약 반 대표님이 위험에 빠졌다면, 그 속도로 퍽이나 구할 수 있겠어요?"연희승은 피식 웃으며 답했다."위험에 빠진 대표님을 왜 제가 구해요? 저는 비서이지, 보디가드가 아니에요."더구나 반지훈은 연희승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아니었다.지윤은 혀를 끌끌 차면서 말했다."역할 구분이 참 명확하네요.""그럼요. 비서 월급을 받고 보디가드 일까지 할 필요는 없잖아요. 게다가 그건 보디가드의 일자리를 뺏는 거예요.""참고로 저 녹음하고 있어요."연희승은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으며 지윤을 바라봤다."그런 게 어디 있어요!"지윤은 창밖의 고깃집으로 가리키며 말했다."녹음을 지우고 싶다면 고기를 사줘요.""상금을 받은 사람 따로, 밥을 사는 사람 따로 있는 거예요?""그렇다고 해서 수표로 고깃값을 낼 수는 없잖아요.""..."할 말을 잃은 연희승은 고깃집 밖에 차를 세웠다. 설날에도 문을 닫지 않은 고깃집에는 사람이 아주 많았다. 그리고 대부분이 커플이었다.직원은 두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저희 요즘 커플 세트를 주문하면 반값으로 해드리는 활동을 하고 있어요."두 사람은 어색한 표정으로 말했다."저희가 커플 같아요?""저희가 커플 같아요?"직원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두 사람은 원가로 세트를 주문하고 구석진 자리를 찾아 앉았다. 앞에는 젊은 커플이 앉아 있었는데 주변 환경도 잊은 듯 열정적으로 키스를 나누고 있었다.연희승은 마른세수를 했다. 요즘 젊은이는 사상이 너무 지나치게 개방된 감이 있었다. 반대로 지윤은 전혀 어색함 없이 키스하는 커플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적나라한 눈빛에 오히려 어색해진 커플은 주섬주섬 일어날 준비를 했다. 핑크색 머리의 여자는 화
앞서 걷던 희승은 한참을 걸어가고 나서야 지윤이 따라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그러다 길 잃어버리면 나도 책임 못 져요.”지윤이 시선을 내려뜨리며 아련한 눈빛을 감췄다.“내가 혼자 돌아가지도 못할까 봐서요.”희승이 팔짱을 끼고 물었다.“그래서 이제 뭐 하고 싶어요?”지윤이 아직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하는 건 진작 눈치챘었다. 그녀가 말하지 않아도 그는 알 수 있었다.설은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날이다. 그는 부모가 없었기에 최근 몇 년 동안은 반 씨 가문에서 설을 보냈었다. 그에게 있어서 반 씨 가문은 가족이나 마찬가지였다.지윤의 부모도 국내에 없었기에 이런 시기일수록 가족 생각이 나는 게 당연했다.“나 불꽃놀이를 한 번도 해본 적 없어요.”지윤이 그를 보며 말했다.희승이 당황하며 되물었다.“네?”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다시 한번 말했다.“나 불꽃놀이를 한 번도 해본 적 없다고요.”희승이 잠깐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요.”그가 떠나고 한참이 지났다. 지윤은 기다란 벤치에 앉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매서운 칼바람이 그녀의 뺨을 스쳤지만 그녀는 동상처럼 우두커니 그 자리에 앉아 움직이지 않았다.희승이 크고 작은 주머니를 잔뜩 들고 나타나서야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궁금한 표정으로 다가갔다.“이렇게나 많이 샀어요?”그가 입꼬리를 씩 올렸다.“불꽃놀이 한 번도 해본 적 없다면서요. 적게 사면 또 갔다 오라고 할 것 같으니까 한 번에 많이 샀어요. 아주 실컷 놀아볼 수 있게 해줄게요.”두 사람은 해변에서 불꽃놀이를 시작했다.손끝에서 피어오른 불꽃이 밤 하늘 위에서 팡 하고 터지며 모래사장 위에 있는 사람들을 비추었다. 지윤이 허공에서 휘황찬란하게 피어난 불꽃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설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희승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언제나 싸늘한 표정만 짓고 있던 그녀의 얼굴 위로 알록달록한 빛이 스며들었다. 웃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