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도준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걱정 마요.”그 짧은 한 마디에 마력이라도 걸려있는 건지 곽의정의 마음이 순식간에 안정되었다.-상부에서 서 회장을 철저하게 조사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서 회장의 개인 자산은 하루아침에 전부 동결되었다. 출국 금지까지 당했기에 예정되었던 출국 기회마저 박탈당한 상태였다.얼마 후 서 회장은 구속되어 조사를 받게 되었다.서도준이 서 회장을 만나러 유치장에 도착했다. 서 회장은 경찰한테 끌려 유리창 건너편에 앉혀졌다. 그는 더 이상 지난날 우쭐 거리던 서현식이 아니었다. 초라하고 남루한 아저씨의 모습이었다.서 회장이 수화기를 들더니 이를 악물고 말했다.“서도준 너 많이 컸구나. 감히 나를 갖고 놀아!”그가 피식 웃었다.“전 쭉 이렇게 살아왔는걸요.”서 회장이 그를 조롱했다.“역시 직접 키우지 않은 아들이라 그런지 피도 눈물도 없구나. 그때 네 어머니가 애를 지우는 모습을 내 눈으로 직접 봤어야 했어. 그랬다면 너 같은 화근을 남기지 않았겠지.”어머니의 말을 꺼내자 서도준의 얼굴이 굳어졌다.애초에 그의 어머니는 서현식의 장자한테 정신병이 있다는 걸 알고 서현식 눈을 피해 그를 낳았었다. 그녀는 서강우의 어머니를 몰아내고 자신이 정실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목적이었다.그에게 어머니는 단지 자신을 이용해 부귀영화를 꿈꾸는 여자일 뿐이었다. 서현식한테 버림받은 후에도 그녀는 아버지 마음도 못 잡는 쓸모없는 아들이라고 그를 탓하기만 했었다.서도준이 피식 웃었다.“아쉽네요. 제 어머니가 당신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아서.”잠깐 뜸을 들이던 그가 말을 이었다.“아버지 이제 조용하게 말년을 보내실 때도 되었어요.”서 회장의 얼굴이 괴이하게 이그러지는 모습을 확인한 그가 수화기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서 회장이 아무리 소리 질러도 그에게 그의 목소리가 닿지 않았다. 그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그곳을 벗어났다.그가 유치장에서 나오자 자동차 한 대가 그의 앞에 멈춰 섰다. 차에 오
그날 밤, 곽 씨 저택에 도착한 서도준은 문 앞에서 곽의정이 문을 열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방금 머리를 감고 나온 건지 그녀한테서 옅은 샴푸 향이 느껴졌다. 그녀는 반쯤 말린 윤기 나는 머리를 대충 묶은 채로 달려 나왔다.생얼로 보니 더욱 청순하게 느껴졌다.생얼을 보아도 피부 상태가 좋은 여자는 극히 드물었다.“왔어요? 빨리 들어와요.”곽의정이 그를 현관 안으로 들여보낸 후 문을 닫았다.곽 부인은 그가 온다는 소리를 들은 후 진작 풍성한 저녁 준비를 마치고 그가 오기만을 기다렸다.“아버님, 어머님.”그가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겸손하고 예의 바른 모습이었다.곽 부인이 미소를 지으며 저녁을 차렸다.“어서 손 씻고 와. 다들 기다리고 있었어.”그러더니 또 말을 이었다.“의정이도 도준이 네가 뭘 좋아하는지 모른다고 해서 저녁은 우리가 먹던 것처럼 준비했어.”서도준이 곽의정을 힐끗 바라본 뒤 싱긋 웃었다.“괜찮아요. 저 뭐든지 잘 먹어요.”곽의정은 무척 난감해하고 있었다. 그녀는 아직 서도준에 대해 잘 몰랐다. 그러니 불쑥 그녀에게 그가 어떤 걸 좋아하냐고 물어도 대답해 줄 수 있을 리가 없었다.막 식사를 하려고 할 때 곽 회장이 술잔 두 개를 내오더니 술을 가득 따랐다.“항상 나 혼자 마셨는데 드디어 술친구가 생겼네.”곽의정이 미간을 찌푸렸다.“아빠, 이 사람 운전해서 왔는데 술을 권하는 법이 어딨어요.”“뭘 걱정하고 그래. 많이 마시면 자고 가면 되지. 이제 한식구가 될 사람인데 겸손할 필요 없어.”그녀는 자신의 아버지가 저런 말을 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다.서도준이 곽 회장과 잔을 부딪힌 후 천천히 술을 들이켰다. 마치 장모님이 사위를 보는 것처럼 곽 회장은 보면 볼수록 서도준이 마음에 들었다.“의정아, 가만있지만 말고 도준이 잘 먹는 걸로 짚어주고 그래.”곽 부인도 열정적으로 거들었다.“도준아, 넉넉하게 준비했으니까 많이 먹어.”서도준이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감사합니다 장모님.”곽 회장이
곽 부인은 곤혹스러웠다. 그녀는 과일과 차를 들고 위층으로 올라갔고 마침 서도준과 곽 회장이 안에서 나오는 걸 보았다. 그녀는 잠깐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계속 서재에 있었어요?”서도준은 고개를 끄덕였다.곽 회장은 곽 부인을 보았다.“나랑 도준이는 서재에서 얘기를 나눴어. 왜 그래?”“조금 전에 의정이더러 과일이랑 차를 가져가라고 했는데 의정이는 두 사람이 서재에 없었다고 했어요...”곽 회장은 안색이 달라져서 서도준과 시선을 주고받았다.곽의정이 그들의 대화를 들은 듯했다.한편, 곽의정은 홀로 뒷마당에 있는 연못 옆에 앉아있었다. 날은 이미 어둑어둑해졌고 복도의 조명은 어슴푸레한 밤의 어둠 속에서 밝게 빛나고 있었다.서도준은 도우미를 따라 뒷마당에 도착했고 도우미에게 몇 마디 해서 물러나게 했다. 그는 곽의정을 향해 걸어갔다. 곽의정은 들고 있던 돌을 연못에 던졌지만 어두워서 그런지 잔물결이 보이지 않았다.발소리를 들은 그녀는 흠칫했지만 고개를 돌리지는 않았다.“무슨 얘기를 하려는 건지 알고 있어요. 하지만 괜찮아요. 전 신경 쓰지 않으니까요.”서도준은 그녀의 등 뒤에 멈춰 섰다.“다 들었나 보네요.”“제가 듣지 못했다면 아버지랑 같이 저에게 숨길 생각이었나요?”곽의정은 천천히 몸을 일으킨 뒤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서도준 씨, 당신은 내게 빚진 것이 없어요. 당신과 저의 결혼은 원래 겉치레였을 뿐이잖아요.”서도준은 아무 말 없이 곽의정을 바라봤다.곽의정은 시선을 내려뜨리고 말했다.“제가 당신을 밀어낸 건 제가 원해서였어요. 하지만 당신은 절 지켰어요.”서도준은 입을 꾹 다물었다.“그러니까 비긴 거예요. 우리는 서로에게 빚진 것이 없어요. 그 일 때문에 당신이 자책할 필요는 없어요. 그리고...”곽의정은 고개를 숙였다.“그런 일을 할 필요도 없어요.”“어떤 일이요?”곽의정은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보상해 주려고 할 필요 없단 얘기예요.”서도준은 눈살을 찌푸렸다.“제가 보상해 주려고 그랬다는 건가요?”“
“곽의정 씨, 감정은 우리가 키우면 돼요. 적어도 제가 했던 말은 다 진심이었어요. 보상이랑은 상관없어요.”밤바람이 그의 옷자락을 스쳐 지나갔다. 서도준의 눈빛은 뜨거웠다.“보상할 방법은 수없이 많아요. 보상할 생각이었다면 굳이 그런 방법을 선택할 필요는 없죠.”곽의정은 당황했다. 그녀는 한참 뒤에야 입을 달싹였다.“절 좋아하는 거예요? 아주 조금이라도 말이에요.”서도준은 시선을 내려뜨리고 그녀를 바라봤다.“적어도 거부감이 들거나 싫지는 않아요.”곽의정의 속눈썹이 떨렸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서도준은 손을 들어 손바닥으로 그녀의 뺨을 감쌌고 곽의정은 그 자리에 굳어져 버렸다. 심장이 점점 더 빨리 뛰기 시작했다. 곽의정은 시선을 내려뜨린 채 감히 움직이지 못했다.그의 두툼하고 거친 손바닥이 그녀의 뺨을 어루만지다가 그녀의 입가를 쓸었다.그가 서서히 가까워지자 곽의정은 저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녀는 속눈썹을 내려뜨렸고 호흡이 멈췄다.그녀의 입술에 가까워지려는 순간, 서도준은 멈칫하더니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그녀를 아주 아낀다는 듯 말이다.곽의정은 가슴이 떨려 시선을 들어 그를 보았다. 서도준은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웃었다.“일찍 쉬어요.”곽의정은 귀가 빨개진 채로 다급히 그를 지나쳐 자리를 떴다.서도준은 황급히 떠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나지막하게 웃음을 터뜨렸다.-다음 날, AM그룹.희승은 서류를 들고 책상 앞에 서서 보고했다.“대표님, 서 회장님 판결 내려왔습니다. 징역 20년이니까 석방되면 일흔이나 여든쯤 될 테니 아무 짓도 못 할 거예요.”반지훈은 눈을 가늘게 떴다.“빠르네.”“당연하죠. 서강우 씨 때문에 전처와 사이가 틀어지면서 여기저기 도움을 구했잖아요.”희승은 혀를 차면서 감개했다.“말도 마세요. 그 전처라는 사람 진짜 보통 분이 아니더라고요. 사이가 틀어지니까 다 들쑤신 거 있죠.”서 회장은 전처 몰래 아들인 서강우의 계좌에 돈을 빼돌렸고 서강우를 이용해 그 사실
서 회장이 백화점에서 비열한 수단을 쓸 때 서도준은 이미 윗분들과 깊은 관계를 맺으며 기회를 얻었다.하 대표는 안도했다.“그가 서 회장과 같은 편이 아니라서 다행이네요.”그렇지 않았다면 서인그룹은 더 커졌을 것이다.잠시 얘기를 나눈 뒤 하 대표가 떠났다.반지훈은 느긋하게 차를 따랐다.“서인그룹은 서도준 씨가 이어받았나?”희승은 고개를 저었다.“아뇨. 서도준 씨는 주식만 일부 챙겼을 뿐 서인그룹을 이어받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서인그룹을 서 회장님의 전처에게 드렸습니다.”반지훈은 찻잔을 입술에 가져다 댔다. 서도준이 서인그룹을 서 회장의 전처에게 준 걸 보면 서 회장의 전처는 뇌물을 받은 걸 알고 있었고 서도준이 그걸 밀고한 듯했다.서도준은 본인은 나서지 않고 뒤에 숨어서 서 회장의 시선을 돌린 뒤 서 회장의 전처를 이용했다. 만약 서도준이 적이었다면 정말 만만치 않은 상대였을 것이다.같은 시각, 서인그룹.서도준과 서 회장의 전처는 사무실에 앉아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눴다. 그녀는 솔직히 전남편의 사생아인 서도준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당시 서도준의 어머니가 서도준을 낳았을 때 아들을 이용해 그녀의 자리를 빼앗으려 했기 때문이다.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었다.서 회장의 전처는 찻잔을 들고 태연하게 말했다.“난 네가 네 아버지를 상대한 것이 그의 재산을 빼앗기 위한 건 줄 알았어. 그런데 넌 서인그룹을 내게 넘겼지.”서도준은 싱긋 웃었다.“전 서씨 집안 물건에 관심이 없습니다.”“하, 당시 네 어머니가 네 반만이라도 정신이 멀쩡했으면 그런 꼴을 당하지는 않았을 텐데.”서도준은 시선을 내려뜨릴 뿐 아무 말 하지 않았다.당시 그의 어머니는 부잣집 며느리가 되기 위해, 본처가 되기 위해 서 회장에게 임신 사실을 숨기고 서도준을 낳은 뒤 그를 안고 서씨 집안을 찾았다. 서 회장이 받아주길 바라면서 말이다.그러나 서 회장은 두 사람을 쫓아냈다.그리고 그 뒤로 서도준의 어머니는 서도준을 아니꼽게 여겼고, 모든 걸 그의 탓으로 돌렸다. 그
서도준은 두 달 만에 실마리를 찾았다. 그는 다른 경찰들보다 자신의 어머니를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탐욕 속에서 숨을 거뒀다. 높은 곳으로 올라가 보려다가 상대방의 이익을 위협하게 되어 죽임을 당하게 된 것이다.서도준은 무덤덤하게 차를 마셨다.“다 지나간 일이죠.”서도준은 어머니의 죽음에 슬퍼하지 않았다.지금 그 일을 거론해도 이미 마음이 무뎌졌다.서 회장의 전처는 그를 바라봤다. 그녀는 자식이 있는 어머니의 입장에서 서도준의 처지가 안타까웠다.“그런 어머니가 있는 건 네 잘못이 아니야.”서도준은 뜸을 들이다가 웃었다.“절 위로해 주시는 건가요?”“위로가 아니야. 난 공과 사가 분명한 사람이야. 네 어머니랑 나 사이에 원한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 원한을 너에게 옮길 이유는 없지.”서 회장의 전처는 덤덤히 말했다.“네 어머니는 아이까지 이용했으니 서현식과 본질적으로는 다를 바가 없어. 내가 서현식과 이혼한 건 그 사람을 이미 꿰뚫어 봤기 때문이야. 당시 네 어머니가 정말 본처가 되었다고 해도 나보다 잘 살지는 못했을 거야.”그녀는 집안이 좋았기에 패기가 있었다.그러나 서도준의 어머니는 아무것도 없기에 남자에게 기댈 수밖에 없었다. 남자의 환심을 사서 이득을 얻어야 하니 그녀가 정말 서 회장의 본처가 되었다고 해도 오래가지는 못했을 것이다.서 회장은 이익을 보는 사람이니 그녀가 그에게 이득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면 서 회장은 눈 깜짝할 사이에 그녀를 치워버릴 것이다.그것이 현실이었다.같은 시각, 곽의정은 서도준의 카페에 잠깐 앉아있었다. 매장의 매니저는 그녀에게 커피를 건넸고 그녀의 맞은편에 앉으며 웃었다.“사장님 기다리시러 온 거예요?”곽의정은 당황하더니 웃으며 말했다.“아뇨, 그냥 커피 마시러 왔어요.”곽의정은 고개를 숙이고 천천히 커피를 마셨다.사실 어젯밤 그녀는 잠들지 못했다. 눈을 감으면 서도준이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췄던 장면이 자꾸만 떠올랐다. 그의 입술은 놀라울 정도로 뜨거웠다. 그의 입술이 닿으면 델
곽의정이 말했다.“괜찮아요. 낭비하고 싶지 않아요.”서도준은 사무실로 향했다. 양복을 입는 걸 좋아하지 않는 그는 곧바로 겉옷을 벋고 넥타이를 풀어 헤쳤다.곽의정은 커피를 든 채로 그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시선을 든 그녀가 마주한 광경은 이러했다. 얇은 흰색 와이셔츠는 그의 가슴팍에 딱 달라붙어서 그의 호흡에 따라 오르락내리락했고, 맥박이 뛰는 것과 강렬한 선이 뚜렷하게 보였다.서도준은 곽의정이 본 남자들 중 몸매가 가장 좋았다.스파이를 한 적이 있고 경찰대를 졸업해 자주 훈련받은 남자다웠다.저번에 그가 옷을 갈아입을 때 곽의정은 실수로 그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는 근육이 있지만 과하지는 않았고 선이 탄탄하고 단단했다.그녀는 회사에서 여자 동료들이 복근에 관해 이야기하는 걸 자주 들었었다. 여자들은 복근이 있는 남자를 좋아했다. 섹시해 보이기 때문이다.곽의정의 시선이 저도 모르게 아래로 향했다. 뭔가를 떠올린 그녀는 얼굴이 화끈거려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그녀는 인정해야만 했다. 곽의정은 그의 몸매가 마음에 들었다.서도준은 겉옷을 소파 등받이에 걸쳐놓은 뒤 자리에 앉았다. 고개를 든 그는 곽의정이 여전히 서 있는 걸 보았다.“왜 그래요?”정신을 차린 곽의정은 그와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괜히 켕겼다.“아... 아무것도 아니에요.”곽의정은 고개를 숙인 채로 옆 소파에 가서 앉았다. 그녀는 들고 있던 커피를 마신 뒤 뭔가 떠올랐는지 다급히 화제를 돌렸다.“그, 매니저가 당신이 서인그룹을 물려받지 않았다고 하던데요.”서도준은 웃음을 터뜨렸다.“전 회사를 관리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전 카페도 거의 관리하지 않는걸요.”곽의정은 시선을 내려뜨렸다.“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 좋죠.”“당신도 할 수 있어요.”“저요?”곽의정은 뜸을 들이다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녀는 잠시 뒤 대답했다.“전 아버지 회사를 물려받고 싶은데 아버지가 원하지 않으세요.”“여자가 비즈니스를 하려면 뛰어난 머리와 상업적인 수완도 필요할뿐더러 포기할 줄도
“하지만 당신 직감을 믿으라고 한 적은 없어요. 당신은 절 알지 못하고 저도 당신이 절 믿게 할만한 일을 한 적이 없어요. 그런데 어떻게 절 믿는 거죠?”곽의정은 심호흡했다.“제게 알 기회를 준 적이 있나요?”서도준은 그녀를 바라봤다.“지금 알아도 늦지 않죠.”곽의정은 흠칫했다. 지금 그를 알려고 해도 그의 어떤 점을 알아야 할지 몰라 곽의정은 망설였다.“뭘 묻든 다 대답할 거예요?”서도준은 침묵했다.“상황을 봐서요.”“장난하는 거예요? 전 이만 가볼게요.”곽의정도 성깔이 있었다. 그녀는 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려 했다.서도준은 팔을 뻗어 그녀를 끌어당겼고 곽의정은 얼떨결에 그의 품에 주저앉은 모양새가 되어 몸이 굳었다.서도준은 그녀의 허리에 가볍게 손을 올렸고 곽의정은 허리에서 열기를 느꼈다.그녀는 두 손으로 서도준의 가슴을 짚었다. 그의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하며 뛰고 있었다. 손바닥을 사이에 두고 온도가 점점 더 뜨거워졌다.곽의정은 감히 고개를 들어 그를 볼 수 없었다.서도준의 목울대가 두 번 움직였다. 그도 몸이 굳어 움직이지 않았다.곽의정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그가 입은 셔츠는 단추 두 개가 열려 있었다. 늦가을이고 실내에 에어컨도 있었지만 어쩐지 더워 보였다.곽의정도 더워지는 것 같았다.“가서 에어컨 온도 좀 낮출게요.”곽의정이 일어나려 하자 서도준이 힘을 써서 그녀를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에어컨 문제가 아니에요.”“그럼...”곽의정은 말을 다 끝맺지 못했다.비록 경험은 별로 없었지만 그녀는 바보가 아니었다.서도준은 그녀의 어깨에 턱을 올려놓았는데 호흡이 살짝 거칠었다. 그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가만히 있으면 괜찮을 거예요.”곽의정의 얼굴이 더욱 빨개졌다.서도준은 자제력이 엄청났고 이내 완전히 냉정을 되찾았다. 오히려 곽의정이 냉정해질 수 없었다. 그의 숨결이 그녀를 유혹했기 때문이다. 곽의정의 바싹 마른 입술이 움직였다.“일단 저 좀 놔줄래요.”서도준이 말했다.“어차피 익숙해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