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서인 그룹을 손에 넣은 후 보상으로 곽의정에게 주식을 증여해 주려고 했다.곽의정이 원하면 원하는 대로 아낌없이 줄 수 있었다.하지만 그가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었다. 바로 ‘감정’이었다.혼인으로 묶인 성인 남녀가 아무리 처음에는 서로에 대한 애정이 없었다 해도 시간이 길어지면 어떤 감정이 생기게 된다.자주 만나다 보면 정들기 마련이다.그날 밤 그는 취할 만큼 술을 마시지 않았었다.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를 그는 똑똑히 기억했다.그는 지금껏 많은 여자들을 만나왔었다. 때문에 여자가 자신한테 진심인지 아닌지는 그녀들의 행동을 보면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곽의정은 자신의 마음을 숨기고 잘 드러내지 않는 편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고민과 소외감, 그리고 겸손을 그는 단번에 알아보았다. 사실 그녀도 똑똑히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은 단지 ‘거래’를 하고 있을 뿐이라는걸.곽의정이 고개를 숙이고 시선을 내려뜨렸다. 그녀는 그의 말뜻을 알아들은 것 같았다. 잠시 후 그녀가 입을 열었다.“우리 둘 아직 약혼만 했을 뿐이잖아요. 안 그래요?”그는 대답이 없었다.곽의정이 평온한 얼굴로 말했다.“당신이 원하는 걸 다 얻었을 때, 우린 언제든지 이 약혼을 깰 수 있어요.”그녀는 지금껏 계약 결혼을 쉽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제 약혼만 했을 뿐인데 망설여졌다.그녀는 결혼을 한 후 자신이 처음과 같은 마음으로 그를 대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이런 남자를 앞에 두고 어떻게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하지만 그녀는 눈치가 빨랐다. 방금 그가 한 말은 그녀에게 ‘자신을 사랑하지 말라’고 암시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서도준이 눈을 감고 입술을 깨물었다.침묵 속에서 저녁 식사가 끝이 났다. 레스토랑을 나온 후 그는 어김없이 그녀를 집에까지 바래다주겠다고 말했다. 어쨌든 그들은 아직 약혼한 사이였으니까.그녀 역시 거절하지 않고 그의 뒤를 따라 주차장으로 걸어갔다.그런데 그들이 막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어둠 속에서 한 무리의 남자들이
출소 후 확실히 그는 서도준을 찾아가 단판을 지을 생각이었다. 만약 눈앞에 있는 여자의 신분이 정말로 그렇게 대단하다면 그에게도 좋은 일은 아니었다.하지만 그는 믿지 않았다.그가 코웃음을 쳤다.“지금 나를 겁주는 거냐?”“아니면 정말로 여자의 힘을 빌려 신분 상승이라도 했어? 이 여자도 알고 있나? 예전에 네가 어떤 비겁한 수법을 썼었는지?”두식이 곽의정을 훑어보았다.“저놈이 마음먹고 여자를 이용하려고 하면 아주 물불 가리지를 않아. 내 말을 믿고 싶지 않으면 한번 소사해 보든지. 저놈 옆에 있다가 놀아나지 않은 여자가 별로 없을걸. 어쩌면 아가씨도 그저 저놈이 부리는 장기 말 중 하나일 수도 있어.”곽의정이 입술을 꼭 깨물었다. 잠시 후 그녀가 서도준을 바라보았다.“도준 씨가 어떤 사람인지는 내가 더 잘 알아요. 그러니까 굳이 그쪽 말을 들을 이유 없어요.”그녀의 말에 두식이 결국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눈에 살의가 번뜩였다.“참 눈물겨운 사랑이야. 미안한데 오늘 두 사람은 여기서 무사히 돌아갈 수 없어.”“윤아, 십 년 전 네가 날 배신하고 네 손으로 직접 날 감방에 보냈잖아. 덕분에 난 감방에서 한 쪽 눈을 잃었어. 그러니까 오늘 너한테서 그 한쪽 눈을 돌려받아야겠어.”서도준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그가 곽의정을 뒤로 밀며 말했다.“가요.”그에게 밀쳐진 곽의정이 비틀거리다가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그때 남자들이 서도준을 향해 달려들었다.서도준은 외투를 벗어 바닥에 내던진 후 넥타이까지 풀어헤치고 그들과 맞서 싸웠다.그는 혼자서 한 무리의 남자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동작이 민첩하고 깔끔하며 무자비했다.곽의정은 혹시 그가 다치기라도 할까 봐 겁이 나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들고 신고하려고 했다. 그때 장정 둘이 그녀를 향해 달려들었다.그 모습을 확인한 서도준이 급히 소리 질렀다.“빨리 안 가고 뭐해요!”그가 잠깐 한눈판 사이에 그의 등 뒤에 있던 남자가 그를 덮쳤다. 서도준이 주먹으로 남자의 턱뼈를 가격했다. 그를
그녀가 가까스로 미소를 지었다.“칼을 들고 있는 줄은 몰랐어요.”그녀는 단순히 그가 다치는 게 보기 싫었다.서도준이 그녀의 상처를 힘껏 누르며 그녀를 자신의 품에 꼭 끌어안았다.“조금만 더 버텨요. 곽의정 씨, 잠들면 안 돼요!”마침 구급차가 도착했다. 곽의정은 의료진이 갖고 온 들것에 실려 차에 실렸다. 서도준의 손은 온통 그녀의 피로 물들어 있었다.병원으로 이송하는 도중 곽의정은 기절해버렸다. 그녀는 바로 응급실로 실려갔다.소식을 들은 곽 회장과 곽 부인이 서둘러 병원에 도착했다. 그들은 복도에 멍하니 서있는 서도준을 발견했다.“우리 의정이는.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죄송합니다.”서도준이 고개를 푹 숙였다.“다 저 때문입니다.”곽 회장이 몸을 휘청거렸다. 수술실이라고 적혀있는 빨간 표지등을 보고 있는 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두 시간 후, 수술을 마친 의사가 수술실에서 나왔다. 곽 회장이 서둘러 다가가 물었다.“제 딸은 어떻게 되었습니까?”의사가 마스크를 벗으며 물었다.“곽의정 씨 가족분 되십니까?”“제가 그 아이의 아버지입니다.”의사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생명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다만, 칼이 너무 깊게 박혀서 자궁을 다쳤습니다. 앞으로 아이를 갖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그 말을 들은 곽 회장은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것 같았다.서도준이 눈을 질끈 감았다. 가슴에 커다란 돌덩이라도 박힌 것처럼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곽 부인은 임신 중이라 거동이 불편했기에 곽 회장은 그녀한테 먼저 집에 가있으라고 말했다. 그와 의사는 복도에서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곽의정은 VIP 병실로 옮겨졌다. 마취가 깨지 않은 탓에 그녀는 아직 잠들어 있는 상태였다.그가 병실 안을 바라보았다. 딸아이가 이런 일을 당하니 그의 마음도 아프고 쓰라렸다.아이를 낳을 수 없는 여자를 모든 남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딸이 여태 결혼 생각이 없어 보여서 그 역시 오랜 시간 동안 마음을 졸였었다. 하지만 아이의 성격을
그녀의 목소리가 쉬어있었다.“이제 안 추워요.”서도준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 계속 수액을 맞고 있었던 탓에 그녀의 손이 차가웠다. 그가 그녀의 손등을 가볍게 감싸 쥐었다. 커다란 그의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에 점점 떨림이 멈췄다. 온몸에 다시 온기가 도는 것 같았다.서도준이 그녀를 바라보았다.“일단 좀 더 자요. 자고 일어나면 다 괜찮을 거예요.”그의 목소리가 부드러웠다. 어찌나 부드러운지 깃털처럼 그녀의 마음을 간질이는 것만 같았다. 곽의정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어느샌가 스르르 잠들었다.-강성연은 이율의 갑작스러운 휴가 소식을 듣고 그제야 곽의정이 다쳐서 입원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상태가 어떤지 묻자 이율이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그녀가 의아한 듯이 물었다.“왜 그래?”“대표님…”이율이 입술을 꼭 깨물었다.“제 언니 앞으로 아이를 갖기 어려울 수 있대요.”강성연이 굳어졌다.일 때문에 자리를 비울 수 없었던 강성연은 지윤한테 자기 대신 이율과 함께 병문안을 가라고 부탁했다.이율은 강현의 일에 방해가 될까 봐 일부러 그에게 알리지 않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병원에 도착했다. 문을 여니 서도준이 곽의정에게 한창 죽을 먹여주고 있었다.그 모습은 영락없는 부부의 모습이었다.곽의정은 두 사람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놀라 사레에 걸렸다. 콜록 거리며 기침을 하자 수술한 상처가 당겨졌다. 그녀가 고통에 비명을 내질렀다.서도준이 급히 그녀의 몸을 부축해서 일으켰다.이율이 서둘러 침대 옆으로 달려갔다.“언니 괜찮아요?”그녀가 손을 내저었다.“괜찮아. 내가 입원한 거 어떻게 알았어?”이율이 말을 잇지 못했다.“됐어. 네 엄마가 알려줬겠지.”곽의정은 이율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두 모녀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기 좋아했다.“별일 아니야. 그냥 칼빵 하나 맞았을 뿐인걸.”“칼에 찔렸는데 별일이 아니라뇨. 그럼 목숨을 잃고 나서야 별일이었다고 할래요!”이율이 씩씩거리며 서도준을 노려보았다.언니가 이 남자를
“우리 진지하게 만나 볼래요?”“네?”그녀가 다시 한번 놀라 되물었다. 그녀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서도준이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러니까 우리 둘, 남자 여자로 진지하게 만나보지 않겠냐고요.”곽의정은 좀처럼 그의 말이 믿기지 않았다. 이 남자가 약을 잘못 먹기라도 한 건가?하지만 곧바로 뭔가를 떠올린 그녀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제가 서도준 씨 대신 칼에 한번 찔렸다고 미안해서 그래요?”서도준은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기만 할 뿐 대답하지 않았다.곽의정이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거렸다.“그럴 필요 없어요. 서도준 씨를 밀쳤던 거 다른 뜻 없었어요. 그러니까 그쪽도 나한테 빚졌다고 생각할 필요 없고요.”만약 미안함 때문에 그런 말을 한 거라면 그녀는 절대 그 말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그건 진실한 마음이 아니었다. 단지 남자로서 한 여자에게 주는 ‘보상’에 불과하지 않았다.감정은 보상이 불가능하다.서도준이 눈을 깜빡였다.“다른 뜻 없어요.”그녀가 멈칫했다.“진심이에요?”그가 네 하고 짧게 답했다.“한번 시도해 볼래요?”“서도준 씨…”“편하게 불러도 돼요.”곽의정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잠시 망설이던 그녀가 겨우 입을 달싹거렸다.“도준 씨.”그가 가볍게 미소 짓더니 네 하고 답했다.그의 잔잔한 미소에 그녀는 순간 두 사람이 진짜 커플, 아니 진짜 부부처럼 느껴졌다.서도준이 그녀의 손등을 감싸 쥐었다. 그녀는 순간 흠칫했지만 손을 빼지 않았다. 그저 주먹을 쥔 손에 힘을 더 실었을 뿐.손 등에서 그의 온기가 느껴졌다. 그녀의 손바닥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그녀는 계속 이렇게 있다가는 언젠가 자신의 심장에 무리가 올 것 같아 입술을 꼭 깨물었다. 그리고 뭔가 떠오른 듯이 얼른 화제를 돌렸다.“참 화성으로 출장 간다고 했잖아요.”“이틀 뒤로 미뤘어요.”그가 뒷말을 이었다.“당신과 함께 있으려고.”곽의정이 빠르게 그의 시선을 피하며 어색하게 웃었다.“사실 저 괜찮아요.”그가 낮게 웃었
서도준이 쥐고 있는 주식에 조그마한 문제가 있어도 그는 바로 서현식 대신 죄를 뒤집어쓰게 될 것이다.반지훈이 손가락으로 서류를 톡톡 두드렸다. 그때 그의 눈이 번뜩였다.“서현식은 서도준이 위쪽과 관련 있다는 사실 모르지?”희승이 고개를 끄덕였다.“서도준은 하도 많은 신분과 이름을 갖고 있어서 서현식이 아무리 찾으려고 해도 경찰 쪽까지 알아내지 못할 겁니다.”그가 피식 웃었다.“서 회장은 자기 사생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나 보네.”“알았다면 서 회장은 진작 자기 아들의 다리를 붙잡고 매달렸을 겁니다. 서도준이 마음만 먹으면 자기 인맥으로 서 회장을 지킬 수도 있을 테니까요.”하지만 서 회장은 자신에 대해 지나치게 자만했다.그는 자기 사생아는 단지 ‘양아치’에 불과하다고 생각했기에 전혀 마음에 두지 않았다.“대표님, 서 회장도 참 보는 눈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저희가 나설 것도 없겠는데요.”반지훈이 서류를 덮고 한쪽 편으로 치웠다.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천천히 올려다보며 말했다.“들어와.”강성연이 문을 열고 사무실로 들어왔다.반지훈의 눈이 살짝 커졌다.그녀가 소파에 가방을 놓고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양손으로 테이블을 짚었다.“지훈 씨, 저 사람 좀 빌려줘요.”반지훈이 실눈을 뜨고 물었다.“누굴?”강성연이 옆에 있는 남자를 가리켰다. 깜짝 놀란 희승이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물었다.“저요?”반지훈이 의자에 등을 기대며 피식 웃었다.“우리 성연이가 저놈을 데려다 뭐 하려고?”그의 말을 들은 희승은 어쩐지 조금 상처받았다.자신이 ‘물건’이라도 되나. 빌려주고 빌려 오게?“희승 씨랑 지윤 씨에게 부탁할 일이 있어서요.”강성연이 테이블 옆으로 돌아가 반지훈 뒤에 멈춰 섰다. 그러더니 등 뒤에서 그를 덥석 껴안았다.“아버님 생신까지 며칠 안 남았는데 저랑 당신은 바빠서 시간이 안 나잖아요. 그러니까 누군가는 저희 대신 준비를 해야죠.”반지훈은 그제야 그녀가 자기 아버지 생일 때문에 이러는 걸 알게 되었
희승이 피식거리더니 결국 소리 내어 웃었다.“만약 저라면 절대 제 생일에 그런 걸 쓰고 싶지 않을 거예요. 어르신은 사내대장부라고요. 지윤 씨가 고른 것들은 전부 노랗고 빨갛기만 한데. 그건 좀 아니지 않아요?”지윤은 자신이 고른 장식품을 다시 확인했다. 가게 주인이 그녀한테 z 국 어른들은 생일에 이렇게 화려한 걸 좋아한다고 했었다. 화려한 게 보기도 좋고 복이 들어온다면서.희승이 자신의 턱을 매만지며 그녀를 힐끗 바라보았다.“이런 생일 연회 처음 맡아서 해보죠?”지윤은 팔짱만 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희승이 입꼬리를 씩 올리더니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괜찮아요. 제가 고를 테니까 걱정 말고 지켜보고 있어요.”희승은 오전 내내 파티 용품을 골랐다. 그는 반 씨 가문에서 자라온 시간이 오랬기에 반준성의 취향을 잘 알고 있었다.지윤도 그를 따라 이 가게 저 가게 열심히 돌아다녔다. 누가 쇼핑은 여자의 특권이라고 했던가? 두 사람만 보면 오히려 반대된 것 같았다.희승은 물건 하나하나 세심하게 골랐고 조금이라도 하자가 있으면 바로 가게를 옮겼다. 몇 곳을 돌아도 성에 안 찰 때에는 마음에 드는 물건을 발견할 때까지 계속 옮겨 다녔다.싸움이라면 아무리 오래 싸워도 피곤하지 않았던 그녀였는데 그를 따라 쇼핑하는 건 그것보다 몇 배는 더 힘들게 느껴졌다.그녀의 걸음이 점점 늦어지며 따라오지 못하자 희승이 그녀를 돌아보았다.“빨리 와요. 안 그럼 저녁까지도 다 고르지 못하니까.”지윤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아예 벤치에 털썩 주저앉아버렸다.뭔가를 떠올린 희승이 큰소리로 웃더니 팔짱을 끼고 그녀를 향해 다가갔다.“벌써 힘들어요?”어쩐지 그녀가 자신한테 화를 내지 않더라니. 이제 보니 너무 피곤해서 말할 맥도 없었던 것이다.지윤이 이를 악물고 고개를 돌렸다.“혼자 가요.”‘쯧, 끝까지 도도한척한다 이거지.’드디어 그에게도 그녀를 괴롭힐 수 있는 방법이 생긴 것이다.“저 혼자 가서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찾아봤는데 아
만약 지윤이 납치라도 당했다가는 강성연이 절대 그를 가만두지 않을게 분명했다.그런 생각을 하던 희승은 순간 자신의 생각이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아니, 어떤 정신 나간 남자가 감히 그녀를 납치하려고 할까?’정말 그런 납치범이 있다면 아마 죽고 싶어서 그녀를 목표로 삼았을 게 분명했다.지윤이 빠르게 그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한 손에 아이스크림콘 두 개를 쥐고, 다른 한 손으로 그가 들고 있던 주머니를 빼앗았다.당황하던 희승이 다시 한번 웃음을 터뜨렸다.“착하네요. 저 대신 물건도 들어주고.”그녀가 앞장서서 걸어갔다.“아이스크림 사준 보답이에요.”희승이 그녀의 뒤를 따랐다. 그러다 문뜩 그녀가 혼자 아이스크림 두 개를 먹고 있는 모습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많이 먹으면 안 돼요. 배탈 난다고요. 아무리 맛있어도 그렇게 식탐 부리면 안 돼요.”지윤은 그를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시끄러워요.”희승이 그녀의 옆으로 다가가 계속 잔소리를 해댔다.“왜 이렇게 말을 안 들어요. 어른 말 안 들으면 벌받는 거 몰라요? 이러다 나중에 배 아파서 제 탓하면 안 돼요.”그녀가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그를 향해 휙 돌아서더니 다시 물건을 그에게 안겨주었다.“그쪽이 들어요.”희승이 그녀의 잔망스러운 모습에 웃음을 터뜨렸다.“아니 전 좋은 마음으로 말한 건데 왜 화를 내고 그래요.”지윤은 더 이상 그를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그가 그녀의 뒤를 따랐다.“지윤 씨 이렇게 성질을 부리면 안 돼요. 이런 건 고쳐야 된다고요. 숙녀라면 응당 숙녀답게 부드러워야죠.”지윤은 희승의 잔소리에 슬슬 짜증이 났다. 그러다 그가 자신한테 성질을 부린다고 한 말에 결국 터져버렸다. 그녀가 휙 하고 몸을 돌려 그를 때리려고 했다. 희승은 진작 그녀가 이렇게 나올 줄 알고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순간 그녀가 들고 있던 아이스크림콘이 중심을 잃고 바닥에 툭 하고 떨어졌다.지윤이 그 자리에 멍하니 서서 바닥에 떨어진 아이스크림을 안타까운 표정으로