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소 후 확실히 그는 서도준을 찾아가 단판을 지을 생각이었다. 만약 눈앞에 있는 여자의 신분이 정말로 그렇게 대단하다면 그에게도 좋은 일은 아니었다.하지만 그는 믿지 않았다.그가 코웃음을 쳤다.“지금 나를 겁주는 거냐?”“아니면 정말로 여자의 힘을 빌려 신분 상승이라도 했어? 이 여자도 알고 있나? 예전에 네가 어떤 비겁한 수법을 썼었는지?”두식이 곽의정을 훑어보았다.“저놈이 마음먹고 여자를 이용하려고 하면 아주 물불 가리지를 않아. 내 말을 믿고 싶지 않으면 한번 소사해 보든지. 저놈 옆에 있다가 놀아나지 않은 여자가 별로 없을걸. 어쩌면 아가씨도 그저 저놈이 부리는 장기 말 중 하나일 수도 있어.”곽의정이 입술을 꼭 깨물었다. 잠시 후 그녀가 서도준을 바라보았다.“도준 씨가 어떤 사람인지는 내가 더 잘 알아요. 그러니까 굳이 그쪽 말을 들을 이유 없어요.”그녀의 말에 두식이 결국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눈에 살의가 번뜩였다.“참 눈물겨운 사랑이야. 미안한데 오늘 두 사람은 여기서 무사히 돌아갈 수 없어.”“윤아, 십 년 전 네가 날 배신하고 네 손으로 직접 날 감방에 보냈잖아. 덕분에 난 감방에서 한 쪽 눈을 잃었어. 그러니까 오늘 너한테서 그 한쪽 눈을 돌려받아야겠어.”서도준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그가 곽의정을 뒤로 밀며 말했다.“가요.”그에게 밀쳐진 곽의정이 비틀거리다가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그때 남자들이 서도준을 향해 달려들었다.서도준은 외투를 벗어 바닥에 내던진 후 넥타이까지 풀어헤치고 그들과 맞서 싸웠다.그는 혼자서 한 무리의 남자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동작이 민첩하고 깔끔하며 무자비했다.곽의정은 혹시 그가 다치기라도 할까 봐 겁이 나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들고 신고하려고 했다. 그때 장정 둘이 그녀를 향해 달려들었다.그 모습을 확인한 서도준이 급히 소리 질렀다.“빨리 안 가고 뭐해요!”그가 잠깐 한눈판 사이에 그의 등 뒤에 있던 남자가 그를 덮쳤다. 서도준이 주먹으로 남자의 턱뼈를 가격했다. 그를
그녀가 가까스로 미소를 지었다.“칼을 들고 있는 줄은 몰랐어요.”그녀는 단순히 그가 다치는 게 보기 싫었다.서도준이 그녀의 상처를 힘껏 누르며 그녀를 자신의 품에 꼭 끌어안았다.“조금만 더 버텨요. 곽의정 씨, 잠들면 안 돼요!”마침 구급차가 도착했다. 곽의정은 의료진이 갖고 온 들것에 실려 차에 실렸다. 서도준의 손은 온통 그녀의 피로 물들어 있었다.병원으로 이송하는 도중 곽의정은 기절해버렸다. 그녀는 바로 응급실로 실려갔다.소식을 들은 곽 회장과 곽 부인이 서둘러 병원에 도착했다. 그들은 복도에 멍하니 서있는 서도준을 발견했다.“우리 의정이는.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죄송합니다.”서도준이 고개를 푹 숙였다.“다 저 때문입니다.”곽 회장이 몸을 휘청거렸다. 수술실이라고 적혀있는 빨간 표지등을 보고 있는 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두 시간 후, 수술을 마친 의사가 수술실에서 나왔다. 곽 회장이 서둘러 다가가 물었다.“제 딸은 어떻게 되었습니까?”의사가 마스크를 벗으며 물었다.“곽의정 씨 가족분 되십니까?”“제가 그 아이의 아버지입니다.”의사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생명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다만, 칼이 너무 깊게 박혀서 자궁을 다쳤습니다. 앞으로 아이를 갖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그 말을 들은 곽 회장은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것 같았다.서도준이 눈을 질끈 감았다. 가슴에 커다란 돌덩이라도 박힌 것처럼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곽 부인은 임신 중이라 거동이 불편했기에 곽 회장은 그녀한테 먼저 집에 가있으라고 말했다. 그와 의사는 복도에서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곽의정은 VIP 병실로 옮겨졌다. 마취가 깨지 않은 탓에 그녀는 아직 잠들어 있는 상태였다.그가 병실 안을 바라보았다. 딸아이가 이런 일을 당하니 그의 마음도 아프고 쓰라렸다.아이를 낳을 수 없는 여자를 모든 남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딸이 여태 결혼 생각이 없어 보여서 그 역시 오랜 시간 동안 마음을 졸였었다. 하지만 아이의 성격을
그녀의 목소리가 쉬어있었다.“이제 안 추워요.”서도준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 계속 수액을 맞고 있었던 탓에 그녀의 손이 차가웠다. 그가 그녀의 손등을 가볍게 감싸 쥐었다. 커다란 그의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에 점점 떨림이 멈췄다. 온몸에 다시 온기가 도는 것 같았다.서도준이 그녀를 바라보았다.“일단 좀 더 자요. 자고 일어나면 다 괜찮을 거예요.”그의 목소리가 부드러웠다. 어찌나 부드러운지 깃털처럼 그녀의 마음을 간질이는 것만 같았다. 곽의정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어느샌가 스르르 잠들었다.-강성연은 이율의 갑작스러운 휴가 소식을 듣고 그제야 곽의정이 다쳐서 입원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상태가 어떤지 묻자 이율이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그녀가 의아한 듯이 물었다.“왜 그래?”“대표님…”이율이 입술을 꼭 깨물었다.“제 언니 앞으로 아이를 갖기 어려울 수 있대요.”강성연이 굳어졌다.일 때문에 자리를 비울 수 없었던 강성연은 지윤한테 자기 대신 이율과 함께 병문안을 가라고 부탁했다.이율은 강현의 일에 방해가 될까 봐 일부러 그에게 알리지 않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병원에 도착했다. 문을 여니 서도준이 곽의정에게 한창 죽을 먹여주고 있었다.그 모습은 영락없는 부부의 모습이었다.곽의정은 두 사람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놀라 사레에 걸렸다. 콜록 거리며 기침을 하자 수술한 상처가 당겨졌다. 그녀가 고통에 비명을 내질렀다.서도준이 급히 그녀의 몸을 부축해서 일으켰다.이율이 서둘러 침대 옆으로 달려갔다.“언니 괜찮아요?”그녀가 손을 내저었다.“괜찮아. 내가 입원한 거 어떻게 알았어?”이율이 말을 잇지 못했다.“됐어. 네 엄마가 알려줬겠지.”곽의정은 이율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두 모녀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기 좋아했다.“별일 아니야. 그냥 칼빵 하나 맞았을 뿐인걸.”“칼에 찔렸는데 별일이 아니라뇨. 그럼 목숨을 잃고 나서야 별일이었다고 할래요!”이율이 씩씩거리며 서도준을 노려보았다.언니가 이 남자를
“우리 진지하게 만나 볼래요?”“네?”그녀가 다시 한번 놀라 되물었다. 그녀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서도준이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러니까 우리 둘, 남자 여자로 진지하게 만나보지 않겠냐고요.”곽의정은 좀처럼 그의 말이 믿기지 않았다. 이 남자가 약을 잘못 먹기라도 한 건가?하지만 곧바로 뭔가를 떠올린 그녀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제가 서도준 씨 대신 칼에 한번 찔렸다고 미안해서 그래요?”서도준은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기만 할 뿐 대답하지 않았다.곽의정이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거렸다.“그럴 필요 없어요. 서도준 씨를 밀쳤던 거 다른 뜻 없었어요. 그러니까 그쪽도 나한테 빚졌다고 생각할 필요 없고요.”만약 미안함 때문에 그런 말을 한 거라면 그녀는 절대 그 말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그건 진실한 마음이 아니었다. 단지 남자로서 한 여자에게 주는 ‘보상’에 불과하지 않았다.감정은 보상이 불가능하다.서도준이 눈을 깜빡였다.“다른 뜻 없어요.”그녀가 멈칫했다.“진심이에요?”그가 네 하고 짧게 답했다.“한번 시도해 볼래요?”“서도준 씨…”“편하게 불러도 돼요.”곽의정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잠시 망설이던 그녀가 겨우 입을 달싹거렸다.“도준 씨.”그가 가볍게 미소 짓더니 네 하고 답했다.그의 잔잔한 미소에 그녀는 순간 두 사람이 진짜 커플, 아니 진짜 부부처럼 느껴졌다.서도준이 그녀의 손등을 감싸 쥐었다. 그녀는 순간 흠칫했지만 손을 빼지 않았다. 그저 주먹을 쥔 손에 힘을 더 실었을 뿐.손 등에서 그의 온기가 느껴졌다. 그녀의 손바닥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그녀는 계속 이렇게 있다가는 언젠가 자신의 심장에 무리가 올 것 같아 입술을 꼭 깨물었다. 그리고 뭔가 떠오른 듯이 얼른 화제를 돌렸다.“참 화성으로 출장 간다고 했잖아요.”“이틀 뒤로 미뤘어요.”그가 뒷말을 이었다.“당신과 함께 있으려고.”곽의정이 빠르게 그의 시선을 피하며 어색하게 웃었다.“사실 저 괜찮아요.”그가 낮게 웃었
서도준이 쥐고 있는 주식에 조그마한 문제가 있어도 그는 바로 서현식 대신 죄를 뒤집어쓰게 될 것이다.반지훈이 손가락으로 서류를 톡톡 두드렸다. 그때 그의 눈이 번뜩였다.“서현식은 서도준이 위쪽과 관련 있다는 사실 모르지?”희승이 고개를 끄덕였다.“서도준은 하도 많은 신분과 이름을 갖고 있어서 서현식이 아무리 찾으려고 해도 경찰 쪽까지 알아내지 못할 겁니다.”그가 피식 웃었다.“서 회장은 자기 사생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나 보네.”“알았다면 서 회장은 진작 자기 아들의 다리를 붙잡고 매달렸을 겁니다. 서도준이 마음만 먹으면 자기 인맥으로 서 회장을 지킬 수도 있을 테니까요.”하지만 서 회장은 자신에 대해 지나치게 자만했다.그는 자기 사생아는 단지 ‘양아치’에 불과하다고 생각했기에 전혀 마음에 두지 않았다.“대표님, 서 회장도 참 보는 눈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저희가 나설 것도 없겠는데요.”반지훈이 서류를 덮고 한쪽 편으로 치웠다.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천천히 올려다보며 말했다.“들어와.”강성연이 문을 열고 사무실로 들어왔다.반지훈의 눈이 살짝 커졌다.그녀가 소파에 가방을 놓고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양손으로 테이블을 짚었다.“지훈 씨, 저 사람 좀 빌려줘요.”반지훈이 실눈을 뜨고 물었다.“누굴?”강성연이 옆에 있는 남자를 가리켰다. 깜짝 놀란 희승이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물었다.“저요?”반지훈이 의자에 등을 기대며 피식 웃었다.“우리 성연이가 저놈을 데려다 뭐 하려고?”그의 말을 들은 희승은 어쩐지 조금 상처받았다.자신이 ‘물건’이라도 되나. 빌려주고 빌려 오게?“희승 씨랑 지윤 씨에게 부탁할 일이 있어서요.”강성연이 테이블 옆으로 돌아가 반지훈 뒤에 멈춰 섰다. 그러더니 등 뒤에서 그를 덥석 껴안았다.“아버님 생신까지 며칠 안 남았는데 저랑 당신은 바빠서 시간이 안 나잖아요. 그러니까 누군가는 저희 대신 준비를 해야죠.”반지훈은 그제야 그녀가 자기 아버지 생일 때문에 이러는 걸 알게 되었
희승이 피식거리더니 결국 소리 내어 웃었다.“만약 저라면 절대 제 생일에 그런 걸 쓰고 싶지 않을 거예요. 어르신은 사내대장부라고요. 지윤 씨가 고른 것들은 전부 노랗고 빨갛기만 한데. 그건 좀 아니지 않아요?”지윤은 자신이 고른 장식품을 다시 확인했다. 가게 주인이 그녀한테 z 국 어른들은 생일에 이렇게 화려한 걸 좋아한다고 했었다. 화려한 게 보기도 좋고 복이 들어온다면서.희승이 자신의 턱을 매만지며 그녀를 힐끗 바라보았다.“이런 생일 연회 처음 맡아서 해보죠?”지윤은 팔짱만 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희승이 입꼬리를 씩 올리더니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괜찮아요. 제가 고를 테니까 걱정 말고 지켜보고 있어요.”희승은 오전 내내 파티 용품을 골랐다. 그는 반 씨 가문에서 자라온 시간이 오랬기에 반준성의 취향을 잘 알고 있었다.지윤도 그를 따라 이 가게 저 가게 열심히 돌아다녔다. 누가 쇼핑은 여자의 특권이라고 했던가? 두 사람만 보면 오히려 반대된 것 같았다.희승은 물건 하나하나 세심하게 골랐고 조금이라도 하자가 있으면 바로 가게를 옮겼다. 몇 곳을 돌아도 성에 안 찰 때에는 마음에 드는 물건을 발견할 때까지 계속 옮겨 다녔다.싸움이라면 아무리 오래 싸워도 피곤하지 않았던 그녀였는데 그를 따라 쇼핑하는 건 그것보다 몇 배는 더 힘들게 느껴졌다.그녀의 걸음이 점점 늦어지며 따라오지 못하자 희승이 그녀를 돌아보았다.“빨리 와요. 안 그럼 저녁까지도 다 고르지 못하니까.”지윤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아예 벤치에 털썩 주저앉아버렸다.뭔가를 떠올린 희승이 큰소리로 웃더니 팔짱을 끼고 그녀를 향해 다가갔다.“벌써 힘들어요?”어쩐지 그녀가 자신한테 화를 내지 않더라니. 이제 보니 너무 피곤해서 말할 맥도 없었던 것이다.지윤이 이를 악물고 고개를 돌렸다.“혼자 가요.”‘쯧, 끝까지 도도한척한다 이거지.’드디어 그에게도 그녀를 괴롭힐 수 있는 방법이 생긴 것이다.“저 혼자 가서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찾아봤는데 아
만약 지윤이 납치라도 당했다가는 강성연이 절대 그를 가만두지 않을게 분명했다.그런 생각을 하던 희승은 순간 자신의 생각이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아니, 어떤 정신 나간 남자가 감히 그녀를 납치하려고 할까?’정말 그런 납치범이 있다면 아마 죽고 싶어서 그녀를 목표로 삼았을 게 분명했다.지윤이 빠르게 그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한 손에 아이스크림콘 두 개를 쥐고, 다른 한 손으로 그가 들고 있던 주머니를 빼앗았다.당황하던 희승이 다시 한번 웃음을 터뜨렸다.“착하네요. 저 대신 물건도 들어주고.”그녀가 앞장서서 걸어갔다.“아이스크림 사준 보답이에요.”희승이 그녀의 뒤를 따랐다. 그러다 문뜩 그녀가 혼자 아이스크림 두 개를 먹고 있는 모습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많이 먹으면 안 돼요. 배탈 난다고요. 아무리 맛있어도 그렇게 식탐 부리면 안 돼요.”지윤은 그를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시끄러워요.”희승이 그녀의 옆으로 다가가 계속 잔소리를 해댔다.“왜 이렇게 말을 안 들어요. 어른 말 안 들으면 벌받는 거 몰라요? 이러다 나중에 배 아파서 제 탓하면 안 돼요.”그녀가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그를 향해 휙 돌아서더니 다시 물건을 그에게 안겨주었다.“그쪽이 들어요.”희승이 그녀의 잔망스러운 모습에 웃음을 터뜨렸다.“아니 전 좋은 마음으로 말한 건데 왜 화를 내고 그래요.”지윤은 더 이상 그를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그가 그녀의 뒤를 따랐다.“지윤 씨 이렇게 성질을 부리면 안 돼요. 이런 건 고쳐야 된다고요. 숙녀라면 응당 숙녀답게 부드러워야죠.”지윤은 희승의 잔소리에 슬슬 짜증이 났다. 그러다 그가 자신한테 성질을 부린다고 한 말에 결국 터져버렸다. 그녀가 휙 하고 몸을 돌려 그를 때리려고 했다. 희승은 진작 그녀가 이렇게 나올 줄 알고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순간 그녀가 들고 있던 아이스크림콘이 중심을 잃고 바닥에 툭 하고 떨어졌다.지윤이 그 자리에 멍하니 서서 바닥에 떨어진 아이스크림을 안타까운 표정으로
‘이 여자가 정말 나를 호구로 아나!’“빌린 셈 쳐요.”지윤이 다시 그의 주머니에 지갑을 넣어준 후 손에 남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쇼핑몰을 나섰다.식탐을 부리다 아이스크림을 너무 많이 먹은 지윤은 그날 밤 정말로 배탈이 났다. 그녀는 밤새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고통스러운 대가를 치러야 했다.다음날 희승은 한창 집을 장식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에도 지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아래층으로 내려온 강성연이 혼자 바쁘게 일하고 있는 희승에게 물었다.“지윤 씨는요?”희승이 피식 웃었다.“어제 혼자 아이스크림을 몇 개나 먹더니 벌받은 것 같아요.”자신은 분명 말렸지만 듣지 않은 건 그녀였다.강성연이 실눈을 뜨고 물었다.“지윤 씨를 데리고 아이스크림도 먹었어요?”희승이 곧바로 해명했다.“어제 지윤 씨가 하도 힘들어해서요. 안 가겠다고 애처럼 떼를 써서 어쩔 수 없이 아이스크림을 사줬거든요. 그런데 지윤 씨가 아이스크림콘을 처음 먹어 봤을 줄 제가 어떻게 알았겠어요. 한번 먹어보고 맛 들였는지 저 몰래 또 사서 먹은 거 있죠.”“사모님 장담하는데 저는 말렸어요. 그 여자가 제 말을 안 들어서 그렇지.”강성연이 못 말린다는 표정으로 웃었다.“처음 먹어보는 거라 신기할 수도 있죠. 맛있으니 좋아하게 되는 것도 당연하고요.”일반적인 여자들은 모두 디저트를 좋아한다. 지윤은 그전에 그런 걸 먹어보지 못했고, 뒤늦게 먹어보고 맛있으니 좋아하게 되는 건 당연한 순서 아닌가.그때 지윤이 나타났다. 그녀는 안색이 좋지 않았다. 태어나서 처음 아이스크림콘을 먹었는데다 많이 먹기까지 했으니 그녀의 위가 버텨내질 못 했던 것이다.강성연이 그녀에게 다가갔다.“괜찮아요?”그녀가 고개를 저었다.희승이 혀를 찼다.“봐요. 어른 말 들어서 나쁠 거 없다고 했죠? 결국 벌받았잖아요.”지윤은 그에게 화를 내지 않았다. 그녀라고 막무가내로 화를 내는 게 아니었다. 어쨌든 그녀가 유혹을 버텨내지 못하고 식탐을 부린 게 맞으니까.강성연이 그녀의 어깨 위에 손을 얹었다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