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의정이 말했다.“괜찮아요. 낭비하고 싶지 않아요.”서도준은 사무실로 향했다. 양복을 입는 걸 좋아하지 않는 그는 곧바로 겉옷을 벋고 넥타이를 풀어 헤쳤다.곽의정은 커피를 든 채로 그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시선을 든 그녀가 마주한 광경은 이러했다. 얇은 흰색 와이셔츠는 그의 가슴팍에 딱 달라붙어서 그의 호흡에 따라 오르락내리락했고, 맥박이 뛰는 것과 강렬한 선이 뚜렷하게 보였다.서도준은 곽의정이 본 남자들 중 몸매가 가장 좋았다.스파이를 한 적이 있고 경찰대를 졸업해 자주 훈련받은 남자다웠다.저번에 그가 옷을 갈아입을 때 곽의정은 실수로 그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는 근육이 있지만 과하지는 않았고 선이 탄탄하고 단단했다.그녀는 회사에서 여자 동료들이 복근에 관해 이야기하는 걸 자주 들었었다. 여자들은 복근이 있는 남자를 좋아했다. 섹시해 보이기 때문이다.곽의정의 시선이 저도 모르게 아래로 향했다. 뭔가를 떠올린 그녀는 얼굴이 화끈거려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그녀는 인정해야만 했다. 곽의정은 그의 몸매가 마음에 들었다.서도준은 겉옷을 소파 등받이에 걸쳐놓은 뒤 자리에 앉았다. 고개를 든 그는 곽의정이 여전히 서 있는 걸 보았다.“왜 그래요?”정신을 차린 곽의정은 그와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괜히 켕겼다.“아... 아무것도 아니에요.”곽의정은 고개를 숙인 채로 옆 소파에 가서 앉았다. 그녀는 들고 있던 커피를 마신 뒤 뭔가 떠올랐는지 다급히 화제를 돌렸다.“그, 매니저가 당신이 서인그룹을 물려받지 않았다고 하던데요.”서도준은 웃음을 터뜨렸다.“전 회사를 관리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전 카페도 거의 관리하지 않는걸요.”곽의정은 시선을 내려뜨렸다.“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 좋죠.”“당신도 할 수 있어요.”“저요?”곽의정은 뜸을 들이다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녀는 잠시 뒤 대답했다.“전 아버지 회사를 물려받고 싶은데 아버지가 원하지 않으세요.”“여자가 비즈니스를 하려면 뛰어난 머리와 상업적인 수완도 필요할뿐더러 포기할 줄도
“하지만 당신 직감을 믿으라고 한 적은 없어요. 당신은 절 알지 못하고 저도 당신이 절 믿게 할만한 일을 한 적이 없어요. 그런데 어떻게 절 믿는 거죠?”곽의정은 심호흡했다.“제게 알 기회를 준 적이 있나요?”서도준은 그녀를 바라봤다.“지금 알아도 늦지 않죠.”곽의정은 흠칫했다. 지금 그를 알려고 해도 그의 어떤 점을 알아야 할지 몰라 곽의정은 망설였다.“뭘 묻든 다 대답할 거예요?”서도준은 침묵했다.“상황을 봐서요.”“장난하는 거예요? 전 이만 가볼게요.”곽의정도 성깔이 있었다. 그녀는 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려 했다.서도준은 팔을 뻗어 그녀를 끌어당겼고 곽의정은 얼떨결에 그의 품에 주저앉은 모양새가 되어 몸이 굳었다.서도준은 그녀의 허리에 가볍게 손을 올렸고 곽의정은 허리에서 열기를 느꼈다.그녀는 두 손으로 서도준의 가슴을 짚었다. 그의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하며 뛰고 있었다. 손바닥을 사이에 두고 온도가 점점 더 뜨거워졌다.곽의정은 감히 고개를 들어 그를 볼 수 없었다.서도준의 목울대가 두 번 움직였다. 그도 몸이 굳어 움직이지 않았다.곽의정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그가 입은 셔츠는 단추 두 개가 열려 있었다. 늦가을이고 실내에 에어컨도 있었지만 어쩐지 더워 보였다.곽의정도 더워지는 것 같았다.“가서 에어컨 온도 좀 낮출게요.”곽의정이 일어나려 하자 서도준이 힘을 써서 그녀를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에어컨 문제가 아니에요.”“그럼...”곽의정은 말을 다 끝맺지 못했다.비록 경험은 별로 없었지만 그녀는 바보가 아니었다.서도준은 그녀의 어깨에 턱을 올려놓았는데 호흡이 살짝 거칠었다. 그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가만히 있으면 괜찮을 거예요.”곽의정의 얼굴이 더욱 빨개졌다.서도준은 자제력이 엄청났고 이내 완전히 냉정을 되찾았다. 오히려 곽의정이 냉정해질 수 없었다. 그의 숨결이 그녀를 유혹했기 때문이다. 곽의정의 바싹 마른 입술이 움직였다.“일단 저 좀 놔줄래요.”서도준이 말했다.“어차피 익숙해져
강유이는 웃음을 터뜨렸고 강해신은 입꼬리를 당겼다.“이 자식 돈을 밝히나 본데.”사장이 걸어와 웃으며 말했다.“두 분 우리 집 부자가 마음에 드세요?”“얘 이름이 부자예요?”이름이 너무 별로였다.사장의 입가 주름이 깊어졌다.“그래요. 두 분한테 자신을 소개한 거예요. 이름이 부자라고요.”강유이와 강해신의 입가가 떨렸다.강유이는 앵무새를 향해 걸어가더니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안녕, 부자야.”앵무새는 날개를 펄럭였다.“부자 좋아.”강유이는 웃음을 터뜨리더니 고개를 돌려 사장을 보았다.“얘 말이 많나요?”“물론이죠. 얘는 엄청 똑똑해요. 가르쳐주면 금방 배울 거요.”강유이는 신기하게 느껴져 앵무새를 바라봤다.“할아버지 생신 축하드려요.”앵무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할아버지 생신 축하드려요.”강유이는 웃음이 터져서 강해신의 곁으로 달려가 그의 손을 끌어당겼다.“오빠, 나 얘로 할래.”강해신은 고개를 끄덕인 뒤 사장을 바라봤다.“얘로 할게요.”사장은 웃으며 말했다.“좋아요.”계산을 마친 뒤 경호원은 앵무새를 들고 그들의 뒤를 따랐다. 샵에서 나온 강유이는 민서율이 근처 카페에서 나오는 걸 보고 그에게로 달려가 인사를 건넸다.“서율 오빠.”차 앞에 선 민서율은 강유이가 걸어오자 웃어 보였다.“유이야, 네가 이 근처엔 웬일이야?”강유이가 대답했다.“할아버지 선물을 고르려고 왔어요.”민서율의 시선이 경호원에게 들려있는 앵무새로 향했다.“앵무새를 선물로 드리려고?”“맞아요. 할아버지께 평소에 적적하실 것 같아서 할아버지랑 함께 있으면서 말동무할 수 있는 앵무새를 드리려고요.”“그것도 좋지.”민서율과 얘기를 나누는 강유이는 시간을 잊은 듯했다. 뒤에 서 있던 강해신은 두 손을 호주머니에 꽂은 채로 짜증 난 목소리로 재촉했다.“안 가?”강유이는 고개를 돌렸다.“잠깐만 기다려.”강해신은 고개를 숙이고 시계를 보았다.“1분 줄게.”민서율은 피식 웃으더니 시선을 내려뜨려 강유이를 보았다.“일단 오빠랑 같이
하지만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받아들일 수 있었다.하정원은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물었다.“참, 저 여자애 보통 신분이 아니지?”민서율의 입술이 살짝 열렸다.“반씨 집안 딸이에요.”“반지훈 씨 딸?”하정원은 뭔가 떠올린 건지 얼굴이 구겨지며 욕지거리했다.“미친!”반씨 집안이라면 진씨 집안의 친척 아닌가?반씨 본가.앵무새를 데리고 집으로 오자 반지훈은 너무 시끄러워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는 콧대를 주무르며 말했다.“내일 저녁이 할아버지 생일인데 벌써 가져온 거야? 시끄럽지 않아?”“아빠만 그렇게 생각하는 거겠죠. 전 좋은데요. 그렇지, 부자야.”앵무새는 새장 안에서 폴짝폴짝 뛰었다.“부자, 안 시끄러워. 안 시끄러워.”강유이는 부자 때문에 웃음이 났다.위층에서 내려온 강성연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부자라니, 사장님이 작명 센스가 있으시네.”앵무새는 신나서 날개를 펄럭였다.“미인 좋아!”강성연은 흠칫하더니 크게 웃었다.“말도 예쁘게 하네.”반지훈은 안색이 흐려졌다. 미인 좋아?저 앵무새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강성연은 새장 앞에 서서 앵무새의 턱을 살살 긁어줬다. 앵무새는 편안한지 울음소리를 냈다.반지훈은 심호흡한 뒤 일어나 강성연의 등 뒤에 서서 그녀를 끌어안았다.“내 아내야.”“내 아내야! 내 아내야!”앵무새는 신나게 울었다.반지훈은 앵무새의 털을 다 뽑아버리고 싶었다.강성연은 웃음을 터뜨리더니 고개를 돌려 반지훈을 바라봤다.“앵무새를 질투하는 거예요?”반지훈은 그녀의 어깨에 턱을 올리며 거리를 좁혔다.“쟤 수컷이잖아.”“...”강유이와 강해신은 서로 시선을 주고받았다. 그들은 둘의 애정행각에 눈꼴이 셨다.-날이 저물기 시작하면서 인제항의 네온사인이 남에서 북으로 점등되어 눈부시게 빛나며 차창 유리에 드리워졌다.곽의정은 차창을 내렸고 밤바람이 차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강 건너 높이 솟아오른 고층 빌딩을 바라보았다. 마치 금박을 입힌 듯한 건물들이 잔잔한 물결 위에 비쳤다.“야경 구경시켜
곽의정은 곁눈질로 서도준을 살폈다. 그는 단추 두 개를 풀더니 차창을 완전히 내렸다. 항구의 바람이 불어와 그의 검은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렸다.서도준은 곽의정보다 더 힘겹게 참고 있었다.곽의정은 이를 악물었다.“저한테 관심 없지 않아요?”서도준은 살짝 놀라며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무슨 말이에요?”곽의정은 시선을 내려뜨렸다. 그녀는 자신이 괜히 투정을 부릴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더 이상 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저한테 키스한 건 저와의 관계를 확인하기 위해서 아닌가요? 하지만 만약 당신이 제게 관심이 없다면 결혼하지 않는 게 좋겠어요. 전 남편이랑 같은 침대에서 자면서 아무 짓도 안 할 자신은 없거든요.”곽의정은 말을 마친 뒤 그를 보지 못했다. 그보다 자신이 더욱 성급해 보였기 때문이다.서도준은 잠깐 침묵하다가 돌연 웃음을 터뜨렸다.조용하던 차 안에서 그의 웃음소리는 무척이나 또렷했다.곽의정은 고개를 돌려 그를 노려보았다.“뭘 웃어요?”서도준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그러니까 그런 방면의 관심을 말하는 거였어요?”서도준은 곽의정에게 시선을 고정했다.“전 이래봬도 정상적인 남자예요.”그녀에게 관심이 없는 게 아니고, 오히려 그런 쪽으로 생각이 있다는 걸 의미했다.곽의정이 잠깐 넋을 놓은 사이 서도준은 손등으로 그녀의 뺨을 쓸었다.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은 한없이 뜨거웠지만 가장 깊숙한 곳에서는 쓸쓸함이 보였다.그는 손가락으로 그녀의 입가를 어루만졌다.“전 당신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게 하고 싶지 않아요.”그와 그녀는 달랐다. 곽의정은 깨끗하고 순수하지만 그는 암울하고 더러웠다.그는 임무 때문에 그의 어머니처럼 허영심이 많고 탐욕적인 여자들과 접촉해야 했고 그들을 가식적으로 대하며 그들을 이용했다.그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동정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더욱 큰 이익을 위해 다른 것들을 버렸기 때문이다.몇 년 동안 스파이를 하면서 그는 아름다운 세계의 어두운 면을 보게 되었다. 그곳에서 권력이
사실 그는 김아린의 발목을 붙잡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그가 임무를 수행하던 그날, 김아린은 그녀의 배다른 언니 수연과 함께 있었다. 수연은 그에게 김아린이 누군가에게 끌려갔다고 얘기했었다.서도준은 김아린이 위험한 일에 휘말린 걸까 걱정되었고 신분이 노출될 수도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룸살롱을 전부 뒤졌다. 그런데 하필 그 룸안에 있는 김아린을 알아보지 못하고 스쳐지나갔다. 수연은 김아린의 행방을 알아냈다고 그를 불렀다. 당시 서도준은 자신이 그녀를 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를 놓쳤다는 걸 몰랐다.그리고 그 일 때문에 그와 김아린은 완전히 틀어졌다.그 실수는 만회할 방법이 없었다.그가 김아린을 구할 기회를 놓쳐 버린 탓에 김아린은 괴로운 일을 겪어야 했고 그 때문에 서도준은 본인에게 그녀를 사랑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곽의정은 충격을 받았다. 동시에 고통스러워하며 자책하는 그의 모습을 본 그녀는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그의 차가운 손등을 감쌌다.“그건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서도준은 살짝 놀라더니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았다.“제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예요?”곽의정은 시선을 내려뜨렸다.“비록 전 당시 상황을 알지는 못하지만 언제나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완벽한 사람은 없어요.”서도준은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바라봤다.곽의정은 잠시 뒤 손을 뺐다.“미안해요. 비록 제게 제3자의 시각으로 당신들의 일을 판단할 자격은 없지만 전 단지 당신이 자책하지 않길 바란 것뿐이에요.”“어쨌든 당신은 그 사람을 찾으려고 했잖아요. 그 룸 안에 있는 여자가 김아린 씨인 줄도 몰랐고요. 당신은 그저 김아린 씨를 구할 기회를 놓치게 될까 봐 속아 넘어간 거죠. 김아린 씨도 피해자지만 당신도 피해자잖아요.”서도준은 아주 옅은 미소를 지었다.“하지만 전 그런 실수를 용납할 수 없어요. 전 그녀조차 지키지 못했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지키겠어요?”“그래서 당신이 경찰서에서 사직한 것도 그녀 때문인가요?”서도준은 대답하지 않았다.하지만 침묵한 걸 보면
“일깨워 주셔서 감사합니다.”미팅이 끝난 뒤 비서가 그녀의 곁에 섰다.“괜찮으세요?”곽의정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괜찮아.”“넋을 놓고 계시던데 혹시 약혼자랑 싸우셨어요?”비서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곽의정은 움찔하더니 시선을 내려뜨리고 대꾸하지 않았다.진짜 싸운 거라면 해결하기 쉬웠다.하지만 이번에는 싸웠다고 할 수도 없었다.어젯밤 서도준은 그녀를 집으로 데려다줬고 가는 길 내내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아 분위기가 매우 어색했다. 그는 분명 그녀가 그를 잘 알지 못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비서는 곽의정의 근심 어린 표정을 보고 위로했다.“사실 어떤 일이든 두 사람이 차분히 대화를 나누면 해결될 거예요.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는다면 상대방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떻게 알겠어요?”곽의정은 쓴웃음을 지었다.“내가 말해서 상대방이 더욱 화가 난다면?”비서는 당황했다.“약혼자가 그렇게 쪼잔해요? 대체 무슨 일이길래 얘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화를 내는 거예요?”곽의정은 입꼬리를 당겼다.“그 사람이 쪼잔한 게 아니라 내가... 쓸데없이 참견한 걸 거야.”비서는 더욱더 의아해졌다.“부사장님은 약혼녀잖아요. 참견하는 건 당연한 일이죠. 참견하지 못하면 그게 더 이상한 거 아닌가요?”곽의정은 사무실로 돌아온 뒤 의자에 앉아 이마를 주물렀다. 생각해 보면 웃긴 일이었다. 형식적인 결혼일 뿐인데 그녀는 서도준에게 마음을 빼앗겼고, 서로 참견하지 않을 거라고 약속했으면서 그의 일에 참견했다.저도 모르게 그를 대신해 칼을 맞은 덕에 서도준은 그녀를 진심으로 대했다. 하지만 결국 그의 마음속에 있는 김아린을 이기지는 못할 것이다.죄책감도 그녀를 이길 수 없었다.휴대폰에 이율의 메시지가 들어왔다.“언니, 엄마가 오늘 반준성 어르신 생신 파티에 참석하래요.”반준성 어르신의 생신 파티?곽의정은 미간을 구겼다. 구씨 집안은 반씨 집안과 사이가 좋았기에 오늘 밤 김아린도 파티에 참석할 것이다.역시나, 반준성의 생일 파티에 구씨 집안 사람들이 다 왔
김아린은 구천광의 팔에 팔짱을 끼고 사람들과 술을 마셨다. 고개를 돌린 그녀는 곽의정을 발견했고 마침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곽의정은 당황했지만 예의상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김아린이 구천광에게 뭐라고 한 건지 구천광은 고개를 끄덕였고, 김아린은 술잔을 내려놓고 곽의정에게 다가갔다.“곽의정 씨.”곽의정은 흠칫하며 그녀를 바라봤다.“김아린 씨, 무슨 일이죠?”김아린은 웃으며 말했다.“잠깐 얘기 좀 나누고 싶은데 그럴 수 있을까요?”곽의정은 잠깐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김아린과 곽의정은 정원을 향해 걸어갔다.강성연과 송아영은 마침 그 장면을 보았다. 송아영은 아이를 낳은 뒤 육예찬과 아이와 함께 S국 외할아버지 집에서 잠깐 지내다가 최근에야 돌아왔다.그래서 그녀는 국내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저 여자는 누구야?”강성연은 술잔을 입술에 가져다 대며 웃었다.“곽씨 집안 딸. 아린이랑 좀 사연이 있지.”송아영은 순간 호기심이 불타올랐다.“사연? 내가 뭘 놓친 거야?”“네가 놓친 게 너무 많지.”송아영은 입을 비죽였다.그렇다. 그녀는 아주 많은 걸 놓쳤다.윤티파니가 한지욱과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은 것, 강성연의 사촌 동생이 유성 엔터 사장이 되고 이율과 연인이 되었다는 것까지 말이다.같은 시각, 마당 밖.김아린과 곽의정은 분수대 옆에 섰다. 안은 떠들썩했지만 반대로 밖은 아주 썰렁했다.“김아린 씨, 하고 싶은 얘기 있으시면 하세요.”어차피 뭐든 감당할 수 있었다.“오해하지 말아요. 다른 뜻은 없어요.”김아린은 곽의정의 생각을 꿰뚫어 본 듯이 웃었다.“그냥 단순히 얘기를 나누고 싶은 것뿐이었어요.”곽의정은 시선을 내려뜨렸다.“오해하지 않았어요.”“저번에 서도준을 찾아간 것도 그냥 얘기를 나누고 싶어서였어요.”곽의정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그걸 왜 저한테 말씀하시는 거죠?”“그는 곽의정 씨 약혼자니까 곽의정 씨는 알 권리가 있죠. 아닌가요?”곽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