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회장이 백화점에서 비열한 수단을 쓸 때 서도준은 이미 윗분들과 깊은 관계를 맺으며 기회를 얻었다.하 대표는 안도했다.“그가 서 회장과 같은 편이 아니라서 다행이네요.”그렇지 않았다면 서인그룹은 더 커졌을 것이다.잠시 얘기를 나눈 뒤 하 대표가 떠났다.반지훈은 느긋하게 차를 따랐다.“서인그룹은 서도준 씨가 이어받았나?”희승은 고개를 저었다.“아뇨. 서도준 씨는 주식만 일부 챙겼을 뿐 서인그룹을 이어받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서인그룹을 서 회장님의 전처에게 드렸습니다.”반지훈은 찻잔을 입술에 가져다 댔다. 서도준이 서인그룹을 서 회장의 전처에게 준 걸 보면 서 회장의 전처는 뇌물을 받은 걸 알고 있었고 서도준이 그걸 밀고한 듯했다.서도준은 본인은 나서지 않고 뒤에 숨어서 서 회장의 시선을 돌린 뒤 서 회장의 전처를 이용했다. 만약 서도준이 적이었다면 정말 만만치 않은 상대였을 것이다.같은 시각, 서인그룹.서도준과 서 회장의 전처는 사무실에 앉아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눴다. 그녀는 솔직히 전남편의 사생아인 서도준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당시 서도준의 어머니가 서도준을 낳았을 때 아들을 이용해 그녀의 자리를 빼앗으려 했기 때문이다.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었다.서 회장의 전처는 찻잔을 들고 태연하게 말했다.“난 네가 네 아버지를 상대한 것이 그의 재산을 빼앗기 위한 건 줄 알았어. 그런데 넌 서인그룹을 내게 넘겼지.”서도준은 싱긋 웃었다.“전 서씨 집안 물건에 관심이 없습니다.”“하, 당시 네 어머니가 네 반만이라도 정신이 멀쩡했으면 그런 꼴을 당하지는 않았을 텐데.”서도준은 시선을 내려뜨릴 뿐 아무 말 하지 않았다.당시 그의 어머니는 부잣집 며느리가 되기 위해, 본처가 되기 위해 서 회장에게 임신 사실을 숨기고 서도준을 낳은 뒤 그를 안고 서씨 집안을 찾았다. 서 회장이 받아주길 바라면서 말이다.그러나 서 회장은 두 사람을 쫓아냈다.그리고 그 뒤로 서도준의 어머니는 서도준을 아니꼽게 여겼고, 모든 걸 그의 탓으로 돌렸다. 그
서도준은 두 달 만에 실마리를 찾았다. 그는 다른 경찰들보다 자신의 어머니를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탐욕 속에서 숨을 거뒀다. 높은 곳으로 올라가 보려다가 상대방의 이익을 위협하게 되어 죽임을 당하게 된 것이다.서도준은 무덤덤하게 차를 마셨다.“다 지나간 일이죠.”서도준은 어머니의 죽음에 슬퍼하지 않았다.지금 그 일을 거론해도 이미 마음이 무뎌졌다.서 회장의 전처는 그를 바라봤다. 그녀는 자식이 있는 어머니의 입장에서 서도준의 처지가 안타까웠다.“그런 어머니가 있는 건 네 잘못이 아니야.”서도준은 뜸을 들이다가 웃었다.“절 위로해 주시는 건가요?”“위로가 아니야. 난 공과 사가 분명한 사람이야. 네 어머니랑 나 사이에 원한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 원한을 너에게 옮길 이유는 없지.”서 회장의 전처는 덤덤히 말했다.“네 어머니는 아이까지 이용했으니 서현식과 본질적으로는 다를 바가 없어. 내가 서현식과 이혼한 건 그 사람을 이미 꿰뚫어 봤기 때문이야. 당시 네 어머니가 정말 본처가 되었다고 해도 나보다 잘 살지는 못했을 거야.”그녀는 집안이 좋았기에 패기가 있었다.그러나 서도준의 어머니는 아무것도 없기에 남자에게 기댈 수밖에 없었다. 남자의 환심을 사서 이득을 얻어야 하니 그녀가 정말 서 회장의 본처가 되었다고 해도 오래가지는 못했을 것이다.서 회장은 이익을 보는 사람이니 그녀가 그에게 이득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면 서 회장은 눈 깜짝할 사이에 그녀를 치워버릴 것이다.그것이 현실이었다.같은 시각, 곽의정은 서도준의 카페에 잠깐 앉아있었다. 매장의 매니저는 그녀에게 커피를 건넸고 그녀의 맞은편에 앉으며 웃었다.“사장님 기다리시러 온 거예요?”곽의정은 당황하더니 웃으며 말했다.“아뇨, 그냥 커피 마시러 왔어요.”곽의정은 고개를 숙이고 천천히 커피를 마셨다.사실 어젯밤 그녀는 잠들지 못했다. 눈을 감으면 서도준이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췄던 장면이 자꾸만 떠올랐다. 그의 입술은 놀라울 정도로 뜨거웠다. 그의 입술이 닿으면 델
곽의정이 말했다.“괜찮아요. 낭비하고 싶지 않아요.”서도준은 사무실로 향했다. 양복을 입는 걸 좋아하지 않는 그는 곧바로 겉옷을 벋고 넥타이를 풀어 헤쳤다.곽의정은 커피를 든 채로 그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시선을 든 그녀가 마주한 광경은 이러했다. 얇은 흰색 와이셔츠는 그의 가슴팍에 딱 달라붙어서 그의 호흡에 따라 오르락내리락했고, 맥박이 뛰는 것과 강렬한 선이 뚜렷하게 보였다.서도준은 곽의정이 본 남자들 중 몸매가 가장 좋았다.스파이를 한 적이 있고 경찰대를 졸업해 자주 훈련받은 남자다웠다.저번에 그가 옷을 갈아입을 때 곽의정은 실수로 그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는 근육이 있지만 과하지는 않았고 선이 탄탄하고 단단했다.그녀는 회사에서 여자 동료들이 복근에 관해 이야기하는 걸 자주 들었었다. 여자들은 복근이 있는 남자를 좋아했다. 섹시해 보이기 때문이다.곽의정의 시선이 저도 모르게 아래로 향했다. 뭔가를 떠올린 그녀는 얼굴이 화끈거려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그녀는 인정해야만 했다. 곽의정은 그의 몸매가 마음에 들었다.서도준은 겉옷을 소파 등받이에 걸쳐놓은 뒤 자리에 앉았다. 고개를 든 그는 곽의정이 여전히 서 있는 걸 보았다.“왜 그래요?”정신을 차린 곽의정은 그와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괜히 켕겼다.“아... 아무것도 아니에요.”곽의정은 고개를 숙인 채로 옆 소파에 가서 앉았다. 그녀는 들고 있던 커피를 마신 뒤 뭔가 떠올랐는지 다급히 화제를 돌렸다.“그, 매니저가 당신이 서인그룹을 물려받지 않았다고 하던데요.”서도준은 웃음을 터뜨렸다.“전 회사를 관리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전 카페도 거의 관리하지 않는걸요.”곽의정은 시선을 내려뜨렸다.“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 좋죠.”“당신도 할 수 있어요.”“저요?”곽의정은 뜸을 들이다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녀는 잠시 뒤 대답했다.“전 아버지 회사를 물려받고 싶은데 아버지가 원하지 않으세요.”“여자가 비즈니스를 하려면 뛰어난 머리와 상업적인 수완도 필요할뿐더러 포기할 줄도
“하지만 당신 직감을 믿으라고 한 적은 없어요. 당신은 절 알지 못하고 저도 당신이 절 믿게 할만한 일을 한 적이 없어요. 그런데 어떻게 절 믿는 거죠?”곽의정은 심호흡했다.“제게 알 기회를 준 적이 있나요?”서도준은 그녀를 바라봤다.“지금 알아도 늦지 않죠.”곽의정은 흠칫했다. 지금 그를 알려고 해도 그의 어떤 점을 알아야 할지 몰라 곽의정은 망설였다.“뭘 묻든 다 대답할 거예요?”서도준은 침묵했다.“상황을 봐서요.”“장난하는 거예요? 전 이만 가볼게요.”곽의정도 성깔이 있었다. 그녀는 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려 했다.서도준은 팔을 뻗어 그녀를 끌어당겼고 곽의정은 얼떨결에 그의 품에 주저앉은 모양새가 되어 몸이 굳었다.서도준은 그녀의 허리에 가볍게 손을 올렸고 곽의정은 허리에서 열기를 느꼈다.그녀는 두 손으로 서도준의 가슴을 짚었다. 그의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하며 뛰고 있었다. 손바닥을 사이에 두고 온도가 점점 더 뜨거워졌다.곽의정은 감히 고개를 들어 그를 볼 수 없었다.서도준의 목울대가 두 번 움직였다. 그도 몸이 굳어 움직이지 않았다.곽의정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그가 입은 셔츠는 단추 두 개가 열려 있었다. 늦가을이고 실내에 에어컨도 있었지만 어쩐지 더워 보였다.곽의정도 더워지는 것 같았다.“가서 에어컨 온도 좀 낮출게요.”곽의정이 일어나려 하자 서도준이 힘을 써서 그녀를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에어컨 문제가 아니에요.”“그럼...”곽의정은 말을 다 끝맺지 못했다.비록 경험은 별로 없었지만 그녀는 바보가 아니었다.서도준은 그녀의 어깨에 턱을 올려놓았는데 호흡이 살짝 거칠었다. 그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가만히 있으면 괜찮을 거예요.”곽의정의 얼굴이 더욱 빨개졌다.서도준은 자제력이 엄청났고 이내 완전히 냉정을 되찾았다. 오히려 곽의정이 냉정해질 수 없었다. 그의 숨결이 그녀를 유혹했기 때문이다. 곽의정의 바싹 마른 입술이 움직였다.“일단 저 좀 놔줄래요.”서도준이 말했다.“어차피 익숙해져
강유이는 웃음을 터뜨렸고 강해신은 입꼬리를 당겼다.“이 자식 돈을 밝히나 본데.”사장이 걸어와 웃으며 말했다.“두 분 우리 집 부자가 마음에 드세요?”“얘 이름이 부자예요?”이름이 너무 별로였다.사장의 입가 주름이 깊어졌다.“그래요. 두 분한테 자신을 소개한 거예요. 이름이 부자라고요.”강유이와 강해신의 입가가 떨렸다.강유이는 앵무새를 향해 걸어가더니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안녕, 부자야.”앵무새는 날개를 펄럭였다.“부자 좋아.”강유이는 웃음을 터뜨리더니 고개를 돌려 사장을 보았다.“얘 말이 많나요?”“물론이죠. 얘는 엄청 똑똑해요. 가르쳐주면 금방 배울 거요.”강유이는 신기하게 느껴져 앵무새를 바라봤다.“할아버지 생신 축하드려요.”앵무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할아버지 생신 축하드려요.”강유이는 웃음이 터져서 강해신의 곁으로 달려가 그의 손을 끌어당겼다.“오빠, 나 얘로 할래.”강해신은 고개를 끄덕인 뒤 사장을 바라봤다.“얘로 할게요.”사장은 웃으며 말했다.“좋아요.”계산을 마친 뒤 경호원은 앵무새를 들고 그들의 뒤를 따랐다. 샵에서 나온 강유이는 민서율이 근처 카페에서 나오는 걸 보고 그에게로 달려가 인사를 건넸다.“서율 오빠.”차 앞에 선 민서율은 강유이가 걸어오자 웃어 보였다.“유이야, 네가 이 근처엔 웬일이야?”강유이가 대답했다.“할아버지 선물을 고르려고 왔어요.”민서율의 시선이 경호원에게 들려있는 앵무새로 향했다.“앵무새를 선물로 드리려고?”“맞아요. 할아버지께 평소에 적적하실 것 같아서 할아버지랑 함께 있으면서 말동무할 수 있는 앵무새를 드리려고요.”“그것도 좋지.”민서율과 얘기를 나누는 강유이는 시간을 잊은 듯했다. 뒤에 서 있던 강해신은 두 손을 호주머니에 꽂은 채로 짜증 난 목소리로 재촉했다.“안 가?”강유이는 고개를 돌렸다.“잠깐만 기다려.”강해신은 고개를 숙이고 시계를 보았다.“1분 줄게.”민서율은 피식 웃으더니 시선을 내려뜨려 강유이를 보았다.“일단 오빠랑 같이
하지만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받아들일 수 있었다.하정원은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물었다.“참, 저 여자애 보통 신분이 아니지?”민서율의 입술이 살짝 열렸다.“반씨 집안 딸이에요.”“반지훈 씨 딸?”하정원은 뭔가 떠올린 건지 얼굴이 구겨지며 욕지거리했다.“미친!”반씨 집안이라면 진씨 집안의 친척 아닌가?반씨 본가.앵무새를 데리고 집으로 오자 반지훈은 너무 시끄러워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는 콧대를 주무르며 말했다.“내일 저녁이 할아버지 생일인데 벌써 가져온 거야? 시끄럽지 않아?”“아빠만 그렇게 생각하는 거겠죠. 전 좋은데요. 그렇지, 부자야.”앵무새는 새장 안에서 폴짝폴짝 뛰었다.“부자, 안 시끄러워. 안 시끄러워.”강유이는 부자 때문에 웃음이 났다.위층에서 내려온 강성연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부자라니, 사장님이 작명 센스가 있으시네.”앵무새는 신나서 날개를 펄럭였다.“미인 좋아!”강성연은 흠칫하더니 크게 웃었다.“말도 예쁘게 하네.”반지훈은 안색이 흐려졌다. 미인 좋아?저 앵무새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강성연은 새장 앞에 서서 앵무새의 턱을 살살 긁어줬다. 앵무새는 편안한지 울음소리를 냈다.반지훈은 심호흡한 뒤 일어나 강성연의 등 뒤에 서서 그녀를 끌어안았다.“내 아내야.”“내 아내야! 내 아내야!”앵무새는 신나게 울었다.반지훈은 앵무새의 털을 다 뽑아버리고 싶었다.강성연은 웃음을 터뜨리더니 고개를 돌려 반지훈을 바라봤다.“앵무새를 질투하는 거예요?”반지훈은 그녀의 어깨에 턱을 올리며 거리를 좁혔다.“쟤 수컷이잖아.”“...”강유이와 강해신은 서로 시선을 주고받았다. 그들은 둘의 애정행각에 눈꼴이 셨다.-날이 저물기 시작하면서 인제항의 네온사인이 남에서 북으로 점등되어 눈부시게 빛나며 차창 유리에 드리워졌다.곽의정은 차창을 내렸고 밤바람이 차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강 건너 높이 솟아오른 고층 빌딩을 바라보았다. 마치 금박을 입힌 듯한 건물들이 잔잔한 물결 위에 비쳤다.“야경 구경시켜
곽의정은 곁눈질로 서도준을 살폈다. 그는 단추 두 개를 풀더니 차창을 완전히 내렸다. 항구의 바람이 불어와 그의 검은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렸다.서도준은 곽의정보다 더 힘겹게 참고 있었다.곽의정은 이를 악물었다.“저한테 관심 없지 않아요?”서도준은 살짝 놀라며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무슨 말이에요?”곽의정은 시선을 내려뜨렸다. 그녀는 자신이 괜히 투정을 부릴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더 이상 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저한테 키스한 건 저와의 관계를 확인하기 위해서 아닌가요? 하지만 만약 당신이 제게 관심이 없다면 결혼하지 않는 게 좋겠어요. 전 남편이랑 같은 침대에서 자면서 아무 짓도 안 할 자신은 없거든요.”곽의정은 말을 마친 뒤 그를 보지 못했다. 그보다 자신이 더욱 성급해 보였기 때문이다.서도준은 잠깐 침묵하다가 돌연 웃음을 터뜨렸다.조용하던 차 안에서 그의 웃음소리는 무척이나 또렷했다.곽의정은 고개를 돌려 그를 노려보았다.“뭘 웃어요?”서도준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그러니까 그런 방면의 관심을 말하는 거였어요?”서도준은 곽의정에게 시선을 고정했다.“전 이래봬도 정상적인 남자예요.”그녀에게 관심이 없는 게 아니고, 오히려 그런 쪽으로 생각이 있다는 걸 의미했다.곽의정이 잠깐 넋을 놓은 사이 서도준은 손등으로 그녀의 뺨을 쓸었다.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은 한없이 뜨거웠지만 가장 깊숙한 곳에서는 쓸쓸함이 보였다.그는 손가락으로 그녀의 입가를 어루만졌다.“전 당신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게 하고 싶지 않아요.”그와 그녀는 달랐다. 곽의정은 깨끗하고 순수하지만 그는 암울하고 더러웠다.그는 임무 때문에 그의 어머니처럼 허영심이 많고 탐욕적인 여자들과 접촉해야 했고 그들을 가식적으로 대하며 그들을 이용했다.그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동정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더욱 큰 이익을 위해 다른 것들을 버렸기 때문이다.몇 년 동안 스파이를 하면서 그는 아름다운 세계의 어두운 면을 보게 되었다. 그곳에서 권력이
사실 그는 김아린의 발목을 붙잡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그가 임무를 수행하던 그날, 김아린은 그녀의 배다른 언니 수연과 함께 있었다. 수연은 그에게 김아린이 누군가에게 끌려갔다고 얘기했었다.서도준은 김아린이 위험한 일에 휘말린 걸까 걱정되었고 신분이 노출될 수도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룸살롱을 전부 뒤졌다. 그런데 하필 그 룸안에 있는 김아린을 알아보지 못하고 스쳐지나갔다. 수연은 김아린의 행방을 알아냈다고 그를 불렀다. 당시 서도준은 자신이 그녀를 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를 놓쳤다는 걸 몰랐다.그리고 그 일 때문에 그와 김아린은 완전히 틀어졌다.그 실수는 만회할 방법이 없었다.그가 김아린을 구할 기회를 놓쳐 버린 탓에 김아린은 괴로운 일을 겪어야 했고 그 때문에 서도준은 본인에게 그녀를 사랑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곽의정은 충격을 받았다. 동시에 고통스러워하며 자책하는 그의 모습을 본 그녀는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그의 차가운 손등을 감쌌다.“그건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서도준은 살짝 놀라더니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았다.“제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예요?”곽의정은 시선을 내려뜨렸다.“비록 전 당시 상황을 알지는 못하지만 언제나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완벽한 사람은 없어요.”서도준은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바라봤다.곽의정은 잠시 뒤 손을 뺐다.“미안해요. 비록 제게 제3자의 시각으로 당신들의 일을 판단할 자격은 없지만 전 단지 당신이 자책하지 않길 바란 것뿐이에요.”“어쨌든 당신은 그 사람을 찾으려고 했잖아요. 그 룸 안에 있는 여자가 김아린 씨인 줄도 몰랐고요. 당신은 그저 김아린 씨를 구할 기회를 놓치게 될까 봐 속아 넘어간 거죠. 김아린 씨도 피해자지만 당신도 피해자잖아요.”서도준은 아주 옅은 미소를 지었다.“하지만 전 그런 실수를 용납할 수 없어요. 전 그녀조차 지키지 못했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지키겠어요?”“그래서 당신이 경찰서에서 사직한 것도 그녀 때문인가요?”서도준은 대답하지 않았다.하지만 침묵한 걸 보면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